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는 올해 서른 두 살로, 여자로서 가장 성숙하고 분위기 있는 나이였다. 금발에 푸른 눈, 높게 솟은 코를 가진 그녀는 온몸에서 우아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다.강현석은 계약서를 손에 들고 외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도설혜의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었고 만약 그녀가 낮에 피아노를 연습한다면 낮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을 생각이었다.그가 걸음을 옮겨 나가려고 할 때, 앨리스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썹을 치켜 뜨며 의아해했다.강세훈이 도설혜에게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천재 피아노 소녀를 선생님으로 구해 주다니…….그도 전에 앨리스의 연주회에 가서 매우 놀랐던 경험이 있었기에, 내딛던 발걸음을 거두고 앨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앨리스 선생님.”앨리스도 우아하게 웃었다.“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이 장면을 본 도설혜는 약간 의아했다. 4년 동안 강현석을 따라다니면서 그의 고객들을 만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고객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강현석은 시종일관 싱거운 태도로 대했고,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 악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렇다면 강현석이 그만큼 앨리스를 존경한다는 걸까? 그럼 만약 자신이 순조롭게 앨리스의 수제자가 된다면, 강현석도 자신을 좀 다르게 대하지 않을까?여기까지 생각한 도설혜는 발걸음을 내디디며 걸어갔다.“앨리스 선생님, 저는 도설혜입니다. 오늘부터 배울 학생이예요.”고개를 돌린 앨리스의 눈빛이 먼저 도설혜의 손가락에 떨어진 다음 거실의 피아노로 향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일단 어떤 수준인지 들어봅시다.”도설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피아노 앞에 앉아 능숙하게 ‘앨리스에게’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앨리스는 한쪽에 서서 그녀를 관찰하며 모든 음표를 자세히 들었다.곡이 끝나자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강세훈 도련님이 그러더군요, 도설혜 씨가 피아노 9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확실히 잘 치네요. 기술을 아주 능숙하게 사용해요. 하지만…….”앞의 말을 들은 도설
도설혜는 갑자기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렸을 때, 소파에 앉아 있는 강현석을 보았다. 서류를 보고 있던 그 남자는 고개를 들어 앨리스가 말하는 것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강현석이 피아노에 관심이 많은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 도설혜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앨리스 선생님, 다시 한 번 쳐 봐도 될까요?”“그럼요.”앨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일단 긴장을 풀고 마음을 홀가분하게 한 다음 곡의 장면 속으로 들어가세요. 마음 속에 감정이 형성되면 그 감정이 자신의 손끝으로 물처럼 흘러들어 건반 위에 쏟아지도록…….”고개를 끄덕인 도설혜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10대 시절 피아노를 배울 때 그녀와 도예나 사이의 관계는 아직 괜찮았다. 도예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곤 했다. 하지만 도예나를 싫어하는 그녀가 어떻게 그런 가르침을 들을 수 있겠는가? 이제서야 도예나가 했던 말들이 지금 앨리스가 하는 말과 매우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눈을 감자, 머릿속에 10대의 도예나가 피아노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서서히 떠올랐다.도설혜는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피아노 곡에 녹여내야 할 지 모르지만, 도예나의 곡조를 그대로 옮길 수는 있었다.그녀와 도예나는 18살 전에는 좋은 자매였고, 매일 도예나가 피아노를 연습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어떤 곡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들어와, 심지어 피아노를 치는 도예나의 자세조차도 모방할 수 있을 정도였다.이번에 도설혜가 친 곡은 ‘앨리스에게’가 아니었다.10대의 도예나가 자주 연습했던 피아노 입문곡, ‘밤의 피아노곡 5’였다.피아노곡이 도설혜의 손끝에서 기울어져 나왔을 때, 강현석은 갑자기 멍해졌다.그도 전에 이 곡을 들은 적이 있다. 18세가 되던 해 자신이 모교인 성남시 1고등학교로 가서 강연했을 때, 피아노실을 지나갈 때 이 놀라운 곡을 들은 적이 있다.이 곡은 흔히 들을 수 있고 연주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렇게 슬픔과 행복을 교묘하게 융합해서 연주하는 건
도설혜의 마음 속에 다시 한바탕 기쁨이 스쳐 지나갔다.강현석과 알고 지낸 지 4년 동안, 이 남자는 자신에게 이렇게 사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이제서야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걸까?숨을 크게 들이마신 그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그 때 성남시 1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어요…….”그때, 그녀와 도예나가 공동 1위를 차지했었다.답을 들은 강현석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전에 피아노를 배운 적 있어?”“유치원 선생님이 제가 피아노를 잘 치는 건 발견하시고 부모님께 배워 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지금까지는 계속 바빠서 몇 년 동안 피아노를 친 적이 없어요. 4년 동안이나 피아노를 친 적이 없는데, 앨리스 선생님이 이렇게 칭찬하실 줄은…….”도설혜의 얼버무리는 말투에는, 감출 수 없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강현석이 가볍게 손가락을 비비며 다시 물었다.“성남시 1고등학교에서 피아노를 친 적은 있어?”도설혜는 이 남자가 왜 이런 걸 묻는지 몰랐지만, 그냥 사실대로 대답했다.“가끔 피아노 학원에 갈 시간도 없을 때는 학교 피아노실에서 연습했어요, 아주 가끔이요.”강현석은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그 후에 그가 다시 피아노 연주를 들으러 갔을 때 다시는 그 놀라운 연주를 듣지 못했다.그리고 8년이 지나고 그 연주를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도설혜의 연주에 그는 비로소 그 곡이 뜻밖에도 자신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새겨져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는 걸 느꼈다.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눈을 들어 담담하게 말했다.“아까 그 곡, 다시 한 번 연주할 수 있겠어?”“그럼요!”도설혜의 가슴이 설렜다.역시, 잘 알아맞혔어! 강현석이 정말 피아노에 관심이 있었다니!진작 이럴 줄 알았으면, 이때까지 4년 넘게 헛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됐을텐데.강세훈이 있어서, 강세훈이 자신을 도와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도설혜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하지만 그녀가 너무 흥분한 탓인지,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버
처음 도설혜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부터, 방해하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 여자의 연주를 마음에 들어 하다니. 그리고 이런 눈빛으로 나쁜 여자를 바라보다니!만약 아버지가 나쁜 여자를 좋아해서 장가를 가 버리면, 자신은 이 여자에게 엄마라고 불러야 할 게 뻔하다.하지만 그는 예나 아줌마가 엄마가 되기를 바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세윤은 더욱 화가 나서 큰소리로 외쳤다.“여기서 일부러 피아노를 치면서 우리 아빠를 꼬시지 마요! 나는 당신이 제일 싫어!”이 말이 나오자, 강현석의 눈빛이 갑자기 차가워졌다.‘꼬신다’라는 표현이 네 살 난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생각에, 그는 차갑게 일어나 2층의 강세윤을 바라보았다.“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어머니께 사과해.”“됐어요, 현석 씨. 세윤이는 겨우 4살이예요.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버릇이 나빠서…….”도설혜가 강현석을 말리며 울먹이면서 입을 열었다.“세윤이가 나를 이렇게 싫어하는 건 틀림없이 내가 엄마로서 잘 못했기 때문에…….”옆에 있던 강세훈이 그 말을 듣고 손가락을 쥐었다.어머니가 하는 이 말은 겉으로는 세윤이 편을 드는 척하면서, 실제로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일을 크게 만들고 있다.하지만 세윤이가 ‘꼬신다’라는 말을 어머니에게 쓴 건 잘못한 거니까, 아버지가 이렇게 화난 것도 당연하다.몇 초 동안 침묵하던 강세훈이 입을 열었다.“이 일은 제가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어요. 엄마가 여기서 피아노 연습을 하면 확실히 세윤이 공부에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차라리 이렇게 하죠. 앞으로 어머니는 강씨 집안 별장으로 가서 피아노 연습을 하는 걸로…….”이 말을 들은 도설혜는 당황했다.별장에 가면 강현석을 만나기가 어려울 텐데, 피아노 실력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지…….그녀가 입을 막 열려고 할 때, 2층의 강세윤이 다시 소리쳤다.“왜 이렇게 듣기 싫은 걸 계속 쳐!”말을 마친 그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고, 강현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
금태양 유치원.늦가을의 햇살이 흩어지고 따뜻해지자 어린이들이 운동장을 마음껏 달리고 있고, 도제훈과 수아는 10여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제훈아, 내가 수아를 데리고 있게 해줘! 같이 놀고 싶어!”“오늘 수아 머리 너무 예쁘네, 나는 수아를 정말 좋아해! 제훈아, 수아를 우리랑 같이 놀게 해 줘.”“제발, 응? 우리 다 수아를 너무 좋아해, 잘 데리고 놀게!”어린 소년과 소녀들은 모두 수아의 인형 같은 외모에 매료되어 둘러싸고 떠나려 하지 않았다.여동생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걸 보는 도제훈도 기뻐서 고개를 돌려 말했다.“수아야, 친구들이랑 같이 놀고 싶어?”어린 수아는 큰 눈을 깜빡이며 주위의 앳된 얼굴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어린이들의 웃음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싫어하면 싫어하는 대로 마음 속에 있는 걸 조금도 숨김 없이 얼굴에 드러낸다.그들의 얼굴을 몇 분 동안이나 본 수아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자, 도제훈이 그녀의 손을 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뒤 무리 밖에 서서 눈빛으로 수아를 바짝 쫓았다.수아는 말이 없었지만, 예쁜 눈동자에 점점 초점이 잡혔다. 누군가 수아에게 이야기할 때, 수아의 눈빛이 말하는 그 아이에게 떨어지곤 했다.다른 쪽에서 바라보는 우세정 선생님도 매우 뿌듯했다. 수아가 유치원에 온 지 보름 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빨리 발전하다니, 이대로라면 수아의 자폐증 회복도 머지않아…….“선생님, 수아 좀 봐주실래요?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요.”그때, 도제훈이 다가와 고개를 들어 말했고 우세정은 그의 머리를 만지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안심하고 화장실에 가. 선생님이 수아 잘 보고 있을게.”만약 다시 수아를 잃어버린다면, 정말 살 수 없을 것이다.몸을 돌려 화장실 방향으로 걸어가던 도제훈은 모퉁이에서 유치원의 울타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누군가 풀숲에 숨어 있는 모습을 주시하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다 보여, 나와.”그러자 1미터 높이의 풀숲에서 아치형 모양을
엄마와 여동생을 그렇게 좋아해주는 사람한테, 왜 저렇게 적대적인 걸까?그런 생각을 하며 강세윤은 단숨에 큰길로 뛰어갔다.그리고 한눈에 익숙한 차를 알아보았다.“아이고, 도련님, 도망가지 마세요…….”차에서 내린 양집사의 늙은 얼굴에 주름살이 더욱 깊게 패어 있었다. 매주 도련님이 한 번씩 도망갈 때마다 고생을 많이 한 탓이었다.양집사는 오늘 강현석이 돌아오면, 경호원 몇 명을 더 붙여 달라고 해서 저택 문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도련님, 거기 서세요, 앞에 차가 있어요!”차 한 대가 강세윤을 향해 지나가는 걸 본 양집사는 곧 심장병에 걸릴 듯 놀랐다. 다행히도 그 차는 강세윤의 앞에서 잘 멈춰 참극이 일어나지 않았다.하지만 곧바로 그 차의 문을 열고 앉은 강세윤은 쏜살같이 도망가버렸다.“아이고, 잠깐! 세상에, 도망가지 마세요!”양집사가 힘들어서 숨을 헐떡이며 즉시 고개를 돌려 차에 앉아 분부했다.“빨리 앞차를 따라가요, 더 이상 도련님을 도망가게 할 수 없어요!”백미러를 통해 양집사가 탄 차가 따라오는 걸 본 강세윤은 바로 기사에게 말했다.“아저씨, 빨리 운전해서 뒤에 있는 차를 따돌려주세요.”운전대를 잡은 운전기사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꼬맹이 너 돈은 가지고 왔니?”택시 기사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수고비도 건지지 못할 게 걱정됐다.“당연하죠!”강세윤이 옷 주머니에서 닥치는 대로 돈을 몇 만원 꺼냈다. 처음 집에서 몰래 빠져나올 때는 돈을 안 가져와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지만, 이번에 나올 때는 몇 만원 찔러 넣고 나왔던 것이다.돈을 보고 안심한 기사는 순간 악셀을 밟았고 재빨리 앞에 있던 차 여러 대를 추월했다.그 뒤를 따르던 양집사는 정말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예전에는 도련님이 뛸 줄만 알았는데, 이제 차를 타는 것도 배우다니. 큰 도로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차들은 너무 위험했고, 도련님께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강현석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게 뻔했다.차의 속도를 늦춘 양집사는 경호원들에게 너무
도예나는 도씨 그룹에서 태성 그룹과의 프로젝트 세부사항을 얘기하고 나서 차를 몰고 떠나려 했다.그러나 이때 귀를 찌르는 브레이크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고개를 돌려 큰 길을 바라보니 은색 스포츠카 한 대가 달리고 있었고, 네 살 난 아이가 스포츠카 앞에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그 아이가 경적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지만, 은색 스포츠카는 브레이크를 밟을 겨를도 없이 그대로 들이받았다.“세윤아!”도예나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빠져나올 것 같은 기분으로 자신의 차문을 발로 걷어차서 열고 무의식적으로 큰길로 달려갔다. 그러나 길에 차가 너무 많았고, 그녀가 달려가고 있을 때 강세윤은 차에 부딪혀 아스팔트 도로에 심하게 부딪혔다.주변 차들의 경적 소리가 순식간에 허무한 배경음이 되어 귓가에서 윙윙거렸다.도예나는 마치 구름 위를 밟는 듯 비틀거리며 걸어가서 강세윤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세윤아, 너, 너 괜찮아?”그리고 강세윤의 머리 뒤쪽에서 큰 피가 퍼지는 것을 보았다.핏빛이 안개처럼 도예나의 눈을 자욱하게 하며, 눈앞에 갑자기 4년 전 도씨 가문 창고에서의 그 장면이 떠올랐다.그날 밤, 그녀가 힘들게 네 명의 아이를 낳을 때 창고의 땅에도 핏물이 번졌다…….그녀의 마음은 갑자기 누군가에게 총을 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었다.“예나 아줌마, 저, 저는 아줌마를 만나러 왔는데… 보고 싶었어요…….바닥에 누워 입꼬리를 살짝 치켜 뜬 강세윤이 어렵게 말을 하자 도예나는 비 오듯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있던 은색 스포츠카는 갑자기 엔진을 작동시켜 사람들이 멍하게 있는 틈을 타 순식간에 큰 길로 사라졌다. 급하게 운전하는 바람에 연속으로 차 두 대를 들이받았고, 도로의 사람들이 욕설을 퍼부었다.“도련님, 왜 그러세요, 도련님!”양집사가 느릿느릿 다가와서 강세윤의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심장을 잡으며 두 눈을 뒤집고 갑자기 땅에 쓰러졌다.도예나는 정신없이 눈물을 닦고 양집사를 따라 함께 달
교통사고는 반드시 제때 치료해야 하니,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일단 일차적인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부들부들 떨며 차문을 열고 두 발을 내디딘 양집사는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피투성이가 된 도련님을 생각하면 두 다리가 풀릴 것처럼 걸을 수가 없어 병원 입구에 선 채 휴대폰을 꺼냈다.“나는 일단 혈액은행에 연락할 테니 자네가 병원에 들어가서 병원비를 내게.”경호원은 양집사가 나이도 많고 심신이 미약하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병원으로 들어갔다.양집사는 성남시 제1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강세윤은 희귀한 마이너스 혈액이기에, 이런 작은 병원에서는 혈액 재고가 없을 게 분명하다. 일단 사람을 시켜 피를 보내와야 했다.“어젯밤 마이너스 혈액 산모가 와서 2천밀리미터를 다 써 버렸어요. 오늘 다른 곳에서 혈액을 가져오려고 했는데…….”성남시 제1병원 혈액은행 책임자의 목소리를 듣고, 양집사는 두 눈이 어두워져 하마터면 또 기절할 뻔했다.하지만 정신을 부여잡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그럼 마이너스 혈액은 언제 도착합니까?”“내일 오전 8시요.”양집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내일 오전 8시라니, 도련님은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다.병원과의 전화를 끊은 그는 손가락을 떨며 강현석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그때, 강씨 그룹.회의 중이던 강현석은 갑자기 테이블 위에서 휴대폰이 진동하는 걸 느꼈다.한 번 힐끗 휴대폰을 보니, 양집사였다. 강씨 집안에서 40여년간 일한 양집사는 낮에는 그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요즘 강세윤이 늘 집에서 몰래 빠져나가면서 전화를 좀 빈번하게 하던 참이었다. 보아하니, 오늘 강세윤이 또 말을 듣지 않는 것 같다.강현석이 손짓하자 회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고,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시죠?”“대표님, 제가 도련님을 잘 돌보지 못한 탓에 몰래 집을 나가셨어요, 그래서 사고가 났습니다!”양집사의 목소리가 울먹였다.“교통사고가 나서 도련님이 피를 많이 흘렸어요. 수혈이 필요한데, 성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