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다른 게 아니라 부탁할 게 있어요. 우리의 옛정을 생각해서 엄마 내보내 주면 안 돼요? 다 날 위해서 그런 거니까 그 죗값은 내가 받을게요. 엄마 풀어줘요, 네?”송유라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구승훈은 딱딱하게 한 마디만 뱉었다.“송유라, 옛정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야.”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고 번호를 차단하기까지 했다.강하리가 구승훈을 보낸 뒤 손연지를 돌아보자 그녀는 씩씩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내가 안 돌아왔으면 그 자식이랑 했어?”강하리가 피식 웃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손연지는 콧방귀를 뀌었다.“그렇게 쉽게 널 주면 안 돼, 알았지? 안 그러면 그 개자식은 소중한 줄 몰라.”개 같은 남자는 소중히 여길 줄 모를 거야.”강하리가 웃으며 말했다.“알았어, 근데 넌 왜 그래? 왜 씩씩거리면서 돌아와?”그 말에 손연지는 속에 열불이 치솟았다.“노민우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다 큰 자식이 산부인과 번호만 연달아 열두 번이나 끊었어, 오늘 얼굴만 봐도 토할 것 같아.”“...”그제야 지난번 노민우가 손연지에 대해 물었던 것을 떠올렸다.“노민우랑 대체 무슨 원한이 있는 거야?”손연지는 여전히 씩씩거렸다.“전에는 없었어도 오늘부터 원한이 생겼어!”“진정해.”그녀는 노민우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본성은 나쁘지 않아도 어중이떠중이들과 어울린다는 건 뼛속 깊이 그런 근성이 있다는 뜻이었다.손연지는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알아, 내 일터에 다시 오지 않는 한 신경 안 써.”강하리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고 고민 끝에 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노민우에게 연락했다.하루 종일 병원에 있다가 이제 막 집으로 돌아온 노민우는 강하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강 부장님?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노민우는 말하며 셔츠 깃을 잡아당겼고, 왠지 모르게 입이 마르며 몸에 열기가 느껴졌다.강하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노민우 씨, 연지 괴롭히지 않으면 안 돼요?”노민우는 순간 멈
다음 날, 병원에 도착한 손연지가 막 차를 주차하고 내리려는데 노민우가 다가와 문을 열었다.당황한 손연지는 다가온 사람을 보고 이가 갈렸다.이 음침한 놈이 그래도 와?“어젯밤 물로 부족해?”노민우는 화가 나서 피를 토하고 싶을 지경이었다.“진짜 너였어? 손연지, 대체 내가 뭘 잘못했어! 어제 내가 그걸 소화하려고 한밤에 동네를 열 바퀴 넘게 뛰어다녔다고, 다들 날 미친놈이라고 생각한 거 알아?”손연지는 잔뜩 비아냥거렸다.“미친놈 모욕하지 마. 미쳐도 다 큰 남자가 산부인과를 예약하지는 않아.”전화를 끊을 만큼 큰 사람이 아니야!”라고 수만 번을 욕했다.“내가 왜 산부인과에 갔는지 모르겠어? 그쪽이 날 볼 때마다 욕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거길 왜 가?”손연지는 콧방귀를 뀌었다. “욕만 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그러게 누가 그 망할 년 옹호하래?”송유라를 편들었던 사람은 이유를 막론하고 욕먹을 만했다.노민우는 기가 막혔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송유라를 한두 번 옹호한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는 송유라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게다가 그는 강하리와 구승훈이 육체적인 관계일 뿐 서로 감정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지금은 안 그러잖아?”“똥이었던 게 이제 와서 똥이 아니라고 하면 냄새가 안 나?”노민우는 순식간에 메스꺼움이 가슴을 타고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이게 대체 무슨 비유지, 내가 똥이라고?“여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손연지는 그의 하반신을 내려다봤다.“넌 남자가 산부인과에 왜 와? 내가 잘라줄게. 한번 여자가 된 기분을 느껴봐.”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차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노민우는 너무 화가 나서 바로 따라갔다.“이젠 내 형까지 내가 그쪽 능력이 부족하다고 의심하고 있어. 손연지, 당신이 책임져!”“책임지기는 무슨...”손연지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려던 찰나 표정이 확 변하며 조금 전까지 거칠게 몰아붙이던 사람이 순식간에 수줍은 소녀가 되어 낮게 불렀다.“소 교수님.”소영
손연지는 여전히 그를 무시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곧장 밖으로 나갔다.진료실 문 앞에 다다르자 그녀는 노민우를 안으로 밀었다.“선배, 제 친구가 발기불능인데 직접 오기 부끄러워하네요. 좀 도와주세요.”남자가 대답했다.“문제없지. 어디 봐요, 전혀 안 되는 거예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그제야 정신을 차린 노민우는 화가 치밀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손연지! 나 잘한다고!”손연지는 노민우를 선배 곁으로 밀어버리고 뒤돌아서서 자리를 떴다....그 후 며칠 동안 강하리는 엄청나게 바빴다.북교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밥 먹고 잠잘 시간조차 부족할 정도였다.구승훈이 몇 번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그녀는 시간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있든 없든 구승훈이 알려주고 싶은 일들은 항상 그녀의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구동근이 가족 파티를 빌미로 구승훈과 문연진을 엮어주려 했다가 구승훈이 그 자리에서 상을 엎으면서 어르신과 손자가 한바탕 언성을 높였고, 문연진은 다음날 B시로 돌아간 일과 구승훈의 상처가 거의 다 나았고 그가 매일 무엇을 먹고 몇 시에 잠자리에 드는지까지 노진우는 하나하나 보고했다.그 말을 전해 듣는 강하리는 머리가 아팠다.“노진우 씨, 그런 쓸데없는 얘기 좀 그만할 수 없어요?”노진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대표님께서는 강하리 씨가 걱정하실까 봐…”강하리는 이를 악물었다.“걱정 안 해요.”노진우는 짧게 대답하며 덧붙였다.“하지만 대표님께서는 많이 걱정하고 계세요. 바쁘시더라도 식사 잘 챙겨 드시랍니다.”펜을 잡은 강하리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개자식이 정말!강하리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낮게 말했다.“고맙다고 전해줘요.”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물건을 챙겨 회의실로 향했다.회의실에 들어서기 직전, 구승훈으로부터 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강하리는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이 시간에 왜 전화했어요?”구승훈이 웃으며 말했다. “보고 싶어
구승재는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형, 왜 바로 팀원을 교체하지 않는 거야? 우리 쪽 사람으로 다 바꾸면 될 텐데. 그러면 입찰서류를 두 개씩 준비할 필요도 없잖아. 지금도 충분히 바쁜데.”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 사람들을 교체하면 증거를 어떻게 확보해? 그리고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죄가 성립이 안 되잖아.”구승재는 입을 벙긋하다 얼마 후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난 아직 어리네.구승훈은 사무실에 서서 푹 꺼진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구승현 쪽은 어때?”“할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요즘은 잠잠해. 하지만 얼마 못 갈 것 같아.”구승훈은 담배를 꺼내 들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고 서늘한 얼굴로 말했다.“그럼 류 서장한테 연락해서 좀 더 독한 미끼를 하나 던져.”구승재의 눈이 번쩍 뜨였다.“그래, 알겠어.”강하리가 다시 회의실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그녀는 사람들을 위해 간식을 주문한 뒤 노진우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회사 정문을 나서는 순간 구승훈이 팔짱을 낀 채 차 옆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강하리의 발걸음도 잠시 멈칫했고 노진우는 이미 뒤돌아서서 자리를 떠난 뒤였다.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노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구승훈 쪽으로 걸어갔다.며칠 못 본 사이 구승훈의 얼굴이 훨씬 좋아 보였다.다만 지난 며칠 동안의 냉대 때문인지 그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묻어났다.강하리는 그에게서 몇 걸음 떨어져 멈춰 서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시간에 여긴 왜 왔어요? 몸은 좀 괜찮아요?”구승훈은 괜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더 안 오면 강 대표가 나를 잊어버릴 것 같아서.”강하리가 그를 힐끗 보았다.“노진우 씨 때문에 귀에 굳은 살이 박일 지경이에요.”구승훈이 다가와서 그녀를 안아 들고 차에 태웠다.“배고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배 안 고파요, 너무 피곤해요.”구승훈은 애틋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프로젝트 하나에
구승훈은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예전 같았으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내 여자를 감히 누가 무시해?”하지만 지금은 이런 말도 당당하게 할 수 없었다.자신 때문에 그녀는 참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고 영감탱이에게 쓸모없다고 꾸중까지 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계획된 그녀의 미래에 그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 피곤함에 지친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미래 계획에 자신이 없어도 그녀의 인생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 테니까.검은색 마이바흐가 조용히 거리를 달리다가 아직 영업 중인 디저트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잠시 후 가게 안에서 티라미수 하나를 들고나오자 강하리가 가져가려고 했지만 구승훈은 건네지 않고 포크만 줄 뿐 케이크 상자를 열어주었다.그의 손길을 따라 케이크를 한입 입에 머금자 달콤하고 크리미한 맛이 입안에 퍼지면서 피곤한 기분이 덜해졌다.구승훈은 만족스러운 그녀의 표정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런 걸 왜 이렇게 좋아해?”“맛있으니까요.”말을 하던 그녀가 순간 멈칫했다.구승훈도 어렸을 땐 달콤한 걸 좋아해 그녀가 막대 사탕을 주면 하루 종일 입에 물고 다녔다.강하리는 시선을 내려 구승훈이 들고 있는 케이크를 바라보았다.“단 거 안 좋아해요?”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그녀의 입가를 쓸었다.“전에는 안 좋아했는데, 지금은 갑자기 맛보고 싶네.”강하리가 그에게 포크를 건네는데 구승훈이 갑자기 몸을 숙여 그녀를 덮쳤다.남자는 서둘러 케이크를 맛보고 싶은 듯 입술이 닿기 바쁘게 깊이 파고들었다.초콜릿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지며 남자는 더욱 거칠게 안을 헤집었고 강하리는 그의 힘에 눌려 움직일 수 없었다.구승훈은 가운데 콘솔 위에 케이크를 올려놓았고 이어 온몸으로 그녀를 짓눌렀다.키스는 입술에서 볼로 미끄러지며 목과 쇄골까지 이어졌다.더운 날씨에 강하리는 얇은 셔츠 하나만 입고 있었는데, 구승훈의 커다란 손이 셔츠 자락을 따라 미끄
... 보름의 협상 끝에 북교 프로젝트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입찰 전날, 강하리는 정양철을 만나러 갔고 그는 별다른 표정 없이 강하리의 보고를 듣다가 마지막에 한마디 했다.“이번 입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우리 계약도 앞당겨 끝나겠군.”강하리가 웃었다.“원래도 곧 계약 만료되는 거 아니었나요?”정양철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얼굴에는 흐뭇함이 가득했다.“그동안 고생 많았어. 참, 어머니는 어때?”정서원을 언급하자 강하리가 잠시 멈칫했다.“별로 안 좋아요, 아직 중환자실에 계세요.” 정양철은 한숨을 쉬었다.“너무 슬퍼하지 말고 몸 잘 챙겨.”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회장님.”북교 신축 부지에 대한 입찰이 연성시 시청에서 진행됐다. 강하리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을 데리고 시청으로 향했고 그 옆에서 안예서는 다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장님, 이렇게 큰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한 건 처음이에요.”강하리가 웃었다.“앞으로 더 많은 프로젝트가 있을 거야. 이번 일이 끝나면 너한테 작은 프로젝트 하나 맡길 거니까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해봐.” 그녀는 말하며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데 부사장이 옆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강 대표가 완벽하게 준비했으니까 안 비서는 걱정하지 마. 이번엔 우리가 낙찰받을 거니까, 그렇지 강 대표?” 강하리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입찰은 예비 선정, 발표, 그리고 최종 입찰까지 세 차례로 나뉘어 진행됐다. 그 모든 과정 내내 부사장은 얼굴에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낙찰자가 대양그룹이라는 최종 발표가 나온 뒤에야 그의 표정이 확 바뀌며 강하리를 돌아보았고 강하리는 싱긋 웃었다.“부사장님, 예지력이 신통하시네요.”부사장의 표정이 몇 번이나 바뀌다가 결국엔 웃으며 말했다.“강 대표가 잘 준비한 덕분이지.”입찰 설명회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강하리의 휴대폰이 울렸다. [축하드립니다, 강 대표님.] 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살
구승훈은 그 메시지를 보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정주현은 옆에서 구승훈을 바라보며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같은 자리에 구 대표님도 오시나?”구승훈은 그를 흘끗 쳐다봤다. “여자 친구가 이렇게 잘나가는데 정주현 씨는 내가 빠질 줄 알았나 봐?”정주현은 피식 웃었다.“여자 친구? 본인 상상 속 여자 친구?”구승훈은 그를 슬쩍 보며 말했다.“조만간 그렇게 될 텐데.”정주현의 얼굴에 머금었던 웃음이 옅어졌다.“구 대표님 자신감이 넘치시네.”구승훈은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직 무대 위에 있는 여성을 바라보며 말했다.“강하리에 대해선 내가 늘 한발 빨랐던 거 정주현 씨도 잘 알지 않나?”정주현은 씁쓸한 감정이 치솟았다. 둘이 아직 정식으로 관계를 확정 지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강하리가 이미 그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마음속으로 짜증이 났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과 강하리는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았다.저 영감탱이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계동회가 끝나고 강하리는 구승훈을 따라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정양철의 눈빛이 무척 어두웠고 옆에서 정주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후회하세요? 후회하는 거면 내가 지금 쫓아가고요. 강하리는 아직 구승훈 마음 안 받아줬거든요.”그러자 정양철은 그를 노려봤다. “괜히 소란 피우지 마!” 구승훈과 강하리는 행사장을 나와 곧장 시청으로 향했다.“사실 첩자가 누군지 이미 알 것 같아요.”구승훈의 눈빛이 번뜩였다.“그래도 증거는 있어야지.” 강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시청에 도착하니 저쪽에는 이미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구승훈을 보자마자 그 남자는 이번 입찰의 모든 입찰서를 건네주었고 구승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수고했어요.”그리고는 강하리를 사무실로 데려갔다.입찰서를 살펴보기 전 강하리가 낮게 중얼거렸다.“입찰 전날 밤에 프로젝트팀원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입찰서를 바꾼다고 했어요. 누가 유출했는지 파악하기 쉽도록 각자 금액을 다르
강하리가 두 눈을 깜빡였다.“아직은 비밀이에요.”구승훈은 속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동안 강하리는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며 기회를 준다고 말해놓고도 그에게 할애한 시간은 극도로 적었지만 차마 그녀를 곁에 붙잡아 둘 이유가 없었다.“며칠 정도 가 있는 거야?”“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요.”구승훈은 속이 상했지만 겉으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 기간에 외부인은 만날 수 있나?”“잘 모르겠어요.”구승훈은 우울함이 잔뜩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럼 통화는 할 수 있겠지.”강하리는 그의 표정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최대한 받으려고 노력해 볼게요.”구승훈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문득 자신도 예전에 그녀에게 같은 말을 했던 게 떠올라 순간 화를 낼 기운조차 사라졌다.강하리는 손에 든 입찰서를 보며 말했다.“전 사무실로 돌아가서 이번 일 처리해야 하는데, 당신은요?”사실은 나랑 같이 가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었다.두 사람이 제대로 함께 시간을 보낸 지 꽤 오래된 건 사실이었으니까.하지만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구승훈의 전화벨이 울렸다.그는 휴대폰을 쳐다보다가 무의식적으로 강하리를 올려다봤다.Y국에서 걸려 온 전화는 두 사람 모두에게 예민한 번호였다.강하리는 시선을 피하며 못 본 척했고 구승훈은 곧바로 전화를 끊더니 그 번호도 차단해 버렸다.그러고 나서야 이렇게 말했다.“이제 걔 전화 안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마.”강하리는 짧게 대꾸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잠시 후 구승재의 전화가 걸려 왔고 구승훈은 전화를 받고 그저 두 번 대꾸할 뿐이었다.“나도 처리할 일이 좀 있는데 이따 밤에 공항에 데려다줄까?”강하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구승훈은 그녀를 회사까지 데려다준 다음 떠났고 강하리는 한참 동안 그의 차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사무실에는 이미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강하리는 휴대폰 녹음기를 켰다.안으로 들어간 그녀가 입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