진유경은 마음속으로 이미 한 마디가 떠올랐다.‘끝났다.’검사 센터라는 네 글자가 순간 진유경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했다.‘아빠도 알고 있고 둘째 오빠도 알고 있네. 설마 이것 때문에 둘째 오빠가 요즘 날 대하는 태도가 이상했던 거야? 오빠가 갖고 온 샘플에 내가 손을 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진유경은 입술이 창백해질 정도로 깨물고서는 억울한 듯 진성택을 바라보았다.“아빠 제 기사는 왜 부르시는 거예요? 저와 대면이라도 하려는 건가요? 뭐든지 저한테 물어보세요. 전 절대 아빠를 속이지 않아요. 아빠가 이렇게 절 믿지 못하신다니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내가 물으면 네가 솔직하게 말할 거니?”“제가 언제 아빠한테 거짓말한 적 있어요?”진유경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완전히 피해자의 위치에 놓았다.그리고 진성택도 진유경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기 손으로 키운 착하고 말을 잘 듣는 딸이 진정훈의 말처럼 그런 일을 저질렀을 리 없다고 믿고 싶었고 진정훈의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반드시 모든 것을 분명히 밝혀내야겠다고 결심했다.입양한 딸이라는 신분은 때때로 매우 민감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아직도 밖에서 고생하고 있을 텐데 진성택은 진유경이 그 아이에게 어떠한 상처도 주지 않길 바랐다.“나도 널 의심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유경이 네 기사가 이런 중요한 시점에 정훈이가 검사를 맡긴 검사 센터에 따라갔다는 건 반드시 합리적인 해석을 해줘야 할 거야.”진유경은 진성택의 말을 듣고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그러니까 내가 수년 동안 그렇게 노력하고 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잘해줘도 마음속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핏줄인 딸 그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 아이가 도대체 뭔데?’진유경은 눈물을 흘렸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찾았다는 그 아이를 원망하고 있었다.‘도대체 그 아이가 누구지?’진유경은 그 아이가 누군지 알았다면 반드시 그 여자를 갈기갈기 찢
진유경은 기사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오빠, 아빠, 저 사람이 하는 말 믿으면 안 돼요.”“빨리 말해요.”진정훈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기사는 다급하게 말했다.“할머니와 작은 아가씨 모두 저를 찾아왔었습니다.”진성택과 진정훈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할머니와 진유경이 모두 기사를 찾아갔다고?’진정훈과 진성택은 서로를 바라봤고 진성택의 가슴은 심하게 요동쳤다.진성택은 자기 엄마 김영희의 사람이 기사를 만난 것은 진유경이 할머니의 옆에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진유경과 김영희가 각자 기사를 찾아간 것이었다. 그 말은 진유경과 김영희 모두 그 아이를 찾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진유경이 그 아이를 찾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건 진성택과 진정훈 모두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김영희는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아빠.”진성택이 힘없이 테이블을 붙잡는 순간 진유경은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진성택이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가까이 오지 마라.”진유경은 순간 온몸이 얼어붙으며 불쌍한 눈빛으로 진정훈을 바라보았다.“오빠.”지금 이 순간 진정훈의 표정도 매우 차가웠다.“정말 두 분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왜 제 말은 들어주지 않으세요?”진유경은 울면서 말했다.그녀는 여전히 변명하고 있었지만 지금 진정훈과 진성택은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진정훈은 진성택을 부축하며 뒤에 서 있는 기사에게 말했다.“나가보세요.”기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처량해 보이는 진유경을 한 번 쳐다보고서는 몸을 돌려 서재를 나갔다.진유경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샘플만 바꿔서 그 아이가 진씨 가문과 관계가 없다는 걸 증명하면 그걸로 끝날 줄 알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기사와 대질 신문까지 받게 된 거야? 어디서부터 잘못돼서 의심받게 된 거지?’진성택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진유경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넌 짐을 정리해라. 우리
진정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김영희는 계속 냉혹한 말을 뱉어냈다.“어디서 누구와 몰래 낳았을 지도 모르는 아이를 너희는 왜 몇 년 동안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찾는 거니.”“그만하세요.”김영희의 말은 진성택의 신경을 심하게 자극했다. 그는 잔인한 표정을 지으며 김영희를 향해 말했다.“정훈이 엄마는 이미 죽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말씀하셔야겠어요?”“죽었다고? 그건 그 여자가 벌을 받은 거야. 죽었다고 해서 그 죄가 다 사라져?”“제가 말했잖아요. 그 아이는 제 딸이에요. 그 아이는 죄가 없다고요.”진성택은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그 일은 그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고통이었다. 매번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스스로 고통스럽게 자책하며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를 해소할 곳이 없었다.진정훈은 온몸에 피가 거꾸로 흐르는 기분으로 진성택을 바라보다가 다시 김영희를 바라보았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부서지는 걸 느꼈다.김영희가 말하기 전에 진성택이 계속 말을 이었다.“그럼 어머니는 그 아이가 제 딸이 아니라고 확신하셔서 샘플을 바꾸신 거예요?”이 말이 나오자 진정훈은 더욱 어두운 눈빛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그래. 그 아이가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면 왜 샘플을 조작한 거지?’할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눈빛으로 진성택을 바라보았다.진성택이 말했다.“결국 어머니가 정훈이 엄마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그런 거잖아요. 그동안 어머니가 정훈이 엄마가 낳은 아이들을 얼마나 냉혹하게 대하셨는지 생각해 보세요.”진정훈은 순간 호흡이 거칠어졌다. 아버지의 말에 그는 마침내 무언가를 깨달았다.그동안 김영희는 그들에게 항상 냉담한 태도를 보여 왔다. 그들은 할머니가 원래 손녀를 더 소중히 여기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할머니는 그들의 엄마를 싫어했던 걸까? 그래서 그들까지 좋아하지 않았던 걸까?진정후은 몇 년 동안 해외에 있으면서 전화로 들은 얘기들과 이번에 집에
샘플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진정훈은 가장 먼저 진유경을 의심했다. 할머니가 별로 기뻐 보이지는 않았지만 진정훈은 할머니가 그런 조작을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할머니의 친손녀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늘 밤 할머니가 한 말은 도대체 다 뭐지?’한 시간 뒤 진정훈은 완도에 도착했다. 윤설은 마침 야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요리 솜씨는 매우 뛰어났기에 진정훈은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는 지금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진정훈이 도착한 것을 본 윤설은 우아하게 마중을 나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훈 씨.”진정훈은 윤설을 진윤이 어떤 방식으로 손에 넣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아주 요염하고 화려한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아니었다.윤설은 온화한 얼굴을 하고서는 맑은 눈동자에는 아무런 욕망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진정훈은 윤설을 보자마자 진윤이 왜 윤설과 결혼했는지 이해했다.‘윤설에게는.’“오지 말라고 했잖아.”진정훈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진윤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제야 진정훈은 정신을 차리고서는 짙은 네이비 잠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진윤을 발견했다.윤설은 진윤을 보자마자 눈동자에 진윤만을 담았다.이 순간 진정훈의 머릿속에는 당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윤설처럼 온화한 여자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결국.’오늘 밤 김영희가 했던 말을 생각하니 진정훈은 어머니가 당시 그런 비극을 겪은 것이 할머니의 계획은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여동생이 사라진 것도 그렇고 그때 어머니는 왜 그런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던 거지?’비록 이후에 벌어진 모든 일은 진성택의 라이벌이 벌인 일이라고 밝혀졌지만 이제 진정훈은 그 사실을 전혀 믿을 수 없었다.이 순간 진정훈은 진윤을 바라보며 그동안 진윤이 진씨 가문을 싫어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진정훈은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깊이
진윤은 진정훈의 말을 듣더니 눈을 내리깔며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진정훈은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할머니하고 엄마는.”방금 김영희가 했던 말을 떠올리니 진정훈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것이 바로 그가 그토록 화목하다고 여겼던 가족이었다.지금 와서 보니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진정훈이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해 얘기할 때 진윤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형은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거지?”진정훈은 진윤이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고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사실 진윤이 대답하지 않아도 진정훈은 이미 진윤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진윤이 왜 집에 거의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그건 너무나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형 난 엄마와 동생이 그때 당한 불행한 일도 할머니가 꾸민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어.”“맞아.”진정훈은 순간 숨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형은 다 알고 있었네.”“믿을 수 있어?”‘아니 믿을 수 없어.’진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늘 밤 일이 있기 전에 진윤이 진정훈에게 말했다면 진정훈은 아마도 진윤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훈은 이제 믿었다.진윤은 할머니와 아버지를 증오했고 그동안 두 사람을 거의 원수처럼 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뭘 할 수 있었을까? 남이었다면 진윤은 바로 제거했겠지만 할머니와 아버지에게는 복수를 한다고 해도 결국 무력한 인생만 남을 것이다.그동안 진윤은 오직 비즈니스에서만 진성택을 방해했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그러데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 그리고 호영이에게도.”진정훈과 진호영은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할머니는 그동안 두 사람과도 별로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할머니에게 잘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하늘 아래 어떻게 이렇게 독한 할머니가 있을 수 있는 거지? 며느리가 싫어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다고
진윤은 와인진을 내려놓고서는 진정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알고 싶어?”“정말 알고 싶냐니? 난 알 권리도 없다는 거야?”“그럼 넌 지금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진윤의 목소리가 더욱 날카로워졌다.진정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뭘 의미하냐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오늘 김영희의 일이 너무 갑작스러워 진정훈은 지금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어머니의 죽음과 여동생의 실종이 할머니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도 진정훈은 믿을 수 없었지만 진윤이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 진정훈은 믿지 않을 수 없었다.진윤이 깊은 눈빛으로 망설이자 진정훈은 다시 한번 진윤을 재촉했다.“형.”진윤은 와인잔을 들어 또 한 잔을 비웠다.진정훈은 그런 진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더욱 답답했다.“알려줘. 진유경은 도대체 누구야?”“진성택의 사생아야.”순간 진정훈은 할 말을 잃었다. 거실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진정훈은 멍하니 진윤을 바라보고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오직 숨소리만 들렸다.“아니. 더 자세히 얘기하면 진성택과 첫사랑 사이의 사생아야.”진정훈이 물었다.“무슨 뜻이야?”‘첫사랑의 사생아? 무슨 뜻이지?’진윤은 조롱이 가득 섞인 웃음을 터뜨렸고 거기에는 얼핏 광기도 섞여 있었다.그동안 그는 그 누구에게도 진성택을 증오하게 된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진유경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동생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건 바로 너무 역겨웠기 때문이다.진윤은 자기 가족에 대해 지독히도 역겨움을 느꼈다.진정훈은 윙윙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서는 떨리는 눈동자로 진윤의 말을 기다렸다.진윤은 다시 와인잔을 채우며 말했다.“그때 여동생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성택은 진유경을 집으로 데려왔어. 그 이후의 일은 너도 알다시피 어머니는 진유경을 많이 사랑하셨지.”진정훈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맞아 엄마가 진유경을 얼마나 사랑했어.’“그럼 설마 엄마는.”“엄마에게 사실을 말했을 리가 있겠어?”진윤은
진윤은 할머니가 왜 그렇게 진유경을 아꼈는지 정말 몰랐다. 아마 그 내막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진윤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진씨 가문과 그는 완전히 무관한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진정훈은 다시 냉담해진 진윤의 모습을 보며 답답해서 물었다.“왜 이제야 나한테 말해주는 거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여기까지 말한 진정훈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그동안 진유경을 아끼고 사랑했던 장면들이 미친 것처럼 진정훈의 머릿속을 휩쓸었다.매번 진유경을 위해 정성껏 선물을 골라 생일파티를 열어주며 마치 공주처럼 그녀를 예뻐했다.당시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여동생에게 쏟았던 감정을 모두 진유경에게 퍼부었었다.그러나 지금 갑작스럽게 이런 진실을 알게 되자 진정훈은 모든 일들을 단번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왜 이제서야 이런 사실을 말해주었냐고 묻는 진정훈의 질문에 진윤은 차가운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너한테 알려줘서 뭐 해? 너와 진성택의 사이를 벌어지게 만들려고? 진성택은 널 통제할 수 없어.”“그럼 형은 내가 진유경을 아껴주는 걸 그냥 지켜봤다는 거야? 형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진정훈 한 사람의 인생에 오직 증오만 남아 있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야. 그리고 증오 때문에 파괴하면 안 되는 것들도 있어.”진윤의 목소리는 이 순간 더욱 엄숙해졌다.하지만 진정훈은 이 말에 할 말을 잃었다.‘그러니까 형은 내가 사실을 알게 되면 아버지와 갈등이 생겨 반항하고 순탄하게 성장할 수 없을까 봐 걱정한 거야?’“호영이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지.”진호영이 당시 얼마나 어렸는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어찌 됐든 진윤은 당시 사실을 알게 된 후 거의 주저 없이 진씨 가문을 버렸다.진정훈은 눈을 감았다. 심장이 너무 아파 제대로 숨쉬기조차 힘들었고 목은 금방 뻣뻣해졌다.그는 떨리는 손으로 와인잔을 들어 원샷했다.“이제 마지막으로 물을게.”진정훈은 숨이 멎을 듯이 호흡하며 입을 열었다.진씨 가문에 대해
진유경은 김영희의 품에 안겨 울다가 진정훈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순간 눈가가 더 붉어지더니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둘째 오빠.”진유경이 진정훈을 부르는 목소리에 김영희도 문 앞을 바라보았다.진정훈을 발견한 순간 김영희 얼굴에 남아 있던 모든 온화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진유경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진정훈을 바라보았다.“오빠 난 정말 그러지 않았어.”그녀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할머니는 진유경을 품에서 떼어낸 뒤 똑바로 앉게 했다. 그런 다음 엄숙한 얼굴로 진정훈을 바라보았다.“기사한테는 내가 다시 물어봤다. 네 외할머니의 지시라고 하더구나.”‘멀리 있는 정가 마을의 외할머니?’진정훈은 순간 비웃음을 터뜨렸다.김영희는 그런 진정훈의 모습에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그녀가 말을 하기도 전에 진정훈이 먼저 말했다.“정말 변명도 잘하시네요.”몇 년 동안 외할머니는 한 번도 강성에 돌아온 적이 없었고 진유경에게 호감을 보인 적도 없었다.‘그런데 지금 내가 정가 마을에서 돌아오자마자 외할머니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거야? 형의 말이 맞았어. 이 가문 정말 역겹네.’하지만 지금 진정훈의 눈에는 떠나야 할 사람은 그들이 아니었다. 그는 진윤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그런 방식은 고통받지 말아야 할 사람을 오히려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김영희는 진정훈의 말투를 듣고 나서 온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너 이 자식. 감히 이 할머니한테 그런 말투로 말해? 내가 네 할머니야.”진유경은 김영희의 화가 난 모습을 보더니 서둘러 일어나 김영희를 부축하며 말했다.“할머니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오빠 할머니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진유경은 한 편으로는 급히 김영희를 부축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원망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진정훈을 바라보았다.이 순간 진유경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마음이 아팠다.‘오빠는 그동안 날 정말 아껴줬는데 지금 왜 이러는 거야?’진정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김영희는 심하게 화가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
안지영과의 대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마침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불안하게 이리저리 쫓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은영을 달래고 나서도 심장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나태웅의 전화가 집 전화로 걸려왔다. 그녀는 번호를 볼 수 없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틀 남았어.” 그 한 마디에 안지영의 화가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주원이에게 사과해!” 안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미친놈! 끝까지 이러는 거야?’ 만약 예전 같았으면 안지영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안열이 들어왔을 때 안지영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배씨 부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안열은 안지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불안한 이유가 결국 고은영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감정은 조금 달랐다. 안지영은 고은영으로 인해 말문만 막힐 정도였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분명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고은영에게 생긴 일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고 고은영이 또 울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안열은 안지영의 목소리에서 누그러지지 않는 화를 느끼며 궁금해했다. 고은영이 아니라면 또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태웅이 나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이 사람이...!’ 나태웅에게 욕을 할 만큼 다 했는데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지금 안지영은 연달아 욕할 힘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를 설명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 병신?’ 안열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요? 사과요?” ‘정말 이 사람 끝까지 그러는 거야?’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얼마 전 나태웅의 집착과 하주원
안지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큰일이면 분석하는 데 얼마나 큰 두뇌 용량이 필요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울려고 할 정도로 급해진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진짜?’ “그럼 나태현은 량천옥이 너희 언니의 친엄마라는 걸 알아?” “그건 나도 몰라.” 상황이 이미 너무 복잡해서 이젠 고은영조차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태현과 고은지가 거래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동기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지신혜와 결혼을 약속했고 고은지를 천락 그룹에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동안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전력도 있으니 나태현의 속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난 네가 차라리 네 언니에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말해야지! 량천옥이 아무리 미워도 네 언니의 친엄마잖아.” 진실을 알게 된 후 고은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숨기면 만약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라는 사실은?”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이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안지영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태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역시 나씨 가문 사람이야. 어쩜 다들 이렇게 나쁜 자식이지?’ 전에는 나태현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같이 나쁜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얘기하는 게 좋겠어!” 이렇게 큰일을 말 안 하면 나중에 얼마나 큰일로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안지영은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고은영더러 고은지에게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은지는 지금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아무런 일도 모르는 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