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지나가자, 천면현은 감탄하며 염구준을 바라봤다. “하하, 염 선생은 참 신기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정말 저 금지 구역에서 살아 돌아올 줄이야, 정말 놀랍네요!”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지금까지 저기에 발을 들여놓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염구준이 처음이었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염구준은 그의 반응에도 매우 덤덤했다. 오히려 새벽이슬이 담긴 도자기 용기를 꺼내며 천면현을 재촉했다.“물건을 가져왔으니, 얼른 전괴 치료하는 약을 만들어주세요.”“그건….”천면현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설마 또 뭐 있습니까?”그의 반응을 본 염구준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물었다.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얘기해서 이 고생을 하며 가지고 왔는데, 이제 와서 또 머뭇거리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해 마세요. 필요한 재료는 이게 다인 건 맞습니다. 제조법도 저한테 있고요. 하지만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선 이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합니다.”염구준의 표정에 천면현이 얼른 해명을 덧붙였다. “그럼 빨리 움직이시죠. 여기서 시간 끌지 마시고.”염구준은 얼른 이 일을 해결하고 또다른 전설속 생물인 머리 두 개짜리 뱀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호숫가에 있는 시장으로 행했다. “어이, 아줌마. 얼른 이 물건들 치우고 썩 꺼지지 못해?”볶음밥 노점 앞, 어디서 공연이라도 한 듯 화려한 머리와 화장을 한, 충격적인 모습을 가진 남자 세명이 다가왔다. “총각들, 얌전히 장사하고 있는 사람한테 왜 이래? 내가 언제 그쪽한테 피해를 끼쳤어?”노점 주인인 아주머니가 계속해서 볶음밥을 만들어내며 대꾸했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연약한 아주머니였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남자들에게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피해? 지금 말 다 했어?”“사람이 친절하게 구니, 호구로 아네? 어이, 아줌마! 가게 완전히 접고 싶어? 험하게 다뤄줘?”세명 중 빨간 머리를 한 남자가 앞으로 나오더니, 위협적으로 노점을 쾅쾅 내리치며 말했다. 만약
“뭘 봐? 눈알 뽑아버리기 전에 꺼져!”빨강머리 남자가 주변 사람들을 쏘아보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돌리며 자기들끼리 수근거렸다. 이들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가자, 가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보기에 저래도 뒷배가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는 상대가 안 돼.”“가자, 괜히 끼어들었다가 우리만 낭패 볼 수 있어.”빨강 머리 남자의 위협에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 남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자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훤칠하게 생긴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혹시 이나라 님 맞으신가요?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아주머니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주름진 얼굴로 대답했다. “말씀하세요. 노족장님과 오신 분인데, 무엇이든 도와드릴게요.”아주머니의 대답을 들은 염구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호의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면현과 대화할 때 무뚝뚝했던 말투는 다른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염구준이 공손히 손을 모으며 예의를 표했다.“똥폼 잡기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 이 거야?”빨강 머리 남자가 비꼬며 말했다. 여긴 천면 가문이 별로 활동하지 않는 곳이라, 이들은 천면현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음 바꾸기 전에 꺼져.”염구준이 한숨을 내쉬며 귀찮은 듯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벌레보다 하찮은 놈 때문에 괜히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감히…!”빨강 머리 남자가 막 말을 꺼내려던 찰나, 갑자기 고개가 돌아가며 강한 고통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것이다. 그는 코와 입으로 피를 뿜으며 옆으로 날아갔다. 정말 반응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빨강 머리 남자가 나가 떨어지자, 옆에 있던 두 남자가 허겁지겁 부축하려 다가왔다. 하지만 이들도 눈 깜빡할
“이나라, 나 들어간다!”천면현이 큰소리치며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끼익, 나무 문이 열렸다 닫혔다. 곧이어 두 사람의 친밀한 대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나라, 이게 얼마 만이야? 미모는 예전하구나.”“천면현,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썩 꺼져!”두 사람은 평범한 관계가 아닌 것 같았다. 과연 천면도를 나올 때 천면휘가 함께 나오지 못하도록 말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염구준과는 상관없는 일, 그는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약이 완성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밤이 되었고, 주변에 있던 불들이 하나둘 꺼지면서 고요함이 찾아왔다. 쓱쓱, 이때 어디선가 수상한 움직임 소리가 들려왔다. 염구준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정말 쥐가 있었네?”멀지 않은 곳에 검은 그림자 열댓 개가 스르륵하고 나타났다.“대장, 정문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오늘도 움직입니까?”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인물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물었다. 대장은 잠시 고민에 빠졌으나, 이내 결심한 듯 단호히 말했다.“더는 못 미뤄. 이미 상부에서 몇 번 독촉장이 내려왔어. 오늘 밤,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다. 저 남자를 밖으로 유인해.”그는 매우 신중했다. 오늘은 절대로 예상밖의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날이었다. 그러자 한 남자가 기척을 대놓고 드러낸 채 염구준을 향해 다가갔다. 유인하려면 일단 들켜야 했기 때문이다. ‘재밌군!’나타난 것은 열댓 명인데, 혼자만 인기척을 드러냈다? 뻔한 의도에 염구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누구야?”그는 일단 상대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앗, 이런! 들켰어!”그러자 남자가 과장되게 놀라며 어딘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편, 염구준은 그 모습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연기를 할 거면 제대로 할 것이지, 발연기도 이런 발연기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빠르게 어둠속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대장은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일이 생각보다 순조로웠기
하지만 염구준 앞에선 이들은 그저 약자에 불과했다. 열댓 명이나 되는 검은 인영들이 동시에 땅을 박차고 지붕 위에 있는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약해 빠진 것들!”염구준이 전혀 긴장감이 없는 목소리로 코웃음 쳤다. 그의 몸이 번쩍하고 사라졌다가 나타난 순간, 뛰어오른 검은 인영들 모두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대장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너, 너 도대체 뭐야?”“그러는 넌, 천무산 쪽 사람인가?”염구준은 이들의 움직임 속에서 단번에 정체를 알아차렸다. “맞아. 난 천무산 소속이다. 그러니 천무산 이름을 봐서라도 살려다오!”자신이 앞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대장이 다짜고짜 염구준에게 빌었다. “천무산 사람이라면, 더더욱 살아서 나갈 수 없지.”염구준이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며 단번에 대장의 목을 따버렸다. 천무산 사람을 볼 때마다 그는 독에 당한 딸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언젠가 반드시 천무산 전체를 불살라 버리리라! 하지만 일단 지금 당장 급한 건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전설의 뱀을 찾는 것이었다. 적들을 모두 처치하고 나니, 밤은 다시 고요해졌다. 염구준은 날이 밝아질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조용히 집을 지켰다. 이때 공방의 문이 열리며 아주머니와 함께 천면현이 나왔다. 다들 모두 굉장히 지친 얼굴이었다.“여기, 원하던 물건입니다. 혹시나 해서 두 개 만들었지만, 하나만 복용해도 충분히 전괴를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아주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약이 담긴 나무 상자를 염구준에게 건넸다.“감사합니다.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뭐 필요하신 거 없나요?”염구준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다. “괜찮습니다. 이 일에 대한 대가는 천면현한테 받을 거예요.”아주머니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염구준의 시선이 천면현에게 향했다. 노인이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전괴의 치료약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큰 비용이 들었을 텐데, 아주머니의 보상까지 직접 하겠다고 하다니
삼인조는 여전히 호숫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땀 범벅에 핼쑥하진 얼굴, 하루 밤 사이에 족히 십년은 늙은 듯한 얼굴이었다. 하긴 밤새도록 감시를 받으며 춤을 췄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수안아, 가자!”염구준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호숫가를 향해 외쳤다. “네!”수안이 대답하며 순식간에 염구준 옆으로 다가왔다. “오라버니, 그런데 저 셋은 그냥 저렇게 둘 거예요?”그러자 염구준이 무심한 얼굴로 삼인조를 바라보며 답했다.“내버려 둬. 어차피 쓰레기들이라 함부로 못해.”이 정도로 혼났는데도 불구하고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 이나라를 건드리게 된다면, 그때는 염구준이 아니라 천면현에게 호되게 당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천면현와 이나라의 분위기를 봐서, 분명 멀지 않은 시기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았다.사랑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젊은 시절은 지났지만 이제라도 자기 짝을 만난다면 그것도 복이었다.두 사람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삼인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드디어 해방이었다. 한편, 보채성.천무산을 가기 위해선 보채성을 반드시 지나야 했다. 그런데 보채성에 발을 들인 순간, 염구준은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오라버니, 피 냄새가 나요. 좀 전에 흘린 피 같은데요?”수안이 살짝 인상을 쓰며 코를 움찔거렸다. 보채성에 큰 전투가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꽤 많은 사상자가 나온듯했다.“그러게, 피 냄새가 나네.”염구준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보채성에 큰 전투가 벌어졌다는 건, 대염무관에도 뭔 일이 일어났다는 걸 뜻했다. “가자!”염구준이 발에 힘을 주며 대염무관을 향해 박차고 나갔다. 대염무관과 전갈문은 모두 무리안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두 세력은 무리안에서 염구준의 눈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곧이어 두 사람은 대염무관에 도착했다. 피가 낭자한 땅, 재앙이 휩쓸고 간 모습이 보였다.염구준은 곧바로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
이 익숙한 기운은? 그 분이다!제욱의 눈에 다시 희망이 차올랐다.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진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역시나 그곳엔 염구준이 있었다.“적이다! 방어 진형으로 바꿔!”천무산 무리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자 약 스무 명이 되는 인원 모두가 한곳으로 모여들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무리안에서 오래 살아남은 것만큼, 이들의 결단력과 결속력이 대단했다.“또 꼴도 보기 싫은 천무산이라니. 그냥 오늘 죽는 날이라 생각해.”염구준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염 선생님!”제욱이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구세주가 왔다!“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늦어서 죄송해요.”염구준이 제욱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넌 뭐야? 대염무관이랑 어떤 관계야?”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염구준을 경계하며 물었다.“너희들 모두 천무산 소속 맞지?”어차피 곧 죽을 놈들, 알려줄 이유가 없었다.“흥! 우리의 소속을 알고도 끼어들다니!”대장이 비웃으며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 천무산은 무리안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했다.“그렇다면 봐줄 이유가 없겠군!”상대의 신원이 확실해지자, 염구준은 망설임없이 움직였다.“방어.”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시작된 맹렬한 공격, 이들의 진형은 염구준에 의해 단번에 무너졌다. 그 모습을 보고 제욱은 경악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인원을 이토록 쉽게 밀어붙이다니!“넌, 악마야!”대장이 피를 토하며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염구준을 바라봤다.염구준은 특별한 기술 없이, 단순 맨몸 공격으로 절반 이상의 인력을 해치웠다. 천무산 쪽 사람들에겐 염구준은 인간이 아니라 핵폭탄 그 자체였다.“내가 인간이든, 악마든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너희들이 오늘 모두 이곳에서 죽게 될 거란 거야.”이 말을 끝으로 염구준은 다시 남은 인원들을 향해 움직였다.이제 천무산과는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었다. 한쪽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남은 한쪽은
”살고 싶다면 염구준에 대해 아는 것 모두 불어라. 쓸만한 정보가 있다면 살려주겠다.”그제야 대염무관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잡혀 왔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하! 꿈 깨!”제정도가 코웃음 치며 입을 꽉 다물었다. 은인을 배신하라니,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오? 입이 꽤 무겁구나?”광사가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던져버린 뒤, 선글라스를 내리며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결코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고문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특기는 남의 팔다리 힘줄을 끊는 것이었다.“반 시간 정도 남았다. 그동안 실컷 여유를 즐겨라. 곧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광사가 대염무관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익! 결투다, 이 개 자식아!”제정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몸에서 남은 전신 영역을 끌어올리며 광사를 향해 돌진했다. 비록 중상 입은 상태였지만, 남은 사람이라도 지켜야만 했다. “쯧! 번거롭게!”하지만 광사는 너무나도 쉽게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제정도는 지금 서심고에 당한 상태였다. 전투력이 평소의 십 프로 밖에 낼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의리를 지키려 해? 너희들이 처참하게 당할 때, 염구준은 나타나지도 않았잖아?”광사가 사람들의 심리를 흔들기 위해 이간질하기 시작했다. “나 여기 있어!”이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흩날리는 먼지속에서 한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염구준이었다!염구준은 누군가가 몰래 뒤에서 자신의 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염 선생님, 어떻게 여기….”구세주를 본 제정도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거기까지.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만 운다는 말이 있죠. 눈물 거두세요.”염구준이 손을 들어 제정도를 저지시켰다. 그리고 남은 대염무관 사람들을 세어 보았다. 제욱을 제외하곤 이곳에 납치당한 사람이 살아남은 인원의 전부라면, 절반이나 죽임을 당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안타까움이 치
염구준은 광사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런 명령을 내렸는지 알아차렸지만, 굳이 막으려 들지 않고 수안을 불렀다. “먼저 사람들을 구한 다음에, 저 쓰레기들을 치우자!”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천무산 사람들이 빠르게 쓰러져 갔다. “아악!”끊이지 않는 비명, 살아남은 이들은 완전히 전투 의욕을 잃은 채 산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쫓아갈까요?”수안이 염구준에게 다가와 물었다.“쫓아가. 그리고 전부 다 죽여버려!”천무산 사람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한 놈도 살려 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도망친 인원들도 차례차례 죽음을 맞이했다. 제정도도 둘을 돕고 싶었지만, 서심고에 당해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숲은 다시 고요함을 찾아갔고, 천무산 사람들은 광사를 제외하고 모두 전멸당했다. 그는 소란스러운 틈을 타, 몰래 한쪽 구덩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부하들에겐 맞서 싸우라고 지시했지만, 이미 실력차이를 실감한 터라 정면승부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광사는 부디 들키지 않기를 기도하며 숨죽였다. “넌 또 뭐야? 거북이야? 숨는다고 내가 못 찾아낼 줄 알아?”이때, 위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사가 가장 두려워했던 염구준이 나타났다. 이 따위 야비하고 얕은 수단이 통할 거라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맞설 수밖에! 광사는 공격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끌어냈다. 그런데 두려움에 자신이 지금 구덩이 속이라는 것을 잊고 영역을 펼친 탓에 제대로 된 실력을 펼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이 펼친 공격에 스스로 타격을 입는 아주 치명적이고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허허, 이런 멍청한 놈이….”그 모습을 보고 염구준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자기 전신 영역에 자기가 당하는 모습은 그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젠장!”입안 가득 흑먼지를 먹은 광사가 침을 뱉으며 다시 염구준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공격이라 허점이 많이 보였다
“서커스단 일 때문이야?”손가을이 눈살을 찌푸렸다.청해에서 최고 여성 사업가 신분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서커스단의 사건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맞아. 서커스단과 연관이 있어. 제때에 처리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거야.”염구준이 인정했다.“그럼 빨리 다녀와. 난 희주를 지키면서 집에서 기다릴게.”손가을은 서운했지만 억지로 웃었다.남편이 하려는 일에 그만큼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아내로서 가정과 손씨 그룹을 지켜서 남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지지나 다름없었다.하지만 다른 방면으로 말하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가을아, 넌 정말 최고야.”염구준은 다가가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손가을은 마음이 너그러워서 염구준은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다들 보고 있어. 집에 가서 안아줘.”손가을이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누가 보는데?”염구준이 뒤돌아보았더니 들어올 때 문을 닫지 않아서 직원들이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다들 깨알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흠흠.”염구준이 헛기침을 하자 다들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눈길을 돌려버렸다.문을 닫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았다.염구준은 아내를 풀어주고 또 구경하러 몰려들까 봐 사무실 문을 닫으러 갔다.손가을은 이어서 업무를 보고 염구준은 옆에서 가끔 서류를 건네며 퇴근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부부는 학교에 들러 딸을 데리고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다.이튿날 아침, 염구준은 미리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귀울진으로 향했다.빨리 처리하고 일찍 돌아올 생각이었다.용하와 접한 국경 도로에 소 수레 한 대가 여유 있게 가고 있다.수레에 앉은 사람이 바로 염구준이었다.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어 도로는커녕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조차 없었다.그는 안내원을 찾아 원시적인 교통 수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길에서 노인이 이곳의 풍습을 소개했다.하지만 진씨 가문을 들어본
망기술의 역할을 알고 있는 염구준은 문제점을 말했다.“진씨 가문은 어디 있어? 거록이 혹시 거기에 있나?”고대영은 숨기지 않고 염구준의 질문에 바로 답했다.“진씨 가문은 해외로 쫓겨나서 국경에 있는 귀울진에 있어. 거록이 거기 있는지는 나도 몰라.”염구준은 용하의 은세가문이 왜 해외로 쫓겨났는지 알 수 없었다.이런 상황은 정말 흔치 않았다.“수고했어. 약속대로 내가 수고비는 보내줄게.”염구준이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그가 원하는 정보는 이것밖에 없었다.“돈은 됐어. 우리 고씨 가문의 외가 가주 자리가…”고대영은 돈을 받는 대신 다른 말을 하려고 했는데 염구준이 끊어버렸다.“됐어. 이따가 계좌로 이체할게. 시간 되면 청해에 놀러와.”염구준은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끊어버렸다.계속 통화를 했다면 고대영이 또 이 말을 꺼낼 게 뻔했다.“모두 같은 핏줄이니 네가 고씨 외가의 가주가 되어라.”비록 염구준의 생모 고유란이 고씨 외가의 가주였지만 지금 그와 관련이 없으니 이어받을 의무도 없었다.지금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염구준은 집으로 나가 주차장으로 갔다.손가을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귀울진에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주자창에 갔을 때 살기를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숨어 있지 말고 당장 나와.”아직 싸우기 전에 살기부터 흘리다니 정말 모자란 놈들이었다.스스슥!갑자기 나무 위, 관목 안, 하수도 뚜껑 아래서 그림자들이 뛰쳐나왔다.모두 복면을 써서 진짜 얼굴은 볼 수 없었다.“하, 실력이 제일 강한 놈이 정진왕자라니, 죽으러 왔어?”염구준이 그들을 훑어보았다.“거록 존주께서 말씀을 전달하라 하셨다. 청해에만 있어라. 밖으로 나가면 바로 죽는다!”일행은 먼저 협박 어린 말을 전달했다.“청해에서 나가겠다면 어떡할 건데?”염구준이 껄껄 웃으면서 되물었다.“그럼 죽인다!”한 사람이 싸늘하게 말하더니 일행이 동시에 염구준을 공격했다.아마도 그의 실력을 모르는 것 같았다.촤아악!염구준이 몸을 번쩍
“필요 없어. 겁 먹고 외국에 도망친 너랑 달라. 정말 창피해. 우리 떠돌이 7인조의 명성에 먹칠했어. 염구준 따위가 감히 내 대업에 끼어들었으니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역시 자극을 받은 거록 존주는 흑풍을 경멸하면서 말했다.지금 흑풍은 그가 말한 것처럼 염구준이 무서워서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다.지난번 윤씨 가문에서 염구준과 맞붙었을 때 한 손을 잃어버려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았다.“넷째 형, 잘 생각해 봐. 그러다 훅 가는 수가 있어.”흑풍은 속으로 기뻤지만 겉으로 여전히 걱정하는 것처럼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늘어놓지 마. 그보다 네가 준 사술법으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냐?”지금 거록의 관심사는 염구준보다 사술법이었다.천인 경지는 꿈에서도 도달하고 싶은 것이라 매우 유혹적이었다.“물론이지. 심혈주를 만들어서 삼키면 바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흑풍은 더는 설득하지 않고 확실하게 대답했다.거록이 단호하게 나오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그렇다면 됐다. 내가 천인 경지를 돌파하면 너 대신 염구준 그놈을 죽여줄게.”거록은 자신있게 말했다.그 단계에 도달하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최고 고수로 거듭나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고마워, 형. 만약 기회가 된다면 염구준의 손에 있는 옥패 4개도 챙겨줘.”흑풍은 공수하며 인사를 올렸다.그의 목표는 지금도 옥패였으니 천인 경지에 도달하는 사술법에 관심이 없었다.어쩌면 다른 방법을 알기에 사술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걱정 마. 난 옥패에 관심이 없어. 만약 손에 넣으면 너한테 줄게.”거록도 승낙했다.옥패 8개에 심도 깊은 무학이 있어서 보물이라는 것은 다들 알지만 더 깊은 의미는 알지 못했다.“그럼 이만 끊을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흑풍은 말을 끝내고 통화를 끊어버렸다.지금 그가 있는 곳은 어두운 지하였다.그곳에 허약한 몸의 사내가 견갑골을 입고 있었다.“젠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사술법을 알려주면 날 풀어준다고 했잖아.”사내는
염구준은 초상비 일행에게 철창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물론 치료비는 모두 그가 부담할 것이다.광대와 서커스단 관련자들은 경찰에 보내서 법으로 다스리도록 안배했다.서커스단의 동물들은 청해 동물원에 보내져서 적절하게 배치했다.그 바람에 동물원에서 땡잡았다.더는 허스키를 늑대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이 호랑이로 분장할 필요도 없었다.모든 후사를 처리한 후, 염구준은 공연장에서 나와 모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그날 저녁, 염구준에게 전화가 왔었다.“염구준 씨.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서커스단은 원래 합법이었는데 단장이 살해된 후 나쁜 놈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파렴치한 짓을 했더군요.”“이들 우두머리는 코브라라 부르고 거대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유사한 패거리가 더 있는 걸로 추측합니다. 구제척인 것은 아직 자백받지 못했어요.”경찰 측에서 조사한 것을 모두 염구준에게 알려줬다.“알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염구준이 대답했다.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경찰에게 맡기면 되니 그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이어서 초상비에게서도 연락이 왔다.구출한 사람들이 모두 고비를 넘겼지만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치료비는 염구준이 모두 낼 테니 이 일에 대한 모든 권한을 초상비에게 맡겨서 처리하게끔 안배했다.심혈을 뽑으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다.아무리 치료를 해도 수명이 최소한 10년은 줄어들 것이다.떠돌이 7인조에서 하는 짓들은 어느 하나 정당한 것이 없었다.이런 독종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염구준은 거록 존주의 소식을 얻지 못했지만 다른 방면으로 단서를 찾았다.망기술이라는 독특한 방법은 용하에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는 은세가족의 윤대약, 고대영에게 연락해 단서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동시에 직접 얼음 인간 즉 봉유곡의 초상화를 그려 전신전에서 행방을 찾으라 지시했다.모든 일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거록 존주가 사람의 심혈을 뽑았던
서커스단 공연은 염구준이 사라진 후로 잠시 중단되었다.손가을은 손씨 그룹에서 절반 넘는 경호원들을 불러 수색하기 시작했다.거기에 호찬, 초상비 등 고수들도 있고 신위무관의 원종과 정경림도 있었다.이 기세로 보아 은세가문과 전쟁을 치러도 충분할 것 같았다.용필은 신혼여행을 떠나서 연락하지 않았다.“당장 사람을 풀어줘!”손가을이 언성을 높이며 모처럼 화를 냈다.평소 그녀는 성격이 털털해서 어떤 일에 부딪쳐도 화를 내지 않았다.하지만 남편이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아무리 남편의 실력이 대단해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여사님, 저희 계약서까지 작성했어요.”광대가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촤아악!“부끄럽지 않아서 이런 불법 계약서를 꺼내?”손가을은 빼앗아와서 바로 찢어버리고 바닥에 내팽개쳤다.오늘 염구준을 찾지 못한다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근데 마술사가 사라져서 저희도 찾을 수 없어요.”광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말했다.“땅을 파서라도 찾아내세요!”손가을이 뒤에 있는 경호원에게 지시했다.“아빠 예전처럼 사라지는 거예요?”깜짝 놀란 염희주가 울면서 물었다.지난 일은 어린 가슴속에 응어리가 되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팠다.이번 일로 인해 아마 평생 서커스단에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았다.“아니야. 아빠는 우리랑 숨박꼭질하는 거야.”손가을은 애써 웃으면서 딸을 진정시켰다.지시를 받은 손씨 그룹 경호원은 이미 굴착기까지 불러서 땅을 팔 기세였다.서커스 경호원들은 아무리 말려도 역부족이었다.관중들은 그 장면을 보고 혹시나 불똥이 튈까 봐 뿔뿔이 사라졌다.“가자. 대표님 화 나셨어. 보통 일이 아니야.”“손 대표님 사람이 얼마나 좋은데, 부디 남편을 찾길 바라.”“이제 보니 서커스가 문제 있네. 방금 무대에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야.”떠들썩하던 관중석은 텅텅 비어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펑!경호원이 굴착기를 작동해 땅을 파려고 할 때 굉장한 소리가 들리
“잠깐만, 당신 이름이 뭐야?”이런 실력이라면 아무리 부하들이 많아도 승산이 없었다.“염구준이다.”이름일 뿐 염구준은 솔직하게 말해주었다.그가 정체를 밝히자 코브라는 겁에 질려 목소리까지 떨렸다.속으로 망했다고 별의별 욕을 다하고 싶었다.“염 선생님, 오해입니다. 정말 죄송해요. 이제 가셔도 됩니다.”이 사람만큼은 절대 건드릴 수 없었다.“그럼 저 사람들은?”염구준이 주변 철창을 둘러보며 말했다.“그게…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해드릴게요.”코브라는 살짝 망설이다가 웃으면서 타협했다.“아니, 내 뜻을 오해했어. 내 말은 저 사람들 복수는 어떻게 갚아야지?”염구준이 엄하게 질문했다.용하에서 국민들을 해쳤으니 여기서 쉽게 끝내면 안 되었다.상대방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느낀 코브라가 나지막하게 물었다.“어떻게 하고 싶습니까?”“무슨 상황인지 전부 말하고 너희는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 그러면 살려 줄게.”염구준은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상대방은 올 게 왔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상의할 여지는 없습니까?”코브라가 질문하는 척하면서 슬그머니 기운을 움직이며 공격할 준비를 했다.“하, 저 사람들의 피를 뽑을 때 상의하고 했나?”염구준이 비웃으면서 되물었다.어떤 일은 상의할 여지가 없다.“이러나 저러나 죽게 생겼는데 한번 붙어보자.”코브라가 독하게 마음을 먹고 명령을 내렸다.스스슥!한 무리 그림자가 한 사람을 향해 전신 경지 실력을 펼치며 공격했다.그 반면, 코브라는 뒤로 물러서며 도망치려고 했다.“뭘 그렇게 급하게 도망쳐?”염구준은 몸을 번쩍 들어 앞을 가로막았다.공격하러 온 부하들은 어느새 바닥에 쓰러진 채 생사를 알 수 없었다.“겨우 이 정도로 앞길을 막다니 너무 자신만만하지 않나?”“날 죽이면 안 됩니다. 저는 거록 존주의 사람이에요.”코브라는 도망칠 수 없게 되자 뒷배를 내세웠다.“거록 존주?”염구준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머릿속에 정보를 떠올렸다.흑풍, 여우, 청목과 맞
방심했었다.우두머리는 제자리에 서서 식은땀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보스가 CCTV를 통해 지켜보고 있으니 어떤 말은 함부로 할 수 없었다.“벙어리야?”염구준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과감하게 공격했다.몇 차례 공격을 퍼부어서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했다.“잘 생각하고 말해. 한 번만 기회를 줄게.”염구준이 마지막으로 통보했다.“할 말 없어!”그드득!우두머리가 말하는 동시에 염구준은 목을 부러트렸다.그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모든 것이 순식간에 발생했다.염구준은 죽은 사람을 옆에 던지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보스는 뒤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감시실에서 마술사가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이제 보니 정보가 틀렸군. 하지만 무성의 실력이라면 통제할 수 있어.”그가 신경 쓰는 것은 염구준일 뿐 부하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마술사는 부하들을 이끌고 감시실에서 나왔다.염구준을 잡으러 가는 것이다.상대방의 실력을 파악했으니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한편, 염구준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이것은 함정이었다.“살려줘…”그가 한참 걸어갔을 때 앞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목소리를 들으니 곧 죽을 것 같았다.염구준은 걸음을 재촉하여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 희미한 불빛을 빌어 상황을 살펴보다 조금은 경악했다.이곳에 철창 10개 정도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 갇혀 있었다.남자, 여자할 것 없이 노인과 아이들도 있었다.그 사람들 상태는 몹시 허약했다.방금 관중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아마도 마술쇼를 하면서 사라진 사람들 같았다.염구준처럼 말이다.이 사람들은 가슴에 감은 붕대에 핏자국이 묻어 있고 공기에도 피비린내가 풍겼다.‘설마 심혈?’이 사람들 심장에서 피를 뽑은 것 같았다.전에 고전 서적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상대방의 목적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이런 수법은 이미 사라진 고대 사술에서만 사용했고 보통 무술인의 실력을 제고할 때 사용했다.그러나 선정된
마술사는 모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후, 갑자기 문을 열어서 상자 안을 보여줬다.사람은 사라지고 상자는 텅 비어 있었다.“아빠 사라졌나 봐요.”그 장면을 본 염희주가 얼떨떨해졌다.관중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라진 염구준을 찾았지만 나타나지 않았다.인근 도시에서 전해진 말이 진짜인 것 같았다.한편, 염구준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그곳의 불빛은 희미하고 주변은 어두컴컴했다.무대 아래였다.그는 상자에 들어가자마자 얼마되지 않아 아래로 추락하는 느낌이 들면서 무대 아래로 떨어진 것이었다.무대에 장치가 있었다. 이것이 서커스단의 속임수였다.무대가 앞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선반 위에 무대가 있고 아래는 텅 비어 있었다.서커스단에서 왜 염구준을 죽이려고 하는지 아직 이유를 찾지 못했다.“일단 지켜보자.”그는 전방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이곳에 통로는 하나였다.방음은 엄청 잘 처리되어서 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하하하.”갑자기 몸통 절반이 나타나면서 음침한 웃음소리를 냈다.도구였다.그는 힐끗 쳐다보고는 무표정으로 바로 지나갔다.기운도 없고 위기감도 없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귀신집에서 염구준 같은 손님을 만난다면 바로 문을 닫을 것이다.이어서 비슷한 상황이 나타났지만 그는 공격하지 않았다.CCTV를 통해서 그를 지켜보면 누구는 속이 바짝 탔다.이런 식으로 염구준이 공격하도록 유도해서 실력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그런데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한 팀을 데리고 내려가서 실력을 테스트해 봐.”감시실에서 마술사가 입을 열었다.“네.”옆에 있던 사람은 공수하며 대여섯 명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이 사람들은 아주 신중하게 움직였다.통로에서 한참을 걷던 염구준은 걸음을 멈추고 귀를 움직였다.‘누가 오고 있어.’발자국 소리가 아무리 조용해도 그의 예민한 귀를 피하지 못했다.그는 어떤 경지의 힘을 사용할지 고민했다.만약 제대로 싸우면 배후가 실력을 알고 도망칠 수 있으니까.스스슥!그때 몇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이 시작되었다.종목들은 정말 신나고 하나같이 감탄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었다.암퇘지가 철사슬 위로 걸어가고, 곰이 외발자전거를 타는 장면을 본 아이들이 깔깔 웃으면서 연신 박수를 쳤다.방금 일로 염구준은 자꾸 주변을 살펴보며 경계했다.여러 종목이 끝난 후, 광대 진행자가 나와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존경하는 여러분, 이어서 저희 피날레 종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활인을 할 텐데 어느 분이 게스트로 올라오시겠습니까?”그 말에 현장이 조용해지고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어떤 아이들은 자기가 나가겠다고 했지만 부모가 한사코 입을 막으면서 말렸다.“나가면 안 돼. 이 서커스단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야.”“나도 들었어요. 인근 도시에서 발생했는데 게스트가 계약서까지 작성했대요.”“무서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서커스 공연은 재미있지만 이 종목은 다들 뒤로 물러나며 지켜보기만 했다.“아빠, 내가 나가도 돼요?”그때 염희주가 말했다.“가지 마. 나중에 내가 믿을 만한 마술사를 불러서 체험하게 해 줄게.”옆에서 하는 말을 들었으니 딸을 위험하게 내보낼 수 없었다.“알았어요.”염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무룩해 있었다.곧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공연장의 불빛이 어두워지며 한 줄기 전등만 광대를 비추었다.“여러분, 제가 행운 게스트를 뽑으면 전등이 그분을 비출 겁니다. 물론 나올지 말지는 그분이 결정하면 되겠습니다.”서커스의 수법은 한번 또 한 번 곤란한 상황으로 밀어붙였다.정말 게스트로 당첨된다면 체면 때문이라도 무대에 올라갈 것이다.“감격스러운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광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전등이 현장을 누비며 빠르게 움직였다.“멈추세요!”한참 뒤, 광대의 말에 전등이 멈추었다.게스트로 염구준이 당첨되었다.이번에야말로 현장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역시 나름 계획이 있었다.염구준은 방금 몰래 감시하던 사람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고 생각했다.“축하드립니다. 무대에 올라와서 협조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