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저희 대뿐만 아니라 우리 소씨 가문 대대손손 영광을 누리게 될 거예요!”집 안에서 소청하는 들뜬 얼굴로 아버지 소진웅에게 말했다.윤구주가 소진웅을 치료한 뒤로, 소진웅은 외출 한 번 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면서 식물을 다듬거나 불경을 외웠다.식물을 다듬고 있던 소진웅은 소청하의 말을 듣더니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쳤다.“대대손손 영광을 누릴 거라고? 네가 무슨 수로? 난 믿지 않는다!”“아버지, 절 무시하시네요! 네, 맞아요. 저로서는 저희 소씨 가문이 대대손손 영광을 누리게 할 수 없지만 아버지, 제게는 훌륭한 딸이 있잖아요!”소청하가 웃으며 말했다.“내 손녀가 왜?”소진웅이 물었다.“하하, 아버지, 아버지 손녀 이제 곧 결혼해요. 전 그 소식을 알려드리려 왔고요.”소청하가 계속해 말했다.“결혼? 누구랑?”소진웅이 서둘러 물었다.“누구긴요. 당연히 아버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시던 윤구주죠!”소청하가 자랑스레 말했다.“뭐? 저번에 날 치료해 줬던 그 윤구주 말이냐?”“네, 네! 맞아요! 아버지, 예전에 윤구주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잖아요. 윤구주가 우리 집 사위가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기도 했고요. 이제 만족하세요?”소청하의 말에 소진웅은 들고 있던 가위를 내려놓았다.“정말이냐? 내 손녀가 정말 윤구주랑 결혼을 한다고?”소진웅은 흥분에 겨워 물었다.“당연하죠. 제가 왜 아버지를 속이겠어요?”소청하가 말했다.“하하, 좋다, 좋아!”소진웅은 무척 기뻐했다.비록 윤구주와 많이 만나본 건 아니지만, 그는 항상 윤구주를 자신의 손주사위로 여겼었다.그런데 손녀가 정말로 윤구주와 결혼하게 됐다고 하자 몹시 기뻤다.“둘째야, 네가 드디어 살면서 옳은 일을 하나 하는구나!”소진웅이 말했다.소청하는 원망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웃으며 말했다.“아버지도 제가 이번에는 옳은 일을 한 것 같으세요?”“당연하지! 구주 걔가 얼마나 훌륭한데! 인물도 훤하고 의술도 뛰어나잖니? 이렇게 잘난 손주사위를 두게 되었는데
소청하는 그곳에서 나온 뒤 곧바로 소채은을 찾으러 가서 결혼 날짜에 대해 의논해 보려 했다.그러나 소채은 혼자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그래서 소청하는 소채은에게 얼른 윤구주를 찾아가서 물어보라고 했다.소채은은 별로 급하지 않았지만 소청하가 본인보다 더욱 급해하니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알겠어요. 제가 구주에게 물어볼게요.”소채은은 말을 마친 뒤 차를 타고 윤구주를 찾으러 갔다.가는 길에 윤구주에게 전화한 뒤 그녀는 곧장 용인 빌리지로 향했다.산기슭.윤구주는 그곳에서 소채은을 기다리고 있었고 잠시 뒤 소채은이 차를 타고 도착했다.오늘 그녀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검은 머리카락은 캐주얼하게 하나로 묶어 올렸다. 흰 피부에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그녀는 어딜 가든 항상 주목을 받았다.“구주야!”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소채은은 단번에 윤구주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윤구주는 행복한 얼굴로 품 안의 그녀를 바라보았다.이것은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한 뒤로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구주야, 요 이틀 뭐 했어? 나 안 보고 싶었어?”소채은이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보고 싶었지. 매 순간 보고 싶었어!”윤구주가 대답했다.“정말?”“당연하지!”“흥, 그래야지. 난 너랑 결혼하기로 했으니 넌 날 당연히 보고 싶어 해야지. 그리고 날 괴롭혀서는 안 돼!”소채은이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매일 네 생각을 만 번씩 할 거야. 그리고 영원히 널 괴롭히지 않을 거야!”윤구주가 다정하게 말했다.“헤헤, 역시 우리 구주가 최고라니까!”윤구주의 팔짱을 낀 소채은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구주야, 네가 사는 곳으로 가자. 나 너랑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어.”소채은은 윤구주를 잡아당기면서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좋아. 자, 저기 빌리지로 가자.”윤구주가 용인 빌리지를 향해 걸어갔다.“잠깐만!”소채은이 갑자기 윤구주를 불러 세웠다.“왜 그래?”윤구주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구주야, 너 설마 저 용인 빌리
윤구주는 소채은의 손을 잡고 그녀와 함께 용인 빌리지로 향했다.소채은은 이런 곳에 처음 와봤다.산길을 오르며 구름이 둥둥 떠 있는 하늘을 바라보던 소채은은 눈앞의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윤구주의 뒤를 따라서 용인 빌리지 입구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목소리 하나가 소채은의 귀속을 파고들었다.“안녕하세요, 형수님!”목소리가 너무 큰 탓에 소채은은 깜짝 놀랐다.고개를 돌린 소채은은 입구 쪽에 듬직한 덩치의 남자가 서 있는 걸 보았다.마치 호랑이와도 같은, 온몸에서 엄청난 기세를 내뿜는 남자였다.그런 그가 미소 띤 얼굴로 소채은을 바라보고 있었다.“방금... 절 뭐라고 부르셨어요?”갑작스레 나타나는 민규현 때문에 소채은은 말문이 막혔다.“형수님이라고 불렀습니다!”민규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형수님?그 말을 들은 소채은은 고개를 돌려 의아한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방금 형수님이라고 불렀어. 내가 민규현 형님이거든!”그 말에 소채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옆에 있던 민규현이 입을 열었다.“형수님,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 민규현은 성격이 조금 투박하고 말주변도 없고 말투도 거칠긴 하지만 앞으로 형수님께 성가신 일이 생기신다면 언제든 절 불러주세요. 강성시에서, 더 나아가 화진에서 누군가 감히 형수님을 괴롭힌다면 저 민규현이 그 빌어먹을 놈을 죽여버릴 겁니다! 혹시 그걸로 부족하시다면 그놈 조상들의 무덤을 파고 그들의 시체를 꺼내 채찍질하겠습니다!”소채은은 남자의 말에 넋이 나갔다.그녀는 이 우람한 몸집의 남성이 대체 누군지 생각하고 있었다.‘왜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겠다는 거지? 그리고 조상들의 무덤을 파고 그들의 시체를 꺼내 채찍질하겠다고?’“호의는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을게요!”소채은은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면서 말했다.암부 3대 지휘사 중 한 명인 민규현은 그동안 민도살이라고 불렸다.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채찍질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아주 흔한 일이
문지기라고 불린 천하회 구성원들은 찍소리 하지 못하고 오히려 웃는 얼굴로 소채은을 맞이했다.이러한 상황에 소채은은 경악했다.그녀는 윤구주를 따라 안마당으로 향했고, 안으로 들어서자 서둘러 물었다.“구주야, 너 정말 여기 살아?”“응.”윤구주는 소채은에게 물을 따라주면서 말했다.“그런데... 이렇게 많은 돈이 어디서 난 거야? 그리고 문 앞에 있던 사람들,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소채은은 바보가 아니었다.조금 전 소채은은 천하회의 노정연과 그 뒤의 사람들의 차림새를 보고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우아한 옷을 입은 아름다운 노정연이 유독 그랬다.소채은은 노정연이 입고 있는 옷이 자수계에서 가장 유명한 운자법으로 된 것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노정연이 입고 있는 옷은 아마 2,000만 원은 족히 될 것이다.게다가 노정연은 훌륭한 몸매에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였다.그런 사람을 일개 문지기라고 하는데 누가 믿을까?“채은아, 이 일은 설명하자면 좀 복잡해. 결혼한 뒤에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윤구주는 말을 아끼며 얼버무렸다.“참, 채은아. 오늘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야?”윤구주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소채은은 비록 조금 전 광경 때문에 호기심이 가득한 상태였지만 윤구주의 질문을 듣고 다급히 말했다.“당연히 우리 결혼에 관한 일을 의논하러 왔지!”“결혼?”“그래. 넌 모르겠지만 우리 아빠는 우리가 결혼할 거란 걸 알게 되자 나보다 더 조급해하셔. 매일 나한테 우리 언제 결혼하냐고 재촉한다고! 오늘도 나한테 우리 언제 결혼하냐면서 너 찾아가서 얘기 나눠보라고 했어.”윤구주는 그 말을 듣더니 웃었다.“우리 결혼식 날짜는 네가 정해.”‘어?’“내가 정하라고?”“그래.”“너 바보 아냐? 나 혼자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같이 정해야지!”소채은이 말했다.윤구주는 결혼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몰랐다.“구주야, 결혼은 큰일이야. 그렇게 대책없이 굴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우리 결혼식 날짜는
결국 윤구주는 20일 뒤인 음력 10월 8일을 결혼식 날로 정했고 소채은도 흔쾌히 동의했다.결혼식 날짜를 정한 뒤 소채은은 그제야 용인 빌리지를 떠났다.마당으로 나올 때, 천하회 사람들과 백경재가 멀찍이 서서 존경심 가득한 표정으로 소채은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러한 상황이 소채은은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채은아, 내가 바래다줄까?”윤구주는 소채은이 어색해하자 입을 열었다.“아냐. 내가 알아서 돌아가면 돼.”소채은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사람들을 힐끗 본 뒤 떠났다.소채은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를 묶은 어린아이가 안마당 쪽에서 뛰어나왔다.“그 여우 같은 언니는? 내가 죽여버릴 거야! 감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구주 오빠를 나한테서 빼앗아 가다니,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어린아이는 두씨 집안의 두나희였다.두나희는 소채은이 용인 빌리지로 왔다는 소식을 어떻게 안 건지 과일칼을 들고 기세등등하게 뛰쳐나왔다.그 광경을 본 천하회 사람들과 백경재는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심지어 윤구주마저 미간을 구겼다.“네가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여기서 난리 피우지 말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서 사탕이나 먹어!”백경재는 서둘러 달려가 두나희를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그런데 그가 다가가자마자 두나희가 과일칼을 들고 설치면서 사납게 말했다.“상관하지 마요! 전 오늘 반드시 저 여우 같은 언니를 죽이고 말 거예요!”백경재도 미친 것 같은 두나희를 제압하지 못하자 윤구주가 참지 못하고 다가갔다.“그만해! 자꾸 소란 피우면 널 어두운 방 안에 한 달 동안 가둬놓을 줄 알아!”그의 차가운 말에 과일칼을 휘두르던 두나희는 몸을 흠칫 떨더니 처량한 눈동자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곧이어 두나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나쁜 오빠! 못된 오빠! 내가 오빠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날 괴롭혀? 오빠 미워! 앞으로 다시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흑흑흑!”말하면 말할수록 억울하고 자신이 가련하게 느껴졌다.두나희는
사실 윤구주가 곤륜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다섯 사부님은 그에게 두 가지 일을 시켰었다.하나는 화진의 왕이 되어 10국의 난을 평정하라는 것이었는데 윤구주는 그 일을 완수하고 화진의 유일한 구주왕이 되었다.윤구주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인해 100년간 이어진 전쟁을 끝내고 10국은 영토를 할양하여 평화 계약을 체결했다.그리고 윤구주는 아직 두 번째 일을 완성하지 못했다.두 번째 일은 비밀이었고 그 비밀을 윤구주는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 없었다.그건 이 세상에서 그의 은거하고 있는 다섯 사부님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윤구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호주머니 안에서 명령패 하나를 꺼냈다.그것은 구주령이었다.사람들은 구주령이라고 하면 국운을 지키고 제후들과 천하의 재권을 관장한다는 것만 알지 그것이 아주 강한 금속, 현철이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리고 그 현철은 명령패가 아니라 사실은 수백 년 전 심해 속에 버려진 지하 궁전에서 발굴해 낸 보물이라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심지어 윤구주의 다섯 사부님 또한 그 출처를 모른다.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불꽃도, 가장 강력한 불의 술법도 이 현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뿐이었다.그의 다섯 사부님이 윤구주에게 하라고 했던 두 번째 일이 바로 이 현철의 출처를 알아내는 것이었다.이 현철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윤구주는 아직 그 비밀을 얘기할 수 없었다.묵묵히 구주령을 손에 든 윤구주는 그 위의 기이한 문양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닿는 순간, 아주 기괴한 에너지가 윤구주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가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윤구주는 구주령을 품속에 넣고 집안으로 돌아왔다.안에 들어서자마자 백경재가 먹을 걸 들고 그의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윤구주가 다가오는 걸 보자 백경재는 서둘러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윤구주는 백경재가 먹을 것을 한가득 들고 있자 궁금해서 물었다.“이것들을 왜 들고 있는 거지?”“저하
이때 방문이 끽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웅크려 있던 두나희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사납게 말했다.“어르신, 먹을 거 가져오지 말라니까요! 어차피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주 오빠가 저를 버렸으니까 전 그냥 굶어 죽을 거예요!”안으로 들어온 윤구주는 두나희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그는 먹을 것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정말 안 먹을 거야?”‘어라?’윤구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두나희는 몸을 움찔하며 서둘러 고개를 돌렸는데 곧 잘생긴 윤구주가 보였다.“구주 오빠...”두나희는 들뜬 목소리로 그를 부르더니 이내 다시 몸을 웅크렸다.기뻐 보이던 얼굴이 순식간에 다시 쓸쓸해졌다.“못된 오빠, 왜 날 보런 온 거야?”윤구주는 화를 내지 않고 말했다.“널 보러 오지 않으면 네가 굶어 죽게 놔둬?”“굶어 죽게 내버려두지 그래? 어차피 오빠는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거잖아. 난 앞으로 어떡하라고!”두나희는 말하면서 다시 눈물을 쥐어짜기 시작했다.윤구주는 웃고 싶었지만 참았다.“내가 결혼한다는데 너랑 무슨 상관이라고 이래?”두나희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당연히 나랑 상관 있지! 난 구주 오빠를 좋아해. 그러니까 난 커서 오빠랑 결혼할 거라고!”윤구주는 쓴웃음을 지었다.두나희는 역시나 두씨 일가 사람답게 막무가내였다.“됐어. 소란 피우지 마! 얌전히 음식이나 먹어. 난 지금까지 널 여동생으로 생각했어. 그래서 널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이쪽 일을 다 처리하고 나면 난 널 두씨 일가로 돌려보낼 거야.”윤구주가 말했다.“뭐라고? 날 내쫓을 거라고? 날 두씨 일가로 보낼 거야?”두나희는 윤구주의 말에 소리를 질렀다.“당연하지! 설마 계속 나를 따라다닐 생각은 아니지?”윤구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아아아아! 싫어! 난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래! 난 앞으로 구주 오빠를 따라다닐 거라고!”“억지 부리지 마. 넌 집을 떠난 지 오래됐어. 너희 두씨 일가 사람들 초조해서 난리가 났을 거야. 그러니까 당장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두나희의 목걸이가 빛나는 순간, 서울의 암흑 두씨 일가.음산한 지하 궁전 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었다.남자의 아래에는 거대한 음양 태극 도안이 그려져 있었고 그의 앞에는 3미터 정도의 거대한 거정이 있었다.거정은 불타고 있었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새끼손가락에 낀 반지에서 빛이 번쩍였다.빛이 번쩍인 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고개를 숙여 반지를 보더니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드디어 두나희 소식이 있구나. 내 명령을 전하거라. 현무에게 나희를 데려오라고 해!”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암흑 속에서 종 한 명이 걸어 나왔다.“네, 지금 당장 둘째 도련님에게 전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두씨 일가는 화진 4대 고대 무술 세가 중 하나로 암흑 가문이라고 불린다.이 가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적다.두씨 가문이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 그들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무도 몰랐다.사람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두씨 가문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아주 드물지만 다른 세 개의 가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뿐이었다.화진 제일의 문씨 세가도 암흑 가문을 얕볼 수 없었다.두씨 일가에는 세 명의 특출한 인물이 있다.첫째 두현오, 둘째 두현무, 셋째 두현우였다.그리고 조금 전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보낸 사람은 두씨 일가의 둘째 두현무였다....시간은 계속해 흘렀다.윤구주가 두나희를 한 번 만나러 간 뒤로 두나희는 드디어 먹기 시작했다.그러나 예전에는 커서 윤구주랑 결혼할 거라고 염불을 외던 두나희가 요 이틀 사이에는 신기할 정도로 냉정했고 울면서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다.심지어 가장 좋아하던 막대사탕도 먹지 않고 매일 혼자 용인 빌리지 입구에 앉아서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멍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뭘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이러한 상황이 백경재는 꽤나 의아했다.그가 아는 두나희는 막무가내에 억지를 부리기 좋아했다.그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
성수인 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야 진정한 전쟁이 시작된다!백호의 두 눈은 완전히 야수의 눈으로 변했고, 싸늘한 눈빛으로 청현을 노려봤다.“몸 풀었으니 이제는 진짜 싸움이다. 서요산 검사야, 어디 한번 버텨봐라?”성수와 하나가 된 백호는 이제 기술 따윈 필요 없었다. 무적의 성수, 오직 전투만이 답이다!백호가 다시 돌진했다. 성수인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기가 청현의 양기를 단번에 압도했다.순식간에 전세 역전이다. 이번엔 청현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지다.그 대단한 서요산 검기는 성수의 수호막을 하나도 뚫지 못했다.둘은 하늘에서 땅으로, 지하에서 다시 아홉 겹 구름 위로 날아오르며 싸웠다.쾅! 쾅쾅쾅!구름 위로부터 울려 퍼지는 격전의 소리는 천둥을 방불케 했고, 땅이 울리는 순간 진북왕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서요산 검종의 검객이 이렇게 강했단 말인가...백호 저 자식은 또 뭐야? 그냥 제자가 아니라 괴물이잖아?’진북왕은 인생 전체가 부정당한 기분이었다.‘난 지금까지 도대체 뭘 수련한 거지...?’쾅!!다시금 천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청현은 하늘에서 땅으로 수직 낙하하였다.지면을 강타하며 피를 뿜었고 온몸은 찢기고 뼈는 대부분 부서졌다.그 순간 하늘에서는 거대한 성수의 허상이 떠올랐다.서울 상공을 덮은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 검은 구름을 만들었고 음기가 태양을 가리는 순간 청현도 정신적 혼란 상태에 빠졌다.“말도 안 돼... 난 양기를 끌어왔어! 저런 사악한 자들을 억제하려고!”“악은 정의를 이길 수 없다며! 젠장...!” 청현이 이를 악물고 낮게 으르렁댔다.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절대로 무릎 꿇을 수는 없었다!그는 도를 위해 태어난 자. 반드시 입도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음풍이여 올라와라!”그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슛— 하고 일어나서 온몸에서는 살기가 폭발했고, 그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단 악마 그 자체였다.대지가 진동하고 지하 깊은 곳의 음기가 그의 주변으로 솟아올랐다.“화극대법! 음기입체!”
부우우웅!청현은 땅과 하늘의 기운을 끌어모아 음과 양이 모두 담긴 영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백호 악마야! 마법의 검을 받아라!”순간 천지가 진동했고 양의 힘이 검을 타고 맴돌면서 날카로운 검빛이 한층 한층 휩싸였다. 산이 흔들리고, 서울 전체에 끔찍한 검 소리가 울려 퍼졌다!청현의 인간성은 별로이지만 실력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백호는 죽음이 코앞에 온 듯한 위협을 느꼈다.위험하다!하지만 백호는 놀라기는커녕 미소를 지었다. 광기 넘친 눈빛으로 완전히 이성을 잃은 모습이었다.청현의 양기 가득한 검은 하늘과 땅을 찢을 듯 백호를 향했다. 백호의 가슴엔 피가 터지고 갈비뼈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다! 백호는 음신사체를 수련했으니 저 양기 가득한 검 앞에서는 완전히 억눌리는군!”진북왕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이대로라면 청현은 완전히 백호와 청해 모두 쓸어버릴 수 있었다.상성만 아니었으면 청해는 그렇게 허무하게 지지 않았을 것이다.마치 보조자항처럼 위대한 인물이라도 부처님 흉내까지 내면서도 미친 스님 앞에선 꼼짝도 못 하였다.“양이 음을 억제하긴 하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내가 보도자항를 이긴 건 진정한 불도를 닦고 열심히 마음속으로부터 수행했기 때문이었지, 그자는 껍데기만 따라 했지 마음으로 도를 닦지 못했으니 진 거야.”“백호가 음혼인 건 맞지만 그게 곧 악마라는 뜻은 아니다.”“청현도 마찬가지야. 그가 진짜 양인지 음인지 아직 판단할 때가 아니야.”미친 스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스승님 제발 그만 하세요.이 상황에서 폼 잡으려고 온 거면 진짜... 제자가 지금 반쯤 죽었는데요?”공수이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후후, 우리 어리숙한 제자야. 바보인 채로 사는 게 차라리 낫지.”미친 스님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음양이니 정의니 하는 건 진북왕엔 관심 밖이다.지금 중요한 건 오직 하나—백호가 청현의 상대가 될 수 있느냐는 것!아니면 최소한 임정설이 폐관
백호는 어깨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아내더니 청현의 눈앞에서 그대로 부러뜨렸다. 그 광경을 본 청현은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이 미친놈아! 내 검을 부러뜨려? 죽여버릴 거야 이 자식아!”청현은 눈이 빨갛게 변하며 광기 어린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분노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온몸을 감쌌다.백호는 그런 그를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우리 왕께서 말씀하셨지. 진정한 검객은 검 없이도 싸운다고. 그깟 검 하나쯤이야. 네놈은 검의 형상만 쫓을 뿐 검객의 마음은 가지지 못했어. 그따위로 무슨 검객이냐?”쿵!청현은 완전히 제 정신을 잃었다.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짐승처럼 날뛰며 백호에게 돌진했다. 맹렬한 화염처럼 끓어오르는 기세로 백호와 뒤엉켰다.한편 진동왕 일행은 중상을 입고 거의 죽어가던 청해를 간신히 구조해 냈다.그때 미친 스님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직접 손으로 불법을 펼쳐 청해를 보호하기 시작했다.“이 노승은 그저 그의 숨만 붙들어놨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상처 그대로 두면 앞으로 몸은 끝장일 겁니다.”미친 스님이 진동왕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진동왕은 그것도 잊은 채 다그치듯 물었다.“스님 그 검객은 대체 뭐 하는 놈입니까? 어째서 검객 주제에 그런 무서운 음기를 품고 있는 겁니까?”“청현은 서요산 검종 종주의 직계 제자요. 검종에서도 지극히 큰 기대를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원래라면 차기 거목이 되었을 사람입니다. 하지만 후계자 문제는 검종 종주도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청현의 인성을 살펴보려고 일부러 결정 시점을 미뤘습니다. 예상대로 청현은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동문 수련생 열댓 명을 중상을 입혔습니다. 그 잔혹함은 종주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후에 등장한 후배 함지우는 호연정기로 심법을 닦고 도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며 신뢰를 얻었습니다.”미친 스님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구주를 움직이게 할 자격이 있는 자는 결국 당대의 진짜 영웅입니다. 그리고 윤구주는 그 모든 자 위에 있는 사람
“너도 억울해할 필요 없어. 네가 화진을 위해 공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전적으로 구주왕에 대한 충성심 위에 쌓인 것일 뿐이야. 앞으로 네가 성장하면 윤구주도 널 통제하지 못할 테니 그 전에 널 제거하려 할 거다.”말이 끝나자 청현은 순식간에 수천 미터를 날아 수비영으로 다시 뛰어들었다.삼척청봉이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그 검 끝은 백호를 정확히 겨눴다.날카로운 검의 울림은 수 킬로미터 안의 모든 이들의 고막을 찢을 듯 진동하며 어지러움을 유발했다. “지껄이지 마. 죽이려면 날 죽여. 내 형제들을 어떻게 죽였지? 그리고 여긴 어딘 줄 아나? 이곳은 화진 서울이야. 너 같은 쓰레기가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백호의 눈빛은 살기로 가득했고 상공엔 살기가 짙게 뭉쳐 수신의 형상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그 위압감은 실로 섬뜩할 정도였다.솔직히 이런 백호의 모습은 정말 마인으로 오해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그는 윤구주에 대한 충성은 변함없었지만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윤구주만이 아니었다.구주의 전우와 화진의 백성들 그 모든 이들이 그가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그의 행보는 그를 점점 인간 요귀로 만들어가고 있었다.“그래? 지금은 네가 그들을 인정하고 있어도 언젠가 네가 마인으로 타락하게 된다면 그때는 네 의지대로 되지 않을 거야. 난 간다. 미리 경고했으니 후회하지 마. 내게 자비란 없다.”슈욱!청현은 한 자루 검과 함께 어둠을 가르며 잔상처럼 백호를 향해 돌진했다.한 줄기 칼날의 섬광이 나타나며 수천 개의 검기가 일제히 백호에게 쏟아졌다.쾅! 쾅! 쾅!각 칼날 하나하나가 구오지존 초입의 수련자를 가볍게 썰어버릴 위력이었지만 백호의 몸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대부분의 검기는 튕겨 나갔고 일부는 살을 파고들었지만 뼈에 닿으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휙!강풍이 맹렬히 불어치는 가운데 청현은 백호의 천령개를 향해 칼을 날카롭게 휘둘렀다.슉!백호는 머리를 살짝 비켜 피했지만 칼은 그의 어깨를 정확히 내리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