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안두성은 한숨을 내쉰 뒤 저택으로 돌아왔다.저택 안.육도진은 유유자적하게 정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안두성이 돌아오자 육도진은 그제야 눈을 가늘게 뜨면서 차를 마시며 말했다.“다 갔느냐?”“어르신, 제가 다 쫓아냈습니다.”안두성이 말했다.“참나, 염병할 것들. 날 귀찮게 하러 오네. 자기들이 잘못했으면서 아주 뻔뻔하게 굴어.”육도진은 욕하면서 말했다.“어르신, 오늘 보니 문벌 쪽에서 굉장히 조급한 듯합니다. 떠나기 전에는 그런 말도 남겼습니다. 신급 절정의 조상들을 부를 거라고요. 막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 늙은 괴물들이 세상에 나온다면 서울은 큰 혼란에 빠질 겁니다.”안두성이 입을 열었다.“하, 누굴 겁주려고 그러는 건지. 신급 절정이면 뭐? 이틀 전 용하 산맥에서 죽은 신급 절정 강자들로는 부족한가 보지? 그 늙은이들에게 나와보라고 해. 안 죽고 사는지 보고 싶네!”육도진은 조롱 가득한 어조로 웃으며 말했다.용하 산맥 전투에서 문창정은 문벌 출신의 신급 절정 강자 5명을 보냈는데 전부 윤구주에게 죽임당했다.그런데 문벌에서 또 신급 절정 강자들을 보낼 거라고 했다.“어르신,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인가요?”안두성이 계속해 물었다.육도진은 손을 저었다.“상관하지 마. 그리고 내가 상관하고 싶다고 해서 상관할 수 있는 일도 아니야. 한 명은 삼십 년 전 서울 최고 절정이라 불렸던 윤신우고 다른 한 명은 우리 화진의 구주 군신 구주왕이잖아. 그렇게 대단한 부자를 내가 어떻게 관리하겠어?”“알겠습니다!”안두성은 말을 마친 뒤 물러났다.육도진은 윤구주 부자를 떠올리자 답답한 마음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내팽개쳤다.골치가 아팠다.이때 하인 한 명이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어르신, 어르신. 큰일입니다. 꼬마 도련님께서 또 소동을 일으켰습니다!”그 말을 들은 육도진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그 자식 또 무슨 짓을 한 거야?”“꼬마 도련님은 무각의 몇몇 선생님을 때려
육도진은 무각탑에 도착한 뒤 안에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자 곧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얘기해. 그놈 어디 있어?”육도진이 화가 난 목소리로 호위에게 물었다.얼굴에 퍼렇게 멍이 든 호위는 서둘러 무각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어르신, 꼬마 도련님은 바로 안에 계십니다!”“난 이 자식 때문에 화병으로 죽을 거야!”육도진은 욕지거리를 하면서 서둘러 탑 안으로 들어갔다.무각탑에 들어가자마자 꽃병 하나가 육도진의 얼굴로 날아왔다.다행히 육도진은 실력이 너무 약하지 않았다. 꽃병이 얼굴을 향해 날아들자 그는 손을 움직여 꽃병을 허공에서 깨뜨렸다.고개를 들어 보니 맨발에 머리가 크고 지저분한 아이 한 명이 무각탑 안에서 거만하게 허리에 손을 올리고 서 있었다.그가 바로 육도진의 친손자 서울의 꼬마 패왕이라고 불리는 육시우였다.육시우의 곁에는 얼굴에 멍이 든 신급 강자 노인 몇 명이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억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육도진이 안으로 들어오자 신급 강자인 무각 선생님들은 곧바로 육도진을 불렀다.“어르신!”그들 모두 살려달라는 표정이었다.“어, 할아버지. 여긴 어쩐 일이세요?”큰 머리를 가진 육시우는 육도진을 보고 애늙은이처럼 그를 불렀다.“이 자식, 또 사고를 쳤어? 이 무각을 아주 뒤집어 놔야 속이 후련해?”육도진은 다짜고짜 욕했다.아이는 화를 내지 않고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가 찾아준 선생님들이 다 쓸모없어서 그렇죠!”“너, 너, 네 이놈! 내가 가르쳤었지. 선생님을 존중해야 한다고. 선생님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야. 그런데 무각 선생님들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육도진이 화를 내며 말했다.“흥, 전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잖아요. 제 아빠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할아버지만 동의하면 저는 누가 되든 상관없어요!”육시우가 말했다.그 말을 들은 육도진은 화가 나서 속이 터졌다.“아이고, 우리 육씨 일가에 어쩌다가 너 같은 말썽꾸러기가 태어났는지 모르겠어!”
육시우가 구주왕을 때려죽이겠다고 하자 육도진은 기겁했다.“말도 안 돼. 넌 절대 그분의 상대가 되지 못해.”육도진은 그렇게 말한 뒤 무도탑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육시우가 육도진을 잡았다.“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그 사람 이름이 뭔지만 알려주세요. 얼른 얘기해주세요!”육시우가 자기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계속 캐묻자 육도진은 어쩔 수 없이 얘기해 주었다.“윤구주라고 한단다. 능력이 있다면 직접 찾아가 봐.”말을 마친 뒤 육도진은 무각탑을 떠났다.기민한 눈빛을 가진 육시우는 윤구주의 이름을 듣더니 작은 주먹을 쥐었다.“윤구주? 기다려. 내 주먹으로 때려죽여 줄 테니까.”육도진은 그 뒤로 하루 종일 서재 안에서 문벌 쪽의 소식을 알아보고 있었다.구주왕은 이미 서울로 돌아왔고 문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비록 대부분의 문벌은 윤구주가 살아있다는 걸 아직 몰랐지만 만약 이 일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서울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그렇기에 서울 내정을 관리하는 우상 육도진은 반드시 이를 막아야 했다.그래서 그는 지금 당장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생각이었다.“안두성!”육도진은 자료를 쓱 본 뒤 이름을 하나 불렀다.저택의 집사인 안두성은 빠르게 달려왔다.“어르신, 무슨 분부 있으십니까?”“내가 물으마. 공씨, 제씨, 옥씨, 신씨 4대 문벌 쪽은 어때?”안두성이 보고했다.“아직은 네 문벌 모두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아본 데 의하면 네 가문 모두 그들의 신급 절정 조상들과 연락한 것 같습니다.”그 말에 육도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서울의 4대 고대 문벌로서 네 가문은 과거 윤씨 일가와 실력이 엇비슷했다.만약 그들이 정말로 신급 절정 실력의 조상들과 연락했다면 서울에서 한 차례 대전이 일어날 것이다.“그 네 집안 모두 배짱이 아주 두둑하네.”육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흥,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신급 절정 실력의 조상들을 부른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을 거야. 자기 주제 파악을
안두성은 비록 육도진의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우상 저택의 집사로서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질문은 하면 안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안두성, 나 대신 구주왕을 찾아봬.”육도진이 갑자기 말했다.안두성은 육도진이 구주왕을 만나러 가라고 하자 너무 흥분해서 펄쩍 뛰었다.“어르신, 제게 화진 제일의 왕을 찾아가라고 하신 겁니까?”육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구주왕을 찾아가서 공씨, 제씨, 옥씨, 신씨 4대 고대 문벌의 신급 절정 실력을 갖춘 조상들이 찾아갈 거라는 소식을 전해.”육도진은 천천히 말했다.그 말을 들은 안두성은 그제야 육도진의 뜻을 이해했다.육도진은 윤구주에게 미리 언질을 주려는 것이었다.“네, 네! 꼭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안두성은 기뻐하면서 말했다.이제 곧 전설 속 화진 제일의 왕을 만날 수 있으니 도저히 들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육도진이 집사에게 윤구주를 찾아가라고 할 때, 문밖에서 누군가 몰래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육시우였다.육도진이 안두성에게 윤구주를 찾아가라고 하는 걸 듣게 된 육시우는 곧바로 눈을 빛냈다.“구주왕? 설마 할아버지께서 집사 할아버지에게 나보다 더 강하다던 그 사람을 만나러 가라고 한 건가?”그런 생각이 들자 육시우는 매우 기뻤다.그는 서둘러 어둠속에 몸을 감추고 안두성이 나오길 기다렸다.육시우는 안두성을 따라가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윤구주를 때려죽일 생각이었다.그렇게 하면 육시우가 가장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허름한 마당.윤구주는 형제들을 데리고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다.방 안.“저하, 저희 언제 청룡 형님을 구하러 갑니까?”질문을 한 사람은 민규현이었다.민규현은 내공을 회복하고 윤구주의 도움으로 신급 절정이 된 이후로 줄곧 청룡이 마음에 걸렸다.청룡은 사이가 가장 좋은 형제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청룡은 윤구주 휘하의 유능한 장군 네 명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까지 청
윤구주가 모든 첩보원에게 유명전에 관한 정보를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을 때, 용민이 빠르게 문밖에서 뛰어왔다.“주인님! 밖에 우상의 저택 집사라는 분이 와서 주인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우상 저택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안색이 달라졌다.“우상 저택의 사람이 이렇게 빨리 저하께서 서울로 돌아온 걸 알았다고?”민규현이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윤구주가 서울로 돌아온 뒤 지금까지 문씨 일가를 제외하면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다.그런데 갑자기 우상 저택의 사람이 찾아오다니.민규현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윤구주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좌상이 아닌 우상이라고?”화진에는 좌상과 우상이 존재했다.좌상은 군대를 장악하고 우상은 내무를 장악했다.과거 화진의 왕이었던 윤구주는 당연히 좌상과 우상을 알고 있었다.“주인님, 그 사람은 자기가 우상 저택에서 왔다고 했습니다.”우상 저택이라는 말에 윤구주는 머릿속에 육도진의 모습을 떠올렸다.그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들어오라고 해.”“네!”잠시 뒤, 예상대로 우상 저택의 집사 안두성이 빠르게 달려왔다.멀리서 윤구주를 본 우상 저택의 집사는 흥분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저하, 저 안두성 우상 어르신의 명령을 받고 구주왕님을 뵈러 왔습니다!”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감격한 듯 말했다.“일어나 봐.”윤구주가 말했다.“감사합니다, 저하!”안두성은 매우 흥분했다.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흥분했다.눈앞의 윤구주는 화진의 모든 백성이 숭배하던 인물이었고 안두성이 가장 존경하는 신이기도 했다.화진의 군신인 그를 드디어 직접 보게 되었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안두성은 숨을 헐떡였고, 두 다리는 덜덜 떨렸다.윤구주는 안두성을 보고 물었다.“육도진 우상은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아는 건가?”“네, 네! 어르신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안두성은 서둘러 대답했다.“알고 있다면 왜 직접 오지 않은 것이지?”윤구주가 물었다.“저하, 어르신께서는..
“됐어. 이제 가봐.”윤구주는 할 말을 다 한 뒤 축객령을 내렸다.안두성은 눈치가 빨랐기에 윤구주가 축객령을 내리자 곧바로 인사를 하고 떠났다.그가 떠난 뒤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꼬맹아, 숨어있는 그놈을 잡아 와.”“네!”남궁서준은 대답한 뒤 어두운 왼쪽 구석을 향해 오른손을 움직이며 말했다.“나와.”쿵!손그림자가 어둠을 향했다.어둠 속, 큰 머리에 동그란 눈을 가진 아이는 남궁서준의 손그림자가 날아오는 걸 보더니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뻗어 남궁서준의 손그림자를 맞받아쳤다.그러나 건장하고 다부진 아이는 남궁서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쿵 소리와 함께 아이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아픈지 앓는 소리를 냈다.하지만 아이는 전혀 화가 나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오히려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자세히 보니 그 아이는 다름 아닌 육도진의 손자 꼬마 패왕 육시우였다.겨우 열 살짜리 아이가 갑자기 나타나자 민규현뿐만 아니라 정태웅 등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응? 이 녀석은 누구지? 감히 여기까지 와서 우리 대화를 엿듣다니.”정태웅은 답답해하면서 말했다.옆에 있던 재이, 용민 등 사람들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앞에 있는 육시우를 바라보았다.정작 육시우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육시우는 두 눈을 부릅뜨고 호시탐탐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두려운 게 전혀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이 자식, 어디서 튀어나왔지? 감히 여기까지 찾아와서 우리 대화를 엿듣다니. 꼬맹아. 너희 집 어른들은 널 상관하지 않는 거냐?”이때 민규현이 참지 못하고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물었다.육시우는 두 손을 허리 위에 올리고 거만하게 말했다.“똑똑히 들어요. 제 이름은 육시우예요! 알겠어요?”“...”사람들은 어린아이가 건방지게 굴자 어이가 없었다.재이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시우야, 누가 널 우리에게 보낸 거니?”정태웅이 물었다.“제가 오고 싶어서 온 건데요. 왜요?”육시우가 대답했다.“참나, 어린
육시우가 윤구주를 때리고, 그와 싸워서 이기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다시 한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왜 웃는 거예요? 계속 웃으면 제 주먹으로 다 때려죽일 줄 알아요!”사람들이 웃자 겨우 열 살 된 육시우는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됐어, 됐어. 다들 그만 웃어.”이때 윤구주가 그들을 말렸다.그런 뒤 그는 육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넌 왜 세계 최강이 되고 싶은 거야? 그렇게 윤구주를 이기고 싶어?”육시우는 그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육시우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동그랗고 큰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세계 최강이 된다면 할아버지가 절 매일 무각탑에 가둬놓고 수련시킬 일이 없을 테니까요!”“아, 그렇구나.”윤구주는 그제야 깨달았다.육시우는 수련하기가 싫어 윤구주와 싸워서 이기려는 것이었다.“형, 형은 잘생겼고 성격도 좋네요. 대체 누가 윤구주인지 저한테 알려줄 수 있어요?”육시우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그가 윤구주라는 걸 몰랐다.육시우가 묻지 윤구주는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바로 윤구주야!”‘뭐?’자기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윤구주라는 걸 알게 된 육시우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는 윤구주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정말로 형이 윤구주예요?”“그래.”윤구주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육시우는 당황스러웠다.그는 윤구주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형이 어떻게 윤구주예요?”“왜 내가 윤구주가 아니라고 생각해?”“하지만 조금 전에 다들 절 비웃을 때 형은 절 비웃지 않았잖아요. 형은 저한테 좋은 사람인 걸요?”겨우 열 살 된 육시우가 말했다.육시우는 무도 귀재일 뿐만 아니라 육도진의 친손자였지만, 겨우 열 살이었다.그래서 아직 미숙하고 유치했다.조금 전 다들 그를 비웃을 때 오직 윤구주만이 그를 비웃지 않았다. 그래서 육시우는 윤구주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그렇게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만약 세계
어렸을 때부터 초인적인 힘을 타고난 육시우는 무도 재능이 남궁서준 만큼 뛰어났다.육시우는 네 살 때 맨손으로 바위를 깨부쉈고 열 살인 지금은 무각탑 안의 선생님 십여 명을 흠씬 두들겨 팰 수 있었다.이로써 육시우가 얼마나 강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천 근 무게가 담긴 주먹은 마치 트럭처럼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윤구주는 육시우의 주먹이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육시우가 휘두른 주먹을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훌륭한 권법이야!”퍽!강한 주먹이 윤구주의 가슴을 강타했다.윤구주는 꼼짝하지 않았고 몸도, 옷자락도 움직이지 않았다.“이게...”육시우는 그 광경을 보고 완전히 넋이 나갔다.그는 자신의 천 근 무게가 담긴 주먹을 윤구주가 전혀 피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심지어 더욱 중요한 건 그의 가슴을 때렸는데도 옷자락조차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치 돌이 바다에 가라앉은 듯, 윤구주의 몸이 그의 주먹에 담긴 힘을 전부 녹인 것처럼 말이다.육시우가 경악하고 있을 때 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자, 네가 이겼다. 이제부터 네가 세계 최강이야!”“...”천 근 무게를 담긴 주먹으로 때렸는데도 옷자락조차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가 이겼다고 하다니.육시우는 비록 겨우 열 살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있고 체면이 있었다.윤구주의 말에 육시우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지, 지금 저 모욕하는 거죠?”육시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닌데? 난 정말로 네 권법이 훌륭하다고 생각해.”윤구주는 솔직히 말했다.“하지만 제가 형에게 주먹을 휘둘렀는데도 형은 꿈쩍하지 않았잖아요... 제가 진 게 확실해요!”육시우는 당장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말했다.윤구주는 육시우를 위로했다.“아니, 틀렸어. 난 열 살 때 너처럼 엄청난 위력이 담긴 주먹을 휘두르지 못했어. 그러니까 따져보면 네가 이긴 거지!”“정말요?”육시우는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당연하지!”윤구주는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