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발끈 화 내는 량일의 모습에 량천옥을 당황했다."지금 대체 뭐 하는 거야?"이미 배항준한테서도 허락까지 받은 상황이기에 량천옥은 이 기회에 반드시 제대로 해결하고 싶었다.그리고 그들은 이미 배진우가 고은영에 대한 마음이 진지하다는 것 또한 느꼈다.누가 봐도 진심이었다.그러므로 고은영이 없어야만 그들은 번거로움을 좀 덜 수가 있었다."말해봐, 도대체 누구를 죽이려는 거야?" 량일은 그만 흥분을 가라앉히지를 못했고,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태도에 량천옥은 어이가 없었다."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팍!" 순간 량일은 량천옥의 얼굴에 따귀를 내리쳤다. 강한 따귀 소리와 함께 분위기는 싸해져 버렸다. 여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량일은 량천옥을 혼내긴 했지만 한번도 손을 댄 적은 없었다.그런데 세상에 이럴 수가!량일 또한 저도 모르게 내리친 따귀에 스스로 놀라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량천옥은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엄마... 방금 나 때렸어? 고작 고은영 때문에?"량일은 순간 이성을 잃고 저질러버린 사고가 믿겨지지가 않았다. 내가 대체 왜 이런거지? 왜 이렇게 멍청하게 군거지?"청옥아, 난...!""왜 고은영을 감싸고 있는데? 대체 왜?" 량천옥은 울먹이는 말투로 따졌다.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량일한테로부터 당했던 수모들이 스쳐 지나갔기에 너무 속상한 나머지 그녀는 눈물을 뚝뚝 훌렸다. 이때 밖에서 엿듣고 있던 누군가의 인기척을 발견한 량일은 량천옥의 손을 덥석 잡았다."일단 방에 가서 마저 얘기해."그렇게 둘은 조용히 방으로 향했다.곧이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 문이 굳게 닫혔다.량일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진정해."한평생 이렇게 크게 화를 내본 적 없던 량일은 차마 뭐라 변명할지 생각이 나지가 않았다.너무 답답한 나머지 그저 량천옥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대체 왜 그러는건지 말해보라니까!" 량천옥은 더이상 참기가 싫었다. "그 여자한테 그렇게
량천옥이 그녀의 과한 반응을 보며 눈썹을 찌푸리며 따졌다. “엄마 제정신이에요? 그 계집애를 왜 싸고도는 거냐고요!"요 며칠 배준우와의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알아채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량일의 반응은 명확히 고은영을 감싸는 듯했다. 량천옥의 입장에서야 황당하고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었다. 량일은 고통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천옥아, 제발 우리 더 이상 사람을 해치지 말자꾸나. 그게 다 우리에게 돌아올 거야.”“전 그런 거 안 믿어요!”인과응보? 돌아온다고?그런 미신 같은 말 따위에 흔들릴 량천옥이 아니었다.량일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인내심을 잃어버린 량천옥은 벌떡 일어나서 뒤돌아섰다.“천옥아!”“됐어요! 이 일은 배항준이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는데 뭐 어쩌겠어요?! 제가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그전에 고은영을 건들지 못 했던 건 아무래도 배준우의 보복이 두려워 서라지만, 이번에는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천의만큼은 지켜야 했다.고은영이 없었다면 배준우도 배항준에게 들이밀 명분이 없어질 것이다. 게다가 지금 배항준이 그녀에게 허락의 사인을 준 이상, 더 이상 그녀에게 망설일 이유 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다.량일은 무정하게 돌아서는 딸의 옷자락을 잡아챘다.“안돼, 정말 그러면 안 된다!”“엄마!”량천옥도 이미 한계였다. 제 어머니가 저 못된 계집애를 감싸고돌다니? 량일의 마음이 요동쳤다. 그녀의 눈에서는 그전보다도 더한 광기가 보이고 있었다. 배항준이 눈감아 줄 거라는 그 믿음 아래, 이번에야말로 딸이 고은영에게 무슨 짓이든 할 거라는 사실이 명명백백히 느껴지는 것이었다.피눈물을 흘리는 마음으로, 약간은 갈라진 목소리가 결국 입을 연 량일에게서 흘러나왔다.“걔, 그 애는 … 네 딸이란 말이다…!”공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결국 그녀는 이 일을 꺼내고 말았다. 량일이 여태껏 이 일을 량천옥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결국 제 딸이 배윤을 낳고서도 그 아이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량천옥
이런 것이 하늘이 내린 벌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무너지듯 소파에 주저앉은 량천옥의 얼굴색이 희게 질려있었다.그녀는 바들바들 떨며 어머니를 바라봤다.“거짓말이죠?... 지금 절 속이시는 거죠?”물론 량천옥도 잘 알고 있었다. 자기를 속일 이유가 있을까? 그런 것 따위 없다는 것쯤은 그녀도 너무나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는 심정이였기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대체… 널 왜 속이겠니.”일생을 자식에게 바친 어머니에게 자식을 속일 이유는 없었다. 1초, 1분…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둘 사이에는 죽음과 같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거의 1시간 동안 그 정적은 깨지지 않았다.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창백하게 질려 있는 량천옥이 천천히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아마 그 누구도 그 1시간 동안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떠한 고통과 고뇌가 있었을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워하며 마음속으로만 품어 왔던 아이의 존재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그녀에게 나타날 줄이야!“그래, 엄마 말이 맞아요. 인과응보네요. 이렇게 제게 돌아오고 말았네요!”량천옥이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이것이 바로 인과응보인 것이다. 그들이 한 모든 짓들에 대한 대가처럼 돌아온 것이었다.량일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그 애를 제발 해치지 말렴…”해친다고? 이제 와서 어떻게 해친단 말인가!량천옥은 그제야 오늘 전화를 걸었던 사람이 고은영을 노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사모님!”다행히 상대는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이쪽에서는 약간 계획에 변동이 있을 것 같으니, 당분간 다른 행동은 하지 말아 주세요.”그녀는 상대가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하도록,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하며 입을 뗐다.그러나 량천옥 본인이 어떠한 절망을 안고 있는지 그녀 본인은 너무나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옆에 초조하게 서있던 량일도 량천옥의 입에서 계획을 취소한단 말이 나오자
한편 배준우는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고은영을 끌고 퇴근길에 올랐다.졸졸 따라오는 그녀는 아직 모든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듯 보였기에 그는 일부러 고은영의 손을 잡고 걸었다.차에 탄 고은영은 샤인머스캣을 한 송이 무릎에 얹어두고 먹었다. 배준우가 그녀 쪽을 슬쩍 돌아봐 물었다. “맛있어?”“네! 맛있어요!”진청아가 사다 준 샤인머스캣을 먹고 있었다. 예전에는 한 송이 사는 것도 아까워서 못 샀던 것이었다.마트에서 과일 코너를 지나다 보면 예쁘게 포장된 것이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아서 항상 먹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비싼 가격에 참기만 했었다.“오후에도 먹어 놓고. 또 배고픈 거야?”“그러게요, 진짜 계속 배가 고프네요.”아마 뱃속의 아기가 영양분을 잘 흡수하고 있는 탓인지, 요 며칠 그녀는 예전보다 꽤나 자주 배가 고프다고 느꼈다.란완리조트로 돌아온 그들은 노 집사가 준비해둔 저녁상을 받았다.“저녁은 사모님이 좋아하시는 만둣국으로 준비해 두었습니다.”노 집사의 말에 고은영의 눈이 반짝 빛났다.“진짜요?!”“그럼요, 오후 내내 주방에서 빚고 있었는걸요!”혜나가 옆에서 거들었다.고은영은 정말로 신이 났다.어릴 때 할머니와 자라면서 식습관이 굳어져서인지 그녀는 만두라면 사족을 못 썼다. 만두 소리에 어린애처럼 기쁜 게 얼굴로 다 티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는 배준우의 입꼬리도 슬쩍 올라갔다.식탁에서 그녀는 한 번에 만두를 20여 개나 해치웠다.“만두 맛있었어?”“네! 내일은 버섯 들어간 만두가 먹고 싶어요.”“먹고싶으면 먹어야지.”배준우를 따라서 식탁 한편에 서있던 노 집사도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이 드시고 싶은 건 바로바로 준비해야지!이제 고은영도 슬슬 그의 곁에 있는 게 싫지 않아졌다. 예전의 공포심이 없어지니 같이 있는 게 좋았고 이제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행복했다. 고은영이라는 사람 자체가 원래부터 그렇게 매사에 계산적이거나 머리 굴리는 사람이 아니기도 했다.그때, 배준우의 핸드폰이 울렸다.고
“진짜로 거래처 두 곳에서 나 대표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고요?”이연이 참지 못하고 묻자 안지영이 고개를 끄덕댔다.“그렇다니까요!”“그럼… 차라리 가서 여쭤보는 건 어떤가요?”이연은 무슨 일이 생기든 앞뒤는 알아야 된다는 주의였다.오늘 오후에 안지영이 들었다던 그 전화의 이야기도 사실 구슬리고 또 구슬려서 간신히 들어낸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도무지 더 이상 다른 얘기가 나올 기미가 없었다. 게다가 나 대표님조차 말을 안 하니, 그들도 입장이 난처해졌다. 가서 여쭤보는 게 어떠냐는 말에 안지영은 계속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녀도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다.“… 뭐, 물어보기는 해야 될 것 같아요.”이렇게 된 이상 가서 물어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그럼 얼른 대표님 사무실로 가 봐요!”어차피 이미 지하철도 끊긴 시간이었다.“네, 이 팀장님 먼저 퇴근하세요. 전 여쭤 보고 갈게요.”이렇게 일이 커진 데다가 팀장님한테까지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을 하니 그녀는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사건이 해결되면 커피라도 사서 드려야지하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나태웅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도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하필 낫빛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안지영과 딱 마주치자마자, 그 안색이 더 나빠지는 걸 그녀는 보고야 말았다.“대표님, 회의 끝나셨나요?”“응.”나태웅은 곧바로 안지영 곁을 지나쳤다. 싸한 민트 향과 섞인 담배 냄새가 뒤를 따랐지만 싫지는 않은 냄새였다.그녀는 약간 초조하게 컵을 집어 드는 나태웅을 바라봤다. “저… 오늘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먼저 사과부터 해야지!그러나 뒤따라오는 말은 사과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저도 오늘 이래저래 알아보았는데요…. 모두들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나 대표님의 전화를 받았다는 말만 하셔서… 혹시 대표님이 전화하신 걸까요?”만약에 정말로 그가 전화를 걸었다면, 대체 뭔 전화였길래 사인하고 날인만 하면 끝날 계약이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파투가
그렇지만 내일 오전까지 계약을 어떻게든 따 내라는 말은 오늘 밤에 기획안을 만들어 내라는 말과 같았다.지금 벌써 이 시간인데, 그럼 퇴근을 아예 못한단 말이잖아!안지영이 입술을 깨물다가, 간신히 한마디를 쥐어짰다.“정… 정말 급한 일인가요?”“업체에서 내일 오후에 다른 회사와 미팅을 잡았어.”그러니까 오늘 밤에는 꼭 나와야 된다는 말이였다. 이 두 개의 중요한 업체를 남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안지영도 헐레벌떡 자기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밤 퇴근하기는 글렀으니 기다리지 말라고 전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나태웅은 회사에 열두시 조금 넘어서까지 있다가, 판매부 사무실 쪽으로 슬쩍 넘어갔다.그런데 웬걸, 판매부 사무실 문 안에서 웬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같이 들리는 것이었다!자세히 들으니, 바로 안지영과 장선명이었다.“뭐라도 좀 먹어.”“감사합니다…”안지영은 정말로 배가 고팠다.큰일이 터졌기에 그녀는 저녁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쫄쫄 굶은 상태였다.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나태웅의 눈에 장선명이 포장해온 김치찜이 들어왔다.“대표님!”태웅의 등장에 벌떡 일어선 안지영과는 달리, 장선명은 그녀 옆쪽의 사무실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는데, 아주 붙어 있던 건 아니지만 그 거리도 나태웅을 묘하게 기분 나쁘게 했다.“넷째 도련님은 정말 사람을 잘 챙기시네요. 근데 이 야밤에 매운 걸 먹어도 별로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첫마디는 칭찬인데, 뒷말은 완전히 비꼬는 기색을 숨기지도 않은 말이었다.사람 챙길 줄을 모르니 아무렇게나 막 챙기지! 한편 안지영도 그 말에 가시가 박힌 게 느꼈기에 허겁지겁 장선명을 감싼답시고 끼어들었다.“제가! 제가 매운 게 먹고 싶다고 했어요!”그러자 나태웅이 또 한껏 그녀를 째려보는 통에 그녀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또 내가 뭔 말을 잘못한 거지?“같이 가실까요?”장선명은 바로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됐다. 다만 장선명이라는 인간 자체가 반골 기질에, 그와 안지영
”알겠어. 얼른 하기나 해.”안지영도 더 이상 다른 말없이 우선 눈앞의 업무를 처리하는데 집중했다. 이미 바빠서 돌아가실 지경이었다!그래도 조금 일찍 말해주지. 밤 9시가 다 넘은 시간에 당장 내일까지 계약을 따 내라니!나태웅에게 빚을 졌긴 하지만 원수진 일은 없는데, 안지영은 이제는 제가 뭔갈 크게 잘못해서 보복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기까지 했다.나태웅은 주차장 안에서 장선명의 차 근처에 차를 대고 있었다.손목시계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를 정도로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안지영과 장선명이 건물에서 내려왔다.장선명이 이 시간까지 누구랑 같이 있어주다니 놀랄 노자였다. 그는 먼저 안지영을 집에 데려다주고 그랜드 마운틴 별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그녀는 차에서 내리기 전, 약간의 감동을 숨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오늘 정말 감사해요!”야근이라는 게 정말 짜증스럽고 피곤하지만 웬일인지 옆에 누구 하나가 앉아서 시시콜콜한 한두 마디 건네주는 게 꽤나 힘이 된다고 새삼 느꼈다. “얼른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자 둬.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정말 괜찮아요! 제가 차 타고 갈 수 있어요!”회사까지 데려다주려면 장선명은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했기에 거절했다. “그럼… 알겠어.”그 말을 듣고서야 안지영은 조금 마음을 놓고 그를 배웅했다.어쨌든 오늘에서야 천락그룹이 얼마나 직원을 힘들게 하는지 제대로 맛 본 그녀였다.한편 고은영은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부엌에서 고아 온 오리 백숙을 아침상으로 받았다.그녀가 임신했다는 것을 안 이후로 배준우가 그녀의 식단에 한창 더 신경을 쓰고 있어서였다.“너… 너무 보양식 아니에요?”그녀가 약간은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배준우를 쳐다봤다.아침에 눈 뜨자마자 오리 백숙이라니!“오리 백숙이 몸에 얼마나 좋은데? 얼른 먹어.”그 말을 하는 배준우의 말투가 어찌나 다정한 아내를 위하는 예비 아빠 같았는지 고은영도 마음이 사르르 녹는 듯했다.나중에 배준우를 떠나게 된다면, 아쉽지 않을 수
”이 배 씨 집안 남자들.. 참 무정하기 짝이 없구나!”량천옥이 마구 빈정대자 량일도 차마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그럴 만도 한 게, 그 말은 정말이지 사실이었다!사진 속의 장소들은 하나같이 량천옥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량일마저 같이 방문했던 곳들이었다.게다가 한 두 군데 방문한 게 아니라 여러 장소들이 섞여 있는 것이, 정말로 이 남자가 불륜을 감출 의향이 털끝만큼도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순간의 량천옥은 여러모로 절망적이었다.딸이, 배준우에게 시집을 갔다!게다가 배항준은 저를 버리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너, 지금은 냉정하게 생각하고 마음 단단히 먹어 둬야 해!”량일이 한참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그녀의 세상이 혼돈 그 자체인 것과 별개로,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된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눈앞의 량천옥은 해탈한 듯한 표정으로 그저 무미건조하게 입을 열고 대꾸할 뿐이었다.“냉정해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방법이 있나요?”머릿속에는 예전에 유청과 배항준이 이혼하던 장면이 떠오르고 있었다.그때의 유청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배준우와 배지영을 데리고 배 씨 집안을 떠났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가?“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니?”이미 벌어진 일, 해결부터 해야 했다!“내가 배 씨 집안에서 어떻게 지내왔는데! 그렇게 저한테 대해 놓고 그 사람도 좋은 꼴은 볼 수 없을 거예요!"이 강성에서 모두들 그녀를 배 씨 집안의 사모님으로 깍듯이 모셨다.오로지 그녀 본인만 알고 있었다. 제가 얼마나 살얼음판 속에서 행동 하나 걸음걸이 하나마저 조심하며 살아왔는지!배항준의 주변에 여자들은 끊이지 않았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애까지 배어 오지는 않았다.그러나 이번의 이 여자가 임신을 했다면, 앞으로의 꼴이 어떻게 돌아갈지 안 봐도 감이 왔다.“장항 프로젝트를 배준우한테 넘기라 했다가 이제 천의까지 넘기라고 했던 거에 다 이유가 있었던 거야!”입술을 깨물며 앉아있던 량천옥의 머릿속으로 문득, 배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