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배가 고팠던 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그 식사 자리가 너무 불편해 별로 먹지 못하였고 오늘도 여태껏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일어나, 나가서 밥 먹자.”“움직이기 싫어요. 그냥 주문해서 먹어요.”그녀의 말에 구승훈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렇게 자고도 아직 회복이 안 돼?”“오랫동안 일했으니까요.”그가 웃으며 그녀에게 옷을 입혀주었다.“일어나서 운동 좀 해.” 옷을 입혀주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강 부장도 보경대학 나왔다고 했지? 나 구경 좀 시켜줘.”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갑자기 보경대학은 왜요?”“강 부장에 대해 알아가고 싶어서.”그녀는 거절할 수가 없었고 거절한다고 해도 이 남자한테는 소용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었던 그녀는 시큰거리는 허리를 펴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었다.두 사람은 밥을 먹고 난 뒤, 보경대학으로 향했고 날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다.보경대학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캠퍼스에는 각양각색의 커플들이 있었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구승훈과 함께 캠퍼스를 걸어 다니면서 문득 그녀는 옛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는 그녀도 캠퍼스 어딘가에서 이 남자를 우연히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말이 안 되는 우연한 만남을 위해 가장 먼 길을 돌아 매일 수업을 들으러 가기도 했었다.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상황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승훈 씨는 어디서 대학 다녔어요?”그녀는 갑자기 물었다.“강주에서.”그 말에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고 순식간에 몸이 굳어버렸다. 구승훈은 외국에서 대학을 다녔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였기 때문에 그가 강주에서 대학에 다녔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당시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그 작은 어촌 마을이 바로 강주에 있었다.“왜... 왜 강주예요?”그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하듯 담담해 보였다.“그냥, 가고 싶어서.”아주 짤막한 대답이
사실 이 질문은 좀 갑작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이 두 사람의 세 번째 만남이었으니까.그래서 그의 물음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예의 바르게 되물었다.“우리 어머니에 관해 궁금한 게 뭔가요?”“하리 씨 어머니의 연세, 직장 그리고 성함이요. 실례가 안 된다면 나한테 말해줄 수 있을까요?”정서원을 생각하니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는 매우 훌륭한 여자였다. 예쁘고 성격도 온화하고 춤이든 그림이든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사람을 잘못 만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바람에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한 남자 때문에 이 꼴이 된 것이다. 그녀는 아픈 마음을 가다듬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우리 엄마는 정 씨예요. 3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한 후부터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어요.”그녀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정서원의 나이에 대해서는 그녀도 잘 모른다. 그 당시 기억을 잃은 정서원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고 신분증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지금의 서류들은 모두 후에 송동혁이 대신 발급받아 준 것이었다. 그래서 나이든 생일이든 강하리는 사실 정확히 몰랐다. 한편, 심준호는 강하리의 어머니의 성을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성이 정 씨였군. 그럼 아니라는 거잖아.’하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큰 교통사고였나요?”그는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아주 심했죠. 지금까지도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거든요.”그녀의 말에 심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눈앞의 어린 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누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여자라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음이 안 좋았다.“미안해요.”진작에 익숙해진 강하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심준호는 예의상 더는 묻지 않고 말길을 돌렸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핸드폰 소리가 들려왔다.“미안해요,
그러나 그는 여전히 강하리에게 연락처를 남겨주었다.“기회가 되면 자주 연락해요. 승훈이 신경 쓰지 말고.”강하리는 심준호의 번호를 받아적었고 심준호는 웃는 얼굴로 구승훈을 쳐다보았다.한편,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던 구승훈은 끝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심준호가 떠난 뒤에도 구승훈은 카페를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커피를 마시지 않는 그 앞에는 따뜻한 물 한 잔이 놓여있었다. 그는 예술품을 다루듯이 유리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대표님, 안 가요?”그녀의 말에 그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왜? 심준호가 가면 우리도 가야 하는 거야?”그의 말투에서 그녀는 그가 기분이 안 좋아졌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아마도 자신이 심준호의 전화번호를 받아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그녀만의 대인관계가 있지 않는가?“가고 싶지 않으면 여기 좀 더 있어요.”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잠시 후, 갑자기 그가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준호 같은 스타일 좋아해?”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그의 시선을 피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서 한 쌍의 커플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여자가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귓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문뜩 곧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 말은 곧 있으면 구승훈의 생일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니요, 심준호 씨는 내 스타일 아니에요.”“그럼, 강 부장은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데? 당신이 짝사랑하는 그 남자는 어떤 스타일인 거야?”그녀는 맞은편의 남자를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좋아하는 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사람을 이미 충분히 좋아할 만큼 좋아했었다.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면 그녀는 아마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구승훈 눈을 가늘게 떴다.“무슨 대답이 이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 좋다는 얘기인가?”“그렇게까지는 못하죠. 하지만 날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강하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구승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왜? 물어보면 안 되는 거야?”“아니요. 그냥 꺼내고 싶지 않은 얘기라서요.”그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강 부장이 그 사람한테 많이 다쳤나 보군.”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그녀의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더욱 세게 잡았다. “아직도 못 잊은 거야?”“그냥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불편할 뿐이에요.” 그의 눈빛은 싸늘하게 변해갔다.“강 부장이 이렇게 사랑에 목매는 사람인 줄은 몰랐어.”강하리는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런 그녀를 한참 쳐다보고는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당신이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거야?”“좋은 사람이었어요. 예전에 나한테 잘해줬거든요.”그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잘해줬는데 당신을 떠난 건가? 그건 당신의 감정을 가지고 논 나쁜 놈인 거잖아.”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그 사람이 날 잊어버렸어요.”“잊어버렸다고? 어떻게? 어디 다친 거야? 기억이라도 잃어버린 건가? 아니면 당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잊어버린 거야?”“나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날 잊어버렸더라고요.”구승훈은 그녀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 올렸고 그녀의 눈에 비친 슬픔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눈빛이 어두워진 그가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그 후에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고? 언제?”“없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또다시 물었다.“그 사람 보고 싶어?”그녀는 자신을 감정을 가다듬고는 그를 향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그 사람 생각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내 사람도 아닌데. 그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어요.”웃고 있지만 눈빛이 슬퍼 보이는 그녀를 보며 구승훈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이런 그녀의 모습보다 진심 어린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이 더
안예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새해 홍보 영상은 지금쯤 나왔어야 했는데 송유라가 아직도 찍지 않아 진행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심지어 송유라는 이틀 전에 보경시까지 갔었거든요. 돌아오자마자 제가 촬영을 빨리 진행해달라고 했더니 제 뺨을 때렸어요.”강하리는 자기 때문에 안예서가 힘들어진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이번에 그녀는 송유라와 보경시에서 조금 불쾌한 일들이 있었다.송유라는 구승훈의 앞에서는 그녀를 어떻게 하지 못했지만 돌아와서 그 화를 안예서에게 푼 것 같았다.“예서 씨, 미안해.”강하리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안예서는 입술을 삐쭉였다.“왜 부장님이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시는 거예요?”강하리는 더 설명하지 않고 그저 물었다.“송유라는? 아직 회사에 있어?”안예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습니다.”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휴게실로 가서 얼음찜질하고 있어. 내가 올라가 볼 테니까.”최상층에 강하리가 도착했을 때 송유라는 마침 비서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당신들은 커피 하나 제도로 못 타요?”비서가 재빨리 송유라에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송유라 씨. 입맛에 안 맞으셨다면 제가 다시 타 오겠습니다.”송유라의 화는 점점 더 커졌고 폭발하려는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강하리를 발견했다.그녀는 차가운 비웃음을 터트리더니 입을 열었다.“됐어요. 강 부장님이 워낙 똑똑하고 손재주가 좋으니까 비서님보다 더 커피를 잘 탈 것 같은데.”강하리는 송유라가 앞을 막아서자 발걸음을 멈칫했다.“강 부장님이 커피 좀 타 줘요.”강하리의 표정이 구겨졌다.“미안한데 지금 그럴 시간이 없네요.””강하리 씨!”송유라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지만 강하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표님 사무실의 문을 바라보았고 비서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구 대표님은 아래층 회의실에 계십니다.”송유라가 미소를 지었다.“왜요? 승훈 오빠가 있으면 강 부장님 편이라도 들어줄 것 같아요?”강하리는 구승훈이 그녀를 도와줄 거라는
비서는 옆에서 강하리가 송유라에게 커피를 붓는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보고서는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강하리의 앞에 다가왔다.“강 부장님, 좀 참지 그랬어요?”비서의 뜻은 어떤 것들은 잠시 참을 수 있다면 참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송유라는 매일 오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동안 송유라는 기분이 좋지 않았을 때 여기로 오면 매번 그들을 힘들게 했다. 비서실 전체가 송유라의 횡포를 견디고 있었는데 하필 오늘 강하리가 참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이 커피 한 잔도 또 어떤 화를 불러올지 알 수 없었다.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이 커피를 붓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어차피 혼날 텐데 차라리 커피를 뿌리는 게 속이라도 시원하지 않겠어요?”“하지만....”강하리가 웃었다.“괜찮아요.”사실 그녀는 더 이상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구승훈이 화를 내든 분노하든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송유라는 아래층에 도착한 뒤 노크도 하지 않은 채 회의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이에 회의실 안에서 진행하고 있던 신제품 설명회가 중단되었고 구승훈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송유라에 눈썹을 치켜떴다.그러더니 엉망이 된 그녀의 옷을 보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무슨 일이야?”그의 질문에 송유라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구승훈의 표정은 살얼음이 낀 것처럼 차가워졌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미 예측한 것 같았다.전체 회사에서 송유라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강하리일 것이다.그는 고개를 돌려 앞에서 신제품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던 직원을 바라보았다.“회의는 먼저 여기서 끝내죠.”그의 말이 떨어지자 회의실에 있던 직원들은 서둘러 물건들을 챙겨 신속하게 회의실을 떠났다. 심지어 구승훈과 송유라를 쳐다보지도 못했다.모두가 떠난 후 구승훈은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강하리가 뿌렸어?”송유라는 여전히 입을 열지
구승훈은 그녀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송유라는 억울함을 참으며 비서가 건네주는 옷을 챙긴 후 갈아입으러 떠났다.구승훈은 그제야 물었다.“강하리는 어디 있습니까?”“세트장에 갔습니다.”구승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아무 일도 없는 사람 같네요.”비서는 2초 정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구 대표님, 사실 커피는 송유라가 씨가 스스로 자기 몸에 부은 겁니다. 그런 다음 강 부장님이 또 한 잔을 뿌렸습니다.”구승훈의 눈빛은 어두웠고 그의 감정을 하나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비서는 긴장감에 옆에 내려놓은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그래서요?”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구승훈이 다시 물었고 비서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이 일은 전부 강 부장님을 탓할 수 없습니다.”강하리는 비웃음을 날렸다.“그래서 강하리 씨가 커피를 뿌리지 않았나요?”비서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뿌렸습니다.”구승훈은 차갑게 웃었다.“그러니까요. 지금 비서님이 말하는 강 부장의 탓을 할 수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말해줄래요?”비서는 순간 등줄기가 얼어붙었다.마침내 구승훈이 말했다.“가서 사직서 쓰세요.”강하리는 계속 구승훈의 전화를 기다렸다. 하지만 뜻밖에도 비서가 해고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올 줄은 몰랐다. 그 순간 강하리는 비서가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세트장 쪽의 업무 지시를 마친 뒤 서둘러 회사로 돌아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니 마침 비서가 짐을 싸고 있었다. 비서의 눈가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고 강하리는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미안해요.”비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강 부장님 잘못이 아니에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비서는 강하리 보다 나이가 어렸고 사실 강하리에게서 어느 정도 일을 배웠었기에 제자라고 할 수도 있었다.처음 강하리가 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녀는 구승훈의 비서로 일했었다. 나중에 마케팅팀에 합류했고 당시 그녀의 자리
구승훈은 그녀의 대답을 들고서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결국 아무 말도 더하지 않고 강하리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앞으로 이런 일 생기면 송유라한테 대들지 말고 직접 날 찾아 와.”강하리는 묻고 싶었다.‘내가 당신을 찾아오면 당신이 날 도와줄 건가요?’하지만 이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가 없었다. 어떤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희망을 품지 않는 것이 좋았다.“알겠어요.”그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구승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가 봐. 너무 무리하지 말고.”말을 마친 뒤 그는 멈칫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 저녁에는 집에 돌아가서 밥 못 먹어.”강하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첫사랑을 위로하러 간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제는 이미 익숙해졌기에 그녀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사무실을 나갔다.밖에 있는 비서에게 말을 전한 뒤 그는 다시 업무를 보러 떠났다.퇴근 후 강하리는 바로 정서원의 병원으로 향했다. 한동안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서원은 여전히 병실 침대에 아주 조용하게 누워 있었다.강하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순간적으로 어디서부터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결국 그녀는 침대 옆에 조용히 앉아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입을 열었다.“엄마, 빨리 일어나면 안 돼요?”간호사는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빨개졌다.사실 의사가 이미 깨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환자의 가족이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이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하리 씨 그동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자기 몸부터 잘 챙겨야 해요.”강하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아주머니.”말을 마친 뒤 그녀는 멈칫했다.“최근에 강찬수가 다녀간 적이 있나요?”지난번 병원으로 강찬수가 그녀를 찾아온 이후로 구승훈은 그녀에게 대신 강찬수를 상대해 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