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구준이 손을 들어올리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몇 걸음을 들어갔을까,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다 소문이 과장된 거라며 여기며 염구준은 더 안으로 쑥쑥 들어갔다. 그런데 이때, 그르렁하고 웅장한 울음소리와 함께 커다란 용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났다. 용이라니? 전날 밤 먹었던 술이 아직 안 깬 것인가? 염구준은 눈을 비비며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의심했다. 하지만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용이 입을 쩍하고 벌리며 그를 향해 번개를 내뿜었다. 염구준도 이런 전설 속 생물은 처음이었기에, 공격을 일단 피하기로 했다. 그러자 좀 전에 그가 서 있던 곳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며 사방으로 돌무리가 뿌려졌다. 단 한 번의 공격이었지만, 그 위력은 정말 상상 초월이었다. 반면, 호수가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의아했다.“왜 저기에 멀뚱히 서 계시지? 햇볕을 쐬나?”“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뭔가 문제가 생긴 걸 거야.”천면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뭔가 잘못 됐음을 직감했다. 비록 고서에 적힌 것이 없어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이유 없이 저렇게 멀뚱히 서 있을 리가 없었다.“제가 돕고 올게요!”두 사람의 말을 들고 있던 수안이 당장이라도 염구준을 뒤따라갈 듯 자세를 취했다.“잠깐만!”천면현이 전에 겪었던 것을 떠올리며 재빠르게 그녀를 막았다.“염 선생도 해결 못하는 일이라면, 당신이 나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방해가 되면 됐지.”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결국 수안은 이를 악문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염구준은 용과 아주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용은 확실히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피하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염구준은 용기를 내 용과 정면으로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상대가 누구든, 무엇이든, 이기면 그만이었다.용이 또다시 입을 벌리며 벼락을 뿜어댔다. 염구준도 몸속에서 기운을 끌어올리며 그것을 최대한 무력화시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마음이 조급해진 수안은 몇 번이고 돌무더기 속으로 뛰어들 뻔했다. 하지만 매번 천면현이 막아 어쩔 수 없이 호수가에서 목소리 높여 염구준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나 괜찮아!”염구준이 손을 들어올리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 다음 빠르게 다시 새벽이슬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못 됐다. 최대한 빨리 떠나야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또다시 환영이 나타나 염구준을 괴롭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를 공격하는 건 용뿐만이 아니었다. 온갖 전설적 동물, 옛날 적들, 그의 마음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환영으로 튀어나왔다. 만약 아무런 자각이 없었다면 정말 정처 없이 이 환영들에 휘둘렸을 것이다.하지만 염구준은 이것이 이미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던 터라,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쉭쉭 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손가락 세 마디 정도 되는 굵기의 뱀 두개가 화살처럼 그를 향해 쏟아져 나왔다. ‘이건 환각이 아니야!’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면서 염구준은 위협이 느껴졌다. 염구준은 망설임없이 기운을 흘려 내보내며 검은 뱀을 폭파시켰다. 터져 나오는 핏방울들을 느끼며 염구준은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이곳은 실제와 허구가 섞여 있는 공간, 점점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염구준은 주저하지 않고 현실을 자각한 순간을 이용해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도자기 용기에 빠르게 새벽 이슬을 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에 새벽이슬이 닿는 순간 그동안 겪었던 모든 환상이 사라지며 정신이 맑아졌다. 놀라운 감각에 염구준이 감탄하고 있던 순간, 갑자기 호수가 요동치며 슬슬 잠기려는 기색을 비쳤다. 물건을 얻었으니, 그는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돌무더기를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두 걸음 내딛지도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퇴로가 막혀버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수많은 뱀들이 빽빽히 돌무더기 주변을 채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쏟아져 내리
위기가 지나가자, 천면현은 감탄하며 염구준을 바라봤다. “하하, 염 선생은 참 신기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정말 저 금지 구역에서 살아 돌아올 줄이야, 정말 놀랍네요!”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지금까지 저기에 발을 들여놓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염구준이 처음이었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염구준은 그의 반응에도 매우 덤덤했다. 오히려 새벽이슬이 담긴 도자기 용기를 꺼내며 천면현을 재촉했다.“물건을 가져왔으니, 얼른 전괴 치료하는 약을 만들어주세요.”“그건….”천면현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설마 또 뭐 있습니까?”그의 반응을 본 염구준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물었다.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얘기해서 이 고생을 하며 가지고 왔는데, 이제 와서 또 머뭇거리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해 마세요. 필요한 재료는 이게 다인 건 맞습니다. 제조법도 저한테 있고요. 하지만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선 이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합니다.”염구준의 표정에 천면현이 얼른 해명을 덧붙였다. “그럼 빨리 움직이시죠. 여기서 시간 끌지 마시고.”염구준은 얼른 이 일을 해결하고 또다른 전설속 생물인 머리 두 개짜리 뱀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호숫가에 있는 시장으로 행했다. “어이, 아줌마. 얼른 이 물건들 치우고 썩 꺼지지 못해?”볶음밥 노점 앞, 어디서 공연이라도 한 듯 화려한 머리와 화장을 한, 충격적인 모습을 가진 남자 세명이 다가왔다. “총각들, 얌전히 장사하고 있는 사람한테 왜 이래? 내가 언제 그쪽한테 피해를 끼쳤어?”노점 주인인 아주머니가 계속해서 볶음밥을 만들어내며 대꾸했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연약한 아주머니였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남자들에게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피해? 지금 말 다 했어?”“사람이 친절하게 구니, 호구로 아네? 어이, 아줌마! 가게 완전히 접고 싶어? 험하게 다뤄줘?”세명 중 빨간 머리를 한 남자가 앞으로 나오더니, 위협적으로 노점을 쾅쾅 내리치며 말했다. 만약
“뭘 봐? 눈알 뽑아버리기 전에 꺼져!”빨강머리 남자가 주변 사람들을 쏘아보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돌리며 자기들끼리 수근거렸다. 이들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가자, 가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보기에 저래도 뒷배가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는 상대가 안 돼.”“가자, 괜히 끼어들었다가 우리만 낭패 볼 수 있어.”빨강 머리 남자의 위협에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 남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자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훤칠하게 생긴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혹시 이나라 님 맞으신가요?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아주머니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주름진 얼굴로 대답했다. “말씀하세요. 노족장님과 오신 분인데, 무엇이든 도와드릴게요.”아주머니의 대답을 들은 염구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호의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면현과 대화할 때 무뚝뚝했던 말투는 다른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염구준이 공손히 손을 모으며 예의를 표했다.“똥폼 잡기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 이 거야?”빨강 머리 남자가 비꼬며 말했다. 여긴 천면 가문이 별로 활동하지 않는 곳이라, 이들은 천면현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음 바꾸기 전에 꺼져.”염구준이 한숨을 내쉬며 귀찮은 듯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벌레보다 하찮은 놈 때문에 괜히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감히…!”빨강 머리 남자가 막 말을 꺼내려던 찰나, 갑자기 고개가 돌아가며 강한 고통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것이다. 그는 코와 입으로 피를 뿜으며 옆으로 날아갔다. 정말 반응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빨강 머리 남자가 나가 떨어지자, 옆에 있던 두 남자가 허겁지겁 부축하려 다가왔다. 하지만 이들도 눈 깜빡할
“이나라, 나 들어간다!”천면현이 큰소리치며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끼익, 나무 문이 열렸다 닫혔다. 곧이어 두 사람의 친밀한 대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나라, 이게 얼마 만이야? 미모는 예전하구나.”“천면현,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썩 꺼져!”두 사람은 평범한 관계가 아닌 것 같았다. 과연 천면도를 나올 때 천면휘가 함께 나오지 못하도록 말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염구준과는 상관없는 일, 그는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약이 완성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밤이 되었고, 주변에 있던 불들이 하나둘 꺼지면서 고요함이 찾아왔다. 쓱쓱, 이때 어디선가 수상한 움직임 소리가 들려왔다. 염구준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정말 쥐가 있었네?”멀지 않은 곳에 검은 그림자 열댓 개가 스르륵하고 나타났다.“대장, 정문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오늘도 움직입니까?”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인물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물었다. 대장은 잠시 고민에 빠졌으나, 이내 결심한 듯 단호히 말했다.“더는 못 미뤄. 이미 상부에서 몇 번 독촉장이 내려왔어. 오늘 밤,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다. 저 남자를 밖으로 유인해.”그는 매우 신중했다. 오늘은 절대로 예상밖의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날이었다. 그러자 한 남자가 기척을 대놓고 드러낸 채 염구준을 향해 다가갔다. 유인하려면 일단 들켜야 했기 때문이다. ‘재밌군!’나타난 것은 열댓 명인데, 혼자만 인기척을 드러냈다? 뻔한 의도에 염구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누구야?”그는 일단 상대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앗, 이런! 들켰어!”그러자 남자가 과장되게 놀라며 어딘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편, 염구준은 그 모습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연기를 할 거면 제대로 할 것이지, 발연기도 이런 발연기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빠르게 어둠속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대장은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일이 생각보다 순조로웠기
하지만 염구준 앞에선 이들은 그저 약자에 불과했다. 열댓 명이나 되는 검은 인영들이 동시에 땅을 박차고 지붕 위에 있는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약해 빠진 것들!”염구준이 전혀 긴장감이 없는 목소리로 코웃음 쳤다. 그의 몸이 번쩍하고 사라졌다가 나타난 순간, 뛰어오른 검은 인영들 모두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대장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너, 너 도대체 뭐야?”“그러는 넌, 천무산 쪽 사람인가?”염구준은 이들의 움직임 속에서 단번에 정체를 알아차렸다. “맞아. 난 천무산 소속이다. 그러니 천무산 이름을 봐서라도 살려다오!”자신이 앞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대장이 다짜고짜 염구준에게 빌었다. “천무산 사람이라면, 더더욱 살아서 나갈 수 없지.”염구준이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며 단번에 대장의 목을 따버렸다. 천무산 사람을 볼 때마다 그는 독에 당한 딸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언젠가 반드시 천무산 전체를 불살라 버리리라! 하지만 일단 지금 당장 급한 건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전설의 뱀을 찾는 것이었다. 적들을 모두 처치하고 나니, 밤은 다시 고요해졌다. 염구준은 날이 밝아질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조용히 집을 지켰다. 이때 공방의 문이 열리며 아주머니와 함께 천면현이 나왔다. 다들 모두 굉장히 지친 얼굴이었다.“여기, 원하던 물건입니다. 혹시나 해서 두 개 만들었지만, 하나만 복용해도 충분히 전괴를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아주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약이 담긴 나무 상자를 염구준에게 건넸다.“감사합니다.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뭐 필요하신 거 없나요?”염구준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다. “괜찮습니다. 이 일에 대한 대가는 천면현한테 받을 거예요.”아주머니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염구준의 시선이 천면현에게 향했다. 노인이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전괴의 치료약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큰 비용이 들었을 텐데, 아주머니의 보상까지 직접 하겠다고 하다니
삼인조는 여전히 호숫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땀 범벅에 핼쑥하진 얼굴, 하루 밤 사이에 족히 십년은 늙은 듯한 얼굴이었다. 하긴 밤새도록 감시를 받으며 춤을 췄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수안아, 가자!”염구준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호숫가를 향해 외쳤다. “네!”수안이 대답하며 순식간에 염구준 옆으로 다가왔다. “오라버니, 그런데 저 셋은 그냥 저렇게 둘 거예요?”그러자 염구준이 무심한 얼굴로 삼인조를 바라보며 답했다.“내버려 둬. 어차피 쓰레기들이라 함부로 못해.”이 정도로 혼났는데도 불구하고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 이나라를 건드리게 된다면, 그때는 염구준이 아니라 천면현에게 호되게 당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천면현와 이나라의 분위기를 봐서, 분명 멀지 않은 시기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았다.사랑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젊은 시절은 지났지만 이제라도 자기 짝을 만난다면 그것도 복이었다.두 사람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삼인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드디어 해방이었다. 한편, 보채성.천무산을 가기 위해선 보채성을 반드시 지나야 했다. 그런데 보채성에 발을 들인 순간, 염구준은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오라버니, 피 냄새가 나요. 좀 전에 흘린 피 같은데요?”수안이 살짝 인상을 쓰며 코를 움찔거렸다. 보채성에 큰 전투가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꽤 많은 사상자가 나온듯했다.“그러게, 피 냄새가 나네.”염구준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보채성에 큰 전투가 벌어졌다는 건, 대염무관에도 뭔 일이 일어났다는 걸 뜻했다. “가자!”염구준이 발에 힘을 주며 대염무관을 향해 박차고 나갔다. 대염무관과 전갈문은 모두 무리안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두 세력은 무리안에서 염구준의 눈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곧이어 두 사람은 대염무관에 도착했다. 피가 낭자한 땅, 재앙이 휩쓸고 간 모습이 보였다.염구준은 곧바로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
이 익숙한 기운은? 그 분이다!제욱의 눈에 다시 희망이 차올랐다.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진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역시나 그곳엔 염구준이 있었다.“적이다! 방어 진형으로 바꿔!”천무산 무리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자 약 스무 명이 되는 인원 모두가 한곳으로 모여들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무리안에서 오래 살아남은 것만큼, 이들의 결단력과 결속력이 대단했다.“또 꼴도 보기 싫은 천무산이라니. 그냥 오늘 죽는 날이라 생각해.”염구준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염 선생님!”제욱이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구세주가 왔다!“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늦어서 죄송해요.”염구준이 제욱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넌 뭐야? 대염무관이랑 어떤 관계야?”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염구준을 경계하며 물었다.“너희들 모두 천무산 소속 맞지?”어차피 곧 죽을 놈들, 알려줄 이유가 없었다.“흥! 우리의 소속을 알고도 끼어들다니!”대장이 비웃으며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 천무산은 무리안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했다.“그렇다면 봐줄 이유가 없겠군!”상대의 신원이 확실해지자, 염구준은 망설임없이 움직였다.“방어.”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시작된 맹렬한 공격, 이들의 진형은 염구준에 의해 단번에 무너졌다. 그 모습을 보고 제욱은 경악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인원을 이토록 쉽게 밀어붙이다니!“넌, 악마야!”대장이 피를 토하며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염구준을 바라봤다.염구준은 특별한 기술 없이, 단순 맨몸 공격으로 절반 이상의 인력을 해치웠다. 천무산 쪽 사람들에겐 염구준은 인간이 아니라 핵폭탄 그 자체였다.“내가 인간이든, 악마든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너희들이 오늘 모두 이곳에서 죽게 될 거란 거야.”이 말을 끝으로 염구준은 다시 남은 인원들을 향해 움직였다.이제 천무산과는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었다. 한쪽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남은 한쪽은
중립국인 오스크국에 군대가 없기 때문에 황실 호위대가 가장 강력했다.호위대에서 한 팀이라고 해봤자 고작 20명밖에 안 되었다.“방금 누가 내 사촌형을 살해했어?”호위대 소대장이 인상을 굳히며 말했다.그제야 염구준은 깨달았다.친척이 죽어서 이렇게 빨리 달려온 것이었다.“네 사촌형이 공짜로 먹은 것도 모자라 약한 사람들도 괴롭혔어. 그런 건 왜 따지지 않아?”누군가 나서서 억울함을 호소한다면 누가 더 염치없는지 하나씩 따져볼 것이다.“흥, 사촌형은 정직한 사람이야. 함부로 모함하지 마. 넌 반드시 정의의 제재를 받을 것이다.”소대장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자기 사람의 허물을 감쌌다.겉보기에 의로운 사람 같지만 솔직히 말하면 위선적인 소인배였다.염구준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저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소대장을 쳐다보았다.“소대장님, 저놈이 주먹으로 우리 보스를 죽였습니다.”그때 도망친 폭주족의 부하가 나타나 초상비를 가리키며 고발했다.“전부 체포해! 반항하면 바로 죽여! 용하의 개들은 봐줄 필요 없어!”소대장은 손을 흔들며 거만하게 명을 내렸다.그가 여기 라틴 마을을 장악하고 있으니 폭주족처럼 횡포하는 놈들이 판을 치는 것이다.염구준은 궁금했다.용하 조상들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오스크국에서 이토록 용하인들을 미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그 장면을 본 초상비가 싸울 기세로 앞으로 나섰다.본인이 일으킨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생각이었다.염구준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네 아내를 데리고 용하로 돌아가. 나머지 일은 내가 처리할게. 가는 길에 어려운 일에 닥치면 바로 연락해.”초상비가 아내 앞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었다.“알았어.”초상비는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아내를 번쩍 들고 바람처럼 사라졌다.워낙 속도가 빨라서 일반인들의 눈에는 갑자기 허공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무술인이야!”정체를 알아차린 호위대 소대장은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이미 늦었다.병사들은 말리기 전에 벌써 돌진하여 염구준을 공
초상비는 카리나의 두 손을 꼭 잡고 얘기했다.“그럴게. 당신이 어디 가면 나도 따라갈게. 근데 용하에서 국적 취득하는 거 엄청 어렵다고 들었어.”카리나는 웃으면서도 여전히 걱정스러웠다.“그런 거라면 나한테 맡기세요. 그보다 두 사람 축하주를 마시지 못했는데 용하에 돌아가면 다시 결혼식을 올려야 해요.”염구준은 두 사람의 일에 기뻐하며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이번 임무에서 초상비는 진화위복으로 아내까지 얻었다.“염구준, 고맙다. 축하주는 당연히 마셔야지!”초상비는 입이 귀에 걸려 다물지 못했다.“휴.”그제야 염구준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초상비가 무사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이젠 왜 기억을 잃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초상비는 전신지상 무술인이지만 경공이 뛰어나고 몸놀림이 괴상했다.이런 그에게 중상을 입힐 정도라면 상대방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춘 고수일 것이다.그제야 초상비는 오스크국에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내가 도착했을 때 모든 일이 순조로웠어. 첫날에 바로 단서를 찾았거든. 손중석은 노엘테크놀로지에서 납치해갔어. 그리고 에빈은 다른 세력들이 납치했는데 구체적인 상황은 아직 몰라. 내가 더 깊게 조사하려고 할 때, 행적이 발견되는 바람에 반보천인 고수 두 명에게 쫓기다가 겨우 목숨을 건졌어. 참, 모든 일은 만능 전당포와 관련 있는 거 같아.”“노엘테크놀로지!”염구준의 추측대로 모든 일은 이 회사와 연관이 있었다.그런데 에빈을 납치한 다른 세력은 또 누군지 알 수 없었다.그들이 일을 크게 벌여가면서 여자를 납치할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생각나지 않았다.“초상비 삼촌, 그럼 우리 아빠와 엄마는 아직 살아 계세요?”제이든이 자기 부모와 관련된 말이 나오자 다급하게 물었다.“난 살아 계신다고 생각해. 그놈들이 엄청 중시했거든. 아니면 납치하지 않고 바로 죽였을 거야.”초상비가 추측한 것도 염구준의 생각과 비슷했다.그러니 지금 대략 확신할 수 있었다.제이든의 부모는 보통 사람들이 아니고 심지어 어떤 세력
초상비는 그가 파견한 것이니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카리나는 초상비의 몸을 살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상준, 괜찮아?”두 사람은 서로 끔찍이 사랑하는 것 같았다.초상비는 아내가 걱정할까 봐 말을 돌렸다.“당연하지. 나 튼튼해서 맺집이 좋아.”“정말 본인이 누군지 모릅니까?”옆에서 지켜보던 염구준이 다가가더니 다시 초상비에게 물었다.그 말에 카리나는 잔뜩 긴장하면서 초상비의 앞을 막았다.“이 사람 기억을 잃어서 예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해요. 제발 놓아주세요. 부탁할게요.”기억을 잃었다는 해석에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그래서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고 이상한 메시지까지 보낸 것이었다.“내가 따라갈 테니까 아내는 해치지 마세요.”초상비가 앞으로 나서며 모든 것을 감당하려 했다.“진정하세요. 우리 한 패예요. 그쪽을 찾으려고 이곳에 왔거든요.”예상치 못하게 오해가 커지자 염구준이 바로 해명했다.그러자 초상비가 반신반의한 표정을 지었다.염구준은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꺼내 그동안 받은 메시지를 보여줬다.“그쪽한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나예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부부가 염구준이 보여준 메시지를 보더니 서로 눈을 마주쳤다.카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말할게요. 그런데 그 전의 일은 저도 잘 몰라요. 한 달 전에 해변가에서 조깅을 할 때 온몸이 상처투성인 상준을 발견했어요. 그때는 별생각 없이 데리고 집으로 왔는데 상준이 깨어난 순간, 예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제 곁에 남기고 가게에서 일하게 했어요.”카리나는 염구준이 사랑하는 남편을 데리고 갈까 봐 마음이 초조했다.그 속내를 알아차린 염구준은 강제로 두 사람을 갈라놓지 않고 선택권을 주었다.“그쪽 진짜 이름은 초상비예요. 전에 나를 도와 많은 일들을 해결했어요. 만약 기억을 되찾고 싶다면 내가 도와주고, 여기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면 평생 쓸 수 있는 돈을 줄게요.”초상비에게 있어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었다.혹시나 본인의 과거에 가정이
사장이 바로 초상비였다.그런데 초상비와 만났을 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서 방금 떠본 것이었다.한참을 관찰한 결과 그를 모른 척 시치미를 떼는 것은 아니었다.어쩌면 머리라도 다쳐서 정말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때 멀리서 어떤 손님과 초상비의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손님, 계산하고 가셔야죠!”초상비가 일행의 앞을 막았다.“꺼져! 용하의 새끼. 죽고 싶어?”바이크 조끼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 뚱뚱한 남자가 으르렁거렸다.뒤에 같은 차림새의 일행이 있는 것을 보니 오스크국의 세력인 폭주족 같았다.“상준, 그만둬.”그때 주방에서 외국 여성이 나와 초상비의 옷자락을 가볍게 당겼다.“카리나, 놈들이 매일 와서 공짜로 먹어. 더는 참을 수 없어. 오늘 반드시 돈을 받고야 말겠어.”초상비는 일행을 노려보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용하의 새끼야, 마누라 예쁘다. 우리가 데려가도 되지?”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초상비를 옆으로 밀치고 카리나의 손을 잡으려 했다.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공짜로 얻어먹고 다니는 놈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어디 가나 존재하는 것 같았다.“내 아내를 건드리지 마!”열받은 초상비가 주먹을 세게 날리자 남자는 면상을 맞고 문밖으로 날아갔다.‘기운을 사용했어.’익숙한 기운에 염구준은 사장이 초상비가 맞다고 더 확신했다.그런데 그가 사용한 기운이 불안정한 것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보스가 죽었어. 저놈에게 복수하자!”일행은 보스의 상태를 살피더니 금속 막대기를 들고 전부 초상비에게 달려들었다.그런데 초상비는 무공마저 잊어버렸는지 카리나를 부둥켜안고 얻어맞고 있었다.전신지상의 고수는 기운을 끌어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구타를 견딜 수 있다.“멈춰요. 제발 그만 때려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카리나는 울면서 도움을 청했다.하지만 손님들은 싸움에 말려들까 봐 문 밖에 나가서 지쳐보고 있었다.“씨발 년아, 이게 다 너 때문이야!”한 남자가 금속 막대기를 들더니 카리나의 뒷통수를 내리쳤다.슈우웅!그때 바
“귀신이야!”“죄송해요.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잔뜩 겁을 먹어서 벌벌 떨다니 방금 불을 질러 사람을 죽이려던 모습과 완전히 딴 사람 같았다.염구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왜 농장에 불을 질렀어? 누가 지시한 거야?”사람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런데 녀석들은 대답하지 않고 비수를 꺼내 염구준에게 돌진했다.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것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푸합!”염구준은 재빠르게 한 사람을 죽이고 남은 한 사람을 발밑에 밟고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누군지 알고 싶어?”살아남은 테오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그제야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더는 숨기지 않았다.“나도 누군지 몰라. 방금 한 남자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이 농장에 불을 지르면 2억을 준댔어. 통쾌하게 계약금 절반을 먼저 줬어. 아는 걸 다 말했으니까 날 살려줘.”그 말에 염구준의 안색이 굳어졌다.놈들은 교묘한 수법으로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임무를 맡긴 것이었다.이 방법은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그들의 행방은 누구도 추적할 수 없게 되었다.“다시는 이런 짓거리하지 마.”염구준은 한마디 경고하고는 과감하게 살해했다.두 애송이의 뒤를 캐도 아무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삼촌, 이제 우리 어떡해요?”제이든은 활활 타오르는 농장을 멍하니 쳐다보며 질문했다.아직도 부모는 행방불명이고 집은 불에 타버려서 완전히 외톨이 신세가 되어버렸다.염구준은 무슨 방법을 찾아냈는지 방정식을 적은 노트를 펼치고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노엘테크놀로지. 오스크국과 노트는 이 회사와 관련되어 있어. 일단 가서 보자.”비록 추측에 불과하지만 목표 없이 사방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보다 백 배 나을 것이다.목표가 생기자 제이든은 마음을 굳히고 염구준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노엘테크놀로지라는 회사에 가서 살펴볼 생각이었다.출발할 무렵에 염구준의 휴대폰이 울렸다.주작이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초상비의 위치가 라틴 마을에서 확보되었습니다. 구체적인 위
“뒤로 물러서 있어.”쾅!염구준은 호체기운을 강화하여 방사선 문을 힘껏 발로 찼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안의 물건은 이미 털려서 텅텅 비어 있었다.놈들이 뒤처리를 얼마나 깔끔하게 처리했는지 자그마한 단서마저도 찾아낼 수 없었다.이로서 염구준의 추측이 확신되었다.놈들은 손중석의 과학기술 성과를 노리고 온 것이었다.“맞다. 아빠한테 밀실도 있어요. 제가 위험에 닥치면 거기로 피신하라고 했어요.”제이든은 뭔가 생각났는지 다급하게 말했다.“거기로 가자.”염구준은 어떤 단서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별장 밖으로 나오자 제이든은 폐기된 강아지 집을 가리켰다.“저기 아래에 작은 공간이 있어요. 한번 가본 적이 있어요.”쿵!염구준은 바로 주먹을 날려 강아지 집을 부쉈다.그러자 정방형 모양의 입구가 나타나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보였다.그는 손바닥에서 불꽃을 일으키고 지하 아래로 떨어트렸다.지하 깊이는 대략 5미터 정도였다.염구준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제이든을 안고 번쩍 뛰어내렸다.어두컴컴한 지하에서 휴대폰 전등을 켜자 주변 물건들이 한눈에 들어왔다.대부분 사진과 잡동사니들이 놓여 있어서 별로 특별한 점은 없었다.그때 제이든이 잡동사니를 담은 큰상자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그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 편지 한 통과 노트 한 권이 들어 있었다.마음이 다급해진 제이든은 편지를 뜯어서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편지를 읽던 그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염구준도 곁에 다가가 대략적으로 읽어보았다.제이든의 아버지가 남긴 편지였다.편지 첫 줄에 제이든이 이 편지를 볼 때 손중석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 거고, 마지막 줄에 자신의 시체를 찾지 말고 잘 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중간 내용은 모두 위로와 설득하는 말들이었다.편지를 읽은 후, 제이든은 노트를 집어들고 펼쳤다.노트에 알아볼 수 없는 방정식들이 적혀 있어서 염구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삼촌, 이게 다 뭐예요?”염구준이 노트를 받고는 펼쳐 보았다.“아마도 에너지 개발에 관한 방정식 같아
지금 상황에서 제이든을 설득해도 소용없으니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대략 2시간을 달렸을 때, 제이든이 흥분하면서 손가락으로 전방의 농장을 가리켰다.“삼촌, 저기가 제 집이에요!”염구준은 그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넓은 농장 주변에 포도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고 가운데 4층짜리 복층 별장이 있었다.여기가 용하라면 땅값만 해도 2000억 가치에 달할 것이다.“너희 집은 평범하고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다고 하지 않았어?”염구준은 의아했다.“맞는데요. 포도를 심고 술도 빚거든요.”제이든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식으로 명쾌하게 대답했다.‘맙소사.’염구준은 할 말을 잃었다.농장 규모만 봐도 제이든의 집은 그렇게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아무리 재산이 있어도 놈들의 표적이 될 정도는 아니고, 심지어 사례금까지 주면서 제이든을 찾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농장에 도착할 무렵, 차가 멈추지 않았는데도 제이든은 벌써 뛰어내려 흥분하며 달려갔다.“아빠, 엄마. 제이든이 왔어요. 집에 계세요?”지금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감추지 않았다.그런데 이상하게 한참을 불렀는데도 매미 소리 외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농장은 텅 비었고 포도나무도 한동안 관리하지 않았는지 말라 있었고 잡초도 무성하게 자라있었다.염구준은 주변에 매복이라도 있을까 걱정되어 제이든의 뒤를 바짝 따랐다.그리고 혹시나 단서가 남아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두 사람은 별장에 들어갔을 때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아빠, 엄마. 어디 가셨어요?”마음이 초조한 제이든은 눈물을 뚝뚝 흘렀다.그제서야 부모님이 왜 자신을 용하에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이런 위험을 대비해 피신을 보낸 것이었다.이럴 줄 알았다면 죽어도 부모님과 함께 있었을 텐데 너무 후회되었다.한참 뒤에 염구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 울었으면 눈물을 닦아. 남자답게 모든 것에 맞서야지.”그동안 제이든과 한 집에서 살면서 이미 가족으로 받아들여서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솔직히 이 말은 어릴 적 본인에게
염구준은 호텔을 찾아 하룻밤을 묶고 이튿날에 제이든의 집에 찾아갈 생각이었다.몰래 그들을 주시하던 일행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용하를 벗어났으니 돈 때문에 그를 살해하려는 놈들이 적지 않지만 말이다.그 사이, 특수 경로를 통해 비행기 사건을 전달받은 손가을은 남편이 걱정되어 안부 전화를 걸었다.그런 아내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염구준은 몇 시간이나 설명했다.하루 종일 바쁘게 보냈더니 제이든은 마음과 몸이 지쳐 눕자마자 잠들었다.그러다 가끔씩 꿈결에 부모를 찾았다.염구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하면서 몸을 회복했다.방금 비행기 착륙 속도를 억제하느라 기운을 많이 소진했다.타닥타닥!한참 회복하고 있을 때 밖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놈들은 왜 죽으러 자기 발로 찾아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쿵!밖에서 갑자기 문을 박차더니 주먹만큼 큰 타원형 물건을 방으로 던졌다.수류탄이었다.염구준은 수류탄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부드럽게 기운을 발사하면서 복도로 튕겨버렸다.쾅쾅!몇 초 후, 일련의 폭발소리가 울리면서 복도가 불바다가 되어버렸다.주변에 뿌연 연기가 짙게 피어오르고 소방 경보 울림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스프링쿨러에서 물이 사방으로 뿌려졌다.이어서 투숙객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면서 허겁지겁 밖으로 피신하느라 호텔은 난장판이 되었다.해외에서 워낙 무기 단속이 소홀하여 이런 수류탄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무슨 일이에요?”폭발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제이든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아무것도 아니야. 죽음을 자초하는 놈들이 찾아왔었어.”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창밖을 주시했다.그를 노리는 놈들이 적지 않았다.밖에서 습격한 놈은 이미 불바다에 타죽고 창 밖에 아직 몇 명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쿵!그 순간 세 그림자가 유리창을 깨고 들어오더니 자기들끼리 외국어로 말했다.“저놈을 죽이면 40억을 벌 수 있어!”염구준은 그들의 기운으로 종사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감지했다.정말 화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이런 실
처음으로 충돌할 때 비행기가 조금 변형되었지만 다행히 사고는 발생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착륙했다.“어서 승객들 구조해!”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대기 중이던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구조 작업을 진행했다.한편, 칠흙처럼 어두운 해변가에 두 그림자가 서 있었다.바로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서 간 염구준과 제이든이었다.“사람 살리는 게 참 힘들다.”염구준은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일반인 100명을 죽이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지만 살리려면 혼신의 힘을 써야 했다.그때 공항과 멀지 않은 어느 빌딩 옥상에서 두 그림자가 와인잔을 들고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흑풍, 당신의 계획이 실패했군요.”푸른 눈동자에 금발인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니케르 공작, 염구준은 만만한 놈이 아니에요. 이것은 공작께 드리는 첫 대면 선물입니다.”흑풍은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계획이 실패한 것에 핑계를 댔다.그래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지난번 바위성 대결에서 중상을 입고 도망친 그는 계속 염구준을 상대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관두죠. 오스크국에 온 이상 저놈을 상대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니케르 공작은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뿐, 전혀 개의치 않았다.오스크국에서 그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으니 일개 용하인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공작이 나선다면 오스크국에서도 어느 정도 봐주실 텐데,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흑풍은 염구준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알리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을 치켜세웠다.오스크국은 중립국으로서 황실과 귀족들이 실세를 장악하고 있지만 공작은 두 명밖에 없었다.“아첨할 필요 없습니다. 그쪽은 연락이 되었습니까?”니케르 공작이 엄숙하게 물었다.“그쪽에서 염구준에게 현상금을 걸고 반보천인 고수들도 보낸다고 약속했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흑풍은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 내용을 보여주었다.두 사람은 워낙 영리해서 쉽게 상대방을 믿지 않으니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아주 좋습니다. 저들이 나설 때 내가 힘을 보탠다면 염구준을 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