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설마 또 그를 화나게 한 건가?아닐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녀 때문에 화가 났다면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 아닌가?“너 코 골잖아.”고은영은 자신이 코를 곤다는 사실을 믿기 싫었다.하지만 매일 아침 화가 나 있는 배준우를 보니 어느 정도 믿게 되었다. “그래서 제가 다른 방에서 잔다고 했잖아요.”고은영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소리가 아주 작아 한쪽에 서있는 도우미들을 들을 수 없었지만, 배준우는 아주 똑똑히 들었다.그는 분노에 찬 눈으로 고은영을 쳐다봤다.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반찬을 입 속에 집어넣었다.배준우가 화가 난 와중에배씨 본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기 너머의 집사가 공손히 말했다.“도련님, 회장님이 집에 들르시라고 하십니다.”“또 왜요?”배준우가 분노에 찬 말투로 물었다.“회장님께서 천의에 관한 일이라고 하십니다!”천의 얘기가 나오자, 배준우의 눈빛이 달라졌다.그는 무의식적으로 고은영을 한번 쳐다봤는데, 순간 나태웅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고은영에겐 돌직구로 말하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다!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습해도 소용이 없었다.그런데 긴장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 또 말해주기 싫었다......!그녀를 놀리는 건 매일 없어서는 안 될 즐거움이 되었다.지금 고은영은 배준우의 이런 생각들을 전혀 모른다. 그녀는 오로지 천의만 그의 손에 들어가면 자신은 완전히 자유라는 생각밖에 없었다.“도련님, 도련님?”배준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수화기 너머의 집사가 그를 불렀다.“알았어요.”그는 대답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집사에게 언제 간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배준우가 전화를 끊자, 고은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회장님이 천의를 넘겨주신대요?”비록 그건 량천옥의 생명선이라고 하지만 결국 결정권은 배항준의 손에 있다.만약 배항준이 정말 천의를 배준우에게 넘겨주려고 한다면, 량천옥도
아침 식사 후.배준우는 배씨 본가에 갔다. 천의의 일이니 당연히 가야 했다. 이번에도 고은영을 데리고 갔다. 그는 지금 어디를 가든 고은영을 데리고 다닌다.그는 며칠 전의 교통사고 때문에 안심할 수 없었다. 설령 그녀를 란완에 둔대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배씨 본가.배준우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량천옥은 분노에 비명을 질렀다.“악...!”꽈당!그러고는 탁상 위의 물건을 죄다 땅에 던져버렸다.이 순간 그녀는 완전히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량천옥은 배항준을 매서운 눈으로 쳐다봤다.“온 밤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들어와서 한다는 말이 천의를 준우한테 넘겨주라고요? 우리 사이가 이젠 이 지경에 이른 거예요?”말할수록 량천옥의 감정은 더욱 격해졌다.어젯밤에 그녀와 집사가 번갈아 가며 전화했는데 그는 한 통도 받지 않았다.지금 량천옥은 배항준이 밖에 여자가 있다는 것은 확신했다. “천의를 준우한테 준다고요? 내가 보기엔 당신이.....!”“천옥아!”량천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량일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량일은 차가운 눈으로 량천옥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량천옥은 결국 모든 말을 참고, 화가 나서 배항준을 쳐다보았다.어제까지만 해도 배윤이 돌아왔으니, 배항준이 배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중요치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중요해질 수 없다. “당신은 우리 윤이를 위해 생각해 본 적 있어요?”“천의를 윤이한테 줘서 망하게 하려고 그래?”배항준이 차가운 눈으로 량천옥을 쳐다보았다.“......”“......”량천옥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배항준을 쳐다보았다.“당, 당신이 어떻게?”“내가 어떻게 아냐고? 응?”배항준이 날카롭게 말했다.그는 한숨을 쉬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걔 설마 어젯밤 안 들어왔어? 뭐 하러 간 거지?”량천옥의 모든 광기는 지금 이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배항준이 동영 그룹을 배준우에게
배준우가 고은영을 데리고 들어왔을 때,량천옥은 울고 있었다.배항준의 얼굴색도 별로였다.그런데 배준우가 고은영을 데리고 들어오는 걸 보니 그의 얼굴은 더더욱 굳어졌다.“이젠 어딜 가나 이 계집애를 데리고 다녀야겠어?”“내가 언제까지 데리고 다닐지는 당신이 결정하기에 달린 거 아니에요?”배준우가 차갑게 말했다.아침 내내 소란을 피운 량천옥은 지금 더욱 자신의 분노를 통제할 수 없었다.“배준우, 너 사람 너무 업신여기지 마!”“.....”“날 인정하지 않는대도 윤이는 네 동생이야. 어떻게 네 동생한테 이렇게 모질게 굴 수 있어?”량천옥이 분노하며 말했다.그녀는 배준우가 본가에 돌아오는 것이 이렇게 끔찍이 싫어질 줄은 몰랐다.하긴, 이 몇 년 동안 배준우도 본가에 별로 오지 않았다.요즘 그가 본가에 올 때마다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량천옥이다.량천옥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고 억울했다.량천옥의 말에 배준우는 차갑게 웃으며 별로 대꾸하지 않았다.이런 무시하는 태도가 량천옥을 더 미치게 했다.“일단 올라가 있어!”배항준이 량천옥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아침부터 그녀의 소란에 머리가 아파와 더 이상 그녀가 떠드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다.위층으로 올라가라는 배항준의 말에 량천옥은 더욱 화가 났다.“싫어요!’“올라가!” 배항준이 매섭게 소리쳤다.량천옥은 그의 싸늘함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량일은 량천옥을 힐끗 쳐다보고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먼저 올라가!”“엄마!”량일마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량천옥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배씨 집안에 있었는데, 지금 모든 걸 뺏길 상황에 놓였는데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는가?“난 회장님 믿어. 넌 회장님 아내고, 윤이도 회장님 아들이잖니!”량일이 말했다.량일이 배항준 앞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 말은 분명히 배항준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일을 너무 심하게 처리하지 말라고 말이다.지금 아이들의 이런 모순들이 모두 어른
고은영은 자신에 대한 배항준의 불만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것도 알았지만 지금 어쩔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말한 건 다 사실이다. 다만 완곡한 방식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말했을 뿐이였다. 그러자 배준우가 차갑게 말했다.“그럼 말해봐요. 얘는 어떤 사람이에요?”“지금 이 계집애가 가진 것 중 네가 주지 않은 게 있어?”배항준이 비꼬듯 말했다.배준우가 별 볼 입 없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량천옥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당신이 준거잖아요.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요?”“너, 날 화나 죽게 하려고 이러는 거냐?”배항준은 화가 너무 나 완전히 폭발할 것만 같았다.그는 진씨 가문의 일만 잘 처리됐어도 이런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관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배준우가 고은영과의 사이를 해명만 하면 끝날 일인데.배항준은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정말 천의를 원하는 거냐? 너도 알다시피, 그건 네 엄마가......”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배항준도 그걸 느끼고 돌아서며 말했다.“그건 네 아주머니가 네 동생한테 주려고 하는 거야. 너도 아주머니가 천의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잖아.”배항준은 배준우가 천의를 그만 포기하길 바랬다.하지만 배준우가 수년간 계획해 온 일을 어떻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지금 많은 회사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천의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배준우는 원한은 반드시 갚는 사람이기에 배항준은 이런 그가 매우 골치 아프게 느껴졌다.“더 이상 할 얘기는 없는 것 같네요.”배항준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말하고 고은영을 끌고 돌아섰다.그의 태도에 배항준은 더욱 화가 나서 소리쳤다.“일주일.”결국 태협했다.도대체 어떻게 이런 아들을 낳았는지!“그래요.”배준우가 고은영의 손을 더욱 꼭 잡으며 말했다.그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배항준은 더욱 화가 났다.“이번엔 정말이야. 천의만 넘겨주면 더 이상 딴소리
........회사에 도착한 후, 배준우는 바로 회의하러 갔다.고은영이 채 못 뜬 목도리를 뜨려고 다시 집어 들었을 때, 낯선 번호로 전화 걸려 왔다. 배준우의 여동생, 배지영의 전화였다!배지영은 아래층 커피숍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배준우의 친동생이니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그럼 5분만 기다려요.”"네”말하고 전화를 끊었다.고은영은 배지영이 왜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배준우와 합의 결혼이었기 때문에 사적으로 그녀와 접촉할 일도 없었다.카페에 도착했을 때, 창문 앞에 자리한 배지영이 한 눈에 보였는데, 그녀는 아주 잘 어울리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그녀의 우아한 자태와 잘빠진 몸매는 아주 아름다웠다.고은영은 그녀에게 다가가 정중히 말했다.“지영 씨.”인사를 건네는 고은영의 모습에 배지영은 살짝 멈칫하다 바로 온화한 미소로 그녀를 맞아 주었다.“여기 앉으세요.”“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배준우의 맞은편에 앉았고, 배지영은 미리 주문한 커피를 그녀의 앞에 놓아주며 말했다.“어떤 걸 좋아하실지 몰라서 아무거나 주문했어요.”커피를 마시기 위해 만나는 게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어요?”고은영은 두 사람이 사적으로 만날 만큼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배지영이 어떻게 대화를 본론으로 이끌지 생각 중이던 차에 고은영이 직접적으로 물은 것이다. 그녀도 말을 돌릴 필요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배지영은 숨을 쉬며 말했다.“엄마가 다음 달에 잠깐 돌아올거예요.”“.....”고은영은 순간 멍해졌다. 유청?그녀는 그동안 배준우 곁에 있으면서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고 있었다.알고 보니 몇 년 동안 계속 외국에 있었다!그녀는 배준우 곁에서 3년 동안 일했는데 그의 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배준우도 어머니를 만나러 간 적이 없었다!그런데 갑자기 돌아온다고 하자 고은영은
배지영은 핸드백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고은영 앞에 내밀었는데 백지수표였다.“이건?”고은영이 물었다.“오빠가 천의를 손에 넣으면 이 수표를 가지고 떠나요. 원하는 만큼 액수 적어요!”“......”역시 달랐다. 전에 량일과 량천옥보다 스케일이 훨씬 컸다.역시 본처의 자식은 스케일도 남다르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은 다소 난처해했다. 그녀와 배준우 사이의 계약도, 그가 천의를 손에 넣으면 바로 끝나기 때문이다.그래서 지금, 이 수표를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왜요?”고은영이 움직이지 않자, 배지영이 더욱 엄숙한 말투로 물었다.“아니, 지영 씨 이건 좀 아니죠?”“그럼, 정말 평생 배씨 가문 사모님으로 살고 싶은 거예요? 그건 불가능하다는 거 잘 알고 있잖아요!”배지영이 더욱 무거운 목소리 말했다. 마치 고은영에게 헛된 꿈을 꾸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순간 고은영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그녀는 난처한 표정으로 잔을 들었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커피인 걸 알고는 바로 뱉어냈다.그리고 그녀의 이 무의식적인 행동에 배지영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배지영의 표정을 보고 고은영은 서둘러 수습하며 말했다.“미, 미안해요. 전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정말 짜증 나는 상황이였기에 배지영은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았다.“아무튼 어떤 상황인지 전 이미 다 말했어요.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떠날 수 있기를 바라요.”말하고 배지영은 가방을 들고 자리를 떴다.고은영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저기, 지영 씨...”“난 량천옥이 아니에요!”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배지영이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순간 그녀를 잡고 있던 고은영의 손이 굳어졌다.고은영에게 더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팔을 뿌리치고 떠났다.고은영은 원래 수표를 배지영에게 돌려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날카로운 모습에 고민하는 표정으로 수표를 집어 들었다.이 배씨 집안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이 모양인지? 다들 성질이 너무 더럽다.이런 걸 보니 고은
“나 실장님이 왜 동영 그룹을 떠나? 월급이 낮아서?”“아니, 너 잊었어? 나태웅은 천락 그룹의 CEO니까 천락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 문제야.”“......”부자들의 세계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하긴, 그녀가 이해할 필요도 없다.하지만 안지영이 말이 맞다. 나태웅이 천의의 일을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건 그녀들에겐 정말 갑작스러운 일이였다.고은영은 생각하다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괜찮아, 안심해. 천의 일은 일주일 안에 끝날 거야.”“일주일?”“응. 나 방금 배씨 본가에 갔다 왔어.”“그래, 그럼 다행이고. 나 정말 깜짝 놀랐어!”일주일안에 끝난다는 고은영의 말에 안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배준우다. 장항 프로젝트를 손에 넣은 이상, 당연히 천의도 량천옥의 손에 오래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뺏어오려고 할 것이다.“량천옥 쌤통이야 . 이제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거야!"안지영이 말했다.그녀는 정말 량천옥이 끔찍하게 싫었다.량천옥은 전에 안씨 집안과도 협력하고 싶어, 그녀의 아버지에게 많은 공을 들였다.다만 아쉽게도 그녀의 수법이 안지영의 아버지에게 먹허지 않았다.그래서 량천옥도 어떻게 해볼 기회가 없었다.고은영은 량천옥이 어떻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온통 자신과 뱃속의 아이에게만 있었다.“아무튼 일주일이야!”고은영이 말했다.도망가면 그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 두 사람도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여러 번 의논했었다.도망을 가는 것을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좋아!”안지영이 말했다.정말 좋은 소식이다. 고은영의 말을 듣고 나니 안지영도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점심에 같이 밥 먹을래?”"그래.”안지영이 말했다!그녀는 자신이 강성에 있을 날도 많지 않으니, 있는 동안이라도 안지영을 자주 보고 싶었다.나중에 정말 떠나게 된다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랐다.........두 사람은 점심 약속을 잡고는 전화를 끊었다.고은영은 수표를 들고 다시 회
그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배준우의 낯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고 온몸에서는 무서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말을 마친 고은영은 애써 억지웃음을 지었다.“아가씨는 우리의 계약에 대해서 모르니 천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떠나고 싶어요!”“……”“아가씨에게 이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냥 가버려서 아예 붙잡을 수가 없었어요!”이번에 고은영도 배지영의 성격을 똑똑히 알았다.전에는 우아하고 지적이며 부드러운 모습이 전형적인 명문가의 아가씨 기질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만나고 나서야 그녀는 사귀기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배준우는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상태인데 고은영이 떠난다고 하니 바로 폭발해 버렸다.그는 차갑게 고은영을 흘겨보며 말했다.“떠나고 싶다고?”그의 말에 말실수를 한 거는 아닐지 하는 생각에 고은영의 입꼬리는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그게 아니라, 저희가..”“고은영, 똑똑히 들어. 이번 생은 내 곁에서 떠날 생각하지 마!”배준우는 차갑게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는 위압감이 느껴졌다.그의 말에 고은영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그녀는 그의 말이 이해되지가 않았다. 게다가 이것은 그녀가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협박당하고 있다. 이번 계약으로 그녀의 생명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데 그가 왜 자기에게 화를 내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배준우는 화가 단단히 났고 고은영이 멍하니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더욱 차가워진 말투로 말했다.“들었어?”“아니, 이것은…”“못 알아들었어?”배준우는 벌떡 일어나 위험스럽게 고은영에게 다가갔고 지금 이 순간 남자에게 위험을 느낀 고은영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그러나 그녀의 뒷걸음에 더욱 화가 난 배준우는 그녀의 매끄러운 허리를 덥석 잡아 자기 품으로 세게 끌어당겼다.그의 행동에 깜짝 놀란 고은영은 순간 숨을 쉴 수 없었고 옴짝달짝 못 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배준우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휴게실로 걸어갔다
‘이제 와서 쓸모없는 아들 대신 아내를 다시 데려가려고 그러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장선명은 화가 나 머리가 지끈거렸다.상대방은 이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할아버지, 지영이가 나태범한테 끌려갔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못난 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전화기 너머 장성현의 말투가 변하며 바로 장선명을 질책했다.“나씨 가문이 먼저 부끄러운 짓을 한 거예요. 저는 바로 나씨 가문으로 갈 테니 할아버지로 빨리 오세요.”장선명을 더 이상 장성현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다.“내가 안 가면?”장성현은 어린아이들 일로 인해 자신까지 나서는 건 체면이 상한다고 여겼다.‘나태범이 정말 손자며느리를 데려갔단 말인가? 정말 부끄러운 것도 정도껏 해야지.’“그럼 어른한테 손댈 수밖에 없겠죠.”“너... 너 잠깐 기다려라.”장성현은 그 말을 듣고 급히 답했다.장씨 가문이 비록 어두운 쪽 일을 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선은 있었다.특히 가풍이 엄격한 편이었는데 장성현은 아이들에게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최소한의 선은 지킬 수 있게 했다.그런데 장선명이 어른을 때리겠다고 하니 장성현도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목적을 달성한 장선명은 얼른 전화를 끊었다.“더 빨리 가.”“네.”구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 속도를 더욱 높였다.구이준은 도심에서 차선을 변경해 가며 시속 100킬로까지 높였다.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가면서 그는 많은 운전자들에게 욕설을 듣기도 했다.그 사이 안지영은 이미 나태범의 사람들과 나씨 가문 본가에 도착해 있었다.대나무 숲과 조용히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 법도 했지만 지금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안지영은 나태범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나태범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냉담하게 말했다.“너랑 장선명은 어울리지 않으니 결혼식은 취소해.”안지영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비웃는 듯한 눈길로 나태범을 바라보았다.직접 듣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을 것이다.
안지영이 캘리포니아반도를 막 벗어나자마자 그녀의 차는 갑작스럽게 멈춰야 했다.앞좌석 운전기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얼굴이 굳어졌다.“아가씨.”“무슨 일이에요?”안지영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물었다.갑작스러운 급브레이크로 인해 그녀는 앞좌석 등받이에 부딪힐 뻔했다.당연히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 모두 좋을 리 없었다.운전기사가 답하기도 전에 앞차에서 사람들이 내렸다.얼굴을 확인한 운전기사는 아연실색하며 입을 열었다.“나씨 가문 사람들입니다.”“뭐라고요?”‘나씨 가문 사람들? 나태웅은 장선명과 같이 있는 거 아니었나?’안지영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나씨 가문 사람들이 안지영의 차에 다가왔다.그 사람들이 안지영이 있는 쪽 문을 열기 전에 운전기사는 재빨리 문을 잠갔다.그는 후진하여 벗어나려 했지만 그제야 차가 완전히 포위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아가씨, 얼른 선명 도련님한테 연락하세요. 이 사람들 전부 나태범 산하 사람들이에요.”나태범의 사람이라는 말에 안지영은 아연실색했다.나태범이 직접 보낸 사람이라면 이는 일부러 안지영을 겨냥한 행동임이 분명했다.‘결국 나태웅과의 일이 어른들에게까지 번지고 말았구나.’“아가씨, 저희 회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직접 따라나서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까요?”밖에 있던 사람은 차 문이 열리지 않아도 당황하지 않고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하지만 그 평온함 속에서도 확고하고 단호한 태도가 묻어났다.안지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젠장! 왜 다들 나를 협박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절대 만만한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운전기사는 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러나 전화가 연결되기도 전에 안지영은 화가 난 얼굴로 차 문을 열고 당당히 차에서 내렸다.“아... 아가씨!”운전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큰일 났네. 성격이 또 올라왔네.’운전기사는 장선명의 사람이었다.안지영이 장선명과 함께한 이후로 그녀의
‘여자를 갖고 논다고? 도련님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밤에 발생했던 일들도 도련님 모르게 벌어졌던 일인데... 일을 조사해 범인을 밝혀냈을 때 그 범인은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지.’“구이준.”“네.”구이준이 앞으로 나섰다.“웨딩드레스는 킹덤 타운으로 보냈어?”“네. 다 수선해서 보냈습니다.”그 말을 듣고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태웅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지영이가 직접 입어보고 고른 웨딩드레스야.”이 말은 나태웅의 위협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나태웅은 온몸이 얼어붙은 듯 차갑게 굳었고 장선명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욱 음울해졌다.“그럼 거절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지?”“너도 예상하던 답 아니야?”장선명이 싸늘하게 웃으며 답했다.언제 장성명이 위협을 받아들였던가.나태웅은 이런 방식으로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이전에 안지영을 찾아가도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위해 그녀와 헤어질 것으로 믿는다면 나태웅은 장씨 가문을 너무 만만히 본 것이다.장씨 가문 사람들은 이런 위협을 받아들일 사람들이 아니었다.“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어. 네가 지영이를 빼앗아 간다면 나도 인정하지.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우릴 헤어지게 하려는 거라면 나뿐만 아니라 강성 전체가 너희 나씨 가문을 경멸할 거야.”말을 마친 장선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더 이상 나태웅과 할 이야기가 없었다.태연하고 무서울 것 없는 장선명의 모습은 나태웅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장선명은 두 발짝 걸어 나가다 무언가 떠오른 듯 멈춰 섰다.“참, 하늘그룹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늘그룹이 없어져도 나는 안지영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도록 할 방법은 많아. 하지만 너는? 지영이는 널 지금보다 더 원망할 거야.”‘안지영이 자신을 미워하더라고 나도 같이 미워하게 만들겠다고? 도대체 무슨 논리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자기 판단이 흐린 것처럼 지영이도 반쯤 정신을 놓았다고 생각하는 건가?’장선명은 자
3분 후, 나태웅과 장선명이 마주 앉았다. 겉보기엔 평온해 보였지만 현장의 공기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두 사람은 각자 담배 두 개비씩 피울 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진이훈과 구이준은 몸이 굳으며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장선명이 세 번째 담배를 꺼내려는 순간 나태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래서 조건이 뭔데?”나태웅과 시간을 소모하려던 장선명은 그 말을 듣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조건?”또렷한 말투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나태웅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지금까지 병원에서 아픈 척한 것도 모두 안지영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바보같이 순진한 안지영만이 진지하게 나태웅이 정말 미친 건지 아닌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그 여자가 널 미워하게 만들지 마.”나태웅은 이를 악물고 하나하나 힘줘 말했다.장선명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왜 나를 미워해야 하지?”장선명이 흥미롭게 물었다.안진섭과 얼마간 관계가 있을 뿐, 장선명은 다른 방면에서 안지영에게 잘못한 건 없었다.“하늘그룹이 너 때문에 없어진다면 널 미워할 거야. 날 미워하듯 널 미워하게 되는게 네가 진정 원하는 거야?”나태웅이 날카롭게 물었다.하지만 애매한 부분이 있어 장선명은 나태웅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하늘 그룹이 나 때문에 없어진다고? 나태웅 말고 그런 짓을 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장선명은 담배를 담뱃갑에 도로 넣었다.“그렇다면 지영이는 널 미워하겠지?”“난 상관없어. 어차피 이미 미워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영이와 계속 함께하려 한다면...”나태웅은 잠시 말을 멈췄다.고개를 들어 장선명을 바라본 순간 그의 시선에는 어느 때보다도 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나태웅은 싸늘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지영이와 계속 함께하려 한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하늘그룹을 부숴버릴 거야. 그렇게 돼도 지영이가 너랑 무사히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진이훈과 구이준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나태웅이 말을 마친 순간 현장
“내가 대신 가서 혼내줄게. 너는 여자니까 이미지 신경 써야지. 착하지?”“싫어요! 이미지 따위는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바로 핸드폰의 카메라를 켜서 그녀 앞에 내밀었다.안지영은 핸드폰 속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와 마치 미친 여자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고는 순간 얼어붙었다.그녀가 조용해지자 현장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그 남자 때문에 이런 모습 하려고?”안지영은 말문이 막혔다.‘젠장, 언제 이런 모습이 된 거지?’특히나 더 참을 수 없는 건, 나태웅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사실이었다.‘그놈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화내는 거지?’“집에 가자. 착하지?”장선명은 부드럽게 안지영을 달랬다.옆에 있던 구이준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장선명이 어떤 사람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했다.그가 소유한 유흥 장소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미녀들이 넘쳐났다.여린 타입, 매혹적인 타입, 요염한 타입. 남자들이 환장하는 스타일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또한 유흥가에 들어오는 여자 중 장선명을 유혹하여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하는 여자들도 많았다.당시 구이준과 안열은 장선명 주위를 얼씬거리는 여자들을 수없이 많이 처리했지만 장선명이 여자들에게 시선을 두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구이준과 안열은 당시 장선명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건지 의심하기도 했었다.예쁜 여자들이 들끓는 곳에서 어떠한 유혹에도 움직이지 않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가 좋아하는 타입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구이준은 안지영을 유심히 보며 생각했다.‘다른 여자들이랑 비교해도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도련님께서 왜 이 여자를 좋아하시는 거지? 화끈한 성격? 아니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호쾌한 모습?’머리를 정리하던 안지영은 헝클어진 머리로 인해 손가락이 끼여버렸고 그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그로 인해 나태웅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
고은영은 분노에 휩싸인 채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게를 나왔다.배준우가 간 줄 알았던 그녀는 가게에서 나와 배준우의 차가 원래 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고는 화가 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통화를 하고 있던 배준우는 그녀를 보자마자 통화를 마무리했다.“그래. 그렇게 처리하고 끊어.”그는 곧바로 고은영의 부풀어 오른 볼을 살짝 꼬집으며 물었다.“화났어?”고은영이 말하지 않아도 배준우는 알 수 있었다.진성택이 분명히 또 진유경과 관련된 이야기로 그녀를 화나게 한 것이다.“계속 곧 죽을 거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어요.”“도덕적 협박이구나?”배준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진성택이 진유경을 편애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양녀를 선택하고 친딸을 외면한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 세심하지 않은 배준우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고은영에 대한 연민이 짙어졌다.고은영은 더 이상 진성택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매번 만나면 진유경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다.배준우가 한숨을 내쉬며 위로했다.“화내지 마. 어차피 너한테 중요한 사람도 아니잖아.”“그래도 엄마가 너무 불쌍해요.”그녀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슴 한구석이 쓰려왔다.‘네 명이 자식이나 낳았으면서 엄마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엄마가 나한테 남긴 마지막 사랑마저도 첫사랑의 딸에게 나누려고 하다니...’“저녁에 네 큰오빠네에 가서 밥 먹을까?”“오빠한테 전화 왔었어요?”말 돌리는 데 성공한 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응. 아까 너 봤다면서 저녁에 밥 먹자고 하더라고.”“좋아요!”고은영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정훈과 진윤과 가까워진 후, 고은영은 두 오빠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진성택은 정말 무정했다.아니, 애정은 있었지만 그 대상이 아내와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언제 태현 오빠한테 물어볼 거예요?”“조금 있다 시간 내서 만나러 가려고.”“좋아요!”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고은지
“어머니가 나한테 남긴 건 그대로 넘겨주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싸늘한 고은영의 시선에 진성택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진성택이 무언가를 덧붙이기 전에 고은영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않으면 뭐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예요. 진유경에게 손대는 건 쉬운 일이죠.”“유경이한테 손대지 마. 은영이, 너...”“됐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진유경을 그렇게까지 감싸는 진성택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실망감을 넘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래?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일까지 한단 말이야! 아내랑 아이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거지?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 엄마가 남긴 소중한 유품을 진유경 같은 년에게 넘기겠다고? 하...’진유경이 단순히 진씨 가문의 양녀였다면 고은영은 아마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실을 아는 고은영은 지금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설령 눈앞의 남자가 그녀의 혈육이고 아버지라 할지라도 고은영은 그를 혐오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진성택은 그녀의 분노에 애처롭게 그녀를 불렀다.“은영아...”고은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진성택이 말을 이었다.“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너한테 와서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 거야.”“같잖은 호소는 그만 하세요. 저희 사이에 애정이라 칭할 만한 감정도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내였던 사람에게 너무하네요. 엄마가 불쌍해요.”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특별한 애정이라 할 감정은 없었지만 진성택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고은영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진성택은 어떠한가.고은영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
고은영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요.” 진성택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지금 와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아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째 오빠가 병원에 왔었어.”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을 모든 주식들 있잖아. 할머니와 진호영, 그리고 유경이의 지분까지 너에게 줬다던데, 맞지?” 고은영은 차갑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맞아요.” 드디어 그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욱 차가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차가운 시선에 조금 떨린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주식들은 사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니까 너에게 돌아가야 맞아.” “그래서 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부른 거죠?” 고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가 주고자 한다면 왜 이제서야 이리 말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진성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그 주식은 네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줄 수 없다고요? 왜요?” 그의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또다시 진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 같았다. 진유경, 정말 독특한 존재다. 역시나 양딸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진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양부모는 하나같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너희 둘째 오빠가 그 주식들을 되찾고 나서 진씨 가문의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렸어. 지금 그들은 전부 저축해두었던 돈을 쓰고 있어.” 모든 지원을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