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량일이 너를 만나 뭐라고 했어?”배준우는 끝내 묻고 말았다.그 자리에서 따져 묻고 싶었지만, 배윤이 나타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중단되었다.그가 량일에 대해 묻자, 그녀는 기분이 잡쳤다.“알 수 없는 얘기들을 한가득 늘어놓던데요?”“응?”어떤 것들을 말하는 거지?몇년동안 량일 그 여자는 딸인 량천옥을 앞세워 강성을 주름잡고 있었다.처음에 고은영을 적잖이도 괴롭혔었다.“당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며 당신을 떠나라고 하더군요. 나를 위한 거라나? 뭐라나? 그녀가 나에게 그런 말 할 자격이나 되는 건가요.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고은영은 량일이 진짜 고단수인 것 같았다.전에 그녀에게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괴롭히더니 지금은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통하지 않자, 태도를 바꾼 것일까?다행히도 고은영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겪어 봐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위하는 거라고?”량일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니 배준우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고은영이 말했듯이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나를 위해서 말해주는 거라 했어요. 너무 이상하죠?”“응, 이상하네.”“아마 방법을 바꾼 것 같아요.”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둘, 그리고 열심히 면을 흡입하고 있는 고은영은 어느새 찌푸려진 그의 눈살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그가 보기에는 량일이 그저 방법만 바꾼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여자는 차갑고 냉정했다. 그녀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다.예를 들어 전에 배항준의 연인들을 처리하던 그 수법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그런 그가 갑자기 정반대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배준우는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뭘 생각해요?”배준우가 말이 없자 고은영이 물었다.인상을 쓴 배준우를 그녀가 다독이기 시작했다.“걱정 말아요. 어떤 수를 쓰든 난 당신이 천의를 회수한 후에 이혼할 거예요.”그녀의 입에서 ‘이혼’이
량천옥은 집사에게 분노하며 소리쳤다.“다시 전화해!”오늘 량천옥은 배항준의 행방을 철저히 따질 작정이었다.그녀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량일도 깜짝 놀랐다.량일이 집사에게 눈짓하자, 집사는 즉시 도우미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주방에는 량일과 량천옥 둘만 남았고, 량일은 량천옥을 쳐다보며 말했다.“왜 애꿎은 사람들한테 소리 질러?”집안의 도우미들에게 잘해주면 분명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다.게다가 배항준의 행방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집사의 전화를 받는대도 이런 상황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량천옥은 배항준의 마음이 이미 떠났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난 수년간 이 집안을 위해서 충분히 노력했다고!”“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야?”량일이 호통쳤다.그녀의 말에 량천옥도 뜨끔했다.그래, 이게 무슨 어리석은 말이야?애초에 배씨 집안으로 시집올때, 량일은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줬다.바로 원망이 많은 여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배항준은 수년 동안 그녀가 자신이 그의 아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에게 잘해 주었다.그러니 지금 그를 통제하려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였다.그녀는 지금 이런 그의 변화를 납득할 수 없었다.“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량천옥은 억울한 표정으로 량일을 쳐다보았다.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분명히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지?“엄마가 말했던 모든 게 정말 그렇게나 중요해요?” 량천옥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량일을 쳐다보며 말했다.량천옥은 자신이 요즘 배준우와 재산을 놓고 다툰 것이 배항준의 불만을 산 거라고 생각했다.집안에 불만이 있으니, 밖으로 나돈다고 생각했다.량일은 량천옥의 반응을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너...!”“이런 것들이 정말 그렇게 중요해요? 내가 그것들을 위해서 뭘 잃었는지 알아요?”그 아이, 그 아이를 매정하게 버렸다.그 귀여운 아이를 말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이쁜 아
배항준의 말이 맞았다. 동영 그룹 전체가 배항준의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그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는건 당연한 일이였다. 누구도 그를 대신해서 결정할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현실이다!량천옥은 자신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들었을 때 숨이 막힐 듯한 느낌이 들었다.“육하한테 전화해요.”순간 량일은 깜짞 놀라 량천옥을 쳐다보았다.“뭐 하려고?”“고은영을 이대로 둬서는 안 돼요. 저번에는 운이 좋았어요. 준우가 그 계집애한테 진심인 게 틀림없어요!”헤어진다고? 천의를 손에 넣으면 헤어진다고? 아마 그건 다 핑계일 것이다. 그는 고은영과 헤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안 돼!”그녀는 굳은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량일의 반응에 량천옥은 그녀가 왜 고은영을 감싸고 도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물론, 그녀는 지금 배항준의 일로도 머리가 아파, 그렇게 많은 걸 관여할 수도 없었다.“이 일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마요. 네?”량천옥이 말했다.그녀가 오후에 이미 말했듯이, 그녀는 이미 마흔다섯이고, 량일의 말을 들을 만큼 충분히 들었다.그래서 이제부터는 무엇을, 어떻게 하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량일은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더욱 강압적인 목소리로 말다.“이젠 내 말 안 들어도 상관없어, 그지만 이 일은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해!”량천옥은 량일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런 상황에 저녁을 먹을 기분이 완전히 사라졌다.그녀는 일어나서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그녀의 이런 모습에 량일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내 말 들었어?”“들었어요!” 량천옥이 차갑게 대답했다. 량일의 말대로 하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정말 량일의 말대로 할까?그녀는 지금 고은영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고 있었다. ........배준우의 정력은 도대체 얼마나 좋은 걸까?인간은 정말 겉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배준우의 몸에서 똑똑히 체득한 셈이다.이전에 그가 다른 여자들을 냉정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이 남자에게는 첫사랑도 없고, 절대 그 방면
고은영의 입꼬리가 떨려왔고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손을 비비며 말했다.“저기, 저희 이러면 안 되지 않나요?”“왜 안돼?”“혹시 잊으셨어요?”순간 고은영은 울컥했다.전에 분명히 합의했는데, 배준우와 나태웅은 그 일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니,합의서를 쓰지 않은 합의이니 말로 파기해버리면 그만이다.게다가 딱히 정해진 조항도 없었기에 지금 배준우가 자기 멋대로 그녀를 안으려고 하니 그녀는 감히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도 몰랐다.그녀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배준우는 더욱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전에는 왜 이런 보물이 곁에 있다는 걸 알지 못했을까?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그는 조심히 끌어당겼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은영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배를 끌어안았다.그녀의 이런 무의식적인 행동에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아랫배를 움켜쥔 그녀의 손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비꼬듯이 말했다.“뭐가 그렇게 무서워?”고은영도 그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그때 배준우의 시선이 자신의 아랫배에 있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배를 끌어안고 있는 자기 손이 보였다. 그녀는 순간 호흡이 흐트러졌다!정말 어쩔 방법이 없엇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그녀는 재빨리 손을 내렸다.그려나 배준우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배에 머물러 있었다.“응. 근데 왜 네 배가 점점 커지는 느낌이지?”“.......”지금 고은영은 배준우가 일부러 이런 말을 한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강성 시내의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천하의 배씨 가문 도련님의 사적인 취미가 자신의 귀여운 아내를 놀리는 것이라는 것을.그렇게 차가운 사람이, 이 어리벙벙한 비서에 의해 이렇게 변했다니.배가 점점 커진다는 배준우의 말에 고은영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잘못 보셨어요. 아니면 제가 저녁을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너 오늘 저녁에 별로 안 먹었는데.”배준우가 말했다.고은영은 할 말이 없었다.지금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용기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든 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설마 또 그를 화나게 한 건가?아닐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녀 때문에 화가 났다면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 아닌가?“너 코 골잖아.”고은영은 자신이 코를 곤다는 사실을 믿기 싫었다.하지만 매일 아침 화가 나 있는 배준우를 보니 어느 정도 믿게 되었다. “그래서 제가 다른 방에서 잔다고 했잖아요.”고은영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소리가 아주 작아 한쪽에 서있는 도우미들을 들을 수 없었지만, 배준우는 아주 똑똑히 들었다.그는 분노에 찬 눈으로 고은영을 쳐다봤다.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반찬을 입 속에 집어넣었다.배준우가 화가 난 와중에배씨 본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기 너머의 집사가 공손히 말했다.“도련님, 회장님이 집에 들르시라고 하십니다.”“또 왜요?”배준우가 분노에 찬 말투로 물었다.“회장님께서 천의에 관한 일이라고 하십니다!”천의 얘기가 나오자, 배준우의 눈빛이 달라졌다.그는 무의식적으로 고은영을 한번 쳐다봤는데, 순간 나태웅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고은영에겐 돌직구로 말하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다!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습해도 소용이 없었다.그런데 긴장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 또 말해주기 싫었다......!그녀를 놀리는 건 매일 없어서는 안 될 즐거움이 되었다.지금 고은영은 배준우의 이런 생각들을 전혀 모른다. 그녀는 오로지 천의만 그의 손에 들어가면 자신은 완전히 자유라는 생각밖에 없었다.“도련님, 도련님?”배준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수화기 너머의 집사가 그를 불렀다.“알았어요.”그는 대답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집사에게 언제 간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배준우가 전화를 끊자, 고은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회장님이 천의를 넘겨주신대요?”비록 그건 량천옥의 생명선이라고 하지만 결국 결정권은 배항준의 손에 있다.만약 배항준이 정말 천의를 배준우에게 넘겨주려고 한다면, 량천옥도
아침 식사 후.배준우는 배씨 본가에 갔다. 천의의 일이니 당연히 가야 했다. 이번에도 고은영을 데리고 갔다. 그는 지금 어디를 가든 고은영을 데리고 다닌다.그는 며칠 전의 교통사고 때문에 안심할 수 없었다. 설령 그녀를 란완에 둔대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배씨 본가.배준우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량천옥은 분노에 비명을 질렀다.“악...!”꽈당!그러고는 탁상 위의 물건을 죄다 땅에 던져버렸다.이 순간 그녀는 완전히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량천옥은 배항준을 매서운 눈으로 쳐다봤다.“온 밤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들어와서 한다는 말이 천의를 준우한테 넘겨주라고요? 우리 사이가 이젠 이 지경에 이른 거예요?”말할수록 량천옥의 감정은 더욱 격해졌다.어젯밤에 그녀와 집사가 번갈아 가며 전화했는데 그는 한 통도 받지 않았다.지금 량천옥은 배항준이 밖에 여자가 있다는 것은 확신했다. “천의를 준우한테 준다고요? 내가 보기엔 당신이.....!”“천옥아!”량천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량일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량일은 차가운 눈으로 량천옥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량천옥은 결국 모든 말을 참고, 화가 나서 배항준을 쳐다보았다.어제까지만 해도 배윤이 돌아왔으니, 배항준이 배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중요치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중요해질 수 없다. “당신은 우리 윤이를 위해 생각해 본 적 있어요?”“천의를 윤이한테 줘서 망하게 하려고 그래?”배항준이 차가운 눈으로 량천옥을 쳐다보았다.“......”“......”량천옥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배항준을 쳐다보았다.“당, 당신이 어떻게?”“내가 어떻게 아냐고? 응?”배항준이 날카롭게 말했다.그는 한숨을 쉬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걔 설마 어젯밤 안 들어왔어? 뭐 하러 간 거지?”량천옥의 모든 광기는 지금 이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배항준이 동영 그룹을 배준우에게
배준우가 고은영을 데리고 들어왔을 때,량천옥은 울고 있었다.배항준의 얼굴색도 별로였다.그런데 배준우가 고은영을 데리고 들어오는 걸 보니 그의 얼굴은 더더욱 굳어졌다.“이젠 어딜 가나 이 계집애를 데리고 다녀야겠어?”“내가 언제까지 데리고 다닐지는 당신이 결정하기에 달린 거 아니에요?”배준우가 차갑게 말했다.아침 내내 소란을 피운 량천옥은 지금 더욱 자신의 분노를 통제할 수 없었다.“배준우, 너 사람 너무 업신여기지 마!”“.....”“날 인정하지 않는대도 윤이는 네 동생이야. 어떻게 네 동생한테 이렇게 모질게 굴 수 있어?”량천옥이 분노하며 말했다.그녀는 배준우가 본가에 돌아오는 것이 이렇게 끔찍이 싫어질 줄은 몰랐다.하긴, 이 몇 년 동안 배준우도 본가에 별로 오지 않았다.요즘 그가 본가에 올 때마다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량천옥이다.량천옥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고 억울했다.량천옥의 말에 배준우는 차갑게 웃으며 별로 대꾸하지 않았다.이런 무시하는 태도가 량천옥을 더 미치게 했다.“일단 올라가 있어!”배항준이 량천옥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아침부터 그녀의 소란에 머리가 아파와 더 이상 그녀가 떠드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다.위층으로 올라가라는 배항준의 말에 량천옥은 더욱 화가 났다.“싫어요!’“올라가!” 배항준이 매섭게 소리쳤다.량천옥은 그의 싸늘함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량일은 량천옥을 힐끗 쳐다보고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먼저 올라가!”“엄마!”량일마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량천옥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배씨 집안에 있었는데, 지금 모든 걸 뺏길 상황에 놓였는데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는가?“난 회장님 믿어. 넌 회장님 아내고, 윤이도 회장님 아들이잖니!”량일이 말했다.량일이 배항준 앞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 말은 분명히 배항준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일을 너무 심하게 처리하지 말라고 말이다.지금 아이들의 이런 모순들이 모두 어른
고은영은 자신에 대한 배항준의 불만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것도 알았지만 지금 어쩔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말한 건 다 사실이다. 다만 완곡한 방식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말했을 뿐이였다. 그러자 배준우가 차갑게 말했다.“그럼 말해봐요. 얘는 어떤 사람이에요?”“지금 이 계집애가 가진 것 중 네가 주지 않은 게 있어?”배항준이 비꼬듯 말했다.배준우가 별 볼 입 없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량천옥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당신이 준거잖아요.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요?”“너, 날 화나 죽게 하려고 이러는 거냐?”배항준은 화가 너무 나 완전히 폭발할 것만 같았다.그는 진씨 가문의 일만 잘 처리됐어도 이런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관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배준우가 고은영과의 사이를 해명만 하면 끝날 일인데.배항준은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정말 천의를 원하는 거냐? 너도 알다시피, 그건 네 엄마가......”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배항준도 그걸 느끼고 돌아서며 말했다.“그건 네 아주머니가 네 동생한테 주려고 하는 거야. 너도 아주머니가 천의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잖아.”배항준은 배준우가 천의를 그만 포기하길 바랬다.하지만 배준우가 수년간 계획해 온 일을 어떻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지금 많은 회사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천의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배준우는 원한은 반드시 갚는 사람이기에 배항준은 이런 그가 매우 골치 아프게 느껴졌다.“더 이상 할 얘기는 없는 것 같네요.”배항준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말하고 고은영을 끌고 돌아섰다.그의 태도에 배항준은 더욱 화가 나서 소리쳤다.“일주일.”결국 태협했다.도대체 어떻게 이런 아들을 낳았는지!“그래요.”배준우가 고은영의 손을 더욱 꼭 잡으며 말했다.그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배항준은 더욱 화가 났다.“이번엔 정말이야. 천의만 넘겨주면 더 이상 딴소리
고은지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8시였다.어두운 복도를 따라 위로 올라가니 문 앞에는 량천옥이 서 있었다.그 옆에는 작은 캐리어까지 있었다.얼마나 기다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량천옥은 고은지를 보자마자 환히 웃으면서 얘기했다.“은지야, 나 너랑 같이 살려고 왔어.”“그러지 마세요. 당신은 배씨 가문의 사모님이잖아요. 배씨 가문을 떠난다고 해도 그 신분은 바뀌지 않아요.”고은지의 말투는 아주 평온했다.량천옥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량천옥은 모든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웃고 있던 눈에는 어느새 슬픔이 가득 차올랐다.“미안해.”지나간 과거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겠지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사과뿐이었다.하지만 그 사과만으로 지난날 고은지가 받은 상처를 모두 치유해 줄 수는 없었다.지금 고은지와 나태현이 대치 상황에 놓인 것도 다 량천옥 때문이니까 말이다.만약 량천옥의 친딸이 아니었다면, 나태현이 고은지의 아이를 빼돌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난 사과를 원한 게 아니에요. 그저 날 찾아오지 않았으면 해요.”고은지가 똑똑히 얘기했다.그 차가운 말투를 들은 량천옥은 더욱 가슴이 아팠다.변명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널 방해하기 위한 게 아니야. 그냥 지금부터 내가 널 챙겨주고 싶어서 그래. 은지야, 제발 나한테 기회를 줘.”량천옥이 목이 메어 얘기했다.전에 고은지와 고은영을 짓밟고 무시하던 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그런 기도 앞에서 고은지는 차갑게 량천옥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량천옥이 덧붙였다.“너랑 같이 살게만 해줘. 제발.”량천옥은 받아주지 않으면 가지 않으려는 태도로 얘기했다.고은지를 지켜주고 싶은 건 진심이다.량천옥은 나태범이 무슨 짓을 벌일지 너무 걱정되었다.나태범은 겉으로 봤을 때는 강경하고 무서운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겁쟁이에 불과하다.나태범이 안지영에게 뭐라 하는 것도, 그저 나태웅
나씨 가문에서 나온 안지영은 바로 장선명의 회사로 갔다.안지영이 온다는 것을 안 장선명은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안지영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장선명을 본 안지영은 아이처럼 활짝 웃으면서 기뻐했다.“아까 나태범 어르신 표정이 어찌나 볼만하던지. 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표정이었어요.”안지영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무섭지는 않았어?”장선명은 안지영의 손을 잡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안지영은 가볍게 시선을 돌리다가 장선명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액자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 이거 언제 찍은 거예요!”안지영이 놀란 목소리로 장선명을 향해 물었다.이 사진은 전에 장선명이 물려서 입원해 있을 때, 안지영이 그를 간호해 줄 때의 사진이었다.사진 속의 안지영은 두 눈을 꼭 감고 잠에 빠져있었다.장선명은 얼른 그 액자를 빼앗아 갔다. 마치 비밀을 들킨 아이처럼 표정도 어색했다.“만지지 마.”“...”‘내 사진인데 보지 못하게 하는 거야? 게다가 왜 부끄러워하는 건데.’안지영은 장선명이 본인 사무실에 자기 사진을 둘 줄은 몰랐다. 장선명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다.“나태웅이 정말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걱정되지도 않아?”장선명이 안지영을 품에 안아 물었다.누가 봐도 어색해서 화제를 돌리는 거였다.하지만 그 화제에 안지영은 바로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나태웅이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나태웅과 안지영의 사이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안지영의 화를 사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장선명은 안지영이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두 사람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안지영은 상대를 믿고 상대에게 기대기도 한다.하지만 그 신뢰를 저버리는 순간, 안지영은 바로 상대방과 모든 것을 끊어버린다.나태웅이 어떤 실수를 해왔는지 알기에, 장선명은 그것들을 나쁜 예시로 삼으며 배워갔다.“그렇긴 하네.”엄밀히 얘기하
그리고 나태범은 그런 나태웅을 믿었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의 유서를 믿지 않았다. 그저 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나태웅이 전에 하던 짓을 보면 이런 쇼를 벌이는 것도 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동영그룹에 있을 때는 멀쩡했던 사람이 왜 천락그룹에 오니 이렇게 된 것인지.안지영은 알 수가 없었다.나태범은 차갑고 예리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쏘아보면서 겨우 입 밖으로 말을 뱉어냈다.“먼저 들어가 봐.”“어르신, 안지영 씨를 지금 보내는 건...”“가라고 해!”옆에서 집사가 말리자 나태범이 단칼에 거절하면서 얘기했다.안지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역시 어르신이 명쾌하시네요.”안지영의 말에 나태범은 더욱 화가 나서 차갑게 코웃음만 쳤다.‘모든 사람들이 다 본인처럼 교양 없이 사당이나 부수는 줄 알아?’안지영은 청첩장을 꺼내 나태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가져가!”이런 상황에 청첩장을 돌리다니. 나태범은 기가 차서 화병으로 죽을 것만 같았다.만약 나태웅이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에게도 청첩장을 줬을 것이다.나태범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소리를 지르는 나태범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나태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집사는 그런 안지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걱정스레 나태범을 쳐다보았다.“어르신,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나태범과 집사는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나태범은 숨을 몰아쉬면서 얘기했다.“얼른 사람을 풀어 찾아봐!”“이미 사람을 풀었습니다.”사람을 풀어 나태웅을 찾은 지는 한참이나 되었다.“이 유서를 누가 보낸 것인지는 알아봤어?”나태범이 힘이 다 풀린 채 물어봤다.나태범은 너무 걱정되었다.본인 아들이 이런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나태범은 허씨 가문과의 약혼이 나태웅을 이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될 줄은 몰
나태범과 집사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의아한 눈빛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의아함과 불안함이 섞여 있었다.안지영은 마른침을 삼키고 이어서 얘기했다.“그렇게 보지 말아주세요.”“너 아직 장선명과 결혼한 것도 아니면서, 왜 유부녀라고 하는 거야.”나태범이 정신을 차리고 화를 냈다.“...”나태범의 얼굴을 마주한 안지영은 천천히 가방에서 혼인 관계 증명서와 청첩장을 꺼내 집사에게 건네주었다.집사는 그것을 받고 확인해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바로 나태범에게 달려가 건네주었다.나태범은 안지영과 장선명의 혼인 관계 증명서를 확인하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게다가 혼인신고를 한 날짜가 오늘이라니.그 순간 나태범은 호흡이 거칠어졌다.나태범이 안지영을 노려보면서 얘기했다.“너, 너 아까 전화를 받고 나서 장선명과 결혼하러 간 거야?”나태범은 이를 꽉 깨물고 겨우 얘기했다.혼인 관계 증명서에 적힌 시간을 보니 집사와 전화한 후였다.그러니까, 안지영은 나태웅이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도 바로 달려오지 않고 먼저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는 것이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나태범은 흉악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보면서 나태범은 화가 나서 당장 폭발할 것만 같았다.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오늘 같은 날 결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나태범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집사도 좋지 않은 표정으로 안지영을 보면서 말했다.“안지영 씨, 이건 선을 넘으신 겁니다.”마치 안지영이 혼인신고를 하러 간 게 큰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사람은 너나 할 거 없이 안지영에게 비난을 쏟아냈다.안지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이건 나와 선명 씨의 선약이었어요. 우리의 결혼식이 나태웅 씨 때문에 자꾸만 미뤄졌으니까요. 그래서 혼인신고부터 하겠다고 한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안지영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설마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통보라도 해주길 바란 건가?나씨 가문이 뭔 대
“난 결정을 번복하지 않아요.”안지영이 중얼거리면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태웅의 죽음에 왜 본인이 결혼을 취소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래,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어.”장선명은 안지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나태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안지영의 태도는 명확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장선명은 안지영과 함께 가지 않았다. 나씨 가문에 도착한 안지영은 이곳의 분위기가 아주 음산해진 것을 느꼈다.안으로 들어가니 나태범이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면서 안지영을 찢어버릴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집사의 태도도 좋지 않았다.“이거 보세요.”집사는 나태웅의 유서를 안지영에게 건네주었다.안지영은 그 유서를 받지 않고 집사를 보면서 물었다.“제가 볼 필요가 있나요?”안지영은 본인과 나태웅의 사이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싶었다.안지영의 차가운 태도에 집사와 나태범은 마음이 아팠다.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무슨 짓까지 했는데, 안지영의 태도는 여전하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지금 나태웅은 유서를 쓰고 사라진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도 안지영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다.안지영은 집사와 나태범의 시선 아래서 대답했다.“저랑 나태웅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안지영이 직설적으로 얘기하자 나태범이 불만스럽게 말했다.“태웅이가 지금 사라진 건 다 너 때문이야!”“왜 저 때문이죠”“지금까지 태웅이한테 전화라도 해 봤어? 태웅이 비서랑은 연락해 봤어?”“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가 왜 나태웅 씨한테 전화하고 나태웅 씨 비서한테 연락을 해야죠?”마치 나태웅이 사라져서 안지영이 안달 난 것처럼 말이다.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나태범의 질문에 안지영은 어이가 없었다.나태범은 무표정한 안지영을 보면서 화를 뿜어냈다.“태웅이는 너 때문에 사라진 거라니까!”“어르신 때문이잖아요!”안지영이 물러서지 않고 반박했다
안지영은 아까까지만 해도 아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나씨 가문을 떠올리니 다시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그리고 아까 오는 길에 나씨 가문 집사와 통화했던 내용을 장선명에게 다시 한번 얘기해 주었다.끝까지 들은 장선명은 입가를 매만지며 물었다.“유서만 남기고 사라졌다고?”“그래요. 이건 또 뭐 하려는 수작인지...”안지영은 이미 나태웅에 대한 호감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 것도 그저 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정말... 어떻게 보면 표도 안 사고 나태웅의 일인극을 보는 것만 같았다. 너무도 대단한 쇼라서 안지영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몰랐다.안지영뿐만이 아니라 장선명도 지금 이 상황에 약간 놀랐다.“그럼 지금 나씨 가문에 가려는 거야?”“가야죠. 그리고 나씨 가문 사람들한테도 알려줘야죠. 나는 이미 유부녀라고. 그러니 날 어쩌지 못한다는 걸요.”나씨 가문을 떠올리면 안지영은 그들은 뻔뻔함 빼면 시체라고 생각했다.“그럼 같이 가.”“괜찮아요. 설마 날 잡아먹기라도 하겠어요?”안지영이 손을 저으면서 얘기했다.장선명도 바쁜 몸이었다. 하지만 나씨 가문 일 때문에 안지영과 함께 다녔던 것이다.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얘기했다.“그러면 하나만 더 가져가.”“뭐요?”“일단 차에 타서 얘기해.”말을 마친 장선명은 외투를 안지영 몸에 걸어주었다.장선명의 온도가 안지영을 품에 안는 것만 같았다.걱정했던 안지영은 그 덕분에 안심되었다.두 사람은 차에 올랐다.장선명은 안지영의 혼인 관계 증명서를 건네주면서 청첩장을 건네주었다.이 청첩장은 전부터 준비한 것이다.하지만 나씨 가문 사람들 때문에 날짜를 연거푸 몇 번이나 고쳤다.“청첩장이요?”“어쩌다가 나씨 가문에 가는 건데 청첩장도 돌려야지.”“...”나태웅이 유서를 남긴 이 시점에, 나태범에게 청첩장을 돌리라니.장선명의 수단은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안지영이 청첩장의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청첩장을 펼쳤다.결혼 날짜는 보름 뒤였다.“이 날짜... 더
안지영은 나태웅의 고집스러움이 누구를 닮은 것인지 알 것 같았다.정말 피는 못 속인다고.안지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또 전화가 걸려 왔다.안지영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안지영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안지영 씨. 나씨 가문 저택에 한 번만 와주십쇼.”“또 뭘 하려는 거예요.”화를 내지 않으려던 안지영의 결심은 1초 만에 사라졌다.“작은 도련님께서 유서를 남기셨습니다.”“...”‘유서? 나태웅이 유서를 남겼다고? 또 무슨 연극을 하려는 거야!’나태범이 약혼 기사를 발표하자마자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유서를 남기다니.“나태웅 씨는 그럼 어디 있는데요.”안지영이 눈썹을 꿈틀거렸다.너무 빨리 일어난 사건에 안지영은 약간 혼란스러웠다.하긴 나태웅은 생각보다 행동이 더욱 빠른 사람이었으니까.“사라졌습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나태웅이 사라졌는데 안지영을 나씨 가문으로 부른다니. 안지영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겨우 나씨 가문과 멀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나태웅은 또 안지영을 골치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우선 와주세요.”집사의 말투와 태도는 썩 좋지 않았다.안지영은 화가 나서 물었다.“안 가겠다고 하면요?”겨우 나태웅을 다른 사람과 약혼하게 만들었는데, 안지영을 부르다니.안지영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오늘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 쉬고 싶을 법도 했다.게다가 안지영은 지금 당장 구청에 가서 장선명과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나씨 가문에 들릴 시간 따위는 전혀 없었다.집사는 강경한 안지영의 태도를 들으면서 대답했다.“그렇다면 안진섭 씨를 병원으로 돌려보내 드릴 수는 없을 것 같군요.”“...”안지영은 그 순간 숨도 쉬지 못했다.나씨 가문의 사람들을 언젠가는 다 죽여버리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나태웅이 왜 갑자기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안지영이 전화를 끊었을 때는 이미 구청에 도착한 때였다.그래서 안지영은 바로 고민하지
안지영은 금고를 열고 한숨을 돌렸다.안진섭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안열이 전화를 걸자 안지영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네. 무슨 일이에요?”“나태웅 씨가 약혼했다고 합니다.”“네?”안지영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안열도 놀란 듯했다.“아마도 나태범 어르신이 안 대표님을 정말 싫어하게 되었나 봐요.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이미 나태웅 씨와 허영지 씨의 약혼을 발표한 걸 보면요.”“허영지 씨요?”안지영은 또 깜짝 놀랐다.안지영 쪽에서는 오늘에야 나태웅을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냈다. 그래서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주려고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나태범이 먼저 움직이다니.이렇게 보면 나태범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어도 사실은 모든 걸 꿰뚫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안지영은 그제야 걱정을 덜었다. 만약 나태범이 계속 안지영을 며느리로 들이겠다고 한다면 그것보다 더욱 골치 아픈 일은 없을 것이다.“맞아요. 허씨 가문의 허영지 씨요.”안열이 대답했다.“잘됐네요. 약혼하게 되었다니, 정말 잘 됐어요.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뭐 없죠?”확실히 장선명의 말을 들으니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해결되는 것 같았다.“아니요. 있어요!”“?”뭘 더 해야 한다는 거지?나태범은 이미 안지영이 하려던 일을 대신 해주었다. 그래서 안지영은 너무나도 편했다.하지만 안열이 얘기했다.“낙장불입이 되게 도장을 찍어야죠.”지금 기사화된 약혼을 사실화되게 만들어야 한다.그래야만 나태웅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안지영은 안열의 말을 들으면서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나태웅을 아내 바보로 만들어야겠네요.”만약 정말 허영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면 나태웅은 어쩔 수 없이 나태범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어차피 안 대표님한테 피해가 가는 일도 아닌데요, 뭘.”“하긴, 틀린 말은 아니네요.”안열의 말에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나씨 가문에서 약혼 기사를 발표했으니 나태웅과 허
“그래, 그래, 이놈아!”나태범은 화가 확 올라왔다.‘전에는 애가 이렇게 극단적인 줄 몰랐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너무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나태범은 나태웅을 쏘아보더니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뜬 후 얘기했다.“너랑 안지영의 혼사는 반대다. 이건 진심이야.”나태범은 몇 번 생각한 후 결국 결정을 내렸다. 이제 이 결정은 그 누구도 꺾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태웅은 차갑게 대답했다.“제 혼사는 아버님이 정하는 게 아닙니다.”“너...”가뜩이나 화가 나 있던 나태범은 나태웅의 말을 듣고 혈압이 올라서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꽉 쥐었다.나태범은 정말 울화통이 터져서 지금 당장 나태웅을 때려죽이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넌 오늘부터 허영지와 약혼 준비나 해.”나태범이 이토록 나태웅을 엄격하게 대하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지금은 나태웅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태범은 통보하는 식으로 나태웅에게 얘기하고 있었다.나태범은 죽어도 안지영을 며느리로 들이지 않을 것이다.나태웅은 굳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싫습니다.”같은 피가 아니랄까 봐. 나태웅의 태도 또한 나태범만큼 강경했다.나태범은 더 따지고 싶지 않았다.“네가 허락하든 말든 넌 허영지와 약혼하게 되어있어!”“아니...”“기사는 오늘 보도될 거다.”“...”나태웅이 차가운 시선으로 나태범을 쳐다보았다.‘그러니까 얘기를 하려고 부른 게 아니라 통보를 하기 위해 부른 거란 말이지?’“결혼하지 않을 겁니다.”“너, 이 자식!”나태범이 목덜미를 잡고 얘기했다.나태범은 나태웅을 항상 아껴주고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게 해줬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었다.안씨 가문과 나씨 가문은 같은 급은 아니지만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안지영의 행동을 보니 나태범은 더 이상 안지영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굽혀지지 않는 나태범의 태도에 나태웅은 그저 자리를 뜰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