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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4화

골프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러 가려던 이지민 역시 그 광경을 목격하고 이내 이연석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빠, 괜찮아?”

그가 하얀 손을 내밀었다.

“나 좀 부축해 줘.”

그의 손을 잡는 순간 이지민은 그가 손이 차갑고 온몸에 힘이 빠져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처진 눈동자는 충격을 받은 듯 빨갛게 달아올랐고 두 눈은 흐릿한 게 빛을 찾을 볼 수가 없었다.

“오빠.”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지금 이 순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을 만큼 아파하고 있는 그를 보며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예전에 단이수가 다른 여자랑 침대에서 그 짓을 하는 걸 보고 그녀도 이연석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녀가 단이수를 사랑했던 만큼 오빠도 정가혜라는 여자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가혜는 다른 남자를 선택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가혜가 만난 사람도 그녀와 크게 차이가 없었으니까.

다만 오빠는 정말로 정가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죽을 만큼.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걸 목격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고개를 들어보니 창백하게 질린 그의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

“나 좀 데려가 줘.”

힘이 없어서 제대로 걷지조차 못하였다. 그녀가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미 쓰러졌을 것이다.

이지민은 무의식적으로 탈의실 입구에 있는 남녀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키스는 당연한 일이었다. 오빠는 그걸 막을 자격조차 없었다.

어서 빨리 이곳을 떠나야만 오빠의 자존심이 덜 상할 것 같았다.

그녀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이연석을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키스가 끝나고 고개를 돌리는데 마침 새빨간 눈으로 뒤돌아서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틀거리는 뒷모습을 보며 정가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본 건가? 봤겠지... 그러니까 날 저렇게 증오하는 눈빛으로 보는 게 아닐까?

두 사람이 헤어지고 난 뒤, 이연석은 여자 친구를 두 번 사귀었어도 그녀의 앞에서 그 여자들과 키스를 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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