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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Author: 송언희
그녀는 그 집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뭔가를 알고 싶은 표정으로 배준우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배준우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고은영은 깊게 심호흡하고는 물었다.

“대표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왜 그렇게 물어?”

“제가 또 뭘 잘못했을까 봐 두려워서요.”

그녀는 배준우를 화나게 하면 그 집도 잃게 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지금 그 집을 잃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전에 강성을 무사히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녀의 조심스러운 모습에 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의 눈빛 한 번에 고은영은 바로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 착하잖아. 나 화 안 났어.”

착해서 화가 안 났다고?

이게 무슨 의미심장한 말이지?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그의 부드러운 말투에 고은영은 더욱 긴장됐다.

그가 이럴 때마다 나중에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다.

이런 부드러운 모습 뒤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무서웠다.

배준우는 여전히 바빴다.

그와 몇 마디만 주고받고, 그의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나태웅이 급히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분도 안 돼 다시 사무실에서 나왔다. 퇴근할 때까지 배준우는 고은영을 찾지 않았다.

저녁에 미팅이 있어 고은영 혼자 먼저 하원으로 돌아갔다.

하원에 돌아왔을 때, 진 씨 아주머니는 이미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주머니는 고은영 혼자 돌아온 걸 보고는 재빨리 배준우의 몫을 따로 덜어놓았다.

“아주머니, 이제 그만 퇴근하세요.”

그녀의 나긋한 목소리에 진 씨 아주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식사 다하시고 부엌에 놓아두시면 제가 내일 와서 치울게요.”

“네.”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 씨 아주머니는 바로 퇴근했다.

고은영은 식탁에 놓인 음식을 둘러보았으나, 별로 식욕도 없었다.

그래도 억지로 조금 먹었다.

밥을 다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는 소파에 앉아 안지영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안지영도 오늘 일찍이 집에 들어가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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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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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7화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6화

    하늘 그룹 앞에서 나태웅이 일을 벌인다면 그건 하늘 그룹의 이미지에 좋지 않았다.안열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안지영은 짜증이 나서 머리를 확 쥐어뜯었다.응접실에 온 안열은 문을 열자마자 거대한 남자의 그림자를 발견했다.그 일주일 동안 나태웅은 1년의 시간을 보낸 듯했다.그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그래서 나태웅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안열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안열은 빠르게 표정을 숨기고 담담하게 얘기했다.“들어가세요.”나태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열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안열의 곁을 지날 때 시선을 내려 안열을 쳐다보았다.결국 나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갔다.하지만 안열은 나태웅의 주변에서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에 놀라서 숨도 쉬지 못했다.나태웅이 사라진 후에야 안열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나태웅이 들어올 때 안지영은 마침 장선명과 통화하고 있었다.통화 내용은 결혼식에 관한 내용이었다.“네, 하얀 장미만 아니면 돼요. 그리고...”거기까지 말한 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보면서 의도적인 눈빛으로 얘기했다.“하얀 국화는 절대 안 돼요.”“국화에 트라우마 남은 거야?”전화기 너머의 장선명이 가볍게 웃었다.나태웅도 흘러나온 그 소리를 듣고 장선명이 얼마나 안지영을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표정이 굳은 나태웅은 더욱 차가워진 눈빛으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결혼식이니까 당연히 국화는 안 되죠.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또 나한테 국화를 보낼까 봐 겁나네요.”“그래, 알았어. 감히 우리의 결혼식을 망치려는 사람이 생기면 난 그 사람을 바로 죽여버릴 거야.”“...”안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니, 그저 조심하라는 말이었는데 죽인다는 건... 좀 과하지 않아요?”“그래? 네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을게.”“그래요.”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었다.나태웅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는 것을 보면서 안지영은 전화기에 대고 얘기했다.“점심때 먹고 싶은 게 있는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5화

    나씨 가문은 지금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나태현에게 돌아오라고 연락했지만 나태현은 거절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나태범은 량천옥이 무슨 심정으로 나태현을 죽이려고 드는 것인지 잘 알기에 나태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순조롭게 귀국하는 것은 이제 어려울 것이다.“하...”나태범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나태범의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집사가 다가가 얘기했다.“어르신, 일단 진정하세요.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까요.”나태범은 또 한숨을 쉬었다.“하...”아무리 사람을 보냈다고 해도 나태현을 안전하게 데려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그해의 일을 떠올린 나태범의 눈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 담겼다.이건 끝나지 않은 복수다.“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지?”나태범이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그들은 고희주가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었다.그들이 아는 바에 따르면 나태현은 많은 의료진을 고용해서 고희주를 보살폈다.그런데 고희주가 죽다니.“량천옥 씨의 행동을 보면 아마도 정말 죽은 것 같습니다.”그 말에 나태범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고희주를 법적인 손녀로는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아이이니...그래서 나태범은 더더욱 고희주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배준우가 나태현을 지켜준다면 좋겠는데...”나태범이 한숨을 쉬고 얘기했다.량천옥이 얼마나 독한지 잘 아는 나태범은 나태현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그해의 일도 겨우 잠재운 것이다.량천옥이 아무리 요즘 잠잠해졌다고 하지만 량천옥은 그 원한을 잊지 않을 것이다.“...”집사는 량천옥의 말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배준우 님한테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집사가 얘기했다.나태범이 배준우에게 전화한다고 했을 때부터 집사는 나태범을 말렸다.아무리 배준우가 나씨 가문 형제들과 친한 사이라고 해도 지금은 고은영의 남편이니까 말이다.그러니 사랑 앞에서 우정을 선택할 것 같지 않았다.“난 그래도 그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4화

    “계약 파기 때문에요?”고은영이 눈썹을 까딱거리면서 물었다.고은영은 나씨 가문에 대한 호감이 하나도 없었다.아무리 나씨 가문이 강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하지만 수많은 계약 파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배준우와 진윤까지 계약을 파기했으니, 배씨 가문이나 진씨 가문과 연관 있는 가문들도 연달아 나씨 가문과의 계약을 파기할 것이다.사람은 이성을 잃으면 판단을 급하게 내리려고 하니까 말이다.아마 천락 그룹은 지금 수많은 압박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만약 배준우가 지금 계약 파기를 취소한다면, 천락 그룹에게 희망이 주어질 것이다.고은영은 그래서 나씨 가문이 배준우에게 연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배준우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그러면 왜...”“나태범 어르신은 나태현이 무사히 귀국하기를 원하고 있어.”“나태현 씨가 귀국하는 것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우리가 방해한 것도 아니고...”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그제야 고은영은 배준우의 뜻을 알아차렸다.나태범은 정말 교활한 사람이었다.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어 힘을 얻으려는 것이었다.배준우와 량천옥의 사이는 아주 어색했다. 하지만 고은영은 고은지와 사이가 좋고 고은지는 량천옥의 친딸이다.배준우가 고은영을 설득한다면 고은영이 고은지를 설득하고 이어서 고은지가 량천옥을 설득해 나태현을 살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미친 거 아니에요?”고은영이 화를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아마 나태범은 고은지를 며느리로 들일 생각이 추호도 없을 것이다.그러면서 고은지를 이용해 자기 아들을 살리려고 하다니. 차라리 고은지를 직접 찾아가는 성의라도 보였으면 모른다.배준우는 고은영의 모습을 보면서 물었다.“어떻게 생각해?”고은영은 바로 대답했다.“절대 안 돼요. 우리 언니는 나태현을 용서해줄 리가 없어요.”배준우에게까지 도움을 청할 정도라면 해외의 상황은 확실히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량천옥이 얼마나 미쳐있는지를 생각하면 나태범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3화

    고은영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량천옥이 나태현을 죽이려고 아득바득 달려드는 것을 보면, 고은영은 진윤의 말대로 진정할 수 없었다.만약 고희주가 살아있다면 량천옥도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 싸우지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바로 눈앞에서 배준우가 기성훈과 전화하고 있었지만 고은영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배준우가 전화를 끊고 고은영을 몇 번이나 부르고 나서야 고은영은 정신을 차렸다.“은영아, 은영아?”“아? 어... 듣고 있어요.”고은영은 멍한 시선으로 배준우를 쳐다보았고 배준우는 따뜻한 손으로 고은영의 손을 감싸 쥐었다.고은영을 바라보는 배준우의 표정은 아주 진중했다.아무래도 량천옥의 반응을 보면 고희주가 죽었다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량천옥이 이렇게 불같이 달려들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코를 훌쩍인 고은영은 붉어진 눈가를 매만졌다.배준우는 고은영을 품에 안고 조심스레 고은영의 등을 토닥여주었다.“다 괜찮아질 거야.”무기력한 위로였다.모든 건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고은영도 이토록 슬퍼하는데, 고은지는 얼마나 더 슬플까.“언니한테 알려줬어야 했는데... 진작 알려줬어야 했는데...”고은영이 울먹이면서 얘기했다.고은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직 나태현이 고희주의 아빠라는 것만 믿고 고희주를 나태현에게 보냈다. 나태현이 고희주를 해칠 줄도 모르고 말이다.만약 고은지가 량천옥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면... 나씨 가문과 량천옥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는지 알았다면...고은영이 울먹이면서 어깨를 들썩이자 배준우가 고은영을 꼭 안았다.“네 탓이 아니야. 넌 그저 네 언니를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맞는 말이었다.고은영은 고은지가 걱정되었다.고희주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량천옥이, 고은지가 죽도록 증오하는 량천옥이, 결국 고은지의 친모였다는 걸 어떻게 알리겠는가.하지만 그 충격보다도 고희주의 죽음이 더욱 아플 것이다.“나태현 씨가 희주를 데려가지 못하게 해야 했는데... 그러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2화

    “준우 씨는 나한테도 잘해주고 우리 아이한테도 잘해주니까 좋은 사람이에요.”“더 자세하게 얘기해줄 수는 없어?”“그리고 매일 나를 데리고 출근해요.”배준우는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윤은 고은영을 데리고 쇼핑을 하는데 배준우는 고은영을 데리고 출근은 하다니...배준우는 바로 고은영을 품에 안고 키스를 퍼주었다.“읍... 갑자기...”그때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전화, 전화 와요.”고은영이 배준우를 밀면서 얘기했다.배준우는 진동 소리를 듣고 약간 미간을 구긴 채 고은영을 놓아주었다.고은영은 이때다 싶어서 도망갔다.배준우가 전화를 받자 전화기 너머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나다.”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배항준이였다.배준우는 배항준의 전화에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다. 표정을 굳힌 배준우가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무슨 일이죠?”“너, 여자 하나 때문에 점점 선 넘는 짓을 하는구나.”그 말을 들은 배준우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바로 이해했다. 아마도 나태범이 배항준에게 전화한 것 같았다.나태현과 나태웅이 다 사라졌으니 나태범이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했다.하지만 배준우는 나태범이 바로 배항준에게 연락할 줄은 몰랐다.이제는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나태범, 배항준 세대까지 이 싸움에 엮이고 말았으니 말이다.배준우는 속으로 나씨 가문 사람을 욕했다.“제가 하는 일에 신경 쓸 사이가 있으세요? 아이가 벌써 다 컸나 봐요?”그렇게 말하면서 배준우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배준우의 아들과 배항준의 아이가 나이가 비슷하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사람들은 배씨 가문을 헐뜯고 비웃을 것이다.선을 넘는다니.배준우가 봤을 때 배항준이야말로 먼저 선을 넘은 사람이었다.이제야 알 것 같았다.량천옥은 원래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량천옥을 그렇게 만든 건 여자에 눈이 먼 남자들이다.전화기 너머의 배항준은 배준우의 말을 듣고 바로 화가 났다.“너 이 자식, 뭐라는 거야!”“이 나이에 아이를 돌보는 게 재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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