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과의 전화를 끝낸 다음에도 은영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비록 머릿속으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혹이었지만, 정작 그 의심이 진실이 되어 눈앞에 들이밀어지니 충격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녀를 집어삼켰다.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손이 자동적으로 은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한편 은지는 영수와 함께 있었다.영수는 평소에도 표정이 없고 냉정한 인상이기는 했지만, 오늘의 그는 한 층 더 차가워 보였다. 평소와 다른 그의 표정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차가운 얼굴로, 영수는 말없이 손에 든 서류봉투를 은지에게 내밀었다.“이게 뭐예요?"“직접 열어 봐.”은지는 멍하니 내밀어진 물건과, 눈앞에 선 영수를 번갈아 바라봤다.마주친 영수의 눈 안에서는 피로와 증오가 섞여 있어, 그녀는 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그러나 그녀가 채 손을 뻗어 봉투를 받아 오기도 전에, 핸드폰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은영의 전화였다.“먼저 전화 좀 받아도 되죠?”은지는 항상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이었지만, 이혼을 기점으로 그녀의 부드러움은 꽤나 그 결이 달라져 있었다. 그전에는 그저 연약한 느낌이었다면, 이혼 후에는 혼자 사회생활도 하고, 일도 한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이 있었다.영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은지는 전화를 받아 들고는 일어났다.“은영아,”“언니, 앞으로는 조보은한테 신경도 쓰지 마!”전화기 너머의 은영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묻어났다.보은이 은지를 키워준 은혜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보은의 곁에서 당할 만큼 당하면서 그 은혜는 갚고도 남는다. 영수와의 결혼 이후에도 암암리에든, 아니면 대놓고든, 끊임없이 이어져 온 구박과 괴롭힘으로도 이미 충분히 갚고도 남았다.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뜬금없는 은영의 말에, 은지는 잠시 가만히 있다 되물었다.“갑자기 무슨 일이야?!”“언니, 우리가 그 여자 친딸이 아니래. 그니깐 이제 그 여자가 뭐라고 말하든 전혀 신경
그러나 역시 보은과 아무런 사이가 없다는 그 사실이, 그녀의 마음속에 더할 나위 없는 위로가 되어 주었다.은지도 마찬가지였다.“이제 잘 됐어. 더 이상 우리가 신경 써야 될 건 없는 거야.”“응, 언니 어디야?”“나 지금 밖이야.”창밖은 이미 해가 어슴푸레하게 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한 탓에 금방이라도 늘어지듯 피곤했지만, 은영이 가지고 온 소식을 듣고 나니 그녀는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그러면 우리 주말에 한번 보자. 언니, 우선 끊을게!” “응 그래, 그렇게 하자.”비록 둘 다 보은의 친딸이 아니라고 할지언정, 은지와 은영은 이미 그것과는 관계없이 끈끈한, 진짜 자매였다.어릴 때부터 은지에게 은영은 아픈 손가락 같았다. 물론 은지 본인 역시 별로 보은과의 좋은 기억은 전혀 없다시피 하지만, 은영을 미워하던 보은을 보며 은지는 항상 은영을 애틋해 했었다.전화를 끊고 영수의 맞은편으로 돌아와 앉는 그녀에게 방금 전의 긴장된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반면 영수는 여전히 무심하고 차가운 얼굴이었다.“은영이 전화였어?”그녀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요즘 네가 웃을 일이 은영이 말고는 없으니.”그 말에는 묘하게 비꼬는 듯한 어조가 섞여 있었다. 그제야 은지도 그의 차디찬 태도의 이상함을 느낀 듯, 얼굴색을 바꿔 그를 마주 보았다.“근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거예요?"허공에서 시선이 맞닿았다. 아니, 거의 맞부딪혔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영수가 거의 증오하는 사람을 쳐다보듯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희주가 내 딸이 아니더라고?”컵을 들어 올리던 은지의 손이 허공에서 붙들린 듯 멈춰 섰다. 이를 지켜보는 영수의 눈빛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뭐라고요?!”“고은지, 내가 정말 널 다시 봤다. 그런 친정을 가진 게 안타깝고 가여워서 그렇게나 내가 널 아껴 줬는데. 돌아오는 게 이런 거야? 날 가지고 노는 거?”“아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은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희주가 영수의 딸이 아니면 대체 누구의 딸이란 말인가? 병원의 착각으로 이루어진 해프닝인가? 은지는 어떻게든 머릿속을 정리해 보고자 했지만, 정리를 해보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수록 점점 더 공포에 사로잡힐 뿐이었다. 그녀는 벌벌 떨며 일어난 그때 영수에게 전화가 왔다.“내일 와서 희주 데리고 가!”전화기를 쥔 은지의 손이 형편없이 덜덜 떨렸다. 그녀는 손에 힘을 주어 핸드폰을 붙들며, 머릿속으로 무슨 말이든 해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녀로서도 도무지 어떻게 해명해야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 데다가, 영수의 차디찬 태도 앞에서는 당장 한마디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당장 그녀 본인도 어떻게 된 일인지조차 모르겠는데, 어찌 해명을 할 수가 있겠느냐! 이미 고된 그녀의 삶이 한 번 더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버리는 기분이었다.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는 길을 걸으며, 그녀는 고요히 절망했다.그녀의 삶이 또다시 깨지고 박살이 나, 결국 시궁창으로 처박히는 기분이었다.….저녁,항준은 준우에게 본가에 들어오되 은영은 데리고 오지 말라고 일러 두었다.그런데 근래 들어 준우는 바늘 가는데 실 가는 것처럼 어딜 가든 은영을 그림자처럼 붙여 두고 다니는 터라, 어김없이 준우와 함께 등장한 은영을 보고서는 항준도 결국 울화통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장항 프로젝트를 끝내고 난 뒤에도 네가 저 여자랑 깨끗하게 끝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어!”“저는 아버지한테 믿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별 시답잖은 소리를 들은 것처럼 준우가 여상하게 대답했다.자리를 시작한 지 얼마 오래 지나지도 않았는데, 천옥의 얼굴은 반쯤 죽은 것처럼 시들어 있었다. 어지간히 불편한 자리겠지. 그러나 그 와중에 은영을 보는 눈빛은 잡아먹을 듯 형형하니 매섭기 짝이 없었다.양일도, 배윤도 없이 천옥과 항준만 함께 하는 자리였는데, 준우가 말하는 불량한 말투에 항준은 거의 화가 나서 뒤로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천의 프로젝트는
그 말을 듣고서는 천옥도 찔리는 바가 있어 조금 움츠려 들었다.아무래도 반박할 말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그래, 그 건은 내가 정말 잘못했어. 그럼 그때 설립할 때 썼던 자금을 현금으로 네게 돌려주는 건 어떨까?”현금으로? 그때 당시에 재단 설립할 때 썼던 현금이 얼마면 이제 와서 그에게 그만큼 돌려주겠다는 말인가?설립했을 때와 지금 이미 한창 성장 중인 천의의 사업 규모는 못 해도 20배는 족히 차이가 났다.“몇 년이 지났는데 그걸 그렇게 계산하려고 드시네요.”“20%나 떼어 주는 거야! 절대 적은 돈이 아니라고.”겉으로 싹싹 빌고는 있어도, 절대 회사와 주식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지만,뭐, 어찌 됐든 요 몇 년 사이 천의 수익의 20% 라면 꽤 크기는 했다!그만큼을 뚝 떼어 준우에게 넘겨주면 천의에서도 큰 타격이기는 한 것이 맞았다.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당장이라도 전부를 빼앗아 갈 기세로 몰아오는 준우 앞에서는 천옥도 도무지 다른 수를 낼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의 손해야, 언제든 메우면 그만이다. 천옥은 어떤 대가를 치러서든 천의를 손에 온전히 넣고 싶었고, 얼만큼을 떼어 내 주던, 다시 제 손으로 천의를 크게 키워낼 자신이 있었다.그냥 가져가지만 않았음 하는 것이 솔직한 그녀의 심정이였다.“20%요?”준우의 눈에는 차가운 비웃음이 여전히 가득 걸려있었다.“그래!”천옥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건만 이대로 성사되면 완벽해진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준우가 거절할까 걱정이 들어 그녀는 허겁지겁 부연 설명도 덧붙였다.“정말 적지 않은 거야. 예전에 그 돈으로 투자한 것에 대해서 보상해주는 거야.”“오… 이제는 보상이라는 것도 해줄 줄 아나 보네요?”어릴 때 승냥이 떼처럼 제가 가진 것을 빼앗아 가려는 그 짓거리들이 아직도 이렇게나 생생한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일 때 당신이,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앗아가려고 했는지!그때는 생각지도 않던 보상을, 벼랑 끝에 몰린 지금에서야 마치 큰 무언가라도 되는
배항준은 배준우에게 조금도 의논할 여지가 없는 것을 보고는 차갑게 량천옥을 쳐다보며 말했다.“다 봤지?”“어르신!”량천옥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배항준을 쳐다봤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배항준이 조금 전에 배준우가 돌아온 후 여전히 손을 놓지 않는다면 그녀는 반드시 천의를 그에게 줘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방금 치솟은 분노는 배준우를 바라보는 순간 그저 참고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준우야, 이렇게 부탁할게! 내가 어덯게 너의 그 고귀한 머리를 함부로 숙일 수가 있겠어..”그녀의 말에 배준우는 차갑게 웃었고, 량천옥은 그의 코웃음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그는 량천옥을 비웃는 게 분명했다. 그때 그녀가 안하무인격으로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했다면, 지금은 그녀가 그러한 수단으로 얻은 것들을 다 돌려받아야 했다.“안... 안 돼...!”량천옥은 숨이 멎을 듯 고개를 흔들었다.그녀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배준우가 이번에 이렇게 악랄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현재 장항 프로젝트는 그의 손을 따르고 있고 그의 사람들이 전부 인수해 갔다.때문에 지금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녀의 천의가 그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그는 절망과 분노가 뒤섞인 량천옥의 얼굴을 보다 다시 무거운 얼굴의 배항준을 보고는 재미없다는 듯 고은영을 당기며 물었다.“힘들지 않아?”“괜찮아요.”고은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지금 이 순간 배준우의 위험한 기운은 전부 량천옥을 겨냥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고은영을 대하는 배준우의 모습을 본 배항준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 못된 녀석은 분명 고의로 이러는 것임이 틀림 없었다. 고은영이 괜찮다고 해도 배준우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돌아가자!”돌아간다고?그의 말에 량천옥과 배항준의 낯빛이 모두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지금 일도 제대로 해결 안 됐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돌아간단 말인가?배준우가 고은영을 데리고 몸을 돌리는 것을 본 배항준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거기 서!
그녀의 말에 배항준의 눈 밑에 상처의 빛이 스쳐 지났다.그는 량천옥을 보며 말했다.“그동안 정말 그 애에게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장담할 수 있어?”“안 했어요. 그동안은 정말 안 했다고요.”“그러니까 진 씨 가문 이전에는 많이 했다는 거야?”량천옥의 낯빛은 순간 창백해졌다.진 씨 가문 이전?분명 적게 한 것은 아니었다.배준우가 동영그룹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도 배준우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똑똑히 봤다. 그가 갖고 있는 능력 중 일부로 끊임없이 성장한다면 분명 후환이 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배준우를 통제하려고 했다.“당장 말해!”량천옥의 낯빛이 창백해지는 것을 본 배항준은 매섭게 소리쳤다.그녀의 낯빛만 봐도 그는 그녀가 배준우에게 얼마나 많은 짓을 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저는 그 애와 그저 진 씨 가문의 결혼으로 맺어지기를 원했어요. 진유경은 아주 착한 아이예요. 당신도 잘 알잖아요!”“하!”진유경이 어떤 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유경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들인 건 잘 알고 있다.“량천옥, 왜 하필이면 다른 사람이 아닌 배준우를 음해한 거야!”배항준의 목소리는 더욱 무거워졌다.그동안 배준우는 계속 해외에서 유청과 함께 자기들만의 삶을 살아왔다.배준우는 해외에서도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지금 그 회사가 아니더라고 M국의 거물이 됐을 것이다!배항준은 이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만약 량천옥이 그를 음해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동영그룹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천의가 또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결국 이것은 다 량천옥이 자초한 것이다!배항준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천의 그 애한테 넘겨!”지금 이 순간 배항준은 천의를 배준우에게 넘겨야만 일이 완전히 끝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의 말에 량천옥의 낯빛은 다시 창백해졌다.“제가 배준우를 음해했다고 원망만 하시고 배윤에게 남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생각 안 하시나요?”왜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량천옥은
그렇게 된다면 정말 고은영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 배항준의 눈 밑에는 매서운 빛이 스쳐 지나갔고 량천옥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의 눈에는 스파크가 튀었다!일이 이 지경이 된 마당에 량천옥도 더 이상 배항준 앞에서 착한 척할 가치가 없었다.어쨌든 그의 마음은 이미 그녀에게 있지 않았기에 그녀가 어떤 사람이라도 그는 아무 상관 없을 것이다.……한편, 차 안.고은영은 어젯밤에 잠을 설친 데다 점심에 또 걱정거리가 있어 낮잠을 자지 않은 탓에 차에 타자마자 버티지 못하고 바로 잠들어 버렸다.배준우가 그녀의 머리를 자기 다리에 올려놓자, 고은영은 몸을 뒤집으며 그의 단단한 허리를 껴안은 채 쿨쿨 잠을 잤다.아무 경계심 없이 자기를 대하는 그녀의 모습에 배항준의 입꼬리에 그녀를 향한 총애가 담긴 미소가 서서히 번졌다.“이 여자가 정말..!”백미러로 배준우의 온화한 얼굴을 본 운전기사는 순간 저도 모르게 심장이 움츠러들었다.왜냐하면 배준우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단 한 번도 그의 온화한 얼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차가 란완리조트에 도착할 때까지도 고은영은 깨지 않았고 결국 배준우가 그녀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라현일과 하인들은 그를 보고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는 순간 배준우가 손짓으로 제지했다.고은영이 깰까 봐 걱정하는 게 분명했다.배준우가 그녀를 안고 방으로 데려와 침대에 내려놓는 순간 고은영이 흐리멍덩하게 눈을 떴고 무고한 사람처럼 보였다.“도착했어요?”“피곤하면 자도 돼.”배준우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녀가 본가에 있을 때는 괜찮다고 고집스럽게 말하더니, 차에 올라타자마자 잠 이 들어서 지금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다.고은영은 정말 피곤해 보였고, 배가 불러온 탓인지 그녀는 항상 졸렸다.배준우는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지 두 마디 다독이며 그녀가 잠든 것을 보고는 바로 서재로 갔다.그러나 고은영은 다시 잠들지 못했고 배준우가 나가자마자 그녀의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그녀는 제멋대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인상 속의 고은지는 아주 강인한 사람이었기에 그녀가 우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하지만 그녀가 우니 오늘 밤은 큰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나태웅이 와서 배준우와 함께 서재에 있었고, 고은영이 서재로 들어오는 것을 본 배준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자는 거 아니었어?”“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고은영의 말에 배준우는 손목시계를 봤고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그러나 고은영도 이미 늦은 시간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말했다.“큰일이 생긴 것 같아요.”“같이 가.”“괜찮아요. 볼일 보세요. 라 집사님에게 기사 불러달라고 해서 가면 돼요.”배준우는 회사에서 종일 회의를 했기 때문에 고은영은 그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말에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고은영은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녀가 돌아서자마자 배준우는 라현일에게 내선 전화를 걸어 사람을 몇 명 더 붙이라고 했다.란완리조트의 경호원들은 다 제대한 사람들이기에 실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지금 그와 량천옥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여자를 조심해야 했다.……고은영은 고은지의 월세방에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고은지는 잔뜩 헝클어진 머리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고 젖은 옷도 그대로였다.그녀의 낭패한 모습을 본 고은영은 순간 가슴이 아팠다.“언니..”고은영의 목소리에 그녀는 고은영을 멍하니 쳐다 보았다. 고은영은 몇 발짝 다가오며 말했다.“왜 문을 안 닫고 있어? 너무 위험하잖아!”어쨌든 여기는 임대를 받은 곳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그녀의 말에 고은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은영의 품에 안겨 울부짖기 시작했다.“왜 그래?”“은영아,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여버린 거지...?”고은지는 고통스러운 듯 말했다!그녀는 일이 이렇게 돼버린 게 믿기지 않았다.고은영은 고은지가 조보은의 그 친자 확인 보고서의 일로 슬퍼하는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