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서윤이 살아있는 모습을 본 장윤형은 감격한 얼굴로 흥분해서 달려갔다.“서윤아, 다치지는 않았어? 어서 보자!”장윤형은 그녀에게로 달려가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그런데 장윤형이 그녀를 걱정하고 있을 때 반서윤은 갑자기 차갑게 말했다.“꺼져!”장윤형은 반서윤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걸 알고 서둘러 말했다.“서윤아, 미안해.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내가 그때 너무 놀라서, 당황해서 그랬어. 그러니까...!”“장윤형, 다시 한번 말하는데 꺼져! 난 너만 보면 역겨워. 알아?”반서윤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서윤아, 날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돼? 생사의 갈림길에서는 누구라도 두려워할 거라고! 장담하는데 윤구주 그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가 우선이었을 거야!”장윤형은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장윤형, 너 정말 뻔뻔하다. 감히 윤구주 씨와 널 비교하려고 들어? 그거 알아? 윤구주 씨가 아니었다면 난 이미 죽었을 거야!”그 말을 들은 장윤형은 입을 뻐끔거리면서 뭔가 더 변명하려고 했다.그런데 반서윤이 다시 말했다.“지금부터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장윤형. 너처럼 용기도 없고 오기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인간쓰레기 따위 난 관심 없으니까. 내가 평생 남자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고 해도 너 같은 걸 마음에 들어 할 리는 없어!”반서윤이 그렇게 말하자 장윤형은 이번 생에 반서윤과 잘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흥, 네가 이렇게 정 없는 애인 줄은 몰랐다. 그래, 갈게!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그 윤구주라는 사람은 아마 산에서 바위에 맞아 죽었을 거야. 하하하하!”장윤형은 크게 웃으면서 떠났다.반서윤은 혼자 그곳에 남아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하치카미 산이 무너진 뒤 이미 5, 6시간이 흘렀다.수색대는 산 위에 있던 모든 관광객을 산 아래로 대피시켰고, 이제 하치카미 산은 계엄령이 떨어져서 완전히 폐쇄된 상태였다.반서윤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윤구주를 찾지 못했다.
윤구주는 스사노오 귀신의 음령을 꺼낸 뒤 봉안보리구슬로 된 팔찌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천 년 된 빙설화도 꺼냈다.세 개의 천 년 된 한기를 지닌 보물 중 오직 빙설화만이 순수한 천년초였다.그 외 봉안보리구슬과 천 년 된 스사노오 귀신의 음령은 천년초는 아니었다.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중요한 건 이 세 물건을 이용해 피갈이 단약을 만든다면 윤구주 체내에 있는 기린화독을 없앨 수 있다는 점이었다.세 개의 한기를 띤 보물이 나타나자마자 하치카미 산은 곧바로 엄청난 한기에 휩싸였다.산꼭대기에는 두꺼운 얼음이 쌓였다. 마치 한겨울이 된 듯한 광경이었다.번뜩이는 두 눈동자가 손안의 세 보물을 바라보았다. 윤구주의 눈동자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늘을 찌를 듯한 살기가 치솟아 올랐다.그는 머나먼 동쪽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문아름, 두고 보자! 피갈이 단약을 만들어 기린화독을 없앤 뒤 전성기 때로 돌아간다면 널 죽여버릴 거야!”차갑게 말한 뒤 윤구주는 손을 움직여 산꼭대기의 동서남북 네 방향을 향해 네 개의 진법 흔적을 남겼다.그 진법 흔적이 나타나자 눈에 보이지 않는 현기들이 거대하고 빛나는 보호막을 형성하여 윤구주와 산꼭대기를 전부 뒤덮었다.그것은 차단 장벽이었다.윤구주는 곧 피갈이 단약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말아야 했다.이 차단 장벽은 모든 방해를 막을 수 있었고, 새와 벌레도 이 장벽을 통과하기 어려웠다.장벽을 만들어낸 뒤 윤구주는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이리와!”슉슉슉!스사노오의 음령, 봉안보리구슬, 천 년 된 빙설화가 윤구주의 앞으로 날아왔다.“연단 시작!”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두 손을 모았고 쾅 소리와 함께 엄청난 청색 소생의 기운이 그의 두 손바닥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것은 그의 봉왕팔기 중 하나인 소생술이었다.소생술은 의도 중의 삼라만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오래된 연단술도 포함했다.윤구주가 소생술을 펼치자 응집된 청색 현기가 솥이 되어 갑자기 윤구주의 앞에 나타났다.그
현재 하치카미 산은 완전히 폐쇄되었다.게다가 산 아래 머물던 관광객들도 전부 강제 대피 되었다.지금 하치카미 산기슭의 작은 마을에는 부성국의 무장한 군인들뿐이었다.밤하늘 아래, 수십 명의 중무장을 하고 중화기를 든 군인들이 하치카미 산 아래 서 있었다. 그들은 안색이 어두웠고 다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어때? 드론에 뭔가 찍혔어?”질문을 한 사람은 덩치가 크고 몸집이 우람한 부성국 남자였다.군복을 입은 남자는 경비대 대장 이노우에 마노였다.그는 경비대 특수부대 지휘관이었다.“대장님, 저희 드론은 산꼭대기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중무장한 부하 한 명이 보고했다.“응? 드론이 왜 산꼭대기까지 못 가?”이노우에 마노는 그 말을 듣더니 짙은 눈썹을 찡그렸다.부하가 서둘러 말했다.“왠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보낸 드론은 산꼭대기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도착하면 곧바로 무시무시한 기류에 막혀버립니다. 심지어 위성통신조차 산꼭대기에 접근하지 못합니다.”그 말을 들은 이노우에 마노는 구릿빛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그럴 리가. 아메 신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드론조차 가까이 갈 수 없는 거지?”이노우에 마노의 안색은 아주 나빴다. 그는 어두운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들은 윤구주가 진법을 이용해 하치카미 산꼭대기에 장벽을 만들었다는 걸 당연히 몰랐다.드론뿐만 아니라 새 한 마리조차 윤구주의 방어 진법을 꿰뚫을 수 없었다.이노우에 마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갑자기 말했다.“젠장, 설마 그 관광객들의 말이 사실인가?”그렇게 말한 뒤 이노우에 마노의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는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하치카미 산꼭대기가 무너진 뒤 이노우에 마노는 곧바로 천여 명의 군인들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구조하면서 동시에 조사를 진행했다.신전에 가려고 산에 올랐던 신도들과 관광객들에게 물은 뒤 그는 결론을 하나 얻었다.아메 신전에 천둥이 치는 듯한 폭발
이노우에 마노가 명령을 내렸다.“네!”훌륭한 전투 장비를 갖춘 부성국의 특전사들이 일렬로 서서 마치 독사가 기어가는 것처럼 산꼭대기를 향해 가고 있었다.그들은 이노우에 마노가 파견한 제1돌격대였다.20여 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그들 부대는 전투 기술이나 여러 가지 기량 면에서 모두 일류였다.그들은 현재 조용히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30분쯤 뒤, 중무장한 특전사들은 산꼭대기와 아주 가까워졌다.더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갑자기 제일 앞에 있던 소대장이 오른손을 들어 멈추라고 지시했다.그의 제스처를 본 특전사들은 모두 멈칫했다.“소대장님, 왜 갑자기 멈춘 겁니까?”한 특전사가 물었다앞에 있는 남자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산꼭대기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다들 이 산꼭대기와 가까워질수록 이상하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어?”“이상하다고요? 무슨 뜻입니까?”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산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온도가 점점 더 낮아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주위에서 새 한 마리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특수부대 소대장이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그들은 문득 깨달았다.그랬다.그들이 하치카미 산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주변 온도가 갑자기 낮아지기 시작했다.처음에는 하치카미 산의 해발이 높아서 그런 건 줄로 알았는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엄청난 한기가 느껴졌다. 심지어 바위에도, 땅에도 흰색의 서리가 한 층 껴있었다.가장 이상한 점은, 이 산꼭대기에서는 새 소리도,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이 산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감싸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소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느꼈습니다.”“젠장, 정말 산에 올라갔던 사람들 말처럼 이 산에 금빛 신이나 용이 있는 걸까요?”팀원들의 말에 사람들은 점점 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다들 무서워하지 마. 난 우리의 실력이라면 그 어떤 기괴한 것도 모두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소대장 다나카는 팀원들이 두려워하자 곧바로 위로했다.“다들 날 바
“사람이 있어!”다나카는 군용 망원경으로 윤구주를 본 순간 큰 목소리로 외쳤다.다른 이들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지니고 있던 총을 들었다.“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노우에 대장님 말씀이 맞았어. 누군가 아메 신전을 고의로 파괴한 것이었어!”다나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표정이 굳어졌다.“어서 이노우에 대장님에게 연락해서 저놈을 사살해야 하는지 물어봐!”다나카가 명령을 내리자 그의 뒤에 있던 특전사들은 곧바로 무전기를 이용해 연락했다.잠시 뒤, 산 아래에 있던 이노우에 마노에게서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지시를 받은 다나카는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저격수!”다나카가 말하자마자 곧바로 저격총을 들고 있던 특전사 한 명이 달려왔다.“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지금 당장 산꼭대기에 있는 저놈을 죽여!”저격총을 든 특전사는 명령을 받들었다. 그는 곧바로 비교적 높은 위치를 찾아서 엎드린 뒤 차가운 총구를 산꼭대기에 있는 윤구주에게 겨누었다.어두컴컴한 산꼭대기.윤구주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그의 앞에는 청색 현기로 만들어진 솥이 기괴한 모습으로 회전하고 있었고 솥 아래에서는 금빛 화염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화염이 불타오르면서 짙은 기운이 솥 안에서 발산되었다.그런데 바로 이때 차가운 저격총의 총구가 윤구주의 머리를 겨누었다.저격총의 총구가 윤구주의 머리에 정확히 겨눠지는 순간, 다나카가 명령을 내렸다.“쏴!”탕!총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총알은 거침없이 윤구주를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총알이 윤구주와 수백 미터 떨어져 있을 때, 푹 소리와 함께 빛나는 장벽이 총알을 막았고 거침없이 날던 총알은 보이지 않는 힘에 가로막혀서 결국 바닥에 떨어졌다.‘어?’“이럴 리가 없는데?”저격총에서 쏘아진 고속 탄환이 막히자 저격수뿐만 아니라 그의 소대장인 다나카도 넋이 나갔다.초속 1킬로미터의 고음속 탄환은 장갑차 한 대를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빛나는 장벽에 가로막혔다.저격수가 큰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먼 곳, 책상다리
다나카가 이끌던 특전사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자 산 아래 있던 이노우에 마노와 천여 명의 군인들도 총소리를 들었다.그들은 화룡 한 마리가 산꼭대기에 나타난 걸 보았다.그러나 겨우 몇 초 사이 산꼭대기는 다시 잠잠해졌다.이러한 상황을 본 경비대 책임자 이노우에 마노는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질렀다.“젠장, 무슨 상황이야? 다나카 일행은? 아까 산꼭대기에 용 같은 게 나타났었지?”건장한 체구의 이노우에 마노는 눈을 부릅뜨고 하치카미 산꼭대기를 바라보면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손에 검은색 태블릿을 들고 있던 부하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대장님, 다나카 일행과의... 연락이 끊겼습니다!”연락이 끊기다니?그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죽었다는 뜻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이십여 명의 팀원들이 겨우 몇 초 사이 산꼭대기에서 전부 죽었다는 걸 알게 된 이노우에 마노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대장님, 이제 어떡합니까?”한 부하가 물었다.이노우에 마노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 말했다.“기다린다.”“기다린다고 하셨습니까?”사람들은 당황했다.“맞아. 기다린다. 내가 알기로 아메 신전이 파괴된 뒤 3대 신전인 레나 신전, 이자 신전, 태양 신전에서 모두 이곳으로 대신관을 파견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무도계의 대선배들도 지금 오고 있다고 한다.”이노우에 마노의 말에 특전사들은 하나같이 흥분했다.레나 신전, 이자 신전, 태양 신전은 아메 신전과 함께 부성국의 4대 신전으로 불렸다.그중 태양 신전은 아주 막강했다.현재 아메 신전이 파괴되었으니 부성국의 다른 3대 신전에서는 당연히 대신관을 파견해 상황을 알아봐야 했다.그리고 3대 신전에서 대신관을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부성국 무도계의 고수들도 오고 있다고 한다.“젠장! 산꼭대기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틀림없이 죽을 거다!”이노우에 마노는 음산한 눈빛으로 산꼭대기 쪽을 바라보았다.부성국의 고수들이 하치카미 산으로 오고 있을 때 윤구주는 여
융합되는 과정은 30분가량 이어졌다. 쿵 소리와 함께 엄청난 굉음이 하치카미 산꼭대기에서 들려왔다.그리고 산꼭대기 전체가 아주 짙은 단약 향기에 휩싸였다.그 기운은 산뿐만 아니라 사방 수십 리를 뒤덮었다.산기슭에 있던 이노우에 마노가 이끌던 부성국의 군인들조차 코끝에 훅 끼치는 단약 향기를 맡았다.“무슨 냄새죠? 왜 약 향기가 나는 거죠?”제일 처음 입을 연 것은 얼굴이 긴 군인이었다.그가 입을 열자마자 다른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그렇네요. 아주 강한 약 향기가 나요. 하치카미 산에서 온 것 같은데...”“젠장, 아메 신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왜 이렇게 짙은 약 향기가 나는 걸까요?”모두들 의아한 얼굴로 하치카미 산을 바라보았다.산기슭에 주둔해 있던 부성국 군인들이 답답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목소리는 마치 우레와도 같아서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듣자 심장이 쿵쿵대고 몸이 덜덜 떨렸다.“이건 화진의 단약술입니다.”그 목소리와 함께 붉은 머리의 사람이 뒤에서 나타났다.붉은 머리에 험상궂은 얼굴, 독사 같은 눈빛, 흰색 가리기누를 입은 남자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주었다.그의 뒤에는 십여 명의 고모를 쓴 음양사들이 있었다.그들은 모두 흰색 가리기누를 입고 있었는데 가리기누 위에는 태양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경비대 대장인 이노우에 마노는 곧바로 그들을 알아보았다.“아, 태양 신전의 무토 대신관님! 전 이노우에 마노라고 합니다.”이노우에 마노는 곧바로 대신관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대신관은 부성국에서 아주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특히 태양 신전의 대신관이 그랬다.소문에 따르면 대신관들은 내공이 아주 뛰어나다고 하는데 도법을 달통했을 뿐만 아니라 부성국에서 아주 숭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무토 대신관은 부성국의 국왕을 만나게 되어도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로써 부성국에서 대신관의 위상이 얼
그 음양사들은 검은색의 긴 옷을 입고 있었고 가슴 쪽에 뱀이 그려져 있었다.“이자 신전의 나미 대신관님?”이노우에 마노는 요염한 여자를 바로 알아보았다.부성국에는 아메 신전, 이자 신전, 레나 신전, 그리고 가장 강한 태양 신전을 포함한 4대 신전이 있었다.4대 신전은 부성국에서 엄청난 지위를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 천 년 정도 되는 역사가 있었다.이자 신전의 여자가 나타나자 이노우에 마노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그러나 나미 대신관은 이노우에 마노를 무시하고 천천히 붉은 머리의 무토 대신관 앞으로 걸어가서 몸을 살짝 수그리며 말했다.“무토 대신관님, 오랜만이네요!”붉은 머리의 무토 대신관은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그러네요. 오랜만이네요.”“아메 신전이 파괴된 일로 무토 대신관님까지 오시다니, 저 화진 사람 실력이 꽤 강한가 보네요.”나미 토모코는 웃으며 말했다.붉은 머리의 무토 대신관은 싸늘한 눈빛으로 하치카미 산을 바라보았다.“10개국 간의 전쟁 이후 우리 부성국은 화진으로부터 이렇게 큰 모욕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화진 사람이 감히 우리 부성국에 쳐들어와서 파괴된 우리 부성국 신전에서 단약을 만들다니 정말 기막힌 일입니다.”“저 화진 사람 실력이 꽤 좋네요. 제가 알기론 그는 혼자서 아메 신전을 파괴하고 기타가와 신사를 몰살했어요.”나미 토모코가 말했다.“네? 그건 어떻게 안 겁니까?”무토 대신관이 물었다.나미 토모코는 기괴하게 웃더니 오른손을 움직여 말했다.“데려오거라.”그녀가 말하자 두 명의 음양사가 가녀린 여자를 데리고 왔다.자세히 보니 그녀는 야나가와 노아였다.“이 사람은 누구죠?”무토 대신관은 야나가와 노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야나가와 노아라고 기타가와 신사의 아가씨였습니다. 이번에 기타가와 신사의 수천 명 되는 문하생들이 죽었다죠. 야나가와 노아 씨가 그 광경을 직접 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아 씨는 그 화진 사람과 함께 지내기도 했었고요.”나미 토모코의 말 때문
유니스가 그렇게 얘기하자 다른 설국 대신들도 맞장구를 쳤다.“맞습니다. 여성이 어떻게 우리 설국의 국주가 된단 말입니까?”“비록 세나미 씨는 세나스 각하의 딸이긴 하지만 국주가 된다는 건 어림없는 일입니다.”설국 대신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윤구주는 단호히 말했다.“다들 똑똑히 들어. 난 오늘 당신들에게 통보하러 온 거야. 의논하러 온 게 아니라고. 알겟어?”그의 말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설국 대신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구주왕, 선 넘지 마세요! 우리 설국에서 감히 행패를 부리는 겁니까? 우리나라의 위엄과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까?”대학사 유니스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위엄? 금전에도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들이 감히 나라의 위엄을 입에 담아?”윤구주가 유니스를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전, 전, 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전 설국을 대표하여 항의합니다. 세나미 씨가 국주가 된다면 전 차라리 죽겠습니다.”유니스는 죽겠다면 위협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윤구주는 피식 웃었다.“죽겠다고? 그러면 내가 그 소망을 들어주지.”윤구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지현이 마치 총알과도 같이 날아가서 대학사의 가슴팍을 꿰뚫었다.피가 금전에 흩뿌려지면서 유니스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유니스가 윤구주의 손에 죽자 금전에 있던 설국 대신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졌다.세나미는 앞으로 나서더니 윤구주를 향해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질렀다.“왜, 왜 또 사람을 죽인 거야? 나랑 약속했잖아.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저자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는데 왜 날 원망하는 거지? 그리고 이렇게 고집불통인 노인네가 여기 남아있으면 설국의 미래에 방해만 될 뿐이야.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윤구주는 말을 마친 뒤 남은 설국 대신들을 바라보았다.“이젠 당신들 차례야. 얘기해 봐. 내 말대로 할 의향이 있는지.”윤구주가 그렇게 얘기하자 설국 대신들은 모두 겁을 먹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다
“구주왕, 당신은 우리 국주를 죽였어요. 게다가 우리 설국의 금전까지 점유했죠. 대체 뭘 어쩔 생각입니까?”이때 유니스 대학사가 앞으로 나서며 매섭게 말했다.윤구주는 그를 천천히 바라보며 말했다.“난 설국의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리고 싶어.”“정상으로요?”대신들은 놀랐다.“맞아.”윤구주는 말을 이어갔다.“난 죽어 마땅한 설국인들에게 다 벌을 주었어. 지금 설국은 국주의 자리가 비었지. 그래서 나는 설국의 새로운 국주를 정할 생각이야. 그래야만 설국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뭐라고?’“우리 설국의 새로운 국주를 정하겠다고 한 겁니까?”“그... 그럴 수 있나요?”윤구주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대신들은 모두 화들짝 놀랐다.이곳을 설국이고 윤구주는 심지어 설국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윤구주가 무슨 자격으로 설국을 대신하여 설국의 국주를 정한단 말인가?“구주왕! 우리 설국의 일에 화진인인 당신은 끼어들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설국의 국주는 당연히 설국 백성들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설국의 국주를 정한다는 거죠?”유니스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난 윤구주니까. 난 설국의 존망을 정할 수 있어. 내가 설국의 존재를 허락한다면 설국은 존재할 수 있고 내가 설국을 망하게 할 생각이라면 설국은 망할 거야.”패기 넘치는 말이 윤구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윤구주는 자신이 한 나라의 존망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얼마나 놀라운가?“이... 이... 정말 너무 하는군요!”유니스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씩씩댔다.윤구주는 그를 아예 무시해 버렸다.“내가 당신을 괴롭힌다고 해도 당신이 뭘 어쩔 수 있지? 내가 지금 명령을 내린다면 화진의 병사 수십만 명이 이곳으로 몰려와서 설국을 공격할 거야. 믿기지 않는다면 어디 한 번 해보든가.”윤구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현재 화진의 병사들 수십만 명이 낙일성으로 향하고 있었다.윤구주가 명령을 내린다면 그들은 곧바로 설국을 평정할 수
설국 금전.천 년 가까이의 역사가 있는 대전은 엉망이었다.게다가 금전의 지반은 땅 밑으로 우묵하게 내려앉았다.백옥이 깔린 금전의 지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균열과 틈이 생겼다.이 순간, 유니스 대학사는 설국의 문무백관을 이끌고 금전 밖에 도착했다.커다란 금전을 바라보면서 유니스는 갑자기 눈빛이 혼탁해지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설국이 재앙을 맞이했군요.”길게 한숨을 내쉰 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백옥 계단으로 올라갔다.대신들은 그의 뒤를 따랐다.댕.댕.댕우렁찬 종소리는 아직도 끊이지 않았다.유니스는 설국의 문무 대신들을 이끌고 금전을 올랐고 곧 그들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세나미였다.“세나미 아가씨야...”“세나미 아가씨께서 살아계셨어!”세나미를 본 대신들은 모두 흥분했다.세나미는 이때 유니스가 문무 대신들을 데리고 온 걸 보고 빠르게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드디어 오셨군요!”유니스는 서둘러 말했다.“세나미 씨, 다치지는 않았습니까?”“네, 괜찮아요.”세나미가 말했다.“그런데 세나미 씨께서는 그 악마에게 납치당한 것 아니었습니까? 왜 그가 그냥 풀어준 거죠?”일부 대신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세나미가 말했다.“절 풀어준 이유는... 그가 우리 설국에 아주 중요한 일을 전하기 위해서예요.”“아주 중요한 일이요?”“그 악마는 우리 설국인들을 수도 없이 죽였어요. 심지어 국주님의 목까지 베었죠. 그런데 또 뭘 하려는 거죠?”유니스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세나미가 말했다.“여러분도 아시죠? 화진의 구주왕 말입니다.”그녀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문무 대신들은 모두 침묵했다.구주왕.설국에 있어서는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다.지금 때문만이 아니라 6년 전 구주왕이 설국을 항복시켰기 때문이다.“그가 천하무적의 구주왕이면 뭐 어떤가요? 이 세상에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겠어요?”유니스는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유니스 대학사님, 제 말을 들어주세요.
윤구주가 설태현의 목을 벤 뒤로 설국의 종은 계속해 울었다.그렇게 종은 1박 2일을 울렸고 그러다 이 순간 갑자기 멈췄다.그리고 대신에 힘이 느껴지는 종소리가 들려왔다.그 종소리는 설국 금전 조정에서 국가 대사를 의논함을 의미하는 종소리였다.설국 수도의 거리 양쪽에 있던 수많은 백성들이 그 종소리를 들었다. 그 종소리가 설국 수도에 널리 울려 퍼졌을 때 백성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금전을 바라보며 의논했다.“어떻게 된 일이지? 우리 금전의 종소리가 멈췄어. 대신에 조정에서 국가 대사를 의논하는 의미를 종소리가 울리는데?”“설마 우리 화진을 침략했던 그 악마가 떠난 걸까?”“모르겠어.”백성들이 의논하고 있을 때 황성의 한 대학사부 밖에는 설국의 문무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눈앞의 대학사부는 화진의 재상부와 비슷했다.설국의 대학사는 유니스라고 불렸다.유니스는 설국 백관의 우두머리이자 세 명의 국주의 중용을 받았던 원로로서 설국에서의 지위가 높았다.이때 금전에서 우렁찬 소리가 대학사부에 울려 퍼졌다.“대학사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우렁찬 소리와 함께 백발에 건장한 체구를 가진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그가 바로 설국의 원로 유니스였다.유니스가 나타나자 그곳에 있던 문무 대신들 모두 예를 갖추었다.“대학사님을 뵙습니다.”유니스는 그 자리에 있던 문무 대신들을 쓱 훑어보더니 천천히 말했다.“다들 왔습니까?”“네, 대학사님.”“대학사님, 설국이 재앙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다른 나라에서 알려졌습니다. 더욱 괘씸한 것은 지금까지 그 어떤 나라도 지원하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이때 군복을 입은 설국의 장군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분노에 차서 말했다.“그리고 그 밖에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판인국과 연국에서는 우리의 대사관을 폐쇄했습니다.”한 신하가 입을 열었다.유니스는 두 사람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들면서 비참하게 웃으며 말했다.“약한 나라에는 외교가 없다는 말이 있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설국은 아주 작은 나라였다.게다
맞는 말이었다.윤구주는 비록 설국인들을 많이 죽였지만 사실 그가 죽인 사람들 중 죽어 마땅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흑여산맥 국경 지역에서 설국의 10만 병사들은 화진의 백성들을 박해했다.그들이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설국의 군신인 세나미가 모를 리가 없었다.그리고 그의 아버지 세나스도 마찬가지였다.그동안 세나스는 계속해 설국의 병력을 키우며 6년 전의 패배로 얻은 치욕을 씻으려고 화진과 전쟁을 치를 생각이었다. 세나미는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윤구주가 만약 설국 국주를 죽이지 않고 두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된다면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윤구주의 말을 들은 세나미는 충격을 받았다.“나는 항상 죽어 마땅한 사람들만 죽였어. 내가 조금 전 얘기한 사람들 중 죽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있었나? 만약 내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든 날 찾아와 복수해. 하지만 명심해. 벌레만도 못한 설국이 감히 정말로 우리 화진과 전쟁을 할 생각이라면 사상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는 걸 말이야. 어쩌면 백만 명, 천만 명일 수도 있어. 심지어 나라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겠지.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너도 잘 알 거야.”윤구주의 말은 칼이 되어 세나미의 마음을 사정없이 후벼팠다.이 순간 설국의 군신인 세나미는 넋을 놓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녀는 그제야 윤구주가 한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비록 윤구주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람이고 설국인을 2, 3만 명 가까이 죽이고 설국 국주의 목까지 베었지만, 윤구주의 말대로 설국과 화진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죽는 사람은 절대 2, 3만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어쩌면 백만 명, 천만 명... 심지어 모든 설국인이 죽을 수도 있었다.윤구주의 엄청난 실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6년 전 설국의 백만 대군이 윤구주로 인해 낭파산에서 죽었던 걸 떠올린 순간 세나미는 정신이 문득 들었다.그녀는 멍하니 그곳에 서 있다가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그녀
그녀는 거의 1분 가까이 넋을 놓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파란색 눈동자를 크게 뜨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지금... 지금 생사인을 그냥 없앤 거야?”“그러면 내가 뭘 하려는 건 줄로 알았는데?”윤구주는 고개를 돌려 세나미에게 되물었다.세나미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그녀는 윤구주가 자신의 미모에 반해서 옷을 벗으라고 한 건 줄 알았다.그런데 그는 사실 그녀의 생사인을 풀어줄 생각이었을 뿐이었다.그녀가 괜한 생각을 한 걸까?세나미는 그런 생각이 들자 얼굴이 화끈거렸다.“일단 옷부터 입어.”윤구주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세나미는 그제야 자신이 나체임을 깨닫고 서둘러 바닥에 널브러진 옷들을 주워서 입었다.그런 뒤 그녀는 가만히 옆에 서 있었다.움직이지도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했다.윤구주가 비록 그녀의 생사인을 풀어주기는 했지만 그녀를 죽이는 건 여전히 그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그러니 그녀는 감히 도망칠 수가 없었다.“왜... 왜 날 죽이지 않는 거야? 왜 날 놓아주려는 거야?”세나미는 용기를 내서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난 처음부터 널 죽일 생각이 없었거든.”윤구주의 말은 사실이었다.흑여산맥에서 세나미가 화진의 유목민들을 놓아주고 그들에게 물과 식량을 나눠주는 걸 본 순간부터 윤구주는 이미 측은지심이 생겼다.설국은 처단해야 했지만 세나미는 처단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국적이 다르니 입장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당신이 날 죽이지 않았다고 해도 난 당신에게 고마워할 생각이 없어. 난 오히려 당신을 증오해!”세나미는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세나미는 설국인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윤구주의 손에 죽었다.심지어 윤구주는 설국의 국주의 목까지 베었다.가족의 원수이며 설국의 원수인 윤구주를 그녀가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윤구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날 증오하는 건 상관없어. 날 죽일 실력이 된다면 언제든 날 찾아와서 복수해. 하지만 지금은 한 가지 해줘야 할 일이 있어.”윤구주는 그렇게 말
국제중재기구 출신의 두 사람이 떠난 뒤 윤구주는 다시 설국 금전으로 돌아왔다.아수라장인 설국 금전 안에서 세나미는 멍하니 서 있었다.조금 전 세나미는 국제중재기구의 사람들이 윤구주를 제압할 수 있기를 바랐다.그러나 윤구주가 파란 머리카락의 여자를 일격에 죽이는 걸 본 순간, 그녀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앞으로는 설국을 위해 나서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금전 안, 윤구주는 안으로 들어간 뒤 세나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공기 취급했다.윤구주는 과거 설국 국주가 앉았었던 의자에 앉은 뒤 세나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이리 와.”마치 하인을 부르는 듯한 태도였다.그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세나미는 겁에 질린 채 윤구주의 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세나미가 얌전히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자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겉옷 벗어.”‘뭐라고?’그 말을 들은 순간 세나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개를 들었다.겉옷을 벗으라니?“이 악마... 뭘 하려는 거야?”세나미는 두려운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면서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윤구주는 짜증 난 표정이었다.“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벗으라면 벗어!”“싫어! 죽일 거면 그냥 죽여. 하지만 날 모욕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세나미는 분노 때문에 눈이 벌게졌다.한때 설국의 군신이자 설국 미래의 황후였던 그녀가 윤구주의 앞에서 옷을 벗는 치욕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그러나 윤구주는 더 설명해 주지 않았다.그가 손을 올려서 손가락을 움직이자 기운 하나가 세나미 가슴 쪽의 혈 자리에 닿았다.그 혈 자리를 눌린 세나미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이 악마,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만약 날 모욕한다면 귀신이 되어서도 절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세나미가 필사적으로 울부짖어도 윤구주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손가락을 움직였고 그 순간 기운 하나가 세나미의 옷을 찢
밀라나가 다시 한번 말했다.밀라나는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자랐다.그녀는 서방 제2 제국 황실 공작의 딸이었다.어렸을 때부터 유럽 교황청에서 생활한 그녀는 아시아 국가를 무시했고 그래서 아주 거만했다.밀라나는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돌려 눈앞의 윤구주를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어요. 구주왕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우리 국제중재기구에 불경을 저지른다는 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다름없어요! 화진은 동방의 용이라고 불리지만 아무리 강해도 세계를 적으로 돌리면 결국 망하게 될 거예요.”밀라나의 말을 듣던 윤구주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천천히 왼손을 들었고 기다란 그의 손가락은 허공에 멈췄다.손을 들어 올린 순간, 윤구주의 훤칠한 몸에서 눈부신 흰빛이 뿜어졌다.그 흰 빛은 바로 윤구주의 적선의 빛이었다.흰빛이 나타나자 어마어마한 살기가 밀라나를 둘러쌌다.“조금 전 그 말만으로도 당신은 죽어 마땅해.”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허공에서 살짝 움직였다.그 순간 무시무시한 적선기가 지현으로 변했다.그 공격은 신도 없앨 수 있고 악마도 벨 수 있었다.그 모습을 본 순간 옆에 서 있던 레이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구주왕, 안 됩니다... 밀라나는... 밀라나는 제2 제국 프로이트 공작의 하나뿐인 딸입니다!”그러나 윤구주는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이 세상에 감히 그를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촤악!빛나는 지현이 밀라나의 가슴팍을 꿰뚫었다.제2 제국 황실 출신의 밀라나는 그렇게 윤구주의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눈보라가 휘몰아쳤고, 운이 좋지 않았던 밀라나의 시체는 눈보라 속에서 쓰러졌다.그녀는 입을 벌리고 있었고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그런데 몇 초 사이, 그녀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눈보라 속에서 죽었다.제2 제국의 엄청난 천재가 윤구주의 일격에 죽을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게다가 상대는 국제중재기구의 일원이었다.윤구주는 밀라나를 죽
윤구주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가장 처음 놀란 것은 레이였다.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칠살 절정 강자인 레이는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어떻게... 어떻게 당신일 수가... 당신은 분명... 죽었는데?”레이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레져서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레이 님, 왜 그러세요?”건장한 체구의 아나스는 레이의 모습을 보고 서둘러 물었다.옆에 있던 팔이 잘린 밀라나는 궁금증이 생겼다.“저 사람은... 화진의 구주왕이에요. 6년 전 홀로 10국과 싸웠던 그자 말이에요!”레이는 윤구주의 신분을 얘기했다.‘뭐라고?’그 말에 아나스와 밀라나 모두 넋이 나갔다.구주왕?화진의 왕?윤구주를 본 아나스는 몸과 영혼 다 윤구주의 기운에 억눌린 것만 같았다.윤구주로 인해 팔이 잘린 밀라나는 안색이 종잇장처럼 창백했다.“화진의 구주왕이라고요? 이미 죽은 거 아니었나요? 설마 화국이 우리 10국을, 전 세계를 속인 건가요?”아나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윤구주를 본 순간, 그들의 몸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윤구주는 온몸이 흰빛으로 둘러싸였다.조각된 듯한 이목구비를 가진 윤구주는 마치 신처럼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국제중재기구에 날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윤구주의 목소리에 경멸이 어려 있었다.마치 국제중재기구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구주왕, 조금 전에는 저희가 무례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저희 국제중재기구는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칠살 절정인 레이는 윤구주를 본 순간 서둘러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옆에 있던 아나스와 팔이 잘린 밀라나는 레이가 윤구주를 향해 정중하게 예를 갖추자 완전히 넋이 나갔다.윤구주는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계속해 말했다.“국제중재기구는 아마도 설국 일 때문에 온 거겠지?”“...네.”레이는 비록 인정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국제중재기구가 왔으니 얘기해줄게. 설태현의 목은 내가 잘랐어. 설국의 백 년 국운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