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팀에도 회식은 원래 뺄 수 없는 일환이었다. 하지만 올해 강하리는 도저히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아 지금까지 별다른 동작을 보이지 않았다.강하리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입을 열었다. “예서 씨가 진행해 줘. 준비가 다 되면 나한테 얘기하고.”안예서는 강하리를 놓아주지 않았다.“보스, 다들 회식할 때 애인을 데려오고 싶어 하는데 그래도 되나요?”강하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누구든 데려와도 돼.”안예서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럼, 보스는요? 아니면 그날 저희가 남자들 좀 불러볼게요. 소개팅해 보실래요?”강하리는 잽싸게 거절했다. 더 이상 피곤해질 일이 생기지 말았으면 했다.“괜찮아. 아직 연애할 마음이 없거든.”말이 끝나고 강하리는 안예서를 가볍게 토닥이고는 얘기했다.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너희들도 얼른 자리에 돌아와서 일들 해.”“알겠어요.”강하리는 사무실에 들어와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핸드폰에서 손연지의 연락이 울리고 있었다.“하리야, 요양병원 자료를 방금 너한테 보냈어.”강하리는 짧게 대답했다. “알겠어.”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하리야, 너 진짜 떠나려고? 일단 어머니한테 위험한 결정인 걸 떠나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너 지금 얼마나 모았는데? 만약 거기에 도착한 뒤에 돈이 부족하면 그때는 어쩔 건지 생각해 봤어? 거기에 도착한 이후에 다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손연지는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하지만 강하리도 친구가 하는 말의 뜻을 알고 있었다.거기로 떠난 뒤에 남자한테 빌붙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강하리는 점점 속이 답답해짐을 느꼈다.그랬다. 강하리는 떠나고 싶었다.하지만 엄마의 치료비가 제일 큰 걸림돌이었다.손연지의 말은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었다.매달 몇천만 원씩 빠지는 치료비는 강하리 같은 평범한 직장인이 부담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지금 여기서는 적어도 엄마의 치료비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다.만약 거기서 정말 치료
강하리는 손연지의 전화를 끊고 요양병원의 자료를 살펴보았다.확실히 손연지의 말대로 환경이나 시설이 좋았다.유일하게 머리 아프게 하는 구석이 치료비였다.강하리는 약하게 숨을 한번 내쉬었다.자료를 금방 정리했는데 마침 구승훈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계약서는 문제없어. 강 부장은 나랑 출장 좀 같이 가지. 조금 이따 비행기 타고 보경시에 갈 거니까 아래서 기다릴게.”강하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대표님, 매번 전담 비서와 함께 가셨잖아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었다. “난 강 부장이랑 가고 싶은데. 안돼?”강하리는 구승훈에게 말문이 막혀 뭘 얘기할지 몰랐다.구승훈은 엄연히 대표였고 자연스럽게 누구와 출장을 가도 다 되는 거였다.강하리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열었다. “저 오늘 업무가 많아서요, 대표님...”“이번 건은 강 부장 거야. 상황도 강 부장이 더 잘 알 테고. 강 부장, 원래 강 부장 소관이야.”강하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전 아직 짐도 싸지 않았는데요.”수화기 건너편 남자의 인내가 눈에 띄게 바닥났다.“보경시에 도착하면 그때 사는 거로 해. 아래서 기다릴 테니까 빨리 와.”구승훈은 이 말을 끝으로 전화를 껐다.강하리는 꺼진 핸드폰을 바라보며 답답한 기운을 느꼈다.하지만 업무상의 일이었기 때문에 강하리는 결국 짐을 싸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기 전에 안예서와 얘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구 대표님이랑 출장 좀 다녀올 거야. 팀 회식은 이미 준비해 뒀으니까, 너희가 돌아오면 그때 회식비 청구해.”안예서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보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요.”강하리가 빙긋 웃었다. “그래도 되고.”회사 아래 세워져 있던 컬리넌의 차창이 반쯤 내려졌다.남자는 손에 담배 한 개비를 끼우고 느슨하게 좌석에 기대있었다. 눈동자에는 자유분방함과 제멋대로 하는 성격이 그득하게 담겨있었다.강하리가 다가오자 남자는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시선은 강하리 얼굴에 고정한 채.원래 좋지 않았던 안색은 지
하지만 그것도 단지 일시적인 감정일 뿐, 그는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구승훈은 그제야 자신이 결코 강하리의 반골 기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소리 없는 반항이었지만 그 힘만큼은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강하리가 매번 소원하게 굴 때마다 불쾌감이 마구 치솟았다. 그저 고분고분하게 자신에게 의지하도록 그녀의 날개를 확 부러트리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참았다.어차피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애인일 뿐이었고 그녀가 계속 그의 곁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불쾌한 마음은 무조건 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강하리의 턱을 잡아 치켜올린 구승훈은 안하무인이었다.“이건 다 강 부장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닌가? 만약 이만한 일도 제대로 못 한다면 강 부장은 그 돈도 가질 자격이 없는 거야.”구승훈의 쌀쌀맞은 눈빛에는 한치의 욕망도 담겨있지 않았고 오히려 분노가 스며 있었다.사실 강하리는 그가 왜 화가 났는지 알고 있었다. 이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멀어지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런 근거 없는 그의 소유욕처럼 말이다.하지만... 강하리도 더 이상 휘둘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녀는 쓴 속을 주워 삼키며 간신히 웃음을 쥐어 짜냈다.“좋아요. 제가 대표님을 어떻게 만족시켜 드리면 될까요?”“손으로 하면 돼.”구승훈이 여유 있고 편한 자세로 문에 기대서서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강하리는 그의 팬츠 버클을 풀고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닿는 순간 구승훈의 입술이 다시 강하리의 입술에 포개졌다.카드를 미처 넣을 새도 없이 어둑한 방에서 하는 키스는 뭔가 더 야릇한 느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하리는 체력이 바닥까지 소모되어 후반부에는 거의 구승훈이 그녀의 손을 잡고 움직였다....거사를 치른 후 구승훈은 강하리의 귓불을 깨물며 말했다.“날로 먹네, 강 부장.”“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힘이 남아나지 않는걸요.”아픔을 참으며 말하
살짝 저릿한 느낌이 전해지는 입술 아래로 구승훈의 목젖이 두어 번 오르내리더니 그는 강하리의 목덜미를 거칠게 잡았다. 그리고 입에서 건조하고 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강 부장은 고작 가벼운 입맞춤 따위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계속 해.”그녀의 목을 문지르며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강하리의 미간이 구겨졌다.“대표님, 저희 저녁 연회에 참석해야 하는데요.”구승훈은 눈썹을 치켜뜨고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일단 빚진 거로 하든가.”말을 마친 그는 숄을 꺼내와 강하리의 어깨에 걸쳐주었다.“가자.”저녁 연회는 한 채의 별장에서 진행 중이었고 아마도 사적인 연회 같았다. 구승훈이 강하리를 데리고 별장에 들어섰을 때 삼십 대 초반의 한 남자가 맞이하러 나왔다.“구승훈, 너 지각이야!”남자가 다가와 웃으며 말하자 그의 목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구승훈이라는 이름 세글자는 어디를 가나 항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강하리는 그의 팔짱을 낀 채 저에게로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의 세례를 감내해야만 했다.약삭빠른 사람들은 벌써 와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구승훈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보려고 다가오는 이들을 두세 마디 말로 돌려보냈고 제일 처음 말을 걸어온 남자만 남게 되었다. 남자의 눈길이 강하리에게 닿으며 의미심장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승훈아, 누군지 소개 안 해줄 거야?”“회사 동료, 강하리 부장이야.”구승훈이 강하리를 흘긋 보며 말하자 그 남자는 싱긋 웃었다.“아, 동료였어. 난 또 여자 친구인 줄 알았잖아!”구승훈은 대꾸하지 않고 강하리를 보며 이어서 소개했다.“이쪽은 법무법인 정세, 대표 변호사 심준호야.”강하리는 TV에서 이 남자를 본 적이 있다. 법무법인 정세는 국내 최대 대형로펌이다. 전문적으로는 공정거래 분쟁과 재산 분할 및 재벌 이혼 소송 분야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정세의 대표는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고 매우 무자비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구승훈의 미간이 살짝 좁혀지고 심준호는 쓴 미소를 지었다.“내 위에 누나가 한 명 있는데 나보다 족히 20살이 많아. 그런데 어릴 때 실종되고 나서 지금까지 찾지 못해서 부모님께서 수년 동안 늘 안타까워하셨어. 특히 엄마는 누나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이시고.”심준호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사진 속의 여인은 무척 아름답고 옅은 미소는 부드러움을 담고 있었다. 눈썹이 살짝 좁혀든 구승훈은 왠지 모르게 사진 속 사람이 낯설지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회상해 보아도 어디서 봤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실종된 지는 몇 년 됐어?”“아마 28년은 됐을 거야.”만약 사진이 없었다면 심준호는 이미 자기 누나의 외모를 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이다. 구승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사람을 시켜 계속 알아보라고 할게.”“고마워.”심준호는 구승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애피타이저를 두세 입 먹은 강하리는 더는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연회장이 조금 답답해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걸어갔다. 찬 바람이 불어와 으슬으슬한 한기를 느낀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숄로 몸을 감쌌다. 이때 한 사람이 옆으로 다가와 그녀에게 술잔을 건넸다. 고개를 돌려보니 대양그룹 총수의 아들 정주현이 옆에 서있었다. 대양그룹, 바로 그들의 이번 협력 파트너였다. 강하리는 지체하지 않고 고개를 살며시 숙이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정주현 씨.”“이제야 강 부장님을 실제로 뵙는군요. 동영상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예쁘시네요.”정주현은 인사를 하며 다시 손에 들린 술잔을 강하리 앞으로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미안해요, 주현 씨. 전 술을 못 마셔요.”“에이, 거짓말하지 마요. 강 부장님, 술을 아주 잘 마신다고 들었어요.”정주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강하리는 여전히 거절하는 태도로 일관했다.“요즘 약을 먹고 있어서 진짜 못 마셔요.”그 말에 정주현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그럼 조금 있다가 저랑
강하리의 입꼬리가 뻣뻣하게 굳었다.“대표님은 상상력이 참 풍부하시네요.”그녀는 확실히 정주현이 그녀와 잠자리를 갖고 싶어 하는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기껏해야 작업을 걸어오는 정도였다.대답이 없는 구승훈은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어찌 됐든 3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 해왔기에 강하리는 한눈에 그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그 뒤로 연회장에 있는 내내 구승훈은 계속 강하리를 옆에 끼고 있었다. 그는 신분이 고귀하여 이런 장소에 있을 때면 그에게 아첨하며 술을 권하러 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구승훈은 그저 따분할 따름이다. 앞에 건네진 술잔을 보며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 부장이 나 대신 마셔줘.”아직 생리 중이어서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 강하리가 미간을 심하게 구겼다.“대표님, 저 마시고 싶지 않아요.”하지만 구승훈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를 보며 쓴웃음을 흘린 강하리는 이 남자가 분명 화가 나 있음을 알고는 결국 자기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눈 딱 감고 앞으로 건네 온 술잔을 받아 들었다. 한 잔이 있으면 두 잔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세 잔...연속 몇 잔 마셨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린 강하리가 다시 술잔을 받아 들려고 할 때 구승훈이 돌연 술잔을 뺏어갔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단숨에 술을 쭉 들이켠 구승준은 그길로 강하리를 데리고 심준호와 작별 인사를 했다.“일이 있어서 오늘은 이만 가 봐야겠어.”일찌감치 구승훈이 지루해하는 모습을 본 심준호도 만류하지 않았다.“그래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 할게.”고개를 끄덕인 구승훈은 강하리를 끌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강하리는 이 남자가 또 왜 이러는지 그 저의를 알 수 없었지만, 술을 더 이상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돌아가는 내내 구승훈은 말없이 그저 강하리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어찌나 세게 끌어안았는지 그녀를 자기 몸속에 구겨 넣을 기세였다. 강하리는 불편했지만, 꾹 참고
“혼자 걸을 수 있어요!”강하리의 몸부림에도 구승훈은 아무 말 없이 꿋꿋이 그녀를 안고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강하리는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욕실에서 나오자 구승훈이 룸서비스를 시켰다. 강하리는 눈앞에 놓인 음식을 봐도 아무런 식욕이 돌지 않았다. 미동도 없는 그녀를 보고 구승훈은 눈썹을 치켜떴다.“왜, 먹기 싫어?”“네, 입맛이 없어요.”고개를 끄덕인 구승훈은 다시 카운터에 전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 직원이 영양죽 한 그릇과 찐빵 두 개를 가져왔다.“저녁이니까, 단 거 많이 먹지 마.”뭔가 걱정하듯 말하는 구승훈의 말에 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고마워요.”식사를 마친 강하리는 눕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아마도 술을 마신 탓인지 그대로 깊게 잠들었다. 다음 날 그녀는 비몽사몽간에 구승훈이 자기 입에 입맞추는 것을 느꼈다.“내가 올 때까지 호텔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구승훈이 서명식에 저를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걸 알고 강하리는 눈을 번쩍 뜨고 그와 시선을 맞췄다.“전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어요.”구승훈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어디 갈 건데?”사실 강하리는 마침 보경시에 있는 손연지가 말했던 요양원에 가보고 싶었다.“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이나 하려고요.”여기저기 돌아다니겠다는 강하리의 말에 구승훈은 불현듯 노민우가 전에 찍어 보내온 놀랄 만큼 아름다웠던 그 사진이 떠올라 날카로운 눈매가 가늘어졌다.“강 부장, 싸돌아다니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오후에 돌아와서 같이 승마하러 가.”남자는 그녀의 입에 다시 입맞추고 나서야 돌아서서 나갔다. 옅은 한숨을 토해낸 강하리는 그가 떠나자 기어이 밖으로 나와 요양원으로 갔다.설령 아직 의료비를 마련할 수 없을지라도 한 번 알아봐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요양원의 환경은 물론 의료시설 또한 국내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궁금한 점들을 일일이 물어 본 후에야 강하리는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요양원의 입구에서 심준호와 마주쳤다. 그녀를
순간 강하리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그녀는 구승훈을 바라보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엄마를 위해 고급 요양원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어요.”그녀의 표정에서 뭔가 수상한 낌새라도 찾아내려는 듯 구승훈은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강하리는 집요하게 달라붙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떨쳐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구승훈은 의심이 아주 많았기에 그녀가 불안한 기색 없이 평정을 유지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그제야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강 부장 앞으로 보경에 와서 살 생각이야?”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 요양원이 심씨 가문 소유라는 사실을 알게 된 강하리는 일찌감치 포기할 심산이었다. 그녀는 구승훈을 떠난 후에는 두 번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아마도요.”“보경이 좋아?”“그건 아닌데 그냥 보경이 수도잖아요. 그렇다 보니 의료 시설이 다른 곳에 비해 좋지 않겠어요.”강하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구승훈은 가타부타 내색을 하지 않았다.“그렇지만 여기 의료비도 다른 곳에 비해 아주 비쌀 거야. 강 부장, 연성도 의료시설이 괜찮아.”입매가 굳어진 강하리는 대답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구승훈도 더는 그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준비해. 나가서 밥 먹자.”“나가서 먹자고요?”두 사람은 3년 동안 같이 있었지만, 외식은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하리가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접대 자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강하리가 집에서 밥을 했다. 정확히 짚어 말하면 두 사람의 사이는 떳떳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데이트나 외식과 같은 커플들끼리나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에게는 크나큰 사치였다. “그래, 먹고 나서 승마하러 가자.”“좋아요.”옷을 갈아입은 강하리는 구승훈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남자의 커다란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강하리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쳐들어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구승훈은 정말 잘생겼다. TV에 나오는 아이돌과는 떡잎부터 달랐다. 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