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사무실로 돌아가는 내내 차가운 기운을 풍기고 있는 배준우 때문에 고은영은 무서워서 말도 하지 못했다.당장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배준우는 그녀가 도망간 줄 알고 몹시 화가 나 있었단 사실을!사무실에 들어서고 나서야 배준우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솔직하게 말해!”정말 차갑고도 냉정한 한마디였다.상황 파악이 조금 되었는데 이렇게 겁을 주니 그녀는 다시 어리둥절해졌다.그녀가 억울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뭘 말하라는 거예요?”이미 화가 난 배준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녀의 표정에 점차 자제력을 잃기 시작했다.“어떻게 그 사람을 알게 된 거야?”“누구요?”“배윤, 이제 와서 모른다고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마!”배윤? 그럼 아까 로비에서 마주쳤던 사람이 해외에서 돌아온 배윤이란 말인가? 그가 정말 돌아왔다고?이건...!분노하고 있는 배준우의 모습에 이대로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량천옥도 나쁜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낳은 아들도 그다지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그녀를 대하는가!배준우의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던 고은영은 그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진짜 모르는 사람이에요.”“모르는 사이인데 그러고 있었단 말이야?”“정말 그 사람이 나를 붙잡은 거예요.”고은영은 모조리 불었고 모든 책임을 배윤에게 떠넘겼다.그녀는 성모마리아처럼 한없이 착한 박애주의자는 아니었다. 배준우의 분노를 마주하고 있는 그녀로서는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억울해하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그녀의 표정에 배준우가 물었다. “진짜 몰라?”“맹세컨대, 나는 그 사람 전혀 몰라요.”“...” 맹세까지 하는 걸 보니 내가 오해한 것 같군.“일단은 믿어볼게.”그의 말에 그녀는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그녀는 정말 무서워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혼자서 절대 움직이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런 단독 행동이 언제
겁에 질린 그녀를 보던 배준우는 열심히 표정 관리를 했다.허락받은 고은영은 재빨리 휴게실로 도망갔다.그녀가 자리를 비운 잠깐 사이에 휴게실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되었다.휴게실을 정리하는 일이 그녀의 임무라고 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책임질 필요 없어 보였다.매일 배준우와 함께 출근하는 그녀는 너무 한가했다.사무실.사무실에 들어선 배윤은 소파로 다가가 거만하게 앉았다. 그 모습은 엄숙한 표정의 배준우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대체 무슨 일이야?”배준우가 차갑게 물었다.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배윤은 불량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매우 닮아 있는 그들이었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진지하고 차분한 배준우와는 달리 배윤은 거만하고 거칠었다.손에 든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던 배윤이 물었다.“진짜 끝까지 해보려는 거예요?”배준우는 앞에 놓인 물 한 컵 들이켰다.“내가 아니고 오히려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그렇다면 형에게 협박당한 거겠죠.”오늘 량천옥은 배 씨 저택에서 한바탕 난리 쳤었다. 그것은 배항준이 고심 끝에 천의를 여전히 배준우에게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죽어도 동의할 수 없었던 량천옥은 결국 수면제를 삼켰다.그녀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것이었다.배준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네가 이렇게 못난 모습인 걸 알게 된다면 아마 그 사람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할 거야.”순간 배윤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그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다.“형, 한 번만 봐줘요.”배윤이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배준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는 배윤보다 8살 위였고 고은영은 배윤과 비슷한 또래였다.량천옥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동생인 배윤에게는 그 어떠한 악감정도 없었다.1달 전만 해도 배윤을 원망하지 않았던 배준우지만 지금은...순간 나태웅이 조사했던 자료가 뇌리에 스쳤다. 배준우는 입가에 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천의에서 사라진다면 그렇게 해줄게.”순진한 얼굴 뒤에는 악마의 사악한 얼굴이
전과 완전히 다른 배준우의 모습에 배윤은 당황하고 말았다.그도 배준우가 자신의 어머니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실 그도 마찬가지였다.그가 형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풀리던 것들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배윤은 배준우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무언가를 보아내려 했다.하지만 그의 눈은 너무 깊어 도저히 가늠이 가지 않았다.결국, 배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형이 천의로 돌아오면 그 사람을 정말 죽음으로 몰아넣는 거예요. 그러니 형, 한 번만 봐주세요.”배윤도 량천옥을 어머니가 아닌 ‘그 사람’으로 칭하고 있었다.수년 동안 강성에서 량천옥의 평판은 좋지 않았고, 아마 어렸을 때부터 량천옥의 행동이 굴욕적이라 느꼈던 배윤에게는 아직까지도 마음의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하여 지금까지도 량천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더군다나 량천옥은 지금 천의를 잃을 수 없었다. 잃게 된다면 그의 빚은...!배윤의 눈이 다시 차갑게 변했다....결국 배윤도 돌아갔다.사무실로 들어선 나태웅은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배준우를 보았다.“천의에 관한 일 때문에 대표님을 찾은 겁니까?”“천의 말고 그를 귀국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전에 배준우와 량천옥이 심하게 다툴때에도 눈 가리고 아웅 하던 배윤이었다.그러던 그가 이번에 돌아온 것을 보니 천의가 그에게도 중요한 것 같았다.“그는 그동안 대표님을 속이고 있었어요.”나태웅이 말했다. “아니, 그는 나를 속이지 않았어.”나태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준우가 반박했다.나태웅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속이지 않았다고? 배준우는 동생을 싫어했지만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그도 천의를 손에 넣으려는 거야.”“네.”배윤에게는 지금 천의밖에 남지 않았다.량천옥이 천의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에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나이 든 배항준에게는 이미 아무런 힘이 없었다.
나태웅이 나가고 배준우는 휴게실로 향했는데, 고은영은 목도리를 뜨고 있었다.지금은 손놀림이 예전처럼 어리숙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전보다 훨씬 빨라진 것 같았다.배준우가 들어오자 고은영은 서둘러 손에 들고 있던 뜨개질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진짜 모르는 사람이에요.”배준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아직도 그걸 말하고 있는 거야?“모르면 모르는 것이지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어쨌든 민감한 신분을 가진 분이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배준우가 무서웠다.조금 전 로비에서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잡아 먹을 기세였기 때문이다.듣고 있던 배준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를 품에 안은 그는 사슴처럼 순진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입맞춤을 했다.부드럽게 그녀를 탐하는 그의 모습은 아까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읍!”고은영이 신음을 터뜨렸다.그녀의 입술은 배준우 때문에 따끔거렸다.그녀의 신음에 배준우는 살며시 그녀를 놓아주었다. 빨개진 그녀의 입술을 살짝 만지던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그렇게니 무서워?”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무서워요. 진짜 너무 무서워요...!”“바보야, 난 너의 남편인데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 있어?”남편이라는 두 글자에 더욱 힘을 주며 말하는 배준우에 고은영은 마음이 무거웠다.“하지만 우리는 결국...”“그만!”뭔가 말하려는 그녀를 배준우가 제지했고, 고은영은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그와의 긴 시간 동안 고은영도 어떤 말들은 아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특히 그들의 가짜 결혼은 회사에 비밀로 해야 했다. 여기저기 다니며 떠벌이면 그녀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지금 반복적으로 그녀에게!“그럼 매일 밤 일어나는 일에 대해는 책임지실 건가요?”“뭐?”“그러니깐 당신이...”고은영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고, 얼굴도 이미 붉게 달아올랐다.그녀는 배준우보다 8살이 어렸기에 아주 성숙하고 노련
서류를 든 진청아가 사무실 밖에서 문을 여러 번 두드렸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히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결국 몸을 돌렸다....고은영이 자리를 떠나고 량일은 카페에 오랫동안 앉아있다가 넋을 잃은 모습으로 카페를 걸어 나갔다.동영그룹에서 걸어 나오는 배윤을 보자 그녀의 심장이 떨려왔다.“윤아!”그리고 배윤에게로 걸어갔다.그녀의 목소리에 배윤도 량일을 발견했다. 침울한 표정이었던 그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할머니.”배윤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량일을 부르자 량일이 물었다. “준우를 만나러 온 거야? 다음에는 혼자 오지 마.”그녀는 단호했다. 요즘 그들은 매우 불쾌한 일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량천옥이 물러서지 않으려 하는 것도 배윤을 위해서이기도 했다.배준우는 비록 전에 배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되찾으려는 배준우의 태도에 어느 정도 경계해야 했다.“네, 형 만나러 온 거예요.”배윤이 ‘형’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량일의 마음이 복잡했다.“형이라고 생각하는 너를 그 애는 동생이라고 생각해?”그녀는 거침없었다.이것은 그녀와 량천옥이 배윤에게 주입하고 있는 개념이기도 했다.배항준의 기분이 어떻든, 배준우에 대해서 그녀들은 항상 이런 태도였다.하지만 배윤은 그녀들의 말을 듣지 않았고 배준우와 가까이 지냈다. 그러는 배윤이 그녀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래도 내 형인데 할머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얘는...”량일이 노했다.배준우를 선택한 고은영 때문에 이미 머리가 아픈 상태인데 배윤도 이 모양이다.하늘의 뜻인지, 아니면 그녀들이 보복당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량일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집에는 들른 거야?”“아직이요.”배윤이 고개를 저었고, 량일은 아주 불만스러웠다.“집에도 들르지 않고 준우를 만나러 왔단 거야?”배윤의 이런 무심한 행동이 그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공항이 동영그룹과 가깝잖아요.”대충 둘러대고 있는 배윤의 변명에 넘
“이미 한두 번 만난 게 아니지 않아요? 그 여자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던데요?”듣고 있던 량일은 깜짝 놀랐다.“네가 어떻게 여러 번 만났단 것을 알고 있는 거야?”그녀는 아주 예민한 사람이어서 조금만 이상함을 느끼면 바로 짚고 넘어가야 했다.“형이 그 여자를 빌미로 아버지를 협박하고 있으니, 어머니와 할머니도 이렇게 서두르는 거 아니에요?”배윤의 물음에 량일은 숨이 탁 막혀왔다.급한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은... 이미 아주 난처해진 상황이였다.고은영에 관한 일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빨리 처리해야 한다....배씨 가문.배윤과 량일이 막 저택에 도착했을 때 량천옥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시선을 주고받은 둘은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진짜 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 거예요?”량천옥은 배항준을 잡고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었다.그런 그녀때무에 배항준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당신이 먼저 천의를 준우에게 넘기라고 내가 말했잖아.”“먼저 넘기고 그다음은요? 그다음엔 진짜 다시 돌이킬 수 있나요? 당신의 아들이 어떤 자식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량천옥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배항준이 그녀를 보는 눈빛도 매서웠다. 하지만 이런 그의 모습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 왜 넘기라고 하는 거예요? 넘기고 나면 윤이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요!”량천옥은 어이가 없어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그동안 야금야금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배준우 때문에 그녀는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었다. 장항 프로젝트가 시작임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배항준은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고 장항 프로젝트만 손에 넣으면 배준우가 잠잠해질 것이라고 믿었다.그런데 잠잠해졌는가?지금은 천의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어쨌든 준우와 그 여자는 결혼하면 안 돼!”지금 배항준은 고은영에 대해 점점 더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결혼을 결사 반대하고 있었다.“
배윤과 량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배윤이 돌아온 것을 본 배항준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배윤이 끼어들면 상황만 더 복잡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내가 돌아온 것이 정말 반갑지 않은가 봐요?”소파에 앉은 배윤이 배항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배항준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배항준을 지켜보던 량일은 무언가 말하려다 망설였다가 결국 한마디 했다.“난 올라가서 천옥이를 살펴보겠네.”배항준 앞에서는 발언권이 없는 자신이라는 것은 량일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하여 매번 배항준과 량천옥이 싸울 때면 량일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필경 배항준의 신분과 지위는 그녀가 훈계를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도 했다.그녀가 많이 간섭할수록 량천옥만 힘들게 될 것이다....위층.량천옥은 담배를 피고 있었다. 원래는 담배를 피지 않았던 그녀이지만 너무 심란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량일이 방에 들어섰을 때 방안에는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만 피워.”“설마.. 나를 통제하려는 건가요?”량천옥의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량일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본 적 없는 반항심이 어려있었다.그녀의 반항을 처음 겪는 량일이다.량일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나도 이제 나이가 45예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혹은 담배를 몇 대 피는 것까지 어머니의 동의를 거쳐야 하나요?”반항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량천옥은 곧 폭발할 듯 으르렁거렸다.지난 세월 동안 그녀의 생활은 모두 량일이 계획하고 있었다. 매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두 량일이 결정했다.량천옥은 그렇게 그녀의 지휘대로 걸어갔는데도 량일이 원 하는 대로 살지 못했다.량일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조용히 량천옥을 바라보았다.“내가 너무 많이 간섭한다고 탓하는 거야?”“오랫동안 어머니 말을 따랐고 그 결과,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보세요. 나는 곧 모든 것을 잃게 생겼다고요.”량천옥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이것이 량
혹시 배항준이 배윤을 만나면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까?어쨌든 지금은 배항준과 맞서는 것이 그녀들에게는 좋을 것이 없었다.금방 배항준과 한바탕 싸웠던 것을 떠올린 그녀는 그제야 모친의 의도를 파악했다.그렇게 그녀는 마음을 다스리며 한숨을 내쉬었다.“배윤을 본 그이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약해지길 바래야겠어요.”천의에 대한 그녀의 노력은 모두 배윤을 위한 것이란 것을 배항준도 알고 있다.그러니 배윤을 봐서라도 천의를 배준우에게 넘기라고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그 순간만큼은 량천옥도, 량일도, 모두 배항준이 배윤때문에 생각을 바꾸길 바랬다....동영그룹.거의 퇴근할 무렵 배준우는 고은영더러 퇴근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때, 뜻밖의 손님이 불쑥 찾아왔고, 그것은 바로 진승연이었다.그가 진씨 가문을 상대하고부터는 보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가 미친 사람처럼 쳐들어왔다.“고은영, 이 망할 년! 넌 보복당할 거야! 반드시 보복당할 거라고!”지난 며칠 동안 진승연은 하루 종일 방에만 있었다.노빈과의 결혼은 연기되었다. 그것은 결혼 당일 그녀가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그녀 때문에 부득이하게 결혼식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이렇게 큰 소란을 피웠는데도 그저 결혼식을 연기하는 것뿐이었다.그녀는 완전히 미칠 것 같았다...!하지만 북성에서 저지른 일들이 그녀에게 파국을 가져올 줄 몰랐다.고은영은 미쳐버린 그녀를 바라보다 배준우에게 시선을 돌렸다.표정이 어두워진 배준우는 진청아를 보며 말했다.“경비 불러!”“이미 불렀습니다.”진청아는 정중하게 대답했다.방금 회사로 들어선 진승연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진청아는 서둘러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다.이제 곧 경비원들이 올라올 것이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우리의 우정이 진짜 이것밖에 안 됐던 거예요? 어떻게 노빈, 그 멍청이랑 결혼하라고 해요? 어떻게 이러냐고요! 미월언니에게도 너무 한 거
“진이훈!”“네, 대표님.”“거기 서서 뭐 해! 얼른 돕지 않고!”나태웅이 고함을 질렀다.겨우 한숨을 돌렸던 진이훈은 그런 나태웅의 말을 듣고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것만 같았다.‘나도 같이 죽자는 건가... 아무리 상사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진이훈은 죽고 싶지 않았다....나태웅은 결국 강제로 끌려 들어갔다.새벽 두 시. 나태범은 실크 잠옷을 입고 얼굴을 찡그린 채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단잠을 방해한 녀석이 썩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나태범은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체력이 남아도는 모양이야?”동영 그룹에서 사람이 되어 온 줄 알았더니만, 지금 보니 사람이 덜 된 것이 분ㅁ여하다.16살 때보다 더 세게 반항하고 있으니 말이다.그때도 나태웅을 진정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어려워졌다.나태범의 사람들은 나태웅을 끌고 들어와 의자에 억지로 앉혔다. 의자에 앉는 순간 나태웅은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감을 드러냈다.나태범은 그런 나태웅을 보면서 더더욱 화가 났다.“내가 오늘 너한테 한 말을 다 잊은 거야?”“안지영은 지금 킹덤 타운에 있어요. 방법을 대서 거기서 나오게 해야해요.”“...”“...”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보듯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뿐만이 아니었다.나태웅을 잘 아는 사람들은 나태웅이 몇 년 동안 변하지 않았음을 잘 알아낼 수 있었다.동영 그룹에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변한 것 하나 없었다.“너 이 자식, 안지영이 킹덤 타운에 산다고 해서 킹덤 타운에 쳐들어가 그런 짓을 벌여?”그렇게 말하면서도 나태범은 가슴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꼈다.나태웅이 드디어 조바심을 내니까 말이다.“이유가 부족한가요?”“그래,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보마.”“아버지!”옆에 있던 나태현이 언성을 높였다.나태범과 나태현의 시선이 부딪쳤다. 나태현의 눈빛은 차갑고 진지했고 나태범의 시선은 어쩔 수 없다는 것 같았다.나태현은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프로젝트 두
나태웅이 킹덤 타운으로 돌아가려 하자 나태현은 화가 나서 나태웅의 뒤통수를 후려쳤다.“너 이 새끼 그만할 때도 됐잖아!”‘어쩌다가 이런 놈을 친동생으로 둬서...’“난 킹덤 타운에 갈 거야. 지금 당장! 얼른 운전해!”나태현은 화가 치밀어올라 숨도 가빠졌다.앞에 앉아 있던 운전기사는 나태웅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백미러를 통해 나태현을 쳐다보았다.나태현은 심호흡을 여러 번 했지만 여전히 진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화가 난 나머지 충동적인 결정을 내렸다.“그래, 가버려!”그러고는 차에서 내려 문을 쾅 닫았다.차에는 나태웅과 운전기사만이 남았다.나태웅이 차갑게 말했다.“운전해.”운전기사는 그 말을 들으면서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었다.운전기사는 나태웅을 데리고 킹덤 타운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오늘 밤 일 때문에 나태현을 데리고 킹덤 타운에 갔을 때 두 사람 눈앞에 벌어진 장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나태웅과 장선명 다 이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지금 다시 킹덤 타운에 돌아가면 아까보다 더 심하게 싸울 것이다.게다가 나태웅이 계속 부르는 그 안지영이라는 사람도 장선명의 편을 드는 것 같던데.어느새 진이훈의 차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진이훈을 본 운전기사는 동아줄을 잡은 것처럼 기뻐했다. 나태현의 명령도 잊은 채 바로 차에서 내려 도망쳤다.차에서 내린 진이훈은 운전기사가 차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발견했다.그럼에도 당황하지 않고 나태웅에게 다가가 물었다.“대표님, 오늘은 여기서 묵으실 겁니까?”진이훈은 나태웅이 이곳에서 묵지 않을까 봐서 걱정이었다.지금 나태웅의 상태를 보아하니 진이훈이 운전해도 소용없을 것이다.게다가 화가 잔뜩 난 상태니 곱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나태웅은 천천히 눈을 떴다.어두운 공간 속에서 나태웅의 두 눈은 위험하게 반짝였다. 밖에 서 있던 진이훈은 싸늘한 눈동자를 보면서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피어올랐다.나태웅이 차갑게 얘기했다.“킹덤 타운으로 간다.”“...”그 말을 들
역시나 사업가의 딸이라 그런지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안지영은 나태웅이 전에 안지영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잊은 모양이다.나태웅이 이 사실을 안다면... 더욱 큰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다시 또 이곳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난장판은 두 개의 프로젝트 덕분에 끝이 났다.배준우가 떠난 후 장선명은 안지영을 품에 꽉 안은채 물었다.“어떻게 프로젝트 두 개에 본인을 팔 수 있어?”“사실 백서면 충분했는데, 덕분에 서탑까지 가져오게 됐네요.”안지영이 애교 섞인 말투로 얘기했다.그래서 나태현이 처음에 서탑을 얘기했을 때는 가만히 있었지만 백서를 언급하자 바로 허락한 것이다.백서의 프로젝트는 안열이 자주 얘기하던 것이다. 안지영은 백서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좋은지 잘 알고 있었다.장선명은 여전히 불만스러웠다.“네가 승낙하지 않았으면 나태현이 더 얹어줬을 수도 있잖아.”나씨 가문의 사람들은 재력을 과시하길 좋아한다.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이니 이 기회에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도 있었는데...장선명의 불평을 들으면서 안지영은 이마를 짚고 얘기했다.“걱정하지 마요. 우리가 더 승낙하지 않았다면 그냥 나태웅을 버리고 갔을걸요?”“...”장선명은 나태현이 그런 냉혈한일 줄은 몰랐다.하지만 안지영은 나씨 가문의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다. 나태현이라면 자기 동생을 버리고도 남을 것이다.장선명 눈가에 생긴 상처를 보면서 안지영은 속으로 나태웅에게 욕설을 가득 퍼부었다.‘정말 미친놈 아니야? 여기까지 쳐들어와서 사람을 떄리다니.’...나태웅은 나태현에게 끌려 나가서 차에 앉았다.그러면서도 화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그런 나태웅을 보면서 나태현은 동생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나씨 가문에 도착한 후 나태현이 입을 열었다.“직접 가서 회장님께 얘기 드려.”두 프로젝트는 나태웅 때문에 넘기게 된 것이다.사실 나태현은 킹덤 타운에 가기
분위기는 차갑기만 했다.장선명의 태도는 아주 결연했다. 나태웅이 오늘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킹덤 타운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배준우는 안지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만하자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안지영은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했다.안지영은 이미 나태웅 때문에 화가 극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런 나태웅을 위해 장선명을 말리라고? 왜? 안지영의 태도는 장선명과 같았다.그런 안지영의 태도를 본 배준우는 나태웅에게로 시선을 돌려 눈치를 주었다.나태웅도 알 수 있었다.나태웅은 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이를 꽉 깨물었다.모든사람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 나태현이 장선명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그러면 서탑의 프로젝트를 너한테 줄게.”장선명은 그 말을 듣고 차갑게 웃었다.“내가 약혼녀를 팔아넘길 사람으로 보여요?”“...”“백서의 프로젝트도.”“내가...”장선명은 화가 났다.하지만 장선명이 화를 쏟아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장선명의 손을 잡아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장선명은 어리둥절해져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그래요. 호탕해서 좋네요. 받아들일게요.”“안지영!”장선명이 이를 꽉 깨물었다.“이제 가세요.”“...”장선명은 화가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장선명은 그깟 돈에 안지영을 팔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안지영은 흔쾌히 자신을 팔아넘겼다.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안지영의 허락을 받은 나태현과 배준우는 다 한숨을 돌렸다.나태현이 일어서서 나태웅을 향해 얘기했다.“가자.”하지만 나태웅은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안지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차가운 눈빛은 안지영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았다.그런 나태웅을 본 나태현은 얼른 일어나 나태웅을 끌어갔다.“가자니까.”이러고 있다가는 더 큰 일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나태웅은 나태현에게 거의 끌려 나가면서도 끝까지 안지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안지영이 왜 허락하는 거지? 왜 장선명 대신 결정하는 거지? 안지영이 장선명의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자
급한 일이기는 하지만 배준우는 일단 품속의 고은영부터 다독였다.이렇게 귀엽고 포근한 아내를 두고 집을 나서야 한다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나태웅은 다른 남자의 여자를 넘보고 있으니. 이런 기분을 모르겠지.’배준우는 나태웅이 안지영과의 사이를 제대로 처리 못 해서 이 사달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제 나태웅과 안지영의 사이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비틀어졌다. 그러니 이렇게 애를 써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배준우는 나태웅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먼저 자. 난 늦게 돌아올 거니까.”“지영이 일 때문이에요?”고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응,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나태웅이 킹덤 타운에 갔대. 안지영은 지금 킹덤 타운에서 장선명과 동거 중이거든.”배준우의 말을 들은 고은영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대충 알 것 같았다.안지영을 향한 나태웅의 집착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이런 상황에 놓인 안지영을 떠올린 고은영이 얘기했다.“나도 같이 갈게요.”“그러지 마. 같이 가 봤자 싸우는 모습만 보고 올 텐데.”“...”고은영은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장선명과 안지영은 다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다.거기에 궁지에 몰린 나태웅까지 더해지면...“그래요. 그럼 난 안 갈게요.”고은영이 대답했다.고은영은 약간 맥이 빠졌다.고은지는 오늘 이미 천락 그룹에 출근했다. 고은영은 고은지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배준우가 킹덤 타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열두 시 반이었다.거실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었는데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나태현은 이미 도착해있었다.거실의 분위기는 북극보다도 춥고 무거웠다.장선명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입가에 피가 묻어있었다.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 옆에 앉아 있었다.나태웅은 다른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얼굴에도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이훈도 두 그림자를 보았다.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뒷좌석을 스윽 살피고는 전전긍긍하면서 물었다.“대표님, 돌아갈까요?”‘그러게 내가 오지 말자고 했잖아!’킹덤 타운에 찾아와봤자 창피만 당하고 쫓겨날 것이다.진이훈은 나태웅이 바로 별장으로 쳐들어갈까 봐 걱정되었다.이윽고 차량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이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나태웅은 먼저 차에서 내려버렸다.“...”진이훈은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 이윽고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바로 차에서 내렸다.“대표님, 대표님!”진이훈은 나태웅을 꽉 잡았다.이곳은 킹덤 타운이다. 나태웅이 이곳에서 일을 벌여봤자 좋은 점은 하나도 없다.게다가 장선명의 성격이 어떤지는 강성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 아닌가.장선명은 위험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다.장선명을 건드린 사람에게는 좋은 결말이 없었다.다만 나태웅과 진이훈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장선명이 벌써 돌아왔다는 것이다.나태웅은 원래 안지영과 끝장을 보려고 이곳에 온 것이었건만, 신나나를 찾으러 간 장선명이 벌써 킹덤 타운에 돌아왔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창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아하니, 두 사람은 신나나 때문에 싸우지도 않고 있었다.두 사람의 그림자는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이거 놔!”나태웅의 명령에도 진이훈은 나태웅을 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 꽉 잡았다.그리고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대표님, 안지영 씨는 확실히 장선명 씨의 약혼녀입니다.”안지영과 장선명의 시작이 어찌 되었든, 애원이었는지, 거래였는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결국 정상적인 예비부부가 되었다.‘장선명 씨의 약혼녀’라는 말이 나태웅의 신경을 긁었다.진이훈이 아무리 말려도 나태웅은 결국 진이훈을 뿌리쳐냈다.“대표님, 대표님!”나태웅의 세상은 완전히 붕괴하였다. 나태웅은 지금 진이훈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화가 잔뜩 난 채로 킹덤 타운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진이훈의 머릿속은 오직 한마디로 가득했다.‘오늘 이곳에
진이훈은 자기 뺨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찾아가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저 여자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너무 화내지 마십쇼. 안지영 씨는 나 대표님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장선명 때문에?”“...”진이훈은 할 말을 잃었다.정확하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씨 가문은 장 씨 가문에게서 사과를 받아내야했디.하지만 나태웅의 충동적인 결정 때문에 그것마저도 거품으로 돌아갔다.진이훈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태웅은 화가 나면 그 감정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잊는 사람이었다.그 시각.안지영도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장선명은 저녁 열한 시에 들어왔다. 여덟 시에 나갔으니 총 세 시간 동안 밖에 있은 셈이었다.집에 돌아온 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물었다.“왜 화내고 있는 거야?”“나태웅 때문에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안지영의 화를 이만큼이나 돋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태웅이 유일할 것이다.이제야 회사 일 때문에 나태웅에게 제대로 복수도 하지 못했는데, 나태웅은 거의 매일 시비를 걸었다.게다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나태웅 때문에 안지영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태웅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안지영은 그런 나태웅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나태웅이 매일 시비를 걸고 또 자기 아버지까지 끌어들였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신나나 씨는 어때요?”안지영은 나태웅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바로 화제를 돌렸다.나태웅 얘기를 듣던 장선명은 표정이 어두워졌다.신나나의 얘기를 꺼내자 장선명의 표정은 더욱 썩어들어갔다.“눈가를 3cm 정도 봉합했어. 지금은 병원에 있어.”“그렇게 심각한 일이었어요?”안지영은 아주 놀랐다.클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하지만 신나나는 매직 썬의 에이스로서 인기도 많고 돈벌이도 쏠쏠했다.기씨 가문은 요즘 들어 강성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문이었지만 장씨 가문과
안지영은 화가 나서 이마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였다.전화기 너머의 나태웅은 계속해서 이어 얘기했다.“안지영, 장선명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본 남자야. 네가 그런 남자의 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아니면, 장선명이 정말 너랑 약혼할 거라고 생각해? 매하리에서 한번 은혜를 입었다고 정말 너를 데리고 일생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지금도 봐, 장선명은 다른 여자를 위해 너를 버렸잖아!”안지영은 나태웅의 말투가 안지영의 불행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장선명에게 버려진 안지영을 보면서 축하 파티라도 열 사람 같았다.나태웅의 인성을 잘 아는 안지영은 나태웅의 생각도 쉽게 알 수 있었다.‘전에 동영 그룹에 있을 때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하, 그렇게 말하면 본인이 장선명 씨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왜 나더러 하주원한테 가서 사과하라고 하는 거예요? 시비를 가리는 눈이 없나 봐요?”“그건 다른 일이잖아!”“뭐가 다른데요! 내로남불 같은 놈.”안지영이 중얼거리면서 말했다.지금의 안지영은 그저 나태웅을 욕할 기회만 있으면 서슴지 않고 욕설을 쏟아냈다.안지영은 전 세계의 욕설을 모아서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나태웅은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말이다.“안지영, 좋은 말로 할 때 입에서 걸레 빼.”“너나 입에서 걸레 빼세요.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내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당신만큼은 죽어도 찾아가지 않을 테니까. 왜 계속 내 눈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거예요! 관종이에요?”“...”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확신했다.‘안지영,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선심을 써서 얘기해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뿐이었다.하지만 안지영은 쉬지 않고 이어서 얘기했다.“그리고, 선명 씨가 신나나 씨 때문에 매직 썬에 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와서 귀띔해 줄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알려줬다고? 이건...’“나태웅 씨, 당신은 장선명이랑 비교하
‘지금 벌인 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미친 거 아니야?’안지영은 심호흡을 하면서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려고 노력했다.“안지영,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나태웅은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고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안지영도 더는 참지 못하고 같이 화를 냈다.“내가 생각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나태웅,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나태웅에게 괴롭힘당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안지영은 나태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강성의 사람들은 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미치광이가 된 줄 안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의 정신병이 대대로 유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강성에서 가장 잔인한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그리고 이제는 안지영을 괴롭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장선명까지 괴롭히려고 한다.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숨이 턱턱 막혔다.“내가 뭐 하는 거냐고? 뭐 같아 보이는데?”“내가 당신 같은 사람의 속셈을 어떻게 알겠어요! 궁금하지도 않아요!”안지영은 짜증이 확 몰려왔다.안지영은 나태웅 때문에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채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안지영, 장선명이 오늘 밤 왜 나갔는지 정말 모르겠어?”“당신이 일을 벌이니까 나간 거잖아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죽이고 싶었다.“신나나 때문에 킹덤 타운을 떠난 거야.”“...”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분노로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었다.안지영은 숨이 점점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난 나머지 제 자리에 서서 몇 바퀴나 돌았다.나태웅에게 뭐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나가지 않았다.아무 대답도 못 하는 안지영을 보면서 나태웅은 말투를 약간 누그러뜨렸다.“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장선명은 신나나를 구하러 매직 썬에 간 거야.”나태웅은 일부러 신나나의 이름을 강하게 읽으며 얘기했다.마치 안지영에게, 장선명은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