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배준우를 쳐다봤다. 그가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동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전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분명 크게 당했을 것이다.일자리를 잃거나 집을 잃거나 돈을 잃는 건 다 사소한 일이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내가 약속을 어긴 적 있어?”“아니요, 배 대표님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에요!”고은영은 순간 신이 나서 말했다.방금까지만 해도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두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이 기쁨을 참지 못했다.“하지만 안지영은 어떻게 벌하면 좋을까?”“……”기뻤던 그녀의 기분이 순간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지영이는 정말 아무 상관 없어요!”다급했던 고은영은 횡설수설하며 변명했다.처음부터 몇 번이나 배준우를 찾아가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으나 안지영과 하늘그룹이 휠말릴까 봐 지금까지 숨긴 것이었다.그녀는 배준우의 꿈쩍도 하지 않는 낯빛에 계속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배준우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나태웅의 전화였다!배준우는 고은영을 한쪽 소파에 내려놓고 한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말해!”“그 여자는 돌아왔어?”“응, 하지만 안지영도 놀라게 했잖아.”나태웅의 말투에는 약간의 불만이 섞여 있었다.그의 말에 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방금 그 장면을 생각하면 안지영은 확실히 놀란 게 분명했다.“이제 남은 건 너에게 맡길게.”“이건 무슨 소리야?”“하늘그룹이 어떻게 될지는 3일 후에 결론이 날 거야.”그의 말에 바로 알아챈 나태웅은 살짝 소리내어 웃었다.“고마워.”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일해왔기 때문에 쿵짝이 잘 맞았다.배준우는 영리한 사람이기에 그 어떤 것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지만, 고은영은 바보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그를 속여왔다.어쩌면 너무 멍청해서 배준우가 그녀가 그 사람일 거로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그리고 배준우는 나태웅이 무슨 생각으로 안지영을 천락그룹으로 데리고 갔는지 잘 알고 있었다.“너무 무섭게 굴
그렇다면…!아버지가 솔직하게 고백하면 너그럽게 봐줄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왜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지금 이 순간 안지영은 정말 후회스러웠다.그녀들은 지금 고은영의 일 때문에 아무나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도마 위의 물고기 되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망설이며 나태웅을 쳐다보며 말했다.“저기, 전에 했던 말 아직 유효한 거죠? 제가 천락그룹에 와서 200억을 채우면 하늘그룹 지켜주겠다고 했잖아요.”“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한 것 같은데?”그런 것 같기도 했다!당시 나태웅이 너무 다급하게 물어서 그녀가 견디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다 말해버리고 말았다.“왜 멍청하게 다 고백하러 간 거야?”“제가 아니라 저희 아버지가 한거라고요!”안지영은 말만 해도 울고 싶었다.그녀의 아버지는 하늘그룹을 크게 키우지는 못했지만,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었다.그녀는 이 일을 왜 아버지에게 말했는지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그럼 이제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거예요?”“그 사람 성격 너도 잘 알잖아. 이 일을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숨긴 데다 고은영을 찾기 위해 수많은 인력과 물력을 들였으니, 이 화를 풀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배준우가 얼마나 많은 대가와 일들을 겪었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녀와 고은영이 바로 그의 곁에 있었는데 배준우가 얼마나 많은 심력을 기울였는지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인가!그리고 이제서야 도대체 자기가 무슨 문제를 만들어 냈는지 깨달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죄, 죄송해요. 저희는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요. 그때는 너무 무서워서 그랬을 뿐이예요..”“무섭다고 회사의 그렇게 많은 자원을 낭비해도 되는 거야?”“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안지영은 숨이 막혀왔다.이제 비난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일이 이렇게 돼버렸기에 그녀는 그저 빨리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나태웅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이를
“대가가 필요한 방법도 있어.”나태웅은 대가라는 두 글자를 강조했고 그의 말에 안지영도 깜짝 놀랐다.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안진섭이 하늘그룹을 위해 한 노력들이 스쳐 지나갔고 순간 코끝이 찡했다!“무슨 대가요?”“그건 네가 하늘그룹을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먼저 봐야겠지?”나태웅의 목소리는 더욱 그윽해졌고 너무 깊어 그의 기분을 알아챌 수 없었지만, 깊은 곳의 밑바닥을 느낄 수 있었기에 언제라도 그 속에 빠질 것만 같았다.안지영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뭘 해야 하죠?”“뭐든지 할 수 있겠어?”“근데 그게 뭔지는 들어봐야겠어요!”“그렇다면 너에게 하늘그룹은 별로 소중하지 않은 것 같네!”나태웅은 살짝 소리내어 웃었고, 안지영은 그 웃음이 자기를 비웃는 것 같았다.왜 소중하지 않단 말인가?그녀는 안진섭이 무엇 때문에 그녀더러 밖에서 경험을 쌓으라고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앞으로 이 회사를 잘 인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하늘그룹은 그가 평생 심혈을 기울여 키운 회사이기에 반드시 관리를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했다.그녀는 안진섭의 외동딸이기에 안진섭은 당연히 그녀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그게 아니었다면 몇 년 동안 용돈도 스스로 벌어서 쓰라며 모질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그 이유는 다 그녀가 밖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기를 바라서였다.그가 이렇게 마음을 쓰는데 그녀가 어떻게 하늘그룹이 그녀 때문에 배준우에게 보복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그리고 이미 당한 진영그룹의 처참한 모습이 그녀의 눈에 선했다!결국 안지영은 눈을 뜨고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나태웅을 바라보며 말했다.“가르쳐 주세요!”그러자 나태웅이 말했다.“배준우와 중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결혼하면 하늘그룹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저를 팔라고요?”안지영은 깜짝 놀라서 나태웅을 바라봤다.자기가 굽신거리며 얻어낸 것이 이런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자기를 팔
안지영은 어떻게 천락그룹에서 나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그녀는 길을 걸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고 그녀는 그저 온몸이 차갑게 느껴졌다.머릿속에는 방금 나태웅이 했던 말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나태웅의 말대로 정말 그 길밖에 없는 것 같았다.어쨌든 이번에 건드린 사람이 배준우이기 때문이다!배준우를 건드려서 화나게 만든다면 어떻게 되는지는 진영그룹이 가장 좋은 예시일 것이다. 진영그룹은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파산까지 내몰렸다.비록 배준우가 3일이라고 했지만, 이미 조용히 준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그때 전화기 진동음이 그녀의 생각을 끊어버렸다.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안진섭에게서 온 전화였다.전화를 받는 순간 그녀는 눈가가 빨개지더니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했고 억지로 흐느낌을 참으며 말했다.“아버지.”“지금 어디야?”“회사요.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자마자 안지영은 집으로 향했고 1시간 가까이 운전한 후 집에 도착했다.시간은 이미 새벽 2시였지만 아직도 집 안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보니 안진섭의 초조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안으로 들어가자 안진섭이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게 보였다.안지영은 신발을 갈아신고 그에게 다가가 가볍게 불렀다.“아버지.”그녀의 부름에 안진섭은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늘 당찬 딸의 눈가가 빨간 것을 보고 멍해졌다.모든 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는 그녀에게 팔을 벌리며 말했다.“이리 와.”그의 말에 안지영의 눈물은 다시 한번 쏟아졌다.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이미 안진섭이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했었고 심지어는 벨트로 그녀를 때릴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까지 했었다.그런데 이렇게 화를 내지 않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안진섭의 품에 안기자, 안지영의 감정도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후과가 이렇게 엄중할 줄은 몰랐어요.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흑흑..”안지영은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그녀
안지영은 깜짝 놀라 안진섭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해외로 나가라고? 그녀더러 해외로 나가라고?!안지영은 순간 가슴이 아팠고 아버지가 이 상황에서도 그녀를 지켜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지금 배준우 쪽은 화가 단단히 났을 것이고 이 일의 장본인인 그녀가 해외로 나간다면 하늘그룹은 정말 끝장날지도 모른다.“안 돼요, 이 상황에 제가 어떻게 가요?”“안 가면 뭐 하려고? 배준우가 널 진승연 꼴로 만드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진승연은 전에 배준우와 약간의 친분이 있었지만, 결국은 그 모양이 되었다.만약 안지영이라면 분명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이것이 바로 안진섭이 돌아온 후 3시간 동안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었다.진승연이라는 말에 안지영은 참지 못하고 몸을 살짝 떨었다.진승연의 결말은 정말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그렇게 당할 만했다.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녀도 약간 당해도 할말이 없는 것이 있기는 했다.“아주머니가 네 짐 싸고 있어. 내일 아침 6시 비행기니까 준비 끝나면 바로 공항으로 가!”아침 6시? 그러면 집에도 있지 말라는 건가?안지영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싫어요, 저 해외 안 갈 거예요!”“말 들어, 착하지?”안진섭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달랬다.하지만 그가 달래주자, 안지영의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고 그 순간 마음이 너무나도 괴로워졌다.“제가 가면 배준우가 분명 더 화를 낼 거예요. 그럼 그때 아버지는 어떻게 하시려고요?”“이 늙은이를 그자가 뭘 어떻게 할 수나 있겠어?”그녀의 말에 안진섭은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솔직하게 말해서 일이 이렇게 변하게 될 걸 알았다면 진즉에 말하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젊은이들의 냉정하고 잔인함에 안진섭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이미 그를 건드렸으니, 언젠가는 감당할 수 없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그래서 오늘의 자백에 대해 그는 후회한다거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결과를 빨리 마주했을 뿐이다.“안 돼요. 하늘
지영은 결국 강성을 떠나지 않은 것이었다!진섭 역시 그녀에겐 별 수가 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준우 쪽에 가서 어떻게든 상황을 호전시켜 보는 방법을 생각하는 듯해 보였다. 동시에 지영도 가만히 손 놓고만 있지는 않아서, 내내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하지 않다가, 갑자기 그다음 날부터 선 자리에 나가기 시작했다!한 방에 3번의 선 자리라니, 이렇게 적극적이라면, 누구든 한눈에 보자마자 그녀의 목적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아무나 잡아서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급한 와중에 그녀는 무조건 안 씨 집안을 도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그리고 마침, 이 선 상대방 중에는 장 씨 가문의 넷째 장신명과 진 씨 가문 첫째 진윤도 있었다!오전 10시가 되자마자, 준우의 핸드폰으로 선명과 윤에게서 연달아 전화가 걸려왔다. 대체 안 씨 집안 딸내미가 뭔 바람이 불었길래 당일에 도장을 찍자고 난리인지 묻는 전화였다.준우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너한테 시집간다고?”“아니, 내가 아니라… 지금 그쪽은 그냥 자기랑 결혼할 자신이 있고, 안 씨네를 좀 도와줄 수 있으면 바로 시집을 간다는 뜻이야!”“엥?”준우는 눈썹을 모으며 생각했다. ‘안지영 얘는 아무리 급해도 앞뒤는 가릴 줄 알아야지, 장선명, 진윤 얘네랑 내 관계를 모른다는 거야?나 실장이 아무래도 뭘 좀 잘못 짚은 것 같은데.’그때, 선명이 빈정댔다. “나 걔한테 그냥 장가나 확 갈까?”"네가 그러면 아마 누군가 널 죽이려고 들걸?”“아니 이러면 너를 건드리는 거 아냐? 왜 또 갑자기 여기서 누군가가 나와?”고작 한 달여 못 봤을 뿐인데, 설마 또 무슨 대단한 일이 벌어졌을까 싶다가도, 준우의 의미심장한 말에 선명의 입꼬리에 걸린 웃음이 슬쩍 삐딱해졌다.요즘 변한 게 어디 배 준우 한 사람일까. 세상 전체가 엉망진창인데.한편, 은영은 휴게실에 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준우는 별다른 말이 없었고, 그 침묵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전화를 하는 준우의 목소리에서 얼핏 지
그리고 그런 준우의 날카로운 말투에 은영도 잔뜩 겁을 먹어 버렸다.설마, 아니겠지?“그러면 저 아무 말도 안 할게요…!”아무래도 그렇게 위협적으로 말하면, 더 말하고 싶다가도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더 말했다가 진짜로 안 가에 뭔 일이라도 생긴다면, 정말로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으니까.일이 이렇게까지 되니, 수습도 도무지 쉽지가 않았다.“그…그러시면, 저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은영이 불쌍하게 물었다.지영의 이야기가 안 된다면, 뭐 차라리 내 이야기라도 해 보자 싶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그가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하지는 않았기에 은영은 준우가 이 일에 대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대충 어젯밤에나 안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준우의 나긋나긋한 태도에 그녀가 겁을 먹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겁을 잔뜩 먹어서 그야말로 벌벌 떠는 은영을 가만히 바라보던 준우의 입가에 보기 좋은 호선이 그려졌다.그 미소야말로 가장 은영을 겁먹게 만드는 것이긴 했지만.“그건 아직 생각 안 해봤어.”“……”아직, 생각을 안 해봤다고?!그러니까 아직까지도 안 가든, 본인이든,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도 안 했다는 건가?“그, 그러면 차라리 절 처리해 버리세요! 전 어떻게든 할 테니까요!”안 씨 집안에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방금 전의 서슬 퍼런 경고를 생각하니 차마 ‘안 가’ 두 글자는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꽤나 당돌하고 용기 있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준우는 비웃듯 픽 웃었다.“걱정하지 마. 넌 어차피 나한테서 도망 못 가니까!”이 말은 정말이지 은영에게 어떤 선고와도 같았기에 그녀는 더 겁을 먹고 말았다.이 염라대왕이 뭐가 됐든 아직 시작조차 안 했다는 건 자명하고, 뭘 정말 하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리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잔뜩 질린 은영의 모습에 준우의 눈가에 장난기가 어렸다.“목도리는 다 떠
준우와의 전화가 끝나자마자 태웅은 재빨리 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마도 한창 선 자리가 진행 중이었던 것인지, 한참이 지나서야 신호음이 끝나고 그녀가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나 대표님!”“지영 씨, 지금 어디야?”“저 밖이요. 오늘 연차 썼어요.”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지영의 목소리는 다소 힘이 없었다.안 그래도 짜증이 가득 차 있었는데, 지영이 그런 말을 하니 태웅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왜? 연차 쓰고 선보러 다니게?” “네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태웅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이 계집애는 대체 뭔 생각이지? 네 맞아요? 뭐 얼마나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라고?“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는 게 아주 스스로 팔려가듯이 시집가려고 작정했구나?!”“저는 그냥 대표님이 하신 말씀을 들은 거잖아요! 저도 스스로 방법을 찾아보는 거라고요."대꾸하는 지영의 말투에도 억울함이 가득했다.배준우 성깔머리를 조금 죽일 만한 상대방을 찾으라는 게 조언 아니었던가? 열심히 자기 조언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한테 응원은 못 해줄망정!당연히 냅다 시집으로 방법을 강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모습을 보면 지영도 딸 된 도리로서 마음이 아파서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던 것이었다. 이곳에 남았으니 결국 책임도 스스로 져야지, 하며 어떻게든 안 씨 가문을 지켜보려는 그녀 딴의 노력이기도 했다.“그래서 방법은 생각한 거야? 걔네들이 너한테 장가 가겠대?”“아니요!”하지만 이 부분을 굳이 말로 꺼내자니 지영도 속된 말로 멘탈 붕괴가 오는 것이었다.스스로 생각하기에 제 외적인 부분이 어디 가서 뒤떨어지는 수준도 아니고, 선 봤던 이들도 전부 배 준우 그 주변의 인물들이니, 아무래도 준우 앞에서도 할 말은 다 할 수준의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었다.그런데 벌써 셋이나 만났는데도 아무도, 그 어느 누구도 결혼하자는 놈이 없으니 말이다. 특히 장선명 이 인간은, 강성에서 무서울 것 없는 것 뻔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