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에 기름과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도예나의 옷은 선명할 정도로 더럽혀지지는 않았다.하지만 그릇에 있는 물이 상의에 모두 쏟아진 덕에 입고 있던 흰 셔츠 아래로 속옷이 언뜻 보였다.“미, 미안해요.”강세윤은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도예나가 어쩌다가 집에 왔는데 자기가 한 실수 때문에 다음에 다시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제가 닦아줄게요…….”그리고 허겁지겁 휴지를 뽑아 도예나의 가슴에 갖다 댔다.하지만 그 순간 강현석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일그러졌다.왠지 모르게 여자의 가슴 쪽에 갖다 댄 아들의 손이 꼴 보기 싫었다.“예나 씨, 위로 올라가서 옷 갈아입으시는 게 어때요?”도예나는 어색한 듯 가슴을 팔로 둘렀다. 셔츠 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축축해진 느낌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이런 꼴로 문을 나선다는 건 불가능했다.“샤워하고 옷도 좀 말리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도예나는 강현석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네, 되고말고요!”하지만 강현석의 대답이 들리기 전 강세윤이 먼저 끼어들었다. 그러고는 도예나의 손을 잡은 채 곧바로 2층으로 달려가 방 문을 열어젖혔다.“여기는 제 방이예요. 안에 새 옷도 많으니 마음껏 골라 입으세요.”“…….”마음껏 고르라며 선심 쓰듯 열어젖힌 옷장 안에는 남자애가 입는 옷뿐이었다.그녀의 체형이 아무리 작다고 해도 어린애 옷을 입을 정도는 아닌데 말이다.하지만 그녀가 난감해 하던 그때 언제 나타났는지 강현석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이쪽에 예나 씨가 입을 만한 옷이 있으니 따라오시죠.”도예나는 강세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곧바로 강현석을 따라 옆방으로 향했다.그리고 그녀가 도착한 곳에는 아니나 다를까 여성복이 가득 걸려있었다. 게다가 상표도 미처 뜯지 않은 고가의 브랜드였다.“마음껏 골라요.”“고마워요.”담담하게 말하고 소파에 기대앉는 강현석에게 감사 인사를 한 도예나는 옷장으로 걸어가 흰색 원피스를 골랐다. 하지만 옷을 들고 욕실로 향하려던
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소리에 강현석은 입이 바짝 말랐다.눈만 돌리면 유리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여자의 실루엣은 그야말로 자극제나 다름없었다.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 없는 도예나는 가슴에 묻은 국물을 닦은 뒤 자기 셔츠를 빨고 있었다.강현석한테서 받아온 셔츠는 욕실로 들어오는 순간 옆에 던져버렸다. 처음부터 입을 생각도 없었으니 말이다.하지만 옷을 씻고 드라이기로 말려 입으려고 했던 그녀의 계획은 틀어졌다. 아무리 찾아도 욕실에 드라이기가 보이지 않았다.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드라이기를 찾으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녀에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다행히 남자의 셔츠는 그녀의 무릎까지 덮어주었다. 나름 꽁꽁 싸맸다고 생각했는지 도예나는 만족스러운 듯 거울을 몇 번 들여다보고는 욕실 문을 열었다.순간 욕실 안에 갇혀 있던 수증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며 도예나의 주위를 뒤덮었다. 새하얀 피부는 물기를 머금어 촉촉하고 반짝거렸다…….강현석은 고개를 드는 순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그는 이토록 흔들린 적이 없었다. 몇 년 전 도설혜가 두 아들을 안고 찾아왔을 때도 흔들림 없던 그였는데 도예나를 보는 순간 모든 벽이 무너져 내렸다.‘정말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네. 십 대의 어린 나이에 성남 제일 미녀라는 타이틀을 얻을만하네.’남자의 시선이 오롯이 자기를 향하자 도예나는 난처한 듯 헛기침을 해댔다.“혹시 드라이기가 어디 있나요?”여자의 목소리가 강현석을 현실로 끌었다.‘젠장. 샤워하고 나온 여자를 이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니. 예의를 밥 말아 먹은 것도 아니고.’“제가 가져다드릴게요.”강현석은 도망치듯 자리를 피해 자기 방에서 드라이기를 찾았다. 하지만 옆방으로 가려던 찰나 걸음이 우뚝 멈췄다.여자의 그런 모습을 다시 보면 이성을 잃을 것만 같다는 위험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하지만 양 집사더러 대신 전해주라고 분부하려던 찰나 다시 생각을 부정했다.아무리 나이가 있다 해도 양 집사도 남자인데 도예나에게 흔들리지
도예나는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오후 4시, 유치원 하원 시간이었다.‘강 씨 저택에 이렇게 오래 있었을 줄이야…….’작업실에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은지라 바로 아이들을 데리러 유치원으로 가야 할 판이다.도예나는 곧바로 시동을 걸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뒤 서로 손을 잡고 나오는 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아이들 곁에는 꼬마 친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도제훈, 너 오늘 짱 멋있었어! 넌 내가 본 유치원생 중에서 아마 짱일 걸!”“도제훈, 너 왜 이렇게 잘 생겼어? 나도 너랑 친구하고 싶은데. 나 내일 너랑 같이 앉아도 돼?”“난 내 동생 수아랑 같이 앉을 거야. 네가 내 동생을 친구로 생각하면 나도 너 친구로 받아줄게.”“수아처럼 예쁜 애랑 친구하면 나도 예쁜 공주 될 거야!”“나도 수아랑 친구할래!”도제훈 주위에서 재잘거리던 아이들은 이번에는 수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하지만 수아가 말하기 싫어한다는 걸 알기에 대답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 덕에 수아도 애들을 배척하지 않았다. 물론 애들이 뭐라 하든 무응답으로 일관했지만.그 모습을 본 도예나는 안도감이 들었다.아이들이 수아를 친구로 대해준다는 게 믿기지 않기도 했고 한편으로 고맙기도 했다.이에 그녀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아이들에게 다가갔다.그때.“와, 도제훈. 저 사람 네 엄마야? 엄청 이쁘다!”“네 엄마 혹시 선녀야? 그래서 너와 네 동생도 이렇게 예쁜 거구나!”아이들은 이번에 도예나 주위를 맴돌며 재잘재잘 떠들어 댔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도예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과일 많이 먹고 물 많이 먹으면 피부가 하얘지고 예뻐질 수 있어!”외모에 신경 쓰는 여자애들은 그 말을 마음속에 저장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이 친구들과 인사를 한 도제훈은 동생의 손을 잡고 차에 올랐다.두 아이를 보니 도예나의 입가에는 저도 몰래 미소가 걸렸다.“유치원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네. 수아도 친구 금방 만들겠는데.”“애들 엄청 친절해요. 수아를
따돌릴 수 없는 차량에 도제훈은 눈살을 찌푸렸다.“엄마 우리 먼저 근처 레스토랑에서 내려요.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게.”이런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도예나는 핸들을 꺾으며 근처 레스토랑 앞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밟으려는 순간, 뒤에서 쿵 하는 굉음이 울렸다.백미러로 보니 자가용 한 대가 그들을 계속 쫓아오던 벤을 부딪힌듯했다.차체가 심각하게 찌그러져 수리비가 꽤 나올 것 같아 보였지만 벤 운전사는 제 발이 저렸는지 배상도 요구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도망쳐버렸다.그리고 그 순간 자가용의 차 문이 열리더니 회색 슈트를 입은 남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갈색 눈동자는 불빛 아래에서 매혹적인 빛을 내뿜고 있었고 약간 휜 눈매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요염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여자들이 보면 함성을 지를 법한 얼굴이었다.남자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긴 다리를 앞으로 내 뻗으며 성큼성큼 도예나의 차량 곁으로 다가왔다.그리고 차 옆에 다다랐을 때 손가락으로 차창을 똑똑 두드리며 싱긋 웃었다.“나나야, 우리 다시 만날 거라고 내가 말했었지?”상대를 확인한 도예나는 그제야 차창을 내리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봤다.“넌 어쩜 내 뒤꽁무니만 쫓아다녀?”남자의 이름은 설민준, 도예나가 해외에서 알게 된 재벌 2세에 소문난 바람둥이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가벼운 태도로 도예나에게 대시를 해오던 그는 그녀의 친구들한테 업어치기를 당한 뒤에야 얌전해져 더 이상 그녀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그리고 그 일이 있은 뒤 두 사람은 점차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도예나가 귀국하기 전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를 했고 그 뒤로 도예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외에 있다 말고 성남까지 쫓아올 줄이야.“민준 삼촌, 여긴 어떻게 왔어요?”그때, 도제훈이 고개를 쑥 내밀며 고개를 갸우뚱했다.“제훈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민준 삼촌은 거리감이 느껴지잖아, 그냥 아빠라고 해.”설민준은 도제훈의 머리를 마구 흐트러 놓더니 입꼬
“외할머니 집이야.”양손 가득 식재료를 든 채 별장으로 들어가던 도예나가 무심한 듯 대답했다.“외할머니가 너 엄청 아끼나 보네! 그러면 이 집 네 명의가 아니라는 거잖아. 나랑 결혼할래? 오션 뷰 별장 하나 네 명의로 해줄 수 있는데.”“설민준, 계속 헛소리할 거면 꺼져!”장난기 섞인 설민준의 말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도예나의 사정없는 발길질이 이어졌다.“아아, 아프잖아. 살살 좀 해! 잘못했어, 다신 안 놀릴게.”이에 설민준은 수아를 안은 채 이리저리 피했고 결국 지쳤는지 거실 바닥에 앉아 수아와 레고 놀이를 시작했다.한편 도제훈은 여동생을 힐끗 바라보더니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켰다.하지만 로그인을 마친 순간 앳된 얼굴이 팍 구겨졌다. 방금 전까지 물이 흘러넘칠 정도로 부드럽던 두 눈이 싸늘하게 변하는 것도 한순간이었다.‘누구야?’비번을 설정한 영상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풀어진 흔적이 보였다. 108개 비번 중 절반이 벌써 풀려 있었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프로그래밍 화면을 열었고 단 1초 사이에 집중 모드로 돌입했다. 상대가 비번을 하나 풀면 다시 하나를 강화하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영상 하나에 몇 백 개의 비번이 설정되었다.하지만 상대는 생각보다 끈질겼다.“제훈아, 뭐해?”그때, 설민준이 갑자기 고개를 쑥 내밀며 도제훈의 옆에 붙었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자 곧바로 기분 좋은 듯 웃었다.“와, 세상에 너랑 대적할 만한 해커도 있구나. 재밌네.”3살 때부터 천재적인 프로그래밍 재능을 보여온 도제훈은 4살이 된 지금은 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탑 급 해커에 속한다.만약 도예나가 동의만 했다면 해커 기술을 이용해 벌써 부자가 되고도 남았을 수 있다.때문에 설민준은 도제훈이 진지해지면 세상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아하니 제대로 상대를 만난 모양이다.설민준은 한참 구경하다가 노트북 한 대를 가져오더니 곧바로 서포트에 나섰다.두 사람이 동시에 영상에 비번을 설정하자 속도는 두 배로 늘어
강현석은 입을 꾹 다물더니 앞으로 다가가 강세훈을 들어 올렸다.“아빠! 내려줘요!”강세훈은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심하게 버둥거렸다.“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에요. 앞으로 해커 활동 하지 않을게요…….”강세훈의 애원에 강현석은 그를 옆으로 내리고는 자기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그런데 강세훈이 역시 컴퓨터를 꺼버리는 구나라며 실망하려던 찰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모든 사람이 강현석을 비즈니스계의 귀재로 알고 있지만 그에게는 강세훈만 아는 또 다른 신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해커다.강세훈이 3살 때부터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한 것도 어찌 보면 강현석이 해커 기술로 다른 해커를 상대하는 것을 본 뒤부터였다. ‘아빠가 직접 나섰으니 해결되겠네.’그제야 강세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반 시간 뒤-“헉! 이거 사람 맞아?”설민준은 분한 듯 키보드를 주먹으로 가격했다.“젠장. 내가 상대조차 안 되다니!”“반대편에서 중도에 다른 사람으로 바꿨어요. 후에 바꾼 사람이야말로 진짜 고수예요. 나도 당해내지 못하겠어요.”도제훈도 작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안타까워했다.그가 해커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남짓하지만 이 두 사람을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처음 만난 상대는 그래도 그와 비등비등한 실력이지만 후에 나타난 사람은 아마 그가 열 명이 더 있더라도 상대하기 힘들 거다.이번에 그의 완패였다.그러던 그때, 저녁 준비를 마친 도예나가 두 사람을 힐끗 흘겨봤다.“설민준, 너 내 아들한테 무슨 나쁜 짓 가르쳐 주는 거야?”설민준은 이내 노트북 두 대를 소파 사이에 감추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제훈이한테 언제면 날 아빠라고 불러줄지 물어보고 있었지.”“다음 생에 아마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너무하네! 나 상처받았어.”도예나의 담담한 말에 설민준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과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나 너 쫓아다닌지도 4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날 받아주지 않는 건데? 나 진짜 너무 불쌍하다…….”“…….”생동한
창문을 통해 비쳐드는 햇빛에 도예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만지며 일어나 앉았다.그리고 3초간 멍 때리더니 천천히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오늘 두 아이를 유치원에 바래다주고 그녀는 서 씨 그룹의 론칭 행사에 참석해야 하고 오후에는 또 강 씨 그룹과의 계약 건으로 미팅하러 가야 했다.옷장 문을 열어젖힌 그녀는 무난한 오피스룩 치마를 골라 입었다.그런데 그때, 밖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당신 누구야? 누군데 여기 있는데? 3초 줄 테니까 당장 꺼져!”화가 잔뜩 묻어 있는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서지우였다.그는 도예나와 함께 서 씨 그룹 론칭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온 거였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거실 소파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속옷 차림의 남자가 보였으니 당연히 화가 나는 수밖에.하지만 화가 난 건 설민준 역시 마찬가지였다.솔직히 그는 어제 서재에서 자려고 했지만 모기 때문에 소파에서 불편하게 잔 거였다.하지만 어릴 적부터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온 그가 소파에서 편히 잠들 리가 없었다. 밤새도록 뒤척거리다 날이 밝아질 즈음 겨우 잠들었는데 얼마 되지도 않아 웬 남자가 갑자기 화를 내면서 깨운 거다.슈트 차림을 한 잘생긴 남자를 보는 순간 설민준의 눈은 가늘게 접혔다. 곧이어 소파에 기대며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나나의 남잔데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남자의 말에 서지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어디서 함부로 나나의 명성을 더럽혀! 당장 꺼져. 경비더러 쫓아내라고 하기 전에.”“흥. 그쪽이 나 쫓아내면 나나가 당신 용서할 것 같아? 그러는 그쪽은 누군데 그래? 노크도 하지 않고 침입해 들어오다니. 이거 주거 침입이야! 법률로 따지면 구치소에 수감돼야 한다고!”“내 집을 내가 들어오는데 당신한테 동의라도 구해야 해?”“당연하지. 나 이 집 남자 주인이야!”설민준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같잖다는 듯 맞받아쳤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멈칫했다.“여기가 당신 집이라고?”‘어제 나나가 여긴 외할머니
“아, 설민준이라고, 해외에 있을 때 알게 된 친구예요. 성남에는 어제 처음 오는 거라 머물 곳이 없다고 해서 하룻밤 재워준 거예요.”도예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꾸밈없는 그녀의 표정을 보자 서지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가 이 집 남자 주인이라고 하던데.”“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설민준은 목을 살짝 움츠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설명했다.“형님이 잘못 들어셨겠죠…… 제 뜻은 제 차림새가 이래서 옷, 옷 갈아입겠다는 뜻이었어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설민준은 도망치듯 사라졌다.그 사이 서지우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나야, 너 아이 아빠도 없이 혼자서 애 키우는데 집에 아무 남자나 끌어들이는 건 아니지. 만약 저 사람이 갈 데가 없다면 서 씨 저택에서 머물게 해.”“오빠, 걱정 마요. 저 애들 유치원 보내고 회사로 바로 갈테니까.”도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던 그때.“너 일 봐. 애들 유치원 내가 데려갈게.”설민준이 고개를 쑥 내밀며 끼어들었다.해외에 있을 때 도예나는 애들을 설민준에게 자주 맡겼었다. 그는 신뢰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두 아이에게만큼은 누구보다도 세심했다.그리고 그의 말이 들리자 도예나가 아이들 가방을 문 앞에 놓으며 신신당부했다.“애들 유치원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가. 알았지?”“내가 세 살짜리 애도 아니고 그것까지 일일이 말할 필요 없어. 얼른 가서 일 봐!”확답을 받고 난 도예나는 그제야 가방을 들고 서지우의 차에 올라탔다.하지만 차가 별장을 나서는 순간 그녀는 또 한 대의 차량이 그들 뒤를 쫓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리고 서지우도 발견했는지 그녀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아침에 여기로 올 때도 저 차량이 대문 앞에 세워져 있었어. 지금 또 따라오는 걸 보니 우릴 미행하는 것 같은데.”“어제 애들 데리러 유치원에 갔을 때도 저 차가 따라붙었어요. 해외에서 온 지 며칠도 안되는데 대체 누구에게 원한을 샀다고 이러는지.”“도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