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철수는 아무 말도 없이 그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명을 내렸으니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그저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눈빛이었다. 그와 실랑이를 벌이기 싫었던 김종수는 핸드폰을 꺼내 그 앞에서 바로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집사의 목소리가 아닌 그 손자의 목소리였다. 집사에게 김영주에 대해 물으니 쓸데없는 말들만 늘어놓는 탓에 상철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상철수가 또 화를 낼까 봐 두려웠던 김종수는 언성을 높였다.“오 집사님... 내 말 들려요? 할아버지께서 왜 영주 누나를 입양한 겁니까?”오태식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어갔다.“뭐라고? 안 들려...”김종수는 고개를 들어 상철수를 쳐다보았다.“안 될 것 같습니다.”이내 상철수가 핸드폰을 낚아채 차갑게 입을 열었다.“계속 말하지 않으면 내가 당신네 식구들 다 죽여버릴 거야.”전화기 맞은편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신... 누구입니까?”“김영주의 친부.”“당신이군요. 어르신께서 당신이 찾아오면 사실대로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뭐야? 아까는 일부러 치매인 척한 거야?상철수가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말해.”오태식도 부탁을 받은 것이었다. 김종수의 할아버지는 그한테 김영주의 친아버지를 제외하고 그 누가 찾아와도 절대 김영주의 출생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김종수와 김씨 가문의 후손들이 자꾸만 찾아와서 물어보는 탓에 그는 일부러 치매인 척한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제 김영주의 친아버지가 찾아왔으니 그는 어르신의 당부대로 모든 사실을 상철수에게 털어놓았다.김종수의 할아버지는 정여희의 친한 친구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 당시 정여희는 그 친구에게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했었다.그런데 얼마 안 되어 그 친구가 병에 걸렸고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어서 김종수의 할아버지한테 그 아이를 맡기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정여희가 남긴 재산도 모두 함께 건네줬다. 정여희의 친구는 상철수를
그 이유가 뭔지 김종수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담담하게 이성적으로 상철수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승하가 맡고 있는 지금의 S 조직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거나 사적인 원한으로 복수하는 일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비즈니스 업계에서 해가 되는 사람들을 처리했을 뿐이죠. 저희도 그런 놈들에게 초대장을 보내 혼내주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일은 그냥 덮고 가는 게 어떠할까요?”“절대 그럴 수는 없네.”상철수는 S 조직에 대한 원한이 김종수보다 훨씬 컸다. 직접 두 눈으로 지켜봤는데 어떻게 이리 쉽게 묻어둘 수가 있겠는가?“어르신...”“더 이상 날 설득하지 말게나. 아니면 자네한테도 화가 미칠 수 있어.”김종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루드웰의 룰에 따르면 루드웰에 합류한 사람들은 S 조직의 멤버를 도와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도 화학 구역으로 가게 된다. “알겠습니다. 더는 설득하지 않겠습니다. 다만...”상철수의 싸늘한 눈빛에 김종수는 말끝을 흐렸다. 서유가 살아 있다는 걸 이승하에게는 알려주자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였다. 살기가 가득한 그 눈을 보며 김종수는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혼자 이곳에 온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오랜 시간 상철수를 따르면서 그한테는 상철수가 큰 형님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이승하 때문에 그와 충돌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자리를 뜨려는 순간 상철수가 그를 불렀다. “서유를 상씨 가문으로 데려올 생각이야. Ace에 관한 일과 우리가 이승하의 머리를 찢었었다는 일은 서유한테 알리지 마.”김종수는 그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상철수가 루드웰의 창시자이고 이승하에게 한 짓을 서유가 알게 된다면 아마 많이 원망할 것이다. 김종수도 서유에게 계속해서 외삼촌이고 싶었기 때문에 상철수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알겠습니다. 전 모른 척할 테니까 어르신 뜻대로 하십시오.”말을 마치고 서재를 나서는데 상철수가 그의 뒷모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상연훈은 서유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 당시 할머니께서 어떤 생각이셨는지는 잘 모르겠어. 자세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 나랑 같이 집으로 가서 할아버지께 여쭤봐.”서유는 검사 보고서를 그에게 다시 건네줬다.“고마워요. 덕분에 엄마의 출생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이젠 엄마의 묘에 진짜 이름을 쓸 수가 있겠네요.”그는 안색이 굳어졌다. “내가 이리 널 찾아온 건 단순히 너의 어머니의 출생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서가 아니야. 우리 상씨 가문으로 널 데려가 네 자리를 찾아주고 싶어서 그래.”서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 하지만 나한테는 이미 가족이 있어요.”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가 그녀의 아랫배를 바라보았다. “결혼을 했어도 상씨 가문으로 돌아와 가족을 만나는 건 문제 없잖아.”“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알면 됐어요. 굳이 만날 필요 없을 것 같아요.”엄마가 살아있었다면 가족들을 만나러 가야겠지만 외손녀가 굳이 만나러 갈 필요가 있을까? 각자 잘 살고 있으니 서로 방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이라는 걸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없는 나이니까. 그가 설득하려고 하자 서유는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결과 나오면 내 결정에 맡기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내 결정은 상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는 거예요.”“그렇긴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네가 돌아오길 바라고 계셔. 정말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거야?”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할아버지께서 다른 사람과 결혼한 것에 대해 야박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거절하는 거야?”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두 분 사이에 있었던 일은 난 잘 몰라요. 뭐라고 할 입장도 아니고요. 다만 할아버지께서 잘못하신 건 맞아요.”“인정해. 나도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만약 나였다면 목숨까지 내걸고 밀어붙였을 거야. 가족들이 날 죽이기야 하
상준석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정장 차림에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상태준을 돌아보았다.“형, 들었어? 서유가 나 잘생겼다고 칭찬하는 거.”무뚝뚝한 사람인 건지 실실 웃는 상준석을 보고도 그는 담담하기만 했다.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용건부터 말해.”그를 힐끔 쳐다보던 상준석은 고개를 돌리고 서유를 쳐다보았다.“연훈이한테 들었어. 우리 집안으로 돌아오길 원치 않다고 하던데.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그녀는 자신의 아랫배를 만지며 대답했다.“이제는 아이도 생겼고 내 가정도 있어요. 상씨 가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내가 어느 집안의 자식인지 그것만 알면 됐어요.”상준석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쳐다보았다.“임신했구나. 축하해.”온순한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그는 아이에 관해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친해지려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그녀를 설득했다. “어찌 됐든 집으로 돌아와야지. 그래야 뱃속의 아이도 자신의 외가가 어디인지 알 거 아니야. 아이의 성장에 우리 상씨 가문의 뒷받침이 있다면 아이한테도 좋은 일이야. 자신감이 넘치고 용감한 아이로 자라게 될 테니까.”서유는 자라면서 자신감도 용감함도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결핍으로 인해 늘 사람들에게 끌려다니기 일쑤였다.그러나...그녀는 상준석과 아무 말이 없는 상태준을 쳐다보며 웃었다.“나도 이제는 아이한테 남부러운 것 없는 그런 좋은 환경을 줄 수 있어요. 그러니 상씨 가문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상태준은 모처럼 웃는 얼굴을 보이며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그러나 오빠들은 네가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어.”간절한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는 조금 난처해졌다.“난...”“어르신들 때문에 너와 네 어머니가 그 고생을 했고 이제야 널 찾게 되었어.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라도 보상해 주고 싶어.”상준석은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형 말이 맞아. 상씨 가문에서 지내지 않더라도 네 어머니
“그 영화 말이에요. 진짜예요?”상준석은 손을 들어 자신의 코를 만졌다.“맞춰봐요.”진짜라고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 상준석은 맞장구를 쳤다.“정확히 맞혔네요.”말을 마치고는 이연석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남편 되는 분이 딱 내 스타일인데.”이연석이 남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보려는데 그가 그녀의 배를 힐끗 쳐다보고는 쿨하게 병실을 나섰다.상태준과 상연훈의 뒤를 쫓아가던 그가 고개를 돌리더니 이연석에게 윙크를 던졌다.“서유한테 내 연락처 있으니까 연락해요.”“미친 거 아니야?”그 말에 이연석은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 그러나 정가혜는 흥미진진한 얼굴이었다.“당신이 상준석 씨랑 만난다고 해도 난 상관없어요.”이연석은 불같이 화를 냈다.“내가 저 인간이랑 만나느니 차라리 내시가 되고 말지.”뭔가 생각하던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내시가 되도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데...”얼굴이 새빨개진 그를 보며 정가혜는 그의 팔을 붙잡고 그를 달랬다.“농담이에요. 그러니까 화 풀어요.”그녀의 애교에 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이제부터 저런 징그러운 인간 쫓아다니지 말아요.”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그제야 도시락통을 들고 그녀와 함께 나란히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로 들어선 후, 정가혜는 흥분된 표정을 지으며 서유를 향해 걸어갔다.“방금 상준석 씨가 너한테 동생이라고 하던데. 두 사람 정말 사촌지간이야?”안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사 결과를 정가혜한테 건네주었다.“검사 결과가 그렇다네.”보고서를 확인하던 정가혜는 미소를 지으며 서유의 손등을 토닥였다.“어쩐지 어렸을 때부터 예쁘더라니. 역시 유전자는 못 속여.”서유가 그녀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상준석 씨 보고 나니까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정가혜는 연신 손을 저었다.“아니. 난 항상 네가 예쁘다고 생각했었어. 상준석 씨보다 네가 훨
고개를 돌려 정가혜를 쳐다보는데 그녀의 눈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었다.서유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그 사람 돌아오면 다시 얘기해요.”그 뜻을 알아차린 이연석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형수님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수프 좀 더 줄까요?”그가 수프를 그릇에 담아 서유의 테이블에 놓아주었다. 바로 그때, 육성재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래에서 상씨 가문의 삼 형제를 만났어요. 유전자 검사 결과 나온 거예요?”고개를 끄덕이는 서유의 모습에 육성재는 결과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조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상씨 가문의 어르신은 애인과 당신이 닮았다는 걸 어떻게 아셨을까요?”서유는 정가혜가 건네준 숟가락을 받으며 대답했다.“전에 언니를 대신해 프로젝트를 맡다가 만나게 된 거예요. 그때 날 보더니 많이 닮았다고 하더라고요.”그녀는 육성재에게 일의 자초지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그 집안에서 나에 대해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죠.”그러나 육성재는 여전히 의심스러웠다. 왜 자꾸 의심이 드는 걸까?상연훈의 말이 흠잡을 데 없이 너무 완벽해서 그런 걸까?“그럼 상씨 가문으로 돌아가기로 한 거예요?”대답을 하려는데 육성아가 밖에서 비틀거리며 뛰어 들어왔다.“서유 씨.”“깨어난 거예요?”육성아를 보고 육성재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일부러 알리지 않았건만 어떻게 혼자 병원까지 쫓아온 건지?그동안 살이 많이 빠진 육성아는 전혀 임산부같이 보이지 않았고 얼굴도 창백한 상태였다. 집에서 편히 지내고 싶었지만 택이가 걱정되어 이리 달려온 것이다. 서유가 깨어났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찾아온 것이었다. 뜻밖에도 서유는 정신이 돌아왔고 침대에서 내려와 밥도 먹을 수 있을 만큼 호전되었다. “서유 씨가 깨어났는데 왜 다들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지?”그녀는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마치 버림받은 사람처럼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몸이 안 좋아서 알리지 않았던 거야.”육성재는 짧게
서유는 무의식적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렸다. 이때, 정가혜가 몸을 던져 서유를 덥석 감싸안았다. 이연석은 빠른 속도로 육성아의 손에 있던 죽을 낚아챘고 육성재는 육성아의 손목을 잡아당겼다.“뭐 하는 짓이야.”육성재는 짙은 눈썹을 한껏 찌푸린 채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육성아를 노려보았다.“택이가 원해서 한 일이야. 이승하가 강요한 게 아니라고. 이건 택이의 선택이었어. 그리고 탓을 하려면 이승하를 탓해야지 왜 서유 씨한테 그래?”이성을 잃은 육성아는 육성재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미친 사람처럼 육성재를 밀어냈다. 총상을 입고 아직 채 회복되지 않은 육성재는 상처가 찢어진 고통에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테이블을 짚고서야 겨우 몸을 가누었고 상처로 인한 통증 때문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했어. 택이 씨가 저 여자 남편 때문에 죽었으니까 대가를 치러야지.”제정신이 아닌 육성아는 이미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였고 기를 쓰며 고집을 부렸다. “저 여자 남편 때문에 택이 씨가 죽은 거야.”그녀는 서유를 노려보며 눈물을 흘렸고 서유에게 손찌검을 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왜 그러는 건지 요즘은 자꾸만 화를 내고 사람을 때렸다.이 세상에서 그녀에게 빚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그녀의 이런 막무가내인 행동을 받아줄 필요가 없는 사람들한테 왜 이러는 건지.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이러고 있다. 택이는 죽었고 그녀는 병을 앓고 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육성아는 그 답을 알 수도 없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도 없어 테이블 위의 국그릇을 들어 서유를 향해 계속 뿌렸다. 다행히 옆에 있던 이연석이 빠르게 움직여 그녀의 목덜미를 덥석 잡았다.그가 차가운 얼굴로 육성아를 제압한 뒤 고개를 돌려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서유를 쳐다보았다.“가혜 씨, 얼른 의사 불러요.”정신이 번쩍 든 정가혜는 이내 침대 옆으로 가서 벨을 눌렀다. 한편, 이연석이 육성아를
육성아의 말은 참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안중에도 없었더라면 서유가 이렇게까지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겠지...“성아 씨, 난 택이 씨를 가볍게 여긴 적 없어요. 승하 씨는 더더욱 아닐 거고요. 승하 씨한테 택이 씨는 남동생 같은 존재예요.”“남동생 같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요?”“승하 씨가 루드웰에 가면서 제일 먼저 속인 게 택이 씨였어요. 택이 씨한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일부러 택이 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어요?”서유의 설명에도 육성아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또다시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입 다물어요. 당신의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으니까. 다들 모두 한통속이잖아.”“성아 씨...”서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성아는 또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이연석이 그녀를 제지하려는 순간, 육성재가 다가와 그를 막아섰고 이내 성숙한 그림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남자는 빠르게 손을 뻗어 육성아의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야?”있는 힘껏 내려친 뺨에 육성아는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아랫배에서 통증이 전해지고 피가 흘러나왔지만 그녀는 아무 반응도 없이 육우성을 쳐다보았다. 한편, 육우성은 그녀가 피를 흘리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택이라는 그놈하고 몰래 연애를 한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임신했어? 그랬으면 잠자코 있을 것이지 죽은 놈 때문에 지금 이 난리를 피워?”“그 사람 죽지 않았어요.”어디서 생긴 힘인지 그녀는 허리를 굽혀 자신을 부축해 주던 육성재를 밀어내고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육우성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택이 씨는 죽지 않았다고요. 살아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말아요.”그동안 육성아의 병세는 끊임없이 재발했다. 육우성은 밤낮으로 그녀의 곁을 지키며 그녀를 돌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정말 구제 불능이구나.”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육우성은 손을 뻗어 육성아의 팔을 잡아당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