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근이 나오자마자 그의 시선이 강하리에게 향했고 강하리는 한눈에 그의 눈빛에서 싫은 기색을 읽었다.강하리가 구동근과 제대로 된 만남을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구동근의 시선은 잠시 그녀에게 머물렀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강하리는 눈을 내리며 피식 웃었다.“할아버지께서 나를 정말 싫어하시는 것 같네요.”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만 좋아하면 돼.”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연회장의 분위기는 더욱 미묘해졌다.문연진은 낮고 부드럽게 그를 불렀다.“승훈 오빠.”구승훈이 그녀를 못 본 척 강하리를 옆으로 끌어당기자 구동근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구승훈, 너 이리 와!”구승훈은 웃으며 말했다.“왜요, 할아버지 곁에 사람 한 명 있는 걸로는 모자라세요?”구동근의 표정이 잔뜩 어두워졌지만 오늘은 어찌 됐든 자신의 생일이었고 수많은 손님들이 온 자리에서 구승훈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하지만 강하리에게만큼은 오늘 밤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다.구승훈이 싸고돈다고 정말 막무가내로 굴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그는 한껏 가라앉은 눈빛으로 강하리를 바라봤다.“강하리 씨, 승훈이와 연진이 약혼 파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강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데 구승훈이 웃었다.“약혼하러 온 건 맞지만 그 상대가 문연진 씨는 아니죠.”연회장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고 강하리도 구승훈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구동근의 얼굴은 순식간에 추해졌다.“구승훈, 네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구승훈이 피식 웃었다.“무슨 말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요.”구동근은 살기가 번뜩이는 눈빛으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강하리 씨, 내가 인정하는 손자며느리는 문연진 하나입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강하리 씨?”모를 리가 있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은 구씨 가문에 들어올 자격이 없고, 들어올 가능성도 없다는 걸 알리는 것이다.강하리의 입꼬리가 팽팽하게 굳어지며 구승훈의 팔짱을 끼고 있
문연진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밤, 강하리보다 더 굴욕을 당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그녀는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었지만 너그러운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구승재는 옆에서 눈살을 찌푸렸다.‘할아버지 미친 거 아니야?’멀지 않은 곳에서 여초연은 이 장면을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그녀는 잠시 그곳에 머물다가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고 구승유가 여초연 옆에 바짝 따라붙었다.“큰엄마, 큰오빠 점점 더 버릇없어지는 거 봤어요? 할아버지한테 아무 때나 저렇게 말대꾸하잖아요!”여초연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좋아하는 여자가 억울하게 당하지 않게 하는 게 정말 내 아들다운 행동이지.”구승유는 입을 삐죽거렸다.“하지만 난 저 강하리가 전혀 맘에 안 들어요. 얼굴만 예쁘지 연진 언니와 비교가 안 되잖아요. 집안도 없고, 배경도 없는데 어떻게 오빠를 만나요!”여초연의 발걸음이 멈칫하며 눈동자에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집안도 배경도 없는 게... 오히려 좋지.”...구승훈은 강하리를 연회장 밖으로 끌고 간 뒤 곧바로 그녀를 차에 태웠다.차에 탄 뒤에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기분 안 좋아?”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구승훈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걸 봤다.난처한 상황이긴 해도 마음은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예상했던 일 아니었나요?”구승훈이 웃었다.“그래, 강 대표님 참 너그럽네. 남자 친구가 다른 사람과 약혼할 뻔했는데도 조금도 속상해하지 않으시고.”강하리가 그를 바라보았다.“구승훈 씨, 다른 사람하고 약혼할 거예요?”구승훈은 웃으며 대답 대신 차에 시동을 걸었고 아파트 건물 아래에 주차하고 나서야 강하리를 끌고 차에서 내린 뒤 집 현관문 앞까지 그녀를 끌고 갔다.그가 속삭였다.“문 열어.”강하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슬쩍 바라보다가 결국 문을 열었다.문을 여는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침실부터 문까지 리시안셔스가 가득 깔려 있었다.강하리가 입술을 벙긋하며 뒤돌아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구승훈
강하리는 무아지경에 빠진 모양 약지에 낀 반지를 계속 바라보았다.이렇게 받아주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아직 두 사람 사이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았고 특히 오늘 밤 구씨 가문의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분명했다.그리고 송유라...하지만 구승훈이 몇 번이고 그녀의 의사를 물었을 때 그녀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수건을 두른 구승훈이 욕실에서 나오며 멍하니 반지를 바라보는 강하리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강하리에게 다가가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마음에 들어?”강하리는 손가락에 살짝 부딪혀오는 구승훈의 잇새를 느끼며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왜 표정이 어두워 보이지, 후회하는 거야?”강하리는 구승훈을 바라봤다.“구승훈 씨, 나 이번엔 정말 온 마음 다해 날 당신에게 준 거니까 또다시 나를 버리지 마요.”구승훈은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고 입을 열었다.“하리야, 앞으로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널 두고 떠나지 않을 거야.”강하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구승훈이 고개를 숙여 입맞춤하는데 강하리가 그를 밀어냈다.“오늘 밤엔 하고 싶지 않아요.”“왜?” 구승훈이 그녀의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 “청혼 받아주고 바로 거부하는 거야?”강하리는 얼굴을 찡그렸다.“오늘 생리 때처럼 계속 속이 좀 더부룩한 느낌이 드는데 뚜렷하진 않아서요.”구승훈이 눈썹을 살짝 올리더니 큰 손을 그녀의 작은 배에 갖다 댔다.“아파?”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구승훈은 그녀를 바로 품에 안았다.“며칠 후에 한의사한테 가서 처방받는 게 좋겠어.” 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미소를 지었다.“그래요.”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졸음이 찾아왔고 구승훈은 여전히 그녀의 목뒤 쪽에 키스를 퍼부었다.그가 원한다는 걸 알았지만 오늘은 정말 그를 상대할 기운이 없었다.“그만해요, 나 졸려요.”구승훈이 대답했다.“그래, 넌 자. 내가 알아서 할게.”강하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며칠 후에, 며칠 후에 내가 괜찮아
문원진은 할 말을 잃었고 구동근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물론 이건 다 나중에 얘기하자고. 자네, 시간도 늦었는데 오늘은 이만 가서 쉬게나.”문원진은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문원진이 떠난 뒤 구동근은 별안간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찻잔을 집어 들어 깨뜨렸다.큰 소리가 나자 주위에 있던 가정부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겁에 질렸다.그는 지팡이를 꽉 움켜쥔 채 눈빛에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가서 그 자식을 다시 불러와!”구승재는 한동안 그 옆에서 침묵을 지켰다.“할아버지, 대체 강하리 씨 어디가 마음에 안 드세요?”“닥쳐! 구씨 가문 후계자가 아무 여자나 데려오면 되겠어? 넌 우리 구씨 가문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거야?”구승재는 입을 삐죽거리며 돌아서서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고 구승훈이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강하리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그는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기를 슬쩍 보더니 들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형, 할아버지가 화를 내면서 빨리 오래.”구승훈은 고개를 숙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마음껏 성질부리시라고 해. 내가 지금 돌아가서 뭘 해, 욕이나 들으라고? 아니면 매라도 맞을까? 나이도 있는데 조심하시라고 전해. 안 그러면 내일 아침밥도 못 드신다고.”“...”잠시 침묵하던 그가 물었다.“형, 강하리 씨한테 프러포즈했어?”구승훈이 짧게 답했다.“강하리 씨가 받아줬어?”구승훈은 리시안셔스가 가득 찬 방을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봤다.“그래, 받아줬어.”구승재는 순식간에 흥분하며 자신이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것보다 더 기뻐했다.“그럼 일찍 쉬어, 방해하지 않을게.”구승재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고개를 돌리자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구동근이 어두운 얼굴로 구승재를 바라보고 있었다.“네 형이 정말 그년한테 청혼했어?”구승재는 입술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개자식!”구동근은 화를 내며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고 이때 여초연도 안에서 걸어 나왔다.“아버님,
구승훈의 몸이 살짝 굳어졌고 음식을 담던 강하리도 멈칫했다.가정부는 다정한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그녀의 시선이 강하리의 손가락으로 향하며 찡긋 윙크를 보냈다.강하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구승훈에게서 벗어나 가정부의 손에서 그릇을 가져왔다.“아주머니, 갑자기 새콤달콤한 감자가 먹고 싶은데 가서 하나 만들어 주세요.”아주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구승재와 통화하던 구승훈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송유라가 형이 연락이 안 된다며 지금 소란을 피우고 있어. 송동혁을 풀어주는 것 말고 다른 건 바라지 않는대.”구승훈은 강하리를 바라보며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소란을 피우게 놔둬, 신경 쓰지 마.”그렇게 말한 뒤 그는 전화를 끊고 강하리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그녀를 품에 안았다.“아직도 배 아파?”“괜찮아요.” 강하리가 수저를 놓으며 대답했다.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방금 새콤달콤한 감자 먹고 싶다고? 예전에는 시고 매운 음식을 싫어하지 않았나?”강하리가 그를 바라보았다.“속에 열불이 나서 시고 매운 걸로 이겨내고 싶나 보죠.”구승훈은 그녀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깜짝 놀랐다.남자는 웃음을 터뜨렸고 낮은 웃음소리가 강하리의 마음을 간지럽혔다.강하리가 그를 밀쳐냈지만 그는 그녀를 더 꽉 안았다.“방금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들었잖아, 질투하지 마.”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구승훈 씨, 이제부터 송유라를 완전히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그녀는 유난히 진지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처음 하는 말도 아니고 지금은 옛날과 다르잖아요. 나한테 청혼했으면 우리 둘은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건데 결혼하고도 우리 사이에 송유라의 흔적이 가끔이라도 나타나는 건 조금도 원하지 않아요.”구승훈은 한참 동안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말했다.“알았어, 신경 안 쓸게.”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약속했어요. 만약에, 만약에...”“만약은 없어.
“내가 이 팔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구승훈은 강하리가 다시 만나보자고 했을 때도, 강하리가 자신의 프러포즈를 받아줬을 때도 마음 한구석에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것은 그 아이와 그들의 과거에 대한 것이었다.그녀가 예전처럼 자신을 대해주기를 감히 원하지도 못했고 그저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주기를 바랐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마침내 그녀도 자신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서려는 것을 느꼈다.그의 말을 들으며 강하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고개를 들어 그의 턱을 깨물었다.“잘하고 다녀요. 누가 물어보면 약혼녀가 준 거라고 말하는 거 잊지 말고!”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몸을 뒤집어 그녀를 덮쳤다.“어떡하지? 출근하기 싫어. 너랑...”강하리는 얼굴을 붉히며 그의 입을 막았다.“가서 출근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웃으며 입원 병동으로 걸어갔다.구승훈은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구승훈이 떠난 후 주차장에 있는 다른 차 안에서 정양철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그의 눈동자에 어두운 빛이 번쩍이더니 휴대전화를 들고 구동근에게 전화를 걸었다.“구동근 씨, 같이 차 한잔할까요? 네, 제가 그리로 가죠.”강하리가 위층으로 올라가자 간병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리 씨, 방금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와서 어머니를 뵙고 싶다고 했어요. 하리 씨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그럴 필요 없다고 해서 안 했어요.”“정 씨요? 나이는요?”“오십대로 보였어요.”강하리의 입꼬리가 잠시 굳어지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요.”정양철을 못 본 지도 오래되었다. 처음에 그에게 가졌던 의구심은 순조롭게 퇴사하면서 사라졌다.그런데 오늘 그가 여기로 왔을 줄이야.“다른 말은 없었나요?”간병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전에 어머니를 뵈러 오려고 했는데 어머니께 일이 생겼다고, 오늘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다가 한 번 보러 왔다는 말만 하셨어요.”강하리는 조용히
강하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서둘러 대답했다.“그래요, 그럼 언제 떠나요? 짐 싸줄게요.”구승훈이 웃었다.“아니야, 바로 갈 거야. 앞으로 이틀 동안 조심하고 외출할 땐 노진우와 동행하면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강하리가 짧게 답했다.“이번엔 얼마나 걸려요?”“사흘이.”구승훈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내가 돌아오면 혼인신고 하러 가자?”강하리는 깜짝 놀랐고 구승훈은 웃으며 말했다.“하리야, 나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그렇게 말한 뒤 그는 전화를 끊었다.강하리는 전화기를 바라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어느새 그녀의 곁에 도착한 손연지가 전화를 끊는 것을 보고는 어깨에 팔을 둘렀다.“또 너희 집 개자식이랑 통화해?”강하리가 웃었다.“언제 왔어?”손연지는 입을 삐죽거렸다.“노민우가 날 끌고 와서 자기네 병원 시설 보러 오래. 보기는 무슨, 시설이 아무리 좋으면 뭐 해, 소 교수님이 있는 것도 아닌데!”강하리가 혀를 찼다.“소 교수님에 대해서는 좀 알아봤어?”손연지는 어깨를 으쓱했다.“뭘 알아봐? 넌 구승훈이랑 만나기 전에 미리 알아봤어?”강하리는 다소 말문이 막혀 바로 화제를 바꿨다.“연수는 언제 가?”“이번 달 말.”“그럼 너랑 소 교수님은...”손연지가 찡긋 윙크를 보냈다.“오늘 저녁에 소 교수님 만나기로 했으니까 저녁 먹고 나서 아마...”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민우가 옆으로 걸어왔다.“소영준이랑 밥 먹는다고?”그를 보자마자 손연지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왜, 안돼?”노민우가 피식 웃었다.“소영준 평소에 나이트클럽 자주 가는 거 알고 있어?”손연지는 조롱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자기는 안 가는 것처럼 말하네.”노민우는 순식간에 할 말을 잃었다.“이젠 그렇게 안 가.”“개는 똥을 못 끊지.”손연지가 그를 흘겨보며 강하리를 자기 차에 태웠다.“가자, 내가 데려다줄게.”노민우는 몇 발짝 뒤에서 따라왔다.“소영준이랑 어디서 밥 먹는데?”“네가
강하리는 짧게 대답하며 나지막이 몇 마디를 덧붙인 뒤 전화를 끊었다.구승훈은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문을 두드리며 들어온 구승재의 표정이 다소 어둡자 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비행기표 예약했어?”구승재가 짧게 대답한 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형, 이거 송유라가 보낸 거야.”구승훈의 눈썹이 사납게 찡그려졌다.“뭔데?”구승재가 물건을 건넸고 그걸 받은 구승재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분홍색 크리스털 목걸이였다.뒷면에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분홍색 리시안셔스.구승재가 나지막이 말했다.“그렇게 매정하게 굴 거면 다시는 자기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말래. 방금 그쪽 간병인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손목을 또 그었다고 하더라.”그 말을 듣는 구승훈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고 구승재도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형, 어차피 강하리 씨랑 결혼할 거면 송유라 쪽은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안 그러면 일 터지는 건 시간 문제야. 송유라가 툭하면 난동을 부리는데 강하리 씨가 아무리 신경 안 쓴다고 해도 기분 안 좋을 거야.”구승훈은 미간을 꾹 누르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이제 처리할 때도 됐지. 일단 Y국으로 가자.”번뜩 꿈에서 깨어난 강하리가 눈을 떴을 땐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가정부는 서둘러 그녀를 품에 안고 살며시 토닥였다.“하리 씨, 악몽 꿨어요? 꿈꾸면서 계속 울고 있었어요.”강하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뒤 멍한 표정으로 가정부를 바라보다가 방금 꾼 꿈에서 조금 벗어났다.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 건 꽤 오랜만인데 오늘 그 꿈이 다시 찾아왔다.절망과 질식이 그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물 마시고 숨 좀 돌려요.” 가정부가 물 한 잔을 건넸고 강하리는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지금 몇 시죠?”“벌써 9시 넘었어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내가 만들어 줄게요.”강하리는 무의식적으로 구승훈이 이미 비행기에서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 구승훈에게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