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영의 혼사 말고도, 고은영은 꼭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망설이는 그녀의 눈빛을 확인한 배준우는 눈살을 찌푸렸다."할 말이 더 있어?"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있어요!""뭔데?"느닷없이 진지한 그녀의 모습에 배준우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에 고은영은 순간 마음이 흔들릴 뻔했지만 곧바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전에 저희가 했던 계약말이에요, 아직도 유효한가요?""..."계약? 이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고?그러자 배준우가 웃으며 말했다."무슨 계약?""네?""우리 사이에 계약이 있었어?""있었죠!""어디 있는데? 나한테 한 번 보여줘 봐!""..."뭐야, 이렇게 중요한걸 왜 잊어버린거야?배준우가 진지하게 따지는 모습에 고은영은 어이가 없었다."왜?""이러는게 어디 있어요? 아니, 이건..." 고은영은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분명히 둘이 합의하에 계약서를 써놓고 왜 기억을 못 하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우기면서 없다고 하면 없는 일이 되는 것인가?"뭐라고?""그럼 저희의 결혼증은 진짜가 맞긴 해요?"배준우의 뻔뻔한 모습에 고은영은 좀 더 직접적으로 물었다.애초에 안지영이 재촉하면서 이 일을 분명히 알아내라고 할 때, 사실 그녀는 그닥 크게 신경 쓰지를 않았다.그런데 배준우가 이제 와서 뜻밖의 모습을 보이자 그녀는 제대로 똑똑히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어찌 됐든 여태 두 사람은 웬만한 스킨십은 다 하면서 일반적인 부부로 지내왔기 때문이다. 근데 이제 와서 모른 척 한다니! 고은영은 여전히 초조한 모습을 보였고, 잠시 후 배준우가 웃음을 터뜨렸다."그건 우리가 직접 구청에 가서 만든거잖아. 그게 어떻게 가짜일 수가 있어? 내가 그전에 말했잖아. 량천옥 쪽의 일이 해결만 되면 그때 이혼하자고."그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목적이 해결되서 나서야 이혼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네가 궁금한건 대체 뭔데?""그 결혼증이 대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리고
고은영한테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향해 배준우는 짧은 입맞춤을 하고는 말했다."나 진심이야."오늘마저도 자신의 진심을 밝히지 않으면 그녀가 계속하여 소란을 피울 것이라는 것을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이쯤 되면 얘기를 해주는게 맞다고 생각하기도 했다.배준우는 고은영과의 진지한 만남이 나름 괜찮았지만 그의 대답을 들은 고은영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그럼, 저희는 더이상 헤어질 일 없는거죠?""응, 절대 없어. 그러니까 얼른 자."그제서야 고은영은 더이상 따지지 않고 바로 잠들었다.......그리고 그 다음 날. 변호사를 데리고 나타난 량천옥은 직접 명의 변경 수속을 모두 마쳤다.전에 말한 바와 같이, 천의는 고은영의 명의로 두었고 60% 의 주식은 고은영에게, 10% 는 배윤에게, 나머지 일부 주식은 배준우가 알아서 처리하게끔 남겼다.말 그대로 고은영이 어마어마한 자산을 받게 된 것이다. 벌써 이 소식을 접한 배윤은 급히 달려와 냅다 량천옥의 앞 길을 막았다."왜 그러셨어요?"그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량천옥에게 물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이런 결정을 내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천의를 아예 포기하고 절반이 넘는 주식을 고은영에게 넘겨주다니… 누가 보면 고은영이 친딸인 줄 알겠을 것이다. 어떻게 친아들이 그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던 량천옥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엄마 나 R국에 갈건데, 같이 갈래?… 엄마..."배윤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천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고은영에게 명의를 넘겨놓고, 정작 본인은 강성을 떠난다고? "엄마 제 정신 아니죠?"배 씨 가문에서 아예 나오려고 그런걸까? "억울하게 쫓겨나는 것보다 낫지! 안 그래?""누가 쫓아낸다고 그래요?"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일은 들은 바가 있긴 했지만 설마 그가 진짜로 그렇게 손을 댈거라
량일은 진작에 정리를 마쳤고, 량천옥도 서서히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함께 이 곳을 떠날 계획이었다."배윤이 널 원망하지 말아야 할텐데.""원망하면 뭐 어때요? 제가 여태 걔를 위해서 해준게 얼마나 많은데."그동안 엄마로서 그녀는 최선을 다해왔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단 이번만큼은 그녀는 자신을 위해 살고 싶었다.한편 량일은 여전히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어찌 됐든 그녀 또한 천의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애초에 배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키워온 것인데 갑작스레 고은영에게로 넘어가게 되니, 괜한 의심을 받을까 봐 걱정됐다.소식을 전해 들은 배항준은 곧바로 달려왔다.그동안 그림자 한 번도 비추지 않더니, 이제 와서는 량천옥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량천옥, 너 미쳤어?"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고, 잔뜩 화가 나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고도 량천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저 차갑게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예상 밖의 태도에 배항준은 더욱 미칠 지경이었다."너, 너...!""배항준, 이게 바로 네 와이프를 건드린 후과야. 밖에서 바람이나 피면서 이런 결과가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어?"량천옥은 차가운 말투로 또박또박 그를 저격했다. 바람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배항준의 눈빛은 순식간에 매섭게 변했다.심지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여태 잘 숨겨왔는데 어떻게 알게 된거지? 그럼 지금 이런 짓을 벌이는 것도...?"지금 나한테 복수하려는 거야?"배항준은 그제서야 조금 눈치채기 시작했다. "맞아, 너한테 복수하려는 거야. 나는 유청처럼 네가 원하는 대로 통제 당하면서 살고싶지 않거든."“......”"너 사람 잘못 봤어.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야."량천옥은 날카롭게 말했다.배항준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부터 그녀는 항상 그를 죽이고 싶었다.배항준은 놀랍게도 변해버린 눈 앞의 량천옥이 믿기지가 않았다."너, 너..."더이상 할 말을 잃은 배항준의 분
량천옥은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가 않았던 그녀는 다시 상자를 들고 걸어갔다."오늘 이 문 나서면 다시는 돌아올 생각은 하지도 마."가출? 맘대로 해.하지만 량천옥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근데 내가 가출하는거 너한테도 나쁘지 않은 일 아니야?”배씨 가문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는 어떤 일에 부딪혀도 치욕을 참고는 혼자서 그 무거운 짐을 짊어졌었다.배항준이 자신을 어떻게 괴롭히든, 그녀는 항상 묵묵히 참아왔다.그러나 이번에는 제대로 끝장을 내고 싶었다.원래도 조용했던 배씨 가문은... 이젠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화가 난 배항준은 손에 든 물건을 냅다 땅에 내리쳤다."쾅!"수백만 원짜리 골동품 꽃병들이 산산조각 나버렸다.옆에서 지켜보던 집사와 하인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내지도 못했다.그렇게 량천옥은 아예 집을 떠나버렸다.......이튿날이 돼서야, 배준우는 이 소식을 접했다.평소에는 항상 고은영을 데리고 배씨 가문으로 향했지만 이번에는 혼자서 집으로 찾아갔다.데리고 오지 말라고 할 때는 같이 오더니, 데리고 오라 하니까 이번엔 혼자 온거라니! 밤새 화가 채 가시지 않았던 배항준은 다시 머리가 아파졌다. 집에는 배윤도 있었고, 모처럼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오늘 배준우가 어떻게든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배준우는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꺼냈다."천의 때문에 나를 찾아온거야?"그는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떠보았다. 량천옥이 천의를 갑자기 고은영의 손에 넘긴 것 자체가 배씨 가문에게 있어서는 큰 사건이니까 말이다. 배준우의 무덤덤한 모습에, 배항준과 배윤은 어이가 없었다.이때 배항준이 입을 열었다."변호사한테 서류들을 준비하라고 하고 고은영한테 거기다 사인하라고 해."이것이 바로 그가 밤새 생각해낸 최후의 해결 방안이었다.천의는 량천옥이 일으켜세운 것은 맞지만, 배씨 가문의 돈을 쓴 것이기에 절대 빼앗기고 싶지가 않았다.심지어 천의는 현재 M국에서도 시가 2조를 자랑하고 있었
소문을 접한 배윤과 배항준은 어안이 벙벙했졌다.글쎄 배준우가 고은영을 지키려고 할 줄이야… 이대로라면 고은영의 손에서 천의를 뺏어오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설마 량천옥이 이 상황을 예상한건가? 일부러 배준우를 이용하려고 고은영에게 천의를 준건가? 정말 독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배준우는 자리를 떠났고, 두 사람만 남게 되자 배항준은 배윤을 매섭게 노려보며 화를 냈다."거 봐, 이게 다 네가 애초에 사업을 제대로 신경 쓰지 않은 후과라고.” "아버지, 그게 무슨...""네가 일찍이라도 철이 들었더라면, 천의는 진작에 네 명의로 되어 있었을거야. 아니면 어떻게 그런 여자의 손에 들어갈 수가 있겠어?"량천옥이 여태 천의를 키워온건 애초에 배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그런 것은 사실이었다.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건 아버지가 전부터 계속 형한테 천의를 주겠다고 고집 부린 영향도 있잖아요." 게다가, 어찌 보면 배항준이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서 미움을 산 이유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배윤은 자신의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복수를 하면서 자신까지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안 그래도 짜증 나는 상황에서 배윤이 따박따박 대들자 배항준은 더이상 상대하기도 귀찮았다.......그렇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배씨 가문 전체는 순식간에 혼란스럽게 변했다.그리고 량천옥은 이 혼란 속에서도 배항준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기고 재빨리 강성을 떠났다.......하지만 정작 고은영은 이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배지영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에도 그녀는 어리둥절했다."언니, 저희 아래층에서 만나요.""아가씨, 굳이 저희가 만날 필요 있을까요? 결국 저랑 준우 씨의 일은 아가씨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제대로 얘기를 하려면 이 일에 대해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가요?"이 일에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배준우
배지영이 말한대로, 고은영은 순수해보이긴 해도 절대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고은영은 배지영이 자신을 찾아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가 말했듯이, 이 일에 있어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배준우 뿐이었다."더이상 할 말 없으면 먼저 끊을게요.""잠깐만요!"고은영이 전화를 끊으려 하자 배지영이 급히 불렀다.이쯤 되면 배지영도 더이상 고은영이 자신을 만나고 싶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이 여자, 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야.곧이어 배지영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물었다."오빠는 지금 회의하고 있어요?""네.""그럼 제가 언니 찾으러 올라갈게요."배준우가 아직 회의 중이라는 말에 배지영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오늘은 어떻게든 고은영을 만나 이 일을 해결하려 했다.근데 자신의 착각이였는지 아니였는지, 고은영에게는 확실히 전보다 많은 변화가 생겼다.예전에는 줄곧 모두에게 공손했던 그녀가 지금은 아예 배씨 가문의 사모님 행세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가? 설마 아예 작정하고 오빠 곁에 남아 있으려는건가?순간 배지영의 얼굴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그렇게 전화를 끊은 지 5분 만에 배지영이 정말로 찾아왔다.배준우가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한편, 고은영은 조용히 그를 위한 목도리를 짜주고 있었다.그녀의 손놀림은 누가 봐도 초보처럼 보였다.배지영은 곧바로 그녀의 맞은 편에 앉아 두리번거렸다.이때 고은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계속 망설일거예요? 준우 씨 회의가 곧 끝날텐데."그러자 배지영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곧바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내뱉었다."이렇게 하면 평생 배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거예요? 량천옥이 이런 짓을 벌인건 단지 저희 아버지한테 복수하려고 그런거예요."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뜨개질을 멈추고는 물었다.“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복수라니? 량천옥이 뭘 어쨌다고?그녀는 며칠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단지 량천옥이 요즘 줄곧 배준우
배씨 가문은 여태 량천옥만 천의를 포기하면 무조건 자신들의 손에 다시 돌아올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 문제가 아니었다."제 명의로요?" 처음 듣는 사실에 고은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량천옥이 날 얼마나 싫어하는데 어떻게 천의를 내 명의로 두었다는 거야? 고은영이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줄 알았던 배지영은 더욱 화가 났다."여태 몰랐다는 뻔한 거짓말은 하지 마요.""정.. 정말 몰랐어요!"고은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배지영을 바라보았다. 고은영은 어쩐지 배지영이 오늘따라 이렇게 막무가내였나 싶었는데, 바로 천의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런데, 대체 어떻게 내 명의로 된거지?배지영은 그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고은영이 답답하기만 했다.지분까지 양도를 받아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는 말인가. "믿든 안 믿든 그건 아가씨가 알아서 판단하세요. 하지만 전 정말 이 일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어요.""몰랐어도 괜찮아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빨리 천의를 오빠 명의로 넘겨요."배지영은 뻔뻔하게 제안했다.그녀는 량천옥이 떠난 틈을 타 하루라도 빨리 모든걸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었다. 자신의 친 어머니가 다시 돌아왔을 때 반갑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량천옥이 이렇게 사고를 치고 빠르게 도망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배지영의 제안에 고은영은 뜻밖에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알겠어요."원래도 천의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딱히 가질 마음도 없었다.배지영은 생각보다 눈치 빠른 고은영의 모습에 마침내 화를 좀 가라앉히고는 제대로 본색을 드러냈다."저희 어머니께서 딱 사흘 후면 바로 돌아오실거예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잘 알죠?""..."사흘?이렇게나 빨리?고은영이 대답하려는 순간, 사무실 입구에서는 배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체 뭘 알아야 되는데?""...""..."언제 벌써 회의가 끝나고 나타났는지 두 사람은 그의 인기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은
이렇게나 어마어마한 기업이 우리 가문도 아니고 어떻게 아예 바깥 사람한테 넘겨질 수가 있겠어?배지영이 계속해서 선을 넘는 발언을 하자 배준우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어머니가 돌아오시면 언니한테도 좋을 건 없어. 그러니까 오빠가 알아서 빨리 처리해.”"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당연히 오빠 명의로 넘겨야지!"배지영은 단호하게 말했다.누구의 명의로 하든 어찌 됐든 고은영의 명의로 하는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량천옥이 막무가내로 벌인 일 때문에 현재 모든 책임은 배항준한테 넘어간 상황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오게 되면 괜히 까다롭게 이 일에 연루될가봐 불안하기도 했다.노발대발하는 배지영의 모습을 보고도 배준우는 덤덤했다. 하지만 배지영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배준우가 답답하기만 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너가 이렇게까지 조급한건 단지 천의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그러자 배지영의 얼굴은 순간 하얗게 질렸다."그 여자가 강성을 떠난것도 애초에 다 네 계획이었나 봐?""...""그런데 그 여자가 떠나고 나서 이런 후과가 있을 줄은 몰랐나 봐?" 배준우가 날카롭게 물었다.그 깊은 눈빛으로 배지영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이었다.그의 말에 배지영은 순간 허무함을 느꼈다."함부로 말하지 마! 그 여자가 스스로 떠난게 왜 내 계획이야?!""그래?"하지만 배준우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본 듯 했다.배지영은 지금 이 순간, 가슴이 몹시 떨려지기 시작했다.원칙대로라면 량천옥은 여태 배씨 가문에서 받아온 모든 것들을 전부 돌려내야 했다.배준우는 원래 그녀를 배씨 가문에서 직접 쫓아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그런데 배지영이 이렇게까지 조급해하는걸 봐서는, 암암리에 량천옥을 제대로 쫓아내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배지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겨우 입을 뗐다."지금 그게 중요해..? 천의나 빨리 뺏어오라고."지금 그녀는 무엇보다도 천의가 하루 빨리 배씨 가문에 돌아오는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