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멎는다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인 것 같았다.‘강제훈이다!’‘제훈 오빠가 지금 집 앞에 나타난 거야!’예은이 바로 문을 열려고 움직이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다.젖은 머리, 가운 차림, 단정하지 못한 차림으로 어떻게 손님을 맞겠는가?예은의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잠... 잠깐만요!”신발부터 갈아 신고 옷도 갈아입고 머리도 말리고 싶었다. 방은 오른쪽, 드라이기는 왼쪽, 너무 고민된 탓에 예은은 제 자리에 빙빙 맴돌았다.노크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까보다 빨라진 템포는 두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했다.예은은 자리에 멈춰서서 울먹였다.‘그래,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자.’‘이런 내가 싫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번호를 차단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으니 이미 화가 났을 거야.’예은이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문밖의 차분한 옷차림의 남자는 아직도 노크하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었다.예은이 문을 열자 살짝 고개를 든 제훈의 얼굴은 조금 당황해 보였다.예은은 이런 제훈의 표정을 읽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죄송해요. 아까... 아까는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하고.”그 말을 하는 자신의 혀를 깨물고 싶어졌다.거짓말도 너무 성의가 없었다.집이 이렇게 작은데, 어디에 있어도 노크 소리가 잘 들릴 것이다.제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그럼 하던 일 계속하세요.”그 말을 끝으로 제훈이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제훈... 제훈 오빠 잠깐만요!”예은이 다급하게 제훈을 잡았다.제훈은 조금 의외라는 듯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왜 그러시죠?”복도의 어두운 불빛이 제훈의 옆선을 비췄고 평소보다 좀 더 따뜻한 인상으로 보였다.예은은 이런 제훈을 보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기분이 상한 제훈을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아까... 아까 메시지는 제훈 오빠인 줄 모르고 스팸인 줄 알고 그런 거예요.”예은이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굳은 몸의 제훈이 천천히 몸을 돌리고 예은을
제훈은 예은을 빠르게 소파 위로 내려놓았다.예은의 발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핏자국을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집에 구급상자 같은 거 있어요?”“네.”예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텔레비전 캐비닛 아래에 있어요.”제훈이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바로 캐비넛 앞으로 걸어가 약상자를 찾아냈다.면봉과 요오드, 반창고, 거즈를 들고 돌아온 제훈은 물건을 탁자 위로 올려두었다.이어 허리를 굽히고 슬리퍼를 벗기려 했다.예은이 깜짝 놀라 발을 안으로 움츠리며 말했다.“그... 그러실 필요 없어요!”“움직이지 마요!”제훈은 예은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발목을 잡아당겼다.슬리퍼를 벗기자 하얀 발이 드러났다. 예은의 발은 하얗고 부드러웠는데 발가락을 안으로 움츠리자, 솜덩이 같은 발이 퍽이나 귀여웠다.제훈은 말없이 상처를 주시했다.살짝 긁힌 곳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흰 피부와 상반된 빨간색이 눈에 띄었다.제훈은 어릴 때부터 독립적인 편이라 상처 치료에는 아주 능숙했다. 발목을 가볍게 쥐고 자신의 무릎 위로 올려 둔 후 면봉에 요오드를 묻혀 조심스럽게 닦아냈다.예은은 정신이 어질해졌다.태어나서 누군가 자신에게 이렇게 대해주는 건 처음이었다.어렸을 때부터 편견, 혐오, 욕설 속에서 자랐던 예은은 커서도 분노, 원망, 이득에 찌들었다.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치료해 주고 있었다.더구나 그 상대는 신분이 남다른 강제훈이었다.거실은 너무 조용해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이어 두 사람의 숨소리를 제외하고 거즈를 감싸는 소리만 들렸다.“아직도 아파요?”상처를 치료하고 제훈이 나지막하게 물었다.예은이 고개를 저었다.아까 느꼈던 고통은 벅찬 마음에 가려져 느껴지지도 않았다.이깟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앞으로 조심해요. 당분간 물 닿지 않게 하고요.”제훈은 다시 예은의 슬리퍼를 신겨주고 조심스레 발을 바닥에 내려두었다.“네...”예은이 고개를 끄덕였고 한참이나 있다가 말을 이었다.“고마워요.”제훈은 조
송예은은 고의로 제훈의 연락처를 차단한 게 아니었다.지금은 왠지 차단하지 말걸,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이런 예은의 기분이 느껴지자, 제훈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제훈은 빠르게 약상자를 정리하고 손을 씻더니 방 구조를 살피기 시작했다.오피스텔은 큰 편이 아니었으나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구석구석 맞춤한 가구로 꾸민 오피스텔은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제훈의 시선이 벽에 걸린 액자로 향했다. 누군가 그린 그림을 액자로 걸어둔 것 같았다.그림 작가는 인물 스케치에 재능이 있으나 자세히 보면 전공으로 배운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이목구비를 아주 생동감 있게 표현한 것을 높이 살 수 있었다.“그건... 제가 마음대로 그린 거예요.”옷을 갈아입은 예은이 그림을 보고 있는 제훈을 보며 조금 부끄러워했다.“그림에 재능이 있네요.”제훈이 고개를 돌렸다. 예은과 눈이 마주친 순간 제훈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연한 노란색의 편한 원피스로 갈아입은 예은에게서는 나른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이 풍겼다.머리는 반쯤 마르고 반쯤 헝클어진 채로 어깨 위로 흐트러졌다. 피부는 조금 핑크빛이 돌았고 잡티 하나 없는 그 얼굴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제훈은 가슴이 너무 뛰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아니에요. 그냥 취미일 뿐이에요.”예은이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그림을 보고 있는 예은의 시선이 조금 흔들렸다.이제 그림을 배우고 싶었던 나이는 훌쩍 넘겨버렸다.그래서 예은이 말을 돌렸다.“제훈 오빠는 무슨 일로 이 밤에 찾아온 거예요?”“얼굴이 보고 싶기도 하고 내일 저녁 약속을 잡으려고 온 겁니다.” 오피스텔로 오는 길에 강연이 제훈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가족 모임에 송청아, 나이란, 안택은 물론 전서안까지 참가한다고 했다.이런 자리에 예은이 빠지면 섭섭했다.너무 대수롭지 않게 건넨 말에 예은은 별생각 없이 물었다.“어디인데요?”“주소는 따로 보내줄게요.”“아, 네.”제훈이 예은의 머리카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고개를 들어 제훈을 바라보는 예은의 시선에 의문이 가득했다.‘데이트가 아니라면 우린 무슨 사이지?’‘재벌이 후원하는 연예인?’‘데이트가 아니라면 그저 불장난?’‘날 지금 뭐로 보는 거야!’예은은 마음이 점점 복잡해지고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차오르고 역겨운 기분마저 들었다.예은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제훈의 중저음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데이트는 잠시 미뤄두고 부모님 먼저 뵈러 가자.”“...”기분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몇 초 사이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에 예은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부모님을... 만난다고?’‘우리가 벌써 그런 사이인 거야?’‘부모님이라면 설마 그 소문으로만 듣던 강씨 가문 가주와 사모님인 건가?’‘날 마음에 들어 하실까?’예은은 자신이 순식간에 불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그게... 너무 빠르지 않나요?”예은이 더듬거리며 말했다.“우린... 우린...”“왜?”제훈이 깍지를 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눈썹을 치켜세웠다.“날 책임지지 않을 거야?”“그게 아니라...”예은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어떻게 이렇게 된 거죠?”당황해 보이는 예은의 얼굴을 보며 제훈은 흥미진진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첫 만남의 예은은 차갑고 곁을 주지 않는 냉미녀같았다. 하지만 모든 위장을 벗어던진 예은은 그저 귀엽기만 했다.“언젠간 만나야 하지 않겠어? 조금 앞당길 뿐이야.”제훈의 다정한 말투에 예은은 화가 나지만 화를 낼 수 없었다.‘젠장, 너무 잘생겨서 욕도 나오지 않아.’“그만 걱정해.”제훈이 예은을 다독였다.“내일 우리 부모님을 만나는 건 너뿐만이 아니니까 부담가지지 마.”“네?”예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한꺼번에 여러 여자를 데리고 가는 거예요?”“...”그렇게 카리스마가 넘치던 제훈도 이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입꼬리를 실룩이던 제훈은 예은을 품 안에 넣고 꼭 껴안았다.“대체 하루 종일 무슨 생각만 하는 거야?”
제훈은 두 손을 위로 들고 뒤로 물러섰으나 입가에는 웃음이 가득했다.예은과 제훈, 두 사람의 오해가 드디어 모두 풀렸다. 제훈은 그 누구보다도 용감했다. 세훈처럼 짊어진 게 많지 않아 고민할 게 적었고, 상대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할 수 있었다.제훈이 가장 잘하는 건 결단력 있게 움직이는 것이었다.상대가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면 제훈은 빠르게 한 걸음 더 다가갔고 상대만 좋다면 바로 집까지 안고 튈지도 모른다.그리고 현재, 제훈은 성공적으로 예은과의 세 번째 만남에 가족 모임 약속까지 잡았다.예은이 머리를 말리고 나니 어느새 깊은 밤이 되었다.제훈은 교양을 갖춘 가문 도련님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그럼 이만 쉬어, 난 먼저 가볼게.”예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제훈이 눈썹을 치켜세우는데 예은이 갑자기 다급하게 제훈을 불러세웠다.“잠시만요!”제훈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며 예은이 주방으로 달려가고 또 방까지 다녀오더니 큰 쓰레기봉투를 건넸다.“아래 분리수거를 하는 곳에 버려주세요! 감사합니다!”“...”검은색 봉투를 건네받은 제훈의 표정이 조금 구겨졌다.강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자 국제 최고의 해커가 해보지 못한 일은 없었다.하지만 분리수거만큼은 스스로 해본 적이 없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가 오른쪽 코너에 있어요. 분리수거 부탁드려요!”“...”‘그래.’‘내가 좋아하는 여자인데 뭘 해주지 못하겠어.’“그럼 일찍 쉬어.”제훈은 짧은 인사를 건네고 몸을 돌려세웠다.제훈이 떠나고 문이 닫히자 빠르게 방으로 돌아간 예은이 침대 위로 풀썩 누워 빠르게 타자를 시작했다.삼인조 톡 방.[송예은: 강연아! 나이란!][송예은: 살려줘! 나 진짜 홀린 것 같아!][송예은: 제훈 오빠가 내일 가족 모임 같이 가재!]한번에 연속 세 통의 톡을 남기자 빠르게 누군가 답장을 했다.[나이란: 망했어 망했어. 세윤 오빠도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단 말이야. 살려줘. 지금 후회하면 늦어버린 걸까?]
강연은 외출하기 전에 동전 몇 개를 챙겼다.그리고 같은 동네에 사는 재벌 집 언니의 차를 타고 동네를 떠나 인파를 뚫고 지하철 즐거운 여행을 시작했다.아무리 아버지라고 해도 강연이 지하철로 움직일 거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한 강연이 서안에 전화를 걸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핸드폰을 낚아챘다.“어?”강연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고 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쉿.”서안이 검지로 입술을 가려 말하려던 강연을 멈추게 했다. 이어 강연의 핸드폰을 들고 몇 번 버튼을 누르더니 핸드폰의 위치추적과 신호를 끊어버렸다.그리고 강연의 손을 잡은 서안은 조심스럽게 인파 속으로 파고들며 더 안으로 몸을 숨겼다.강연은 이런 짜릿한 기분에 흥분이 되었다.서안은 강연을 어느 골목길로 데려갔고 그제야 반짝이는 강연의 두 눈을 확인했다.“자기야, 우리 지금 첩보 영화 찍는 것 같지 않아?”서안이 주변을 둘러보고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뒤에 강연을 다시 바라보았다.그리고 손을 들어 강연의 이마에 땅콩을 먹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왜 이렇게 위험한 행동을 한 거야? 그러다가 정말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강연은 이마를 손을 매만지며 앓는 소리를 냈고 억울하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나는 서프라이즈하고 싶어서 그랬지.”“이게 서프라이즈 맞아?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서안이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어떡하려고 했어? 부모님이랑 언니, 오빠들까지 집에 있는 상황에서 도망치면 가족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는 고민해 봤어?”내일이면 인사를 드리려 가는 날이었다. 내일을 어떻게 이겨낼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는데 또 새로운 산이 생겨버렸다.“난 하나도 두렵지 않은걸!”강연이 헤헤 웃음을 터뜨렸다.“자기가 꼭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이런 건 오빠한테 쉬운 일이잖아!”“...”환하게 웃는 그 얼굴을 보며 더 이상 싫은 소리가 나오지 못했다.“그래.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이
“강연아, 저번에 마음잡고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김성재 씨랑 얘기를 나누며 꽤 괜찮은 작품을 골라봤어. 지금 같이 볼래?”매니저 조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 말에 강연은 바로 얼굴을 굳혔다.“네, 수고하셨어요.”조혜영과 김성재가 시선을 마주하고 무언가 신호를 주고받더니 바로 작품 얘기를 시작했다.“지금 골라둔 작품은 총 다섯 작품이야. 드라마 두 편, 영화 세 편. 이 다섯 작품은 제작진이든 캐릭터든, 각본이든 모두 수준급이더라고. 업계 평이 S+, 심지어 S++이라고 극찬하고 있어.”“첫 번째 영화는 유명 감독의 복귀 작품이라 상을 바로 노릴 수 있고 다른 한편은 정극이라 배역이 좋은 편이야. 마지막 영화는 첩보물이라 물오른 연기를 보여줄 수 있어.”“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하나는 유명 웹 소설을 모티브로 한 작품인데 여자 주인공 비중이 많은 편이고 원작의 팬층도 두꺼운 편이야. 남은 한 편은 주말 드라마인데 대중성을 사로잡을 수 있어.”“여러 가지 고민을 해보고 어느 작품이 더 끌리는지 말해봐.”조혜영이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결정권을 강연에게 넘겼다.강연은 대본을 쥐고 간단하게 몇 줄 읽어보더니 영화 대본을 가리키며 말했다.“저는 이거 해보고 싶어요.”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대본을 확인하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장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한 대본인 첩보물이었다.이 영화는 배우의 연기가 아주 중요했고 악조건인 촬영 비중이 컸다. 평생 예쁨만 받고 자란 공주님이 정말 해낼 수 있을지 장담이 없었다.“김성재 씨, 조혜영 언니 지금 걱정이 되는 걸 이해해요. 하지만 저도 최선을 다해 임할 거고, 절대 제작진 발목 잡지 않을 거예요.”강연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강연 씨, 저희도 강연 씨의 재능과 의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지는 않을까요?”김성재가 조금 직설적으로 말했다.“만약 이 작품에서 조금의 틈을 보인다면 네티즌들이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영화 작품이 끊길 수도 있는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강연은 미소를 머금고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옆의 조혜영은 원망 가득한 표정으로 서안을 바라보았다.서안은 강연을 해칠 뿐만 아니라 조혜영의 앞길도 캄캄하게 만들었다. 조혜영은 돌아가서 바로 아티스트 보호 대책을 세울 준비를 하겠다고 다짐했다.그리고 감독이 이 조건을 받아들일지도 의문이었다.“감독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약속하면 받아들일 거예요.”그 말을 들은 조혜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그래 전서안이 누구야? 최상급 배우+ 영화 탑급 배우잖아. 전서안이 출연만 하면 뜨지 못하는 작품이 어디 있어? 전서안이 출연만 했다 하면 매번 신기록이잖아.’첩보물 영화감독이 강연을 탐탁지 않게 본다고 해도 서안이 이런 조건을 건다면 어떻게든 허락할 것이다.뭐가 어찌 되었든 상대는 서안이었다.옆의 김성재는 침착하게 안경을 고쳐 쓰고 덤덤하게 감독님에게 연락했다.자신이 모시는 도련님이 어떤 사람인지는 김성재가 제일 잘 알고 있었고 늘 준비하고 있었다.대본을 읽어 내려가는 강연의 얼굴은 흥분에 붉게 물들었다.이 영화 제목은 “스파이”였다.스토리는, 전쟁 속 상대 진영으로 두 명이 스파이로 들어가 임무 수행을 하다가 꼬리가 밟히고 의심스러운 열 명을 한곳에 모아 자백을 받아내는 것으로 시작된다.스파이는 적군의 감시와 고문 속에서 동료들의 배신을 받고 그 상황에서도 정보를 넘겨줄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영화는 바로 이 10일 동안, 적과 아군의 생과 사의 대결, 인성의 예측불허와 복잡함을 담았다.강연이 맡고 싶어 하는 주인공 배역은 바로 적군의 진영에 5년간 몸을 숨긴 스파이였다.다양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 배역이라 단계마다 변화를 주어야 했다.적군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때는 남편 때문에 기생집에 팔려 가는 비운의 여자이자, 적군의 여상사에 의해 구출되어 유명한 칼잡이가 되는 캐릭터였다.예쁘고, 방탕하고, 살인에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이게 바로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이었고, 사실은 희생정신이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