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어."감정도 제대로 안 해본거라니.장선명은 전화를 끊고는 바로 배준우에게 소식을 전했다."내가 확인했어. 량천옥은 친자 감정을 한 적이 없대."그 말은 량천옥은 틀림없이 다른 무언가를 근거로 고은영을 자신의 딸로 확신했다는것이다.그러나 그 근거가 대체 무엇인지는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일은 네가 너무 충동적인거 아니야?"“......”"정말 고은영이 량천옥의 딸이 아니라면?" 량천옥과 얽힌 일에 대해서 생각하면, 배준우는 쉽게 이성을 잃었다. 그가 량천옥을 증오하는건 단지 그녀가 배씨 집안에 시집을 온 이유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숨겨진 더욱 무거운 사실이 있는 것 같았다."아니라면...?""그 여자가 오해한걸 수도 있잖아." 진실이 무엇이든 지금으로선 확신할 수가 없었다. "..."만약 고은영이 정말로 량천옥의 딸이 아니라면, 그것이야말로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좋은 결과였다.하지만 지금은,우선 고은영조차도 찾을 수 없는 이 상황에 배준우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몇번이나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답답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그가 생각하기에도 이번 일은 너무 충동적이었다."고은영이 량천옥의 친 딸인지 아닌지는 일단 그만 말하고, 이혼까지 한 상황에 굳이 찾으려는 이유가 뭔데?""임신했잖아!"배준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단지 임신한 것 때문에?"장선명은 고작 그 이유일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에 배준우는 고은영을 데리고 자신들의 지인에게 직접 소개까지 했었다.그 전에는 여태껏 없었던 일이었다.비록 이미월도 잠깐 나타나긴 했지만, 배준우가 주동적으로 데려 온 것은 아니었다.이미월이 끝없이 집착하면서 찾아온 것이었다. 고은영이야말로 배준우가 주동적으로 누군가에게 소개를 한 첫 번째 여자였다.장선명은 그런 그가 고은영한테 약간의 감정도 없을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배준우의 숨결은 여전히 무거웠다."정말 친 딸인지 아닌지 알아내려면 일단은 고은영을 찾아야돼. 감정을 해봐야 된다고.”
경쾌한 말투만 들어도 안열이 말했듯이, 안지영의 기분은 매우 좋아보였다.그러나 장선명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점점 안지영에게로 다가갔다.두 사람은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가까워졌고, 당황한 안지영은 시선을 피했다.그러자 장선명이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돌렸다."뭐하는 거예요?" 놀란 안지영은 더듬거렸다."솔직하게 말해봐요. 혹시 고은영에 대한 소식을 들은거예요?"그 말에 안지영의 얼굴이 굳어졌다."뭣대로 생각하지 마요.""회사에는 아무 일도 없고, 아버님한테도 아직 좋은 소식은 없던데, 그럼 대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건데요?""기분이 좋긴 무슨.""표정이 다 티 나거든요." "..."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안지영은 얼굴에 다 티가 났다. 하지만 그녀 또한 사실 고은영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는 정보가 없었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배준우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혹여나 배준우가 나쁜 의도를 갖고 고은영을 다치기라도 할가봐. 장선명은 계속하여 안지영을 압박하였다. "고은영이 당신한테 전화라도 했어요?" "아니거든요!""그럼 어디에 있는지는 잘 알고 있겠네요?""저한테 전화도 안 했는데, 제가 어떻게 그걸 어떻게 알아요?"고은영이 일단은 알아서 몸을 숨기고 먹고 잘 지내는걸 알고 있던 안지영은 최대한 이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안지영의 부정에도 장선명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안 믿긴다면 직접 가서 조사라도 해보세요. 저 정말 아무런 전화도 받지 못했다고요.""그걸 굳이 조사해서 뭐해요?" 결국 장선명은 그녀를 놓아주었다."배 사장님은 지금 뭐하고 계신데요?"혹시나 배준우가 눈치라도 챈건 아닐가 불안했다. "고은영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데, 당연히 어떻게든 찾으려고 하죠.""..." 정말 아이를 뺏어내려는건가?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더욱 더 고은영의 소식을 배준우에게 알리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당신도 잘 알잖아요. 이미 임신한 지 7개월이나 넘은 고은영이 혼자서 밖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러운 시점, 갑자기 량천옥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배준우는 시큰둥하게 물었다."고은영한테 꽤나 관심이 많아보이네요? 왜죠?"은근히 조롱이 담긴 말투였다.량천옥은 그런 배준우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봤다.그렇게 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눈빛만 주고 받았고, 순식간에 사무실 분위기는 얼음장마냥 차가워졌다.한참 후에야 량천옥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번이 내가 널 봐주는 마지막 기회란걸 명심해."봐준다고?천의를 고은영에게 주고 강성을 떠난게 나한테 준 마지막 기회였다고?량천옥은 이렇게 해서라도 딸이 행복하길만을 바랬지만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심지어 임신까지 한 자신의 와이프를 쫓아내다니."고작 그런 식으로 봐준다고 생색내면 일이 다 해결될 줄 알았어요?"그 말을 들은 량천옥은, 더이상 배준우와 말이 통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이젠 더이상 널 봐줄 일은 없을거야. 앞으로는 각오해. 절대 후회하는 일 없길 바래."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차갑게 몸을 돌렸다.그녀는 여태 배준우는 배항준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두 부자가 다 이렇게 무정할줄은 몰랐다.그 성격대로라면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이에게도 모질게 마음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당시 량천옥은 배항준의 이 독한 성격 덕에 성공적으로 명문가에 들어가 상류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그런데 그 독한 마음이 자신의 딸에게 해를 끼칠 줄은 몰랐다.생각할수록 열이 받았던 량천옥은 더이상 그들과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량천옥이 떠난 후, 배준우의 얼굴은 다시금 고은영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동명 그룹에서 나온 량천옥은,다시 선글라스를 끼고 자신의 차에 오르려던 순간, 검은색 마이바흐 한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차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배지영이었다."아줌마. 저희 엄마가 만나재요." 배지영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러자 량천옥은 콧방귀를 뀌었다."그래도 난 네가 그 여자 딸인걸 잘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
배지영은 량천옥의 도도한 뒷모습을 보며 그저 화를 참기만 했다.지금으로선 그녀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한편 저 멀리 시골에서 겨우 먹고 지내는 조보은네 가족도 어려움에 부딪혔다.갑자기 정체 모를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무작정 그들을 패기 시작했다. "아악!"조보은은 주저앉아 끊임없이 울부짖었다.서정우와 서준호도 크게 맞아 코는 멍들고 얼굴은 부어있었다.고통을 참지 못한 조보은은 끙끙거렸다."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건데..."그렇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들은 한바탕 때리고는 자리를 떠났다."전에 강성에서 네가 건드렸던 놈들이겠지."서준호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그 말을 들은 조보은은 벌컥 화를 냈다."내가 누굴 건드렸다고 그래? 네가 전에 빚 진 그 사채업자들일 수도 있잖아. 에휴, 이런 바보 같은 너랑 결혼한 내가 멍청하지.""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너보단 나을거야.""나보다 낫다고? 내가 아니었다면 너희 서 씨 집안에서 대학생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아무리 대단한 대학생이라도, 뭔 소용이 있어?""매일 집에서 한가하게 밥이나 먹는 것 외에는, 난 얘가 뭐 잘난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어.""됐어, 그만해!" 서준호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 질렀다. 한때는 자신한테 한마디도 못하던 서준호가 벌컥 화를 내는 모습에 조보은은 다소 당황했다. 그래도 자신이 여태껏 가족을 위해 벌어준 돈이 얼마인데, 생각할수록 속상하기도 했다. "다시는 강성 사람들을 건드리진 마. 고은영이랑 고은지한테도 연락하지 마!"서준호는 신신당부했다.더이상 강성 사람들과는 엮이고 싶지가 않았다. 필경 괜히 건드렸다간 오늘 같은 일만 계속하여 반복될테니까. 고은영과 고은지의 이름을 들은 고은지는 더욱 분노가 치솟았다. "내가 여태 다 클 때까지 키워줬는데, 이 자식들 보답할 생각은 전혀 없네."하지만 서정우가 대학생이 되기까지, 두 자매가 물심양면 도와준건 꽤나 많았다. 하지만 조보은은 진작에 그걸 다 잊은 듯 했다.....
생각을 아무리 해봐도 안지영은 이 시한폭탄을 직접 해결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안열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걱정하며 말했다.“지영 씨 생각이 맞아요. 하지만 동지운처럼 야망 있는 사람은 손에 쥐고 있는 주식을 쉽게 내놓지 않을 거예요.”동지운은 손에 있는 막대한 주식이 하늘 그룹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그러니 동지운이 얼마나 그 구식을 소중하게 생각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안지영이 말했다.“정상적인 루트로는 얻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안열이 물었다.“지영 씨한테 좋은 방법이 있어요?”“동지운의 두 아들 모두 결혼했는데 내가 알기로는 두 며느리의 가문도 만만치 않은 상대일 거예요.”“지영 씨 뜻은?”“바로 분가예요.”안지영은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예로부터 분가는 가족의 일부가 딴 집으로 나가서 사는 것을 말한다.일단 분가 얘기를 꺼내면 동지운은 반드시 재산을 꺼내야 할 것이다.그렇게 되면 그의 손에 있는 주식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안열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지영 씨 뜻 이해했어요. 이 소식을 당장 서씨 가문과 진씨 가문에 알릴게요.”서씨 가문과 진씨 가문은 동지운 두 며느리의 집안이었다. 이 두 가문은 절대로 쉽게 건드릴 수 있는 가문이 아니었다.둘째 며느리가 동씨 가문에 시집온 그날 큰 며느리의 엄마는 자기 딸이 시집올 때보다 동씨 가문에서 둘째 며느리에게 더 좋은 차를 사주었다고 불만을 늘어놓았었다.둘째 며느리의 엄마는 자기 딸에게는 금을 사주고 큰 며느리에게는 다이아몬드를 사줬다고 불평했었다.한마디로 그의 두 아들이 결혼한 아내들은 모두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네, 가죠!”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안열도 동씨 가문의 두 며느리에 대해 들은 소문들이 생각났을 것이다.물론 이 소식을 어떻게 소문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이 기간 동안 동지운은 안지영에게 정말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었고 심지어 하늘 그룹을
나태웅은 장선명이 안지영을 찾아갔다는 것을 듣고 분노를 뿜어냈다.이 순간 왕여는 나태웅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기압을 느꼈다.왕여는 이런 환경에서 일하면 곧 심각한 심장병에 걸릴까 봐 걱정했다.“최근 하늘 그룹 건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어?”나태웅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지난 며칠 동안 안지영은 그를 만나려 하지 않았지만 나태웅은 그녀에게 벌어진 모든 일에 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왕여는 고민하다가 대답했다.“거의 처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동지운 하나 남았는데 동지운은 항상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람이라 쉽지 않을 것입니다.”“다른 건 없어?”“네, 다른 건 없습니다.”왕여가 고개를 저었다.장선명은 정말 꽤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하늘 그룹 내부에서 갑자기 결정권자를 바꾸는 것은 정말 큰 일인데 그것을 고작 며칠 만에 순리롭게 해냈다.나태웅의 얼굴은 더욱더 굳어져 갔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그의 깊은 눈빛은 보는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장선명은 안지영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려던 중 배준우의 전화를 받았다.현재 동영 그룹은 로비를 걸어가는 순간에도 프론트 데스크 직원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배준우가 요즘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아주 잘 보여줬다.사무실 안.배준우는 장선명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장선명은 바로 그의 맞은편에 놓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이런 시간에 다 찾아오고. 무슨 일이 그렇게 중요한 거야?”“량천옥이 돌아왔어.”량천옥의 이름을 꺼내자 배준우의 얼굴에 짜증이 몰려왔다.장선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이런 시기에 그 여자가 돌아오다니.“당연히 은영 씨를 찾아가지 않았을까?”“당연하지.”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찌푸렸다.장선명은 배준우가 뻔뻔한 량천옥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것은 단순한 증오 그 이상이었고 량천옥을 갈기갈기 찢어
“...”“그러니까 안지영은 네 와이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고.”장선명이 말하자 배준우가 그에게 물었다.“그럼 왜 네가...”“나도 물어봤어. 근데 내가 뭘 물어봐도 안지영은 딱 잡아떼면서 모른다고만 하는데 나라고 별 수 있어?”배준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선명이 먼저 말했다.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안지영은 이번에 고은영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않기로 단단히결심한 것 같았다.배준우는 이제 더 짜증을 냈다.“그럼 너 안지영한테 고은영 지금 임신 7개월이라고 말했어?”“말했지. 근데도 모른다고 하던데?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안지영은 모른다는 세 글자만 말할 거야. 근데 뭘 더 어떻게 물을 건데?”배준우는 침묵했고 더 큰 짜증이 몰려왔다,안지영이 뭐라고 하던지 그는 몸을 일으켜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장선명은 그 모습에 다급하게 일어서 그를 막았다.“너 뭐 하려고?”“안지영을 찾아가서 얘기해 보려고.”“그러지 마. 나도 아직 확실하지 않아. 네가 이렇게 찾아가면 안지영은 분명 모른다는 말밖에 하지 않을 거야.”배준우는 지금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방금 장선명이 얘기한 안지영의 변화는 분명 고은영 때문일 것이다.안지영이 고은영에게 어느 정도로 잘해주는지 배준우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며칠 동안 너무 힘들었다.이제야 안지영이 고은영의 행방을 알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두 사람이 아직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진청아가 노크하고 들어왔다.“배 대표님, 병원에서 해외 전문가팀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내일 재검 받으러 가시면 됩니다.”장선명은 병원에서 해외 전문가들을 데려왔다는 소식에 이상해서 배준우에게 물었다.“이 전문가들 설마 고은영 때문에 부른 거야?”예정일이 2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지금 사람이 사라졌다.배준우는 장선명을 무시하고 진청아에게 손을 저었다.진청아는 이어서 말했다.“병원에서 이번 전문가팀은 하루만 머문다고 했습니다. 가실 건가요?”단 하루?그런 거라면 내일 무슨 일이
“도대체 어느 정도야?”잠시 후 장선명이 다시 물었다.배준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말기.”‘말기라니? 그렇게 심각한 거야?’이전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간암 말기일까?장선명의 둘째 삼촌도 간암으로 사망하셨다.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모든 것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에는 질병의 손에 죽는 경우가 있었다.현대의학 기술로 인해 간암은 더 이상 심각한 질병은 아니었다.그러나 각 환자의 신체 상태와 질병의 정도에 따라 환자의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너 고은영과 이혼하겠다고 한 것도 이게 가장 큰 이유였어? 맞자?”량천옥의 딸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았을 때도 그저 사실을 인지했을 뿐 딱히 다른 반응은 없었다.다들 배준우가 어떤 일을 처리하든지 아주 정확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고은영이 량천옥의 딸이긴 하지만 그의 일 처리 방법으로 봤을 때 고은영의 탓을 할 가능성은 아주 작았다.그런데 이번에는 왜 고은영의 탓을 하는 걸까?지금 이 순간 그의 몸 상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배준우는 침묵을 지켰다.이로 인해 장선명은 그가 이혼을 하기로 결정한 주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그는 힘없이 한숨을 쉬었다.“고은영의 상황도 상황이지만 네 상태가 더 심각한 것 같은데?”“은영이는 지금 임신 7개월인데 놀라서 도망갔어.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고.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해?”고은영은 배준우뿐만 아니라 그녀를 만났던 배준우의 지인들이라면 그녀가 얼마나 연약한 사슴 같은 여자인지 알 것이다.그들은 아직도 철두철미한 배준우가 어떻게 부주의한 비서 고은영과 사랑에 빠졌는지 모르고 있었다.지금 배준우의 몸 상태를 고은영이 알게 되면 그녀가 견디지 못할까 봐 먼저 그녀를 자기 세계에서 내보낸 것일까?하지만 임신 7개월에 이혼은 견딜 수 있을까?배준우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통증이 있지만 짧아.”“너...”장선명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꼬리가 떨려왔다.그는 배준우의 안색을 살펴보았
“어머니가 나한테 남긴 건 그대로 넘겨주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싸늘한 고은영의 시선에 진성택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진성택이 무언가를 덧붙이기 전에 고은영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않으면 뭐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예요. 진유경에게 손대는 건 쉬운 일이죠.”“유경이한테 손대지 마. 은영이, 너...”“됐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진유경을 그렇게까지 감싸는 진성택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실망감을 넘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래?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일까지 한단 말이야! 아내랑 아이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거지?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 엄마가 남긴 소중한 유품을 진유경 같은 년에게 넘기겠다고? 하...’진유경이 단순히 진씨 가문의 양녀였다면 고은영은 아마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실을 아는 고은영은 지금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설령 눈앞의 남자가 그녀의 혈육이고 아버지라 할지라도 고은영은 그를 혐오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진성택은 그녀의 분노에 애처롭게 그녀를 불렀다.“은영아...”고은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진성택이 말을 이었다.“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너한테 와서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 거야.”“같잖은 호소는 그만 하세요. 저희 사이에 애정이라 칭할 만한 감정도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내였던 사람에게 너무하네요. 엄마가 불쌍해요.”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특별한 애정이라 할 감정은 없었지만 진성택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고은영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진성택은 어떠한가.고은영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
고은영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요.” 진성택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지금 와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아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째 오빠가 병원에 왔었어.”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을 모든 주식들 있잖아. 할머니와 진호영, 그리고 유경이의 지분까지 너에게 줬다던데, 맞지?” 고은영은 차갑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맞아요.” 드디어 그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욱 차가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차가운 시선에 조금 떨린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주식들은 사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니까 너에게 돌아가야 맞아.” “그래서 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부른 거죠?” 고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가 주고자 한다면 왜 이제서야 이리 말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진성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그 주식은 네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줄 수 없다고요? 왜요?” 그의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또다시 진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 같았다. 진유경, 정말 독특한 존재다. 역시나 양딸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진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양부모는 하나같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너희 둘째 오빠가 그 주식들을 되찾고 나서 진씨 가문의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렸어. 지금 그들은 전부 저축해두었던 돈을 쓰고 있어.” 모든 지원을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