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독 바빴던 안지영은, 장선명이 선뜻 건네는 도움을 거절하지는 않았다.장씨 집안과 엮인 일이었기에 그녀는 비교적 안심하고 장선명에게 맡겼다.......한편 나태웅은 잔뜩 화가 난 채 회사로 돌아왔고, 왕여는 바로 눈치를 채고는 다가갔다."대표님!”"지금 당장 하늘 그룹의 전체 내부 상황들을 정리해놔. 퇴근하기 전에 무조건 해놔.""..."퇴근하기 전까지?왜 이렇게 하늘 그룹에 관심이 많은거지? 이젠 아예 도와주기라도 하는건가?설마 안지영이 부탁한건 아니겠지?왕여는 단단히 사랑에 빠진 나태웅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에는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는데 말이다."네. 바로 준비할게요." 그렇게 왕여가 자리를 떠났고,사무실에 혼자 남은 나태웅은 매서운 눈빛으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한편 그 시각,배준우는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시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지는 듯 했다. 어젯밤 새벽 2시, 고은영이 란완 리조트를 떠난 이후로 그는 줄곧 멘붕의 상태에 있었다.지금까지 알아낸 단서로는 그녀가 차를 타고 공항 고속도로에까지 올랐지만 비행기를 타고 떠난 기록은 없었다.그게 마지막 정보였다."공항 고속도로에 올랐는데 비행기는 타지 않았다고?" 배준우의 말투는 매우 차가웠다.진청아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예상하는 바로는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비행기표를 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다른 사람의 정보라면 누구 거를? 설마 고은지?하지만 둘의 얼굴은 전혀 닮지 않아 엄격하게 검사 절차를 뚫기는 어렵다고 생각됐다.아니, 그러면 비행기도 안 탈거면서 공항 고속도로는 왜 오른거지?혹은 공항 고속도로에서 내려 다른 곳으로 간건 아니겠지?공항 쪽 cctv에서는 그녀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그러므로 고은영은 아마도 아직 강성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컸다. "사람들을 다 동원시켜서 서둘러 찾아내!"배준우는 조급해났다.이 여자 대체 어디 있는거야?진청아는 고개를 끄덕였
장선명이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그는 마침 배준우가 잔뜩 화를 내며 누군가의 전화를 끊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얼핏 들린 얘기만 봐도 그 상대는 배준우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 나이를 먹고도 어머니랑 사이가 안 좋은거야?”장선명의 인기척에 배준우의 안색은 금세 누그러졌고, 손에 든 담배를 꺼버렸다."안지영한테는 전화 안 해도 되겠어?"그는 내심 고은영과 안지영이 서로 몰래 연락이라도 했으면 했다. 이미 정씨 어르신과 고은지 쪽은 모두 조사를 마쳤지만, 그들 또한 아직 고은영으로부터 전화를 받지 못했다.만약 안지영조차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영영 찾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이러다가 정말 홀로 밖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라도 당하게 될가봐 걱정됐다.장선명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은 아니야. 고은영도 지금 안지영이 누구보다도 바쁘단걸 잘 알아. 그래서 일부러 더욱 연락을 하지 않을거야.""..."그 말을 들은 배준우의 눈빛은 더욱 무거워졌다.“그러게 너도 참, 왜 하필 이때 이혼하려고 하는거야?""그리고 그 여자가 정말로 량천옥의 딸이 맞는지 아닌지, 그건 확실하게 알아냈어?"이렇게 큰 일은 충분한 확인을 거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배준우는 점점 초조해지기만 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오히려 장선명에게 반문을 하였다."네가 보기엔 량천옥이 어떤 사람인데?""교활하고 악랄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든 일에 매우 신중한 사람.""네 말이 맞아. 신중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지. 보통 그녀의 손을 거쳐가는 일들이라면 거의 아무런 착오도 없었어."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하게 태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녀의 머리는 엄청 똑똑했다.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그 흐름을 읽으면서, 사회의 트렌드에 맞춰 살아가는 그야말로독한 여자였다. 량천옥은 몇년간 배씨 집안에서 살면서 천의를 만들어내고는 해외에서도 극찬을 받았다."그 여자가 천의를 고은영에게 넘겨준 이 사실만으로도 배지영이 한 말이 거의
모든 일의 보이는 면만 믿지 말고 뭐든지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 법이니까. 점점 가라앉는 배준우의 안색을 본 장선명은 여전히 단호했다."설령 그 여자가 천의를 고은영한테 넘겼더라도,""그것만으로는 그 친 딸이 고은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어. 뭐든지 증거가 있어야지."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친자 확인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량천옥의 입장으로 생각해봐도, 딸과 떨어진지 꽤나 오랜 시간이 됐는데 대체 어떻게 고은영을 자신의 딸로 인정한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그 사이에 어떤 일을 겪었을지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요 며칠동안 배준우는 이 생각만으로도 매우 힘들게 지내왔다. 고은영이 량천옥의 딸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마치 큰 돌에 부딪힌듯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장선명은 그런 그를 달래주었다. "네 말도 맞아.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그 사이에 벌어진 일을 내가 어떻게 다 알겠어.”"그러니까. 량천옥이 무슨 근거로 고은영을 자신의 딸이라고 인정하는건지 그건 너도 잘 모르잖아.""그래도 최소한 친자 감정은 해보지 않았을가?""..."그러네.량천옥은 치밀한 사람이었기에 결코 허술하게 자신의 딸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차라리 네가 직접 알아봐. 그 여자가 정말로 친자 감정을 하긴 했는지."만약 량천옥이 정말 친자 감정이 아닌 개인의 추측으로 고은영을 받아들인거라면,배준우는 장선명의 말대로 더이상 의심을 거두기로 했다. "일단 먼저 알아내. 그런데 이제 와서 어떻게 확인하지? 네 와이프는 이미 도망 갔고.” 그 말을 들은 배준우는 다시 무너졌다. 자신이 갑자기 관계를 끝내자고 말을 내뱉은 탓에 고은영이 속상하여 도망 간게 아닌가 싶었다.고은영의 입장으로는 이런 일을 태어나서 처음 겪어봤기에 틀림없이 많이 놀랐을 것이다."안지영이 그러더라고. 그 여자가 도망 간건 네가 아이를 빼앗을까 봐 두려워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고."겁도 많은 고은영이 자기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만약 정말로 고은영의 뒤에서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량천옥이 아닐가?의심이 든 배준우는 곧바로 R국으로 향하여 알아보기로 했다.그런데 그 결과, 얻어낸 단서는 없고 도리여 고은영의 실종 소식이 파다하게 퍼졌다.마침 R국에 있던 량일은 진청아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급히 량천옥에게 다시전화를 걸어 즉시 돌아오라고 하였다.하지만 량천옥은 오늘 밖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비록 천의를 놓아버리긴 했지만, 그녀는 결코 이렇게 쉽게 비지니스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녀는 R국에 온 후로, 놀라운 속도로 인맥을 넓혀 다시금 재기를 준비하고 있었다.량일의 전화를 받은 그녀는 즉시 서둘러 돌아왔다."대체 무슨 일이에요? 배준우의 비서가 왜 어머니한테 전화한거예요?""그냥 평범한 인사를 한거긴 한데, 뭔가 의도야 있겠지."심상치 않은 상황에 량천옥은 뭔가 께름칙했다.곧이어 강성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배준우한테 대체 무슨 일이 생긴건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이미 소문이 퍼질대로 퍼져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그렇게 량천옥은 결국 고은영과 배준우가 이혼하고, 고은영이 실종된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쾅!"량천옥은 잔뜩 화가 나 전화를 깨부셨다.량일은 한쪽 켠에서 이 모든걸 듣고 있었었다."은영이가 왜 없어져? 역시나 배준우가 괴롭힌거지?" 량일마저 조급해났다.너무나도 크게 놀란 량천옥은 숨을 가쁘게 쉬기 시작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이렇게 난장판이 될 줄은 몰랐다.R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유청 그 여자 때문이야. 그 여자가 은영이 정체를 알아낸거야." 량천옥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전에는 어느 정도 유청에게 조그마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자식의 행복을 바라지는 못할 망정,손자를 임신한 며느리를 아예 쫓아내다니. "설마 내가 쫄아서 물러난거라고 생각한건가?" 량일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정체가 드러난 순간 고은영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량일이 한 켠에서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한편, 량천옥은 수없이 전화를 걸어 고은영을 찾도록 명령했다.그 와중에 조보은이 전에 고은영을 괴롭힌 사실이 있다는 것을 접하고는 사람들을 시켜 한바탕 혼쭐을 내주기도 했다. ......그렇게 강성 전체는 지금 고은영을 찾느라 완전히 혼란스러웠다.요 며칠 줄곧 마음이 편치 않은 고은지는 일 할때마다 빈번히 실수를 하기도 했다.틈만 나면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메시지도 보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은지 씨, 이거 틀렸잖아. 대표님이 알면 또 얼마나 혼내겠어?"진비서가 서식 한장을 고은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전에 한번도 그런 적 없던 고은지는 자신이 범한 말도 안 되는 실수를 발견하고는 당황했다. 진비서는 말을 이어갔다."요 며칠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보이네?"비서부에서도 어느 정도 눈치 챘다.고은지는 요즘 줄곧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늘 같은 실수도 처음이 아니었다.천락 그룹은 직원 업무에 대해서도 엄격한 요구가 있었다.그런데 만약 고은지가 계속하여 이렇게 실수를 한다면 언제든지 바로 해고될 가능성도 있었다.고은지는 낮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잘 수정하겠습니다.""난 괜찮은데, 대표님한테 걸리지 않게 조심해. 고치고나서 다시 바쳐."고은지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몸을 돌리고나면 다시 머릿속에는 고은영만 가득했다.얘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왜 아직도 소식이 없어?아무리 그래도 나한테는 뭐라도 알려줬어야지.다시금 표를 고치고는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나태현은 차가운 얼굴로 그저 앉아 있기만 했다.고은지는 조심스레 수정한 표를 건넸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저는...""걱정돼?""어쨌든 제 여동생이니까, 저......" 고은지는 더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요 며칠 꾸게 되는 꿈도 온통 고은영이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장면들이었다.고은지는 마음 같아선 아이를 친구에게 맡기고는 홀로 나가서 고은영을 찾고 싶었다. 그리하여
하루 아침에 동생을 잃은 요즘, 고은지는 하루 하루를 어둠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온통 절망과 무기력으로만 가득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태현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니 그녀는 큰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대표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그나저나 이 도표는 또 잘못 작성했네."고은지의 인사에도 나태현은 무덤덤하게 업무 실수를 다시 한번 지적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겁니다. 절대요."이런 대표님이 있는 한, 그녀는 소처럼 열심히 일하기로 마음 먹었다. "얼른 가봐!""감사합니다."고은지는 재빨리 서류를 들고는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나태현의 도움 덕에 그녀는 마침내 마음이 좀 편해졌다.......그렇게 며칠이 또 지났고,하루 이틀이면 찾을 수 있을거라 믿었는데 어느새 벌써 나흘째가 되었다.안지영도 조급해났다.회의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안열에게 물었다."아직도 은영이에 대한 소식은 없어?""방금 도련님께서 찾아오셨는데, 사모님께 드릴 점심 식사만 챙겨왔고 고은영 씨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으셨습니다."그 말은 여전히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안지영의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했다."이 바보... 대체 어디서 뭐하고 있는거야."배준우가 그렇게 무서웠던거야?아무리 그래도 그 상황에 왜 나한테 말 한 번 안해준거지? 왜 나에 대한 믿음이 없는거지?"고은영 씨는 줄곧 사모님을 걱정해왔어요. 사모님께서 요즘 유독 바쁘시니 굳이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으셨어요."사실이었다.지난번 남성에서 있은 일을 배준우에게 숨긴게 들킨 후로는, 배준우가 안지영을 자주갈구기도 했다.그리하여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든 안지영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고은영의 그 마음을 알고도, 안지영은 더욱 마음이 아파났다."그래도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적어도 살아있는지 아닌지는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오히려 무소식이 희소식일지도 몰라요. 아직 버틸만 하고 도움이 필요 없으니까 연락이 없는게 아닐가요?"안열도 불확실
그런데 카드의 계좌번호를 빤히 본 고은영은 순간...얼굴이 굳어졌다.전에 고은영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의 카드가 아예 계정이 해제된 후,당시 고은영은 아직 신분증이 아직 내려오지 않아 할머니의 신분증으로 이 카드를 만든 것이었다.그때 긴박하게 카드를 만든 이후로, 고은영은 오래동안 이 카드를 다시 사용한 적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왜 갑자기 돈이 인출이 된걸가?혹시 다른 카드를 썼다가는 배준우한테 들킬가봐?안지영은 뭔가 감이 잡혔다. 계좌에는 잔액이 3만원 정도만 남아있었고, 이건 당시 고은영이 급하게 돈을 쓴 후 남은 액수였다. 뭔가 눈치 챈 안지영은 재빨리 카드에 1억원을 이체하였다.얼마 후 오후 회의를 마친 후,안열은 안지영의 기분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회의할 때도 전보다는 더욱 몰입하였다.궁금했던 안열은 얼른 다가가 물었다."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봐요?""왜?" "기분이 좋아보이세요.""..."고은영이 아직 스스로 돈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가 있었다.그녀가 정녕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려면 인출 정보를 따라가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지만,안지영은 일단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 계속하여 돈을 쓰면서 고은영의 안전 상황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사실을 안열에게는 알리지 않았다."동지운 쪽에서는 여전히 타협할 의향이 없어보이는데 어떡하지?”지금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그러나 아직까지는 언제든지 통제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동지운은 그저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을 뿐이니까."안심하세요. 오래 버티지는 못할겁니다."안열이 굳은 어조로 말했다.그 말에 안지영도 많이 안심했다.다행히 안열과 장선명의 도움으로 요즘은 많은 것이 편해졌고, 회사도 전체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었다."나 오후에 병원에 갔다 올게. 넌 따라갈 필요 없어.""알겠습니다." 안열은 고개를 끄덕였다.가까스로 회사를 수습한 안지영은 이 틈에 병원에
장선명은 배준우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작에 이혼을 요구한 사람도 그였고, 량천옥이 낳은 친 딸이 싫다고 한 것도 그였다. 그런데 정작 고은영이 보이지 않자 왜 이렇게까지 조급해하는건지. 대체 진심이 뭔지 궁금했다."설마 안 회장 때문에 그래?" 장선명은 바로 물었다.그러자 안열이 대답했다."요즘 안지영 씨는 줄곧 병원에 가지 않으셨어요. 아마 안 회장과 연관된 일은 아닐거예요.""..."하늘 그룹 내부의 일도 아니고, 안 회장의 일도 아닌데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좋아한거지?설마, 고은영을 찾은건가?"그래, 알겠어. 틈만 나면 상황 알아봐.""네, 알겠습니다."그렇게 전화를 끊은 후,장선명은 배준우에게 다가갔다.한편 기성훈은 여전히 끊임없이 고은영의 휴대전화를 위치 추적하고 있었다. 그런데그 순간, 갑자기 한 곳으로 위치가 잡혔다. 그곳은 바로 그린빌이었다.당장 그 곳으로 달려가봤지만 정작 고은영의 그림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설마 핸드폰을 끄고 그린빌에 두고 간건가?장선명은 골치가 아파났다."너무 쉽게 당했네. 내가 너무 만만하게 봤어.""아마 이 상황을 다 예상했을거야."배준우는 더욱 초조한 표정을 보였다.이때 기성훈이 말했다."다른 방법이 하나 더 있어요.""뭔데?"그 말을 들은 배준우는 다시 눈빛이 초롱해졌다."만약 은행 카드라도 사용했다면 대체적인 위치라도 알아낼 수 있을거예요.”그러자 장선명의 시선은 배준우에게로 향했다. 배준우라면 그녀에게 카드 하나쯤은 넘겼을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배준우의 눈빛은 흐리멍텅했다.그 모습에 장선명은 말문이 막혔다."네 여자로서 사는게 정말 비참했겠네. 주어진게 아무것도 없고."제3자가 보기에는 고은영이 그동안 마치 배준우로부터 멸시를 당하면서 산 듯한 느낌이 들었다.뭘 선물할지 모르겠다면 적어도 은행카드 한 장은 알아서 쓰도록 줬어야 하는거 아닌가?정말 여간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네.“사모님 본인 은행카드도 괜찮아요. 주민 등록 번호는 아시
“어머니가 나한테 남긴 건 그대로 넘겨주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싸늘한 고은영의 시선에 진성택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진성택이 무언가를 덧붙이기 전에 고은영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않으면 뭐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예요. 진유경에게 손대는 건 쉬운 일이죠.”“유경이한테 손대지 마. 은영이, 너...”“됐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진유경을 그렇게까지 감싸는 진성택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실망감을 넘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래?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일까지 한단 말이야! 아내랑 아이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거지?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 엄마가 남긴 소중한 유품을 진유경 같은 년에게 넘기겠다고? 하...’진유경이 단순히 진씨 가문의 양녀였다면 고은영은 아마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실을 아는 고은영은 지금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설령 눈앞의 남자가 그녀의 혈육이고 아버지라 할지라도 고은영은 그를 혐오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진성택은 그녀의 분노에 애처롭게 그녀를 불렀다.“은영아...”고은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진성택이 말을 이었다.“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너한테 와서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 거야.”“같잖은 호소는 그만 하세요. 저희 사이에 애정이라 칭할 만한 감정도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내였던 사람에게 너무하네요. 엄마가 불쌍해요.”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특별한 애정이라 할 감정은 없었지만 진성택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고은영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진성택은 어떠한가.고은영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
고은영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요.” 진성택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지금 와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아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째 오빠가 병원에 왔었어.”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을 모든 주식들 있잖아. 할머니와 진호영, 그리고 유경이의 지분까지 너에게 줬다던데, 맞지?” 고은영은 차갑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맞아요.” 드디어 그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욱 차가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차가운 시선에 조금 떨린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주식들은 사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니까 너에게 돌아가야 맞아.” “그래서 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부른 거죠?” 고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가 주고자 한다면 왜 이제서야 이리 말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진성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그 주식은 네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줄 수 없다고요? 왜요?” 그의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또다시 진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 같았다. 진유경, 정말 독특한 존재다. 역시나 양딸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진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양부모는 하나같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너희 둘째 오빠가 그 주식들을 되찾고 나서 진씨 가문의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렸어. 지금 그들은 전부 저축해두었던 돈을 쓰고 있어.” 모든 지원을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