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게 나약한 사람으로 보여?""그래도 조심해야 돼요."고은영의 고집에도 혜나는 그녀를 말렸다.혜나는 고은영이 란완 리조트에서 온 후 별 다른 꿍꿍이 없이 그녀를 모신 유일한 사람이었다. 당시 다른 하녀들은 이미월 때문에 불평, 불면이 많았지만 혜나는 신경 쓰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고은영을 돌보았다. 이때 배준우가 들어왔다."가자."그러고는 고은영의 손을 잡았다.배준우가 왔으니 혜나도 당연히 더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그녀의 곁에 서 있던 하녀는 고은영의 뒷모습을 보며 내심 부러워했다."작은 사모님은 체질이 정말 좋은 것 같아. 아이를 출산하고도 살이 별로 찌지 않을것 같애. 저 팔이 얼마나 가느다란지..""선천적으로 타고 난 체질이라 부러워할 수가 없지.”사실이었다.일반 임산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몸 전체가 퉁퉁 붓긴 했지만 고은영은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아예 살이 안 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눈에 잘 띄지 않았다.......곧이어 위층으로 올라간 고은영은 너무나도 피곤했지만 비행기를 타는 내내 씻지 않아 불편했다."저 먼저 샤워하고 올게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간 고은영이 막 옷을 벗는 순간, 갑자기 문이 열렸다.배준우가 그녀를 도와 다정하게 옷을 건네주려고 연 것이다. 놀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몸을 가렸지만, 가린 의미가 전혀 없었다. "왜, 왜 들어와요?"배준우를 본 고은영의 작은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아이까지 임신하긴 했지만 배준우 앞에서는 여전히 부끄러웠다.배준우는 부끄러워하는 그녀가 그저 귀여웠다."뭘 가리고 그래? 내가 못 본 게 뭐가 있다고?" 그러고는 차분하게 옷을 내려놓았다."빨리 나가요!""싫은데? 내가 너 샤워시켜줄게.""네?" 샤워를 시켜주겠다고?고은영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굳어버렸다. 배준우는 욕실로 들어가 욕조의 수온을 체크해보았다. 사실 도착하기 전에 이미 하녀들을 시켜서 물을 잘 받아놓으라고 했었다.그동안 피그스에서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고은영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저 혼자 할 수 있거든요..."큰 일도 아니고 그저 목욕 뿐인데, 혼자서 못하겠어? 그러나 배준우는 단호했다."절대 안 돼. 누가 감히 널 혼자 샤워하게 놔둔다면 내가 전부 해고시켜 버릴거야."아니, 왜 다른 사람 밥그릇으로 협박하는거지?고은영은 작은 입을 불만스럽게 삐죽 내밀었다."나쁜 놈...""그래도 내가 너보다 나쁘겠어?""..."그러자 작은 얼굴은 다시 빨개졌다."앞으로 나 속일 생각하지 마.""제가 어떻게 감히 당신을 속여요?"수많은 고난을 맞이했지만 말없이 혼자서 그 과정을 이겨내고 꿋꿋이 버텨낸 고은영이 기특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곧이어 배준우도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갔다.혼자 남게 된 고은영은 왠지 모르게 안색이 좋지가 않아 보였다.그녀는 핸드폰을 들고는 안지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지영아, 우리 쪽에서 좀 도와줄까?"안진섭이 갑자기 식물인간이 된 상황에, 그녀는 안지영이 스스로 대처할 수 없을까 봐 걱정됐다.만약 다른 때였다면, 그녀는 배준우에게 감히 도움을 청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지영을 위해서 그녀는 뻔뻔해질 수 있었다. 자신이 안지영을 도울 수는 없었지만, 배준우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안지영은 그녀의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배준우가 나올 때에는 고은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그러자 그가 바로 침대에 올라 그녀를 품에 안았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고은영은 울먹이는 두 눈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다."지영이가 걱정돼요…""걱정하지 마. 장선명이랑 나태웅도 절대 하늘 그룹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걸 보고만 있지 않을거야."배준우의 말에 고은영은 비로소 좀 안심이 되었다."그나저나 지영이, 정말 혼자서 대처할 수 있을까요?"장선명과 나태웅이 도와준다고 해도 하늘 그룹 내부에는 이미 문제가 많았다.여태까지는 줄곧 안진섭이 있었기에 내부
"알겠어. 얼른 자." 배준우는 고은영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다정하게 달래주었다.고은영은 여전히 안지영이 걱정됐지만 피그스에 있는 동안 이미 몸이 지친대로 지쳤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밤새 회의를 진행한 안지영은 이튿날 아침이 돼서야 고은영에게 답장을 보냈다."걱정마. 지금 천천히 해결하고 있으니까 넌 네 몸이나 잘 보살펴."만삭인 배를 하고도 자신을 걱정하는 고은영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젠 예전처럼 혼자 멍청하게 당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겪고 있는 것들도 아직 시작일 뿐이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했다.곧이어 장선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안지영은 받고 싶지 않았지만 어젯밤 안열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어쩔 수 없이 받았다. "여보세요.""아침 식사는 내가 너 데리고 나가서 먹을까? 아니면 너한테 직접 가져다 줄까?" 장선명이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다 필요 없어요.”"그럼 내가 밥이랑 반찬이라도 보내줄까?""선명 씨, 전 지금 당신을 만나고 싶지가 않아요." 안지영은 단호하게 말했다.사실 이 상황을 전부 장선명한테 탓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으로선 그를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알겠어. 그럼 방해 안 할게."장선명은 더 이상 그녀를 귀찮게 굴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피곤해 보이는 안지영의 모습에 안열은 재빨리 커피 한 잔을 따라 탁자 위에 놓았다."커피 좀 마시세요. 오늘 일정도 빠듯할텐데요.""고마워."안지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는데, 그 쓴 맛과 단 맛이 그녀의 피로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다."감사의 인사는 도련님한테 전하세요. 저는 그 분의 말을 듣기만 했을 뿐이에요.""..."곧이어 안열은 피그스 쪽에서 일어난 일들이 궁금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아가씨께서 도련님을 탓하고 있는건 잘 알고 있지만, 이 모든게 다 나태웅의 계획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가요?""계획이라니?""안 회장님께서 왜 피그스에 갔겠어요? 그리고 나태웅은 또 왜 그렇게 많은 사
당시 장선명의 입장으로서는, 정말로 파혼을 위해 나태웅이 안지영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려는 줄 알았다.아버지가 피그스까지 와서 장선명을 피해 다시 귀국하려고 한 것도,어찌 보면 정말 안열이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이 나태웅의 계획 속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었다."그럼 저는 이만 주 비서와 함께 오늘 있을 회의를 준비하러 가볼게요. 이따가 다른 비서가 아침 식사를 가져다 드릴겁니다.""고마워."안지영은 차분하게 말했다.그녀가 지금 대체 어떤 기분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안열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그렇게 안지영 혼자만 남게 되었고,그녀는 더 이상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다.자신이 정말로 아버지를 잃을 것 같았고, 아버지가 없는 날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나 괴로울 줄은 몰랐다.이때 똑똑똑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두드렸다."들어와."그녀는 아침 식사를 가져다 주러 온 직원인 줄 알았다.그런데 문 밖에서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장선명이었다.순간 안지영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는 듯 했다. "당신...""배고프지?" 장선명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여느 때와 다름 없이 다정한 말투로 그녀에게 다가왔다.그리고 그의 손에는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필요 없다니까요.""내가 이렇게 안 오면, 너 오늘 저녁이 돼서야 첫 끼를 먹을 생각이었어?""..."사실 그녀는 정말 배가 고팠다.하지만 장선명이 말대로 그가 오지 않았더라면 정말 하루종일 굶을 수도 있었다. 곧이어 장선명은 들고 온 도시락을 꺼냈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전부 셰프들이 정성스레 만든 반찬들이었다.회사가 집에서 꽤나 먼 곳에 있었지만 음식의 향기는 여전히 짙었다."내가 새우죽도 끓여 놓았으니까 얼른 집에 와서 먹어." 장선명은 안지영을 달래주었다. "아..."안 먹겠다고 대답하려 했지만,오늘도 어김없이 마주해야 할 수많은 일에 그녀는 일단 열심히 먹기로 했다. 그녀가 소파에 앉자 장선명은 죽 한그릇을 건네주었다
장선명의 진심 가득한 호의에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고맙기는..."“얼른 밥부터 먹자고요. 저 진짜 배고파요.”"그래. 먹자."장선명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보였다. 안지영이 어젯밤 밤새 진행한 업무는 전에 천락그룹에서 야근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단지 일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재도 해야했기 때문이다.단 하룻밤을 겪으면서 안지영은 전에 아버지가 겪었던 고충을 그제야 이해했다. 안지영은 죽 한 그릇을 마시고는, 만두 세 개와 왕만두 두 개까지 먹었다.나머지는 전부 장선명의 몫이었다.이때 안열이 들어왔고, 장선명과 안지영이 함께 음식을 먹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었다. 곧이어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친 후,안열은 장선명에게 다가가 어젯밤의 상황을 보고했다."네 말이 맞아. 한 달이면 충분해?"한 달 동안 안지영을 도와 하늘 그룹을 철저히 장악할 계획이었다.그러자 안열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세요. 충분합니다."몇 년 동안 안진섭은 안지영을 동명 그룹에 두고 단련을 시켜왔지만 회사 내부의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자연스레 회사 내부 사람들은 줄곧 안지영이 외국에서 유학해왔기에 회사 경영에 대해서는 잘 모를 거라 생각했다.그리하여 처음에는 그녀를 속이려는 사람들도 많았다.하지만 뜻밖에도 안지영의 일 처리 능력은 뛰어났다. 얼마 안 돼 동지운의 편을 서던 사람들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다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마음이 불안하기도 했다.오직 지분율 1위였던 동지운만이 여전히 이 틈을 타 어떻게든 동명 그룹을 장악하려 했다.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너한테 맡길게.""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열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장선명은 잠시 머뭇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오늘 일은 고마워."그 말을 들은 안열은 멍해졌다.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닙니다. 응당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장선명은 사실 잘 알고 있었다.오늘 안지영의 마음이 좀
왕여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건 그 누구도 바라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태웅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 "안지영한테 전화해.""네?" 왕여는 놀랐다.지금 이 타이밍에 안지영에게 연락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하늘 그룹 내부의 일을 처리하느라 한창 바쁠 텐데.안지영은 틀림없이 그 누구의 전화도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같이 점심 먹으려고.""..."차마 사실대로 말하기 죄송했지만, 왕여는 어쩔 수 없이 털어놓았다."오늘 아침, 장선명 씨께서 아가씨한테 직접 아침 식사를 보냈습니다."그 말을 들은 나태웅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졌다."안지영한테 아침 밥을 줬다고?""네, 아침 일찍부터 준비했더라고요."장선명이 언제부터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었지?피그스에서 돌아온 후, 나태웅은 장선명이 더욱 꼴 보기 싫어졌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자 그는 더욱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왕여는 그런 나태웅이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콜록!" 일부러 헛기침을 두 번 하고는 나태웅에게 일깨워 주었다."대표님, 지금은 아가씨한테 가장 어려운 시점이에요. 자신한테 더 뚜렷한 관심을 주는 남자에게 더욱 마음이 갈 겁니다. ""무슨 뜻이야?"왕여의 이 말에 나태웅의 안색은 더욱 차가워졌다.나태웅은 여전히 그 말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장선명 씨께서 지금 계속하여 안지영 씨 곁에 머물러있는데, 어떻게 보면 대표님한테는 불리한 상황일 겁니다.”"네 말은, 내가 아직도 가능성이 낮다는 거야?""..."이 사람 왜 이렇게 답답해? 안 뺏으면 피그스까지 데려간 보람은 더 이상 없잖아.됐어, 알아서 하라고 해.그러나 전에 안지영을 괴롭혀온 나태웅의 방식을 생각하면, 왕여도 이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여자들은 다들 부드럽게 다가오기를 바란다고요.""그건 멍청한 놈들이야. 안지영이 이렇게 쉽게 사랑에 빠질 사람일 것 같아
그런데, 이걸 배준우한테 물어보는게 과연 맞는걸까?어찌 됐든 안지영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은 다를 것이다. 배준우도 어리둥절했다."그걸 나한테 물어보는게 맞긴 한거야?""형은 항상 고은영이랑 있어봐서 잘 알거 아니야.""그건 맞지. 근데 안지영은 다르잖아. 겁 많은 사람이 아니야.""..."안지영은 확실히 패기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미 하늘 그룹까지 점점 장악하고 있는 것 같던데."그와 반대로 고은영은 아직도 배준우가 일일이 챙겨줘야 하는 타입이었다. 그가 곁을 지키기 전에는, 줄곧 안지영이 그녀를 도와줬었다. 그리하여 배준우는 안지영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늘 그룹은 지금 꽤나 혼란스러운 상태야. 네가 만약 안지영을 도와서 해결해준다면 마음이 변할 수도 있겠지."배준우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는 이 뿐이었다."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이미 장선명이 나서서 해결하고 있더라고."“장선명이? 벌써?”"장선명 비서인 안열이 어젯밤부터 이미 안지영의 곁에서 돌봐주고 있더라고."나태웅은 말하면 말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그 말을 들은 배준우는 눈썹을 치켜 들었다."그럼 이젠 굳이 네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어쩐지 오늘 강성이 이렇게나 조용하더라니, 장선명이 벌써 손을 쓴 거였어! 어쩐지 오늘 하루동안 하늘 그룹 내부에 관한 소문은 하나도 돌지 않았다.장선명의 오른팔이 직접 나서서 안지영을 돕고 있는데 누가 감히 헛소문을 내겠는가?나서지 말라는 배준우의 조언에 나태웅은 더욱 초조해졌다."근데 너, 굳이 안지영을 뺏어야겠어?"배준우가 생각하기에는, 나태웅만큼 진심인 장선명이라는 재벌 2세를 상대하기에는 버겁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피그스에서는 교통사고도 겪었으니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그러자 나태웅은 불쾌함을 보였다."뭐라고?!"장선명이 이렇게나 애를 써서 안지영을 자신의 곁에 두려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이에 대해 나태웅은 여전히 잘 모르고 있었다.사실 전에 배준우도 이런 방식으로 고은영을
사실 배준우는 애초에 량천옥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싶지 않았다.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그날 밤 목격한 그 여자를 찾아내야만 했다.그런데 그 여자가 바로 자신의 가까이에 있던 고은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는 크게 놀랐다.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녀를 찾아내기만 하면 바로 죽이려 했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온 그는 결혼할 생각을 한 적도 없었기에 결혼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고은영을 만나고 나서는 처음으로 한 여자와 잘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 다."아, 목 말라."배준우가 고은영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지자 잠에서 깬 그녀는 얼떨결에 몸을 뒤척이며 목이 마르다고 중얼거렸다.배준우는 얼른 가서 물을 따르고는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고은영은 여전히 너무 피곤한지 그의 품에 안겨 다시 잠에 들었다.그녀에 곁에 더 있고 싶었지만 피그스에 가 있느라 보름이란 시간을 지체한 배준우는 밀린 업무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자리를 비켜 회사로 향했다. 그는 떠나기 전에 집사에게 고은영을 부탁 하였다."만약 12시까지 일어나지 않으면 깨워서 밥 먹게 해줘.""알겠습니다.""그리고 얼큰한 국 좀 끓여줘. 요즘 많이 피곤했을거야.""네, 완벽하게 준비할 테니까 안심하세요." 집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 또한 그 전까지 배준우가 한 여자에게 이렇게나 관심을 갖는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해가 서쪽에서 떠오른 셈이었다.그렇게 배준우는 회사에 도착했고 아침 일찍 회사에 미리 도착해 있었던 진청아는 꽉 찬 오늘의 일정들을 보고하였다. 잠시 후에 첫 일정인 오전 회의가 열렸는데 갑자기 배준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진청아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사장님, 괜찮으세요?" 배준우가 애써 괜찮다고 말하려는 순간, 명치가 심하게 아파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통증을 참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병원 가자!"회의실은 순식간에 웅성대기 시작했다.진청아는 크게 놀랐다. "사, 사장님
“어머니가 나한테 남긴 건 그대로 넘겨주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싸늘한 고은영의 시선에 진성택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진성택이 무언가를 덧붙이기 전에 고은영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않으면 뭐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예요. 진유경에게 손대는 건 쉬운 일이죠.”“유경이한테 손대지 마. 은영이, 너...”“됐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진유경을 그렇게까지 감싸는 진성택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실망감을 넘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래?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일까지 한단 말이야! 아내랑 아이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거지?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 엄마가 남긴 소중한 유품을 진유경 같은 년에게 넘기겠다고? 하...’진유경이 단순히 진씨 가문의 양녀였다면 고은영은 아마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실을 아는 고은영은 지금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설령 눈앞의 남자가 그녀의 혈육이고 아버지라 할지라도 고은영은 그를 혐오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진성택은 그녀의 분노에 애처롭게 그녀를 불렀다.“은영아...”고은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진성택이 말을 이었다.“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너한테 와서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 거야.”“같잖은 호소는 그만 하세요. 저희 사이에 애정이라 칭할 만한 감정도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내였던 사람에게 너무하네요. 엄마가 불쌍해요.”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특별한 애정이라 할 감정은 없었지만 진성택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고은영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진성택은 어떠한가.고은영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
고은영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요.” 진성택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지금 와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아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째 오빠가 병원에 왔었어.”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을 모든 주식들 있잖아. 할머니와 진호영, 그리고 유경이의 지분까지 너에게 줬다던데, 맞지?” 고은영은 차갑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맞아요.” 드디어 그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욱 차가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차가운 시선에 조금 떨린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주식들은 사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니까 너에게 돌아가야 맞아.” “그래서 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부른 거죠?” 고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가 주고자 한다면 왜 이제서야 이리 말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진성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그 주식은 네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줄 수 없다고요? 왜요?” 그의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또다시 진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 같았다. 진유경, 정말 독특한 존재다. 역시나 양딸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진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양부모는 하나같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너희 둘째 오빠가 그 주식들을 되찾고 나서 진씨 가문의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렸어. 지금 그들은 전부 저축해두었던 돈을 쓰고 있어.” 모든 지원을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