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연진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어색하게 굳어갔다.“사모님, 전 그런 뜻이 아니라 강하리가 단순한 여자가 아니란 걸 알려드리는 겁니다. 들을지 말지는 사모님이 결정할 일이죠.”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와인 잔을 손에 들고 활짝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연미숙은 문연진이 떠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가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말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대양그룹 지사의 강하리가 사실 어리고 예쁜 아가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마음속으로 막연하게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문연진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그녀가 옆으로 손을 흔들자 경호원 복장을 한 사람이 다가왔다.“가서 정 회장님이 연성에서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다 확인해 봐요, 전부 다.”경호원은 대답하고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심문석 생신 잔치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자 강하리는 다시 그의 곁으로 불려 갔고 그는 강하리를 데리고 B시의 모든 고위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게 했다.강하리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지켜보며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낌새를 알아차렸다.앞으로 심씨 가문에 딸 하나가 더 생긴 것 같다, 과거 심예진처럼.하여 저마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심준호가 구승훈 옆에 서서 말했다.“문씨 가문을 잘 지켜봐. 저대로 가만히 있을 사람들은 아니야.”구승훈이 대답하며 연미숙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녀는 멀리서 그를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정양철 알아?”구승훈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심준호는 얼굴을 찡그렸다.“정양철은 사람이 점잖기로 유명하고 당시 별 볼 일 없던 정씨 가문을 지금의 규모로 키우기까지 했잖아. 왜, 무슨 일 있어?”구승훈은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저었고 이때 갑자기 밖에서 고함이 들렸다.심준호의 표정이 확 바뀌더니 구승훈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에서 냉기가 번뜩였다.“네가 처리해. 난 하리 데리고 갈게.”심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구승훈은 심문석에게 다가가 몇 마디 말을 건넨 뒤 강하리를 데리고 나가려 했다.그런데
강하리는 구승훈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한 번도 구승훈이 이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애초에 구승훈에게 이 아이의 존재를 알릴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그녀나 구승훈이 애를 써도 이 아이의 안전을 백 퍼센트 장담하긴 어렵다는 걸 잘 알았다.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람들을 피해 한국을 떠나 조용히 아이를 낳는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해외 파견이 아닌 이상 해외에 나가려면 여러 단계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설령 나가더라도 감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해외 파견에 대해서 좀처럼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데 출국 허가는 쉬울?그녀는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았다.머릿속엔 온통 사생아라는 남자의 매서운 눈빛뿐이었다.구승훈의 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문질렀다.“겁내지 마, 내가 너희 둘 다 지켜줄 테니까.”강하리가 다소 짜증스럽게 그의 손을 쳐냈지만 여자의 쌀쌀맞은 태도가 오히려 구승훈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큰 손으로 그녀의 작은 배를 감쌌다.“오늘 밤에 내가 책 읽어줄까?”강하리는 그를 밀어내고 차에서 바로 내렸다.“필요 없어.”하지만 밤이 되어 구승훈이 동화책을 들고 다가왔을 때 강하리는 거절하지 않았다.이제 그녀는 선명한 태동을 느낄 수 있었다.구승훈이 배를 만지거나 태교를 빌미로 그녀에게 은근슬쩍 스킨십을 할 때면 태아는 유난히 활발하게 움직였다.강하리는 이게 혈육의 교감인지 생각하곤 했다.아이에겐 아빠가 필요하니까.강하리는 헐렁한 잠옷 차림으로 침대 옆에 기대어 앉아 영어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구승훈이 침대 쪽으로 걸어가 그런 강하리를 품에 안았다.“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대?”강하리는 그의 손에 든 동화책을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사실 아무것도 못 알아들어. 그냥 당신 목소리를 좋아하는 거지.”구승훈이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그럼 내가 읽어줄까? 강주에서 네가 나한테 책 읽어줄 때처럼.”강하리는 잠시 침묵
진태형은 잠시 침묵했다.“해외 파견은 잠시 미뤄야 할 것 같아요.”“그럼 제가 개인 사정으로 출국 신청을 하는 건요?”진태형은 나지막이 말했다.“신청은 할 수 있지만 승인 떨어지는 게 무척 어렵고 기간도 오래 걸릴 거예요.”강하리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네, 알겠어요.”강하리가 전화를 끊자 구승훈이 상쾌한 기운을 풍기며 욕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구승훈은 파자마 한 벌을 몸에 걸친 뒤 강하리에게 다가와 포옹했다.“안 피곤해?”강하리가 낮게 물었다.“구승훈 씨, 우리 아기 괜찮겠지?”구승훈은 한참을 꽉 껴안고 있다가 대답했다.“응.”강하리는 어느새 잠이 들었고 자면서도 깊게 찡그린 그녀의 미간을 보자 구승훈은 마음이 아파 그녀를 다시 품에 꼭 껴안았다.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에게 다시는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그 후로 강하리는 계속 바쁘게 지냈지만 그녀는 구승훈이 동네에 많은 사람들을 심어놓았다는 걸 알았다.안팎으로 남녀불문하고 그가 데려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먹을 것과 입는 것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었고 나문빈마저 들어오려면 여러 번의 확인을 거쳐야 했다.그래서 나문빈은 들어올 때마다 투덜거렸다.“그쪽 집에 오는 게 유엔 본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네요.”하지만 강하리는 그저 웃기만 했다.“최근 B시에 에너지 회사 입찰이 있는데 잘 준비해 봐요.”나문빈은 혀를 찼다.“알겠어요.”온라인 회의를 속속들이 마치고 드물게 여유시간이 생기자 그녀는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발코니 쪽으로 의자를 놓아달라고 부탁했다.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집안은 따뜻했다.계약서를 들고 무심하게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울렸다.낯선 번호였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번호로 메시지가 전송되었다.[정양철 씨 아내 되는 사람이에요.]메시지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걸려 왔고 강하리는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안녕하세요.”전화기
구승훈의 눈빛이 번뜩였다.“애초에 널 자기 회사로 데려간 게 네 어머니를 해치려고 그랬다는 거야?”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정양철은 우리 엄마와 아무런 접점도 없는데 왜 그렇게까지 했냐는 거야...”강하리는 말하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구승훈의 손을 꽉 잡았다.“송동혁은? 구승훈 씨, 송동혁 어디 있어?”송동혁이 애초에 엄마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혹시... 정양철?강하리는 머릿속이 어지러웠다.저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에 깜짝 놀랐다.줄곧 엄마와 정양철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기억상실증에 걸렸고 송동혁을 만나기 전까지의 모든 기억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혹시 엄마가 오래전에 정양철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정말 그런 거라면 모든 게 말이 된다.정양철이 엄마를 쫓고 있었는데 송동혁이 구해줬다.그래서 그는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찾지 않았던 게 아닐까?그런데 나중에 엄마와 닮은 자신이 정주현과 일하는 걸 얼떨결에 보게 되어 곧장 연성으로 온 게 아닐까?강하리는 문득 팔다리가 저리는 느낌이 들었다.멍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보던 그녀는 계약서를 들고 있던 손마저 떨렸다.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정말 그런 걸까 봐.그렇다면 정서원을 그렇게 만든 게 결국 자신이니까.구승훈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송동혁은 아직 구치소에 있어, 왜 그래?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강하리의 입술이 살짝 하얗게 변했다.“그 사람 만나고 싶어.”구승훈은 눈살을 찌푸렸다.“알았어, 내가 준비할게. 근데 지금은 네 몸이 안 좋아서 안 될 것 같아. 애 낳고 가는 건 어때?”강하리는 임신 7개월 된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이 상태로 외출하는 건 정말 위험했기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기다리자.”한편, 전화를 끊은 연미숙의 시선이 책상 위에 있는 서류 더미로 향했다.처음에는 믿지 않
강하리가 헛웃음을 지었다.“둬도 난 쓸데없는데.”구승훈의 눈빛이 가라앉았다.“그래, 나랑 아이가 누려야지.”“아이만이야.”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근데 나 이미 많이 먹었는데.”강하리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창피한 것도 몰라?”구승훈의 눈엔 온통 웃음기가 가득했다.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구승훈은 조심스럽게 운전했다.앞뒤, 좌우, 사방에 경호원들의 차가 가득했고 원래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오늘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병원 측에서는 구승훈이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전용 통로를 통해 들어선 그는 곧바로 의사 진료실로 들어갔다.몇 가지 검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벌써 정오가 가까워졌다.석미란이 진료실에서 나오자 구승훈이 한 여자를 품에 안고 병원 제일 안쪽 진료실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몸매와 분위기가 확실히 강하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다만... 강하리의 걷는 모습을 보던 그녀는 다소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잠시 멈칫하다가 황급히 그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몇 발짝 내딛기 전에 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여긴 통행금지입니다.”여러 명의 경호원이 석미란 앞에 서서 단호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석미란은 순간적으로 불안해졌다.“내가 누구인지 알아? 여긴 심씨 가문 병원이고 난 심씨 가문 사람이야!”하지만 경호원은 움직이지 않았고 석미란은 더욱 화가 났다.“당신들 눈이 먼 거야 아님 귀가 안 들려?”경호원이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자 석미란은 이를 악물고 두 경호원을 노려보더니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밖으로 나오자 구승훈이 이미 강하리를 차에 태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녀의 눈빛이 번뜩이다가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경호원 두 명이 떠난 후에야 그녀는 진료실로 향했고 의사는 당연히 그가 심씨 가문 셋째 사모님이라는 걸 알았다.그녀가 묻자 도저히 어쩔 수 없었지만 여전히 답은 전과 같았다, 생리 불순.석미란은 그
문연진은 한동안 잔뜩 심통이 나 있었다.심문석 생일 잔치에서 했던 말로 연미숙이 움직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인내심이 많은 여자인 줄 몰랐고 지금까지 그녀는 강하리를 찾아가지도 않았다.게다가 강하리가 갑자기 외교부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할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평소 강하리가 얼마나 책임감 있게 일을 처리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제 박근형의 일을 맡았으니 더 열심히 할 텐데 하필 이때 일을 그만두다니.부서 사람들을 통해 알아봤지만 이유를 알지 못했다.한창 짜증이 나 있던 찰나 석미란의 전화가 걸려 왔다.“문연진 씨, 흥미로운 일이 있는데요.”문연진은 웃으며 조롱하는 어투로 말했다.똑같이 심씨 가문 사람이지만 첫째네와 너무도 다르다는 걸 누가 모르겠나.“사모님께서는 저를 잘 아시는 모양이군요.”석미란이 웃었다.“당연하죠.”문연진은 짜증스러운 기색이 가득했지만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사모님, 하실 말씀 있으시면 그냥 하세요.”석미란도 빙 돌려 얘기하지 않았다.“강하리 임신한 거 아직 모르죠”문연진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뭐라고요?”“강하리가 임신했다고요.”“진짜요?”“물론이죠, 나 지금 한미병원 산부인과에 있어요.”문연진의 표정이 극도로 일그러지며 너무 화가 나서 휴대전화를 옆으로 내리쳤다.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온 문원진이 이 광경을 목격했다.“또 왜 성질을 부려!”문연진은 너무 화가 나서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할아버지, 강하리가 진짜 임신했대요. 그년이 진짜 승훈 오빠 애를 임신했다고요!”문원진의 표정도 굳어졌다.“누가 그래?”“심씨 가문 셋째 사모님이 방금 전화해서 알려줬어요. 내가 전에 임신했다고 했을 때 다 안 믿었잖아요. 이제 어떡해요, 애가 곧 나오게 생겼는데!”문원진은 잔뜩 굳어진 얼굴로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렇게 말했다.“뭐가 그리 급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잖아.”“안 급할 수가 있어요? 승훈 오빠는 지금까지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데 강하리가
여러 대의 구급차가 병원으로 달려왔고 심준호는 어두운 얼굴로 응급실 문 앞에 서 있었다.허둥지둥 연성으로 달려온 구승재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준호 형, 우리 형이랑 강하리 씨...”“강하리 씨는 출혈 때문에 응급조치 중이고 아이는 조산해서 2킬로도 안 돼. 상황이 안 좋아. 네 형은 쇳조각이 튀어 심장 뒤쪽을 찔러서... 방금 위독하다는 통보를 받았어.”건장한 체격의 구승재도 다리가 풀리며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심준호가 황급히 그를 일으켜 세웠다.“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심준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일단 진정해. 작정하고 해친 거면 괜찮은지 알아보러 오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야. 병원에는 사람도 많아서 어떤 눈과 귀가 있는지 몰라.”구승재는 몸을 추스르고 일어섰지만 마음 한구석은 찌릿한 통증이 밀려왔다.셋 중 누구 하나라도 잘못되면 남은 둘은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살 거다.응급실 문이 거듭 열리며 혈액 주머니가 드나들었다.이날 밤 구승훈은 총 세 번의 위급하다는 통보를 받았고 난리 속에 하룻밤이 지나고 손연지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그녀가 왔을 때는 이미 울어서 눈이 충혈된 상태였다.“하리는요, 아기는요?”노민우는 서둘러 그녀를 옆으로 끌어당겼다.“일단 진정해. 구승재, 천천히 얘기해 봐.”“강하리 씨는 괜찮은데 아이 상태가 안 좋아요.”손연지는 순식간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아이는 이제 겨우 7개월이에요, 7개월이면 생존 확률이 10%밖에 안 돼요!”그녀의 말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고통으로 물들어갔다.노민우는 서둘러 휴지를 건네며 물었다.“승훈이는 어딨어?”구승재 역시 붉어진 눈으로 답했다.“형은 방금 위기 넘겼어.”노민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VIP 병실 문이 열렸다.“환자 깨어났어요.”구승재는 멈칫했다.하룻밤 사이에 세 번이나 위독 통보를 받았던 사람이 이렇게 빨리 깨어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의사도 충격에 휩싸였다.구승훈의 얼굴은 핏기
노민우는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렸다.“승훈아, 우리 형이 이런 미숙아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연구소를 차렸어. 거기로 보내도 돼. 일반 병원보다 기술도 훨씬 좋고 연구소니까 비밀 보장도 문제없어.”구승재의 눈이 번쩍 뜨였다.“정말?”노민우는 고개를 끄덕였고 구승재는 황급히 구승훈을 바라봤다.구승훈은 한참을 침대에 누워 있다가 말했다.“노진우 불러, 나머지는 다 나가!”구승재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어쨌든 나가서 노진우를 불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노진우가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병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문이 닫히자 구승재는 고통에 가득 찬 얼굴로 구승훈을 바라보았다.“형,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강하리 씨가 알면 버티지 못할 거야!”구승훈은 얼굴이 창백해졌다.“안 그러면 아이를 지킬 수 없어.”“그래도 이건 강하리 씨한테 너무 불공평하잖아!”구승훈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냥 내가 미안한 짓 한 걸로 하자.” 손연지는 구승훈의 병실에서 나와 곧장 강하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강하리는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얼굴에는 핏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침대 옆에 다가가 강하리의 손을 잡았다.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그렇게 조심했는데 왜 무사히 낳을 수 없었던 걸까!이 아기는 하리의 목숨과도 같은 존재인데!손연지는 강하리의 침대 곁에 한참을 앉아있었고 병실 문 앞에 서 있던 노민우는 가슴이 아팠다.강하리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녀와 구승훈 사이의 일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었다.그 두 사람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서로 사랑하는 둘이 함께 하겠다는데 그 대가가 왜 이렇게 큰 걸까.그는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며 손연지 옆으로 걸어갔다.“손연지, 울지 마. 이제 다 괜찮다잖아.”“괜찮다니 무슨 소리야, 하리가 어떻게 됐는지 못 봤어?”“천천히 나아지겠지.” 노민우가 옆에서 위로했지만 손연지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아이가 괜찮으면 모를까, 정말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구도 잘 지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