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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5화

전화를 받자마자 택이는 이승하에게 입을 열 기회조차 주지 않고 빠른 속도로 한마디 외쳤다.

“아버지, 저예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이승하는 말문이 막혔다.

택이가 육씨 가문으로 간 후 머리가 나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 구차한 핑계를 대는 걸 보면 육성재와 똑같아 보였다.

그는 택이의 옆에 사람이 있다는 걸 짐작하고 노인의 목소리를 냈다.

“괜찮아졌지만 계속 진료 받아야 한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에 육성아는 총을 쥐고 있던 손을 살짝 풀면서 택이에게 말을 계속하라고 했다.

그녀가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자 택이는 담담하게 이승하를 향해 물었다.

“언제 또 병원에 가요? 예약은 하셨어요?”

이승하는 유리 탁자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두들기면서 차갑게 입을 열었다.

“내일 네 어머니가 날 데리고 Y국으로 가겠다고 했어. 너도 시간 되면 결혼할 사람 데리고 런던으로 와.”

이승하의 목소리와 함께 전화기 맞은편에서 규칙적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S 조직의 비밀 코드였다.

택이는 그걸 바로 알아차렸다. 이승하는 그에게 육성아를 납치해 런던으로 오라고 했다. 보스의 의도는 잘 알지 못했지만 그는 보스의 말에 따를 것이다.

“네, 몇 시에 가면 되나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던 이승하가 대답했다.

“내일 밤 8시,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봐.”

택이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내일 만나는 사람 데리고 갈게요.”

이승하가 전화를 끊은 후에야 택이는 핸드폰을 접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들었지. 아버지가 Y국으로 오신대.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셨어. 봐, 거짓말 아니지?”

통화 내용을 똑똑히 들은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았다.

“결혼할 사람이라는 게 나였어?”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저 두 사람은 가볍게 만나는 사이인 줄 알았다. 택이가 자신과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깨끗하고 하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택이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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