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배준우를 쳐다봤다. 그가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동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전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분명 크게 당했을 것이다.일자리를 잃거나 집을 잃거나 돈을 잃는 건 다 사소한 일이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내가 약속을 어긴 적 있어?”“아니요, 배 대표님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에요!”고은영은 순간 신이 나서 말했다.방금까지만 해도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두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이 기쁨을 참지 못했다.“하지만 안지영은 어떻게 벌하면 좋을까?”“……”기뻤던 그녀의 기분이 순간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지영이는 정말 아무 상관 없어요!”다급했던 고은영은 횡설수설하며 변명했다.처음부터 몇 번이나 배준우를 찾아가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으나 안지영과 하늘그룹이 휠말릴까 봐 지금까지 숨긴 것이었다.그녀는 배준우의 꿈쩍도 하지 않는 낯빛에 계속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배준우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나태웅의 전화였다!배준우는 고은영을 한쪽 소파에 내려놓고 한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말해!”“그 여자는 돌아왔어?”“응, 하지만 안지영도 놀라게 했잖아.”나태웅의 말투에는 약간의 불만이 섞여 있었다.그의 말에 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방금 그 장면을 생각하면 안지영은 확실히 놀란 게 분명했다.“이제 남은 건 너에게 맡길게.”“이건 무슨 소리야?”“하늘그룹이 어떻게 될지는 3일 후에 결론이 날 거야.”그의 말에 바로 알아챈 나태웅은 살짝 소리내어 웃었다.“고마워.”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일해왔기 때문에 쿵짝이 잘 맞았다.배준우는 영리한 사람이기에 그 어떤 것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지만, 고은영은 바보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그를 속여왔다.어쩌면 너무 멍청해서 배준우가 그녀가 그 사람일 거로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그리고 배준우는 나태웅이 무슨 생각으로 안지영을 천락그룹으로 데리고 갔는지 잘 알고 있었다.“너무 무섭게 굴
그렇다면…!아버지가 솔직하게 고백하면 너그럽게 봐줄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왜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지금 이 순간 안지영은 정말 후회스러웠다.그녀들은 지금 고은영의 일 때문에 아무나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도마 위의 물고기 되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망설이며 나태웅을 쳐다보며 말했다.“저기, 전에 했던 말 아직 유효한 거죠? 제가 천락그룹에 와서 200억을 채우면 하늘그룹 지켜주겠다고 했잖아요.”“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한 것 같은데?”그런 것 같기도 했다!당시 나태웅이 너무 다급하게 물어서 그녀가 견디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다 말해버리고 말았다.“왜 멍청하게 다 고백하러 간 거야?”“제가 아니라 저희 아버지가 한거라고요!”안지영은 말만 해도 울고 싶었다.그녀의 아버지는 하늘그룹을 크게 키우지는 못했지만,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었다.그녀는 이 일을 왜 아버지에게 말했는지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그럼 이제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거예요?”“그 사람 성격 너도 잘 알잖아. 이 일을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숨긴 데다 고은영을 찾기 위해 수많은 인력과 물력을 들였으니, 이 화를 풀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배준우가 얼마나 많은 대가와 일들을 겪었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녀와 고은영이 바로 그의 곁에 있었는데 배준우가 얼마나 많은 심력을 기울였는지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인가!그리고 이제서야 도대체 자기가 무슨 문제를 만들어 냈는지 깨달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죄, 죄송해요. 저희는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요. 그때는 너무 무서워서 그랬을 뿐이예요..”“무섭다고 회사의 그렇게 많은 자원을 낭비해도 되는 거야?”“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안지영은 숨이 막혀왔다.이제 비난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일이 이렇게 돼버렸기에 그녀는 그저 빨리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나태웅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이를
“대가가 필요한 방법도 있어.”나태웅은 대가라는 두 글자를 강조했고 그의 말에 안지영도 깜짝 놀랐다.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안진섭이 하늘그룹을 위해 한 노력들이 스쳐 지나갔고 순간 코끝이 찡했다!“무슨 대가요?”“그건 네가 하늘그룹을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먼저 봐야겠지?”나태웅의 목소리는 더욱 그윽해졌고 너무 깊어 그의 기분을 알아챌 수 없었지만, 깊은 곳의 밑바닥을 느낄 수 있었기에 언제라도 그 속에 빠질 것만 같았다.안지영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뭘 해야 하죠?”“뭐든지 할 수 있겠어?”“근데 그게 뭔지는 들어봐야겠어요!”“그렇다면 너에게 하늘그룹은 별로 소중하지 않은 것 같네!”나태웅은 살짝 소리내어 웃었고, 안지영은 그 웃음이 자기를 비웃는 것 같았다.왜 소중하지 않단 말인가?그녀는 안진섭이 무엇 때문에 그녀더러 밖에서 경험을 쌓으라고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앞으로 이 회사를 잘 인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하늘그룹은 그가 평생 심혈을 기울여 키운 회사이기에 반드시 관리를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했다.그녀는 안진섭의 외동딸이기에 안진섭은 당연히 그녀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그게 아니었다면 몇 년 동안 용돈도 스스로 벌어서 쓰라며 모질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그 이유는 다 그녀가 밖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기를 바라서였다.그가 이렇게 마음을 쓰는데 그녀가 어떻게 하늘그룹이 그녀 때문에 배준우에게 보복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그리고 이미 당한 진영그룹의 처참한 모습이 그녀의 눈에 선했다!결국 안지영은 눈을 뜨고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나태웅을 바라보며 말했다.“가르쳐 주세요!”그러자 나태웅이 말했다.“배준우와 중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결혼하면 하늘그룹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저를 팔라고요?”안지영은 깜짝 놀라서 나태웅을 바라봤다.자기가 굽신거리며 얻어낸 것이 이런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자기를 팔
안지영은 어떻게 천락그룹에서 나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그녀는 길을 걸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고 그녀는 그저 온몸이 차갑게 느껴졌다.머릿속에는 방금 나태웅이 했던 말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나태웅의 말대로 정말 그 길밖에 없는 것 같았다.어쨌든 이번에 건드린 사람이 배준우이기 때문이다!배준우를 건드려서 화나게 만든다면 어떻게 되는지는 진영그룹이 가장 좋은 예시일 것이다. 진영그룹은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파산까지 내몰렸다.비록 배준우가 3일이라고 했지만, 이미 조용히 준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그때 전화기 진동음이 그녀의 생각을 끊어버렸다.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안진섭에게서 온 전화였다.전화를 받는 순간 그녀는 눈가가 빨개지더니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했고 억지로 흐느낌을 참으며 말했다.“아버지.”“지금 어디야?”“회사요.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자마자 안지영은 집으로 향했고 1시간 가까이 운전한 후 집에 도착했다.시간은 이미 새벽 2시였지만 아직도 집 안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보니 안진섭의 초조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안으로 들어가자 안진섭이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게 보였다.안지영은 신발을 갈아신고 그에게 다가가 가볍게 불렀다.“아버지.”그녀의 부름에 안진섭은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늘 당찬 딸의 눈가가 빨간 것을 보고 멍해졌다.모든 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는 그녀에게 팔을 벌리며 말했다.“이리 와.”그의 말에 안지영의 눈물은 다시 한번 쏟아졌다.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이미 안진섭이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했었고 심지어는 벨트로 그녀를 때릴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까지 했었다.그런데 이렇게 화를 내지 않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안진섭의 품에 안기자, 안지영의 감정도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후과가 이렇게 엄중할 줄은 몰랐어요.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흑흑..”안지영은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그녀
안지영은 깜짝 놀라 안진섭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해외로 나가라고? 그녀더러 해외로 나가라고?!안지영은 순간 가슴이 아팠고 아버지가 이 상황에서도 그녀를 지켜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지금 배준우 쪽은 화가 단단히 났을 것이고 이 일의 장본인인 그녀가 해외로 나간다면 하늘그룹은 정말 끝장날지도 모른다.“안 돼요, 이 상황에 제가 어떻게 가요?”“안 가면 뭐 하려고? 배준우가 널 진승연 꼴로 만드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진승연은 전에 배준우와 약간의 친분이 있었지만, 결국은 그 모양이 되었다.만약 안지영이라면 분명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이것이 바로 안진섭이 돌아온 후 3시간 동안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었다.진승연이라는 말에 안지영은 참지 못하고 몸을 살짝 떨었다.진승연의 결말은 정말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그렇게 당할 만했다.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녀도 약간 당해도 할말이 없는 것이 있기는 했다.“아주머니가 네 짐 싸고 있어. 내일 아침 6시 비행기니까 준비 끝나면 바로 공항으로 가!”아침 6시? 그러면 집에도 있지 말라는 건가?안지영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싫어요, 저 해외 안 갈 거예요!”“말 들어, 착하지?”안진섭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달랬다.하지만 그가 달래주자, 안지영의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고 그 순간 마음이 너무나도 괴로워졌다.“제가 가면 배준우가 분명 더 화를 낼 거예요. 그럼 그때 아버지는 어떻게 하시려고요?”“이 늙은이를 그자가 뭘 어떻게 할 수나 있겠어?”그녀의 말에 안진섭은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솔직하게 말해서 일이 이렇게 변하게 될 걸 알았다면 진즉에 말하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젊은이들의 냉정하고 잔인함에 안진섭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이미 그를 건드렸으니, 언젠가는 감당할 수 없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그래서 오늘의 자백에 대해 그는 후회한다거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결과를 빨리 마주했을 뿐이다.“안 돼요. 하늘
지영은 결국 강성을 떠나지 않은 것이었다!진섭 역시 그녀에겐 별 수가 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준우 쪽에 가서 어떻게든 상황을 호전시켜 보는 방법을 생각하는 듯해 보였다. 동시에 지영도 가만히 손 놓고만 있지는 않아서, 내내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하지 않다가, 갑자기 그다음 날부터 선 자리에 나가기 시작했다!한 방에 3번의 선 자리라니, 이렇게 적극적이라면, 누구든 한눈에 보자마자 그녀의 목적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아무나 잡아서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급한 와중에 그녀는 무조건 안 씨 집안을 도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그리고 마침, 이 선 상대방 중에는 장 씨 가문의 넷째 장신명과 진 씨 가문 첫째 진윤도 있었다!오전 10시가 되자마자, 준우의 핸드폰으로 선명과 윤에게서 연달아 전화가 걸려왔다. 대체 안 씨 집안 딸내미가 뭔 바람이 불었길래 당일에 도장을 찍자고 난리인지 묻는 전화였다.준우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너한테 시집간다고?”“아니, 내가 아니라… 지금 그쪽은 그냥 자기랑 결혼할 자신이 있고, 안 씨네를 좀 도와줄 수 있으면 바로 시집을 간다는 뜻이야!”“엥?”준우는 눈썹을 모으며 생각했다. ‘안지영 얘는 아무리 급해도 앞뒤는 가릴 줄 알아야지, 장선명, 진윤 얘네랑 내 관계를 모른다는 거야?나 실장이 아무래도 뭘 좀 잘못 짚은 것 같은데.’그때, 선명이 빈정댔다. “나 걔한테 그냥 장가나 확 갈까?”"네가 그러면 아마 누군가 널 죽이려고 들걸?”“아니 이러면 너를 건드리는 거 아냐? 왜 또 갑자기 여기서 누군가가 나와?”고작 한 달여 못 봤을 뿐인데, 설마 또 무슨 대단한 일이 벌어졌을까 싶다가도, 준우의 의미심장한 말에 선명의 입꼬리에 걸린 웃음이 슬쩍 삐딱해졌다.요즘 변한 게 어디 배 준우 한 사람일까. 세상 전체가 엉망진창인데.한편, 은영은 휴게실에 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준우는 별다른 말이 없었고, 그 침묵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전화를 하는 준우의 목소리에서 얼핏 지
그리고 그런 준우의 날카로운 말투에 은영도 잔뜩 겁을 먹어 버렸다.설마, 아니겠지?“그러면 저 아무 말도 안 할게요…!”아무래도 그렇게 위협적으로 말하면, 더 말하고 싶다가도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더 말했다가 진짜로 안 가에 뭔 일이라도 생긴다면, 정말로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으니까.일이 이렇게까지 되니, 수습도 도무지 쉽지가 않았다.“그…그러시면, 저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은영이 불쌍하게 물었다.지영의 이야기가 안 된다면, 뭐 차라리 내 이야기라도 해 보자 싶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그가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하지는 않았기에 은영은 준우가 이 일에 대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대충 어젯밤에나 안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준우의 나긋나긋한 태도에 그녀가 겁을 먹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겁을 잔뜩 먹어서 그야말로 벌벌 떠는 은영을 가만히 바라보던 준우의 입가에 보기 좋은 호선이 그려졌다.그 미소야말로 가장 은영을 겁먹게 만드는 것이긴 했지만.“그건 아직 생각 안 해봤어.”“……”아직, 생각을 안 해봤다고?!그러니까 아직까지도 안 가든, 본인이든,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도 안 했다는 건가?“그, 그러면 차라리 절 처리해 버리세요! 전 어떻게든 할 테니까요!”안 씨 집안에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방금 전의 서슬 퍼런 경고를 생각하니 차마 ‘안 가’ 두 글자는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꽤나 당돌하고 용기 있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준우는 비웃듯 픽 웃었다.“걱정하지 마. 넌 어차피 나한테서 도망 못 가니까!”이 말은 정말이지 은영에게 어떤 선고와도 같았기에 그녀는 더 겁을 먹고 말았다.이 염라대왕이 뭐가 됐든 아직 시작조차 안 했다는 건 자명하고, 뭘 정말 하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리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잔뜩 질린 은영의 모습에 준우의 눈가에 장난기가 어렸다.“목도리는 다 떠
준우와의 전화가 끝나자마자 태웅은 재빨리 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마도 한창 선 자리가 진행 중이었던 것인지, 한참이 지나서야 신호음이 끝나고 그녀가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나 대표님!”“지영 씨, 지금 어디야?”“저 밖이요. 오늘 연차 썼어요.”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지영의 목소리는 다소 힘이 없었다.안 그래도 짜증이 가득 차 있었는데, 지영이 그런 말을 하니 태웅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왜? 연차 쓰고 선보러 다니게?” “네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태웅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이 계집애는 대체 뭔 생각이지? 네 맞아요? 뭐 얼마나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라고?“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는 게 아주 스스로 팔려가듯이 시집가려고 작정했구나?!”“저는 그냥 대표님이 하신 말씀을 들은 거잖아요! 저도 스스로 방법을 찾아보는 거라고요."대꾸하는 지영의 말투에도 억울함이 가득했다.배준우 성깔머리를 조금 죽일 만한 상대방을 찾으라는 게 조언 아니었던가? 열심히 자기 조언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한테 응원은 못 해줄망정!당연히 냅다 시집으로 방법을 강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모습을 보면 지영도 딸 된 도리로서 마음이 아파서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던 것이었다. 이곳에 남았으니 결국 책임도 스스로 져야지, 하며 어떻게든 안 씨 가문을 지켜보려는 그녀 딴의 노력이기도 했다.“그래서 방법은 생각한 거야? 걔네들이 너한테 장가 가겠대?”“아니요!”하지만 이 부분을 굳이 말로 꺼내자니 지영도 속된 말로 멘탈 붕괴가 오는 것이었다.스스로 생각하기에 제 외적인 부분이 어디 가서 뒤떨어지는 수준도 아니고, 선 봤던 이들도 전부 배 준우 그 주변의 인물들이니, 아무래도 준우 앞에서도 할 말은 다 할 수준의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었다.그런데 벌써 셋이나 만났는데도 아무도, 그 어느 누구도 결혼하자는 놈이 없으니 말이다. 특히 장선명 이 인간은, 강성에서 무서울 것 없는 것 뻔히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