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우는 자기 품속에 안긴 뽀얀 피부의 그녀를 보자,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 올라갔다.“추워?”“아니, 그게요...”고은영은 부끄러워서 말을 잇지 못했다.“여기 네 옷 없어.”“그러니까 대표님 옷을 빌리는 거잖아요.”방금 옷을 벗었을 때 옷 뒤가 온통 커피로 뒤덮였단 걸 알았다. 오늘 흰색 패딩을 입었는데심지어 속옷에도 조금 스며들었다. 그러니 스웨터나 패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바지도 마찬가지다.아무튼 오늘 입은 모든 옷에 다 묻었다고 보면 된다.배준우가 그녀를 들어 안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정말 부끄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배준우는 그녀를 이불 속에 집어넣었다.고은영은 이불로 자기 몸을 돌돌 감쌌다.마치 번데기 같은 그녀의 모습에 배준우는 웃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부끄러운 줄은 아나보네?”“......”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배준우는 부끄러워 새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보고 더는 놀리지 않고 돌아서서 옷을 가지러 갔다.고은영은 헐렁한 옷들을 다 걸치자, 배준우가 드라이기를 가져왔다. 그녀가 드라이기를 받으려고 할 때, 배준우는 그녀를 앉히며 말했다.“가만히 앉아있어.”“대표님, 바쁘지 않으세요?”고은영이 중얼거리며 물었다.배준우는 보통 오후에 가장 바쁘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머리를 말려준다고?배준우는 그녀의 머리를 말려주며 물었다.“그 여자가 무슨 말 했어?”량일이 고은영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했다.“우리 언니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게 다 그 여자가 한 짓이래요.”고은영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고은지가 가뜩이나 어렵게 사는데, 거기다 량일이 그녀의 일을 방해하는 걸 생각하자 고은영은 더욱 화가났다.너무나도 독한 여자라고 생각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배준우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직접 그렇게 말했다고?”고은영은 직접 휴대폰을 열어 량일에게서 받은 문자를 배준우에게 보여줬다.그 문자를 본 순간 배준우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그러
그런데“그 계집애가 그런 거야?”량천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고은영을 만나고 돌아왔으니 그녀 때문이라 생각했다.고은영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 생각했다.량일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량천옥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량천옥도 몹시 당황하여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 량일의 곁으로 다가갔다.손을 뻗어 량일의 팔을 잡았다.“엄마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량일은 흐느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량천옥은 그녀가 이렇게 슬퍼하면서 우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량일의 얼굴에서는 처음보는 짙은 슬픔이 있었다. “말 좀 해봐요,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량일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량천옥은 더 급해졌다.량일은 두 손을 내려놓고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량천옥을 바라보았다.량천옥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쩔 줄 몰랐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량일은 숨을 거칠게 쉬며 말했다.“그 아이, 아직도 기억하니?”“......”순간 머리가 멍해졌다.량일을 걱정하던 그녀의 얼굴이 순간 완전히 굳어졌다.'아이'라는 두 글자에 세상이 무너질듯한 느낌이 들었다.“무슨 소리예요?”“기억하는 거지? 그렇지?”량일은 목이 메었고, 량천옥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순간, 그동안 잊고 살았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그녀가 어떻게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건 그녀가 평생 돌이키기 싫은 아픔인데 말이다.그런데, 지금 갑지기 왜 그 얘기를......?“설마.. 그 애를 만났어?”잠시 뒤, 량천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하지만 말하면서도 그녀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그녀의 머리는 지금 완전히 백지상태가 되었다.량일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치며 말했다.“죄를 지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죄를 지었다고!”“엄마, 뭐 하는 거예요!?”량천옥은 량일을 제지하며 말했다.량일은 마음이 아팠다.“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진짜 그 애를 본 거예요?!”
량일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량천옥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어디서 봤는데요?”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는 그녀 혼자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아이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기도 했고, 막상 진짜로 알게 될까 봐 겁나기도 했다.량일은 더는 말하지 않고 슬픈 눈으로 량천옥을 바라보기만 했다.“제발 말 좀 해요!”량천옥은 마음이 다급해졌다.그러자 량일이 눈을 질끈 감으며 물었다. “알아서 뭐 하게? 말하면 찾아서 배씨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자신 있어?”“......”량천옥의 얼굴도 점점 더 창백해져 갔다.하긴, 알아도 뭘 할 수나 있을까?지금의 그녀는 이미 예전의 량천옥이 아니다. 지금의 그녀는 강성 도시 재벌가의 사모님이다.그리고 그 아이는 그녀의 오점이 될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녀는...“그래도 어디 있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예요?”량일은 다시 침묵했다.그녀의 태도에서 그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량일은 그 당시 짧은 시간 안에 어떤 게 가장 좋은 선택인지 결정하고는 바로 실행했다. 그리고 모든 아픔을 뱃속으로 삼켰다. ........회사 시점.배준우가 고은영의 머리를 다 말려준 후, 고은영은 휴게실을 잠깐 정리했다.그리고 배준우가 준 널찍한 옷을 입고 사무실로 갔다. 지금 사무실에는 배준우 혼자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고은영이 옷을 불편해하는 모습에 배준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이따가 옷 가져올거야. 많이 불편해?”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니 정말 불편했다.“저 정말 휴게실만 정리하면 되나요?”비록 회사 사람들 눈엔 배씨 가문 사모님이라 많은 업무를 볼 필요가 없다고 보이지만고은영은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진짜 사모님이 아니라, 똑같이 월급을 받는 직원이라는 걸.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자신의 업무가 적어져서 매우 불안했다.“왜? 심심해?”“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 네가 할 일이 있을
갑자기 한가해지니 그녀도 익숙하지 않았다.“일단 먼저 휴게실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네, 알겠어요.”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더는 배준우를 방해하지 않고 휴게실로 돌아갔다.배준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그녀가 나간 뒤에도 배준우 입가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고은영이 휴게실에 들어오자마자 고은지에게서 전화가 왔다.고은지는 내일부터 천락그룹에 출근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비록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알고 있지만 고은영은 여전히 기뻤다.“잘됐다! 언니!”“나 이 100만 원 다시 너한테 돌려줄게, 나 이제 직장 구했으니까 돈 안 줘도 돼.”“취직하고 인턴기간도 있고, 월급도 한 달 뒤에 받으니까 일단 언니가 갖고 있어.”“나도 돈 조금은 있으니까, 정말 괜찮아. 너 다시 가져.”고은지는 계속 돌려주겠다고 했다.하긴, 요 2년 동안, 고은영은 고은지 때문에 서정우에게도 적지 않은 돈을 주었다.지금 고은지는 자기 힘으로 다시 일어서고 싶었다.전에도 고은영이 강성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은지는 따로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었다. “그래, 알겠어.”고은지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고은영도 그녀의 마음을 존중했다.“그럼, 필요하면 말해.”“응, 알겠어.”고은지가 대답했다.두 사람은 몇 마디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오후 내내고은영은 배준우가 일거리를 안배해 주길 기다리다 못해 결국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어차피 상하원에서 배준우의 침대서 함께 잔적이 있으니, 지금 그의 침대에서 잔다고 해도 그가 별로 개의치 않아 할 것 같았다.하지만, 한 참 잘 자다가 또 다시 전화 벨소리에 깨어났다.그녀는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버튼을 누르고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네가 내려올래, 아니면 내가 올라갈까?”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영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그녀는 지금 차림새 때문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그녀가 머뭇거리는 소리에 조보은의 태도는 점점
배준우가 휴게실로 들어왔다.얼굴이 새빨개진 고은영을 보면서, 그녀가 이렇게까지 수줍어할 줄 아는 사람인지 처음 안 표정을 지었다.량천옥이나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다른 사람을 대할 땐 당당하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느낌을 주지만 배준우 앞에서는 연약하고 겁 많고 수줍은 그런 사람이다.배준우가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나 찾았어?”“네!” 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배준우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왜 찾았어?”고은영은 여전히 긴장한 얼굴이었다!“응?”고은영은 그제야 아까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생각났다.“저기, 조보은이 지금 문 앞에 왔대요. 행패 부리려나 봐요!”“응, 알고 있어!”“이미 알고 있었다고요?”고은영은 깜짝 놀랐다.조보은이 방금 전화 왔는데 이미 알고 있다고?아마 아까 말하고 바로 보안팀에게 대비하라고 말한 모양이다.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곧 끌려갈 거야.”“누구한테 끌려가요?”“당연히 경찰이지, 내가 뭐 깡패라도 불렀을까 봐?”배준우의 말에 고은영은 소리 내 웃을 뻔했다. 하긴 배씨 가문이라면 그런 방식을 쓰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배씨 집안이 강성에서 어떤 위치인지, 배준우가 어떤 사람인지 고은영은 너무 잘 알고 있다.그렇기에 그가 이전에 만났던 그 사람들로부터 그녀는 바로 눈치챘다.고은영의 걱정 가득한 모습에 배준우는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내가 걱정 돼?”뭔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누가 대표님을 걱정해요!”고은영은 배준우 걱정은 정말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조보은이 이러는 이유는 순전히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이다.다른 사람이면 모를까하필 조보은이 이러니 일전 한 푼도 주기 싫었다.“내가 조급해할까 봐 걱정은 안돼?”배준우는 어두워진 그녀의 표정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장난스레 그녀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고은영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는 대답 하지 않았다.그러자 배준우가 웃으며 물었다.“안 그래?”고은영은 대답을
배준우가 물었다.“왜? 싫어?”“......”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고은영은 여기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지금 배준우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이건 좋아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그와 엮이는 게 싫었다.그날 밤 강성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공포스러웠다.“알았어, 안 놀릴게.”마치 어린아이처럼 겁에 질린 그녀의 모습에 배준우는 더 묻지 않았다.그녀를 천천히 침대에 눕히고 시계를 보며 말했다.“오늘 미팅 있어서 늦게 퇴근할 것 같애.”“네, 알겠어요.”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배준우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만족한 듯 웃으며 몸을 돌려 대기실을 나갔다.배준우가 나간 뒤, 고은영은 놀란 심장을 쓰다듬었다.아니, 대표님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오늘 벌써 두번째로.... 그것도 맨정신에....왜 자꾸 뽀뽀하는 거지?진짜 부부도 아닌데, 왜...?고민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서정우의 전화가 걸려 올 때까지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서정우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고은영, 네가 감히? 너 이러면 천벌 받아!”“......”서정우의 분노와 함께 전화기 너머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니, 아마도 경찰이 온 듯했다.천벌?서정우의 입에서 천벌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참 우스웠다.서정우는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계속해서 소리 질렀다.“너 네가 지금 돈 많은 남자 만났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 내가 똑똑히 말하는데......”“말하는데? 네가 뭘 말하는데?”고은영이 그의 말을 끊었다.서정우가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고은영은 아주 우스웠다.고은영의 말에 바로 서정우의 기세가 눌렸다.그리고 조보은의 목소리로 들려왔다.“내가 내 딸 찾겠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난 잘못한 거 없어, 근데 니들이 왜 나를 잡아가, 이거 놔, 이거 놔!”서정우는 더 말할 겨를도 없이 핸드폰을 버리고 조보은에게 달려갔다.그러나 서준호가 그를 덥석 끌어안았다.“가지 마!”서정우는
경찰차가 출발했다.서정우와 서준호는 동영그룹 입구에서 오랫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구경꾼들이 다 가자, 경비원이 그들에게 다가갔다.“계속 소란 피울겁니까?”“.....”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조금 전에 소란을 피운 결과를 봤기 때문에 더 소란을 피울 수가 없었다.서정우는 굳은 얼굴로 서준호를 쳐다봤다. 서준호는 고개를 저으며 난처하게 웃었다. “아니에요, 우린 소란 피우러 온 게 아니에요. 다 그 여편네 주장입니다. 우리와는 상관없어요.”서준호는 비록 도박을 좋아하고, 막 살지만, 아들에겐 늘 진심이었다.서준우는 서준호가 도와주지 않는 게 괘씸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당장 가세요!”경비원이 그들을 쫓아냈다.비록 사모님의 친정 식구들이지만 대표님의 지시가 있으니, 그 지시에 따라야 했다.그래서 배씨 가문 사모님의 아버지와 동생이라 해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가, 갈게요!”서준호는 서둘러 서정우를 끌고 동영그룹을 떠났다.조보은이 소란을 피운 지 30분 만에 경찰이 왔다.원래 제대로 한바탕 할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서정우, 서준호 두 사람만 남았다.“아까 왜 안 도와줬어요?”서정우는 말하며 서준호의 손을 뿌리쳤다.서정우는 항상 아버지보다 엄마를 더 챙겼다.그는 도박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별로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조보은이 계속했던 말과도 연관이 있었다. 지금 그들이 이토록 가난한 건 다 도박을 좋아하는 서준호 때문이라는 것.그래서 서정우는 마음속으로 항상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다.방금전도 서준호가 조보은이 끌려가는 걸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는 걸 보니 화가 치밀었다.“어떻게 도와줘? 같이 잡혀가?”서준호도 화난 얼굴로 대답했다.조보은의 이런 행동이 서준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걸핏하면 소란을 피우고, 난리를 치는 것 말이다.도시에서까지 그런 짓거리를 하니 말이다!이곳은 강성이다. 그녀가 무턱대고 덤빈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서준호의 대답에 서정우는 더욱
”내가 그딴 걸 신경 쓴다고 생각해?”“고은영, 너 그게 무슨 말이야?”서정우는 다급했다.아까전엔 다 자기 탓이라 해놓고!지금 이 말은 또 무슨 의미야?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아무 뜻 아니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 다시는 전화하지마.”“내가 너한테 전화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네 꼴을 보면 나도 역겨워!”“......”“다 우리 엄마 때문이야!”서정우는 분노하자 고은영이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내 꼴? 그럼, 예전엔 왜 나한테 전화했는데?”지금 그가 이런 말을 내뱉는건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고은영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정우는 자기가 예전에 고은영에게 전화하던 태도를 생각하니, 수치심에 얼굴이 파래졌다.“다 필요 없고, 당장 엄마나 풀어줘!”“내가 잡은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풀어줘?”“야 고은영......”“그 사람이 만약 지은 죄가 없다면 알아서 잘 풀려나겠지.”고은영은 냉정하게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서정우는 전화가 끊기자, 화가 난 나머지 전화를 부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새로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휴대폰을 보니, 진짜로 부술 용기는 없었다.“그 계집애가 뭐래?”전화를 끊는 모습에 서준호가 물었다.“뭐라고 하겠어요? 그러게, 예전에 좀 잘해주시지, 그러니까 지금 가족이고 뭐고 이렇게 대하는 거 아니에요. 이제 만족하세요?”“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 친엄마도 못 해주는걸 나한테 바래?”서준호는 불만이 섞인 말투로 말했고, 서정우의 얼굴에도 짜증이 가득했다!방금 고은영이 한 말들을 생각하니, 당장이라고 가서 그녀를 반쯤 죽여놓고 싶었다.고은영과 소통이 안 되자, 서준우는 바로 고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내일 출근 준비를 하고 있던 고은지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는 한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 있어?”이혼 전, 고은지는 항상 조보은을 걱정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자기의 가정까지 파탄 낸 그녀에게 더 이상의 인내심은 없었다.“큰 누나, 엄마가 고은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
하늘 그룹 앞에서 나태웅이 일을 벌인다면 그건 하늘 그룹의 이미지에 좋지 않았다.안열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안지영은 짜증이 나서 머리를 확 쥐어뜯었다.응접실에 온 안열은 문을 열자마자 거대한 남자의 그림자를 발견했다.그 일주일 동안 나태웅은 1년의 시간을 보낸 듯했다.그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그래서 나태웅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안열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안열은 빠르게 표정을 숨기고 담담하게 얘기했다.“들어가세요.”나태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열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안열의 곁을 지날 때 시선을 내려 안열을 쳐다보았다.결국 나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갔다.하지만 안열은 나태웅의 주변에서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에 놀라서 숨도 쉬지 못했다.나태웅이 사라진 후에야 안열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나태웅이 들어올 때 안지영은 마침 장선명과 통화하고 있었다.통화 내용은 결혼식에 관한 내용이었다.“네, 하얀 장미만 아니면 돼요. 그리고...”거기까지 말한 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보면서 의도적인 눈빛으로 얘기했다.“하얀 국화는 절대 안 돼요.”“국화에 트라우마 남은 거야?”전화기 너머의 장선명이 가볍게 웃었다.나태웅도 흘러나온 그 소리를 듣고 장선명이 얼마나 안지영을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표정이 굳은 나태웅은 더욱 차가워진 눈빛으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결혼식이니까 당연히 국화는 안 되죠.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또 나한테 국화를 보낼까 봐 겁나네요.”“그래, 알았어. 감히 우리의 결혼식을 망치려는 사람이 생기면 난 그 사람을 바로 죽여버릴 거야.”“...”안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니, 그저 조심하라는 말이었는데 죽인다는 건... 좀 과하지 않아요?”“그래? 네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을게.”“그래요.”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었다.나태웅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는 것을 보면서 안지영은 전화기에 대고 얘기했다.“점심때 먹고 싶은 게 있는
나씨 가문은 지금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나태현에게 돌아오라고 연락했지만 나태현은 거절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나태범은 량천옥이 무슨 심정으로 나태현을 죽이려고 드는 것인지 잘 알기에 나태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순조롭게 귀국하는 것은 이제 어려울 것이다.“하...”나태범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나태범의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집사가 다가가 얘기했다.“어르신, 일단 진정하세요.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까요.”나태범은 또 한숨을 쉬었다.“하...”아무리 사람을 보냈다고 해도 나태현을 안전하게 데려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그해의 일을 떠올린 나태범의 눈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 담겼다.이건 끝나지 않은 복수다.“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지?”나태범이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그들은 고희주가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었다.그들이 아는 바에 따르면 나태현은 많은 의료진을 고용해서 고희주를 보살폈다.그런데 고희주가 죽다니.“량천옥 씨의 행동을 보면 아마도 정말 죽은 것 같습니다.”그 말에 나태범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고희주를 법적인 손녀로는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아이이니...그래서 나태범은 더더욱 고희주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배준우가 나태현을 지켜준다면 좋겠는데...”나태범이 한숨을 쉬고 얘기했다.량천옥이 얼마나 독한지 잘 아는 나태범은 나태현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그해의 일도 겨우 잠재운 것이다.량천옥이 아무리 요즘 잠잠해졌다고 하지만 량천옥은 그 원한을 잊지 않을 것이다.“...”집사는 량천옥의 말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배준우 님한테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집사가 얘기했다.나태범이 배준우에게 전화한다고 했을 때부터 집사는 나태범을 말렸다.아무리 배준우가 나씨 가문 형제들과 친한 사이라고 해도 지금은 고은영의 남편이니까 말이다.그러니 사랑 앞에서 우정을 선택할 것 같지 않았다.“난 그래도 그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
“계약 파기 때문에요?”고은영이 눈썹을 까딱거리면서 물었다.고은영은 나씨 가문에 대한 호감이 하나도 없었다.아무리 나씨 가문이 강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하지만 수많은 계약 파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배준우와 진윤까지 계약을 파기했으니, 배씨 가문이나 진씨 가문과 연관 있는 가문들도 연달아 나씨 가문과의 계약을 파기할 것이다.사람은 이성을 잃으면 판단을 급하게 내리려고 하니까 말이다.아마 천락 그룹은 지금 수많은 압박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만약 배준우가 지금 계약 파기를 취소한다면, 천락 그룹에게 희망이 주어질 것이다.고은영은 그래서 나씨 가문이 배준우에게 연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배준우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그러면 왜...”“나태범 어르신은 나태현이 무사히 귀국하기를 원하고 있어.”“나태현 씨가 귀국하는 것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우리가 방해한 것도 아니고...”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그제야 고은영은 배준우의 뜻을 알아차렸다.나태범은 정말 교활한 사람이었다.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어 힘을 얻으려는 것이었다.배준우와 량천옥의 사이는 아주 어색했다. 하지만 고은영은 고은지와 사이가 좋고 고은지는 량천옥의 친딸이다.배준우가 고은영을 설득한다면 고은영이 고은지를 설득하고 이어서 고은지가 량천옥을 설득해 나태현을 살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미친 거 아니에요?”고은영이 화를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아마 나태범은 고은지를 며느리로 들일 생각이 추호도 없을 것이다.그러면서 고은지를 이용해 자기 아들을 살리려고 하다니. 차라리 고은지를 직접 찾아가는 성의라도 보였으면 모른다.배준우는 고은영의 모습을 보면서 물었다.“어떻게 생각해?”고은영은 바로 대답했다.“절대 안 돼요. 우리 언니는 나태현을 용서해줄 리가 없어요.”배준우에게까지 도움을 청할 정도라면 해외의 상황은 확실히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량천옥이 얼마나 미쳐있는지를 생각하면 나태범
고은영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량천옥이 나태현을 죽이려고 아득바득 달려드는 것을 보면, 고은영은 진윤의 말대로 진정할 수 없었다.만약 고희주가 살아있다면 량천옥도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 싸우지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바로 눈앞에서 배준우가 기성훈과 전화하고 있었지만 고은영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배준우가 전화를 끊고 고은영을 몇 번이나 부르고 나서야 고은영은 정신을 차렸다.“은영아, 은영아?”“아? 어... 듣고 있어요.”고은영은 멍한 시선으로 배준우를 쳐다보았고 배준우는 따뜻한 손으로 고은영의 손을 감싸 쥐었다.고은영을 바라보는 배준우의 표정은 아주 진중했다.아무래도 량천옥의 반응을 보면 고희주가 죽었다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량천옥이 이렇게 불같이 달려들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코를 훌쩍인 고은영은 붉어진 눈가를 매만졌다.배준우는 고은영을 품에 안고 조심스레 고은영의 등을 토닥여주었다.“다 괜찮아질 거야.”무기력한 위로였다.모든 건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고은영도 이토록 슬퍼하는데, 고은지는 얼마나 더 슬플까.“언니한테 알려줬어야 했는데... 진작 알려줬어야 했는데...”고은영이 울먹이면서 얘기했다.고은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직 나태현이 고희주의 아빠라는 것만 믿고 고희주를 나태현에게 보냈다. 나태현이 고희주를 해칠 줄도 모르고 말이다.만약 고은지가 량천옥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면... 나씨 가문과 량천옥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는지 알았다면...고은영이 울먹이면서 어깨를 들썩이자 배준우가 고은영을 꼭 안았다.“네 탓이 아니야. 넌 그저 네 언니를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맞는 말이었다.고은영은 고은지가 걱정되었다.고희주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량천옥이, 고은지가 죽도록 증오하는 량천옥이, 결국 고은지의 친모였다는 걸 어떻게 알리겠는가.하지만 그 충격보다도 고희주의 죽음이 더욱 아플 것이다.“나태현 씨가 희주를 데려가지 못하게 해야 했는데... 그러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준우 씨는 나한테도 잘해주고 우리 아이한테도 잘해주니까 좋은 사람이에요.”“더 자세하게 얘기해줄 수는 없어?”“그리고 매일 나를 데리고 출근해요.”배준우는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윤은 고은영을 데리고 쇼핑을 하는데 배준우는 고은영을 데리고 출근은 하다니...배준우는 바로 고은영을 품에 안고 키스를 퍼주었다.“읍... 갑자기...”그때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전화, 전화 와요.”고은영이 배준우를 밀면서 얘기했다.배준우는 진동 소리를 듣고 약간 미간을 구긴 채 고은영을 놓아주었다.고은영은 이때다 싶어서 도망갔다.배준우가 전화를 받자 전화기 너머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나다.”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배항준이였다.배준우는 배항준의 전화에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다. 표정을 굳힌 배준우가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무슨 일이죠?”“너, 여자 하나 때문에 점점 선 넘는 짓을 하는구나.”그 말을 들은 배준우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바로 이해했다. 아마도 나태범이 배항준에게 전화한 것 같았다.나태현과 나태웅이 다 사라졌으니 나태범이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했다.하지만 배준우는 나태범이 바로 배항준에게 연락할 줄은 몰랐다.이제는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나태범, 배항준 세대까지 이 싸움에 엮이고 말았으니 말이다.배준우는 속으로 나씨 가문 사람을 욕했다.“제가 하는 일에 신경 쓸 사이가 있으세요? 아이가 벌써 다 컸나 봐요?”그렇게 말하면서 배준우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배준우의 아들과 배항준의 아이가 나이가 비슷하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사람들은 배씨 가문을 헐뜯고 비웃을 것이다.선을 넘는다니.배준우가 봤을 때 배항준이야말로 먼저 선을 넘은 사람이었다.이제야 알 것 같았다.량천옥은 원래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량천옥을 그렇게 만든 건 여자에 눈이 먼 남자들이다.전화기 너머의 배항준은 배준우의 말을 듣고 바로 화가 났다.“너 이 자식, 뭐라는 거야!”“이 나이에 아이를 돌보는 게 재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