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가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서준호에게 소리 질렀다.“휴대폰 가져와!”“내 번호도 이미 차단 당했어!”“가져와!”조보은은 이미 완전히 인내심을 잃은 상태다.서정우와 서준호가 뭐라고 하든,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서준호는 그녀의 막무가내에 못 이겨 핸드폰을 그녀에게 던져 주었다.조보은은 서준호의 핸드폰을 서정우에게 건네며 말했다.“계속 걸어!”“아빠 말이 맞아요. 이 번호도 차단 당했어요.”“빨리 걸라니까!”조보은은 화가 나 어쩔 줄 몰라 했다.다들 왜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만 많이 지껄이는 거야?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서정우는 조보은의 호통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진짜 차단 당했어요.”서정우는 조보은에게 전화를 건넸다.조보은은 정말 차단당한 걸 확인하니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지금 세 사람 다고은영과 통화 불가한 상태다.“은지한테 전화해.”조보은은 한참 생각하다 고은지에게 전화하라고 했다. 그리고 서정우가 반응도 하기 전에 덧붙여 말했다.“은지더러 은영이한테 전화하라고 해.”서정우는 깜짝 놀랐다.“큰 누나더러 둘째 누나한테 전화하라고 하라고?”“그래, 아니면 은지가 우리한테 10억 가져다주겠어?”고은영이라는 돈줄이 생겼으니, 더 이상 고은지를 괴롭히지 않았다.지금은 오로지 고은영에게서 돈을 뜯어낼 생각뿐이었다.서정우도 그녀의 뜻을 알아들었다.“네, 알겠어요.”그리고 서둘러 고은지에게 전화 걸었다.고은지는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지금쯤 이미 퇴근했을 시간이다.고은지는 퇴근 후 금방 집에 돌아와, 음식을 해 먹으려는데 전화기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발신 번호를 보니 서정우였다. 그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조영수와 이혼 후, 그녀도 많은 생각이 풀렸다. 전에 자신이 도와준다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이 집을 점점 파괴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그래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라면을 냄비에 넣자마자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이번엔 고은영의 전화였다.“응, 은영아.”“조보은이 언니한테 전화 갔어?”고은영이 직접적으로 물었다.“아니, 서정우가.”고은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병원으로 오라고 했어?”“난 안 갈 거야!”고은지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두 사람의 대화는 척하면 척이었다. 고은지는 고은영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고은지의 대답에 고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너도 오래?”“별 큰일도 아닌 걸로 입원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안지영이 그리 심하게 때리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그쪽에서 이렇게 오버하는 건 그녀를 병원에 오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중요한 건, 조보은이 지금 어떤 상태이든, 지금 절대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나도 알아!”고은지가 대답했다.잘 알기 때문에, 그쪽에서 아무리 전화를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혹은, 이미 포기해 버렸을 수도.다 포기해버려서, 조보은이 아무리 뭐라 해도 꿈쩍하지 않는 것 일수도.“알겠어, 일단 끊어. 나 금방 퇴근해서 지금 좀 뭐 먹으려고.”“응!”고은지의 말에 고은영도 더 묻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고은지는 전화를 끊고 재빨리 라면을 냄비에서 건져 냈다.빨리 움직였는데도, 라면이 퍼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시 끓이기 귀찮아 그냥 대충 먹었다.란완 리조트 시점.하루 종일 피곤했던 고은영은 고은지와 통화를 끝낸 후, 그대로 침대 머리에 기대어 잠들어 버렸다.배준우가 방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가 이불도 덮지 않고 침대 머리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배준우는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서 있는 도우미를 쳐다보았다.도우미도 배준우가 문을 여는 순간, 고은영이 침대 머리에 기대어 자는 모습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게다가 지금 배준우가 이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해고당할까 봐 두려웠다.그런데 다행히도 배준우가 아무 말도 없이 시선을 거뒀다.그는 고은영을 안고 침대에 제대로 눕
이 밤!조보은 일가는 불안 속에서 온밤을 지샜고, 고은영은 푹 잘 잤다.배준우는 생각할수록 밤새 자지 못했다.고은영이 일어났을 때, 배준우는 이미 창문 앞 의자에 앉아있었다.비록 멀리 떨어져 앉아있었지만, 고은영은 그의 감정을 바로 알아챘다.그녀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배준우도 그녀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깼어? 잘 잤어?”약간 의미심장한 태도로 말했다.고은영도 이미 완전히 잠에서 깬 상태라, 그의 말투에 숨은 뜻을 바로 알아챘다.다만, 그녀는 왜 아침부터 그가 화가 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네, 잘 잤어요. 대표님은요?” 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별로!”“...” 아니, 왜...!어젯밤엔 어색해서 잘 못 자겠다더니, 푹 자고 일어난 고은영의 모습에 배준우는 어이가 없었다.그렇게 푹 자 놓고, 나중에 코까지 골아 놓고!백 어르신도 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코를 고는 것도 임신 중의 여자들이 겪게 되는 변화 중 하나이다.그녀가 하도 코를 고니 배준우는 다른 방에서 자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기를 꼭 안고 자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있어야 했다.고은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배준우에게 다가갔다.“무슨 고민거리 있어요?”“아니!”“네? 그럼, 왜 못 주무셨어요?”고은영은 배준우가 무슨 고민거리가 있어서 못 잤다고 생각했다.고민거리가 없으면, 왜 못 잔 거지?“네가 너무 시끄러워서!”“제가 시끄럽다고요? 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고은영은 억울했다.그리고 바로 겁에 질린 얼굴로 배준우를 쳐다봤다. “설마 제가 또 몽유병이...?”고은영은 전에 인터넷으로 몽유병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었다.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몽유병 때문에, 잠결에 밤에 나가서 돌아다니거나 하는 일들이 많았다.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침대에 눕는다!모든 과정이 무의식중에 벌어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 피곤하게 느껴진다.하지만 오늘 그녀는 별로 피곤하게 느
고은영은 컵을 받아 들고, 물 절반을 마신 뒤에야 마음속의 공포가 조금 가라앉았다.“또 감기 걸렸어?”“그런 것 같아요!”고은영은 서둘러 대답했다.그녀는 지금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다. 배준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그가 말만 하면...!그의 대화 리듬에 따라가기 어려워진다.고은영은 이 마지막 순간에 그동안 공들였던 탑이 무너질까 너무 두려웠다.배준우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음, 열은 없는데.”“가끔 열이 안 날 때도 있어요.”배준우는 그렇게 그녀가 거짓말하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고 있었다. 고은영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전혀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짓말하려고 애쓰고 있다. 배준우와의 관계가 끝날 때, 이 거짓말도 끝낼 생각이었다.아침 식사 때.나태웅이 왔다.그러자 배준우가 고은영을 쳐다보며 말했다.“오늘 넌 출근하지 말고 여기 있어!”“네.”그녀는 평소 같으면 여기 있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오늘 아침 배준우의 그 말들 때문에 지금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지금 그녀는 그저 서둘러 배준우와 떨어져 있고 싶었다.만약 오늘 아침 같은 그런 대화가 더 오고 간다면, 고은영은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그녀가 쉽게 알겠다고 하자, 배준우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무슨 일 있으면 나 집사 찾아.”“네, 알겠어요!”나 집사는 어제 한 무리의 도우미를 데리고 밖에서 그들을 맞이했던 집사다.얼추 50대쯤 되어 보이는데, 정신력은 아주 대단했다.배준우를 마주할 땐 세상 공손하고, 도우미들을 마주할 땐 얼굴에 위엄이 넘친다.고은영은 배준우를 쳐다보며 물었다.“저, 량천옥, 그리고 그 집 사람들 란완 리조트가 대표님 것이라는 거 알고 있어요?”“아니, 몰라.”“네!” 어쩐지!만약 량천옥이 란완 리조트가 배준우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감히 배준우와 싸울 엄두도 못 냈겠지!란완 리조트는 10년 전에 완공됐다. 모두가 란완 리조트 주인의 권세에 대해 의논하고 있
아침 식사 후, 배준우는 나태웅과 함께 떠났고, 나 집사는 고은영 전용 도우미들을 안배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모두 배준우가 고은영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주 잘 보았다. 그러니 감히 그녀 앞에서 조금의 공손하지 않는 태도도 드러내지 않았다.하지만 여전히 눈치 없이, 그녀 뒤에서 그녀를 욕하는 사람도 있긴 했다.“촌에서 올라온 아가씨라고 들었어. 그냥 도련님의 비서 일을 했었다고 하던데!”“그 기사 나도 봤어.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니까. 어떤 수단으로 그랬는지, 참!”“그니까, 미월 아가씨가 돌아왔는데도 자리를 내주지 않잖아, 뻔뻔하게!”“뻔뻔하다고 욕할 수도 없어. 촌에서 기어 나와서 이런 재벌이 걸려드니까, 기회라 생각하고 어떻게든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겠지!”“근데 잘난 구석은 있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 전에 내가 미월 아가씨를 돌볼 땐, 미월 아가씨가 도련님을 위해 국도 끓여주고, 그랬는데.”고은영은 햇볕을 쬐러 나가려고 방에서 나왔는데, 복도 모퉁이에서 수군거리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를 돌보는 도우미는 햇볕을 쬐러 나가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서둘러 가서 그녀의 겉옷을 챙겼다.옷을 가지고 고은영 곁에 오니, 그들이 고은영 뒷담화 하는 소리를 들었다.도우미는 순식간에 굳어진 얼굴로 조심스럽게 고은영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제가 가볼게요!”말하고는 바로 그들에게 다가갔다.모퉁이에 있는 두 도우미가 아직도 막 신나게 말하고 있었다.그러다 고은영 전용 도우미가 눈앞에 나타나자, 두 사람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혜나야, 네가 어떻게...?”짝!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따귀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자리에 서있던 고은영도 깜짝 놀랐다.혜나의 갑작스러운 따귀에, 맞은 도우미도 뒤늦게 반응하며 충격 받은 얼굴로 혜나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날 때려? 나 집사님한테 말할 거야!’“그래, 가서 집사님한테 네가 사모님을 뒤에서 어떻게 씹었는지 샅샅이 다 얘기해!”“우, 우린...!”짝!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또 한 번 따
이미월을 돌봤던 도우미는 고은영이 이미월보다 착하지 않다고, 마음속으로 더더욱 욕하고 있었다.이렇게 심성이 착하지 못한 여주인을, 도련님이 틀림없이 곧 실증 나 할 거라고 생각했다.촌에서 온 사람은 절대 뼛속까지 도시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렇게 작은 일도 다 따지는 그녀가 정말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다.혜나는 누군가 처리해줄 거라는 고은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화가 수그러들었다.혜나는 다시 그녀들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얼른 가서 짐들 싸. 여기에 머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말하고는 차갑게 코웃음 치며 고은영에게 다가갔다.“사모님, 제가 햇빛 방으로 모실게요.”“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혜나는 고은영이 전혀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도련님이 직접 고르신 사모님 답게, 자기감정 관리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다른 일을 하고 있던 도우미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는 즉시 나 집사에게 알렸다.나 집사는 얘기를 듣자마자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와, 두 도우미가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집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냐?”그러자 둘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서 울며 말했다.“나 집사님, 저희 얘기 들어보세요. 혜나는 사모님을 모신 이후로 기세가 등등해져서, 저희를 사람 취급도 안 해요!”그녀의 말에 나 집사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고은영에 대한 인상이 조금 빗나갔다.그러자 나머지 한 명도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저와 세나가 청소를 하고 있는데, 혜나가 올라와서 아무 말도 없이 저를 밀쳐냈어요. 세나는 제 편을 들어준 것뿐이고요.”“혜나가 왜 갑자기 너를 밀쳐?”“저도 몰라요. 아무 말도 없이 밀쳤어요!”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말했다.방금 혜나가 자신의 따귀를 때린 걸 생각하자, 화가 치밀었다.지금 당장이라도 혜나를 쫓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나 집사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지만, 더 묻지 않았다.“일하러 가!”“저, 집사 님, 혜나 일은..
배준우는 담배를 피우며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그는 량천옥이 지금 강제로 담을 뛰어넘어야 하는 처지라고 생각했다. 전에 량천옥이 F국에 갔을 때, 박씨 가문이 그녀를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그런데 박씨 가문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박윤은 바보가 아닌데 말이다! 설령 이번에 그녀의 뜻대로 된다 해도, 나중에 지금 진씨 가문을 벗어나는 것보다 더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박씨 가문에서 그러겠대?”배준우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누르며 물었다.“아직 대답은 안 했어. 지금 그 여자가 계략을 꾸미고 있는 거지.”역시 예상대로였다!박씨 가문이 스케일이 어느 정도인지, 해외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배준우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량천옥이 박씨 가문과 한 배를 타려고 한다고?박씨 가문이 그녀를 거들떠보기나 할지 의문이다.그리고 박설희, 박씨 가문의 장녀. 박씨 가문처럼 백 년의 역사를 지닌 가문이 어찌 출신을 보지 않을 거라 말인가?그녀는 정말 자기가 무슨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아는데, 박씨 가문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이런 규율을 중시하는 집안에서 량천옥이 그런 제안을 해오면, 당연히 가장 먼저 배씨 집안 모든 것을 조사해 볼 것이다.그러면 그녀가 저질렀던 추악한 짓들이, 그녀의 계획을 방해할 것이다.“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는데?”“천의 주식 2%를 약혼 예물로 한대.”천의...!지금 F국에서 번성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것 역시 량천옥의 손에 있다.장풍 프로젝트는 천의 소유의 일부 프로젝트일 뿐이다. 량천옥은 장항 프로젝트를 배준우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천의 주식 지분 2%를 예물로 주면서까지 박씨 가문 장녀 박설희를 배준우와 결혼시키려 했다.“허, 영감은 알아?”배준우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량천옥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모를 거야. 아마 알았으면 이렇게 평화롭지 않겠지!”사실이다. 배항준은 동영 그룹을 배준우에게 뺏겼을 때, 한동안 성격이 괴팍해 졌었다.만약 량천옥이 천의 지분을 함부로 내주려 하
“어제 조보은이 고은영을 만나지 못했대. 만약 만났다면 오늘의 결과는 달라졌을 거야.”어제일을 말하지 않으면 모를까 또 어제 일을 언급하니, 량천옥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고은영이 진짜 그 여자를 만나러 갈까요?”량천옥은 불만스럽게 말했다.그녀는 고은영도, 조보은도 그냥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조보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 고은영에 대한 혐오가 더욱 커졌다.그녀는 이런 딸을 키워낸 엄마도 그저 그런 수준이라고 생각했다.량일은 불안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그래서 지금 방법을 생각해야 해. 고은영이 조보은을 만나게 할 방법.”량천옥도 조보은과 고은영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만약 정상적인 모녀 사이였다면, 이번에 조보은이 강성에 왔을 때, 고은영의 집에서 지냈을 것이다.비록 인테리어를 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기본은 다 되어있으니, 바닥이 이불을 깔고 자도 괜찮았다.그러나 고은영은 조보은이 그녀의 집에 가겠다고 제안했을 때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이런 관계이니, 두 사람을 서로 만나게 하는 것도 큰 도전이다.량천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고은영 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해야 해요. 아니면 장항 프로젝트를 진짜 이대로 뺏길 수도 있어요.”“박씨 집안은 뭐래?”“아직 대답이 없어요!”박씨 가문 얘기가 나오니 량천옥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지금 박씨 가문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니, 배준우와 고은영의 결혼을 더더욱 막아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진씨 가문을 완전히 건드리는 격이 된다.그녀의 말에 량일의 안색도 더욱 어두워졌다.“그래, 알았어.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고은영의 일을 말하는 거다.회사 일은 그녀가 기껏해야 량천옥을 도와 아이디어를 내는 정도지, 많이 관여하지는 않았다.그러니 박씨 가문 일에도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꼭 잘 처리해야 해요.”량천옥이 긴장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응.” 량일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다 무슨 생각이라도
“진이훈!”“네, 대표님.”“거기 서서 뭐 해! 얼른 돕지 않고!”나태웅이 고함을 질렀다.겨우 한숨을 돌렸던 진이훈은 그런 나태웅의 말을 듣고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것만 같았다.‘나도 같이 죽자는 건가... 아무리 상사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진이훈은 죽고 싶지 않았다....나태웅은 결국 강제로 끌려 들어갔다.새벽 두 시. 나태범은 실크 잠옷을 입고 얼굴을 찡그린 채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단잠을 방해한 녀석이 썩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나태범은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체력이 남아도는 모양이야?”동영 그룹에서 사람이 되어 온 줄 알았더니만, 지금 보니 사람이 덜 된 것이 분ㅁ여하다.16살 때보다 더 세게 반항하고 있으니 말이다.그때도 나태웅을 진정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어려워졌다.나태범의 사람들은 나태웅을 끌고 들어와 의자에 억지로 앉혔다. 의자에 앉는 순간 나태웅은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감을 드러냈다.나태범은 그런 나태웅을 보면서 더더욱 화가 났다.“내가 오늘 너한테 한 말을 다 잊은 거야?”“안지영은 지금 킹덤 타운에 있어요. 방법을 대서 거기서 나오게 해야해요.”“...”“...”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보듯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뿐만이 아니었다.나태웅을 잘 아는 사람들은 나태웅이 몇 년 동안 변하지 않았음을 잘 알아낼 수 있었다.동영 그룹에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변한 것 하나 없었다.“너 이 자식, 안지영이 킹덤 타운에 산다고 해서 킹덤 타운에 쳐들어가 그런 짓을 벌여?”그렇게 말하면서도 나태범은 가슴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꼈다.나태웅이 드디어 조바심을 내니까 말이다.“이유가 부족한가요?”“그래,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보마.”“아버지!”옆에 있던 나태현이 언성을 높였다.나태범과 나태현의 시선이 부딪쳤다. 나태현의 눈빛은 차갑고 진지했고 나태범의 시선은 어쩔 수 없다는 것 같았다.나태현은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프로젝트 두
나태웅이 킹덤 타운으로 돌아가려 하자 나태현은 화가 나서 나태웅의 뒤통수를 후려쳤다.“너 이 새끼 그만할 때도 됐잖아!”‘어쩌다가 이런 놈을 친동생으로 둬서...’“난 킹덤 타운에 갈 거야. 지금 당장! 얼른 운전해!”나태현은 화가 치밀어올라 숨도 가빠졌다.앞에 앉아 있던 운전기사는 나태웅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백미러를 통해 나태현을 쳐다보았다.나태현은 심호흡을 여러 번 했지만 여전히 진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화가 난 나머지 충동적인 결정을 내렸다.“그래, 가버려!”그러고는 차에서 내려 문을 쾅 닫았다.차에는 나태웅과 운전기사만이 남았다.나태웅이 차갑게 말했다.“운전해.”운전기사는 그 말을 들으면서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었다.운전기사는 나태웅을 데리고 킹덤 타운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오늘 밤 일 때문에 나태현을 데리고 킹덤 타운에 갔을 때 두 사람 눈앞에 벌어진 장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나태웅과 장선명 다 이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지금 다시 킹덤 타운에 돌아가면 아까보다 더 심하게 싸울 것이다.게다가 나태웅이 계속 부르는 그 안지영이라는 사람도 장선명의 편을 드는 것 같던데.어느새 진이훈의 차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진이훈을 본 운전기사는 동아줄을 잡은 것처럼 기뻐했다. 나태현의 명령도 잊은 채 바로 차에서 내려 도망쳤다.차에서 내린 진이훈은 운전기사가 차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발견했다.그럼에도 당황하지 않고 나태웅에게 다가가 물었다.“대표님, 오늘은 여기서 묵으실 겁니까?”진이훈은 나태웅이 이곳에서 묵지 않을까 봐서 걱정이었다.지금 나태웅의 상태를 보아하니 진이훈이 운전해도 소용없을 것이다.게다가 화가 잔뜩 난 상태니 곱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나태웅은 천천히 눈을 떴다.어두운 공간 속에서 나태웅의 두 눈은 위험하게 반짝였다. 밖에 서 있던 진이훈은 싸늘한 눈동자를 보면서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피어올랐다.나태웅이 차갑게 얘기했다.“킹덤 타운으로 간다.”“...”그 말을 들
역시나 사업가의 딸이라 그런지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안지영은 나태웅이 전에 안지영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잊은 모양이다.나태웅이 이 사실을 안다면... 더욱 큰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다시 또 이곳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난장판은 두 개의 프로젝트 덕분에 끝이 났다.배준우가 떠난 후 장선명은 안지영을 품에 꽉 안은채 물었다.“어떻게 프로젝트 두 개에 본인을 팔 수 있어?”“사실 백서면 충분했는데, 덕분에 서탑까지 가져오게 됐네요.”안지영이 애교 섞인 말투로 얘기했다.그래서 나태현이 처음에 서탑을 얘기했을 때는 가만히 있었지만 백서를 언급하자 바로 허락한 것이다.백서의 프로젝트는 안열이 자주 얘기하던 것이다. 안지영은 백서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좋은지 잘 알고 있었다.장선명은 여전히 불만스러웠다.“네가 승낙하지 않았으면 나태현이 더 얹어줬을 수도 있잖아.”나씨 가문의 사람들은 재력을 과시하길 좋아한다.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이니 이 기회에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도 있었는데...장선명의 불평을 들으면서 안지영은 이마를 짚고 얘기했다.“걱정하지 마요. 우리가 더 승낙하지 않았다면 그냥 나태웅을 버리고 갔을걸요?”“...”장선명은 나태현이 그런 냉혈한일 줄은 몰랐다.하지만 안지영은 나씨 가문의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다. 나태현이라면 자기 동생을 버리고도 남을 것이다.장선명 눈가에 생긴 상처를 보면서 안지영은 속으로 나태웅에게 욕설을 가득 퍼부었다.‘정말 미친놈 아니야? 여기까지 쳐들어와서 사람을 떄리다니.’...나태웅은 나태현에게 끌려 나가서 차에 앉았다.그러면서도 화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그런 나태웅을 보면서 나태현은 동생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나씨 가문에 도착한 후 나태현이 입을 열었다.“직접 가서 회장님께 얘기 드려.”두 프로젝트는 나태웅 때문에 넘기게 된 것이다.사실 나태현은 킹덤 타운에 가기
분위기는 차갑기만 했다.장선명의 태도는 아주 결연했다. 나태웅이 오늘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킹덤 타운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배준우는 안지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만하자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안지영은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했다.안지영은 이미 나태웅 때문에 화가 극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런 나태웅을 위해 장선명을 말리라고? 왜? 안지영의 태도는 장선명과 같았다.그런 안지영의 태도를 본 배준우는 나태웅에게로 시선을 돌려 눈치를 주었다.나태웅도 알 수 있었다.나태웅은 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이를 꽉 깨물었다.모든사람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 나태현이 장선명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그러면 서탑의 프로젝트를 너한테 줄게.”장선명은 그 말을 듣고 차갑게 웃었다.“내가 약혼녀를 팔아넘길 사람으로 보여요?”“...”“백서의 프로젝트도.”“내가...”장선명은 화가 났다.하지만 장선명이 화를 쏟아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장선명의 손을 잡아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장선명은 어리둥절해져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그래요. 호탕해서 좋네요. 받아들일게요.”“안지영!”장선명이 이를 꽉 깨물었다.“이제 가세요.”“...”장선명은 화가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장선명은 그깟 돈에 안지영을 팔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안지영은 흔쾌히 자신을 팔아넘겼다.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안지영의 허락을 받은 나태현과 배준우는 다 한숨을 돌렸다.나태현이 일어서서 나태웅을 향해 얘기했다.“가자.”하지만 나태웅은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안지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차가운 눈빛은 안지영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았다.그런 나태웅을 본 나태현은 얼른 일어나 나태웅을 끌어갔다.“가자니까.”이러고 있다가는 더 큰 일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나태웅은 나태현에게 거의 끌려 나가면서도 끝까지 안지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안지영이 왜 허락하는 거지? 왜 장선명 대신 결정하는 거지? 안지영이 장선명의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자
급한 일이기는 하지만 배준우는 일단 품속의 고은영부터 다독였다.이렇게 귀엽고 포근한 아내를 두고 집을 나서야 한다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나태웅은 다른 남자의 여자를 넘보고 있으니. 이런 기분을 모르겠지.’배준우는 나태웅이 안지영과의 사이를 제대로 처리 못 해서 이 사달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제 나태웅과 안지영의 사이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비틀어졌다. 그러니 이렇게 애를 써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배준우는 나태웅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먼저 자. 난 늦게 돌아올 거니까.”“지영이 일 때문이에요?”고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응,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나태웅이 킹덤 타운에 갔대. 안지영은 지금 킹덤 타운에서 장선명과 동거 중이거든.”배준우의 말을 들은 고은영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대충 알 것 같았다.안지영을 향한 나태웅의 집착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이런 상황에 놓인 안지영을 떠올린 고은영이 얘기했다.“나도 같이 갈게요.”“그러지 마. 같이 가 봤자 싸우는 모습만 보고 올 텐데.”“...”고은영은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장선명과 안지영은 다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다.거기에 궁지에 몰린 나태웅까지 더해지면...“그래요. 그럼 난 안 갈게요.”고은영이 대답했다.고은영은 약간 맥이 빠졌다.고은지는 오늘 이미 천락 그룹에 출근했다. 고은영은 고은지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배준우가 킹덤 타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열두 시 반이었다.거실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었는데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나태현은 이미 도착해있었다.거실의 분위기는 북극보다도 춥고 무거웠다.장선명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입가에 피가 묻어있었다.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 옆에 앉아 있었다.나태웅은 다른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얼굴에도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이훈도 두 그림자를 보았다.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뒷좌석을 스윽 살피고는 전전긍긍하면서 물었다.“대표님, 돌아갈까요?”‘그러게 내가 오지 말자고 했잖아!’킹덤 타운에 찾아와봤자 창피만 당하고 쫓겨날 것이다.진이훈은 나태웅이 바로 별장으로 쳐들어갈까 봐 걱정되었다.이윽고 차량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이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나태웅은 먼저 차에서 내려버렸다.“...”진이훈은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 이윽고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바로 차에서 내렸다.“대표님, 대표님!”진이훈은 나태웅을 꽉 잡았다.이곳은 킹덤 타운이다. 나태웅이 이곳에서 일을 벌여봤자 좋은 점은 하나도 없다.게다가 장선명의 성격이 어떤지는 강성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 아닌가.장선명은 위험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다.장선명을 건드린 사람에게는 좋은 결말이 없었다.다만 나태웅과 진이훈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장선명이 벌써 돌아왔다는 것이다.나태웅은 원래 안지영과 끝장을 보려고 이곳에 온 것이었건만, 신나나를 찾으러 간 장선명이 벌써 킹덤 타운에 돌아왔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창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아하니, 두 사람은 신나나 때문에 싸우지도 않고 있었다.두 사람의 그림자는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이거 놔!”나태웅의 명령에도 진이훈은 나태웅을 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 꽉 잡았다.그리고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대표님, 안지영 씨는 확실히 장선명 씨의 약혼녀입니다.”안지영과 장선명의 시작이 어찌 되었든, 애원이었는지, 거래였는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결국 정상적인 예비부부가 되었다.‘장선명 씨의 약혼녀’라는 말이 나태웅의 신경을 긁었다.진이훈이 아무리 말려도 나태웅은 결국 진이훈을 뿌리쳐냈다.“대표님, 대표님!”나태웅의 세상은 완전히 붕괴하였다. 나태웅은 지금 진이훈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화가 잔뜩 난 채로 킹덤 타운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진이훈의 머릿속은 오직 한마디로 가득했다.‘오늘 이곳에
진이훈은 자기 뺨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찾아가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저 여자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너무 화내지 마십쇼. 안지영 씨는 나 대표님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장선명 때문에?”“...”진이훈은 할 말을 잃었다.정확하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씨 가문은 장 씨 가문에게서 사과를 받아내야했디.하지만 나태웅의 충동적인 결정 때문에 그것마저도 거품으로 돌아갔다.진이훈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태웅은 화가 나면 그 감정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잊는 사람이었다.그 시각.안지영도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장선명은 저녁 열한 시에 들어왔다. 여덟 시에 나갔으니 총 세 시간 동안 밖에 있은 셈이었다.집에 돌아온 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물었다.“왜 화내고 있는 거야?”“나태웅 때문에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안지영의 화를 이만큼이나 돋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태웅이 유일할 것이다.이제야 회사 일 때문에 나태웅에게 제대로 복수도 하지 못했는데, 나태웅은 거의 매일 시비를 걸었다.게다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나태웅 때문에 안지영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태웅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안지영은 그런 나태웅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나태웅이 매일 시비를 걸고 또 자기 아버지까지 끌어들였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신나나 씨는 어때요?”안지영은 나태웅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바로 화제를 돌렸다.나태웅 얘기를 듣던 장선명은 표정이 어두워졌다.신나나의 얘기를 꺼내자 장선명의 표정은 더욱 썩어들어갔다.“눈가를 3cm 정도 봉합했어. 지금은 병원에 있어.”“그렇게 심각한 일이었어요?”안지영은 아주 놀랐다.클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하지만 신나나는 매직 썬의 에이스로서 인기도 많고 돈벌이도 쏠쏠했다.기씨 가문은 요즘 들어 강성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문이었지만 장씨 가문과
안지영은 화가 나서 이마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였다.전화기 너머의 나태웅은 계속해서 이어 얘기했다.“안지영, 장선명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본 남자야. 네가 그런 남자의 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아니면, 장선명이 정말 너랑 약혼할 거라고 생각해? 매하리에서 한번 은혜를 입었다고 정말 너를 데리고 일생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지금도 봐, 장선명은 다른 여자를 위해 너를 버렸잖아!”안지영은 나태웅의 말투가 안지영의 불행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장선명에게 버려진 안지영을 보면서 축하 파티라도 열 사람 같았다.나태웅의 인성을 잘 아는 안지영은 나태웅의 생각도 쉽게 알 수 있었다.‘전에 동영 그룹에 있을 때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하, 그렇게 말하면 본인이 장선명 씨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왜 나더러 하주원한테 가서 사과하라고 하는 거예요? 시비를 가리는 눈이 없나 봐요?”“그건 다른 일이잖아!”“뭐가 다른데요! 내로남불 같은 놈.”안지영이 중얼거리면서 말했다.지금의 안지영은 그저 나태웅을 욕할 기회만 있으면 서슴지 않고 욕설을 쏟아냈다.안지영은 전 세계의 욕설을 모아서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나태웅은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말이다.“안지영, 좋은 말로 할 때 입에서 걸레 빼.”“너나 입에서 걸레 빼세요.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내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당신만큼은 죽어도 찾아가지 않을 테니까. 왜 계속 내 눈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거예요! 관종이에요?”“...”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확신했다.‘안지영,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선심을 써서 얘기해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뿐이었다.하지만 안지영은 쉬지 않고 이어서 얘기했다.“그리고, 선명 씨가 신나나 씨 때문에 매직 썬에 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와서 귀띔해 줄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알려줬다고? 이건...’“나태웅 씨, 당신은 장선명이랑 비교하
‘지금 벌인 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미친 거 아니야?’안지영은 심호흡을 하면서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려고 노력했다.“안지영,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나태웅은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고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안지영도 더는 참지 못하고 같이 화를 냈다.“내가 생각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나태웅,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나태웅에게 괴롭힘당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안지영은 나태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강성의 사람들은 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미치광이가 된 줄 안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의 정신병이 대대로 유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강성에서 가장 잔인한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그리고 이제는 안지영을 괴롭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장선명까지 괴롭히려고 한다.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숨이 턱턱 막혔다.“내가 뭐 하는 거냐고? 뭐 같아 보이는데?”“내가 당신 같은 사람의 속셈을 어떻게 알겠어요! 궁금하지도 않아요!”안지영은 짜증이 확 몰려왔다.안지영은 나태웅 때문에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채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안지영, 장선명이 오늘 밤 왜 나갔는지 정말 모르겠어?”“당신이 일을 벌이니까 나간 거잖아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죽이고 싶었다.“신나나 때문에 킹덤 타운을 떠난 거야.”“...”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분노로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었다.안지영은 숨이 점점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난 나머지 제 자리에 서서 몇 바퀴나 돌았다.나태웅에게 뭐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나가지 않았다.아무 대답도 못 하는 안지영을 보면서 나태웅은 말투를 약간 누그러뜨렸다.“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장선명은 신나나를 구하러 매직 썬에 간 거야.”나태웅은 일부러 신나나의 이름을 강하게 읽으며 얘기했다.마치 안지영에게, 장선명은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