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자, 점점 마음이 조급해진 수안은 몇 번이고 돌무더기 속으로 뛰어들 뻔했다. 하지만 매번 천면현이 막아 어쩔 수 없이 호수가에서 목소리 높여 염구준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나 괜찮아!”염구준이 손을 들어올리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 다음 빠르게 다시 새벽이슬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못 됐다. 최대한 빨리 떠나야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또다시 환영이 나타나 염구준을 괴롭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를 공격하는 건 용뿐만이 아니었다. 온갖 전설적 동물, 옛날 적들, 그의 마음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환영으로 튀어나왔다. 만약 아무런 자각이 없었다면 정말 정처 없이 이 환영들에 휘둘렸을 것이다.하지만 염구준은 이것이 이미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던 터라,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쉭쉭 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손가락 세 마디 정도 되는 굵기의 뱀 두개가 화살처럼 그를 향해 쏟아져 나왔다. ‘이건 환각이 아니야!’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면서 염구준은 위협이 느껴졌다. 염구준은 망설임없이 기운을 흘려 내보내며 검은 뱀을 폭파시켰다. 터져 나오는 핏방울들을 느끼며 염구준은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이곳은 실제와 허구가 섞여 있는 공간, 점점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염구준은 주저하지 않고 현실을 자각한 순간을 이용해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도자기 용기에 빠르게 새벽 이슬을 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에 새벽이슬이 닿는 순간 그동안 겪었던 모든 환상이 사라지며 정신이 맑아졌다. 놀라운 감각에 염구준이 감탄하고 있던 순간, 갑자기 호수가 요동치며 슬슬 잠기려는 기색을 비쳤다. 물건을 얻었으니, 그는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돌무더기를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두 걸음 내딛지도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퇴로가 막혀버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수많은 뱀들이 빽빽히 돌무더기 주변을 채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쏟아져 내리
위기가 지나가자, 천면현은 감탄하며 염구준을 바라봤다. “하하, 염 선생은 참 신기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정말 저 금지 구역에서 살아 돌아올 줄이야, 정말 놀랍네요!”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지금까지 저기에 발을 들여놓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염구준이 처음이었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염구준은 그의 반응에도 매우 덤덤했다. 오히려 새벽이슬이 담긴 도자기 용기를 꺼내며 천면현을 재촉했다.“물건을 가져왔으니, 얼른 전괴 치료하는 약을 만들어주세요.”“그건….”천면현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설마 또 뭐 있습니까?”그의 반응을 본 염구준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물었다.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얘기해서 이 고생을 하며 가지고 왔는데, 이제 와서 또 머뭇거리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해 마세요. 필요한 재료는 이게 다인 건 맞습니다. 제조법도 저한테 있고요. 하지만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선 이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합니다.”염구준의 표정에 천면현이 얼른 해명을 덧붙였다. “그럼 빨리 움직이시죠. 여기서 시간 끌지 마시고.”염구준은 얼른 이 일을 해결하고 또다른 전설속 생물인 머리 두 개짜리 뱀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호숫가에 있는 시장으로 행했다. “어이, 아줌마. 얼른 이 물건들 치우고 썩 꺼지지 못해?”볶음밥 노점 앞, 어디서 공연이라도 한 듯 화려한 머리와 화장을 한, 충격적인 모습을 가진 남자 세명이 다가왔다. “총각들, 얌전히 장사하고 있는 사람한테 왜 이래? 내가 언제 그쪽한테 피해를 끼쳤어?”노점 주인인 아주머니가 계속해서 볶음밥을 만들어내며 대꾸했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연약한 아주머니였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남자들에게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피해? 지금 말 다 했어?”“사람이 친절하게 구니, 호구로 아네? 어이, 아줌마! 가게 완전히 접고 싶어? 험하게 다뤄줘?”세명 중 빨간 머리를 한 남자가 앞으로 나오더니, 위협적으로 노점을 쾅쾅 내리치며 말했다. 만약
“뭘 봐? 눈알 뽑아버리기 전에 꺼져!”빨강머리 남자가 주변 사람들을 쏘아보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돌리며 자기들끼리 수근거렸다. 이들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가자, 가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보기에 저래도 뒷배가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는 상대가 안 돼.”“가자, 괜히 끼어들었다가 우리만 낭패 볼 수 있어.”빨강 머리 남자의 위협에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 남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자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훤칠하게 생긴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혹시 이나라 님 맞으신가요?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아주머니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주름진 얼굴로 대답했다. “말씀하세요. 노족장님과 오신 분인데, 무엇이든 도와드릴게요.”아주머니의 대답을 들은 염구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호의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면현과 대화할 때 무뚝뚝했던 말투는 다른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염구준이 공손히 손을 모으며 예의를 표했다.“똥폼 잡기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 이 거야?”빨강 머리 남자가 비꼬며 말했다. 여긴 천면 가문이 별로 활동하지 않는 곳이라, 이들은 천면현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음 바꾸기 전에 꺼져.”염구준이 한숨을 내쉬며 귀찮은 듯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벌레보다 하찮은 놈 때문에 괜히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감히…!”빨강 머리 남자가 막 말을 꺼내려던 찰나, 갑자기 고개가 돌아가며 강한 고통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것이다. 그는 코와 입으로 피를 뿜으며 옆으로 날아갔다. 정말 반응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빨강 머리 남자가 나가 떨어지자, 옆에 있던 두 남자가 허겁지겁 부축하려 다가왔다. 하지만 이들도 눈 깜빡할
“이나라, 나 들어간다!”천면현이 큰소리치며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끼익, 나무 문이 열렸다 닫혔다. 곧이어 두 사람의 친밀한 대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나라, 이게 얼마 만이야? 미모는 예전하구나.”“천면현,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썩 꺼져!”두 사람은 평범한 관계가 아닌 것 같았다. 과연 천면도를 나올 때 천면휘가 함께 나오지 못하도록 말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염구준과는 상관없는 일, 그는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약이 완성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밤이 되었고, 주변에 있던 불들이 하나둘 꺼지면서 고요함이 찾아왔다. 쓱쓱, 이때 어디선가 수상한 움직임 소리가 들려왔다. 염구준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정말 쥐가 있었네?”멀지 않은 곳에 검은 그림자 열댓 개가 스르륵하고 나타났다.“대장, 정문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오늘도 움직입니까?”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인물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물었다. 대장은 잠시 고민에 빠졌으나, 이내 결심한 듯 단호히 말했다.“더는 못 미뤄. 이미 상부에서 몇 번 독촉장이 내려왔어. 오늘 밤,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다. 저 남자를 밖으로 유인해.”그는 매우 신중했다. 오늘은 절대로 예상밖의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날이었다. 그러자 한 남자가 기척을 대놓고 드러낸 채 염구준을 향해 다가갔다. 유인하려면 일단 들켜야 했기 때문이다. ‘재밌군!’나타난 것은 열댓 명인데, 혼자만 인기척을 드러냈다? 뻔한 의도에 염구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누구야?”그는 일단 상대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앗, 이런! 들켰어!”그러자 남자가 과장되게 놀라며 어딘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편, 염구준은 그 모습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연기를 할 거면 제대로 할 것이지, 발연기도 이런 발연기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빠르게 어둠속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대장은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일이 생각보다 순조로웠기
하지만 염구준 앞에선 이들은 그저 약자에 불과했다. 열댓 명이나 되는 검은 인영들이 동시에 땅을 박차고 지붕 위에 있는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약해 빠진 것들!”염구준이 전혀 긴장감이 없는 목소리로 코웃음 쳤다. 그의 몸이 번쩍하고 사라졌다가 나타난 순간, 뛰어오른 검은 인영들 모두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대장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너, 너 도대체 뭐야?”“그러는 넌, 천무산 쪽 사람인가?”염구준은 이들의 움직임 속에서 단번에 정체를 알아차렸다. “맞아. 난 천무산 소속이다. 그러니 천무산 이름을 봐서라도 살려다오!”자신이 앞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대장이 다짜고짜 염구준에게 빌었다. “천무산 사람이라면, 더더욱 살아서 나갈 수 없지.”염구준이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며 단번에 대장의 목을 따버렸다. 천무산 사람을 볼 때마다 그는 독에 당한 딸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언젠가 반드시 천무산 전체를 불살라 버리리라! 하지만 일단 지금 당장 급한 건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전설의 뱀을 찾는 것이었다. 적들을 모두 처치하고 나니, 밤은 다시 고요해졌다. 염구준은 날이 밝아질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조용히 집을 지켰다. 이때 공방의 문이 열리며 아주머니와 함께 천면현이 나왔다. 다들 모두 굉장히 지친 얼굴이었다.“여기, 원하던 물건입니다. 혹시나 해서 두 개 만들었지만, 하나만 복용해도 충분히 전괴를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아주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약이 담긴 나무 상자를 염구준에게 건넸다.“감사합니다.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뭐 필요하신 거 없나요?”염구준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다. “괜찮습니다. 이 일에 대한 대가는 천면현한테 받을 거예요.”아주머니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염구준의 시선이 천면현에게 향했다. 노인이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전괴의 치료약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큰 비용이 들었을 텐데, 아주머니의 보상까지 직접 하겠다고 하다니
삼인조는 여전히 호숫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땀 범벅에 핼쑥하진 얼굴, 하루 밤 사이에 족히 십년은 늙은 듯한 얼굴이었다. 하긴 밤새도록 감시를 받으며 춤을 췄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수안아, 가자!”염구준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호숫가를 향해 외쳤다. “네!”수안이 대답하며 순식간에 염구준 옆으로 다가왔다. “오라버니, 그런데 저 셋은 그냥 저렇게 둘 거예요?”그러자 염구준이 무심한 얼굴로 삼인조를 바라보며 답했다.“내버려 둬. 어차피 쓰레기들이라 함부로 못해.”이 정도로 혼났는데도 불구하고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 이나라를 건드리게 된다면, 그때는 염구준이 아니라 천면현에게 호되게 당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천면현와 이나라의 분위기를 봐서, 분명 멀지 않은 시기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았다.사랑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젊은 시절은 지났지만 이제라도 자기 짝을 만난다면 그것도 복이었다.두 사람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삼인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드디어 해방이었다. 한편, 보채성.천무산을 가기 위해선 보채성을 반드시 지나야 했다. 그런데 보채성에 발을 들인 순간, 염구준은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오라버니, 피 냄새가 나요. 좀 전에 흘린 피 같은데요?”수안이 살짝 인상을 쓰며 코를 움찔거렸다. 보채성에 큰 전투가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꽤 많은 사상자가 나온듯했다.“그러게, 피 냄새가 나네.”염구준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보채성에 큰 전투가 벌어졌다는 건, 대염무관에도 뭔 일이 일어났다는 걸 뜻했다. “가자!”염구준이 발에 힘을 주며 대염무관을 향해 박차고 나갔다. 대염무관과 전갈문은 모두 무리안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두 세력은 무리안에서 염구준의 눈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곧이어 두 사람은 대염무관에 도착했다. 피가 낭자한 땅, 재앙이 휩쓸고 간 모습이 보였다.염구준은 곧바로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
이 익숙한 기운은? 그 분이다!제욱의 눈에 다시 희망이 차올랐다.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진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역시나 그곳엔 염구준이 있었다.“적이다! 방어 진형으로 바꿔!”천무산 무리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자 약 스무 명이 되는 인원 모두가 한곳으로 모여들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무리안에서 오래 살아남은 것만큼, 이들의 결단력과 결속력이 대단했다.“또 꼴도 보기 싫은 천무산이라니. 그냥 오늘 죽는 날이라 생각해.”염구준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염 선생님!”제욱이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구세주가 왔다!“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늦어서 죄송해요.”염구준이 제욱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넌 뭐야? 대염무관이랑 어떤 관계야?”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염구준을 경계하며 물었다.“너희들 모두 천무산 소속 맞지?”어차피 곧 죽을 놈들, 알려줄 이유가 없었다.“흥! 우리의 소속을 알고도 끼어들다니!”대장이 비웃으며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 천무산은 무리안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했다.“그렇다면 봐줄 이유가 없겠군!”상대의 신원이 확실해지자, 염구준은 망설임없이 움직였다.“방어.”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시작된 맹렬한 공격, 이들의 진형은 염구준에 의해 단번에 무너졌다. 그 모습을 보고 제욱은 경악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인원을 이토록 쉽게 밀어붙이다니!“넌, 악마야!”대장이 피를 토하며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염구준을 바라봤다.염구준은 특별한 기술 없이, 단순 맨몸 공격으로 절반 이상의 인력을 해치웠다. 천무산 쪽 사람들에겐 염구준은 인간이 아니라 핵폭탄 그 자체였다.“내가 인간이든, 악마든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너희들이 오늘 모두 이곳에서 죽게 될 거란 거야.”이 말을 끝으로 염구준은 다시 남은 인원들을 향해 움직였다.이제 천무산과는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었다. 한쪽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남은 한쪽은
”살고 싶다면 염구준에 대해 아는 것 모두 불어라. 쓸만한 정보가 있다면 살려주겠다.”그제야 대염무관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잡혀 왔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하! 꿈 깨!”제정도가 코웃음 치며 입을 꽉 다물었다. 은인을 배신하라니,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오? 입이 꽤 무겁구나?”광사가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던져버린 뒤, 선글라스를 내리며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결코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고문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특기는 남의 팔다리 힘줄을 끊는 것이었다.“반 시간 정도 남았다. 그동안 실컷 여유를 즐겨라. 곧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광사가 대염무관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익! 결투다, 이 개 자식아!”제정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몸에서 남은 전신 영역을 끌어올리며 광사를 향해 돌진했다. 비록 중상 입은 상태였지만, 남은 사람이라도 지켜야만 했다. “쯧! 번거롭게!”하지만 광사는 너무나도 쉽게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제정도는 지금 서심고에 당한 상태였다. 전투력이 평소의 십 프로 밖에 낼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의리를 지키려 해? 너희들이 처참하게 당할 때, 염구준은 나타나지도 않았잖아?”광사가 사람들의 심리를 흔들기 위해 이간질하기 시작했다. “나 여기 있어!”이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흩날리는 먼지속에서 한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염구준이었다!염구준은 누군가가 몰래 뒤에서 자신의 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염 선생님, 어떻게 여기….”구세주를 본 제정도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거기까지.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만 운다는 말이 있죠. 눈물 거두세요.”염구준이 손을 들어 제정도를 저지시켰다. 그리고 남은 대염무관 사람들을 세어 보았다. 제욱을 제외하곤 이곳에 납치당한 사람이 살아남은 인원의 전부라면, 절반이나 죽임을 당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안타까움이 치
염구준이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베르는 당황했다.이제 손에 무기도 없어서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다.“멈춰!”“당장 공격을 멈춰!”“부성주님, 조심하세요!”그 장면을 보던 반보천인 세 명은 막을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바로 그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염구준은 공격을 멈추고 지하를 내려다보았다.푸!두 사람 사이에 있는 두터운 진흙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모래를 사방에 뿌리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염구준이 재빨리 진흙의 가운데를 잘라버리자 생물체가 죽었는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마침 검기도 기운을 소진하여 공격을 멈추고 돌아서서 살펴보았다.“젠장, 그냥 지하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죽으러 나왔어?”염구준이 불청객에게 짜증을 부렸다.만약 생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검에 죽을 사람은 베르였다.진흙과 모래가 가라앉자 다들 생물의 정체를 주시했다.굵기가 2미터나 되고 꼭대기에 날카로운 이빨이 수두룩하게 생긴 심해의 모래벌레였다.이 벌레는 성체가 되면 길이가 30미터에 달하고 풍부한 광물을 함유한 화산암을 먹고 살기에 이 구역에서 텃세가 특히 강했다.그리고 공격성은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방어해! 이것들이 떼로 공격할 거야!”염구준은 통신기에 주의를 주고 잠시 베르를 살해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위험한 상황에 닥쳤으니 자기들끼리 싸운다면 사기를 떨어트리기 때문이었다.푸푸!말이 채 끝나기 전에 수많은 모래벌레들이 땅속에서 나와 무차별한 공격을 퍼부었다.일반 무술인이 한 입에 먹힌다면 바로 두 동강이 났다.반보천인 무술인들은 잠수 장비가 망가지면 심해의 수압을 견뎌야 하기에 역시 방심할 수 없었다.그러니 아무도 죽음을 무릅쓰고 공격하지 않았다.심해 모래벌레들이 신출귀몰하며 공격하자, 다들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했다.그들에 비해 염구준은 다가오는 놈들을 가볍게 잘라냈다.이 벌레들은 사납지 않은데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올 때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염구준은 감지
싸움은 잠시 한 단락 끝났다.베르가 씩씩거리며 통신기에 대고 고막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염구준, 왜 우릴 도와주지 않아?!”“당신들도 날 도와주지 않았잖아요.”염구준은 어처구니없는 가스라이팅을 무시하고 반문했다.베르는 이런 말로서 염구준을 각 세력의 반대편에 세워 고립시키려는 수작이었다.이제 막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임시 사령관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위세를 떨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웃기지 마. 우리는 반보천인 무술인이라 다른 무술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그런데 넌 한심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베르는 정의로운 척 그의 영혼까지 고문하며 계속 나무랐다.눈치가 없는 무술인들은 정말 베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 방금 수십 명이 넘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는데도 당신은 구하러 가지 않고 도망가느라 바쁘던데요? 그 말을 하고도 양심에 찔리지 않습니까?”염구준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이기적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또 염구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다.“흥, 따박따박 말대꾸는. 누가 너 같은 놈을 낳았는지 그 어미가 궁금하다.”베르는 솔선수범하지 않으면서 말로도 밀리게 되자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했다.“죽고 싶어?”그러자 염구준이 버럭 화를 내며 베르에게 검을 겨주었다.상대방이 시비를 건다면 원하는 대로 한바탕 싸워줄 기세였다.“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베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커다란 방패를 들고 맞섰다.이번 행차에 스텔라성에서 실력이 있는 반보천인 네 명을 파견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쿵!염구준의 검이 방패에 닿은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며 베르가 뒤로 몇 발치 물러갔다.“물에서 방패를 쓰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군.”물속에서 방패의 부력이 커서 오히려 싸움에 방해가 되었다.그는 계속 검으로 공격하며 가볍게 제압했고, 뒤로
그 생물의 정체는 대왕 오징어였다.이 생물은 빛을 두려워해서 항상 심연에 숨어 있기에 과학자들은 파도에 밀려온 시체들만 주워서 연구했었다.대왕 오징어는 가장 긴 것은 40미터 이상에 달했다.염구준은 지금 상황을 보고 속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젠장, 오징어 소굴을 건드렸나?”심지어 그중에서 덩치가 큰 오징어는 전신 경지에 도달했다.마침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와서 다행이지, 염구준이 혼자 싸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염 선생님, 이제 어떡해요?”통신기에서 초조한 노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그 말 뜻은 그가 나서서 천기문의 부하들을 지켜달라는 의미였다.솔직히 그들 실력으로 이렇게 많은 대왕 오징어를 상대하기 버거웠다.“살아남아서 바다 밑 끝까지 오세요.”염구준은 한마디만 남기고 검을 휘두르며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지금은 사방이 어두워서 대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모두 자원해서 온 거라 그들을 책임질 의무가 없었다.“다들 최선을 다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자!”노신기는 목숨을 걸 각오로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순식간에 각 세력은 대왕 오징어와 무차별적인 싸움을 벌였다.하지만 캄캄한 물속은 대왕 오징어들에게 유리한 곳이라 인간들은 1대1 싸움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참담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위기가 닥치자 베르가 긴급 공공 통신 채널을 열고 이런 제안을 했다.“이러다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 협력하여 살길을 열어야 합니다. 바다 밑에 도착하면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겁니다.”솔직히 베르도 염구준처럼 대놓고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런 실력이 되지 못했다.“찬성합니다.”“협공합시다!”각자 싸우다가 자칫하면 전멸할 수 있으니 다른 세력들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반보천인이 앞장서고 전신 경지, 전신지상 무술인이 그 다음, 나머지는 뒤를 따라갑니다!”베르는 정예병을 살리고 나머지는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생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공격합시다!”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슬픔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염구준이 두터운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간밤에 가볍게 생물을 절단하면서 그의 단전은 이미 기운으로 꽉 찼다.“염 선생이 바다에 들어갔어요.”모든 사람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으니 작은 동작이라도 이내 알아챘다.그가 갑작스럽게 뛰어드는 바람에 노신기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대체 왜 저러는 거야?”“내가 앞장 설게요. 촉각이 있는 생물일 뿐, 두렵지 않습니다.”일부 반보천인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염구준의 손에 완벽한 해도가 있으니 그가 정보를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래서 먼저 보물을 찾아낼까 봐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지만 솔직히 고대 옥패를 노리고 왔다.일단 옥패에 있는 무공을 연마하면 자신의 실력을 제고할 수 있으니 나중에 재물을 손에 넣어도 늦지 않거니와 그때는 더 쉬울 거라 생각했다.염구준은 바다 밑에 있는 균열을 향해 가다가 가끔씩 방향을 조절했다.아직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가장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사용했다.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점점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염구준은 길이가 석 자가 되는 청봉을 잡고는 언제든 적을 무찌를 준비를 했다.방금 잘린 촉각의 길이를 볼 때, 본체에 비해 너무 짧아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만약 덩치가 어마어마한 팔조괴물이라면 아직도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게 틀림없다.촤아아! 촤아아!그때 물살이 바뀌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더니 수백 개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각 세력의 정예병이 움직인 것이다.어떤 무술인은 일정한 거리에 도착한 후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속도로 염구준의 뒤를 따랐다.그가 앞장서서 길을 터달라는 뜻이었다.염구준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아래 균열이 빨아들이는 대로 끌려갔다.‘얼마든지 따라와 봐.’지금 상황으로 말하자면 누가 누구의 총받이가 될지
선박 위의 사람들이 절박하게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자 각 세력들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분위기를 보아 곧 위험이 닥칠 것 같았다.촤아아악!“엄청난 것이 몰려오고 있어! 빨리 위로 올라가!”나중에 물에 들어간 무술인들이 제일 먼저 해수면으로 올라와 보고했다.이어서 대다수 무술인들은 통신기에 비명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각 세력이 어쩔 바를 몰라 혼란에 빠졌을 때, 노신기는 염구준의 옆얼굴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그의 말이 옳았다.“다들 맞서서 싸웁시다!”염구준은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우렁차게 소리쳤다.그게 무엇이든 이미 상대방을 건드린 이상 맞서서 싸워야 했다.정신을 차린 각 세력들은 갑자기 조상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촤아아!다시 몇몇 사람이 수면위로 올라오더니 놀라운 속도로 선박을 행해 헤엄쳤다.“저게 다 뭐야?”누군가 겁에 질려 비명소리를 질렀다.“나도 몰… 악!”같이 헤엄치던 일행이 말하다 바다 밑에 있는 물건에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그리고 밧줄처럼 생긴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선박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악!”“살려줘!”순식간에 비명소리와 경악 소리가 섞여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에 다들 지레 겁을 먹었다.윙!그때 누군가 열 줄기 검기를 발사해 밧줄처럼 생긴 생물을 잘라버렸다.“저건 또 뭐야? 엄청 단단하네.”제일 처음으로 공격한 사람은 역시 염구준이었다.“끼익!”바다 밑에서 공격을 당한 생물은 날카로운 이명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왔다.생각보다 쉽게 잘리자 각 세력들은 용기를 내서 공격을 퍼부었다.“별거 아니네. 단번에 잘려지잖아.”자신감이 생긴 그들은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본래 각 세력의 실력으로 쉽게 생물을 잘라낼 수 있는데, 이 생물이 모두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습격할까 봐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물론 염구준도 모든 사람을 책임질 의무가 없으니 주변에
“가서 건져 와. 살아있으면 좋고, 죽었으면 하는 수 없지.”그 한마디를 남기고 메노스는 계속 시끄럽게 구는 꽃무늬 셔츠남을 뒤로한 채 조용히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메노스가 이 후계자를 아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기 목숨까지 걸 정도는 아니었다.한편, 잠수함을 타고 온 대어당, 안설홍, 레온 가문의 세 세력은 자연스레 한데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다른 세력에 대항할 방비를 했다.그에 비해 염구준의 일행은, 아까 그의 압도적인 전투력을 목격한 덕분에 분위기가 다시 끓어올랐다.“염 선생님은 진짜 강하시네요! 한두 번 만에 반보천인 한 명을 처리하시다니!”“염 선생님만 계시면 스텔라성도 별 것 아니에요!”“전 마음 정했어요. 이번 일만 끝나면 무조건 염 선생님을 제 스승님으로 삼을 거예요.”세 척의 어선 위의 사람들은 불과 며칠 만에 염구준의 팬이 되어버렸다.하지만 정작 염구준 본인은 사람들의 찬사 따위에 눈도 깜빡하지 않고, 아타와 노신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계획대로 시작하죠.”“네!”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수색 인원들을 바다에 투입했다.다른 세력들도 질세라 각자 인원을 내보냈지만, 서로 자기 일을 하느라 별로 큰 충돌은 없었다.이 바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피를 흘릴 이유는 없기 때문이었다.염구준은 주변을 둘러보고 모든 세력이 각자 행동 중인 걸 확인하곤, 조용히 자리에 앉아 기운 회복에 집중했다.방금 전의 싸움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속전속결로 싸움을 끝내기 위해 일부러 몸에 무리를 주는 권법을 강제로 사용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그 한 방의 주먹과 한 번의 검격으로 무려 30%의 기운이 빠져나간 상태였다.완전히 회복하려면, 최소 열 시간이 필요했다.그의 모든 행동은 타 세력들에게 낱낱이 관찰되고 있었지만, 감히 함부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그리고 날은 조용히 어두워졌다.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엔 무수한 별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마치 두 개의 은하수가 펼쳐진 듯한
“하하하! 겉멋만 든 자식이, 결국은 허세였구나!”로브는 이 약한 일격에 박장대소하며 자신감이 들었다.‘어쩌면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아직 몸을 채 회복하지 못한 것일 수 있겠어.’그 모습을 지켜보던 베르 일행은 눈에 띄지 않게 기운을 운용하며 적당한 타이밍에 염구준을 제거할 기회를 노렸다.하지만 뭔가 이상했다.사람들은 곧 염구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기운의 강도로 보아 그들을 속이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특히, 왼주먹에 모인 에너지는 숨이 멎을 만큼 강렬했다.“이런 허세에 난 안 속아!”로브는 상대방이 그저 겁을 주려는 연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는 기세등등하게 구자검을 뿌리치고, 단검을 휘두르며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원래 지는 척하려고 했었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아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칠상권종극오의, 칠권합일!”이에 염구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두 자루의 단검을 향해 왼팔을 휘둘렀다.쾅!주먹이 단검에 닿는 순간, 두 자루의 단검은 그대로 부서져 바닥에 나뒹굴었다.이 공포스러운 주먹을 그가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안 돼!”로브는 이번 주먹이 진짜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공포에 사로잡혀 피하려 했지만, 이미 공격 태세로 몸이 나간 상태라 도망칠 수가 없었다.쾅!염구준의 일격은 그대로 로브의 가슴을 강타했고, 로브는 힘없이 밀려났다.그러나 염구준은 멈추지 않고 곧바로 검으로 로브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복부까지 갈라 길고도 흉측한 상처를 남겼다.풍덩!로브는 이 어마어마한 충격에 바다로 떨어졌고,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그러나 염구준은 그를 돌아볼 생각이 없었다.애초에, 이건 남들에게 자신이 초입 반보천인을 상대할 여유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이 싸움은 승부가 명확했지만, 너무 빨리 끝난 탓에, 진짜 실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게다가 로브는 제대로 싸운 것도 아니고, 허점투성이였기에 평가 기준도 되지 못했다.관중들은 모두 멍한 표정이었지만,
불쌍하게도 그는 꿍꿍이가 많은 여우같은 사람들에게 이용당했다.그러나 금발에 금색 수염,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구부정한 몸매에 하얀 로브를 입은 메노스는 순진한 그와는 달리, 더욱 노련했다.“이번 일은 중요하고 사방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게 좋아.”겨우 이정도 이간질로는 그를 속일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민폐 팀원이 있었다.꽃무늬 셔츠남은 거대한 아기처럼 징징대며,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메노스 할아버지, 전 할아버지가 키워주신 아이잖아요! 설마 저한테 무관심 해지신 거예요?”“그만. 복수해줄게, 그러니 그만해.”메노스는 꽃무늬 셔츠남이 우는 걸 보자, 마음이 사르르 녹아서 옆사람을 향해 물었다.“로브, 저 녀석의 실력이 어떻지?”“강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싸우는 건 본 적 없습니다. 저쪽 진영엔 반보천인이 둘이 있는데, 제 실력과 맞먹습니다.”로브는 아는 걸 전부 털어놓았지만, 계속 불안한 예감이 들어서 표정이 좋지 않았다.역시나 메노스는 그의 예감처럼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렸다.“그래, 네가 가서 한번 떠봐. 내가 뒤에서 봐줄테니.”“네.”로브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대답한 뒤, 요트에 올라타 염구준이 있는 어선을 향해 달려갔다.메노스는 정말 그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명령을 내린 거였다. 두 배 사이의 거리가 짧은 것도 아니라 위험한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바로 도와줄 수도 없었다.슉!로브는 어선에 뛰어올라 기세 넘치게 소리쳤다. “염구준, 한 번 붙어보길 원한다!”다소 똑똑한 선택이었다.혹시라도 집단구타를 당할까 걱정이 돼서 먼저 큰소리부터 친 것이다.하지만 염구준을 향해 시비를 거는 로브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레이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너 따위가 감히?”부두에서 2:1로 이기긴 했지만, 그래도 로브는 패배자였다.게다가 이제 막 반보천인의 문턱에 선 수준이 감히 염구준을 상대로 나서기엔 한참 부족했다.“받아들일 건가?”로브는 그레이와 말싸움을
그는 입을 열자마자 자신은 염구준의 적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천기문이든 아타든 그는 애초에 경쟁상대로 생각해두고 있지 않았다. “흥, 비겁한 놈!”노신기는 화를 내며 말했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염구준이 어떻게 나올지 기다렸다.어선이 잠수함을 상대한다는 건 아예 말도 안 되었다.“예부터 보물은 능력 있는 사람이 가져가는 법이지.”염구준은 꼬리를 밟혔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혹여 다툼이 생긴다 해도, 실력으로 누르면 될 일이었다.게다가, 보물을 탐색하는 세력이 많을 수록 고대 옥패를 찾아낼 확률도 커지기 때문에 어쩌면 더 이득이었다.게다가, 정확한 위치 없이 찾아야 한다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게 없었다. “고마워. 만약 보물을 찾게 된다면 염 선생도 나눠줄게.”“만약 고대 옥패를 발견한다면, 바로 주고.”대어당의 당주는 크게 기뻐하며 약속했다. 염구준에게 복종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말이다.적과 동료는 늘 변하는 법이다. 변하지 않는 건 오직 이익뿐이었다.염구준은 그를 슬쩍 바라보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이런 식의 허울뿐인 약속 따위는 진즉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의 검 뿐이었다.“후욱, 후욱.”노신기는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염구준이 나서지 않는 이상 홀로 대어당과 맞붙을 자신이 없었다.철썩철썩!이윽고 바닷물이 또 한 번 요동치더니 이번엔 세 척의 잠수함이 물 위로 떠올랐다.적어도 세 개의 강대한 세력이 더 온 것 같았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의 두 방향에서 모두 배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또 다른 두 세력이 오는 것 같았다.보물을 나눠가지려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 것이다.“염 선생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 끼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염 선생님께서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조상 대대로 전해진 보물이니 저희도 어느정도는 가져가 가문에 보태야죠.”“염구준, 날 기억해?”새로 온 이들 중 대부분이 염구준과 한번쯤 얽혔던 사람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