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에 질린 그녀를 보던 배준우는 열심히 표정 관리를 했다.허락받은 고은영은 재빨리 휴게실로 도망갔다.그녀가 자리를 비운 잠깐 사이에 휴게실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되었다.휴게실을 정리하는 일이 그녀의 임무라고 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책임질 필요 없어 보였다.매일 배준우와 함께 출근하는 그녀는 너무 한가했다.사무실.사무실에 들어선 배윤은 소파로 다가가 거만하게 앉았다. 그 모습은 엄숙한 표정의 배준우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대체 무슨 일이야?”배준우가 차갑게 물었다.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배윤은 불량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매우 닮아 있는 그들이었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진지하고 차분한 배준우와는 달리 배윤은 거만하고 거칠었다.손에 든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던 배윤이 물었다.“진짜 끝까지 해보려는 거예요?”배준우는 앞에 놓인 물 한 컵 들이켰다.“내가 아니고 오히려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그렇다면 형에게 협박당한 거겠죠.”오늘 량천옥은 배 씨 저택에서 한바탕 난리 쳤었다. 그것은 배항준이 고심 끝에 천의를 여전히 배준우에게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죽어도 동의할 수 없었던 량천옥은 결국 수면제를 삼켰다.그녀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것이었다.배준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네가 이렇게 못난 모습인 걸 알게 된다면 아마 그 사람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할 거야.”순간 배윤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그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다.“형, 한 번만 봐줘요.”배윤이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배준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는 배윤보다 8살 위였고 고은영은 배윤과 비슷한 또래였다.량천옥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동생인 배윤에게는 그 어떠한 악감정도 없었다.1달 전만 해도 배윤을 원망하지 않았던 배준우지만 지금은...순간 나태웅이 조사했던 자료가 뇌리에 스쳤다. 배준우는 입가에 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천의에서 사라진다면 그렇게 해줄게.”순진한 얼굴 뒤에는 악마의 사악한 얼굴이
전과 완전히 다른 배준우의 모습에 배윤은 당황하고 말았다.그도 배준우가 자신의 어머니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실 그도 마찬가지였다.그가 형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풀리던 것들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배윤은 배준우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무언가를 보아내려 했다.하지만 그의 눈은 너무 깊어 도저히 가늠이 가지 않았다.결국, 배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형이 천의로 돌아오면 그 사람을 정말 죽음으로 몰아넣는 거예요. 그러니 형, 한 번만 봐주세요.”배윤도 량천옥을 어머니가 아닌 ‘그 사람’으로 칭하고 있었다.수년 동안 강성에서 량천옥의 평판은 좋지 않았고, 아마 어렸을 때부터 량천옥의 행동이 굴욕적이라 느꼈던 배윤에게는 아직까지도 마음의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하여 지금까지도 량천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더군다나 량천옥은 지금 천의를 잃을 수 없었다. 잃게 된다면 그의 빚은...!배윤의 눈이 다시 차갑게 변했다....결국 배윤도 돌아갔다.사무실로 들어선 나태웅은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배준우를 보았다.“천의에 관한 일 때문에 대표님을 찾은 겁니까?”“천의 말고 그를 귀국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전에 배준우와 량천옥이 심하게 다툴때에도 눈 가리고 아웅 하던 배윤이었다.그러던 그가 이번에 돌아온 것을 보니 천의가 그에게도 중요한 것 같았다.“그는 그동안 대표님을 속이고 있었어요.”나태웅이 말했다. “아니, 그는 나를 속이지 않았어.”나태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준우가 반박했다.나태웅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속이지 않았다고? 배준우는 동생을 싫어했지만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그도 천의를 손에 넣으려는 거야.”“네.”배윤에게는 지금 천의밖에 남지 않았다.량천옥이 천의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에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나이 든 배항준에게는 이미 아무런 힘이 없었다.
나태웅이 나가고 배준우는 휴게실로 향했는데, 고은영은 목도리를 뜨고 있었다.지금은 손놀림이 예전처럼 어리숙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전보다 훨씬 빨라진 것 같았다.배준우가 들어오자 고은영은 서둘러 손에 들고 있던 뜨개질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진짜 모르는 사람이에요.”배준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아직도 그걸 말하고 있는 거야?“모르면 모르는 것이지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어쨌든 민감한 신분을 가진 분이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배준우가 무서웠다.조금 전 로비에서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잡아 먹을 기세였기 때문이다.듣고 있던 배준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를 품에 안은 그는 사슴처럼 순진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입맞춤을 했다.부드럽게 그녀를 탐하는 그의 모습은 아까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읍!”고은영이 신음을 터뜨렸다.그녀의 입술은 배준우 때문에 따끔거렸다.그녀의 신음에 배준우는 살며시 그녀를 놓아주었다. 빨개진 그녀의 입술을 살짝 만지던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그렇게니 무서워?”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무서워요. 진짜 너무 무서워요...!”“바보야, 난 너의 남편인데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 있어?”남편이라는 두 글자에 더욱 힘을 주며 말하는 배준우에 고은영은 마음이 무거웠다.“하지만 우리는 결국...”“그만!”뭔가 말하려는 그녀를 배준우가 제지했고, 고은영은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그와의 긴 시간 동안 고은영도 어떤 말들은 아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특히 그들의 가짜 결혼은 회사에 비밀로 해야 했다. 여기저기 다니며 떠벌이면 그녀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지금 반복적으로 그녀에게!“그럼 매일 밤 일어나는 일에 대해는 책임지실 건가요?”“뭐?”“그러니깐 당신이...”고은영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고, 얼굴도 이미 붉게 달아올랐다.그녀는 배준우보다 8살이 어렸기에 아주 성숙하고 노련
서류를 든 진청아가 사무실 밖에서 문을 여러 번 두드렸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히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결국 몸을 돌렸다....고은영이 자리를 떠나고 량일은 카페에 오랫동안 앉아있다가 넋을 잃은 모습으로 카페를 걸어 나갔다.동영그룹에서 걸어 나오는 배윤을 보자 그녀의 심장이 떨려왔다.“윤아!”그리고 배윤에게로 걸어갔다.그녀의 목소리에 배윤도 량일을 발견했다. 침울한 표정이었던 그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할머니.”배윤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량일을 부르자 량일이 물었다. “준우를 만나러 온 거야? 다음에는 혼자 오지 마.”그녀는 단호했다. 요즘 그들은 매우 불쾌한 일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량천옥이 물러서지 않으려 하는 것도 배윤을 위해서이기도 했다.배준우는 비록 전에 배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되찾으려는 배준우의 태도에 어느 정도 경계해야 했다.“네, 형 만나러 온 거예요.”배윤이 ‘형’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량일의 마음이 복잡했다.“형이라고 생각하는 너를 그 애는 동생이라고 생각해?”그녀는 거침없었다.이것은 그녀와 량천옥이 배윤에게 주입하고 있는 개념이기도 했다.배항준의 기분이 어떻든, 배준우에 대해서 그녀들은 항상 이런 태도였다.하지만 배윤은 그녀들의 말을 듣지 않았고 배준우와 가까이 지냈다. 그러는 배윤이 그녀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래도 내 형인데 할머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얘는...”량일이 노했다.배준우를 선택한 고은영 때문에 이미 머리가 아픈 상태인데 배윤도 이 모양이다.하늘의 뜻인지, 아니면 그녀들이 보복당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량일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집에는 들른 거야?”“아직이요.”배윤이 고개를 저었고, 량일은 아주 불만스러웠다.“집에도 들르지 않고 준우를 만나러 왔단 거야?”배윤의 이런 무심한 행동이 그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공항이 동영그룹과 가깝잖아요.”대충 둘러대고 있는 배윤의 변명에 넘
“이미 한두 번 만난 게 아니지 않아요? 그 여자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던데요?”듣고 있던 량일은 깜짝 놀랐다.“네가 어떻게 여러 번 만났단 것을 알고 있는 거야?”그녀는 아주 예민한 사람이어서 조금만 이상함을 느끼면 바로 짚고 넘어가야 했다.“형이 그 여자를 빌미로 아버지를 협박하고 있으니, 어머니와 할머니도 이렇게 서두르는 거 아니에요?”배윤의 물음에 량일은 숨이 탁 막혀왔다.급한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은... 이미 아주 난처해진 상황이였다.고은영에 관한 일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빨리 처리해야 한다....배씨 가문.배윤과 량일이 막 저택에 도착했을 때 량천옥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시선을 주고받은 둘은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진짜 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 거예요?”량천옥은 배항준을 잡고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었다.그런 그녀때무에 배항준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당신이 먼저 천의를 준우에게 넘기라고 내가 말했잖아.”“먼저 넘기고 그다음은요? 그다음엔 진짜 다시 돌이킬 수 있나요? 당신의 아들이 어떤 자식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량천옥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배항준이 그녀를 보는 눈빛도 매서웠다. 하지만 이런 그의 모습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 왜 넘기라고 하는 거예요? 넘기고 나면 윤이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요!”량천옥은 어이가 없어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그동안 야금야금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배준우 때문에 그녀는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었다. 장항 프로젝트가 시작임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배항준은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고 장항 프로젝트만 손에 넣으면 배준우가 잠잠해질 것이라고 믿었다.그런데 잠잠해졌는가?지금은 천의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어쨌든 준우와 그 여자는 결혼하면 안 돼!”지금 배항준은 고은영에 대해 점점 더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결혼을 결사 반대하고 있었다.“
배윤과 량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배윤이 돌아온 것을 본 배항준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배윤이 끼어들면 상황만 더 복잡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내가 돌아온 것이 정말 반갑지 않은가 봐요?”소파에 앉은 배윤이 배항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배항준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배항준을 지켜보던 량일은 무언가 말하려다 망설였다가 결국 한마디 했다.“난 올라가서 천옥이를 살펴보겠네.”배항준 앞에서는 발언권이 없는 자신이라는 것은 량일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하여 매번 배항준과 량천옥이 싸울 때면 량일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필경 배항준의 신분과 지위는 그녀가 훈계를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도 했다.그녀가 많이 간섭할수록 량천옥만 힘들게 될 것이다....위층.량천옥은 담배를 피고 있었다. 원래는 담배를 피지 않았던 그녀이지만 너무 심란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량일이 방에 들어섰을 때 방안에는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만 피워.”“설마.. 나를 통제하려는 건가요?”량천옥의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량일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본 적 없는 반항심이 어려있었다.그녀의 반항을 처음 겪는 량일이다.량일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나도 이제 나이가 45예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혹은 담배를 몇 대 피는 것까지 어머니의 동의를 거쳐야 하나요?”반항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량천옥은 곧 폭발할 듯 으르렁거렸다.지난 세월 동안 그녀의 생활은 모두 량일이 계획하고 있었다. 매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두 량일이 결정했다.량천옥은 그렇게 그녀의 지휘대로 걸어갔는데도 량일이 원 하는 대로 살지 못했다.량일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조용히 량천옥을 바라보았다.“내가 너무 많이 간섭한다고 탓하는 거야?”“오랫동안 어머니 말을 따랐고 그 결과,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보세요. 나는 곧 모든 것을 잃게 생겼다고요.”량천옥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이것이 량
혹시 배항준이 배윤을 만나면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까?어쨌든 지금은 배항준과 맞서는 것이 그녀들에게는 좋을 것이 없었다.금방 배항준과 한바탕 싸웠던 것을 떠올린 그녀는 그제야 모친의 의도를 파악했다.그렇게 그녀는 마음을 다스리며 한숨을 내쉬었다.“배윤을 본 그이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약해지길 바래야겠어요.”천의에 대한 그녀의 노력은 모두 배윤을 위한 것이란 것을 배항준도 알고 있다.그러니 배윤을 봐서라도 천의를 배준우에게 넘기라고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그 순간만큼은 량천옥도, 량일도, 모두 배항준이 배윤때문에 생각을 바꾸길 바랬다....동영그룹.거의 퇴근할 무렵 배준우는 고은영더러 퇴근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때, 뜻밖의 손님이 불쑥 찾아왔고, 그것은 바로 진승연이었다.그가 진씨 가문을 상대하고부터는 보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가 미친 사람처럼 쳐들어왔다.“고은영, 이 망할 년! 넌 보복당할 거야! 반드시 보복당할 거라고!”지난 며칠 동안 진승연은 하루 종일 방에만 있었다.노빈과의 결혼은 연기되었다. 그것은 결혼 당일 그녀가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그녀 때문에 부득이하게 결혼식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이렇게 큰 소란을 피웠는데도 그저 결혼식을 연기하는 것뿐이었다.그녀는 완전히 미칠 것 같았다...!하지만 북성에서 저지른 일들이 그녀에게 파국을 가져올 줄 몰랐다.고은영은 미쳐버린 그녀를 바라보다 배준우에게 시선을 돌렸다.표정이 어두워진 배준우는 진청아를 보며 말했다.“경비 불러!”“이미 불렀습니다.”진청아는 정중하게 대답했다.방금 회사로 들어선 진승연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진청아는 서둘러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다.이제 곧 경비원들이 올라올 것이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우리의 우정이 진짜 이것밖에 안 됐던 거예요? 어떻게 노빈, 그 멍청이랑 결혼하라고 해요? 어떻게 이러냐고요! 미월언니에게도 너무 한 거
표정이 좋지 않았던 배준우는 진승연의 말에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씩씩거리는 진승연을 바라보던 배준우가 입을 열었다.“그러고 보니 당신 진씨 가문에 자비를 너무 베푼 것 같아.”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곧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한창 속 시원해하던 이미월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그녀는 배준우가 화를 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를 내쫓는 것은 물론 외숙모도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돌릴 것이다.“승연아, 이제 그만하고 당장 은영 씨에게 사과해!”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지금 당장 어머니에게 갈 수 없었던 그녀는 외삼촌 집에 머물지 못하더라도 아직은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하여 고은영을 무척 짓밟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진승연은 완전히 미친 상태였다.“무슨 사과?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데요?”그녀는 격렬하게 반항했다.“승연아!”“당장 끌어내!”이 혼란스러운 광경에 배준우가 경비를 불렀다.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그의 말에 경비원들은 즉시 이미월과 진승연을 잡아끌었다.그 거친 행동은 두 사람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배준우의 잔인한 태도에 이미월은 경비원의 팔을 잡고 애원했다.“아니야!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거야!”그는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가?이미월은 고은영을 쏘아보았다.그녀를 향한 증오심이 끊임없이 커졌다.그러다 뭐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외쳤다.“나, 임신했어!”그녀의 한마디에 현장의 공기는 순간 얼어붙었고, 주위가 급격하게 조용해졌다.이미월을 잡고 있던 경비원은 뜨거운 감자를 움켜쥔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는 그저 벙진 채로 배준우를 바라볼 뿐이었다.숨이 막힐 듯한 분위기 속에서 이미월의 눈은 배준우를 향하고 있었다.“남성의 그날 밤, 당신 곁에 있었던 사람은 나였어. 난 일찍 귀국했거든.”배준우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옆에 있던 고은영의 심장이 곤두박질쳤다.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