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영은 오늘 휴가날이다. 어제 큰 계약을 하나 성사시켰기에 계약을 체결한 둘째날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래서 고은영을 만나고는 여유롭게 쇼핑을 하러 갔다. 근데, 그때 나태웅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 실장님.” 천락그룹에 오고 나서야 안지영은 나태웅이 천락그룹의 대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능력 있는 사람이 왜 아직도 배준우 옆에 붙어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씨네 집안도 복잡하니 뭔가 목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임 카페에서 한 시간 뒤에 만나.” “네?” 어쩌다가 온 휴가날에 사람을 부르니 안지영은 굉장히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나태웅이 자신과 고은영의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지금 바로 갈게요.” 안지영은 전화를 끊고 아쉬운 눈길로 쇼핑몰을 한번 둘러보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안지영은 선글라스를 벗고 들고 있던 물건들을 차 트렁크에 던지고는 차를 몰고 주차장을 벗어났다. 안지영이 카페에 도착했을 때 나태웅은 이미 와있었다. 카페 직원이 안지영을 보고는 공손하게 물었다. “안 아가씨 되십니까?” “네.”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이 그녀를 안쪽으로 모셨다. “이쪽으로 오세요. 나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나태웅은 일부러 아예 방을 하나 잡았다. 카페 안은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왔지만 안지영은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매번 나태웅이 찾아올 때마다 좋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직원이 방의 문을 열자 나태웅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비록 호감이 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정말 잘생긴 거 하나는 인정해 줘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지영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방안에 들어갔다. “실장님.” “앉아.” 나태웅이 앉으라고 손짓하자 안지영은 그제야 나태웅 맞은쪽에 앉았다. “커피는 이미 주문했어.” “감사합니다.” 사실 안지영은 쓴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안지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나태웅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그런 거는 절대 아니에요!” 안지영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에게 뭘 못 말하겠냐만은 고은영이 떠날 거라는 이런 큰 사건에 관해서는 도대체 얘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됐다. 하지만 나태웅은 임신 사실도 비밀로 해줬으니 이번에도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고은영을 도와주고 싶지만 확실히 그럴 능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나태웅이라면 다를 수도 있다. 그가 나서준다면 고은영이 떠나는 게 훨씬 쉬워질지도 모른다. “혹시 배대표님이 천의를 다시 가져오려고 하시는 건가요?” 안지영의 물음에 나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타이밍이 된 것 같아.” “하지만 쉽지 않겠죠?” “쉽지는 않지.” 량천옥이 배윤을 위해 키운 사업이니만큼 쉽게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집안은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미 알고 있으신 것처럼 은영이는 임신을 했어요. 기다렸다가 협의하에 이혼을 하게 되면 이미 배가 어느 정도 부른 상태일 거예요. 그래서 그땐 숨기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그 후과는 저랑 은영이 둘 다 감당하기가 버겁고요” 안지영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상상할수록 두려워진 것 같았다. 나태웅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계획은?” “은영이는 떠나야 돼요. 이미 배가 불러오고 있는 거 못 느끼셨어요?”임신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숨기기 어려웠다. “떠난다고?” 그러니까 배준우가 아직도 고은영과의 사이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서 고은영이 이제는 떠날 생각까지 한단 말인가? 나태웅은 배준우의 악취미에 진절머리가 났다. 임신한 사람을 이렇게 놀라게 해도 되는 걸까? “네, 떠나야만 해요.” 하지만 안지영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이 떠나지 않는다면 고은영뿐만 아니라 자기 집안까지 그 후과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관건은 나태웅이 그들을 도울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하지만 이전에도 나태웅이 이 사실을 숨기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안지영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그러나 다음 순간 나태웅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그 두 사람 혼인 관계라는 것이 사실인데 은영 씨가 성공적으로 강성을 떠난다고 해도 혼인관계 증명서만 있으면 배준우가 사람 하나 찾는 건 일도 아니야.”맞다, 바로 이 점이 바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지금 당장 이혼하지 못한다는 사실만 아니었다면 그녀도 고은영에게 굳이 이런 아이디어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안지영이 애처롭게 물었다.“그럼 태웅 씨가 둘이 이혼할 수 있게 좀 도와주면 안 될까요?’고은영을 위해서 그녀는 정말 목숨을 걸었다.‘전생에 이 계집애한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지금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이 일로 인해 정말 가슴 졸였던 순간들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안 될 것 같아. 지금은 천의 프로젝트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안지영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이제 더는 물러설 데도 없는데 대체 어쩌자는 거지?’원래 나태웅과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까지도 싸워서 가출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나태웅의 이런 분석을 듣고 나니 그건 아마도 매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천의를 손에 넣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뭐!”“그때까지 기다렸다간 이미 배가 불러서 곧 출산하겠어요!”남자들이란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지금도 고은영의 배는 이미 너무 커져서 숨길 수가 없었다.나태웅이 말했다.“그럼, 그냥 사실대로 고백하는 건 어때?”“정말 이게 최선인가요?”안지영은 숨이 턱 막혔다.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심장은 바짝 조여왔다.나태웅은 그녀의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간사한 생각이 살짝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한때 동영 그룹 최고의 세일즈맨이었던 그녀도 IQ가 별로 높지 않다는 생각에 그는 문득 배준우가 왜 고은영에게
어쨌든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떠나든 결국 발견될 가능성이 높았고 한번 발각되면 다시 도망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그때야말로 모든 것을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그래, 그럼 기다릴게.”안지영에게 있어서 고은영은 맹목적인 신뢰를 하고 있었기에 결국 그렇게 최종 결론이 났다.다만 두 사람은 한 가지 몰랐던 것이 있었다.나태웅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뒤돌아서 서는 곧바로 배준우에게 모든 것을 싹 다 일러바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준우는 고은영이 도망치려는 생각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휴게실로 돌진해 그녀를 단번에 제압했다.“안 돼요, 이러지 마요! 너무 아파요!”남자의 신체 변화를 느낀 고은영은 헐떡이며 힘겹게 몸부림쳤고, 불쌍하게 흐느끼는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안쓰러웠다.그러자 배준우는 매우 거칠게 그녀를 앙 깨물었다.고은영은 날 것 그대로 물리면서 아픔을 참지 못했다. 원래부터 아픈 것이 싫었던 그녀는 순식간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지금 대체 뭐 하는 거예요? 흑흑!”“목도리는 대체 언제 짜줄 거야? 너무 추워.”고은영이 침묵했다.“……”‘고작 목도리 때문에 나를 이렇게까지 깨문다는 게 말이 돼?’배준우는 고은영의 속마음은 몰랐지만 다만 이런 가련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결국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배준우가 일어나면서 그녀의 앙증맞은 턱을 확 움켜쥐며 말했다.“영아!”“네?”배준우가 느닷없이 자신을 영아라고 애칭을 부르는 것을 듣고 갑자기 안색이 굳어졌다.곧바로 배준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네가 나한테 뭐 한 번이라도 실수하잖아? 그럼 내가 널 삶에 회의감이 들 정도로 널 가난하게 만들어 버릴 거니까 두고 봐!”고은영의 가슴은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졌다.‘이 망할 놈이 정말로 내가 삶에 회의감이 들 정도로 날 가난하게 만들까?’고은영은 할머니와 함께 용산에 살았을 때 이미 여러 번 삶에 회의를 느낄 정도로 인생을
고은영은 량일의 다소 무례한 태도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감히 올라와서 나를 찾을 생각하다니! 자기 딸이 벌려 놓은 일은 생각도 안 하나 봐?’그녀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나중에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난리를 칠 생각하면 짜증이 났다.결국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원래는 배준우에게 귀띔을 해주고 싶었지만 이미 회의에 들어간 상태였고 비서실장인 진청아도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고은영은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아래층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던 량일은 고은영이 오는 것을 보고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런 미소는 그녀에게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과거에 량천옥 때문에 그녀는 고은영만 보면 그렇게 히스테리를 부렸었다.“혼자 올 줄은 몰랐네.”량일이 감격에 겨워 말하자 고은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서 나한테 또 무슨 짓을 하려고요?”이곳은 동영 그룹 바로 밑에 있는 카페이기 때문에 조금만 소란을 피워도 배준우는 바로 알 수 있었다.그들은 결국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만약 배준우가 화를 낸다면 량천옥에게 피해가 갈 뿐만 아니라 배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만한 손실도 없을 것이다.이 점에 대해서 고은영은 매우 분명했다.고은영의 날 선 질문에 량일의 눈가에 쓸쓸함이 서려 있었기에 량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대화 주제로 들어갔다.“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떠날 생각이 없어요!”그녀는 지금 그녀의 존재가 량천옥에게는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배항준은 배준우와 그녀의 결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배준우가 어떤 조건을 제시하든 배항준은 어떻게든 타협할 방법을 찾을 것이었다.그러나 이번에 배준우가 원하는 것은 전체 천의였다.그렇게 되면 량천옥은 자연스레 궁지에 빠져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십상이었다.고은영의 확고한 태도를 본 량일은 눈가에 번졌던 미소가 금세 굳어졌다.하지만 여느 때처럼 안색이 차가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
특히 지금, 이 순간 그녀의 기분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아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은영아, 난 네가 용산 같은 곳에서 힘들게 올라와서 강성에 자기 집도 마련한 것을 보고, 비록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네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하며 네가 참 기특하다고 생각했어.”“……”“네가 굳이 배준우랑 만나지 않아도 넌 지금 충분히 잘살고 있잖아.”량일은 말할수록 점점 조급해졌다.애초에 자신이 무능하지 않았다면 량천옥 역시 본인 때문에 망가지지 않았다면 량천옥을 절대 배항준에게 의지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고은영은 이미 강성에 자기만의 집이 있었기에 배준우를 떠나도 여전히 좋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아무 걱정 고민 없이, 평범하게 말이다. 고은영이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량일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을 덧붙였다.“제 아무리 높이 올라가 봤자 떨어지는 건 다 똑같이 아파!”고은영이 말했다.“그럼 량천옥더러 빨리 천의를 배준우한테 넘기라고 하세요! 그럼 떠날게요!”“너...!”“배씨 가문에서도 나 같은 며느리는 싫지 않나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네요.”량일은 오히려 차가운 숨을 몰아쉬었다,고은영이 이렇게까지 배준우를 배려할 줄은 몰랐다.‘얘 설마 배준우를 정말 좋아하게 된 거야? 진짜라면 정말 골치 아픈데?’고은영은 시간을 보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량일에게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잘 생각해 보세요!”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량일에게 더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량일은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는데, 심장이 마구 떨려왔다.그녀가 카페 입구를 나서는 순간, 그녀도 눈동자 속의 아픔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고은영이 카페에서 나왔다.햇살 아래서 그녀는 량일의 방금 온갖 반응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그런 행동이 오히려 생뚱맞다고 느껴졌다. 그녀도 결코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고 자기 딸을 위해 여우짓까지 스스럼없이 했다.“어이없어
그리고 그녀가 돌아서는 순간, 뒤에 있던 그 해맑았던 소년이 한순간에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그녀는 미처 보지 못했다.원래는 따스하고 촉촉하던 눈동자가 어느새 암울함으로 가득 찼다.……사무실.배준우는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휴게실로 향했지만, 고은영이 보이지 않자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푹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 돌아서서 그는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왔다.진청아는 그의 온몸에 감도는 적대적인 기운을 느끼고 급히 다가갔다.“대표님,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그 사람은?”배준우가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청아는 그 목소리에 순간 움찔했다.그녀의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휴게실 출입구를 향했다.“사모님 안에 안 계시나요? 바로 확인하겠습니다.”그녀도 마침 배준우와 회의실에서 회의하고 있었으므로 고은영이 외출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그녀가 황급히 돌아서서 나가면서 비서실 직원들에게 물었다.배준우는 사무실에 혼자 남겨졌고 그 즉시 나태웅을 사무실로 불렀다.나태웅이 들어왔을 때 배준우가 우울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물었다.“왜, 은영 씨, 없어졌어?”“응.”나태웅이 침묵했다.‘설마? 그 잠깐 사이에 도망을 쳤다고? 분명 안지영하고 얘기했는데,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설마 이 두 계집애가 내 뒤통수를 친 건 아니겠지?’어쨌든 안지영이 했던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 나태웅도 고은영이 도망쳤다고 의심했다.배준우가 눈을 한껏 내리깔고 이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사람을 준비시키고 빨리 잡아 와!”나태웅은 이미 그 말속에서 배준우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몸소 느끼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서 조치에 나섰다.어차피 시간이 많이 지난 건 아니었으니 고은영은 아직 강성을 뜨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다.조치를 내린 다음 정신을 차린 나태웅이 배준우를 향해 비꼬는 말투로 놀렸다.“내가 얘기했잖아, 그 계집애하고는 장난치면 안 된다고!”‘이게 뭐야, 놀래서 결국 도망쳤잖아!’가뜩이나 얼굴색이
생각해 보더니 량여사란 호칭을 붙여주었다!진청아는 아주 현명했다.“량일? 아니면 량천옥?”배준우가 차갑게 물었다.“량일 여사님이요.”고은영이 량일을 만나러 갔다는 말에 배준우는 그만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아래층 카페요.”진청아는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장항 프로젝트를 철회하면서 진청아는 배준우와 배씨 가문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와 계모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도 어느정도 눈치챘을 것이다.음산한 기운을 풍기던 배준우는 량일이 고은영을 아래층 카페로 불렀다는 말에 벌떡 일어나 긴 다리를 옮겨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아래층에 있던 고은영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다달았을 때 고은지의 전화가 걸려 왔다.“쓸 곳도 없는데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준 거야?”“응? 돈? 무슨 돈?”고은지의 물음에 고은영은 당황했다.그녀가 언제 고은지에게 돈을 보냈단 말인가?수화기 너머의 고은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고은영의 반응에 물었다.“네가 아니라고?”“돈이 필요하면 나에게 말하라고 하긴 했는데 언니가 요구한 적은 없잖아.”고은영은 언니를 물심양면 돕고 있었다.이번에 조영수와 이혼한 그녀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고은영이지만 고은지가 거절하는 바람에 돈을 주지 못했다.그런데 고은영이 누군가를 시켜 고은지에게 돈을 보냈다고?고은영은 그런 적 없다.“네가 아니란 말이지?”고은지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400만 원,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럼 대체 누가 고은영의 명의로 돈을 보냈단 말인가?설마...?그 순간, 고은지는 배준우가 떠올랐고 마음이 너무 따뜻해졌다.그녀가 말을 건네려는 그때 배준우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언뜻 보기에도 건들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럼 이만 끊을게.”고은영은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배준우에게로 다가갔다.그녀가 두 발짝도 떼지 못했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고개를
“진이훈!”“네, 대표님.”“거기 서서 뭐 해! 얼른 돕지 않고!”나태웅이 고함을 질렀다.겨우 한숨을 돌렸던 진이훈은 그런 나태웅의 말을 듣고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것만 같았다.‘나도 같이 죽자는 건가... 아무리 상사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진이훈은 죽고 싶지 않았다....나태웅은 결국 강제로 끌려 들어갔다.새벽 두 시. 나태범은 실크 잠옷을 입고 얼굴을 찡그린 채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단잠을 방해한 녀석이 썩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나태범은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체력이 남아도는 모양이야?”동영 그룹에서 사람이 되어 온 줄 알았더니만, 지금 보니 사람이 덜 된 것이 분ㅁ여하다.16살 때보다 더 세게 반항하고 있으니 말이다.그때도 나태웅을 진정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어려워졌다.나태범의 사람들은 나태웅을 끌고 들어와 의자에 억지로 앉혔다. 의자에 앉는 순간 나태웅은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감을 드러냈다.나태범은 그런 나태웅을 보면서 더더욱 화가 났다.“내가 오늘 너한테 한 말을 다 잊은 거야?”“안지영은 지금 킹덤 타운에 있어요. 방법을 대서 거기서 나오게 해야해요.”“...”“...”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보듯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뿐만이 아니었다.나태웅을 잘 아는 사람들은 나태웅이 몇 년 동안 변하지 않았음을 잘 알아낼 수 있었다.동영 그룹에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변한 것 하나 없었다.“너 이 자식, 안지영이 킹덤 타운에 산다고 해서 킹덤 타운에 쳐들어가 그런 짓을 벌여?”그렇게 말하면서도 나태범은 가슴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꼈다.나태웅이 드디어 조바심을 내니까 말이다.“이유가 부족한가요?”“그래,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보마.”“아버지!”옆에 있던 나태현이 언성을 높였다.나태범과 나태현의 시선이 부딪쳤다. 나태현의 눈빛은 차갑고 진지했고 나태범의 시선은 어쩔 수 없다는 것 같았다.나태현은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프로젝트 두
나태웅이 킹덤 타운으로 돌아가려 하자 나태현은 화가 나서 나태웅의 뒤통수를 후려쳤다.“너 이 새끼 그만할 때도 됐잖아!”‘어쩌다가 이런 놈을 친동생으로 둬서...’“난 킹덤 타운에 갈 거야. 지금 당장! 얼른 운전해!”나태현은 화가 치밀어올라 숨도 가빠졌다.앞에 앉아 있던 운전기사는 나태웅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백미러를 통해 나태현을 쳐다보았다.나태현은 심호흡을 여러 번 했지만 여전히 진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화가 난 나머지 충동적인 결정을 내렸다.“그래, 가버려!”그러고는 차에서 내려 문을 쾅 닫았다.차에는 나태웅과 운전기사만이 남았다.나태웅이 차갑게 말했다.“운전해.”운전기사는 그 말을 들으면서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었다.운전기사는 나태웅을 데리고 킹덤 타운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오늘 밤 일 때문에 나태현을 데리고 킹덤 타운에 갔을 때 두 사람 눈앞에 벌어진 장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나태웅과 장선명 다 이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지금 다시 킹덤 타운에 돌아가면 아까보다 더 심하게 싸울 것이다.게다가 나태웅이 계속 부르는 그 안지영이라는 사람도 장선명의 편을 드는 것 같던데.어느새 진이훈의 차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진이훈을 본 운전기사는 동아줄을 잡은 것처럼 기뻐했다. 나태현의 명령도 잊은 채 바로 차에서 내려 도망쳤다.차에서 내린 진이훈은 운전기사가 차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발견했다.그럼에도 당황하지 않고 나태웅에게 다가가 물었다.“대표님, 오늘은 여기서 묵으실 겁니까?”진이훈은 나태웅이 이곳에서 묵지 않을까 봐서 걱정이었다.지금 나태웅의 상태를 보아하니 진이훈이 운전해도 소용없을 것이다.게다가 화가 잔뜩 난 상태니 곱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나태웅은 천천히 눈을 떴다.어두운 공간 속에서 나태웅의 두 눈은 위험하게 반짝였다. 밖에 서 있던 진이훈은 싸늘한 눈동자를 보면서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피어올랐다.나태웅이 차갑게 얘기했다.“킹덤 타운으로 간다.”“...”그 말을 들
역시나 사업가의 딸이라 그런지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안지영은 나태웅이 전에 안지영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잊은 모양이다.나태웅이 이 사실을 안다면... 더욱 큰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다시 또 이곳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난장판은 두 개의 프로젝트 덕분에 끝이 났다.배준우가 떠난 후 장선명은 안지영을 품에 꽉 안은채 물었다.“어떻게 프로젝트 두 개에 본인을 팔 수 있어?”“사실 백서면 충분했는데, 덕분에 서탑까지 가져오게 됐네요.”안지영이 애교 섞인 말투로 얘기했다.그래서 나태현이 처음에 서탑을 얘기했을 때는 가만히 있었지만 백서를 언급하자 바로 허락한 것이다.백서의 프로젝트는 안열이 자주 얘기하던 것이다. 안지영은 백서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좋은지 잘 알고 있었다.장선명은 여전히 불만스러웠다.“네가 승낙하지 않았으면 나태현이 더 얹어줬을 수도 있잖아.”나씨 가문의 사람들은 재력을 과시하길 좋아한다.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이니 이 기회에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도 있었는데...장선명의 불평을 들으면서 안지영은 이마를 짚고 얘기했다.“걱정하지 마요. 우리가 더 승낙하지 않았다면 그냥 나태웅을 버리고 갔을걸요?”“...”장선명은 나태현이 그런 냉혈한일 줄은 몰랐다.하지만 안지영은 나씨 가문의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다. 나태현이라면 자기 동생을 버리고도 남을 것이다.장선명 눈가에 생긴 상처를 보면서 안지영은 속으로 나태웅에게 욕설을 가득 퍼부었다.‘정말 미친놈 아니야? 여기까지 쳐들어와서 사람을 떄리다니.’...나태웅은 나태현에게 끌려 나가서 차에 앉았다.그러면서도 화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그런 나태웅을 보면서 나태현은 동생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나씨 가문에 도착한 후 나태현이 입을 열었다.“직접 가서 회장님께 얘기 드려.”두 프로젝트는 나태웅 때문에 넘기게 된 것이다.사실 나태현은 킹덤 타운에 가기
분위기는 차갑기만 했다.장선명의 태도는 아주 결연했다. 나태웅이 오늘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킹덤 타운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배준우는 안지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만하자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안지영은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했다.안지영은 이미 나태웅 때문에 화가 극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런 나태웅을 위해 장선명을 말리라고? 왜? 안지영의 태도는 장선명과 같았다.그런 안지영의 태도를 본 배준우는 나태웅에게로 시선을 돌려 눈치를 주었다.나태웅도 알 수 있었다.나태웅은 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이를 꽉 깨물었다.모든사람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 나태현이 장선명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그러면 서탑의 프로젝트를 너한테 줄게.”장선명은 그 말을 듣고 차갑게 웃었다.“내가 약혼녀를 팔아넘길 사람으로 보여요?”“...”“백서의 프로젝트도.”“내가...”장선명은 화가 났다.하지만 장선명이 화를 쏟아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장선명의 손을 잡아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장선명은 어리둥절해져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그래요. 호탕해서 좋네요. 받아들일게요.”“안지영!”장선명이 이를 꽉 깨물었다.“이제 가세요.”“...”장선명은 화가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장선명은 그깟 돈에 안지영을 팔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안지영은 흔쾌히 자신을 팔아넘겼다.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안지영의 허락을 받은 나태현과 배준우는 다 한숨을 돌렸다.나태현이 일어서서 나태웅을 향해 얘기했다.“가자.”하지만 나태웅은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안지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차가운 눈빛은 안지영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았다.그런 나태웅을 본 나태현은 얼른 일어나 나태웅을 끌어갔다.“가자니까.”이러고 있다가는 더 큰 일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나태웅은 나태현에게 거의 끌려 나가면서도 끝까지 안지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안지영이 왜 허락하는 거지? 왜 장선명 대신 결정하는 거지? 안지영이 장선명의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자
급한 일이기는 하지만 배준우는 일단 품속의 고은영부터 다독였다.이렇게 귀엽고 포근한 아내를 두고 집을 나서야 한다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나태웅은 다른 남자의 여자를 넘보고 있으니. 이런 기분을 모르겠지.’배준우는 나태웅이 안지영과의 사이를 제대로 처리 못 해서 이 사달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제 나태웅과 안지영의 사이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비틀어졌다. 그러니 이렇게 애를 써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배준우는 나태웅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먼저 자. 난 늦게 돌아올 거니까.”“지영이 일 때문이에요?”고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응,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나태웅이 킹덤 타운에 갔대. 안지영은 지금 킹덤 타운에서 장선명과 동거 중이거든.”배준우의 말을 들은 고은영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대충 알 것 같았다.안지영을 향한 나태웅의 집착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이런 상황에 놓인 안지영을 떠올린 고은영이 얘기했다.“나도 같이 갈게요.”“그러지 마. 같이 가 봤자 싸우는 모습만 보고 올 텐데.”“...”고은영은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장선명과 안지영은 다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다.거기에 궁지에 몰린 나태웅까지 더해지면...“그래요. 그럼 난 안 갈게요.”고은영이 대답했다.고은영은 약간 맥이 빠졌다.고은지는 오늘 이미 천락 그룹에 출근했다. 고은영은 고은지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배준우가 킹덤 타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열두 시 반이었다.거실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었는데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나태현은 이미 도착해있었다.거실의 분위기는 북극보다도 춥고 무거웠다.장선명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입가에 피가 묻어있었다.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 옆에 앉아 있었다.나태웅은 다른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얼굴에도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이훈도 두 그림자를 보았다.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뒷좌석을 스윽 살피고는 전전긍긍하면서 물었다.“대표님, 돌아갈까요?”‘그러게 내가 오지 말자고 했잖아!’킹덤 타운에 찾아와봤자 창피만 당하고 쫓겨날 것이다.진이훈은 나태웅이 바로 별장으로 쳐들어갈까 봐 걱정되었다.이윽고 차량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이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나태웅은 먼저 차에서 내려버렸다.“...”진이훈은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 이윽고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바로 차에서 내렸다.“대표님, 대표님!”진이훈은 나태웅을 꽉 잡았다.이곳은 킹덤 타운이다. 나태웅이 이곳에서 일을 벌여봤자 좋은 점은 하나도 없다.게다가 장선명의 성격이 어떤지는 강성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 아닌가.장선명은 위험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다.장선명을 건드린 사람에게는 좋은 결말이 없었다.다만 나태웅과 진이훈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장선명이 벌써 돌아왔다는 것이다.나태웅은 원래 안지영과 끝장을 보려고 이곳에 온 것이었건만, 신나나를 찾으러 간 장선명이 벌써 킹덤 타운에 돌아왔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창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아하니, 두 사람은 신나나 때문에 싸우지도 않고 있었다.두 사람의 그림자는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이거 놔!”나태웅의 명령에도 진이훈은 나태웅을 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 꽉 잡았다.그리고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대표님, 안지영 씨는 확실히 장선명 씨의 약혼녀입니다.”안지영과 장선명의 시작이 어찌 되었든, 애원이었는지, 거래였는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결국 정상적인 예비부부가 되었다.‘장선명 씨의 약혼녀’라는 말이 나태웅의 신경을 긁었다.진이훈이 아무리 말려도 나태웅은 결국 진이훈을 뿌리쳐냈다.“대표님, 대표님!”나태웅의 세상은 완전히 붕괴하였다. 나태웅은 지금 진이훈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화가 잔뜩 난 채로 킹덤 타운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진이훈의 머릿속은 오직 한마디로 가득했다.‘오늘 이곳에
진이훈은 자기 뺨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찾아가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저 여자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너무 화내지 마십쇼. 안지영 씨는 나 대표님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장선명 때문에?”“...”진이훈은 할 말을 잃었다.정확하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씨 가문은 장 씨 가문에게서 사과를 받아내야했디.하지만 나태웅의 충동적인 결정 때문에 그것마저도 거품으로 돌아갔다.진이훈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태웅은 화가 나면 그 감정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잊는 사람이었다.그 시각.안지영도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장선명은 저녁 열한 시에 들어왔다. 여덟 시에 나갔으니 총 세 시간 동안 밖에 있은 셈이었다.집에 돌아온 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물었다.“왜 화내고 있는 거야?”“나태웅 때문에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안지영의 화를 이만큼이나 돋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태웅이 유일할 것이다.이제야 회사 일 때문에 나태웅에게 제대로 복수도 하지 못했는데, 나태웅은 거의 매일 시비를 걸었다.게다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나태웅 때문에 안지영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태웅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안지영은 그런 나태웅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나태웅이 매일 시비를 걸고 또 자기 아버지까지 끌어들였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신나나 씨는 어때요?”안지영은 나태웅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바로 화제를 돌렸다.나태웅 얘기를 듣던 장선명은 표정이 어두워졌다.신나나의 얘기를 꺼내자 장선명의 표정은 더욱 썩어들어갔다.“눈가를 3cm 정도 봉합했어. 지금은 병원에 있어.”“그렇게 심각한 일이었어요?”안지영은 아주 놀랐다.클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하지만 신나나는 매직 썬의 에이스로서 인기도 많고 돈벌이도 쏠쏠했다.기씨 가문은 요즘 들어 강성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문이었지만 장씨 가문과
안지영은 화가 나서 이마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였다.전화기 너머의 나태웅은 계속해서 이어 얘기했다.“안지영, 장선명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본 남자야. 네가 그런 남자의 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아니면, 장선명이 정말 너랑 약혼할 거라고 생각해? 매하리에서 한번 은혜를 입었다고 정말 너를 데리고 일생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지금도 봐, 장선명은 다른 여자를 위해 너를 버렸잖아!”안지영은 나태웅의 말투가 안지영의 불행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장선명에게 버려진 안지영을 보면서 축하 파티라도 열 사람 같았다.나태웅의 인성을 잘 아는 안지영은 나태웅의 생각도 쉽게 알 수 있었다.‘전에 동영 그룹에 있을 때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하, 그렇게 말하면 본인이 장선명 씨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왜 나더러 하주원한테 가서 사과하라고 하는 거예요? 시비를 가리는 눈이 없나 봐요?”“그건 다른 일이잖아!”“뭐가 다른데요! 내로남불 같은 놈.”안지영이 중얼거리면서 말했다.지금의 안지영은 그저 나태웅을 욕할 기회만 있으면 서슴지 않고 욕설을 쏟아냈다.안지영은 전 세계의 욕설을 모아서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나태웅은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말이다.“안지영, 좋은 말로 할 때 입에서 걸레 빼.”“너나 입에서 걸레 빼세요.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내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당신만큼은 죽어도 찾아가지 않을 테니까. 왜 계속 내 눈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거예요! 관종이에요?”“...”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확신했다.‘안지영,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선심을 써서 얘기해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뿐이었다.하지만 안지영은 쉬지 않고 이어서 얘기했다.“그리고, 선명 씨가 신나나 씨 때문에 매직 썬에 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와서 귀띔해 줄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알려줬다고? 이건...’“나태웅 씨, 당신은 장선명이랑 비교하
‘지금 벌인 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미친 거 아니야?’안지영은 심호흡을 하면서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려고 노력했다.“안지영,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나태웅은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고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안지영도 더는 참지 못하고 같이 화를 냈다.“내가 생각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나태웅,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나태웅에게 괴롭힘당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안지영은 나태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강성의 사람들은 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미치광이가 된 줄 안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의 정신병이 대대로 유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강성에서 가장 잔인한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그리고 이제는 안지영을 괴롭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장선명까지 괴롭히려고 한다.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숨이 턱턱 막혔다.“내가 뭐 하는 거냐고? 뭐 같아 보이는데?”“내가 당신 같은 사람의 속셈을 어떻게 알겠어요! 궁금하지도 않아요!”안지영은 짜증이 확 몰려왔다.안지영은 나태웅 때문에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채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안지영, 장선명이 오늘 밤 왜 나갔는지 정말 모르겠어?”“당신이 일을 벌이니까 나간 거잖아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죽이고 싶었다.“신나나 때문에 킹덤 타운을 떠난 거야.”“...”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분노로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었다.안지영은 숨이 점점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난 나머지 제 자리에 서서 몇 바퀴나 돌았다.나태웅에게 뭐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나가지 않았다.아무 대답도 못 하는 안지영을 보면서 나태웅은 말투를 약간 누그러뜨렸다.“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장선명은 신나나를 구하러 매직 썬에 간 거야.”나태웅은 일부러 신나나의 이름을 강하게 읽으며 얘기했다.마치 안지영에게, 장선명은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