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설아의 얼굴은 순식간에 확 달아올라 새빨개졌다.“구주씨... 영음성체니 뭐니 저는 하나도 모르겠어요! 저는 제 몸이 특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데요...”은설아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했다.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인 그녀가 자신의 몸이 그토록 희귀한 수련의 성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냐는 말이다.“그건 설아 씨의 몸이 아직 영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윤구주가 말했다.“영험을 발휘해요?”“네!”윤구주는 그 말을 끝으로 오른손을 들었다. 한 줄기 옅은 황금빛이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왔다.그 기운은 마치 가느다란 실 같았다. 윤구주는 뿜어져 나온 빛으로 허공에 부적을 하나 그렸다.허공에 나타난 그 부적은 눈 깜짝할 사이에 휙 은설아의 아랫배로 날아 들어갔다.그 뜨거운 에너지는 순식간에 은설아의 아랫배에서부터 퍼져나갔다. 몇 초 후, 그 에너지는 점점 더 강해져 그녀의 복부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너무 뜨겁고... 너무 아파요...”복부에 주입된 부적 때문에 은설아는 곧바로 자신의 아랫배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윤구주는 손바닥으로 천천히 은설아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겁먹지 마세요. 저는 지금 설아 씨를 위해 영험을 발휘하는 중이에요. 설아 씨는 눈을 감고 천천히 적응만 해주면 돼요!”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강력한 현기가 그의 손바닥에서 쏟아져 나와 은설아의 기경팔맥으로 들어갔다.아까까지 불에 데고 칼로 에는 것처럼 따끔거리던 느낌은 윤구주가 현기를 주입함에 따라 점차 편안해졌다.마침내 은설아는 아랫배가 타들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알아챘다. 그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자리 잡았다.그 에너지는 움직이는 것처럼 은설아의 아랫배에 저장되었다.“지금은 좀 어때요?”윤구주가 물었다.“아랫배는 뜨겁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아요. 하지만 안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은설아는 재빨리 대답했다.“그게 맞는 거예요! 설아 씨의 영음성체는 이미 깨어났고 앞
“세상에!”은설아는 자신의 한방에 단단한 벽에 뻥 뚫린 구멍을 바라보며 작은 앵두 같은 입술이 대문자 O의 모양으로 벌어졌다.이건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는 은설아는 순간 사고회로가 멈춰버렸다.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나 강해진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구주씨...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10초 동안 멍하니 서 있던 은설아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넋이 나간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그저 웃었다.“지금 이 순간부터 설아 씨는 무술인입니다!”“무술이요?”이 단어를 들은 은설아는 여전히 멍하니 눈만 껌뻑였다.“그래요!”“제가 말했죠. 설아 씨의 몸은 귀하디귀한 영음성체인 동시에 최고 수련의 몸이라고요. 제가 곤륜 구역에 있을 때 구오 지존의 마녀를 본 적이 있는데 그도 영음성체를 지녔었어요. 설아 씨는 지금까지 두 번째에요!”“제가 아까 설아 씨를 위해 영험을 발휘시킨 것도 설아 씨의 영음성체를 완전히 끌어내어 이후에 수련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어요!”윤구주가 해석했다.윤구주가 자신의 영음성체에 대해 해석해주는 것을 들은 은설아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여태 은설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저 대스타에 불과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갑자기 무술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몸에는 수많은 노마가 이중 수련을 위해 눈독을 들이는 영음성체까지 지니게 되었다.이 몸을 얻는 것은 높은 단계의 공법과 절세의 무기를 얻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은설아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구주씨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은설아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아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거예요!”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은설아를 바라보았다.“새로운 삶이요? 전 구주씨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은설아가 대답했다.“제 말은 아주 간단해요. 지금 이 순간부터 설아 씨가 여태 살아왔던 반짝이는 스타로 사는 삶을
그리고 지금, 이 미모의 대스타는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윤구주와 함께 하는 것을 선택했다.게다가 은설아는 한 치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사실은 윤구주를 감동하게 했다.“설아 씨가 그렇게 결정을 하셨으니 오늘부터 저를 따르세요. 저는 설아 씨를 보호하겠습니다! 동시에 설아 씨에게 수련도 전수해줄게요.”윤구주가 말했다.“고마워요 구주씨!”은설아는 윤구주의 말을 듣고 너무 기쁜 나머지 방방 뛰기 시작했다.은설아는 이것이 이번 생에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이번 생에 가장 즐거운 날이라고도 생각했다.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게 하늘 아래 어디 있겠는가!그래서 은설아는 고민의 여지도 없었다.“그럼 정리를 하고 저와 함께 가시죠!”윤구주가 말했다.“네? 이렇게 급하게요?”은설아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은설아는 공인이고 그녀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네. 그래야만 해요. 설아 씨는 이미 유명전에게 찍혔기 때문에 이것에 더 머물다가는 점점 더 위험해질 게 뻔해요!”윤구주가 설명해주었다.은설아는 윤구주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모든 것은 구주씨의 말을 따를게요! 지금 당장 짐들을 정리할게요.”은설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방으로 뛰어 들어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은설아는 순식간에 본인의 짐 정리를 마쳤다.짐이라고는 캐리어 하나와 가방 하나가 다였다.은설아는 방에서 나와 여러 장의 은행카드와 대형 회사들과의 계약서들까지 모두 테이블에 버젓이 올려놓았다.은행카드 안에는 은설아가 다년간 저축해온 돈이 있다.계약서들은 각종 대형 회사와의 협업 계약서이다.은설아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연예계를 완전히 은퇴할 계획이기 때문이었다.“구주씨, 전 모든 정리를 끝냈어요!”은설아는 예쁜 얼굴을 들어 배시시 웃으며 윤구주에게 말했다.본인의 모든 재산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은설아를 본 윤구주의 마음속에서는 이 미모의 대스타를 향한 강한 긍정이 솟구쳤다.왜냐하면
“저번에 은스타님이랑 껴안았던 녀석 아니야?”“맞아! 바로 그 사람이야! 그를 알아보겠어!”“헐! 은스타님이 왜 또 스캔들이 난 남자랑 같이 있는 거지? 손에 들린 작고 큰 가방들은 또 뭐야? 이게 다 무슨 상황이야?”파파라치들이 답답해하는 동안 팬들에게 둘러싸였던 은설아가 돌연 입을 열었다.“사랑하는 팬 여러분들, 조금만 조용히 하시고 제 말 좀 들어주시겠어요?”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팬들은 은설아의 한마디에 하나둘 조용해졌다.은설아는 얼굴에 행복에 겨운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중앙으로 걸어가서 입을 뗐다.“사랑하는 팬 여러분, 죄송합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연예계 은퇴를 선언합니다!”은설아의 발언은 그야말로 폭탄 발언이었다.은설아의 한마디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야단법석이었다.연예계 은퇴라니?세상에.“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슈퍼스타 은설아가 은퇴한다니? 내가 잘못 들은 거지?”“진짜야! 은스타님이 지금 연예계에서 은퇴한다고 선언했다고?”일부 열성팬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은설아가 은퇴를 선언한 그 순간 많은 사람은 아예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여신님 제발 은퇴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저희는 여전히 은스타님을 응원하고 싶어요! 저희는 은스타님 콘서트도 가야 하고 은스타님께서 출연한 영화도 봐야 한다고요!”“제발요, 부탁이에요. 여신님! 제발 은퇴하지 말아 주세요!”은설아의 은퇴 소식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수백 명의 팬은 모두 혼비백산이 되었다.그들은 자신이 그토록 열렬히 응원해온 여신님께서 가장 인기의 절정을 찍을 때 은퇴하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이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서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다.팬들뿐만이 아니라 함께 있던 파파라치들도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은설아가 은퇴한다고? 설마 스캔들이 났던 남자친구 때문에 그러는 거야?”“세상에! 이보다 자극적인 소식이 또 어디 있을까! 은설아가 일반인 남자 하나 때문에 연예인도 때려치우겠다니.”“그러니
결국 그렇게 대중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은설아는 윤구주에게 팔짱을 끼고 돈킹 호텔을 떠났다.이 순간 이후로 은설아의 연예계 생활은 완전히 끝났다.은설아는 윤구주를 따르는 것을 선택했다.윤구주 역시 은설아를 보호해주겠다던 약속을 지킬 것이다.그들의 뒤에는 팬들과 파파라치들이 충격에 그 자리에서 굳어있었다.잘 나가던 슈퍼스타가 일개 평범한 스캔들의 남자 때문에 본인의 모든 것을 포기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모두가 굳어있는 사람들 틈에 두 사람도 그곳에 서 있었다.자세히 보니 둘은 윤씨 일가의 윤신우와 윤창현이였다.“이 여자 연예인은 내 맘에 쏙 들어! 우리 윤씨 일가 며느리로 제격이야!”윤신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윤구주와 은설아가 사라지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맞습니다 형님!”“이토록 유명한 슈퍼스타가 구주를 위해서 망설임도 없이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했지 않습니까! 확실히 우리 윤씨 일가의 며느리가 되기에 적합한 것 같습니다.”“제가 장담하건대 이 슈퍼스타를 본다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서도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윤창현은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다만 이 녀석이 나를 닮아서 어릴 때부터 주위에 여자들이 많았단다. 저 슈퍼스타를 제외하고도 강성에도 소채은이라는 여자가 있다는 건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그뿐만 아니라 황성에 여섯째 공주도 있단다.”여기까지 생각한 윤신우는 한숨을 쉬었다.“크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제가 보기에는 우리 큰 조카가 그 여자들을 모두 거느리면 될 일입니다!”윤창현은 웃으며 말했다.“난 그 여자들에게 별다른 의견이 없어. 다만 내가 유일하게 걱정되는 건 황성의 그 공주야.”윤신우는 말하며 눈으로 황성 방향을 주시했다.“너도 알다시피 황성의 그 사람은 화진의 여섯째 공주야. 게다가 성격도 거칠고 제멋대로지. 어릴 때부터 그녀가 눈독을 들인 물건은 그 누구도 감히 뺏으려 들지 못했어. 그래서 일단 구주가 그녀와의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이후에 큰 문제가 생길까
“그랬네요! 구주 씨는 서울 사람이셨나요?”은설아가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네.”“이제 알겠어요! 구주 씨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전에 말했듯이, 구주 씨를 따라 어디든 가더라도 저는 괜찮아요.” 은설아는 윤구주가 자신을 오해할지 걱정되어 서둘러 해명했다.윤구주는 은설아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은설아가 정말로 허영심이 많고 화려한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연예계 생활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참, 구주 씨. 저 이제 연예계에서 완전히 은퇴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대스타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냥 설아라고 불러 주실래요?”은설아는 아련하게 윤구주를 바라보며 부탁했다. 윤구주와 더 이상 거리감이 생기지 않길 바랐다. 이제는 윤구주와 함께하기로 결심했다.“알겠어요. 그럼 설아 씨라고 부를게요.”“네! 좋아요!”그렇게 윤구주는 은설아를 데리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옛날 작은 집으로 향했다.택시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 담배를 피우던 용민, 철영, 그리고 재이가 눈에 들어왔다.택시가 다가오자, 사람들은 호기심에 그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어? 저하 아니야?”“봐봐. 저하 옆에 미인이 있잖아!”“저 여자 누구야? 정말 예쁘네!”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택시는 마당 앞에 멈췄다. 차 문이 열리고 윤구주가 대스타 은설아와 함께 내렸다.세 사람은 윤구주가 내리자마자 공손하게 입을 모아 말했다.“저하!”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모두 은설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내가 소개해 줄게. 이쪽은 대스타 은설아야.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할 거야.”윤구주가 소개하자, 세 사람은 놀라움에 빠졌다. 특히 재이는 은설아를 상하로 찬찬히 훑어본 후 갑자기 외쳤다.“당신이 바로 은설아 씨?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시는 그 대스타 은설아? TV에서 뵌 적 있어요!”은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설아님. 너무 겸손하시네요!”“저희와 함께하다니, 정말 영광
이렇게 해서 은설아는 윤구주의 대가족에 완전히 녹아들었다.한때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톱스타였던 은설아의 등장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했다.정태웅이든, 천현수든, 용민이나 철영까지도 매일 은설아 주위를 돌며 신경을 썼다.왜냐하면 은설아는 외모나 분위기 모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기 때문이다.오직 공수이만이 얼굴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은설아를 볼 때마다 무슨 이유인지 도망치기 일쑤였다.마치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그래서 은설아는 공수이를 따로 불렀다.공수이는 은설아를 보자마자 도망가려 했으나, 은설아는 그를 불러 세웠다.공수이는 멈춰 서서 수줍은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예쁜 누나. 전에 정말 죄송했습니다. 사과드릴게요.”“사과? 저한테 왜 사과를 해요? 제 목숨을 구해 준 걸 잊었어요?” “하지만! 저는 미처 몰랐어요. 누나가 형님의 여자인 줄도 모르고…”공수이는 말을 하다가 점점 얼굴이 뜨거워지며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너무 생각이 많아요! 저는 비록 구주 씨를 좋아하지만, 구주 씨는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러니 지금 저는 아직 그의 여자가 아니에요.” 은설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네?”공수이는 머리를 긁적였다.“하지만 상관없어요. 형님의 여자인데, 제가 가까이 있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공수이가 작게 중얼거렸다.은설아는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이 작은 스님이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괜찮아요. 저는 수이 씨를 항상 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어요.”은설아가 덧붙였다.공수이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살짝 아팠지만, 이내 형님의 여자라는 걸 떠올리고 마음을 정리했다.“예쁜 누나, 사실 우리 형님도 누나를 많이 신경 쓰고 있어요.”공수이가 갑자기 말했다.“저를 신경 쓴다고?”“그럼요! 생각해 보세요. 제가 그날 유명전의 늙은 거북이 같은 놈들이 누나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을 때, 형님이 바로 누나를 여기로 데리고 왔잖아요. 그게 신경 쓰는 게 아니면 뭐겠어요?” 공수이가 눈을 깜박이며 말
알고 보니 매일 이 시간은 바로 이홍연이 폭발하는 시간이었다!방 안에서 들려오는 고함을 들으며, 주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이 여섯 번째 공주가 이렇게 소리치고 나면 곧바로 후회할 것이라는 사실을 주도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주도의 생각이 맞았다. 곧 방 안에서 이홍연의 후회에 가득 찬 나지막한 자책 소리가 들려왔다.“왜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 거지? 어릴 때는 분명 나한테 직접 말했었는데, 나랑 결혼하겠다고! 지금은 왜 이러는 거야? 이 멍청한 녀석이 혹시 무슨 사정이 있는 건가? 아니면 진짜로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건가?”이홍연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화가 나면 날수록, 더 참을 수 없었다.쿵!이홍연은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문을 발로 차서 열어젖혔다.문 앞에 있던 육도 주도는 그 발차기에 날아가 땅바닥을 구르며 한 바퀴를 돌았다.“공주님, 또 왜 이러십니까?”주도는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땅에서 일어나 이홍연에게 물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저랑 갑시다!”이홍연은 말하면서 그대로 문밖으로 나섰다.“공주님,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주도는 이홍연을 따라가며 물었다.“어디겠어요? 당연히 그 멍청한 윤구주를 찾으러 가야죠!”“또 그 무서운 녀석을 찾아가신다고요? 제발 공주님, 저 좀 살려주세요! 그 녀석은 정말 무서운 놈입니다. 저는 그를 이길 수 없어요!”주도는 울상을 지으며 처음 윤구주를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한때 천하를 제패했던 육도의 절정이었던 그는 살아오면서 그런 상황을 겪은 적이 없었다.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이 무적의 절정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지금 이 공주가 자신에게 다시 윤구주를 만나러 가자고 하니, 주도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참 한심하네요! 예전에는 육도의 절정이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그 멍청한 놈 하나도 못 이긴다고요?”이홍연은 허리에 손을 얹고 눈을 부릅뜨며 술꾼을 꾸짖었다.술꾼은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정말입니다! 제가 본 그 친구는 완전 괴물 같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