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을은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 대표님, 저분이 바로 진 도련님이십니다!”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손가을 옆으로 다가오더니, 작게 속삭이며 친절하게 남자의 정체를 알려줬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진서호를 향해 공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덧붙였다.“진 도련님은 진씨 가문의 장자로서, 화련상조회의 핵심 원로 멤버이세요. 앞으로 해외에서 제대로 자리 잡고 싶으면 무조건 이분과 좋은 관계를 맺으셔야 해요.”그 말을 들은 손가을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표정을 갈무리하고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넸다.“진 도련님, 여기서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말씀하신 대로 제가 손가을이에요.”손가을의 공손한 태도에 진서호는 겉으로는 신사적인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는 감탄했다. 역시 청해 제일 미녀라는 호칭은 아무에게나 붙는 것이 아니었다! 손가을의 미모는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별말씀을요.”그 말과 동시에 진서호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맺혔다. 그는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성큼 손가을에게 다가가더니,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여기 사람도 많은데, 우리 따로 방에 가서 얘기 좀 나눌까요?”따로 방에 가서 얘기를 나누자니, 진서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건 누가 봐도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손가을과 진서호를 번갈아 보며 아주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한쪽은 그 유명한 진씨 집안의 장자, 또 한 명은 선녀같이 아름다운 손씨 그룹 대표, 남녀가 단 둘이 방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아는가?진서호는 역시나 진서호였다. 여자를 유혹하는 솜씨가 아주 하루이틀 해본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둘이 함께 방으로 향한다면, 오늘 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진 도련님께서 하실 얘기가 있다면야, 저희가 비켜줘야지요. 두 분, 천천히 얘기 나누시고 저희는 다음날을 기약하도록 하겠습니다!”“아유, 당연히 그래야 하지요. 진 도련님의
손가을이 꾸역꾸역 분노를 삼키고 있던 그때 아무 감정 없는 무심한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화련상조회가 모두 너와 같은 사람들이라면 차라리 당장 해체하는 게 낫겠어.”“아니지? 만약 화련 상주회가 모두 너 같은 쓰레기들이라면 용하국을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해산하는 게 맞아.”이 말에 진서호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고 눈에는 한기가 서렸다.‘겁도 없이 어딜 감히!여기는 봉황국이고 화련상조회의 본부야. 또한 진 씨 가무의 영역이기도 하지.그런데 누가 감히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떠드는 거야? 겁을 상실한 건가?’“당신 누구야?”진서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위 사람들은 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지 오래였다.그들은 대뜸 비난하기 시작했다.“감히 진 도련님을 건드린다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진 도련님이 어떤 분인데 네까짓 게 감히 여기에서 난동을 부려? 도대체 어느 집 문지기야? 가서 주인 놈을 불러오기나 해!”“아니야. 내가 방금 얼핏 보니 손 대표와 함께 온 것 같았어. 그가... 손씨 그룹의 경호팀 부장, 염구준?”“염구준이라고? 손 대표의 남편이잖아. 다들 모르는 것 같은데, 그는 손씨 가문의 데릴사위고 부대에서 은퇴한 페기물 같은 존재라고 청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찌질하기로 유명하지...”‘손씨 가문의 데릴사위? 손가을의 남편?’진서호는 살짝 멈칫했다.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천천히 손가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염구준을 바라보았다.‘젠장! 앨리스는 왜 이런 중요한 얘기를 하지 않은 거지?’손가을은 이미 결혼 한 유부녀였다. 아름다운 꽃송이를 엉뚱한 놈이 꺾어버렸다!그녀와 같은 훌륭한 여자가 왜 염구준과 같은 멍청이에게 시집간 것은 인생 낭비다!아쉬울 따름이다... 이미 순결한 몸이 아니니 아무리 천사의 미모를 자랑한다고 해도 진서호는 여전히 관심 없었다.그가 선호하는 것은 앨리스와 같은 완벽한 여자이지 이미 결혼 한 유부녀는 아니다.“오늘 이 파티는 앨리스가 주최한 것이니 그녀의 체
염구준이 고개를 숙이면 손씨 그룹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회원비가 면제될 뿐만 아니라 이익도 나눌 필요가 없다고?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서호 씨.”그 시각 염구준에 이끌려 파티장을 벗어나려던 손가을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서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물었다.“진심이야?”진서호의 눈이 반짝 빛났고 얼굴에는 거만함이 짙어졌다.손가을이 흔들리고 있다.손 씨 그룹과 같은 국제기업들의 순이익 10%는 천문 숫자였으니 30%는 어마어마한 숫자이다!한마디로 이렇게 쉽게 그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달콤한 유혹이었다.쓸모없는 이 사위 놈이 무릎을 꿇으면 손씨 그룹은 엄청난 지출을 막을 수 있다. 방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이 거래는 보통 유리한 게 아니었다!“손 대표는 똑똑한 사람이잖아!”“그렇고 말고요. 우리 집 그 쓸모없는 사위 놈이 무릎을 꿇어 돈을 절약할 수만 있다면 나는 즉시 그자식더러 도련님께 그렇게 하라고 하겠어요.”“도련님, 우리 딸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 짝을 찾아도 아직 늦지는 않겠죠? 무릎은 얼마든지 꿇을 수 있어요. 그럴 가치가 충분하죠...”주위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들었다. 그중에 두 사람을 대놓고 비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시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봐봐, 이것이야말로 전화위복, 곤경 끝에 행운이 온다는 말이지 않을까?’손 씨 그룹의 규모로 보면 해외기업인 그들은 매년 순이익이 2조에 도달할 것이다. 즉... 염구준이 머리를 한번 조아릴 때마다 손씨 그룹를 위해 2천 억을 절약할 수 있다는 말이다.손가을은 남편더러 진서호에 무릎을 꿇으라고 하지 않고 뭘 기다리고 있는 걸까?“난 욕을 입에 담지 않지만 오늘만은 예외야.”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가을은 고개를 돌려 담담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염구준을 바라보다 진서호에게 시선을 돌렸다.“진서호, 구준 씨의 무릎을 꿇게 하려고? 꿈 깨!”
‘미쳤어, 오늘 진짜 미친 거야!’보잘것없는 손씨 가문의 데릴사위 주제에 감히 진씨 가문에 버릇없이 굴고 화련 상주회에도 가입하지 않으려 하며 방금전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도 아무런 사과도 없다니...“염구준!”분노에 찬 그는 앙다문 이빨 사이로 사납게 으르렁거렸다.“회사가 대그룹이라고 그 힘을 빌어 나에게 이렇게 거만한 모양인데!”“우리 진씨 가문을 건드리면 내가 손씨 그룹을 망하게 만들 거야!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단지 위협이라고 생각하지는 마!”그는 씩씩거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두 사람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가을 씨, 내가 이미 무언갈 행동에 옮기고도 남았지만, 앨리스의 체면을 봐서 참고 있는 줄 알아.”그때 염구준은 살짝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손가을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이내 표정이 차갑게 굳었고 오른 손이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짝-굉장한 소음과 함께 진서호의 고개가 여지없이 꺾여 돌아갔다.강력한 한방이다!겉으로 보기에는 심하지 않아 보였지만 진서호는 비틀거리며 연속으로 다섯 걸음 물러났고 그러다 유리로 된 테이블에 부딪혀 중심을 잃더니 초라한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특히 그의 왼쪽 뺨은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빨개진 상태로 퉁퉁 부어올랐다.“감히 진 도련님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굴다니!”“여기 사람이 맞고 있어요!”“얼른 도련님을 도와줘요. 도려님, 괜찮으세요? 진 도련님...”주위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이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고 어떤 이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진서호를 부축했으며 심지어 또 다른 이들은 심한 말로 염구준을 나무라기까지 했다!“감히 나에게 손찌검을 한 거야?”잠깐의 혼란 속에서 진서호가 상인 두 명의 부축임을 받아 바닥에서 일어섰다. 맞은 얼굴이 얼얼해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진 상태였다.“어렸을 때부터 아무도 감히 나에게 손찌검을 하지 못했어. 내 아버지조차도 매를 든 적 없다고!”“그런데 염구준 네가 감
진서호를 보호하고 있던 4명을 포함한 8명의 보디가드는 허리춤에서 고무 막대기를 꺼내더니 사나운 표정으로 일제히 염구준과 손가을에게 덮쳤다. 고무 막대기가 허공을 가르며 두 사람을 향해 미친 듯이 날아갔다.앞뒤, 좌우. 사면팔방으로 몰려와 피할 곳이 없었다.“가을이가 방금 주제 파악을 못 한다고 했는데 안 믿네?”손가을의 손을 잡고 있는 염구준은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진서호에게 가벼운 미소를 날렸다.“그럼 지금 확인시켜 줄게. 가을이가 맞았어. 넌 진짜 주제파악을 못해!”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재빨리 움직였다!고작 손짓하나에 공기가 장엄하게 파도쳤고 8명의 건장한 사내들은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채 낙엽처럼 저 멀리 날아가 떨어졌다.주변의 구경꾼들의 머리위를 날아 족히 이 삼십 미터 밖으로 내팽개쳐져 벽에 충돌했다. 손에 쥐고 있던 막대기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8명의 보디가드들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꿀꺽!”침을 삼키는 소리!그 시각 막 주먹을 휘두르려던 오정형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고개를 뻣뻣하게 돌린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보디가드들 때문에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방금,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이 8명의 보디가드들은 모두 진씨 가문에서 높은 보수로 고용한 싸움꾼들인데 주먹 한 번 날려보지 못하고 염구준에게 맥없이 당할 줄이야!‘염구준... 무림 고수인가? 아니면 단진 무성이라도 되나?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가 있지? 인간의 경지가 아니야!’“건방 떨지 마!”충격받은 오정형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고 이윽고 진서호의 옆으로 슬금슬금 붙으며 바르르 떨기까지 했다.“당신이 아무리 강하고 혼자서 8명을 상대한다고 해도 백 명, 800명은 상대할 수 없잖아?!”“두 주먹은 4손을 감당할 수 없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오늘 당신이 도련님을 때린 것은 진씨 가문 전체를 적으로 만든 거야! 당신이 단진 무성이라고 해도 진씨 가문에 걸리면 먼지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는 거야
“도련님, 아, 아무도 없어요.”그 시각, 염구준은 손가을과 함께 이미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오정형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진서호의 옆으로 다가갔다.“염구준이 너무 강하니 우리는 조금 참아야 할 것 같네요. 잘못 건드려서 더 큰 화를 부를까 두렵...”해외 진씨 가문이 뿌리가 깊고 화련상조회의 핵심 족장인데 절대 이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진서호의 체면이 구겨져선 안되었다!“오정형!”진서호는 텅 빈 파티장 입구를 노려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잘 들어! 한 글자 한 글자 빠짐없이 똑똑히 들어!”“오늘 이 일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든지 간에 반드시 손씨 그룹을 평정하고 염구준과 손가을에게 본때를 보여줘! 오늘 그들이 한 짓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고 말 거야!”거칠게 포효하는 그는 마치 야수 같았다.“그게...”놀란 오정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눈알을 굴리더니 허리를 굽히고 진서호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저에게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금오타주의 왕종서가 염구준과 돈독한 사이라고 들었어요.”“만약 도련님이 동의한다면 한번...”불끈!그때 갑자기 주먹을 세게 쥔 진서호는 오정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리쳤다.“방법이 있으면 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움직여!”“그리고 명심해!”“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진서호가 오정형에 화를 내고 있는 동안 염구준과 손가을은 이미 호텔을 빠져나왔다.깍지를 끼고 나란히 걷고 있는 두 사람은 파티에서 있은 일들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었다.“불쾌한 모양이군... 좋아.”동일한 호텔에서 앨리스가 창문 앞에 서서 익숙한 뒷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식 올라갔다.“진서호가 진짜 염 선생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군. 해외 진씨 가문. 허허. 그들은 아직 그 집 도련님이 어떤 무서운 존재를 건드렸는지 모르고 있겠지...”그녀의 뒤에 엘 가
손씨 그룹을 감시한다고? 멍청한 것!“누가 그들을 감시하래? 진씨 가문을 감시하라는 거잖아!”앨리스는 화나면서도 너무 웃겼다. 그녀는 아니꼽게 흘겨보며 말했다.“진서호는 복수심에 다시 움직일 것이고 그러면 염 선생은 완전히 화가 날 거야.”“얼마 못 가 진씨 가문은 나락 가고 우리 엘 가문이 최대 수혜자가 될 거야.”“이제 알겠어?”‘아가씨는 염 선생의 힘을 빌어 진씨 가문이라는 골칫덩어리를 해결하고 화련상조회에서의 절대적 발언권을 가지려는 거였어.’“제가 어리석었어요. 아가씨는 정말 대단해요!”내심 감탄하던 카이는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재빨리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그리고 진씨 가문에 24시간 감시를 붙여 동태를 살피게 했다.카이가 돌아간 후...“염구준...”앨리스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염구준과 손가을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염구준, 내가 당신을 이용해 진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을 눈치챘죠?하지만 알면서도 들추어내지 않았고 책임을 묻지도 않네요. 그렇다면...당신의 마음속에 내 자리가 있다는 거 맞죠?무조건이야!’...“앨리스는 아주 똑똑한 여자야.”봉황국에서 빌린 벤틀리를 직접 운전하고 있는 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조수석에 앉은 손가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화련상조회를 새로 갈아엎으려 하고 있고 우리 힘을 빌려 진씨 가문을 없애고 싶어 해.”“계산기를 아주 훌륭하게 두드렸어.”손가을은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도 이제야 깨달은 듯했다.‘그럼, 오늘 파티에서 벌어진 모든 것은 앨리스가 일부러 연출한 거라고?하지만... 구준 씨가 눈치챘으면서 왜 진서호에 손찌검을 해서 앨리스가 누워서 떡을 먹게 내버려둔 거지? 이건 구준 씨의 스타일이 아니야!’“화련상조회에는 선과 악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용하국의 해외 기업들의 성장에 아주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어.”왼손으로 핸들을 잡은 염구준은 오른 손으로 손가을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앨리스는 이점을 잘 알고 있지만
그때 그는 갑자기 눈썹을 치켜올렸다.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린 것이다.“왕종서?”염구준은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며 다른 한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무슨 일이에요?”전화 저편에서는 왕종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염 선생, 용서해 줘요. 내가 무얼 또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만약 내가 염 선생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부디 나를 꾸짖어요... 내 딸, 왕서희. 그 애는 아무 잘못 없어요!”‘왕종서의 딸, 왕서희?!’“난 따님을 건드리지 않았는데요?”염구준의 눈썹이 희한한 곡선을 그렸다.“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자세히 말해봐요.”김씨 가문이 아직 몰락하기 전 삼죽문 내부에서 분쟁이 일어났고 대붕분타와 청영분타가 손을 잡고 금오분타를 쳐 일이 커졌다. 그 당시 염구준이 뒤에서 손을 써서 왕서희를 납치해 제호 카지노에 데려갔고 그렇게 삼대 분타의 갈등에 완전히 불을 붙였다.‘서희가 또다시 납치된 것이 염 선생과는 상과없다고?’하긴 염구준의 실력에 비해 삼죽문은 너무 보잘것없고 쉽게 해결할 수 있어서 거창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염 선생도 굳이 날 속을 필요는 없는데... 그럼 염 선생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이죠?”통화 속 왕종서의 목소리가 점점 더 떨렸다.“하지만 서희 곁에 있던 부하 말로는 검정색 옷차림의 남자가 염 씨라고 당당하게 말했다는데....”그때 갑자기 전화 저편의 목소리가 달라졌다.“누명을 씌운 거네요! 일부러 그럴듯하게 꾸며 삼죽문과 염 선생을 적으로 만들려는 거예요!”봉황국에서 누가 감히 염구준을 사칭해 삼죽문의 딸을 납치한단 말인가!게다가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고작 30분 전에 염구준은 진서호를 건드려 진씨 가문이 대중들의 웃음거리가 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답은 이미 나온 셈이다.진서호!“봉황국에서 삼죽문의 위치라면 이렇게까지 당황할 필요는 없잖아요?”염구준은 여전히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왕종서, 그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세력들은 세라와 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스텔라성과 엮여서 믿을 수가 없었다.베르가 말한 동맹도 결국은 이익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었다.“염병할 놈!”베르는 염구준이 사라진 곳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에취!”한편, 바다의 동굴을 지나던 염구준이 재치기를 하더니 귓구멍을 파며 중얼거렸다.“또 어떤 놈이 뒤에서 나를 욕하는 거야?”그는 이미 수백 미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동굴을 살펴보았다.오래전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동굴로서 지하수도로 사용했거나 육지에서 지각이 변화하여 이곳에 가라앉을 가능성도 있었다.이제 동굴 내부에 완전히 적응되어서 속도를 낼 때가 되었다슝!위험도 없고 갈림길도 없으니 팔다리를 빨리 저으며 앞으로 전진했다.동굴 끝에 무엇이 있는지 참 기대가 되었다.그것이 고대 옥패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푸!가는 도중에 갑자기 장어 같은 바다 동물의 습격을 받았지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누가 있어.’얼마나 헤엄쳤는지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염구준은 그 사람의 생사를 알 수 없어 한 줄기 검기를 발사했다.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죽은 사람이라 생각했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잠수복을 입은 시체는 부패되지도 않고 마치 자는 것처럼 보였다.그 옆에 커다란 가방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황금, 비취. 진주 등 값나가는 보물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진짜 보물이 있었네. 고대 옥패도 있을까?”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보물이 가득한 가방은 뒤로 한 채 계속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시체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염구준은 궁금했다.왜 시체들이 하나 같이 상처도 입지 않고 평온한 표정으로 죽었는지 말이다.이상한 상황으로 하여금 점점 주변을 경계하게 만들었다.앞으로 더 나아갔을 때, 동굴은 사라지고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이곳이 바로 목적지인 것 같았다.그리고 내부를 살펴보려고 수십 발의 불꽃을 발사하던 염구준
찾겠다고 약속했던 보물이며 고대 옥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누군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소식을 전했다.“절벽 위에 동굴이 있어요!”“여기에도 있어요. 불덩어리를 던졌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요!”“동굴에서 100그람되는 금덩어리를 발견했어요!”드디어 보물이 나타났다는 말에 다들 동료를 잃은 슬픔에서 금세 벗어났다.“일단 경거망동하지 말고 우리 대책부터 세웁시다.”중요한 순간에 베르가 나서서 대국을 주재하려 했다.염구준을 고립시키고는 각 세력들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수작이었다.“부성주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합리적인 대안이라면 지시를 따를게요.”메노스가 환심을 사려고 스텔라성의 편에서 말했다.염구준의 실력이 너무 강해서 맞설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나머지 가주들은 드디어 줄을 서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알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줄을 서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 문제였다.만약 잘못 선택하면 아무런 이득은 보지 않고 끝없는 재앙만 맞이할 것이다.…그 외에 무술인들은 가주들이 중요한 일을 논의하는 것을 알고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몇몇 사람들이 토론한 결과로 대다수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할 것이다.“염 선생은 대책이 있습니까?”노신기가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를 깨고 떠보듯 물었다.지금 염구준은 혼자서도 스텔라성를 상대하기 충분했다.다들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염구준이 한 동굴 입구에 서서 말했다.“상의할 게 뭐가 있어요? 보물이 보이면 능력에 따라서 챙기면 되죠. 실력이 있으면 많이 챙기고 없으면 바닷물이나 마시다 가면 되죠.”그 말 뜻은 물질적이지만 현실적이기도 했다.지금 각 세력들이 꿍꿍이를 세우고 있으니 아무리 상의를 해도 진심이 아닐 것이다.어차피 나중에 사이가 틀어질 텐데,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염구준의 말을 들은 베르는 각 세력들의 마음이 돌아설까 봐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염구준, 지금 분열을 일으키는 거야?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어떤 무술인들은 적대 관계이고 위에서 아무런 태도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베르 일행은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침묵하고 있으니 염구준을 칭찬하는 것은 더 불가능했다.“이곳은 위험해서 항상 조심하세요. 그렇다고 매번 도와줄 수 없어요.”염구준은 무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이번만 도와줄 거라 뻔뻔하게 구는 사람이 있어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때 통신기에서 당황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저기 모래벌레 무리가 오고 있어요!”그 말에 다들 다시 안절부절했다.염구준이 재빨리 통신기에 대고 모두를 진정시켰다.“당황하지 마세요. 대부분 바닥으로 들어가고 몇 마리만 뒤를 따라왔을 겁니다.”땅으로 돌아가지 않은 모래벌레들은 전부 그의 검에 잘렸기 때문이었다.다들 안심하고 싸울 준비를 할 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젊은이가 공을 들고 앞에 나섰다.이곳까지 오면서 나약한 실력 때문에 항상 타인의 보호를 받았는데, 왜 이제야 나서는지 다들 알지 못했다.“썩을 놈의 벌레야! 첨단 과학기술의 위력을 보여 줄게!”젊은이가 건방지게 말하며 손에 든 공을 힘껏 던져버렸다.“안 돼!”메노스가 나서서 말렸지만 공을 이미 던져서 늦어버렸다.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방어!”염구준이 고함을 지르며 기운으로 호체 기운을 끌어냈다.반보천인인 염구준마저 긴장하게 만들다니, 모두 젊은이가 던진 공은 틀림없이 대단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펑!공이 수십 미터 떨어진 곳으로 흘러서 올라간 순간,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마침 달려오는 모래벌레들을 순식간에 폭발시켰다.물속에서도 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다니, 보기만 해도 감탄이 흘렀다.“악!”그런데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물속에서 퍼지더니 사람들의 몸에 부딪치며 오장육부에 침투되었다.순식간에 거대한 생물체를 몇 마리나 제거했으니 사람에 미치는 영향도 치명적이었다.실력이 약한 무술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로 죽었다.퍽!가장 먼저 공격받은 젊은이는 충격에 한참이나
“알겠습니다.”“네.”두 사람은 대답하자마자 각자 맡은 20명이 넘는 부하들을 이끌고 심해 모래벌레가 드문 변두리 지역으로 향했다.실력이 뛰어난 무술인 두 명이 앞장서서 길을 터주고 있으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로서 부하들의 사기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그 장면을 본 남은 세력들도 벗어날 방법을 생각했는지 부하들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살고 싶으면 빨리 천기문의 뒤를 따라가!”지금 염구준이 뒤를 맡고 있었기에 그들도 벗어나기 훨씬 수월했다.베르가 떠날 때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염구준의 뒤를 노려보면서 저렇게 싸우다 콱 죽으라고 저주까지 했다.결국은 살려고 바삐 피신하느라 누구도 염구준을 도와주지 않았다.혼자 남은 그는 결국 심해의 모래벌레에게 포위되었다.“에휴, 저럴 줄 알았어. 그동안 도와준 걸 봐서라도 우리도 도와줍시다.”염구준은 자신이 한 결정에 후회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러 벌레를 살해했다.각 세력의 무술인들이 이미 멀리 떨어졌으니 지금은 이 무리를 뚫고 나가야 했다.촤아악!순식간에 수많은 검기가 주변에 발사하며 바다 밑을 들쑤시는 바람에 모래와 진흙이 시야를 가렸다.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덩치가 큰 물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것이었다.아무리 바다가 모래벌레의 구역이라 해도 염구준의 검을 막지 못했다.검망이 닿는 곳은 그들 시체로 널렸다.염구준이 뛰쳐나오려고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을 때 도망친 각 세력들은 균열 변두리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염 선생이 우리를 위해 혼자 희생하는데 우리도 소수 정예병을 조직해서 도와줍시다!”그레이가 통신기에 대호 한마디 제안했다.흔쾌히 나설 사람은 없겠지만 일단 말은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하, 대단한 것처럼 건방지게 굴더니, 저런 놈은 죽어도 싸.”“그러게요. 저 악마의 생사는 우리랑 상관없어요.”베르와 세라가 시큰둥하게 자신들의 태도를 표명했다.“당신들…”그레이가 나서서 비판하려고 할 때 그들과 싸워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더는 말을 잇지 않
염구준이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베르는 당황했다.이제 손에 무기도 없어서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다.“멈춰!”“당장 공격을 멈춰!”“부성주님, 조심하세요!”그 장면을 보던 반보천인 세 명은 막을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바로 그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염구준은 공격을 멈추고 지하를 내려다보았다.푸!두 사람 사이에 있는 두터운 진흙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모래를 사방에 뿌리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염구준이 재빨리 진흙의 가운데를 잘라버리자 생물체가 죽었는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마침 검기도 기운을 소진하여 공격을 멈추고 돌아서서 살펴보았다.“젠장, 그냥 지하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죽으러 나왔어?”염구준이 불청객에게 짜증을 부렸다.만약 생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검에 죽을 사람은 베르였다.진흙과 모래가 가라앉자 다들 생물의 정체를 주시했다.굵기가 2미터나 되고 꼭대기에 날카로운 이빨이 수두룩하게 생긴 심해의 모래벌레였다.이 벌레는 성체가 되면 길이가 30미터에 달하고 풍부한 광물을 함유한 화산암을 먹고 살기에 이 구역에서 텃세가 특히 강했다.그리고 공격성은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방어해! 이것들이 떼로 공격할 거야!”염구준은 통신기에 주의를 주고 잠시 베르를 살해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위험한 상황에 닥쳤으니 자기들끼리 싸운다면 사기를 떨어트리기 때문이었다.푸푸!말이 채 끝나기 전에 수많은 모래벌레들이 땅속에서 나와 무차별한 공격을 퍼부었다.일반 무술인이 한 입에 먹힌다면 바로 두 동강이 났다.반보천인 무술인들은 잠수 장비가 망가지면 심해의 수압을 견뎌야 하기에 역시 방심할 수 없었다.그러니 아무도 죽음을 무릅쓰고 공격하지 않았다.심해 모래벌레들이 신출귀몰하며 공격하자, 다들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했다.그들에 비해 염구준은 다가오는 놈들을 가볍게 잘라냈다.이 벌레들은 사납지 않은데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올 때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염구준은 감지
싸움은 잠시 한 단락 끝났다.베르가 씩씩거리며 통신기에 대고 고막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염구준, 왜 우릴 도와주지 않아?!”“당신들도 날 도와주지 않았잖아요.”염구준은 어처구니없는 가스라이팅을 무시하고 반문했다.베르는 이런 말로서 염구준을 각 세력의 반대편에 세워 고립시키려는 수작이었다.이제 막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임시 사령관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위세를 떨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웃기지 마. 우리는 반보천인 무술인이라 다른 무술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그런데 넌 한심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베르는 정의로운 척 그의 영혼까지 고문하며 계속 나무랐다.눈치가 없는 무술인들은 정말 베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 방금 수십 명이 넘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는데도 당신은 구하러 가지 않고 도망가느라 바쁘던데요? 그 말을 하고도 양심에 찔리지 않습니까?”염구준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이기적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또 염구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다.“흥, 따박따박 말대꾸는. 누가 너 같은 놈을 낳았는지 그 어미가 궁금하다.”베르는 솔선수범하지 않으면서 말로도 밀리게 되자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했다.“죽고 싶어?”그러자 염구준이 버럭 화를 내며 베르에게 검을 겨주었다.상대방이 시비를 건다면 원하는 대로 한바탕 싸워줄 기세였다.“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베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커다란 방패를 들고 맞섰다.이번 행차에 스텔라성에서 실력이 있는 반보천인 네 명을 파견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쿵!염구준의 검이 방패에 닿은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며 베르가 뒤로 몇 발치 물러갔다.“물에서 방패를 쓰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군.”물속에서 방패의 부력이 커서 오히려 싸움에 방해가 되었다.그는 계속 검으로 공격하며 가볍게 제압했고, 뒤로
그 생물의 정체는 대왕 오징어였다.이 생물은 빛을 두려워해서 항상 심연에 숨어 있기에 과학자들은 파도에 밀려온 시체들만 주워서 연구했었다.대왕 오징어는 가장 긴 것은 40미터 이상에 달했다.염구준은 지금 상황을 보고 속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젠장, 오징어 소굴을 건드렸나?”심지어 그중에서 덩치가 큰 오징어는 전신 경지에 도달했다.마침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와서 다행이지, 염구준이 혼자 싸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염 선생님, 이제 어떡해요?”통신기에서 초조한 노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그 말 뜻은 그가 나서서 천기문의 부하들을 지켜달라는 의미였다.솔직히 그들 실력으로 이렇게 많은 대왕 오징어를 상대하기 버거웠다.“살아남아서 바다 밑 끝까지 오세요.”염구준은 한마디만 남기고 검을 휘두르며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지금은 사방이 어두워서 대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모두 자원해서 온 거라 그들을 책임질 의무가 없었다.“다들 최선을 다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자!”노신기는 목숨을 걸 각오로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순식간에 각 세력은 대왕 오징어와 무차별적인 싸움을 벌였다.하지만 캄캄한 물속은 대왕 오징어들에게 유리한 곳이라 인간들은 1대1 싸움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참담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위기가 닥치자 베르가 긴급 공공 통신 채널을 열고 이런 제안을 했다.“이러다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 협력하여 살길을 열어야 합니다. 바다 밑에 도착하면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겁니다.”솔직히 베르도 염구준처럼 대놓고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런 실력이 되지 못했다.“찬성합니다.”“협공합시다!”각자 싸우다가 자칫하면 전멸할 수 있으니 다른 세력들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반보천인이 앞장서고 전신 경지, 전신지상 무술인이 그 다음, 나머지는 뒤를 따라갑니다!”베르는 정예병을 살리고 나머지는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생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공격합시다!”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슬픔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염구준이 두터운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간밤에 가볍게 생물을 절단하면서 그의 단전은 이미 기운으로 꽉 찼다.“염 선생이 바다에 들어갔어요.”모든 사람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으니 작은 동작이라도 이내 알아챘다.그가 갑작스럽게 뛰어드는 바람에 노신기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대체 왜 저러는 거야?”“내가 앞장 설게요. 촉각이 있는 생물일 뿐, 두렵지 않습니다.”일부 반보천인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염구준의 손에 완벽한 해도가 있으니 그가 정보를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래서 먼저 보물을 찾아낼까 봐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지만 솔직히 고대 옥패를 노리고 왔다.일단 옥패에 있는 무공을 연마하면 자신의 실력을 제고할 수 있으니 나중에 재물을 손에 넣어도 늦지 않거니와 그때는 더 쉬울 거라 생각했다.염구준은 바다 밑에 있는 균열을 향해 가다가 가끔씩 방향을 조절했다.아직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가장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사용했다.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점점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염구준은 길이가 석 자가 되는 청봉을 잡고는 언제든 적을 무찌를 준비를 했다.방금 잘린 촉각의 길이를 볼 때, 본체에 비해 너무 짧아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만약 덩치가 어마어마한 팔조괴물이라면 아직도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게 틀림없다.촤아아! 촤아아!그때 물살이 바뀌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더니 수백 개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각 세력의 정예병이 움직인 것이다.어떤 무술인은 일정한 거리에 도착한 후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속도로 염구준의 뒤를 따랐다.그가 앞장서서 길을 터달라는 뜻이었다.염구준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아래 균열이 빨아들이는 대로 끌려갔다.‘얼마든지 따라와 봐.’지금 상황으로 말하자면 누가 누구의 총받이가 될지
선박 위의 사람들이 절박하게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자 각 세력들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분위기를 보아 곧 위험이 닥칠 것 같았다.촤아아악!“엄청난 것이 몰려오고 있어! 빨리 위로 올라가!”나중에 물에 들어간 무술인들이 제일 먼저 해수면으로 올라와 보고했다.이어서 대다수 무술인들은 통신기에 비명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각 세력이 어쩔 바를 몰라 혼란에 빠졌을 때, 노신기는 염구준의 옆얼굴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그의 말이 옳았다.“다들 맞서서 싸웁시다!”염구준은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우렁차게 소리쳤다.그게 무엇이든 이미 상대방을 건드린 이상 맞서서 싸워야 했다.정신을 차린 각 세력들은 갑자기 조상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촤아아!다시 몇몇 사람이 수면위로 올라오더니 놀라운 속도로 선박을 행해 헤엄쳤다.“저게 다 뭐야?”누군가 겁에 질려 비명소리를 질렀다.“나도 몰… 악!”같이 헤엄치던 일행이 말하다 바다 밑에 있는 물건에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그리고 밧줄처럼 생긴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선박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악!”“살려줘!”순식간에 비명소리와 경악 소리가 섞여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에 다들 지레 겁을 먹었다.윙!그때 누군가 열 줄기 검기를 발사해 밧줄처럼 생긴 생물을 잘라버렸다.“저건 또 뭐야? 엄청 단단하네.”제일 처음으로 공격한 사람은 역시 염구준이었다.“끼익!”바다 밑에서 공격을 당한 생물은 날카로운 이명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왔다.생각보다 쉽게 잘리자 각 세력들은 용기를 내서 공격을 퍼부었다.“별거 아니네. 단번에 잘려지잖아.”자신감이 생긴 그들은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본래 각 세력의 실력으로 쉽게 생물을 잘라낼 수 있는데, 이 생물이 모두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습격할까 봐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물론 염구준도 모든 사람을 책임질 의무가 없으니 주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