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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전 잠시 들어가 있을게요!”

손안의 털실뭉치를 아무렇게나 쥐어 든 고은영이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배준우는 진청아에게 눈짓했다.

“안으로 들여보내.”

“네.”

진청아가 금세 량천옥을 데리고 들어왔다.

오늘의 량천옥은 어쩐지 평소의 요염한 옷차림이 아닌 수수하고 단정한 옷차림에, 화장도 진하게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잘 정돈된 그 겉모습 속에서도 그전에 비해 초췌해졌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사실 초췌한 것이 당연했다. 요 며칠 배준우와 량천옥 사이의 분쟁은 방법이 조금 더 고상했을 뿐, 너 죽고 나 살자 하는 꼴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마실 것 좀 가져다드릴까요?”

공손하게 물었지만, 진청아의 말에서서는 빠진 단어가 하나 있었다.

이제 배 씨 집안의 배 사모님은 배준우의 아내인 고은영이기 때문에, 배 사모님이라는 말이 빠진 것이었다.

배준우의 계모라는 위치로는 이제 제대로 된 호칭 하나도 얻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예전의 량천옥이었다면 진작에 화를 버럭버럭 내며 난리를 쳤을 법도 한데, 오늘은 달랐다.

“그냥 물 한 잔이면 됐어요. 고마워요.”

게다가 말투는 꽤나 부드러웠다. 솔직히 배준우로서도 꽤나 의외였다.

요즘의 량천옥이 이렇게 차분한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진청아가 물을 가져다주고 둘만 남자, 배준우가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용건은요?”

“천의 때문에!”

역시나. 량천옥이 바로 천의 이야기를 꺼내자,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그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잘랐다.

“천의 이야기라면 더 말씀하실 것도 없습니다.”

뭐 당연히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든 천의를 내어주지 않으려고 하겠지, 대충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보이는 표정이었다. 원래의 량천옥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것 따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천의라면 이제 됐어.”

그러자 배준우가 눈썹을 찌푸렸다.

이건 또 무슨 신종 헛소리지? 지나가던 개가 웃을 말이었다.

눈앞의 여자의 욕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배준우가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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