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몇 마디 인사를 건넨 뒤 전화를 끊었다.고은지는 이지훈과의 통화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마도 감기에 걸려서 복잡하게 생각할 기운이 없는 것 같았다.점심에 고희주에게 어떤 음식을 주문해 줄지 고민하다가 배달 시간을 정한 뒤 소파에서 잠들었다.고희주는 엄마가 잠든 모습을 보고 침실에서 담요를 갖고 와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나태현이 회사에 도착했을 때 이지훈은 그를 보고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이제 회의 시간까지 5분 남았다.이지훈은 정중하게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대표님 어젯밤에 집에 안 가셨어요?”나태현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으니 회의 시간을 뒤로 밀어야 할지 걱정되어 이지훈은 로얄 가든에 물어봤다.그런데 집사가 전화를 받더니 나태현이 어젯밤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로얄 가든은 나태현이 매일 돌아가는 곳인데 그렇다면 어젯밤 외박을 했다는 것일까?‘어디에 계셨던 거지? 친구분들하고 노신 건가?’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아무리 친구들끼리의 모임이 있었다고 해도 나태현이 외박하는 일은 아주 적었기 때문이다. 이지훈은 마음속으로 많은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나태현은 아무 대답도 없이 이지훈에게 눈빛도 주지 않고 바로 회의실로 들어갔다.이지훈은 감히 더 묻지 못하고 나태현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회의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태현이 물었다.“고은지한테 전화해 봤어?”“아 전화했습니다.”이지훈은 멈칫하더니 정신을 차리고서는 재빨리 대답했다.“고 비서님께서는 한 달 동안 새로 일자리를 찾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따님이 아직 완쾌되지 않아 지금도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이는 아기를 데리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은지의 딸이 아직도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말에 나태현의 차가운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회의실로 들어갔다.이지훈은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감히 아무 말이나 할 수 없었기에 재빨리 나태현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요즘 배준우의 보호를 받으며 더욱
안열은 두 번 전화를 걸어 증거 불충분으로 나태웅이 풀려났다는 것을 알아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취조실에서 24시간 동안 머물렀다.이것만으로도 안지영이 나태웅을 난감하게 만든 것은 확실했다.나태웅은 이미 천락그룹에 도착했다고 한다.안열은 바로 천락그룹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마침 나태웅이 회의하고 있다는 말에 안열은 나태웅의 사무실에서 점심시간까지 기다렸고 나태웅은 그제야 회의실에서 나왔다.나태웅은 안열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순식간에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는 매우 불쾌한 말투로 말했다.“누가 들어오라고 했죠?”안열은 나태웅의 말투에서 지금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자신이 마음에든 여자가 고소했으니 누가 참을 수 있을까?하지만 나태웅이 전에 안지영에게 저지른 일들도 마음에 둔 여자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만약 사실이라면 나태웅이 마음에 담은 여자가 너무 불행하게 느껴졌다.죽어서도 그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건가?나태웅의 날카로운 눈빛에 안열은 헛기침하며 말했다.“그럼 같이 식사하실까요? 제가 사겠습니다.”정말 재수가 없었다. 안열은 평생 단 한 번도 남자에게 밥을 산 적이 없었는데 첫 식사를 나태웅 같은 사람에게 사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불행하게 느껴졌다.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금 안지영에게 일어난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열처럼 업무를 보는 사람들도 함께 피곤해졌기 때문이다.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안열이 처리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안열은 이삼일 안에 반드시 해결해 냈다.하지만 나태웅을 만난 뒤로 한 달이 넘도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안열은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다.심지어 안열은 나태웅이 자기를 모욕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이미 이렇게 됐으니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한 끼 식사를 함께하는 것이 하니라 열 끼라도 안열은 살 수 있었다.안열이 직접 밥을 사겠다는 말에 나태웅은 경멸스러운 듯 비웃음을 날렸다
이 말을 들은 나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가운 눈으로 안열을 쳐다볼 뿐이었다.안열은 나태웅이 아무 말도 없는 모습을 보고 그가 뭔가를 깨달았다고 생각했다.예전이라면 그녀는 나태웅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지영이 분명하게 태도를 결정했기에 더 이상 비밀로 할 필요가 없었다.게다가 안열이 조언을 해준다 해도 나태웅이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알아들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계좌 조회는 장난이 아니에요. 나 대표님께서는 안지영 아가씨를 감옥에 보내실 건가요? 그러면 안지영 아가씨가 대표님께 올 것 같으세요?”나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니면 대표님께서는 안지영 아가씨를 감옥에 보내시면 장 대표님께서 아가씨를 빼낼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허.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장선명이 대단하다는 걸 자랑하려는 건가?”나태웅은 경멸스러운 듯 비웃었다.그는 장선명을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나태웅이 고집을 부리는 모습에 안열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대단한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안지영 아가씨를 아껴주시는 건 확실합니다.”동영그룹을 떠난 뒤 안지영이 실수했을 때 나태웅은 어떻게 했나?그녀를 압박하는 것 외에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이는 안지영에게 끊임없이 충격을 주었고 처음에는 그녀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 파악해도 아주 안타까운 상황이었다.그녀의 아버지 안 회장님은 지금 병원에 계셨고 회사는 현재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벌어진 일들을 돌이켜봐도 무슨 쓸모가 있을까?결국 나태웅을 더 원망하게 될 것이다.안열이 장성명과 안지영을 얘기하자 나태웅은 짜증을 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래서 안열 씨가 하고 싶은 말이 뭐죠?”“한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을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손에 꼭 쥐고 보호해 줘야지 나 대표님처럼 직접 좋아하는 사람을 무너트리는 게 어디 있어요?”정곡을 찌르는
안열은 나태웅의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욕을 퍼부었다.비서실 전체에서 그녀가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퍼붓는 것을 들었다.나태현과 이지훈도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안열이 작은 입으로 욕을 뱉어내며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나태현과 이지훈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도대체 회사에 어떤 직원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생각했다.이때 마침 코너에서 걸어오는 안열을 보고 이지훈은 할 말을 잃었다.‘저 여자는 장선명 대표 옆에 사람 아닌가?’나태현은 첫눈에 안열을 알아보았다.안열은 너무 화가 나서 나태현과 이지훈이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것을 완전히 눈치채지 못하고서는 작은 입으로 계속 욕을 뱉어내고 있었다.이지훈은 안열의 욕설을 듣고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그는 옆에서 어두운 분위기를 풍겨내는 나태현의 눈치를 보고서는 재빨리 말했다.“안열 씨.”안열은 그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이지훈과 나태현을 발견했다.그녀는 이번에는 예의를 차리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쪽으로 들어가 나태현에게 고자질하기 시작했다.비록 나태현의 앞에서는 욕을 하지 않았지만 아주 거친 태도로 나태웅에 대한 불만을 말했다.“정말 너무 어이가 없어요. 나태웅 대표님이 안지영 아가씨를 좋아하는 걸 누가 몰라요?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게 어디 있어요? 한 여자를 좋아해서 좋아하는 여자의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하게 만들고 집안을 망하게 하고 사람을 감옥에 넣으려고 하는 건가요?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나씨 가문에서 어떻게 이런 아들이 태어날 수 있어요?”안열도 지금 자기가 고자질하는 것인지 아니면 불만을 쏟아내는 것인지 몰랐다.눈앞의 남자가 나태웅의 친형이든 아니든 안열은 머릿속에 불만을 모두 쏟아냈다.어차피 그녀는 나태웅의 머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역시 그래서 안지영이 나태웅의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켰던 것이다.안열은 이번에 나태웅을 만나고 너무 화가 나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나태현도 나태웅이 안지영의 일에 신경을 쓰고
이지훈은 나태현이 뒤로 돌아 걸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식사하러 안 가세요?”“안 가.”나태현은 차갑게 한 마디를 뱉어내고는 전용 엘리베이터에 탔다.이지훈은 그 상황을 보고 나태웅을 혼내러 가는 줄 알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태현에게 먹을 것을 사다 주려고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이지훈이 떠나자마자 엘리베이터에 탔던 나태현은 다시 주차장으로 나와 차를 몰고 그린빌로 향했다.오늘은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다.요즘 비가 많이 와서 그린빌에 도착했을 때 동네 입구에 있는 지하 주차장에 오늘 비가 많이 와서 지하 주차장이 침수될 수 있으니 차를 지상에 세워달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나태현은 차를 그린빌 대문 밖에 세웠다.그가 차에서 내렸을 때 멀지않은 곳에서 핑크색 어린이용 우산을 쓴 고희주가 보였다.고희주는 손에 고은지에게 주려고 산 약봉지를 들고서는 약국에서 나왔다.치마를 입은 고희주의 양말은 이미 비에 젖어있었다.고희주는 급하게 입구 계단을 오르려다가 조심하지 않아 바로 바닥에 넘어졌고 봉지 안에 들어 있던 약이 전부 바닥에 쏟아졌다.당황한 고희주는 바로 바닥에서 일어나 물이 묻은 약을 주워 재빨리 옷으로 닦았다.경비원은 상황을 보고서는 다급하게 앞으로 다가와 고희주를 도와주었다.“꼬마 아가씨 어느 집 딸이야? 왜 혼자서 약을 사러 왔어? 아저씨가 도와줄까?”고희주는 넘어진 것이 아픈지 웅얼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태현은 늘 냉정한 사람인지 이 장면을 보고서는 순간 마음에 무언가 날아와 꽂히는 듯 고통이 느껴져 숨이 막혔다.경비원은 고희주를 안아 엘리베이터 안까지 데려다주었다.그러고서는 고희주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인터폰으로 전화 버튼을 눌러 바로 경비실에 연락하라고 당부했다.그린빌의 서비스는 상당히 좋았다. 주민에게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당장 사람을 보내 도와주었다.고희주는 아주 예의 바르게 경비원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나태현이 엘리베이터에 올라 고희주를 살피니 젖은 양말에는 구멍이 났고 무릎
한편 고은영은 오늘 배준우의 사무실에 왔지만 사실은 계속 마음이 불안했다.어젯밤 배준우는 침실에 돌아온 뒤 바로 잠에 들었다.아침에도 회사에 와서도 그는 계속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어젯밤 진정훈이 서재에서 도대체 그녀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지 물을 기회가 없었다.이 순간 드디어 점심시간에 둘만 있게 되었는데 배준우는 또 얌전하게 있지 못하고 고은영을 내버려두지 않았다.“오전 내내 일하고 피곤하지 않아요?”고은영이 화를 내며 그의 손을 잡았기에 더 위로 올라가진 못했다.오늘 회사에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티를 내려고 하진 않았지만 배준우를 보는 눈빛이 조금 이상했다.어젯밤에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고은영은 배준우의 목에 긴 손톱자국을 냈다.배준우는 그녀에게 키스하며 말했다.“안 피곤해.”전에 고은영이 임신했을 때 배가 많이 부풀어 오른 그녀를 보고 배준우는 감히 만지면 부러질까 봐 함부로 만질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속박도 없었기에 배준우는 아무리 고은영과 붙어 있어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난 피곤해요.”고은영은 배준우의 옷깃을 잡으며 투정을 부렸다.그녀는 어젯밤에 너무 무리했기에 진심으로 힘들었다.배준우는 웃으며 말했다.“내일부터 아침에 나와 함께 조깅하자.”고은영은 뛰는 운동 같은 걸 힘들어했기에 무의식적으로 싫다고 거절했다.이에 배준우가 말했다.“꼭 해야 해.”‘이 체력으로 뭘 하겠다는 거야?’고은영은 매번 출장을 갔을 때마다 아주 천천히 걷는 것이 체력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고은영은 순간 울상을 지었다.배준우가 그녀를 안고 휴게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핸드폰이 울렸다.고은지의 전화였다.고은영은 재빨리 배준우의 품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움직이지 마요. 전화 받아야 해요.”배준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은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언니.”“이모 나야.”핸드폰에서 들려오는 것은 고희주의 약한 목소리였다.고은영은 고희주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깜짝 놀랐다.“우리 희주 왜
고은지의 열이 내린 뒤 고은영은 고희주를 바라보며 선을 뻗어 품에 안았다.“왜 이렇게 젖었어?”“엄마 약 사러 갔다가 실수로 넘어졌어.”고은영은 이 말을 듣고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슬픔이 몰려왔다.얼른 고희가 입고 있는 젖은 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줬다.무릎에 상처가 난 것을 보고 고은영은 얼른 약상자를 갖고 와 상처를 소독해줬다.“희주야 그럼 왜 이모한테 더 일찍 전화 안 했어?”“엄마가 말했어. 무슨 일만 있으면 이모를 찾지 말라고. 엄마가 처리할 수 있다고.”고희주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엄마는 뭐든지 다 해주겠다고 했지만 오늘은 계속 일어나지 않았다.고은영은 희주의 말을 듣고 더욱 마음이 아팠다.고희주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은영은 마음이 점점 더 불편했다.“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모한테 전화해 알겠지?”“알겠어. 꼭 기억할게.”고희주의 옷을 갈아입혀 주고 무릎에 난 상처를 다 치료해 준 뒤 고은영은 또 고은지의 머리를 짚어보며 체온을 체크했다.다행히 다시 열이 오르진 않았다.고은영은 얼른 고희주의 옷을 빨아주고 다 먹은 배달 음식을 깨끗하게 치워주었다.고은지가 했을 일을 그녀는 모두 해주었다.모든 것을 정리했을 때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갖고 올라왔다.이때 고은지는 열이 또 오르기 시작했다.이렇게 반복적으로 열이 오르는 일은 성인 어른에게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지만 이번에 고은지가 아주 독한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나태현은 마침 회사에 가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갖고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고은영과 고희주도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것을 보고 다시 들것을 보니 고은지가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었다.나태현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고은영은 이곳에서 나태현을 만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깜짝 놀랐다가 이내 인사를 건넸다.“나 대표님.”나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고희주는 고은영의 품에 안겨 있
이때도 고은지의 손등에는 여전히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고은지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고은영은 깜짝 놀랐다.“누워 있어. 언니 열이 심하게 났었으니까.”비록 깨어났지만 고은지는 아직도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고 힘이 하나도 없었다.고은지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희주 많이 놀랐지?”“미안해 엄마. 너무 걱정돼서 이모한테 전화했어.”고희주는 힘없이 말했다.고은지는 고희주를 혼내려는 뜻이 없었지만 고희주가 입을 열자마자 사과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고은지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엄마는 희주를 혼내려는 게 아니야. 희주야 너무 잘했어.”“봤지? 엄마는 널 혼내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희주야.”고희주는 오후 내내 고은지가 자신을 혼낼까 봐 걱정했다.이런 성격을 보면 조씨 가문에 있을 때 얼마나 얌전하게 지냈는지 알 수 있었다.진여옥과 조영수는 모두 아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사람들이었다.고은지는 항상 고희주를 얌전한 아이로 교육했다. 이렇게 얌전한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헤어질 때 여전히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고은지에 대한 원망이 고스란히 고희주에게 향했다.고은영은 부드러운 손길로 고희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이제 두 사람이 항상 함께하고 있으니까 서로를 챙겨줄 수 있겠네.”고은지는 슬프게 고개를 끄덕였다.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만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성장했다.고은지는 고희주가 더욱 가여웠고 죄책감이 들었다.그녀는 또한 자신을 깊은 실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그 남자가 너무 미웠다.간병인은 그녀들에게 먹을 것을 사 왔고 전부 담백한 음식들이었다.고은영과 고희주는 고은지가 밥을 먹는 것을 바라보며 고은영이 말했다.“오늘 희주는 내가 란완리조트에 데려가서 재울게. 언니는 푹 쉬어.”“아니야. 내가 데리고 있을게.”고은지는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아직 고희주는 아픈 상태였기에 고은지는 고희주가 옆에 없으면 안심할 수 없었다.고은영도 고은지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