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월을 돌봤던 도우미는 고은영이 이미월보다 착하지 않다고, 마음속으로 더더욱 욕하고 있었다.이렇게 심성이 착하지 못한 여주인을, 도련님이 틀림없이 곧 실증 나 할 거라고 생각했다.촌에서 온 사람은 절대 뼛속까지 도시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렇게 작은 일도 다 따지는 그녀가 정말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다.혜나는 누군가 처리해줄 거라는 고은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화가 수그러들었다.혜나는 다시 그녀들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얼른 가서 짐들 싸. 여기에 머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말하고는 차갑게 코웃음 치며 고은영에게 다가갔다.“사모님, 제가 햇빛 방으로 모실게요.”“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혜나는 고은영이 전혀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도련님이 직접 고르신 사모님 답게, 자기감정 관리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다른 일을 하고 있던 도우미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는 즉시 나 집사에게 알렸다.나 집사는 얘기를 듣자마자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와, 두 도우미가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집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냐?”그러자 둘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서 울며 말했다.“나 집사님, 저희 얘기 들어보세요. 혜나는 사모님을 모신 이후로 기세가 등등해져서, 저희를 사람 취급도 안 해요!”그녀의 말에 나 집사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고은영에 대한 인상이 조금 빗나갔다.그러자 나머지 한 명도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저와 세나가 청소를 하고 있는데, 혜나가 올라와서 아무 말도 없이 저를 밀쳐냈어요. 세나는 제 편을 들어준 것뿐이고요.”“혜나가 왜 갑자기 너를 밀쳐?”“저도 몰라요. 아무 말도 없이 밀쳤어요!”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말했다.방금 혜나가 자신의 따귀를 때린 걸 생각하자, 화가 치밀었다.지금 당장이라도 혜나를 쫓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나 집사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지만, 더 묻지 않았다.“일하러 가!”“저, 집사 님, 혜나 일은..
배준우는 담배를 피우며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그는 량천옥이 지금 강제로 담을 뛰어넘어야 하는 처지라고 생각했다. 전에 량천옥이 F국에 갔을 때, 박씨 가문이 그녀를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그런데 박씨 가문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박윤은 바보가 아닌데 말이다! 설령 이번에 그녀의 뜻대로 된다 해도, 나중에 지금 진씨 가문을 벗어나는 것보다 더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박씨 가문에서 그러겠대?”배준우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누르며 물었다.“아직 대답은 안 했어. 지금 그 여자가 계략을 꾸미고 있는 거지.”역시 예상대로였다!박씨 가문이 스케일이 어느 정도인지, 해외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배준우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량천옥이 박씨 가문과 한 배를 타려고 한다고?박씨 가문이 그녀를 거들떠보기나 할지 의문이다.그리고 박설희, 박씨 가문의 장녀. 박씨 가문처럼 백 년의 역사를 지닌 가문이 어찌 출신을 보지 않을 거라 말인가?그녀는 정말 자기가 무슨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아는데, 박씨 가문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이런 규율을 중시하는 집안에서 량천옥이 그런 제안을 해오면, 당연히 가장 먼저 배씨 집안 모든 것을 조사해 볼 것이다.그러면 그녀가 저질렀던 추악한 짓들이, 그녀의 계획을 방해할 것이다.“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는데?”“천의 주식 2%를 약혼 예물로 한대.”천의...!지금 F국에서 번성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것 역시 량천옥의 손에 있다.장풍 프로젝트는 천의 소유의 일부 프로젝트일 뿐이다. 량천옥은 장항 프로젝트를 배준우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천의 주식 지분 2%를 예물로 주면서까지 박씨 가문 장녀 박설희를 배준우와 결혼시키려 했다.“허, 영감은 알아?”배준우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량천옥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모를 거야. 아마 알았으면 이렇게 평화롭지 않겠지!”사실이다. 배항준은 동영 그룹을 배준우에게 뺏겼을 때, 한동안 성격이 괴팍해 졌었다.만약 량천옥이 천의 지분을 함부로 내주려 하
“어제 조보은이 고은영을 만나지 못했대. 만약 만났다면 오늘의 결과는 달라졌을 거야.”어제일을 말하지 않으면 모를까 또 어제 일을 언급하니, 량천옥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고은영이 진짜 그 여자를 만나러 갈까요?”량천옥은 불만스럽게 말했다.그녀는 고은영도, 조보은도 그냥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조보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 고은영에 대한 혐오가 더욱 커졌다.그녀는 이런 딸을 키워낸 엄마도 그저 그런 수준이라고 생각했다.량일은 불안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그래서 지금 방법을 생각해야 해. 고은영이 조보은을 만나게 할 방법.”량천옥도 조보은과 고은영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만약 정상적인 모녀 사이였다면, 이번에 조보은이 강성에 왔을 때, 고은영의 집에서 지냈을 것이다.비록 인테리어를 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기본은 다 되어있으니, 바닥이 이불을 깔고 자도 괜찮았다.그러나 고은영은 조보은이 그녀의 집에 가겠다고 제안했을 때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이런 관계이니, 두 사람을 서로 만나게 하는 것도 큰 도전이다.량천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고은영 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해야 해요. 아니면 장항 프로젝트를 진짜 이대로 뺏길 수도 있어요.”“박씨 집안은 뭐래?”“아직 대답이 없어요!”박씨 가문 얘기가 나오니 량천옥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지금 박씨 가문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니, 배준우와 고은영의 결혼을 더더욱 막아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진씨 가문을 완전히 건드리는 격이 된다.그녀의 말에 량일의 안색도 더욱 어두워졌다.“그래, 알았어.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고은영의 일을 말하는 거다.회사 일은 그녀가 기껏해야 량천옥을 도와 아이디어를 내는 정도지, 많이 관여하지는 않았다.그러니 박씨 가문 일에도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꼭 잘 처리해야 해요.”량천옥이 긴장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응.” 량일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다 무슨 생각이라도
량천옥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자, 량일도 덩달아 심각한 얼굴이었다. “왜 그래? 설마 진짜...? ““엄마, 사람 시켜서 알아봐 줘요!”량천옥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너...!”“알아봐야 해요! 꼭 샅샅이 빠짐없이 다 알아봐 줘요!”량천옥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그동안 배준우와의 싸움에 매달려 배항준의 행적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량천옥의 모습에 량일은 조급해졌다.“아니, 너... 진짜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는 거냐?”량천옥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녀를 쳐다봤다.량일은 숨이 막혔다. 계속해서 골치 아픈 일의 연속이니 말이다. 배준우와 고은영의 일도 지금 코앞에 닥쳤는데,배항준의 문제까지 생기다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예전에 배항준은 량천옥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좋아하게 됐다. 지금 량일이 불안한 것도 이것이다.“일단, 배준우랑 고은영 일부터 처리하자!”“네, 알아요!”량천옥은 무거운 마음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량일은 고은영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먼저 자리를 떴다. 그녀가 가자마자 배항준이 돌아왔다.비록 주름이 가득한 늙은 얼굴이지만, 정신은 아주 맑아 보였다.량천옥은 애써 화를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어젯밤에 어디에 갔어요?”신발을 벗고 있었던 배항준이 살짝 멈칫했다.그의 온몸의 냉기가 순식간에 응결되어, 차가운 눈으로 량천옥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뜻이야?”“어르신은 내 남편이에요.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물어볼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그럼 왜 나한테 전화 안 해?”량천옥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배항준의 위엄 넘치는 모습에, 작게 나마 있었던 용기도 와르르 무너졌다.그들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다.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배항준이 위압적인 모습을 보일 때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든다.분명히 그의 아내지만, 그의 부하취급을 받으며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량천옥의 억울해하는 모습에 배항준은 겉옷을 땅에 팽개치고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차갑게 량천옥을 흘겨보며 무거운
그러나 입을 여는 순간, 차가운 말을 뱉어버렸다.“지금 네가 어떤 억울함을 가지고 있는지 상관 안 해. 지금,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사람의 결혼을 막아야 해. 알겠어?”량천옥은 배항준의 차가운 말투에 더욱 서러웠다.배항준은 이마를 만지더니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며 돌아섰다.량천옥도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면,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동안 지켜왔던 장항 프로젝트를, 이렇게 놔줘야 한다니.배준우에게 뺏길 생각을 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은영, 배준우!”왜, 내 인생에 이렇게 태클을 거는 거야! 왜!왜 자꾸 내 일에 끼어드는 거야!량천옥은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었다.그녀는 바로 량일에게 전화를 걸었다.량일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고은영 당장 죽여버려요, 사라지게 하란 말이에요!”량천옥은 거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량일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어르신이 장항 프로젝트에 구희를 끌어 들인대요!”구희는 배항준이 가장 믿는 사람이다. 그가 비록 장항 프로젝트를 량천옥에게 맡기고, 동영 그룹을 배준우에게 넘겼다 해도 아직 많은 일에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그가 지금 자기 사람을 시켜 이 일을 처리하려고 하니, 당장 고은영, 그 골칫거리를 처리해 버리지 않으면 장항 프로젝트를 반드시 뺏기게 될 것이다.량일은 배항준이 구희를 끌어 들였다는 말에 한숨을 쉬었다.배항준이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굴 줄은 몰랐다.“그래, 알았어!”“꼭 사라지게 만들어야 해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요.”량천옥은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이것저것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은영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알았어!”량일은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량천옥은 아직도 심장이 급하게 뛰었다. 방금 큰 자극을 받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란완 리조트.고은영은 햇빛 방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 햇빛 방은 아주 나른한 느낌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혜나는 그
혜나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집사를 쳐다보았다. 집사가 자기를 교체해 버릴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제대로 조사한 거 맞아?무슨 일인지 아직 파악도 안 된 채 이러다니!나 집사는 고은영의 언짢은 듯한 말투에, 공손하게 말했다.“도련님의 규칙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일절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사모님이 방금 오셔서 아직 여기 사람들을 잘 모르세요.”“그 뜻은 혜나가 해고된다는 말인가요?”“네, 사모님!”나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혜나는 굳은 얼굴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럼, 세나랑 미나는요?”혜나의 태도에 나 집사의 얼굴은 더욱 엄숙해졌다.“지금도 사모님 앞에서 실랑이를 하고 싶은 거냐?”“전 실랑이를 벌이려는 게 아니라, 단지 걔들도 저처럼 해고되는지 묻는 것뿐이에요!”“그런,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나 집사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럼, 내가 묻는다면요?”고은영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사모님?”“세나와 미나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고은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녀는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 혜나가 해고당할 위기에 놓인 건 다 자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다른 건 몰라도, 한마디 정도 더 물어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그녀의 질문에 나 집사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먼저 문제를 일으킨 건 혜나입니다. 그래서 세나와 미나는 계속 일을 하게 될 겁니다.”“그럼, 집사님 뜻은, 제가 직접 가서 혼냈어야 했단 말인가요?”“사모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고은영의 말에 나 집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어제 나 집사의 야무지고 세련된 모습에 사리 분별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안 그러면 란완에서 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보니, 배준우의 안목도 매번 정확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면, 일부러 이런 사람을 고용했을 수도. 배준우의 깊은 뜻을 고은영 같은 애송이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지금 눈앞에 서있는 나
고은영도 예전에 직장에 있을 때 억울함을 참은 적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답답하진 않았다.방금 나 집사가 이런 결정하기 전에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화나긴 해도, 생각해 보면 다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화낼 가치가 없죠.”혜나의 말에 고은영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멘탈이 정말 강하시네요!”“별로 가치 없는 사람한텐 화내지 않는 게 좋아요. 자기 몸만 상하죠 뭐.”하긴 사실이다!전에 조보은이 매번 자신을 화나게 할 때마다 고은영도 이렇게 생각했다.화낼 게 뭐가 있어? 다들 별로 가치도 없는 사람인데!“자, 일어나서 과일 차 좀 마셔요. 제 솜씨 맛 좀 보세요.”“혜나 씨가 끓인 거예요?”“네, 다 과일 그 자체의 달콤함이에요, 설탕은 하나도 안 넣었어요, 몸에도 좋은 차에요.”혜나가 차를 그릇에 덜어주며 말했다.설탕을 넣지 않았다는 말에, 고은영은 더 맛보고 싶었다.전에 의사가 임신했을 땐 설탕을 적게 먹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었다.고은영은 혜나가 과일 차를 끓였다고 했을 때, 당연히 설탕을 넣고 만들었을 줄 알았다.한 숟가락 떠서 먹어보니 은은한 달콤함과 과일 본연의 맛이 잘 어우러져서 편안한 맛이었다.“맛있어요.”고은영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사모님, 좋아하시면 한 그릇 더 드세요. 나머지는 따뜻하게 데워서 도련님께 드릴게요.”“단 거 좋아해요?”고은영은 궁금했다.“너무 단 건 싫어하시는데, 이 정도 단 건 드세요.”고은영은 대충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전에 배준우가 하원에 돌아가지 않을 때마다 란완으로 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아니면 그의 입맛을 이렇게 잘 파악하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방금 나 집사 때문에 망쳤던 기분이, 혜나의 과일 차 한 그릇으로 순식간에 풀렸다.요즘 고은영은 식욕이 꽤 좋았다.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과일 차 두 그릇을 순식간에 마셨다.그녀가 마지막 한 모금을 다 마셨을 때, 배준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네.”“어때? 좀 익숙해?”배준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배준우는 그녀가 애써 밝은 척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나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도련님!”“방금 무슨 일이 있었어요?”배준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현재, 나 집사는 방금 혜나와 갈등이 생겼던 두 도우미를 심문하는 중이었다.그는 배준우가 이렇게 묻자, 고은영이 이미 배준우에게 모든 걸 말해줬다고 생각했다.“세나와 미나가 사모님을 돌보는 혜나와 갈등이 생겼습니다.”지금 배준우는 사무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통화하고 있다.나 집사의 말에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럼, 그 도우미 둘 다 해고하세요!”“도련님, 아직 일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고 그런 결정은 내리면 부적절하지 않은지요?”둘 다 해고하라는 배준우의 말에 나 집사가 놀란 듯이 물었다.배준우는 더욱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뭐가 잘못됐어요? 둘 다 집사님 친척입니까?”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위압감에 나 집사는 등에 식은땀이 났다.“아니요, 물론 아닙니다. 잘못된 게 없습니다.”나 집사가 재빨리 말했다.“만약 여주인조차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다면, 해고당할 사람은 집사님이 될 겁니다!”“네, 죄송합니다, 도련님.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다 처리하겠습니다.”나 집사는 겁에 질린 듯 바로 사과했다.사실 그는, 어제 배준우가 고은영을 란완으로 데리고 왔을 때, 고은영이 배준우의 마음속에서 어떤 위치인지 알아차렸다.다만, 그녀의 위치가 이미월보다 높을 줄을 몰랐다.이미월이 해외에 있는 오랜 시간 동안, 배준우의 곁에는 여자가 없었다. 그러니 누가 고은영이 이미월의 자리를 추월했다는 걸 알 수 있겠나!지금 이미월도 강성에 있는데...!순간, 자신이 방심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이때, 세나와 미나는 겁에 질린 얼굴로 나 집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 집사가 전화를 끊은 동시에, 모든 조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나 집사는 굳은 얼굴로 그녀들을 쳐다보며 말했다.“짐 싸고 나가!”두 사람은 놀란 눈으로 믿기지 않는다는
‘이제 와서 쓸모없는 아들 대신 아내를 다시 데려가려고 그러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장선명은 화가 나 머리가 지끈거렸다.상대방은 이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할아버지, 지영이가 나태범한테 끌려갔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못난 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전화기 너머 장성현의 말투가 변하며 바로 장선명을 질책했다.“나씨 가문이 먼저 부끄러운 짓을 한 거예요. 저는 바로 나씨 가문으로 갈 테니 할아버지로 빨리 오세요.”장선명을 더 이상 장성현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다.“내가 안 가면?”장성현은 어린아이들 일로 인해 자신까지 나서는 건 체면이 상한다고 여겼다.‘나태범이 정말 손자며느리를 데려갔단 말인가? 정말 부끄러운 것도 정도껏 해야지.’“그럼 어른한테 손댈 수밖에 없겠죠.”“너... 너 잠깐 기다려라.”장성현은 그 말을 듣고 급히 답했다.장씨 가문이 비록 어두운 쪽 일을 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선은 있었다.특히 가풍이 엄격한 편이었는데 장성현은 아이들에게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최소한의 선은 지킬 수 있게 했다.그런데 장선명이 어른을 때리겠다고 하니 장성현도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목적을 달성한 장선명은 얼른 전화를 끊었다.“더 빨리 가.”“네.”구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 속도를 더욱 높였다.구이준은 도심에서 차선을 변경해 가며 시속 100킬로까지 높였다.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가면서 그는 많은 운전자들에게 욕설을 듣기도 했다.그 사이 안지영은 이미 나태범의 사람들과 나씨 가문 본가에 도착해 있었다.대나무 숲과 조용히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 법도 했지만 지금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안지영은 나태범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나태범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냉담하게 말했다.“너랑 장선명은 어울리지 않으니 결혼식은 취소해.”안지영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비웃는 듯한 눈길로 나태범을 바라보았다.직접 듣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을 것이다.
안지영이 캘리포니아반도를 막 벗어나자마자 그녀의 차는 갑작스럽게 멈춰야 했다.앞좌석 운전기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얼굴이 굳어졌다.“아가씨.”“무슨 일이에요?”안지영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물었다.갑작스러운 급브레이크로 인해 그녀는 앞좌석 등받이에 부딪힐 뻔했다.당연히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 모두 좋을 리 없었다.운전기사가 답하기도 전에 앞차에서 사람들이 내렸다.얼굴을 확인한 운전기사는 아연실색하며 입을 열었다.“나씨 가문 사람들입니다.”“뭐라고요?”‘나씨 가문 사람들? 나태웅은 장선명과 같이 있는 거 아니었나?’안지영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나씨 가문 사람들이 안지영의 차에 다가왔다.그 사람들이 안지영이 있는 쪽 문을 열기 전에 운전기사는 재빨리 문을 잠갔다.그는 후진하여 벗어나려 했지만 그제야 차가 완전히 포위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아가씨, 얼른 선명 도련님한테 연락하세요. 이 사람들 전부 나태범 산하 사람들이에요.”나태범의 사람이라는 말에 안지영은 아연실색했다.나태범이 직접 보낸 사람이라면 이는 일부러 안지영을 겨냥한 행동임이 분명했다.‘결국 나태웅과의 일이 어른들에게까지 번지고 말았구나.’“아가씨, 저희 회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직접 따라나서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까요?”밖에 있던 사람은 차 문이 열리지 않아도 당황하지 않고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하지만 그 평온함 속에서도 확고하고 단호한 태도가 묻어났다.안지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젠장! 왜 다들 나를 협박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절대 만만한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운전기사는 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러나 전화가 연결되기도 전에 안지영은 화가 난 얼굴로 차 문을 열고 당당히 차에서 내렸다.“아... 아가씨!”운전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큰일 났네. 성격이 또 올라왔네.’운전기사는 장선명의 사람이었다.안지영이 장선명과 함께한 이후로 그녀의
‘여자를 갖고 논다고? 도련님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밤에 발생했던 일들도 도련님 모르게 벌어졌던 일인데... 일을 조사해 범인을 밝혀냈을 때 그 범인은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지.’“구이준.”“네.”구이준이 앞으로 나섰다.“웨딩드레스는 킹덤 타운으로 보냈어?”“네. 다 수선해서 보냈습니다.”그 말을 듣고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태웅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지영이가 직접 입어보고 고른 웨딩드레스야.”이 말은 나태웅의 위협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나태웅은 온몸이 얼어붙은 듯 차갑게 굳었고 장선명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욱 음울해졌다.“그럼 거절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지?”“너도 예상하던 답 아니야?”장선명이 싸늘하게 웃으며 답했다.언제 장성명이 위협을 받아들였던가.나태웅은 이런 방식으로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이전에 안지영을 찾아가도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위해 그녀와 헤어질 것으로 믿는다면 나태웅은 장씨 가문을 너무 만만히 본 것이다.장씨 가문 사람들은 이런 위협을 받아들일 사람들이 아니었다.“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어. 네가 지영이를 빼앗아 간다면 나도 인정하지.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우릴 헤어지게 하려는 거라면 나뿐만 아니라 강성 전체가 너희 나씨 가문을 경멸할 거야.”말을 마친 장선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더 이상 나태웅과 할 이야기가 없었다.태연하고 무서울 것 없는 장선명의 모습은 나태웅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장선명은 두 발짝 걸어 나가다 무언가 떠오른 듯 멈춰 섰다.“참, 하늘그룹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늘그룹이 없어져도 나는 안지영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도록 할 방법은 많아. 하지만 너는? 지영이는 널 지금보다 더 원망할 거야.”‘안지영이 자신을 미워하더라고 나도 같이 미워하게 만들겠다고? 도대체 무슨 논리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자기 판단이 흐린 것처럼 지영이도 반쯤 정신을 놓았다고 생각하는 건가?’장선명은 자
3분 후, 나태웅과 장선명이 마주 앉았다. 겉보기엔 평온해 보였지만 현장의 공기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두 사람은 각자 담배 두 개비씩 피울 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진이훈과 구이준은 몸이 굳으며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장선명이 세 번째 담배를 꺼내려는 순간 나태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래서 조건이 뭔데?”나태웅과 시간을 소모하려던 장선명은 그 말을 듣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조건?”또렷한 말투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나태웅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지금까지 병원에서 아픈 척한 것도 모두 안지영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바보같이 순진한 안지영만이 진지하게 나태웅이 정말 미친 건지 아닌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그 여자가 널 미워하게 만들지 마.”나태웅은 이를 악물고 하나하나 힘줘 말했다.장선명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왜 나를 미워해야 하지?”장선명이 흥미롭게 물었다.안진섭과 얼마간 관계가 있을 뿐, 장선명은 다른 방면에서 안지영에게 잘못한 건 없었다.“하늘그룹이 너 때문에 없어진다면 널 미워할 거야. 날 미워하듯 널 미워하게 되는게 네가 진정 원하는 거야?”나태웅이 날카롭게 물었다.하지만 애매한 부분이 있어 장선명은 나태웅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하늘 그룹이 나 때문에 없어진다고? 나태웅 말고 그런 짓을 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장선명은 담배를 담뱃갑에 도로 넣었다.“그렇다면 지영이는 널 미워하겠지?”“난 상관없어. 어차피 이미 미워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영이와 계속 함께하려 한다면...”나태웅은 잠시 말을 멈췄다.고개를 들어 장선명을 바라본 순간 그의 시선에는 어느 때보다도 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나태웅은 싸늘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지영이와 계속 함께하려 한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하늘그룹을 부숴버릴 거야. 그렇게 돼도 지영이가 너랑 무사히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진이훈과 구이준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나태웅이 말을 마친 순간 현장
“내가 대신 가서 혼내줄게. 너는 여자니까 이미지 신경 써야지. 착하지?”“싫어요! 이미지 따위는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바로 핸드폰의 카메라를 켜서 그녀 앞에 내밀었다.안지영은 핸드폰 속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와 마치 미친 여자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고는 순간 얼어붙었다.그녀가 조용해지자 현장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그 남자 때문에 이런 모습 하려고?”안지영은 말문이 막혔다.‘젠장, 언제 이런 모습이 된 거지?’특히나 더 참을 수 없는 건, 나태웅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사실이었다.‘그놈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화내는 거지?’“집에 가자. 착하지?”장선명은 부드럽게 안지영을 달랬다.옆에 있던 구이준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장선명이 어떤 사람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했다.그가 소유한 유흥 장소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미녀들이 넘쳐났다.여린 타입, 매혹적인 타입, 요염한 타입. 남자들이 환장하는 스타일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또한 유흥가에 들어오는 여자 중 장선명을 유혹하여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하는 여자들도 많았다.당시 구이준과 안열은 장선명 주위를 얼씬거리는 여자들을 수없이 많이 처리했지만 장선명이 여자들에게 시선을 두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구이준과 안열은 당시 장선명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건지 의심하기도 했었다.예쁜 여자들이 들끓는 곳에서 어떠한 유혹에도 움직이지 않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가 좋아하는 타입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구이준은 안지영을 유심히 보며 생각했다.‘다른 여자들이랑 비교해도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도련님께서 왜 이 여자를 좋아하시는 거지? 화끈한 성격? 아니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호쾌한 모습?’머리를 정리하던 안지영은 헝클어진 머리로 인해 손가락이 끼여버렸고 그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그로 인해 나태웅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
고은영은 분노에 휩싸인 채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게를 나왔다.배준우가 간 줄 알았던 그녀는 가게에서 나와 배준우의 차가 원래 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고는 화가 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통화를 하고 있던 배준우는 그녀를 보자마자 통화를 마무리했다.“그래. 그렇게 처리하고 끊어.”그는 곧바로 고은영의 부풀어 오른 볼을 살짝 꼬집으며 물었다.“화났어?”고은영이 말하지 않아도 배준우는 알 수 있었다.진성택이 분명히 또 진유경과 관련된 이야기로 그녀를 화나게 한 것이다.“계속 곧 죽을 거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어요.”“도덕적 협박이구나?”배준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진성택이 진유경을 편애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양녀를 선택하고 친딸을 외면한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 세심하지 않은 배준우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고은영에 대한 연민이 짙어졌다.고은영은 더 이상 진성택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매번 만나면 진유경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다.배준우가 한숨을 내쉬며 위로했다.“화내지 마. 어차피 너한테 중요한 사람도 아니잖아.”“그래도 엄마가 너무 불쌍해요.”그녀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슴 한구석이 쓰려왔다.‘네 명이 자식이나 낳았으면서 엄마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엄마가 나한테 남긴 마지막 사랑마저도 첫사랑의 딸에게 나누려고 하다니...’“저녁에 네 큰오빠네에 가서 밥 먹을까?”“오빠한테 전화 왔었어요?”말 돌리는 데 성공한 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응. 아까 너 봤다면서 저녁에 밥 먹자고 하더라고.”“좋아요!”고은영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정훈과 진윤과 가까워진 후, 고은영은 두 오빠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진성택은 정말 무정했다.아니, 애정은 있었지만 그 대상이 아내와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언제 태현 오빠한테 물어볼 거예요?”“조금 있다 시간 내서 만나러 가려고.”“좋아요!”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고은지
“어머니가 나한테 남긴 건 그대로 넘겨주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싸늘한 고은영의 시선에 진성택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진성택이 무언가를 덧붙이기 전에 고은영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않으면 뭐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예요. 진유경에게 손대는 건 쉬운 일이죠.”“유경이한테 손대지 마. 은영이, 너...”“됐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진유경을 그렇게까지 감싸는 진성택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실망감을 넘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래?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일까지 한단 말이야! 아내랑 아이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거지?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 엄마가 남긴 소중한 유품을 진유경 같은 년에게 넘기겠다고? 하...’진유경이 단순히 진씨 가문의 양녀였다면 고은영은 아마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실을 아는 고은영은 지금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설령 눈앞의 남자가 그녀의 혈육이고 아버지라 할지라도 고은영은 그를 혐오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진성택은 그녀의 분노에 애처롭게 그녀를 불렀다.“은영아...”고은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진성택이 말을 이었다.“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너한테 와서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 거야.”“같잖은 호소는 그만 하세요. 저희 사이에 애정이라 칭할 만한 감정도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내였던 사람에게 너무하네요. 엄마가 불쌍해요.”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특별한 애정이라 할 감정은 없었지만 진성택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고은영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진성택은 어떠한가.고은영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
고은영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요.” 진성택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지금 와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아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째 오빠가 병원에 왔었어.”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을 모든 주식들 있잖아. 할머니와 진호영, 그리고 유경이의 지분까지 너에게 줬다던데, 맞지?” 고은영은 차갑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맞아요.” 드디어 그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욱 차가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차가운 시선에 조금 떨린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주식들은 사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니까 너에게 돌아가야 맞아.” “그래서 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부른 거죠?” 고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가 주고자 한다면 왜 이제서야 이리 말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진성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그 주식은 네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줄 수 없다고요? 왜요?” 그의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또다시 진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 같았다. 진유경, 정말 독특한 존재다. 역시나 양딸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진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양부모는 하나같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너희 둘째 오빠가 그 주식들을 되찾고 나서 진씨 가문의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렸어. 지금 그들은 전부 저축해두었던 돈을 쓰고 있어.” 모든 지원을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