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진중하고 생각이 깊은 전씨 가문 가주, 이제 곧 서른 살이 되는 전서훈이 이성을 잃고 전정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전씨 가문 전임 가주의 아내, 즉 서훈과 서안의 어머니의 죽음은 서안의 악몽일 뿐만 아니라 서훈의 평생 상처였다.어머니가 동생과 함께 실종되고 어린 서훈은 하룻밤 사이 훌쩍 커 아버지의 짐을 덜었다. 죽을힘을 다해 성장했던 건 어머니와 동생이 찾기 위해서였다.그리고 드디어 동생이 돌아오고 어머니의 행적도 밝혀졌다.아버지를 따라간 그곳에서 어머니를 재회할 줄 알았지만, 어린 서훈을 기다리는 건 피바다 위에 숨이 끊긴 어머니였다.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건 겨우 몇 초 사이였다.어머니를 찾은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어머니를 영영 잃어버렸다.그리고 이 모든 건 바로 전정해의 짓이었다.서안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서훈은 그동안 전정해의 소식을 애써 모른 척 외면했다. 심지어 복수도 접어두었다.그런데 전정해는 뻔뻔하게도 자신의 앞에서 동생을 자극했다. 서훈의 오랜 세월 쌓아둔 원한이 한 번에 터져버렸다.그의 주먹은 전정해의 급소를 향했고 전정해는 피를 토하다가 정신을 잃었다.“그만하세요.”한참 지켜보던 강현석이 말했다.짧은 한마디에 서훈이 이성을 되찾았다.손을 거두고 주먹의 혈흔을 지웠다.“죄송합니다.”서훈은 빠르게 겉옷을 갈아입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안 좋은 모습을 보였네요.”강현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서훈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어도 마지막 이성을 지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정해를 때려도 죽지 않을 정도의 힘 조절이 가능했던 것이었다.서훈은 전정해의 목숨을 이렇게 쉽게 가져갈 생각이 없었다. 전정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탈탈 털어내고 서안이 위험에서 벗어난 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지금 서훈에게 원한보다는 가족의 안전이 우선이었다.그리고 이걸 이해하는 강현석과 도예나는 서훈이 마음껏 분노를 터뜨려도 말리지 않았다.전정해가 혼미 상태에
“어떤 방법인가요? 말씀해 주세요.”전서훈이 다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마 어느 정도 예상한 게 분명했다.“최면이요.”도예나가 대답했다.“의식을 잃게 하고 사모님의 신분으로 무의식을 열어보는 겁니다. 제 생각에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전씨 가문이 동의할지 안 할지가 문제였다.다른 행동은 고사하고 사모님의 신분을 이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전씨 가족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었다.그래서 도예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서훈의 안색이 어두웠다.인상을 찌푸린 서훈이 한참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정말...’어머니의 이름이 전정해와 같이 거론되는 것조차 어머니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졌다.어머니를 이용해 전정해의 무의식을 알아본다는 것도 너무 거부감이 들었다.하지만 서훈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하는 동생을 보는 서훈의 눈빛이 흔들렸다. 유일하게 남은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 정보가 너무 중요했다.서안과 도예나와 같은 피해자는 세상에 수많이 존재했다. 그렇게 피해를 본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움직여야만 했다.‘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에 발 벗고 나섰을 거야. 그러니까 어머니도 이걸 원하시지 않을까?’친절하고 다정한 어머니였지만 강인했던 어머니는 전씨 가족의 빛이었다.서훈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서안을 보며 서훈이 말했다.“저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서안이 정신을 차리고 서안의 의견도 물어보고 싶습니다.”도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그들은 서훈의 의견을 십분 이해했다.이어 서훈이 서안을 부축해 자리에서 벗어났다.서훈의 묵인하에 강현석은 인맥을 총동원해 가장 실력 있는 최면술사를 섭외했다.전정해에게 처음으로 최면을 시작할 때, 전정해의 내면은 최면을 무척이나 배척했다.많은 심혈을 기울인 뒤에 최면에 성공했으나 칩에 관한 내용만 물어보면 바로 거부 반응을 보였다. 무의식중에도 저항하는 탓에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강현석과 도예나가 수년간 칩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칩 해체 작업의 난도가 한층 내려갔다.하루의 준비 시간을 거쳐 다음 날 아침 서안은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 직전 강연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고 서안이 강연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잠시만 기다려줘.”5시간의 수술은 드디어 끝이 나고 서안이 실려 나왔다.창백한 안색과는 달리 서안의 정신은 유난히 또렷했다.서안은 수술실 밖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강연을 달래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병실에 누워 고르게 숨을 쉬는 서안을 보며 강연은 도예나의 품에 안겨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서안을 괴롭히던 고통이 드디어 끝이 났다.서안은 이제 안전했다. 두 사람이 가장 많이 걱정하던 문제도 이제 사라졌다.빨개진 강연의 코끝을 보며 강현석은 마음 한 편이 시려왔다.강현석은 아이들 몰래 도예나에게 딸들이 이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며 서러움을 터뜨렸다.도예나는 미소를 지은 채로 강현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당신은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잖아요. 내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사람.”아내의 고백에 강현석은 드디어 마음이 편해졌다.참 좋은 하루였다.이런 매일이라면 더 바랄 게 없었다.도예나를 만나 아이를 낳고 평생을 함께 산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강현석은 알고 있었다.서안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강씨 가족은 이미 알아서 자리를 피했고, 서훈은 가문의 일 때문에 서안의 옆을 지키지 못했다.그래서 현재 서안의 옆에는 강연만이 자리했다.의사는 서안이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말했었다.그래서 다들 안심하고 떠났으나 서안이 예상보다 먼저 눈을 떴다.강연은 너무 놀랍기도 기쁘기도 했다.“서안 오빠,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요? 물 마실래요? 배고프지는 않아요?”긴장해 허둥지둥하는 강연의 얼굴에 선명하게 드러난 다크써클을 보며 서안은 마음이 아팠다.서안은 고개를 저었고 강연의 손을 꼭 잡았다.
분명한 건 서안은 강연의 머릿속 이상한 생각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강연의 미묘한 표정을 본 서안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했다.눈앞 잘생긴 외모의 남성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강연은 양심에 찔렸다.“수술을 금방 마쳤으니까 절대 방해하지 않을게요.”강연은 얼굴이 화끈거렸고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그리고 어떻게 아픈 사람을 상대로 내가 그러겠어요?”“...”“침대 크니까 빨리 올라와.”서안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여긴 VVIP 전용 병실이라 침대가 일반 사이즈보다 훨씬 크고 폭신해 두 사람이 누워도 충분했다.그리고 같이 눕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둘은 연인 사이인데.또한 강연이 자신을 “방해”한다고 해도 서안은 아무 의견이 없었다.아직 어리기만 한 강연을 보며 서안은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서안의 고집에 강연은 별수 없이 침대에 올라갔다.코를 찌르는 소독수 냄새와 서안의 체향이 섞이자, 강연은 익숙하기도 긴장되기도 했다.심장이 콩닥거리는데, 귓가에 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착하지 우리 자기, 빨리 눈 좀 붙여.”등을 일정한 속도로 다독이자, 강연은 바로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잠에 빠졌다.어두운 불빛 아래 곤히 잠든 여인의 옆선을 보며 서안은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이튿날.서훈은 아침 댓바람부터 달려와 강연과 교대를 하겠다고 난리를 쳤다.강연이 무슨 이유인지 묻기도 전에 강씨 가족도 병실에 도착했다.세훈과 제훈은 강연을 데리러 온 것이었다.그들은 서안의 옆을 지키는 사람이 서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두 오빠 몰래 전씨 그룹의 대표인 서훈이 몰래 강연을 향해 윙크를 날리며 신호를 줬다.“...”강연은 두 오빠가 방금 무언의 전쟁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강연은 등 뒤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맞은편 서안의 얼굴을 확인해 보니 역시 어이없어 보이는 눈치였다.강연은 세훈, 제훈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
동생 바보 제훈은 애교로 무장한 강연에 속수무책이 되었다.“알겠어 알겠어. 그만 잡아당겨, 옷 구겨지겠어.”제훈은 여전히 무뚝뚝하게 말했지만, 올라간 입꼬리가 그의 마음을 솔직하게 알렸다.“알려줘요. 오빠.”강연이 고개를 살짝 쳐들고 눈꼬리를 예쁘게 접으며 물었다. 동그란 두 눈에는 별을 박아놓은 듯 반짝였다.“세상에서 제일 멋있고 대단한 우리 셋째 오빠! 제발 좀 알려줘요.”제훈은 드디어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제훈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여전히 정면을 주시했지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애교로 다 넘어가려고 하네.”“부모님은 본가에 잠시 계실 거라고 했어. 이번에 집을 비운 시간이 좀 길었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잖아. 잠시 집에서 쉬면서 우리 일들을 처리하겠다고 하셨어.”“정말?”강연의 눈이 반짝거렸다.“그럼 엄마한테 안겨 잘 수 있다는 말이네?”강연이 뒷좌석에서 난리를 치는 동안 제훈은 백미러로 몰래 강연을 살피며 미소를 지었다.“아버지한테 넌 보물 1호인데, 오늘 저녁 어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가는 아버지가 크게 실망할지도 몰라.”“흥흥, 그게 뭐요.”강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난 엄마가 더 좋은걸.”“쯧.”제훈이 혀를 차며 말했다.“내 앞에서만 우쭐하지.”강연이 혀를 내밀고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당연하죠. 내가 바보도 아니고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떻게 이러겠어요.”제훈이 또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오빠는요? 휴가는 며칠인 거예요?”“나? 나는 길어.”제훈은 정면을 주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이번에는 따로 처리해야 할 사적인 일이 있어서. 언제 모두 정리될지는 나도 모르겠어.”“그래요.”강연은 짤막하게 대답할 뿐 더 묻지 않았다.그런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익숙했다.“셋째 오빠 잠깐만!”강연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내가 묵는 오피스텔로 가는 거 아니에요?”여긴 매니저 조혜영이 구해준
“강연아, 네가 어쩐 일이야?”송예은은 강연을 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강연은 며칠 동안 강씨 가문과 전씨 가문에 일이 생겨 잠시 집을 비운다고 미리 조혜영에게 언질을 해두었다. 그래서 예은은 당분간 강연이 돌아오지 않는 줄만 알았다.오늘 강연을 만나자 조금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큼, 그게 본가에서 지내려고 짐 챙기러 왔어.”강연이 설명했다.“지금 나가려고?”“뭐 좀 사러 가려고 했는데 급한 건 아니야.”예은이 말을 이었다.“무슨 짐을 챙기려는 거야? 내가 도울까?”“그러면 고맙지.”강연이 입꼬리를 올렸고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오빠가 밥을 사주겠다는 사람이 바로 송예은인건가?’‘설마? 오빠랑 예은이는 겨우 한번 만난 사이인데 어떻게 알고?’강연은 생각에 잠긴 채로, 방으로 돌아와 예은과 짐을 정리했다.사실 챙길 게 별로 없었으므로 강연은 필요한 신분증이나 생필품을 대충 챙겼다.본가에 아주 큰 드레스룸이 따로 있었으므로 옷을 챙길 필요는 없었다.짐을 정리하고 예은은 강연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제훈의 차는 아주 눈에 띄었다. 강씨 가문의 제일 평범한 차라고 해도 고가 카이엔이었고 주차만 해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강연이 앞으로 걸어가자, 주변 사람들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강씨 가문 공주님을 데리러 온 거였어? 그럼, 뭐 이상한 것도 없지.’“제훈 오빠?”강연과 예은이 차창으로 다가갔고 짙은 선팅 탓에 안이 보이지 않아 차창을 똑똑 두드렸다.차창이 천천히 내려가고 제훈의 차갑지만, 청초한 외모가 드러났다.“모두 챙긴 거야?”덤덤하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아주 듣기 좋았다.“네.”강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예은이 도와줬거든요.”제훈의 시선이 자연스레 예은을 향했다.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진 예은이었지만 제훈의 주시에 갑자기 긴장해졌다.마치 사냥감에 노려진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예은은 애써 제 기분을 숨기며 속으로 역시 강씨 가문의 카리스마는 남다르구나, 라
강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지 놀랍기도 했지만, 송예은은 제훈이 대체 자신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지 궁금했다.차 문이 열리고 몸에 알맞게 맞춘 슈트를 입은 제훈이 걸어 나왔다. 긴 보폭으로 걸어오는 그의 기럭지에 보는 사람은 마음이 떨렸다.햇빛에 비친 제훈의 외모는 또 어떠한가. 뒤에 후광이 비쳐 들고 한시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예은은 연예계에서 몇 년 동안 일하며 꽤 인지도가 있는 배우로 성장했고 그동안 잘생긴 배우들을 수없이 만났었다.기질, 외모, 기럭지, 서안을 제외하고 제훈과 비교할 수 있는 상대는 존재하지 않았다.예은은 어느새 입이 벌어졌다.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제훈의 그림자가 예은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고, 얼굴은 차갑지만, 예상과는 달리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이가 자주 송예은 씨를 언급했었습니다. 예은 씨가 가장 친한 친구이고 자주 송이를 도왔다고 들었는데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밥 한 끼 같이 하시죠. 제가 감사의 마음으로 밥을 사겠습니다.”“네?”예은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예쁜 눈망울에 의문이 가득했다.“아... 그게... 좋아요.”‘셋째 도련님은 쌀쌀맞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 아니던가?’‘왜 갑자기... 이렇게 친절한 거지?’예은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제훈의 뒤로 남겨진 강연은 경악에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그렇게 차갑고 무뚝뚝하던 셋째 오빠가 먼저 대시하는 걸 다 보다니.’‘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밥이라도 잘못 먹은 거야?’강연은 세윤과 제훈이 평생 솔로로 살 것이라고 내기를 했었다.그런데 강철 솔로에게 꽃이 피는 봄이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강연은 소름이 돋은 팔을 내리쓸며 뒷좌석에 앉았고, 옆에 앉은 예은과 앞쪽의 제훈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예은 씨는 강연과 어떻게 만난 거예요?”제훈이 먼저 대화를 주도했다.강연은 바로 허리를 세우고 조용히 팝콘 먹을 준비를 했다.‘오빠가 먼저 예
“송예은! 너 오해한 거야!”강연이 예은의 손을 잡고 입을 삐죽였다.“셋째 오빠는 절대 악의로 말한 게 아니야. 넌 내 친구인데 오빠가 왜 널 조사하겠어? 그냥... 우리 과거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본 걸 거야.”그 말을 들은 예은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고 고개를 돌려 제훈을 바라보았다.“셋째 도련님, 정말 강연이 과거가 궁금해서 그러신 거예요?”예은의 질문에도 제훈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백미러를 통해 겨우 화를 참고 있는 예은을 확인한 제훈이 조금 날카로운 시선으로 말했다.“평소 경계심이 많은 편인가요?”제훈의 물음에 예은은 조금 당황한 듯싶었다.“뭐라고요?”“저는 동생과 동생 친구한테 관심을 가지면 안 되나요? 저는 뭐 동생을 다른 사람과 만나게 하지 못하고 주변 인물에 악의를 가져야만 하나요?”“...”‘나는 드라마에서는 다 그러니까 혹시나 해서 그런 거지.’제훈은 시선을 거두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송예은 씨 혹시 피해망상이라도 있는 거예요? 왜 이렇게 경계하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드라마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니예요?”“...”예은은 독설을 퍼붓는 제훈을 흘깃 노려보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제훈은 백미러를 통해 귀끝이 조금 붉어진 예은을 발견했다. 그리고 몰래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화기애애하던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든 제훈을 보며 강연은 속으로 생각했다.‘제훈 오빠처럼 완벽한 사람도 여자 앞에서 바른 소리만 해대는 무드 없는 남자였어.’그리고 다른 한편 걱정이 되기도 했다.‘예은이 제훈 오빠에 대한 인상이 나빠지면 어떡하지?’겨우 이성에 눈을 뜬 제훈이 이대로 포기할까 강연은 마음을 졸였다.“예은아.”강연이 예은의 옆으로 붙으며 손을 잡았다.“우리 오빠가 한 말 신경 쓰지 마. 무드가 없는 남자라 좀 직설적인 편이야.”강연의 말에 예은은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사과를 하기에는 조금 내키지 않았다.그래서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이에 강연은 분위기를 띄워보려 계속해서 쫑알거렸다.“우리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