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강하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구승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왜? 물어보면 안 되는 거야?”“아니요. 그냥 꺼내고 싶지 않은 얘기라서요.”그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강 부장이 그 사람한테 많이 다쳤나 보군.”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그녀의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더욱 세게 잡았다. “아직도 못 잊은 거야?”“그냥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불편할 뿐이에요.” 그의 눈빛은 싸늘하게 변해갔다.“강 부장이 이렇게 사랑에 목매는 사람인 줄은 몰랐어.”강하리는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런 그녀를 한참 쳐다보고는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당신이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거야?”“좋은 사람이었어요. 예전에 나한테 잘해줬거든요.”그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잘해줬는데 당신을 떠난 건가? 그건 당신의 감정을 가지고 논 나쁜 놈인 거잖아.”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그 사람이 날 잊어버렸어요.”“잊어버렸다고? 어떻게? 어디 다친 거야? 기억이라도 잃어버린 건가? 아니면 당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잊어버린 거야?”“나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날 잊어버렸더라고요.”구승훈은 그녀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 올렸고 그녀의 눈에 비친 슬픔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눈빛이 어두워진 그가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그 후에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고? 언제?”“없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또다시 물었다.“그 사람 보고 싶어?”그녀는 자신을 감정을 가다듬고는 그를 향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그 사람 생각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내 사람도 아닌데. 그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어요.”웃고 있지만 눈빛이 슬퍼 보이는 그녀를 보며 구승훈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이런 그녀의 모습보다 진심 어린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이 더
안예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새해 홍보 영상은 지금쯤 나왔어야 했는데 송유라가 아직도 찍지 않아 진행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심지어 송유라는 이틀 전에 보경시까지 갔었거든요. 돌아오자마자 제가 촬영을 빨리 진행해달라고 했더니 제 뺨을 때렸어요.”강하리는 자기 때문에 안예서가 힘들어진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이번에 그녀는 송유라와 보경시에서 조금 불쾌한 일들이 있었다.송유라는 구승훈의 앞에서는 그녀를 어떻게 하지 못했지만 돌아와서 그 화를 안예서에게 푼 것 같았다.“예서 씨, 미안해.”강하리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안예서는 입술을 삐쭉였다.“왜 부장님이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시는 거예요?”강하리는 더 설명하지 않고 그저 물었다.“송유라는? 아직 회사에 있어?”안예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습니다.”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휴게실로 가서 얼음찜질하고 있어. 내가 올라가 볼 테니까.”최상층에 강하리가 도착했을 때 송유라는 마침 비서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당신들은 커피 하나 제도로 못 타요?”비서가 재빨리 송유라에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송유라 씨. 입맛에 안 맞으셨다면 제가 다시 타 오겠습니다.”송유라의 화는 점점 더 커졌고 폭발하려는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강하리를 발견했다.그녀는 차가운 비웃음을 터트리더니 입을 열었다.“됐어요. 강 부장님이 워낙 똑똑하고 손재주가 좋으니까 비서님보다 더 커피를 잘 탈 것 같은데.”강하리는 송유라가 앞을 막아서자 발걸음을 멈칫했다.“강 부장님이 커피 좀 타 줘요.”강하리의 표정이 구겨졌다.“미안한데 지금 그럴 시간이 없네요.””강하리 씨!”송유라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지만 강하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표님 사무실의 문을 바라보았고 비서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구 대표님은 아래층 회의실에 계십니다.”송유라가 미소를 지었다.“왜요? 승훈 오빠가 있으면 강 부장님 편이라도 들어줄 것 같아요?”강하리는 구승훈이 그녀를 도와줄 거라는
비서는 옆에서 강하리가 송유라에게 커피를 붓는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보고서는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강하리의 앞에 다가왔다.“강 부장님, 좀 참지 그랬어요?”비서의 뜻은 어떤 것들은 잠시 참을 수 있다면 참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송유라는 매일 오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동안 송유라는 기분이 좋지 않았을 때 여기로 오면 매번 그들을 힘들게 했다. 비서실 전체가 송유라의 횡포를 견디고 있었는데 하필 오늘 강하리가 참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이 커피 한 잔도 또 어떤 화를 불러올지 알 수 없었다.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이 커피를 붓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어차피 혼날 텐데 차라리 커피를 뿌리는 게 속이라도 시원하지 않겠어요?”“하지만....”강하리가 웃었다.“괜찮아요.”사실 그녀는 더 이상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구승훈이 화를 내든 분노하든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송유라는 아래층에 도착한 뒤 노크도 하지 않은 채 회의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이에 회의실 안에서 진행하고 있던 신제품 설명회가 중단되었고 구승훈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송유라에 눈썹을 치켜떴다.그러더니 엉망이 된 그녀의 옷을 보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무슨 일이야?”그의 질문에 송유라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구승훈의 표정은 살얼음이 낀 것처럼 차가워졌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미 예측한 것 같았다.전체 회사에서 송유라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강하리일 것이다.그는 고개를 돌려 앞에서 신제품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던 직원을 바라보았다.“회의는 먼저 여기서 끝내죠.”그의 말이 떨어지자 회의실에 있던 직원들은 서둘러 물건들을 챙겨 신속하게 회의실을 떠났다. 심지어 구승훈과 송유라를 쳐다보지도 못했다.모두가 떠난 후 구승훈은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강하리가 뿌렸어?”송유라는 여전히 입을 열지
구승훈은 그녀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송유라는 억울함을 참으며 비서가 건네주는 옷을 챙긴 후 갈아입으러 떠났다.구승훈은 그제야 물었다.“강하리는 어디 있습니까?”“세트장에 갔습니다.”구승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아무 일도 없는 사람 같네요.”비서는 2초 정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구 대표님, 사실 커피는 송유라가 씨가 스스로 자기 몸에 부은 겁니다. 그런 다음 강 부장님이 또 한 잔을 뿌렸습니다.”구승훈의 눈빛은 어두웠고 그의 감정을 하나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비서는 긴장감에 옆에 내려놓은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그래서요?”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구승훈이 다시 물었고 비서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이 일은 전부 강 부장님을 탓할 수 없습니다.”강하리는 비웃음을 날렸다.“그래서 강하리 씨가 커피를 뿌리지 않았나요?”비서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뿌렸습니다.”구승훈은 차갑게 웃었다.“그러니까요. 지금 비서님이 말하는 강 부장의 탓을 할 수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말해줄래요?”비서는 순간 등줄기가 얼어붙었다.마침내 구승훈이 말했다.“가서 사직서 쓰세요.”강하리는 계속 구승훈의 전화를 기다렸다. 하지만 뜻밖에도 비서가 해고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올 줄은 몰랐다. 그 순간 강하리는 비서가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세트장 쪽의 업무 지시를 마친 뒤 서둘러 회사로 돌아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니 마침 비서가 짐을 싸고 있었다. 비서의 눈가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고 강하리는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미안해요.”비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강 부장님 잘못이 아니에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비서는 강하리 보다 나이가 어렸고 사실 강하리에게서 어느 정도 일을 배웠었기에 제자라고 할 수도 있었다.처음 강하리가 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녀는 구승훈의 비서로 일했었다. 나중에 마케팅팀에 합류했고 당시 그녀의 자리
구승훈은 그녀의 대답을 들고서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결국 아무 말도 더하지 않고 강하리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앞으로 이런 일 생기면 송유라한테 대들지 말고 직접 날 찾아 와.”강하리는 묻고 싶었다.‘내가 당신을 찾아오면 당신이 날 도와줄 건가요?’하지만 이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가 없었다. 어떤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희망을 품지 않는 것이 좋았다.“알겠어요.”그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구승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가 봐. 너무 무리하지 말고.”말을 마친 뒤 그는 멈칫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 저녁에는 집에 돌아가서 밥 못 먹어.”강하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첫사랑을 위로하러 간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제는 이미 익숙해졌기에 그녀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사무실을 나갔다.밖에 있는 비서에게 말을 전한 뒤 그는 다시 업무를 보러 떠났다.퇴근 후 강하리는 바로 정서원의 병원으로 향했다. 한동안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서원은 여전히 병실 침대에 아주 조용하게 누워 있었다.강하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순간적으로 어디서부터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결국 그녀는 침대 옆에 조용히 앉아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입을 열었다.“엄마, 빨리 일어나면 안 돼요?”간호사는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빨개졌다.사실 의사가 이미 깨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환자의 가족이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이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하리 씨 그동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자기 몸부터 잘 챙겨야 해요.”강하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아주머니.”말을 마친 뒤 그녀는 멈칫했다.“최근에 강찬수가 다녀간 적이 있나요?”지난번 병원으로 강찬수가 그녀를 찾아온 이후로 구승훈은 그녀에게 대신 강찬수를 상대해 주겠다고
그녀는 사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장서연이 구치소에 잡혀갔을 줄은 몰랐다.그녀는 비웃었다.“그래서요? 장서연 씨, 내가 경고했었죠?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리면 감옥에 갈 거라고.”“인터넷에 떠도는 건 정말 내가 한 게 아니에요.”강하리는 눈을 내리깔며 비웃음을 날렸다.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은 장서연의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장서연이 그녀에게 저지른 잘못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이 사건은 송유라한테 가서 따져요. 결국 당신은 송유라 대신 누명을 쓴 거니까.”장서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송유라라는 세글자를 듣자마자 그녀의 얼굴에는 증오심이 번쩍였다.“강하리 씨, 우리 얘기 좀 해요.”강하리는 그녀를 밀어냈다.“미안한데 난 관심 없어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장서연을 피해 길가로 걸어갔다.“강하리 씨, 난 당신이 어쩌다 유산했는지 알고 있어요.”강하리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장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뭐라고요?”장서연의 얼굴에 순간 사나운 미소가 번쩍였다.“하리 씨가 아이를 유산한 게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알고 있다고요.”강하리의 입술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침착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무슨 뜻이에요?”“설마 하리 씨가 유산한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장서연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심지어 강하리의 불행을 즐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강하리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렇게 긴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유산이 사고였다고 생각했다.당시 그 팬이 강하리를 다치게 했을 때는 분명 누군가 일부러 사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유산한 것은 그녀가 그 팬을 용서하지 않아 그 팬의 아버지가 이성을 잃고 그런 사고를 저지른 것인 줄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당신 말은 누군가가 나를 일부러 유산하게 만들었다는 말이에요?”장서연은 웃음을 터트렸다.“어때요? 이제 얘기 나눌 마음이 생겼어요?”강하리는 장서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양손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내
녹음을 끈 뒤 그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핸드폰을 넣고 침착하게 택시를 탄 뒤 집으로 돌아왔다.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강하리는 그제야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한참을 문 앞에 서 있다가 핸드폰을 꺼내 장서연의 녹음을 다시 들었다.다 듣고 나니 가슴속에서 지울 수 없는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이가 이런 일로 유산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모두 송유라의 짓이었다.강하리는 핸드폰을 꽉 쥐고 있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웃고는 있었지만 웃음소리에 수많은 고통이 뒤섞여 있었다.어두운 방 안에서 그녀는 멍하니 문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울린 핸드폰 벨소리가 무거운 분위기를 깨트렸다.강하리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한 뒤 전화를 받았다. 손연지의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들려왔다.“하리야, 나 신정에 3일 동안 휴가받는데 우리 놀러 갈까? 나가서 좀 쉬고 오자.”강하리는 입꼬리를 내린 채 대답했다.“그래.”“너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우리 먼저 계획부터 세울까?”강하리는 문에 기대어 한참이 지난 뒤 대답했다.“난 어디든 좋으니까 네가 정해.”손연지가 멈칫했다. 그녀는 강하리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구승훈 그 자식이 또 너 괴롭혀? 정말 개자식이네...”“연지야.”손연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하리가 갑자기 그녀의 말을 끊었다.“나 그때 유산한 거 다른 사람이 계획한 거래.”손연지가 멈칫했다.“뭐라고? 네가 그때 다른 사람이 밀었다고 하지 않았어?”강하리는 깊은 한숨을 쉬며 오늘 장서연이 했던 말들을 손연지에게 말해주었다. 손연지는 다 들은 뒤 순간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네 말은 이 일을 송유라가 모두 계획한 거라고? 널 다치게 해서 유산하게 만든 것부터 시작해서 그 뒤에 인터넷에서 욕먹은 것까지 전부 다?”강하리는 마음속의 고통을 견디며 대답했다.“그런 것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렇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장서연의 말이 80퍼센트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강하리는 깊은 한숨을 쉬며 웃었다.“알겠어.”전화를 끊은 뒤 강하리는 아일랜드 식탁 앞에 앉았다.연성시의 올해 첫눈이 언제 내렸는지 알 수 없었다. 강하리는 창밖에서 흩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릿속이 흐리멍덩해졌다.구승훈이 정말로 알고 있었는지 생각하고 있었더라?하지만 마음속에서 또 다른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그가 몰랐다면? 그가 몰랐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그가 그녀를 도와줄까?그녀를 도와 그의 첫사랑이 그와 그녀의 아이를 죽였다는 증거를 찾아줄까?사실 그녀는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손가락은 그의 이름에서 오랫동안 꼼짝하지 못한 채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용기도 없었고 자신감도 없었다.그녀는 구승훈이 오늘 밤 돌아오는지 안 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고집스럽게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시간은 일분일초가 흐르고 있었다. 창밖에서 내리는 눈은 이미 얇게 바닥을 한층 덮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아파트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희미한 빛 속에서 한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여전히 멋있고 준수한 외모였다. 살짝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위에 눈송이 몇 개가 떨어져 있었다. 늦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그의 검은색 코트를 감싸고 있었다.“왔어요?”강하리는 아주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구승훈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다가갔고 그제야 강하리가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여전히 낮에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조명도 켜지 않은 채 코트만 벗어 놓고 그녀에게 다가갔다.“왜 안 자고 있어?”그는 다가와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문질렀다. 어두운 불빛 속에서도 그녀의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