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가 매장에서 나와서도 한참 동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그녀는 택시를 타고 정서원이 있는 병원으로 가서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정서원과 함께 있었다.집에 돌아왔을 때, 구승훈은 이미 집에 와있었다.강하리가 돌아온 것을 보고 구승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너 길고양이야? 나가면 집에 돌아올 줄을 모로고.”강하리는 그를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다소 무례한 말투로 얘기했다."대표님은 매일 이렇게 한가하세요?”구승훈의 얼굴은 순간 굳어버렸다."강하리, 밖에서 다이너마이트 먹고 왔어?”강하리는 이 남자를 돌아보며 순간 송유라의 수모를 떠올렸다.그녀는 원래 자신이 눈도 깜빡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신경 쓰였다.하지만 그녀는 이제 이 남자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바로 몸을 돌려 침실로 들어갔다.푸승훈은 침착한 얼굴로 뒤따라왔다."강하리, 내가 네 심기를 건드렸어?”강하리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아니요.”구승훈의 안색은 그녀의 대답으로 인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그럼 너 표정이 왜 이래?”강하리는 입이 근질댔다.올해 그의 생일에 송유라를 초대했는지 묻고 싶었다.그러나 그 물음은 입가에 맴돈 채 삼켜버렸다.송유라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물어봤자 치욕을 자초한 것일 뿐이다."죄송해요." 드디어 다시 입을 연 그녀의 말투는 평정을 되찾았다. "어머니를 보고 나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구승훈을 미간을 지푸렸다.그러나 강하리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어머니꼐서 중환자실에 누워있은 지 3년인데 아마 그 누구라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구승훈은 콧방귀를 뀌며 강하리한테 경고했다.“다음에는 그러지 마.”강하리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그녀가 나오자, 구승훈이 침대 옆에 앉아 원래 그녀의 가방에 있어야 할 동창회 초대장을 보고 있었다.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하리를 바라봤다. "동창회에 간다고?”강하리는 부인하지 않았다."맞아요
하지만 강하리의 허리를 잡고 있던 구승훈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강하리는 분을 참지 못하고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씨...”마침내 구승훈은 그녀를 놓아주었다."강하리, 너 죽고 싶어?”강하리는 그를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은 거친 손길로 그녀의 입술을 문질렀다.부은 입술에 키스하니 입술 색이 더욱 붉어지고 화사했다.구승훈은 피식 웃더니 강하리의 입에 자기 손가락을 슥 집어넣었다.갑작스러운 행동에 강하리는 굴욕감을 느꼈다.구승훈에게 노리개처럼 놀아나는 느낌이 그녀를 너무 힘들게 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구승훈은 그녀의 턱을 꽉 쥐었다. "움직이지 마!”그의 손가락은 그녀의 입속에서 한 바퀴 더듬더니 그녀의 뾰족한 이빨 위에 손을 얹었다."이 날카로운 이빨로 한 번만 더 물어봐!”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는 손가락을 거두었다.강하리는 무서운 눈길로 그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구승훈은 그녀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더니 이유 모를 쾌감이 밀려왔다.이래야 강하리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예전 늘 생기가 없고, 그와 거리를 두고 어려워하는 것보다 나았다."동창회에는 내가 같이 가줄게.”구승훈은 휴지 두 장을 꺼내 손을 천천히 닦으며 말했다강하리의 발걸음이 문득 무거워졌다.그녀는 구승훈을 돌아보았다."뭐라고요?”구승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동창회 때 같이 가자고.”강하리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쥔 잠옷을 꽉 움켜쥐었다."왜요?”구승훈은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너랑 같이 가고 싶은데 왜 그래?”강하리는 한참 동안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물었다."무슨 자격으로 참가하실려고요?”동창회는 보통 혼자 참석하거나 가족이나 애인을 데리고 참석한다.구승훈이 그녀와 함께 가려고 하는 이 상황에 과연 어떤 신분이 어울릴까?그가 갑의 신분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다.구승훈은 그녀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강 부장은 내가 어떤 자격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강하리는
송유라는 문 앞에 서서 손에 쇼핑백 몇 개를 들고 있었다.송유라는 강하리를 보고 활짝 웃었다."강 부장님, 내가 오빠한테 뭘 좀 전해주러 왔는데, 괜찮으시죠?”강하리는 그녀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돌아섰다.그녀가 과연 무슨 의견을 제기할 처지나 될까?서재 문 앞에 도착하자 강하리는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송 유라 씨 오셨습니다.”서류를 뒤적거리던 구승훈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들자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서재로 모셔.”거실에 서있던 송유라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았다.강하리의 입술은 빨갛게 부어올랐다.방금 샤워를 했는데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이빨로 깨문 듯 더 발그스름해 보였다.바보가 아닌 이상, 그 둘이 키스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서재에 들어서서 구승훈의 찢어진 입술을 본 후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구승훈은 송유라를 보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왜 이럴 때 왔지?”송유라는 그를 매서운 눈길로 노려보았다."또 무슨 성질을 부리려고?”구승훈은 잠시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얼굴은 왜 그래?”오늘 강하리의 손이 꽤 매웠나 보다.송유라의 얼굴은 아직도 붉게 부어 있다.구승훈의 물음에 송유라는 바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시선은 강하리한테 머물렀다가 이내 구승훈한테 정착했다."제가 오늘 또 강 부장님을 화나게 했나 봐요.”구승훈의 표정은 한껏 무거워졌다.그는 눈을 돌려 한쪽에 우두커니 서있는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강 부장, 네가 때린 거야?”강하리는 부인하지 않았다.기왕 때린 이상, 그녀는 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맞아요, 제가 때렸어요.”강하리는 말하면서 구승훈과 시선이 맞닿았다.그녀는 더 이상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구승훈의 곁에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송유라가 뭐 대단하다고 번번이 참아줘야 하겠는가!송유라가 구승훈의 첫사랑은 맞지만, 그녀의 거듭된 모욕을 참을 이유는 없었다.강하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심지어 조금의 두려움도 없다.구승훈의 눈에 서늘한
송유라는 억울한 듯 뾰로통해서 말했다.“다른 얘기는 안 했어요, 강 부장님께 오빠한테 선물할 옷 좀 같이 골라달라고 했는데 기분이 상하셨나 봐. 강 부장님은 내가 옷도 사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송유라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강하리는 이런 송유라의 즉석 연기를 보고 내심 감탄하였다. “유라 씨, 알면 됐어요. 다음부터 남의 남자 친구한테 함부로 옷 사주고 그러시지 않길 바라요.”남자 친구라는 말을 듣고 송유라는 우는 것도 잊은 채 얼굴이 굳어졌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구승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구승훈은 의자에 기댄 채 부정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송유라는 분해서 쇼핑백을 구승훈에게 내팽개치고 울면서 뛰쳐나갔다.구승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강하리만 응시하고 있었다.“이제 만족해?”구승훈은 냉소를 드리우며 물었다. “연인관계로 발표해도 된다고 대표님이 그러지 않으셨나요?”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구승훈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그는 강하리의 옆으로 다가와서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매만졌다. 마치 맘에든 장난감을 보는듯했다.“여자 친구라, 강 부장이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그러면 애인 사이에 하는 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저녁에 깨끗이 씻고 침대에서 기다려, 우리 재미를 좀 보자고. 응?”말을 마치고 구승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문이 닫히고 조용해진 방안에는 강하리의 떨리는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번 판은 내가 이겼나?’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철저하게 진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눈물을 참는 두 눈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가슴 아파할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닌가 그것도 이쁜 아이한테만 주는 건가, 송유라처럼.거실로 나온 강하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는 구승훈의 비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장난감을 보는 듯한 그 눈빛. 여자 친구라고 했지만,
손연지는 마침내 강하리의 목소리가 이상한 걸 알아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구승훈 그 개자식이 또 괴롭히던? ”강하리의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녀는 친구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싶었지만, 말도 안 되는 자신의 감정을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는지 몰랐다.“아니야. 그냥 목감기인 것 같아.”“어이구.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해. 너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잖아. 조심해야지.” “알았어.”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주고받다가 통화를 끊었다. 그 순간 초인종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문밖에는 구승훈의 비서 신도윤이 서있었다. 손에는 쇼핑백들이 들려져 있었다. “대표님께서 의상과 액세서리 가져다드리라고 분부했습니다. 내일부터 강 부장님이 회사로 출근하실 거라고...”“네, 고마워요. 고생하셨어요. 신 비서님.”강하리는 비서의 손에서 쇼핑백을 받아 들면서 말했다.신비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듯했지만 주저하고 있었다. “비서님, 무슨 일인가요?”강하리는 신도윤을 보면서 물었다.신도윤은 잠시 주저하다 이내 큰 결심한 듯 말했다.“강 부장님, 지금 자리에 대신 계시는 그 분, 같이 지내기 어려운 사람이에요. 회사에서 주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강하리는 잠시 멈칫하다 이내 비서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네. 그럴게요.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그제야 신도윤은 안심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신 비서를 보내고 강하리의 시선은 쇼핑백으로 향했다. ‘그동안 이런 수작으로 여자들을 달랬던 건가?’아마 오늘 밤의 일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아마 정말로 감동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이 쇼핑백들이 꼴 보기도 싫어졌다. 강하리는 옷과 액세서리들을 소파에 내동댕이치고 다시 술을 따라서 단숨에 들이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은 바닥이 났고 두 번째 병을 터뜨리려고 할 때쯤 현관문이 열렸다. “오셨네요.”강하리는 돌아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밖에서 돌아온 구승훈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술에 취한 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
강하리가 술잔을 내려놓자, 구승훈은 바로 다시 가득 따라주었다.연속 여러 잔을 들이키는 그녀를 보고 구승훈의 미간이 찡그려졌다.“빨리 따라요. 승훈 씨 왜 안 따라줘요?”구승훈은 갑자기 재미가 없어졌다.막 들어왔을 때, 그는 확실히 화가 좀 났다.그의 앞에서 송유라에게 시비를 거는 것도 모자라 그가 준 선물을 아무렇게나 처박아 놓다니!그는 강하리를 괴롭히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 술에 취한 여자를 괴롭히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번쩍 안고 침실로 향했다. 그녀는 진짜로 취했다. 주량이 아무리 센 사람도 이렇게 마셔대면 취할 수밖에 없을것이다.침대에 눕히려는 순간 강하리는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갔다. 정신없이 토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구승훈은 말없이 물을 따라왔다.그녀가 다 토한 후에야 그녀를 일으켜 세워 물을 마시게 했다.“물 좀 마셔!”기어코 마시려 하지 않는 강하리의 턱을 잡고 구승훈은 물을 들이키게 했다. 그의 강한 손아귀에 강하리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강하리!”구승훈의 큰소리에 강하리는 이내 얌전해졌다. 자신한테 화내는 눈앞의 남자를 보고 있자니 강하리는 갑자기 서러워져 눈물이 뺨을 타고 머무르다 옷에 툭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구승훈은 이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승훈 씨 왜 이렇게 못되게 변했어요?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나요?”“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한번 말해봐.”그의 비웃는 듯한 말투에 그녀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강하리는 울먹이면서 얘기했다.“나한테 너무 거칠게 대하잖아요.”구승훈은 나른한 표정을 지으면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뭐가 거칠다는 거지? 더 거친 것도 있는데 한번 해볼래?”말을 마치고 강하리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강하리는 남자의 미간을 쓰다듬으면서 물었다.“왜 나를 찾지 않았어요? 왜 나를 잊은 거예요?”구승훈의 눈빛은 다시 차가워졌다.“강하리, 지금 어떤 놈 생각하고 있는 거야?”“그 사람들도 나를 괴롭히고 당신도 나를 괴롭히고, 당신이 싫어
한밤중에 강하리는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머리가 지끈거리고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옆자리를 더듬었지만, 옆에는 구승훈이 없었다.‘승훈 씨 왔던 것 같은데. 또 나갔나.’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물 마시러 거실로 나갔다.베란다에는 구승훈이 서있었다. 탄탄한 실루엣은 어두운 야경 속에서 더욱 외로워 보였다.그가 기분이 좋지 않은 걸 강하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하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의 기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송유라밖에 없으리라.강하리는 주방에서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려고 할 때 침실문이 열리고 구승훈이 들어왔다.문 앞에 서있는 그의 모습은 어렴풋했지만, 그의 몸에서 나는 짙은 담배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깼어?”그의 목소리에는 언짢음이 묻어있었다.“네, 구 대표님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요? 없다면 죄송한데 더 자고 싶어요.”“강 부장은 자기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가 봐?”구승훈의 얼굴에는 냉소적인 비웃음이 가득했다.강하리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애써 기억을 떠올렸지만 구승훈이 술을 마시라고 강요한 것 외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죄송해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강하리는 짧게 대답하고 다시 돌아누웠지만 구승훈이 이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강하리가 뿌리치기도 전에 구승훈은 그녀의 몸에 올라탔다.“기억 안 난다고?”구승훈의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 “그러면 다시 기억나게 해주지.”날카로운 이빨이 그녀의 보드라운 목덜미를 잘근잘근 물어왔다. 찌릿한 통증이 온몸을 타고 퍼졌다.“미쳤어요? 뭐 하는 짓이에요!”구승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그래, 안 미치고서야.”구승훈은 정말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강하리가 다시는 임신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순간 그의 가슴에는 불길이 타올랐다. 꺼지지도 않고 발산할 곳도 없었다.임신할 수 없다니. 하지만 그에겐 한마디도 하지
“아 진짜요. 지금은 괜찮나요?”“응, 많이 좋아졌어.”강하리는 대답하면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사무실 안에 들어선 그녀는 이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제 신 비서가 그녀에게 귀띔해 줬지만, 눈앞의 여자를 보고 여전히 조금 놀랐다.장서연.장진영의 조카이자 송유라의 사촌인 이 여자는 어릴 적 송유라와 같이 강하리를 적잖이 괴롭혔다.장서연을 발견한 안예서의 얼굴에도 불만이 가득했다.“구 대표님 관계로 들어 온 낙하산이잖아요. 소문에 의하면 그 송유라 친척이라 하데요. 그래서 여기로 배정된 거라고 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엉뚱한 일만 시키지 않나 또 맨날 부하에게 화내지 않나. 부서에 여러 명이 사직했어요. ”안예서는 강하리 귓가에 속삭였다.강하리는 안예서를 먼저 내보내고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통화 중이던 장서연은 걸어오는 강하리를 발견하고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언니, 지금 여기 누가 왔는지 알아?”상대방이 뭐라고 몇 마디 하자 장서연은 더 크게 웃은 뒤 전화를 끊고 비아냥거렸다.“난 또 누구라고. 첩이 낳은 내연녀네.”강하리는 굳어지는 얼굴을 감추며 내색 하지 않고 맞받아쳤다.“장서연, 송유라에게 어제 왜 맞았는지는 물어봤어?” 비웃던 장서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송유라가 어제 맞은 건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구승훈은 그 일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강하리, 너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올라. 너는 그냥 첩이 낳은 딸이야. 그냥 남이 놀다 버린 장난감이라고,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주제는 모르겠고 그건 알겠네. 내가 돌아왔으니까 넌 이제 여기서 꺼져야 하는 건 알겠어.”순간 장서연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그녀가 들어올 때 송유라는 분명히 마케팅부장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대리 부장이었다.몇 번이고 송유라를 찔러봤지만, 알겠다는 대답만 돌아오고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장서연은 나중에 구승훈을 찾아갔지만, 매번 그의 비서에게 제지당했다. “꿈 깨! 어디서 내연녀가 나한테 나가라 마라야!”
가서 팔찌를 가지고 백아영의 생일을 보낸 후 출국할 생각이었고 그 외 일은 지금 당장 처리할 기분이 아니었다.구승훈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손연지의 집 밑에 우산을 쓴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주해찬이었다.비 오는 밤, 가로등에 반사된 남자의 모습은 약간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구승훈이 피식 웃었다.“무척 적극적이네.”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렬한 불빛이 주해찬에게 비추자 뒤를 돌아본 그가 구승훈의 차에서 내려 걸어오는 강하리를 발견했다.구승훈은 보지 못한 듯 강하리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검은 우산이 머리 위로 드리워지며 주해찬의 낮은 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걱정돼서 보러 왔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난 괜찮아요. 걱정시켜서 미안해요.”그때 주해찬이 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하리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구 대표님.”구승훈은 고개를 숙이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가벼운 웃음을 내뱉으며 주해찬을 향해 시선을 들어 올렸다.“주해찬 씨가 뭐라고 저한테 감사 인사를 하는 거죠?”주해찬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하리의 선배로서요.”그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강하리를 바라보았다.“시간도 늦었는데 일찍 집에 가서 쉬어.”강하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해찬이 우산을 들고 건물 쪽으로 따라나섰다.구승훈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에 서리가 낀 것 같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헤드라이트가 두 사람의 실루엣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비를 맞으며 우산 아래서 두 사람의 어깨는 단단히 맞닿은 것 같았다.건물 입구에 다다랐을 때야 강하리가 나지막이 말했다.“선배, 나 혼자 올라가면 돼요.”주해찬의 시선이 강하리의 입술에 닿았다.입술이 어딘가 부딪힌 것처럼 살이 갈라져 있었다.갈 때는 괜찮았는데 돌아올 땐 입술이 찢어진 채로 왔다.구승훈에 대한 강하리의 쌀쌀맞은 태도는 다 지켜보고 있었다.“구승훈이 강요했어?”주해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강하리는 몸이 굳어지더
한편 여초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있고 도우미가 옆에서 옷을 걸쳐주었다.“사모님, 시간이 늦었는데 일찍 쉬세요.”여초연은 밖의 하늘을 바라보다가 옷을 두른 채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승훈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도우미는 얼굴을 찡그렸다.“잘 지내지 못해요. 강하리라는 여자가 우리 집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세요. 어르신까지 들여보냈는데 큰 도련님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여자한테 홀딱 넘어간 게 틀림없어요.”여초연은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마요. 승훈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 며느리니까.”도우미가 입술을 달싹였다.“그래도 구씨 집안이 그 여자 때문에 이 모양이 됐잖아요!”SH그룹이 합병되면서 구씨 집안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도우미들의 일자리도 위협받는 상황에서 정작 여초연은 조금의 초조함도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큰 도련님도 그 여자 때문에 사모님께 화를 냈잖아요.”여초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우산을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따라오지 마요.”그녀가 속삭이자 도우미는 즉시 발걸음을 멈췄다.비 내리는 어느 날 밤, 검은색 승용차가 구씨 집안 저택에서 시내 반대편 목란정원을 향해 유유히 달렸다.목란정원은 여초연이 소유한 정원인데 그녀는 때때로 며칠씩 이곳에 오곤 했다.구승재는 그녀를 따라 목란정원 입구까지 갔다가 차를 멈췄다.그는 목란정원의 출입구를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형의 지시로 구씨 저택에 머물면서 집안사람들을 돌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여초연을 감시하는 것이었다.여초연의 차가 목란정원에 들어가는 것을 본 구승재는 휴대폰을 꺼내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요한 밤, 구승훈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강하리의 몸이 굳어졌고 구승훈의 입술은 그녀의 귀에 닿은 상태였다.“전화 좀 받고 올게.”구승훈이 떠난 후 강하리 휴대폰도 울렸다.주해찬의 전화였다.“하리야, 비행기표 샀으니까 내일 데리러 갈게.”“그래요.
구승훈은 상처받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었다.“하리야, 넌 늘 그렇듯 매정하네.”강하리가 뒤돌아 휴대폰으로 택시를 부르려는데 구승훈이 그녀의 휴대폰을 움켜잡았다.“딱 하룻밤만. 너 안 건드릴게, 응?”강하리의 몸이 굳어졌고 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하리야, 내 소원 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 네가 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모습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 몰라. 여기가 우리 집이야.”강하리의 코끝이 시큰거렸지만 그래도 결국 구승훈의 손을 뿌리쳤다.너무도 분명한 그녀의 거절에 구승훈은 답답한 가슴에 고통이 밀려왔고 쓴웃음을 짓던 그는 더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았다.“샤워하고 나오면 다시 데려다줄게.”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화장실로 들어갔다.구승훈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강하리는 통화 중이었다.발걸음이 멈칫한 그는 통화 상대가 주해찬이란 것을 알아차렸다.“선배, 전 괜찮아요.”“알았어, 항공편 예약해. 나도 같이 갈게.”강하리가 전화를 끊는데 구승훈이 갑자기 다가와 그녀를 껴안고 고개를 숙여 입 맞추었다.“구승훈!” 강하리는 그의 키스에 깜짝 놀라 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구승훈은 점점 더 꽉 그녀를 붙잡았다.그는 강하리의 턱을 잡고 깊숙이 파고들며 조금의 부드러움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마치 화풀이나 비난하듯 키스를 퍼부었다.강하리는 벽에 단단히 밀려서 몸부림을 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그녀가 다리를 들어 그의 아랫도리를 가격하려는데 구승훈이 먼저 그녀의 다리를 붙들었다.강하리가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구승훈의 키스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힘의 격차로 인해 그녀는 반격할 방법이 없었다.강하리는 화가 나서 얼굴마저 하얗게 질렸고 구승훈은 실컷 헤집어놓은 뒤에야 그녀를 놓아주었다.강하리가 그의 뺨을 때렸고 이내 구승훈의 얼굴엔 손자국이 생겨났다.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키스로 인해 부어오른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하리야, 나 생각이 바뀌었어.”강하리가 멈칫했다.“무
그리고는 강하리를 곧장 차에 밀어 넣었다.차는 빗속을 뚫고 달려 나갔다.구승훈의 차는 굉장히 빨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시내를 벗어나 한 별장 앞에 멈춰 섰다.구승훈은 주차가 끝나자마자 차에서 내려 강하리를 빌라 안으로 끌어당겼다.빌라는 강하리가 선호하는 스타일로 안팎을 의도적으로 꾸몄다.안으로 들어선 강하리는 몸이 굳어버렸다.“여긴 내가 준비한 신혼집이야.”구승훈이 문득 등 뒤에서 이렇게 말했다.“결혼하면 여기서 지내려고 했어. 하리야, 정말 이대로 날 버릴 거야?”강하리는 꾸며진 방을 둘러보며 마음이 씁쓸했지만 애써 두 눈에 담기는 감정을 감추었다.“구승훈, 내가 그렇게 고통받는 걸 어떻게 지켜보기만 했어?”말문이 막힌 구승훈은 갑자기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미안해.” 남자의 목소리는 죄책감으로 가득했다.“다 내 잘못이야.”강하리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며 낮은 웃음을 지었다.너무 지쳤다.한때 열정적이었던 사랑이 이제는 고문처럼 느껴졌다.그날 구승훈이 아직도 자기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강하리는 답을 알 수 없었다.어쩌면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미워하는 마음이 더 컸다.강하리는 구승훈이 진심으로 미웠다.그의 무자비함과 강압적인 성격이 싫었다.둘 사이에서 그는 항상 그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행동했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그래, 어쩌면 그는 그녀를 위해, 아이를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하지만 자신이 해준 것들이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강하리가 발버둥쳤지만 구승훈은 더 꽉 끌어안았다.“구승훈, 그만하자.”구승훈의 목소리가 잠겼다.“그만하자니, 무슨 말이야? 하리야, 우리 사이가 이대로 끝날 것 같아? 문씨 집안도, 구씨 집안도 망했고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다 사라졌는데 이제 와서 그만하자고?”“우리 아이가 죽었잖아!”뒤돌아선 강하리의 눈엔 온통 고통만이 가득한 채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구
“어떻게 알았어?”구승훈은 웃으며 눈을 내리깔고 테이블 아래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이상해?”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하리야, 내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당연히 네 일에 대해선 다 알고 있지.”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손을 빼냈다.“그럴 필요 없어.”유난히 침착한 그 말이 구승훈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필요한지 아닌지는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강하리, 내가 뭘 하든 그건 내 일이야.”강하리가 비웃었다.“하지만 난 이제 당신이랑 더 엮이고 싶지 않아.”구승훈의 목울대가 꿈틀거리며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몇 마디 말로 두 사람 사이는 또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 강하리는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안예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녀는 최소한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는 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승훈이 옆에 앉아있자 마치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던 치유할 수 없는 상처, 두 사람의 목숨이 다시금 떠오르는 듯했다.그녀의 어머니와 아이...강하리가 가정에서 나오는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멍하니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데 문득 연정이가 사고를 당한 날 밤도 비 오는 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그날 밤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연정이가 이렇게 비 오는 밤에 춥고 무서워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강하리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비를 바라보다가 눈가에 차오르는 시큰함을 꾹 참고 빗속으로 걸어가는 순간 머리 위로 드리워진 우산이 그녀를 덮었다.고개를 들자 미소를 머금은 주해찬의 눈동자와 마주쳤다.“그렇게 비속우로 달려가면 감기 걸리잖아.”강하리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우산 챙기는 걸 깜빡해서.”“왜 전화 안 했어?”주해찬의 우산은 완전히 그녀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내가 마침 저녁을 먹으러 오지 않았으면 이대로 비를 맞으며 돌아가려고 했어?”주해찬의 눈에는 나무람과 관심이 가득했고 강하리는 웃으며 시선을 다른 곳
B시 대양그룹.정양철이 사무실로 들어가니 이미 비서가 대기하고 있었다.“강하리 검색어는 어떻게 된 거야?”비서는 잠시 머뭇거렸다.“사모님께서 대양그룹 명의로 매수한 것인데 아마도 회장님을 시험하려는 의도 같습니다.”정 회장이 강하리를 아낀다면 이 일을 거론할 것이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하든 말든 넘어가겠지.정양철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쳤고 그가 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주현이 통해 강하리에게 연락해서 대양그룹이 JM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라고 해.”말을 마친 그가 멈칫했다.“집사람이 물어보면 강하리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고.”비서의 눈이 번뜩이더니 대답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하리는 정주현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지난번 구승훈과 함께 대양그룹 입찰을 뺏은 이후 정양철 측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정양철이 무슨 꿍꿍이로 합작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지금은 정양철을 상대로 놀아줄 기분이 아니었다.“정주현 씨, 대양그룹에서 마음만 먹으면 파트너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죠?”정주현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는 다소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강하리 씨, 우리랑 같이 일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강하리가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려던 찰나, 정주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B시에 언제 와요? 얼굴 보고 얘기할까요? 협업 안 해도 오랜만에 얼굴 한번 봐요. 우리 안 본 지 오래됐잖아요.”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알았어요, 그럼 가면 연락할게요.”정주현이 전화를 끊자 사무실 앞에 서 있는 연미숙의 모습이 보였다.“엄마, 여기서 뭐 해?”연미숙이 웃었다.“우리가 강하리랑 같이 일해?”정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빠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구씨 집안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밖으로 사업을 넓히려는 것 같아.”연미숙은 인상을 찌푸렸다. “꼭 강하리여야만 대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거야?”정주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강하리가 왜?”연미숙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
구승훈은 차갑게 웃으며 자신도 모르게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두 사람이 차 안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하리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화사한 아침 햇살 같은 그 미소가 구승훈은 왠지 모르게 눈에 거슬렸다.강하리는 차에서 내려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구승훈의 차가 보였다.그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시선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강하리가 안으로 들어간 후 주해찬은 차에서 내려 구승훈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그가 창문을 살며시 두드리자 구승훈이 창문을 내렸다.“구 대표님 시간 있으세요? 얘기 좀 할까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었다.“주해찬 씨는 남의 연애에 참견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구승훈의 가시 돋친 말에도 주해찬은 계속 웃기만 했다.“구승훈 씨, 당신과 하리가 잘 지낸다면 나도 굳이 끼어들고 싶진 않은데 당신은 하리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긴 한가요?”그의 말에 구승훈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들이마신 후 말을 시작했다.“주해찬 씨, 행복하든 아니든 그건 다 나와 강하리 사이의 일이지 당신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주해찬은 조롱 섞인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웃었다. “구승훈 씨, 내가 하리 데려간다고 했죠. 이번엔 말한 대로 합니다.”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다시 차로 향했다.구승훈의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씩 완전히 사라진 채 떠나는 차를 바라보았다.그는 한참 동안 손에 쥔 휴대폰을 내려다보면서 결국 강하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했다.[그 자식이랑 떠날 거야?]강하리가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그냥 대화창을 닫아버렸다.구승훈은 전송된 메시지에 답장이 오지 않자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입안의 쓴맛을 삼키고 휴대폰을 치우려던 찰나, 구승재의 전화가 걸려 왔다.“형, 큰어머니가 그
“죽기 전엔 안 해.”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구승훈의 손가락이 한참을 굳어 있다가 말을 꺼냈다.“안 해.”하고 싶었지만 그게 그녀를 더 멀리 밀어낼까 봐 더 두려웠다.심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 문제의 핵심은 아이였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아이 문제로 말을 돌렸다.“아이는 어떻게 된 거야? 문연진이 어떻게 아이의 존재를 안 거야?”구승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구승재가 통화하는 걸 들었어.”심준호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정말 문연진이 아니야?”구승훈은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그 여자가 아니야.”문연진은 이미 연정이를 죽였다고 인정했는데 굳이 연정이를 차로 치어 산에서 떨어뜨렸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도중에 가정부가 연정이와 함께 차에서 내린 사실을 모른다는 것.“그럼 문연진 말고 또 아는 사람이 있어?”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여초연, 문연진 말로는 그날 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침 여초연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어.”멈칫한 심준호의 눈에서 차가움이 번뜩였다.여초연이란 사람은 솔직히 줄곧 속내를 알 수 없었다.전에는 여러 번이나 구승훈을 죽이려고 했다가 지금은 무척 다정하게 굴었다.그 여자는 지금까지도 끔찍한 존재로 느껴졌다.“설마 그 사람이?”심준호는 문득 구승훈이 안타까웠다.정말 여초연이라면 구승훈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아직 확인하고 있어.”심준호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만 해.”구승훈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심준호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고 이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그도 떠났다.심준호를 배웅하고 차로 돌아온 구승훈의 휴대폰이 울렸다.“형, 어제 강하리 씨 인기 검색어가 대양그룹과 관련이 있어.”구승훈의 눈에 냉기가 감돌았다.“최근 정양철 측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어?”“아니, 이 검색어 말고는 그동안 잠잠했
강하리의 입꼬리가 굳어지며 다시 말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한 대의 자동차가 도로변에 멈춰 서는 것을 목격했다.주해찬이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왔다.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이렇게 말했다.“직접 만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말을 마친 그는 강하리에게 눈썹을 치켜세웠고 강하리는 길 건너편에 주차된 너무나도 낯익은 차를 보았다.검은색 마이바흐 창문은 반쯤 내려져 있고 차에 탄 남자는 담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승훈이 이쪽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쪽을 힐끗 쳐다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그러면 나중에 메시지 보낼게요.”심준호는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해찬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러면 그동안 잘 돌봐주세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말을 마친 그가 강하리를 이끌고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강하리의 손목이 잡혔다.어느 틈엔가 구승훈이 길을 건너 이쪽으로 걸어왔고 주해찬이 얼굴을 찡그리며 막으려는데 심준호가 옆에서 말렸다.강하리의 손가락이 살짝 조여졌다.“구승훈 씨, 이거 놔요.”구승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었다.“하리야, 이제 고맙다는 말도 안 할 거야?”강하리의 몸이 굳어지고 입꼬리가 몇 번 움직이다가 말을 꺼냈다.“고마워요.”말을 마친 그녀는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이제 놔줄래요?”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나한테 꼭 이래야겠어?”강하리가 시선을 피했다.“구승훈 씨,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잖아요.”그가 원망스러웠다.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를 보면 연정이가 생각난다는 사실이었다.숨도 쉴 수 없을 것만 같은 고통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구승훈은 차갑게 웃었다.“나도 놔주지 않겠다고 했잖아. 하리야, 얘기 좀 하자.”강하리의 눈이 빨개지며 입을 열자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