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윤과 량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배윤이 돌아온 것을 본 배항준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배윤이 끼어들면 상황만 더 복잡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내가 돌아온 것이 정말 반갑지 않은가 봐요?”소파에 앉은 배윤이 배항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배항준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배항준을 지켜보던 량일은 무언가 말하려다 망설였다가 결국 한마디 했다.“난 올라가서 천옥이를 살펴보겠네.”배항준 앞에서는 발언권이 없는 자신이라는 것은 량일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하여 매번 배항준과 량천옥이 싸울 때면 량일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필경 배항준의 신분과 지위는 그녀가 훈계를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도 했다.그녀가 많이 간섭할수록 량천옥만 힘들게 될 것이다....위층.량천옥은 담배를 피고 있었다. 원래는 담배를 피지 않았던 그녀이지만 너무 심란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량일이 방에 들어섰을 때 방안에는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만 피워.”“설마.. 나를 통제하려는 건가요?”량천옥의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량일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본 적 없는 반항심이 어려있었다.그녀의 반항을 처음 겪는 량일이다.량일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나도 이제 나이가 45예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혹은 담배를 몇 대 피는 것까지 어머니의 동의를 거쳐야 하나요?”반항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량천옥은 곧 폭발할 듯 으르렁거렸다.지난 세월 동안 그녀의 생활은 모두 량일이 계획하고 있었다. 매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두 량일이 결정했다.량천옥은 그렇게 그녀의 지휘대로 걸어갔는데도 량일이 원 하는 대로 살지 못했다.량일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조용히 량천옥을 바라보았다.“내가 너무 많이 간섭한다고 탓하는 거야?”“오랫동안 어머니 말을 따랐고 그 결과,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보세요. 나는 곧 모든 것을 잃게 생겼다고요.”량천옥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이것이 량
혹시 배항준이 배윤을 만나면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까?어쨌든 지금은 배항준과 맞서는 것이 그녀들에게는 좋을 것이 없었다.금방 배항준과 한바탕 싸웠던 것을 떠올린 그녀는 그제야 모친의 의도를 파악했다.그렇게 그녀는 마음을 다스리며 한숨을 내쉬었다.“배윤을 본 그이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약해지길 바래야겠어요.”천의에 대한 그녀의 노력은 모두 배윤을 위한 것이란 것을 배항준도 알고 있다.그러니 배윤을 봐서라도 천의를 배준우에게 넘기라고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그 순간만큼은 량천옥도, 량일도, 모두 배항준이 배윤때문에 생각을 바꾸길 바랬다....동영그룹.거의 퇴근할 무렵 배준우는 고은영더러 퇴근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때, 뜻밖의 손님이 불쑥 찾아왔고, 그것은 바로 진승연이었다.그가 진씨 가문을 상대하고부터는 보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가 미친 사람처럼 쳐들어왔다.“고은영, 이 망할 년! 넌 보복당할 거야! 반드시 보복당할 거라고!”지난 며칠 동안 진승연은 하루 종일 방에만 있었다.노빈과의 결혼은 연기되었다. 그것은 결혼 당일 그녀가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그녀 때문에 부득이하게 결혼식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이렇게 큰 소란을 피웠는데도 그저 결혼식을 연기하는 것뿐이었다.그녀는 완전히 미칠 것 같았다...!하지만 북성에서 저지른 일들이 그녀에게 파국을 가져올 줄 몰랐다.고은영은 미쳐버린 그녀를 바라보다 배준우에게 시선을 돌렸다.표정이 어두워진 배준우는 진청아를 보며 말했다.“경비 불러!”“이미 불렀습니다.”진청아는 정중하게 대답했다.방금 회사로 들어선 진승연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진청아는 서둘러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다.이제 곧 경비원들이 올라올 것이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우리의 우정이 진짜 이것밖에 안 됐던 거예요? 어떻게 노빈, 그 멍청이랑 결혼하라고 해요? 어떻게 이러냐고요! 미월언니에게도 너무 한 거
표정이 좋지 않았던 배준우는 진승연의 말에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씩씩거리는 진승연을 바라보던 배준우가 입을 열었다.“그러고 보니 당신 진씨 가문에 자비를 너무 베푼 것 같아.”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곧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한창 속 시원해하던 이미월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그녀는 배준우가 화를 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를 내쫓는 것은 물론 외숙모도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돌릴 것이다.“승연아, 이제 그만하고 당장 은영 씨에게 사과해!”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지금 당장 어머니에게 갈 수 없었던 그녀는 외삼촌 집에 머물지 못하더라도 아직은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하여 고은영을 무척 짓밟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진승연은 완전히 미친 상태였다.“무슨 사과?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데요?”그녀는 격렬하게 반항했다.“승연아!”“당장 끌어내!”이 혼란스러운 광경에 배준우가 경비를 불렀다.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그의 말에 경비원들은 즉시 이미월과 진승연을 잡아끌었다.그 거친 행동은 두 사람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배준우의 잔인한 태도에 이미월은 경비원의 팔을 잡고 애원했다.“아니야!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거야!”그는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가?이미월은 고은영을 쏘아보았다.그녀를 향한 증오심이 끊임없이 커졌다.그러다 뭐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외쳤다.“나, 임신했어!”그녀의 한마디에 현장의 공기는 순간 얼어붙었고, 주위가 급격하게 조용해졌다.이미월을 잡고 있던 경비원은 뜨거운 감자를 움켜쥔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는 그저 벙진 채로 배준우를 바라볼 뿐이었다.숨이 막힐 듯한 분위기 속에서 이미월의 눈은 배준우를 향하고 있었다.“남성의 그날 밤, 당신 곁에 있었던 사람은 나였어. 난 일찍 귀국했거든.”배준우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옆에 있던 고은영의 심장이 곤두박질쳤다.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그녀가 진짜 일정을 앞당겨 귀국했다고? 하지만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가 귀국하기 전에 그들은 매일 영상통화를 했었다. 배준우가 남성에서 회의를 하던 날 이미월과 영상통화를 했을 당시에도 그녀는 해외에 있었다.진승연은 이미월의 행동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렇다고 해도 왜 배준우를 기만하려 하는가? 그 후과는 분명 더 엄중할 것이다.정신을 차린 진승연은 일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그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이미월을 응시했다.주변의 공기는 조용하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였다.아무 말 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배준우에 이미월은 고은영에게 시선을 돌렸다.“은영 씨가 말해보래도요?”또다시 자신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이미월의 행동에 고은영은 머리가 아찔했다.남성에서의 그날 밤에는 자신이 배준우의 곁에 있은 것은 맞지만 공개적으로 자신이었음을 밝히는 것은 배준우와 합의한 사항이었다.그러니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난감해하며 배준우를 바라보자, 그는 다소 위협적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보아하니 부인한다면 어마어마한 대가가 따를 것만 같았다.고은영은 숨을 죽이고 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죠? 그날 밤에는 분명 제가 대표님 방에 있었어요.”처음으로 자신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이 배준우에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어서 조금 찝찝하긴 했다.이미월은 고은영이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그녀가 인정했으니 후회해도 이미 늦어버린 이미월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럴 리는 없어요. 분명 나란 말이에요.”“아니 이봐요. 적당히 하시죠?”고은영은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녀는 어떻게 이런 사람과 엮이게 된 걸까?이미월은 다급했다.“진짜 나야. 준우야 제발 날 믿어줘.”이미월의 모습에 현장의 사람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배준우의 기분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이미월: “그날 밤에 같이 있었던 사람이 당신이라는 증거 있어요?”“그렇다면 당신이야말로 증거가 있나요?”“나 임신했어요.”“그럼, 저도 임신했다면
강성에서의 배준우가 어떤 이미지인지는 이미월도 잘 알고 있었다.배준우가 무자비한 사람이어도 그녀에게만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었다.그가 요즘 그저 조금 성질을 부린다고만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 그가 차갑게 뱉은 그 한마디에 그녀는 마침내 깨달았다.그녀도 그가 차갑게 대했던 다른 여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그에게 특별한 존재는 누구일까?고은영일까?이미월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눈물이 앞을 가려버리고 말았다.임신하지 않은 그녀여도 그에게서 이런 냉정한 말을 들으니 너무 비통했다.배준우는 멸시 어린 눈으로 그녀를 힐끔 볼 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너무나도 차가웠다.“병원에 데려다주라고 해.”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조금 전보다 더욱 냉담했다.이미월은 철저하게 마음을 접었고, 그녀는 배준우가 꼬장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순간 깨달았다.그의 마음은 완전히 그녀를 떠났다!자신을 놓아주는 이미월에 배준우도 더 이상 머물지 않고 고은영의 손을 잡았다.이미월에게 그와 고은영의 뒷모습은 너무 아렸다.“언니!”진승연은 가슴 아파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자신이 제일 최악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이미월의 모습을 보니 자신의 처지가 그 정도로 비참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진청아가 이미월에게 다가가 말했다.“제가 미월 씨라면 조용히 떠날 거예요.”이미월은 그녀를 쏘아보며 대꾸했다.“그저 준우곁의 한 마리 개에 불과한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와 말을 섞으려는 거죠?”미친 듯이 발악하며 자신을 모욕하는 이미월에 진청아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녀는 담담하게 받아쳤다.“제가 보기엔 당신은 개보다도 못한 것 같네요.”“당신...!”이미월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배준우의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막대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그러니 보잘 것 없는 비서에게마저도 조롱당하고 있었던 것이다.비서실의 다른 비서들도 눈
한희: “...”민초희: “...”고은영이 임신했다는 말에 그녀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바뀌었다.그녀들 마음속에 고은영은 그야말로 성공적으로 신분 상승한 본보기였다.고은영이 배준우를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는지 곁에서 똑똑히 지켜봤었던 민초희였다.하지만 지금은 강성의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배씨 가문의 사모님이 되지 않았는가!...차 안.고은영은 젤리를 먹고 있었다.임신한 뒤로 그녀는 젤리 먹는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엄청난 압력 속에서도 젤리를 놓칠 수 없었다.그녀의 먹는 소리에 배준우가 그녀를 힐끔 쳐다 보았다.그의 시선에 그녀는 잠깐 씹기를 멈췄다.자신의 행동에 즉각 반응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임신했어?”“아, 아니요!”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어떻게 이대로 인정한단 말인가?“아까 임신했다고 했잖아.”배준우의 목소리가 조금 다운되었지만 눈빛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그건 미월 씨의 심기를 건드리려는 거였죠.”이미월이란 말에 그의 표정이 한껏 어두워졌다.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군것질 할 마음이 생기다니.“그건 또 뭐야?”그는 고은영의 손에 들려 있는 젤리 봉지를 힐끔 보며 물었다.이미월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젤리에요.”“나도 줘.”“네, 알겠어요.”배준우가 먹고 싶다는 말에 고은영은 재빨리 하나를 꺼내서 주었다. 그는 간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어머니랑 함께 지냈을 때에 간식에 대한 어머니의 요구가 너무 까다로워서 슈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던 것들은 집에 있을 수 없었다.보통 사 먹는다 해도 요구르트 정도가 전부였다.그러니 고은영이 먹고 있는 것들을 배준우는 본적 없었다.고은영은 젤리 하나를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자!”배준우는 한입 크게 물었다.따뜻하다.그는 그녀의 손가락까지 물었다. 순간 그녀는 전기충격을 받은 것 같이 몸이 찌릿찌릿했다.젤리는 너무 달았고 방부제 맛도 나는 것
저녁 식사는 이미 준비되었다.하지만 배준우는 그녀와 함께 식사하지 않고 나태웅과 함께 서재로 갔다.서재에서 배준우가 나태웅에게 물었다.“내일 떠나는 거야?”“응, 반드시 돌아가야 해.”나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배준우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그동안 고마웠어.”“아니야, 당연한건데 뭐. 량천옥은 우리 가족도 괴롭혔으니 우리 공동의 적이니깐.”량천옥이란 말에 배준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나태웅이 량천옥을 그토록 미워하는 이유이기도 했다.당시 나태웅의 어머니는 량천옥때문에 자살 시도까지 했었다. 다행히 그가 강인하게 대응했기에 나씨 가문은 큰 화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반면 배준우는 그렇게 행운스럽지 못했다. 그것은 배항준이 바람둥이였기 때문이었다.“요즘 량일, 그쪽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어?”배준우가 물었다. 량일의 움직임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니 생각과 달리 무척이나 이상했다.….장항 프로젝트와 천의.전에 죽일 듯이 덤비던 그녀들의 태도로 미뤄어 봤을 때 배준우가 이 정도로 밀어붙인다면 무조건 다른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천의를 회수하겠다고 말한 이후로 줄곧 둘의 행적을 감시했었다.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기도 했기 때문이다.전에 있었던 사고도 량천옥이 시킨 것이 드러났고 그들이 손을 쓰려했을 때 상대가 죽어 버리고 말았다. 요 며칠 그녀들은 조보은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 외에는 특별하게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고은영의 실종은 그녀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면 장항 프로젝트처럼 말이다. 지금은 천의, 이토록 큰일에 그녀들이 잠잠하다.나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이상해.”“이런 것들도 진청아에게 바로 귀띔해야 해.”“그래! 걱정하지 마.”나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것들은 아주 중요한 것들이었다.독한 이 두 여자는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천의를 안전하게 회수하기 전에는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된다.생각하
“오늘 량일이 너를 만나 뭐라고 했어?”배준우는 끝내 묻고 말았다.그 자리에서 따져 묻고 싶었지만, 배윤이 나타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중단되었다.그가 량일에 대해 묻자, 그녀는 기분이 잡쳤다.“알 수 없는 얘기들을 한가득 늘어놓던데요?”“응?”어떤 것들을 말하는 거지?몇년동안 량일 그 여자는 딸인 량천옥을 앞세워 강성을 주름잡고 있었다.처음에 고은영을 적잖이도 괴롭혔었다.“당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며 당신을 떠나라고 하더군요. 나를 위한 거라나? 뭐라나? 그녀가 나에게 그런 말 할 자격이나 되는 건가요.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고은영은 량일이 진짜 고단수인 것 같았다.전에 그녀에게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괴롭히더니 지금은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통하지 않자, 태도를 바꾼 것일까?다행히도 고은영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겪어 봐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위하는 거라고?”량일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니 배준우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고은영이 말했듯이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나를 위해서 말해주는 거라 했어요. 너무 이상하죠?”“응, 이상하네.”“아마 방법을 바꾼 것 같아요.”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둘, 그리고 열심히 면을 흡입하고 있는 고은영은 어느새 찌푸려진 그의 눈살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그가 보기에는 량일이 그저 방법만 바꾼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여자는 차갑고 냉정했다. 그녀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다.예를 들어 전에 배항준의 연인들을 처리하던 그 수법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그런 그가 갑자기 정반대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배준우는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뭘 생각해요?”배준우가 말이 없자 고은영이 물었다.인상을 쓴 배준우를 그녀가 다독이기 시작했다.“걱정 말아요. 어떤 수를 쓰든 난 당신이 천의를 회수한 후에 이혼할 거예요.”그녀의 입에서 ‘이혼’이
“진이훈!”“네, 대표님.”“거기 서서 뭐 해! 얼른 돕지 않고!”나태웅이 고함을 질렀다.겨우 한숨을 돌렸던 진이훈은 그런 나태웅의 말을 듣고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것만 같았다.‘나도 같이 죽자는 건가... 아무리 상사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진이훈은 죽고 싶지 않았다....나태웅은 결국 강제로 끌려 들어갔다.새벽 두 시. 나태범은 실크 잠옷을 입고 얼굴을 찡그린 채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단잠을 방해한 녀석이 썩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나태범은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체력이 남아도는 모양이야?”동영 그룹에서 사람이 되어 온 줄 알았더니만, 지금 보니 사람이 덜 된 것이 분ㅁ여하다.16살 때보다 더 세게 반항하고 있으니 말이다.그때도 나태웅을 진정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어려워졌다.나태범의 사람들은 나태웅을 끌고 들어와 의자에 억지로 앉혔다. 의자에 앉는 순간 나태웅은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감을 드러냈다.나태범은 그런 나태웅을 보면서 더더욱 화가 났다.“내가 오늘 너한테 한 말을 다 잊은 거야?”“안지영은 지금 킹덤 타운에 있어요. 방법을 대서 거기서 나오게 해야해요.”“...”“...”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보듯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뿐만이 아니었다.나태웅을 잘 아는 사람들은 나태웅이 몇 년 동안 변하지 않았음을 잘 알아낼 수 있었다.동영 그룹에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변한 것 하나 없었다.“너 이 자식, 안지영이 킹덤 타운에 산다고 해서 킹덤 타운에 쳐들어가 그런 짓을 벌여?”그렇게 말하면서도 나태범은 가슴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꼈다.나태웅이 드디어 조바심을 내니까 말이다.“이유가 부족한가요?”“그래,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보마.”“아버지!”옆에 있던 나태현이 언성을 높였다.나태범과 나태현의 시선이 부딪쳤다. 나태현의 눈빛은 차갑고 진지했고 나태범의 시선은 어쩔 수 없다는 것 같았다.나태현은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프로젝트 두
나태웅이 킹덤 타운으로 돌아가려 하자 나태현은 화가 나서 나태웅의 뒤통수를 후려쳤다.“너 이 새끼 그만할 때도 됐잖아!”‘어쩌다가 이런 놈을 친동생으로 둬서...’“난 킹덤 타운에 갈 거야. 지금 당장! 얼른 운전해!”나태현은 화가 치밀어올라 숨도 가빠졌다.앞에 앉아 있던 운전기사는 나태웅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백미러를 통해 나태현을 쳐다보았다.나태현은 심호흡을 여러 번 했지만 여전히 진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화가 난 나머지 충동적인 결정을 내렸다.“그래, 가버려!”그러고는 차에서 내려 문을 쾅 닫았다.차에는 나태웅과 운전기사만이 남았다.나태웅이 차갑게 말했다.“운전해.”운전기사는 그 말을 들으면서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었다.운전기사는 나태웅을 데리고 킹덤 타운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오늘 밤 일 때문에 나태현을 데리고 킹덤 타운에 갔을 때 두 사람 눈앞에 벌어진 장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나태웅과 장선명 다 이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지금 다시 킹덤 타운에 돌아가면 아까보다 더 심하게 싸울 것이다.게다가 나태웅이 계속 부르는 그 안지영이라는 사람도 장선명의 편을 드는 것 같던데.어느새 진이훈의 차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진이훈을 본 운전기사는 동아줄을 잡은 것처럼 기뻐했다. 나태현의 명령도 잊은 채 바로 차에서 내려 도망쳤다.차에서 내린 진이훈은 운전기사가 차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발견했다.그럼에도 당황하지 않고 나태웅에게 다가가 물었다.“대표님, 오늘은 여기서 묵으실 겁니까?”진이훈은 나태웅이 이곳에서 묵지 않을까 봐서 걱정이었다.지금 나태웅의 상태를 보아하니 진이훈이 운전해도 소용없을 것이다.게다가 화가 잔뜩 난 상태니 곱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나태웅은 천천히 눈을 떴다.어두운 공간 속에서 나태웅의 두 눈은 위험하게 반짝였다. 밖에 서 있던 진이훈은 싸늘한 눈동자를 보면서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피어올랐다.나태웅이 차갑게 얘기했다.“킹덤 타운으로 간다.”“...”그 말을 들
역시나 사업가의 딸이라 그런지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안지영은 나태웅이 전에 안지영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잊은 모양이다.나태웅이 이 사실을 안다면... 더욱 큰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다시 또 이곳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난장판은 두 개의 프로젝트 덕분에 끝이 났다.배준우가 떠난 후 장선명은 안지영을 품에 꽉 안은채 물었다.“어떻게 프로젝트 두 개에 본인을 팔 수 있어?”“사실 백서면 충분했는데, 덕분에 서탑까지 가져오게 됐네요.”안지영이 애교 섞인 말투로 얘기했다.그래서 나태현이 처음에 서탑을 얘기했을 때는 가만히 있었지만 백서를 언급하자 바로 허락한 것이다.백서의 프로젝트는 안열이 자주 얘기하던 것이다. 안지영은 백서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좋은지 잘 알고 있었다.장선명은 여전히 불만스러웠다.“네가 승낙하지 않았으면 나태현이 더 얹어줬을 수도 있잖아.”나씨 가문의 사람들은 재력을 과시하길 좋아한다.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이니 이 기회에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도 있었는데...장선명의 불평을 들으면서 안지영은 이마를 짚고 얘기했다.“걱정하지 마요. 우리가 더 승낙하지 않았다면 그냥 나태웅을 버리고 갔을걸요?”“...”장선명은 나태현이 그런 냉혈한일 줄은 몰랐다.하지만 안지영은 나씨 가문의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다. 나태현이라면 자기 동생을 버리고도 남을 것이다.장선명 눈가에 생긴 상처를 보면서 안지영은 속으로 나태웅에게 욕설을 가득 퍼부었다.‘정말 미친놈 아니야? 여기까지 쳐들어와서 사람을 떄리다니.’...나태웅은 나태현에게 끌려 나가서 차에 앉았다.그러면서도 화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그런 나태웅을 보면서 나태현은 동생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나씨 가문에 도착한 후 나태현이 입을 열었다.“직접 가서 회장님께 얘기 드려.”두 프로젝트는 나태웅 때문에 넘기게 된 것이다.사실 나태현은 킹덤 타운에 가기
분위기는 차갑기만 했다.장선명의 태도는 아주 결연했다. 나태웅이 오늘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킹덤 타운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배준우는 안지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만하자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안지영은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했다.안지영은 이미 나태웅 때문에 화가 극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런 나태웅을 위해 장선명을 말리라고? 왜? 안지영의 태도는 장선명과 같았다.그런 안지영의 태도를 본 배준우는 나태웅에게로 시선을 돌려 눈치를 주었다.나태웅도 알 수 있었다.나태웅은 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이를 꽉 깨물었다.모든사람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 나태현이 장선명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그러면 서탑의 프로젝트를 너한테 줄게.”장선명은 그 말을 듣고 차갑게 웃었다.“내가 약혼녀를 팔아넘길 사람으로 보여요?”“...”“백서의 프로젝트도.”“내가...”장선명은 화가 났다.하지만 장선명이 화를 쏟아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장선명의 손을 잡아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장선명은 어리둥절해져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그래요. 호탕해서 좋네요. 받아들일게요.”“안지영!”장선명이 이를 꽉 깨물었다.“이제 가세요.”“...”장선명은 화가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장선명은 그깟 돈에 안지영을 팔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안지영은 흔쾌히 자신을 팔아넘겼다.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안지영의 허락을 받은 나태현과 배준우는 다 한숨을 돌렸다.나태현이 일어서서 나태웅을 향해 얘기했다.“가자.”하지만 나태웅은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안지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차가운 눈빛은 안지영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았다.그런 나태웅을 본 나태현은 얼른 일어나 나태웅을 끌어갔다.“가자니까.”이러고 있다가는 더 큰 일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나태웅은 나태현에게 거의 끌려 나가면서도 끝까지 안지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안지영이 왜 허락하는 거지? 왜 장선명 대신 결정하는 거지? 안지영이 장선명의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자
급한 일이기는 하지만 배준우는 일단 품속의 고은영부터 다독였다.이렇게 귀엽고 포근한 아내를 두고 집을 나서야 한다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나태웅은 다른 남자의 여자를 넘보고 있으니. 이런 기분을 모르겠지.’배준우는 나태웅이 안지영과의 사이를 제대로 처리 못 해서 이 사달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제 나태웅과 안지영의 사이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비틀어졌다. 그러니 이렇게 애를 써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배준우는 나태웅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먼저 자. 난 늦게 돌아올 거니까.”“지영이 일 때문이에요?”고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응,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나태웅이 킹덤 타운에 갔대. 안지영은 지금 킹덤 타운에서 장선명과 동거 중이거든.”배준우의 말을 들은 고은영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대충 알 것 같았다.안지영을 향한 나태웅의 집착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이런 상황에 놓인 안지영을 떠올린 고은영이 얘기했다.“나도 같이 갈게요.”“그러지 마. 같이 가 봤자 싸우는 모습만 보고 올 텐데.”“...”고은영은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장선명과 안지영은 다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다.거기에 궁지에 몰린 나태웅까지 더해지면...“그래요. 그럼 난 안 갈게요.”고은영이 대답했다.고은영은 약간 맥이 빠졌다.고은지는 오늘 이미 천락 그룹에 출근했다. 고은영은 고은지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배준우가 킹덤 타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열두 시 반이었다.거실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었는데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나태현은 이미 도착해있었다.거실의 분위기는 북극보다도 춥고 무거웠다.장선명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입가에 피가 묻어있었다.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 옆에 앉아 있었다.나태웅은 다른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얼굴에도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이훈도 두 그림자를 보았다.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뒷좌석을 스윽 살피고는 전전긍긍하면서 물었다.“대표님, 돌아갈까요?”‘그러게 내가 오지 말자고 했잖아!’킹덤 타운에 찾아와봤자 창피만 당하고 쫓겨날 것이다.진이훈은 나태웅이 바로 별장으로 쳐들어갈까 봐 걱정되었다.이윽고 차량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이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나태웅은 먼저 차에서 내려버렸다.“...”진이훈은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 이윽고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바로 차에서 내렸다.“대표님, 대표님!”진이훈은 나태웅을 꽉 잡았다.이곳은 킹덤 타운이다. 나태웅이 이곳에서 일을 벌여봤자 좋은 점은 하나도 없다.게다가 장선명의 성격이 어떤지는 강성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 아닌가.장선명은 위험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다.장선명을 건드린 사람에게는 좋은 결말이 없었다.다만 나태웅과 진이훈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장선명이 벌써 돌아왔다는 것이다.나태웅은 원래 안지영과 끝장을 보려고 이곳에 온 것이었건만, 신나나를 찾으러 간 장선명이 벌써 킹덤 타운에 돌아왔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창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아하니, 두 사람은 신나나 때문에 싸우지도 않고 있었다.두 사람의 그림자는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이거 놔!”나태웅의 명령에도 진이훈은 나태웅을 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 꽉 잡았다.그리고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대표님, 안지영 씨는 확실히 장선명 씨의 약혼녀입니다.”안지영과 장선명의 시작이 어찌 되었든, 애원이었는지, 거래였는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결국 정상적인 예비부부가 되었다.‘장선명 씨의 약혼녀’라는 말이 나태웅의 신경을 긁었다.진이훈이 아무리 말려도 나태웅은 결국 진이훈을 뿌리쳐냈다.“대표님, 대표님!”나태웅의 세상은 완전히 붕괴하였다. 나태웅은 지금 진이훈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화가 잔뜩 난 채로 킹덤 타운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진이훈의 머릿속은 오직 한마디로 가득했다.‘오늘 이곳에
진이훈은 자기 뺨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찾아가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저 여자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너무 화내지 마십쇼. 안지영 씨는 나 대표님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장선명 때문에?”“...”진이훈은 할 말을 잃었다.정확하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씨 가문은 장 씨 가문에게서 사과를 받아내야했디.하지만 나태웅의 충동적인 결정 때문에 그것마저도 거품으로 돌아갔다.진이훈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태웅은 화가 나면 그 감정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잊는 사람이었다.그 시각.안지영도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장선명은 저녁 열한 시에 들어왔다. 여덟 시에 나갔으니 총 세 시간 동안 밖에 있은 셈이었다.집에 돌아온 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물었다.“왜 화내고 있는 거야?”“나태웅 때문에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안지영의 화를 이만큼이나 돋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태웅이 유일할 것이다.이제야 회사 일 때문에 나태웅에게 제대로 복수도 하지 못했는데, 나태웅은 거의 매일 시비를 걸었다.게다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나태웅 때문에 안지영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태웅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안지영은 그런 나태웅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나태웅이 매일 시비를 걸고 또 자기 아버지까지 끌어들였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신나나 씨는 어때요?”안지영은 나태웅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바로 화제를 돌렸다.나태웅 얘기를 듣던 장선명은 표정이 어두워졌다.신나나의 얘기를 꺼내자 장선명의 표정은 더욱 썩어들어갔다.“눈가를 3cm 정도 봉합했어. 지금은 병원에 있어.”“그렇게 심각한 일이었어요?”안지영은 아주 놀랐다.클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하지만 신나나는 매직 썬의 에이스로서 인기도 많고 돈벌이도 쏠쏠했다.기씨 가문은 요즘 들어 강성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문이었지만 장씨 가문과
안지영은 화가 나서 이마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였다.전화기 너머의 나태웅은 계속해서 이어 얘기했다.“안지영, 장선명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본 남자야. 네가 그런 남자의 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아니면, 장선명이 정말 너랑 약혼할 거라고 생각해? 매하리에서 한번 은혜를 입었다고 정말 너를 데리고 일생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지금도 봐, 장선명은 다른 여자를 위해 너를 버렸잖아!”안지영은 나태웅의 말투가 안지영의 불행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장선명에게 버려진 안지영을 보면서 축하 파티라도 열 사람 같았다.나태웅의 인성을 잘 아는 안지영은 나태웅의 생각도 쉽게 알 수 있었다.‘전에 동영 그룹에 있을 때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하, 그렇게 말하면 본인이 장선명 씨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왜 나더러 하주원한테 가서 사과하라고 하는 거예요? 시비를 가리는 눈이 없나 봐요?”“그건 다른 일이잖아!”“뭐가 다른데요! 내로남불 같은 놈.”안지영이 중얼거리면서 말했다.지금의 안지영은 그저 나태웅을 욕할 기회만 있으면 서슴지 않고 욕설을 쏟아냈다.안지영은 전 세계의 욕설을 모아서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나태웅은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말이다.“안지영, 좋은 말로 할 때 입에서 걸레 빼.”“너나 입에서 걸레 빼세요.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내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당신만큼은 죽어도 찾아가지 않을 테니까. 왜 계속 내 눈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거예요! 관종이에요?”“...”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확신했다.‘안지영,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선심을 써서 얘기해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뿐이었다.하지만 안지영은 쉬지 않고 이어서 얘기했다.“그리고, 선명 씨가 신나나 씨 때문에 매직 썬에 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와서 귀띔해 줄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알려줬다고? 이건...’“나태웅 씨, 당신은 장선명이랑 비교하
‘지금 벌인 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미친 거 아니야?’안지영은 심호흡을 하면서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려고 노력했다.“안지영,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나태웅은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고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안지영도 더는 참지 못하고 같이 화를 냈다.“내가 생각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나태웅,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나태웅에게 괴롭힘당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안지영은 나태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강성의 사람들은 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미치광이가 된 줄 안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의 정신병이 대대로 유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강성에서 가장 잔인한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그리고 이제는 안지영을 괴롭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장선명까지 괴롭히려고 한다.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숨이 턱턱 막혔다.“내가 뭐 하는 거냐고? 뭐 같아 보이는데?”“내가 당신 같은 사람의 속셈을 어떻게 알겠어요! 궁금하지도 않아요!”안지영은 짜증이 확 몰려왔다.안지영은 나태웅 때문에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채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안지영, 장선명이 오늘 밤 왜 나갔는지 정말 모르겠어?”“당신이 일을 벌이니까 나간 거잖아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죽이고 싶었다.“신나나 때문에 킹덤 타운을 떠난 거야.”“...”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분노로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었다.안지영은 숨이 점점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난 나머지 제 자리에 서서 몇 바퀴나 돌았다.나태웅에게 뭐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나가지 않았다.아무 대답도 못 하는 안지영을 보면서 나태웅은 말투를 약간 누그러뜨렸다.“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장선명은 신나나를 구하러 매직 썬에 간 거야.”나태웅은 일부러 신나나의 이름을 강하게 읽으며 얘기했다.마치 안지영에게, 장선명은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