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 그룹, 금방 회의를 마친 이승하가 대표 이사 사무실로 들어왔다. 컴퓨터를 켜자 법원 소환장과 관련된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을 열려고 하는데 이연석이 사무실의 문을 벌컥 열고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형, 이수한테서 들었어요. 형과 형수가 자기 손녀를 납치했다고 심혜진이 고소했다고 하던데. 소환장 받았어요?”방금 소환장을 받은 이승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내 사무실에 노크도 없이 들어와? 한 달 치 월급 깍을 거야.”둘째 형이 이 소식을 들으면 적어도 당황할 줄 알았다. 근데 당황하기는커녕 그의 월급을 깎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줄이야?“형, 심혜진의 변호사는 해외에서 아주 유명한 변호사예요. 재판에서 져본 적이 없다고 하던데 재판에서 지면 어떡해요?”이승하의 사전에 실패는 없다. “그렇게 할 일 없으면 아프리카에서 가서 연준이나 도와줘.”한가하니까 이런 사소한 일에 호들갑을 떨며 찾아온 것이겠지. 정말 시끄러워 죽겠네.화가 치밀어오른 이연석은 발길을 돌렸고 문 앞에 다다른 그는 친구의 부탁이 떠올라 이를 악물고 다시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이수한테 이 사건 맡겨요. 그래도 걔가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변호사이거든요.”이승하는 그를 차갑게 쳐다보았다.“우리 회사 법무팀도 재판에서 져본 적 없어.”“그거랑은 다르죠. 이건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이잖아요. 아이의 양육권에 관한 문제이니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이번 기회에 단이수와 지민이를 다시 만나게 할 생각이야?”그에게 속마음을 들킨 이연석은 바로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형도 알다시피 그 당시 이수가 지민이와 헤어진 건 우리 부모님 때문이었어요.”그 사실은 이지민은 잘 모르고 있었다. 이승하, 이승연 그리고 이연석 세 사람만이 진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 당시, 이연석의 부모님은 단이수 때문에 아들이 망가졌다는 생각에 그를 원망하고 이지민까지 가두어두었다. 그들은 단씨 가문과 이지민의 미래를 가지고 단이수를 협박했고 핑계를 대어 이지민과 헤어지게
대표 이사 사무실을 나온 이연석은 단이수에게 전화를 걸었고 단이수는 그에게 골프장 위치를 보내왔다. 골프장으로 달려가니 파라솔 밑에 앉아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채 먼 곳을 응시하는 단이수의 모습이 보였다.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마침 상연훈이 이지민에게 스윙을 가르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민이는 골프 칠 줄 아는데.”단이수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한마디 내뱉었다. 그 뜻을 모를 리가 없었던 이연석은 의자를 끌어당겨 그의 옆에 앉았다. “상연훈이 굳이 가르치려고 한 거겠지.”남자가 여자를 꼬시는 수작이다. 공을 휘두르며 스킨십을 통해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거.상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은 정직한 줄 알았는데 그도 예쁜 여자를 보면 일단 들이대는 날라리 성격인 듯하다. “네 동생이 먼저 가르쳐달라고 한 거야.”단이수가 고개를 들더니 이지민를 향해 턱을 치켜세웠다. “두 커플이랑 내기 중이야. 홀인원이면 팁으로 10억 쏘기로.”내기 때문에 이지민과 상연훈이 이렇게 힘을 합쳐 골프를 치는 것이었다.재밌게 노는군...한편, 이연석은 왠지 모르게 상연훈이 눈에 거슬렸다. 그가 자꾸만 여동생한테 치근덕거리는 것 같았다. “가. 우리도 공 치러 가자. 상연훈 저놈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지.”그가 외투를 벗고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며 단단한 팔뚝을 드러냈다.“됐어.”단이수가 그를 막아섰다.“지민이가 나한테 다시는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래. 걔 심기 건드려서 좋을 게 뭐가 있어?”“그렇다고 이렇게 여기서 풀이 죽어 있을 거야? 두 사람이 알콩달콩하는 모습 지켜만 볼 거냐고?”그녀를 품에 안고 있는 상연훈을 바라보며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럼 내가 뭘 할 수 있는데?”상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과 여자라도 빼앗을까?이씨 가문에게도 상대가 안 되는 가문에서 무슨 수로?게다가 이지민은 아마 그에 대한 마음을 접은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풋풋했던 시절 그밖에 모르던 소녀를 결국 그는 잃고 말았다. “어떡하긴? 찾아오든가
단이수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내뱉고는 이내 이지민과 상연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홀인원이 가능할까?”말이 끝나자마자 그녀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펄쩍펄쩍 뛰었다. “연훈 씨, 진짜 대단하네요. 정말 한방에 들어갔어요.”그녀의 뒤에 서 있는 상연훈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필드 쪽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10억이나 아껴줬는데 나한테 어떻게 감사할 거예요?”청순한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이틀 동안 레슨 해줬으니까 나랑 같이 번지점프 하러 갈래요?”그가 작은 몸집의 마른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지민 씨가 그런 스포츠를 좋아할 줄은 몰랐네요.”야구모자를 쓴 이지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달콤하게 웃었다.“나도 안 좋아했었는데요. 예전에 어떤 사람이 자주 날 데리고 갔었거든요...”그녀는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입가에 웃음이 사라졌다. 그녀의 표정을 상연훈은 바로 캐치할 수 있었다.“좋아하는 사람이에요?”골프채를 잡은 채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근데 다 지난 일이에요.”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그의 모습에 그녀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당신은요?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이 나이에 좋아했던 사람이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겠죠.”“근데 왜 헤어졌어요?”“그 여자가 결혼했으니까요.”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상대가 유부녀라니?깜짝 놀란 그녀가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모습에 상연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걸 믿어요?”“네? 나 놀리는 거였어요?”그가 그녀의 골프채를 낚아채며 그녀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렸다.“지민 씨, 한 판 더 할까요?”과거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좋아요.”그녀를 다시 품 안에 가둔 그가 은근슬쩍 저 멀리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이 있는 곳마다 저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한편, 상대방의
친구와 골프 약속이 있었던 심형진은 그녀를 친구들에게 소개시켜 주려고 함께 왔다. 근데 이곳에서 이연석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무의식적으로 그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이연석을 발견하지 못했던 그녀는 그런 그의 행동 때문에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이연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푸른 잔디 필드 안, 흰색 캐주얼 차림에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골프채를 들고 파라솔 아래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만화 속 주인공 같았다.그동안 심형진과 데이트할 때 이연석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두 사람을 피해 다녔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그녀는 별다른 생각 없이 이내 시선을 돌렸다. “옷 갈아입으러 가요.”심형진을 데리고 탈의실로 가려는데 하필 그쪽으로 가려면 이연석을 지나쳐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심형진을 끌고 이연석을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도 그가 모른 척할 줄 알았는데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 얘기 좀 해요.”따뜻한 손길이 전해지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이연석의 손길이 스치기만 하면 늘 이렇게 온몸이 감전된 것 같았다. 그 느낌에 그녀는 늘 반응이 반 박자 늦었고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심형진과 함께 있을 때는 이런 적이 없었다. 손깍지를 끼더라도 그저 담담하기만 했고 설레는 마음이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그 생각이 든 그녀는 심형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연석의 손을 얼른 뿌리쳤다.“연석 씨랑 더 이상 할 얘기 없어요. 지난번에 이미 얘기 끝난 거 아닌가요?”그가 그녀의 손을 또 잡아당기려 하자 심형진이 그녀를 자신의 뒤로 잡아당겼다. “이연석 씨, 당신이 바람둥이인 건 잘 알겠는데 그래도 예의는 좀 갖추시죠. 가혜는 지금 내 여자 친구예요. 이렇게 함부로 가혜한테 손을 대면 어떡합니까?”잘생긴 이연석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당신이 뭔데요? 내가 왜 그쪽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겁니까?”190cm에 달하는
한편, 탈의실에서 나오니 이연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심형진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심형진은 그녀를 데리고 친구들을 만났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다만 화장실에 갔는데 누군가 심형진의 앞에서 그녀에 대해 뭐라 하고 있었다. “클럽을 운영하는 여자 친구라... 직업이 조금 그런데. 부모님은 동의하셔?”“그 소식 몰라? 클럽 운영만 하는 게 아니라 한번 이혼한 적이 있는 여자래.”“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아이는 있어?”“글쎄. 그걸 누가 알겠어? 아이를 지웠을 수도 있고 전남편한테 아이를 줬을 수도 있고. 예쁘게 생겼으니까 얼굴 하나 믿고 좋은 남자 만나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근데 짐이 되는 아이를 데리고 있겠어?”참 듣기 거북한 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심형진은 벌써 그들한테 뭐라 했을 거지만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이연석이 정가혜의 손목을 잡은 일에 대해 아직도 신경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사실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신경 쓰이는 건 이연석의 손길에 그녀가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연히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매번 그녀는 핑계를 대며 그를 완곡하게 거절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연석에 대해서는 그런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것이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가 침묵하는 동안 옆에 있던 친구들의 웅성거림은 점점 더 커졌다.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한참 동안 망설이던 그녀가 용기를 내어 앞으로 다가가 한마디 내뱉었다.“이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어요. 운영하고 있는 클럽은 연 매출이 몇백억이 넘어요. 굳이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날 필요는 없다는 얘기죠.”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제야 정신이 든 심형진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잡아당겼다. “미안해. 저들이 상황을 잘 몰라서 헛소리를 한 것뿐이야.”“저 사람들은 모르지만 선배는 알고 있잖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골프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러 가려던 이지민 역시 그 광경을 목격하고 이내 이연석의 곁으로 다가갔다.“오빠, 괜찮아?”그가 하얀 손을 내밀었다.“나 좀 부축해 줘.”그의 손을 잡는 순간 이지민은 그가 손이 차갑고 온몸에 힘이 빠져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처진 눈동자는 충격을 받은 듯 빨갛게 달아올랐고 두 눈은 흐릿한 게 빛을 찾을 볼 수가 없었다.“오빠.”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지금 이 순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을 만큼 아파하고 있는 그를 보며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예전에 단이수가 다른 여자랑 침대에서 그 짓을 하는 걸 보고 그녀도 이연석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녀가 단이수를 사랑했던 만큼 오빠도 정가혜라는 여자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가혜는 다른 남자를 선택했다.누구의 잘못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가혜가 만난 사람도 그녀와 크게 차이가 없었으니까.다만 오빠는 정말로 정가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죽을 만큼.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걸 목격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고개를 들어보니 창백하게 질린 그의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 “나 좀 데려가 줘.”힘이 없어서 제대로 걷지조차 못하였다. 그녀가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미 쓰러졌을 것이다.이지민은 무의식적으로 탈의실 입구에 있는 남녀를 쳐다보았다.두 사람의 키스는 당연한 일이었다. 오빠는 그걸 막을 자격조차 없었다. 어서 빨리 이곳을 떠나야만 오빠의 자존심이 덜 상할 것 같았다.그녀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이연석을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키스가 끝나고 고개를 돌리는데 마침 새빨간 눈으로 뒤돌아서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틀거리는 뒷모습을 보며 정가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본 건가? 봤겠지... 그러니까 날 저렇게 증오하는 눈빛으로 보는 게 아닐까?두 사람이 헤어지고 난 뒤, 이연석은 여자 친구를 두 번 사귀었어도 그녀의 앞에서 그 여자들과 키스를 한 적은 없었다
꼼짝없이 갇히게 된 그녀는 화가 나서 그를 째려보았다.“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이연석은 물병을 꺼내 뚜껑을 돌리더니 물로 휴지를 적셨다. 그러고는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몸을 누르고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붉은 입술을 힘껏 닦았다. “깨끗이 닦아요. 그래야 다른 놈 냄새가 안 날 테니까.”“미쳤어요?”그녀는 고개를 돌렸지만 그가 턱을 꽉 잡고는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술에 취한 그의 눈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손에 힘을 잔뜩 주면서 그녀의 입술을 누르고 계속 닦았다.그래야만 심형진이 남긴 흔적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았고 미칠 것 같은 그의 기억도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깨끗이 닦고 나랑 다시 시작해요.”발버둥 치던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얼굴과 눈물이 고인 그의 눈을 어루만졌다.“미안해요. 일부러 당신한테 보여준 거 아니었어요...”진작에 간 줄 알았는데 아직 그곳에 있을 줄이야... 그가 있는 것을 알았다면 심형진을 거절했을 것이다. 그녀의 손이 뺨에 닿자 그가 머리를 살짝 치켜올렸다.자신의 비굴한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근데 좁은 공간에서 숨길 수가 없었다. “내가 없는 곳에서 자주 했었어요?”자주 했다면 깨끗이 닦아줄 수 있을까?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굳어있던 그의 몸이 조금씩 풀렸다. 그가 억울한 듯 그녀를 덥석 껴안고 그녀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거짓말 아니죠?”“아니에요...”그는 힘껏 그녀를 껴안고는 차가운 얼굴을 그녀의 뺨에 가져다 댔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살짝 돌려 사탕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그를 바라보았다. “연석 씨, 이미 늦었어요. 벌써 형진 선배의 부모님도 찾아뵈었고 결혼 약속까지 했어요.”오랜만에 그녀가 그의 이름을 이리 다정하게 불렀다. 듣기 좋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아팠다. “내가 당신
그녀는 피식 웃었다.“바보,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전남편인 강은우를 사랑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연석을 만나게 되었고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녀조차도 사랑했던 사람이 둘이나 되는데 바람둥이 도련님인 이연석이라면 더 말할 것 없겠지...“변함없는 사랑이라는 걸 난 믿지 않아요. 그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싶어요.”“당신은 쿨하고 구속받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내가 원하는 결혼 생활을 줄 수 없는 사람이에요.”“다시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 두 사람은 또 헤어지게 될 거예요.”“서로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면서 그렇게 당신이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랑 함께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영원히 내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해줘요.”두 사람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이연석은 그녀에게 잘해주었었다. 안 좋게 헤어지긴 했지만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헤어진 연인 사이에도 다툼이 생기긴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고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나?그녀와 그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그는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바랐고 그녀는 안정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꿈꾸는 미래를 이연석은 그녀에게 줄 수가 없었다. 바람둥이인 이연석을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 사람이 평생 바람 한 번 피우지 않고 그녀 하나만을 사랑할 수 있을까?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한참 뒤, 그가 힘없이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내가 어떻게 해야 날 믿어줄 거예요?”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마음을 이리 표현했는데... 사랑한다고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왜 안 되는 건지?지금껏 이렇게 힘들어 본 적이 없다. 죽는 것보다 더 힘든 고통이었다. “알아요. 더 이상 나 안 좋아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날 거절하는 거예요? 나 너무 힘들어요...”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도 심형진과 그녀가 키스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