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배윤을 지키기 힘든데, 만약 배준우가 그 아이의 존재마저 알게된다면..?량천옥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이 몇 년 동안 배윤은 배준우 때문에 배가에 돌아오지도 못했다.배준우가 어떤 사람인지 량천옥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가 그 아이의 존재를 알기만 한다면, 그걸 이용해서 자기를 벼랑 끝으로 몰아낼 거라는 것도 말이다.그때는 정말 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봐, 배 회장은 절대 그 아이에 대해서 알면 안 돼, 그땐 우리 다 끝이야.”량일은 큰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그렇다, 그 대가가 얼마나 끔찍할지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량천옥은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지금 그녀의 슬픔은 어제 량일이 느꼈던 그런 슬픔이었다.량일은 그런 량천옥이 안쓰러워 그녀를 품에 안고 등을 도닥여줬다.그러고는 탄식하며 말했다.“그냥 그 아이와 인연이 없다고 생각해!”배항준의 지금 건강 상태로 봤을 땐 앞으로 십 년에서 이십 년은 문제 없었다.그래서 지금 설령 그 아이를 찾았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그럼 그 아이가 어디 있는지만, 누구인지만 알려줘요.”량일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그만 잊어!”그녀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량천옥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량천옥이 그때 그 일을 얼마나 후회하는지.몇 년 동안 몰래 그 아이를 찾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그 아이가 누구인지만 알려주면, 몰래 찾아갈게 뻔했기 때문이다.몇 번 그러다가 배항준에게 걸리면......!그래서 량일은 이 모든 걸 혼자만 알고 있기로 다짐했다.어제 량천옥 앞에서 그 말을 꺼낸 것도 후회되었다. 그래서 더욱 알려줄 수 없었다.“절대 안 찾아갈게요. 누군지만 알려줘요. 네?”량천옥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았다.너무 알고 싶었다!량일은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끝까지 침묵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량천옥은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고은영은 오전 내내 뜨개질을 연구했다.마침내 첫 부분을 시작했다. 책에
고은영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굳은 얼굴의 배준우를 바라보았다. 그가 왜 이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배준우도 그녀를 쳐다보았다.“배고프지 않아?”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배고파요.”“아주머니가 도시락 가져오셨어. 같이 먹자.”“네, 좋아요!”밥을 가져왔다는 말에 고은영은 바로 하던 일을 멈췄다.한결 가벼워진 그녀의 표정에 배준우는 웃으며 물었다.“그렇게 그걸 하기가 싫어?”"그냥 한가한 게 익숙지 않아서요. 바쁜 게 습관이 되었나 봐요.”할머니와 자라면서 그녀가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 바로 지식과 돈이 한 사람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다.그래서 온통 공부와 돈 버는데에만 집중했다.이런 한가한 취미 같은 일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걸 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배준우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찡해졌다.그는 그녀의 차가운 손을 살포시 잡았다.“앞으론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돼.”“...... “이 말을 듣는 순간 고은영의 마음속에 뭔가 설명하지 못할 이상한 느낌이 스쳐 지났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준우를 쳐다보았다. 그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무표정의 옆모습을.오늘 진 씨 아주머니는 생선 요리와 소고기 요리를 했다.모두 단백질과 DHA 함량이 높은 음식들이었다.고은영은 생선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밥을 먹을 때도 소고기만 먹었다. 그러자 배준우가 물었다.“생선 안 좋아해?”“좋아하긴 하는데, 번거롭잖아요.”지금 거의 입덧을 하지 않으니, 생선도 먹고 싶긴 했지만, 가시가 많아 귀찮았다.배준우가 그녀가 이런 대답을 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너무 웃겼다.“진짜 레벨이 다른 게으름이네.”“시간 낭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거예요.”고은영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녀가 말한 것도 사실이었다.생선 반찬은 보통 일반적으로 점심시간에 먹지만, 출근하는 입장에 점심시간에 생선 뼈를 바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아예 먹지 않았다.배왕은 생선가스 한 조
지금 량천옥과 배준우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두 사람의 싸움에 가장 두려운 건 바로 고은영이었다.량천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장항 프로젝트는 내어줄 수는 없었다. 배항준은 강성에 돌아오자마자, 그날 밤에 배준우를 집으로 불러들였다.그러자 배준우는 또 고은영을 데리고 함께 갔다.배항준은 고은영을 보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지금 어디를 가든지 이 계집애를 데리고 다니는 거냐?”그는 고은영을 보기만 해도 화가 났다.배준우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의 말에 반박했다.“결혼식은 하지 않았지만, 우린 법적으로 부부예요. 자기 아내를 데리고 다니는데 불법은 아니잖아요?”아주 대놓고 비꼬며 말했다.뭔가를 암시하는 듯이 하는 말이었다.지금의 배준우와 회사에서의 배준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회사에서 그는 냉정하고, 현명하며, 아주 엄숙한, 그런 사람이다.하지만 지금은 아버지를 비꼬며 독설을 퍼붓고 있다!그의 말에 다들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너......!”배항준은 분노하며 배준우를 노려보았다.그에 대한 분노가 극한에 달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특히 ‘불법’이라는 단어는 대놓고 앞에서 그를 욕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배항준은 당시 이미 가정이 있었는데도, 정체 모를 여자들을 데리고는 각종 파티에 참석했다.그는 젊은 시절의 한 실수가 자기 인생 최대의 오점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이 개자식아!”배행준은 결국 참지 못하고 욕을 뱉었다.그러자 배준우가 비웃으며 말했다.“이러려고 오라고 했어요?”이러려고?이렇게 싸우려고 부른 건 아니다.진씨 집안의 일이 그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량천옥이 이렇게 생각이 짧을 줄 몰랐다.감히 배준우의 결혼에 끼어들 생각을 하다니.심지어 그 뒤에는 엄청난 이익 관계가 숨어있었다. 그래서 지금 진가에서 정확한 대답을 달라고 연락해 왔다.....!배항준은 화가 난 나머지 심정지가 올 것만 같았기에 그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는 말했다.“너와 저 계집애가 끝났다는 소식
배항준은 머리가 너무 아팠다.그는 량천옥을 쳐다보며 말했다.“장항 프로젝트 어디까지 정리됐어?”사실은 뻔히 알면서도 물었다. 그가 요 며칠 북성에 출장을 간 것도 모두 장항 프로젝트를 피하기 위해서다.그는 어린 아내가 난처해하는 모습을 차마 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일이 평온하게 지나가기는 글렀다.장항 프로젝트에 대해 묻는 배항준의 말에 량천옥은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아직 정리 중이에요.”“아직도? 얼마나 걸려?”얼마나 걸리냐고?정리하는데도 데드라인이 있나?량천옥은 불만스러웠지만, 배항준에게 감히 그 불만을 드러낼 수 없었다.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일주일이요.”“그럼 일주일 뒤에 발표할까요? 근데 우리 결혼식은 4일 뒤예요. 전에도 말했듯이 만약 장항 프로젝트를 빨리 넘기지 않는다면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될 겁니다.”배준우가 날카롭게 말했다.'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한 마디가 배항준을 또 한 번 자극했다.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량천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틀 안에 다 처리하도록 해!”“어르신!” 량천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자기 불만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냈다.그녀는 더 말하고 싶었지만, 배항준의 차가운 눈빛에 결국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가슴에 화가 치밀었다.“알았어?”량천옥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배항준이 또 한 번 물었다!량천옥은 지금 배준우를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차마 배항준 앞이라 차마 티를 낼 수는 없었다.“알겠어요.”량천옥은 그저 주먹을 쥐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를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집에서 나왔고, 고은영은 아직도 두려움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방금 배항준의 살기 가득한 눈빛이 너무 소름 끼쳤다.배준우는 땀이 나는 그녀의 손바닥을 주무르며 물었다.“방금 무서웠어?”“어떻게 안 무서워요! 잡아먹힐 거 같은 분위기던데.”그녀는 두 번 왔는데, 두 번 다 이런 분위기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배준우는
남자와 여자는 문제를 바라보는 깊이가 서로 다르다.량천옥은 배준우가 장항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예견했지만배항준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심지어 량천옥이 배준우를 너무 나쁘게 생각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비록 성격이 안 좋긴 해도 자기 동생을 몰아낼 사람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왜 윤이 얘기를 하냐고요? 이건......”배항준의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에 량천옥은 말을 멈췄다. 계속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 말을 돌렸다.“어르신, 윤이 걱정은 안 되세요?”“안심해, 준우는 그런 놈이 아니야.”조금의 의심도 없이 배준우를 믿는 배항준의 모습에 량천옥의 마음은 이미 반쯤 싸늘해졌다.“윤이 한테는 안 그런다 쳐도, 나한테는요?”량천옥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배준우의 그동안의 행동을 보아서는 그녀를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배항준은 여전히 배준우의 편에 서서 말했다.“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런 걱정을 해?”“아니... 어르신....”량천옥은 말문이 막혔다. 말끝마다 배준우의 편을 들어주는 그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분명히 전에는 안 그랬는데!혹시, 두 사람이 몰래 다른 얘기를 나눴나?“됐어, 피곤해!”배항준은 더는 그녀의 말을 듣기 싫었기에 그는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더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위층으로 올라가는 배항준의 뒷모습에, 량천옥은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고은영...”량천옥은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그 순간, 그녀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그깟 시골 계집애랑 결혼을 미끼로 장항 프로젝트를 빼앗아 가겠다고 협박한다 이거지?그럼 반드시 이 결혼을 막아야 해!량천옥은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녀도 이젠 더 이상 예의 같은 건 차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전에 량일이 그녀에게 했던 말도 전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였다!........량일은 방으로
전화를 끊자마자, 조보은은 서정우를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들, 우리 곧 돈 생길거야!”조보운의 이런 흥분에, 서정우와 서준호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 돈을 받을 수 있겠는가?서정우와 서준호 모두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하지만, 조보은은 혼자 버티고 있었다.“그냥 그만두자.”서준호가 약간 고민스러운 듯 말했다.앞서 경찰서까지 끌려갔는데, 또 가서 소란을 피우자고?심지어 내일 안에 처리해야 한다고?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만두긴 뭘 그만둬?”조보은은 화를 내며 말했다.그녀는 지금 그들이 이렇게 가난한 건 다 서준호 탓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더는 전처럼 힘들게 살기 싫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그럼, 당신이 그 계집애를 물러나게 할 능력이나 있어? 예전의 만만한 계집애가 아니야. 강성에 집도 샀고. 당신이 받은 돈 절반을 준다 해도 그 계집애는 당신 말 안 들을 거야.”그렇다!고은영의 집은 2년 전에 사놓은 것이기에 지금은 집값이 배로 뛰었을 것이다.그래서 5억을 준다 해도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서준호의 말에 조보은은 코웃음 쳤다.“누가 반 나눠 준대? 생각도 하지 말라 그래!”고은영에게 절반을 나눠준다고?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거의 광기에 가까운 그녀의 태도에 서준호와 서정우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서준호가 불안하다는 듯 물었다.서준호는 조보은이 전에 그런 봉변을 당해놓고도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그러는지 불안했다.10억을 준다고 하니, 조보은은 몸을 던져서라도 그 돈을 받아내고 말겠다고 다짐했다.10억, 그녀에겐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큰 액수다.10억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이 몇 년간의 억울함이 모두 사라질 것 같았다.“일단 준비하고 있어, 내일 내가 고은영 끌고 올 거야.”조보은은 날카로운 눈으로 말했다.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고은영
그녀의 말에 배준우는 화분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에는 못생겨 보였다. 그러니 귀엽다고 느낄 수가 더더욱 없었다.그러고는 소파에 놓인 절반 짜인 목도리에 시선을 옮겼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절반밖에 짜지 못했다니, 그녀가 정말 손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다.심지어는 그녀가 이런 걸 지루해한다고 생각했다.“이렇게 인내심이 없는데, 예전에 정 씨 어르신한테 많이 혼나지 않았어?’이런 걸 하려면 차분한 인내심이 필요했다.그러자 고은영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제가 잘못했을때만 혼났어요.”정설호는 소문난 다혈질이었다!그러나 고은영에겐 유난히 강한 인내심을 보였다.“그럼, 부조를 배울 인내심은 있었나 보네?”“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그녀는 부조를 정말 좋아해서 아주 열심히 배웠다.심지어 어제도 이전 고객의 소개로 주문하려던 사람이 있었다.하지만 지금 아기를 임신하고 있는 데다, 강성을 떠날 준비까지 해야 하니 주문을 받지 않았다.나중에 다른 도시로 가서 생활할 때, 다시 주문받을 생각이었다.배준우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휴게실을 나갔고, 고은영은 다시 목도리를 들고 뜨기 시작했다!그때 또 다시 조보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고은영은 짜증이 나서 전화를 꺼버렸지만, 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그녀는 화가 나서 결국엔 전화를 받았다.“한 푼도 줄 생각 없으니까, 소용없는 짓 그만해요!”고은영은 차갑고 단호하게 말했다.자기에게서 돈을 가져간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조보은이 더 이상 헛된 희망을 버리게 하고 싶었다.“난 돈 달란 말도 안 했는데, 왜 그렇게 단정 지어?”그녀의 말에 조보은은 의외로 화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애써 부드러운척하는 조보은의 태도에 고은영은 더 화가 났다.“그럼, 뭘 하려는 건데요?”“우리 내일이면 고향으로 돌아갈 거야. 가기 전에 밥 한 끼만 같이 먹자!”“저 그럴 시간 없어요!”조보은의 갑작스러운 가족 코스프레가 고은영의 신경을 건드렸다.일 초도 생각하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고은영이 이어서 말하기도 전에 안지영은 다급히 물었다.“뜬금없이 왜 그런 의심을 하는 거야?”왜 자꾸 이런일이.....!고은영은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뜬금없는 게 아니라, 조보은이 스스로 말실수 한 거야!”“홧김에 한 말 아니지?”안지영이 되물었다.조보은이 화가 나면 막말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 거 아니야!”조보은이 늘 화날 때 하는 말과는 달랐다. 분명히 홧김에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고은영의 말에 안지영은 서둘러 차를 길가에 세웠다.“그래서 어떻게 하려고?”고은영이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이미 계획이 있다는 얘기다.“조보은이 내일 나 만나재. 그래서 내일 머리카락 뽑아서 친자 확인해 보려고.”이게 그녀가 조보은의 만나자는 제안을 승낙한 이유다.의심이 가는 이상,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다.안지영도 그녀의 계획에 동의했다. 그동안 그녀가 조보은에게 당했던 걸 생각하니 그녀 역시 화가 났다.“그래, 그런건 확실하게 알아둬야지. 만약 네가 진짜 그 여자 딸이 아닌데, 너한테 이런 식으로 돈을 요구하면, 그건 정말 인간이 아니지.”만약 조보은이 그녀를 잘 보살펴 줬었다면, 돈을 요구해도 어느 정도 이해하겠는데오히려 방치하고 구박했으면서 그런 돈을 요구하니 어이가 없었다.예전엔 그렇게 무시하고 구박하더니, 이젠 돈이 좀 생기니까 그녀에게 들러붙으려고 수작을 부리니 말이다.세상에 쉽게 얻는 법은 없다.고은영은 이번에 모든 걸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고 다짐했다.“내일 나도 같이 가줄까?”“응, 그래 주면 고맙지.” 고은영이 말했다.조보은이 이럴 때는 반드시 숨은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조보은이 어떤 사람인데, 단순히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그녀를 불러낼 리 없다!그러니 그녀의 꾀에 걸려들면 안 된다.안지영도 고은영이 혼자 그들을 만나는 게 걱정됐다.그동안 조보은이 한 짓이 있으니,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그래, 그럼 내가 내일 휴가 내서 너랑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
하늘 그룹 앞에서 나태웅이 일을 벌인다면 그건 하늘 그룹의 이미지에 좋지 않았다.안열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안지영은 짜증이 나서 머리를 확 쥐어뜯었다.응접실에 온 안열은 문을 열자마자 거대한 남자의 그림자를 발견했다.그 일주일 동안 나태웅은 1년의 시간을 보낸 듯했다.그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그래서 나태웅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안열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안열은 빠르게 표정을 숨기고 담담하게 얘기했다.“들어가세요.”나태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열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안열의 곁을 지날 때 시선을 내려 안열을 쳐다보았다.결국 나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갔다.하지만 안열은 나태웅의 주변에서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에 놀라서 숨도 쉬지 못했다.나태웅이 사라진 후에야 안열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나태웅이 들어올 때 안지영은 마침 장선명과 통화하고 있었다.통화 내용은 결혼식에 관한 내용이었다.“네, 하얀 장미만 아니면 돼요. 그리고...”거기까지 말한 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보면서 의도적인 눈빛으로 얘기했다.“하얀 국화는 절대 안 돼요.”“국화에 트라우마 남은 거야?”전화기 너머의 장선명이 가볍게 웃었다.나태웅도 흘러나온 그 소리를 듣고 장선명이 얼마나 안지영을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표정이 굳은 나태웅은 더욱 차가워진 눈빛으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결혼식이니까 당연히 국화는 안 되죠.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또 나한테 국화를 보낼까 봐 겁나네요.”“그래, 알았어. 감히 우리의 결혼식을 망치려는 사람이 생기면 난 그 사람을 바로 죽여버릴 거야.”“...”안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니, 그저 조심하라는 말이었는데 죽인다는 건... 좀 과하지 않아요?”“그래? 네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을게.”“그래요.”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었다.나태웅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는 것을 보면서 안지영은 전화기에 대고 얘기했다.“점심때 먹고 싶은 게 있는
나씨 가문은 지금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나태현에게 돌아오라고 연락했지만 나태현은 거절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나태범은 량천옥이 무슨 심정으로 나태현을 죽이려고 드는 것인지 잘 알기에 나태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순조롭게 귀국하는 것은 이제 어려울 것이다.“하...”나태범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나태범의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집사가 다가가 얘기했다.“어르신, 일단 진정하세요.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까요.”나태범은 또 한숨을 쉬었다.“하...”아무리 사람을 보냈다고 해도 나태현을 안전하게 데려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그해의 일을 떠올린 나태범의 눈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 담겼다.이건 끝나지 않은 복수다.“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지?”나태범이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그들은 고희주가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었다.그들이 아는 바에 따르면 나태현은 많은 의료진을 고용해서 고희주를 보살폈다.그런데 고희주가 죽다니.“량천옥 씨의 행동을 보면 아마도 정말 죽은 것 같습니다.”그 말에 나태범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고희주를 법적인 손녀로는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아이이니...그래서 나태범은 더더욱 고희주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배준우가 나태현을 지켜준다면 좋겠는데...”나태범이 한숨을 쉬고 얘기했다.량천옥이 얼마나 독한지 잘 아는 나태범은 나태현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그해의 일도 겨우 잠재운 것이다.량천옥이 아무리 요즘 잠잠해졌다고 하지만 량천옥은 그 원한을 잊지 않을 것이다.“...”집사는 량천옥의 말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배준우 님한테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집사가 얘기했다.나태범이 배준우에게 전화한다고 했을 때부터 집사는 나태범을 말렸다.아무리 배준우가 나씨 가문 형제들과 친한 사이라고 해도 지금은 고은영의 남편이니까 말이다.그러니 사랑 앞에서 우정을 선택할 것 같지 않았다.“난 그래도 그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
“계약 파기 때문에요?”고은영이 눈썹을 까딱거리면서 물었다.고은영은 나씨 가문에 대한 호감이 하나도 없었다.아무리 나씨 가문이 강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하지만 수많은 계약 파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배준우와 진윤까지 계약을 파기했으니, 배씨 가문이나 진씨 가문과 연관 있는 가문들도 연달아 나씨 가문과의 계약을 파기할 것이다.사람은 이성을 잃으면 판단을 급하게 내리려고 하니까 말이다.아마 천락 그룹은 지금 수많은 압박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만약 배준우가 지금 계약 파기를 취소한다면, 천락 그룹에게 희망이 주어질 것이다.고은영은 그래서 나씨 가문이 배준우에게 연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배준우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그러면 왜...”“나태범 어르신은 나태현이 무사히 귀국하기를 원하고 있어.”“나태현 씨가 귀국하는 것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우리가 방해한 것도 아니고...”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그제야 고은영은 배준우의 뜻을 알아차렸다.나태범은 정말 교활한 사람이었다.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어 힘을 얻으려는 것이었다.배준우와 량천옥의 사이는 아주 어색했다. 하지만 고은영은 고은지와 사이가 좋고 고은지는 량천옥의 친딸이다.배준우가 고은영을 설득한다면 고은영이 고은지를 설득하고 이어서 고은지가 량천옥을 설득해 나태현을 살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미친 거 아니에요?”고은영이 화를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아마 나태범은 고은지를 며느리로 들일 생각이 추호도 없을 것이다.그러면서 고은지를 이용해 자기 아들을 살리려고 하다니. 차라리 고은지를 직접 찾아가는 성의라도 보였으면 모른다.배준우는 고은영의 모습을 보면서 물었다.“어떻게 생각해?”고은영은 바로 대답했다.“절대 안 돼요. 우리 언니는 나태현을 용서해줄 리가 없어요.”배준우에게까지 도움을 청할 정도라면 해외의 상황은 확실히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량천옥이 얼마나 미쳐있는지를 생각하면 나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