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11화

Author: 재인
"대표님, 계약 해지 건에 관해 얘기 좀 하고 싶은데요.”

구승훈은 차갑게 웃었다.

"강 부장, 합의서를 보지 못했어?”

강하리는 입꼬리가 굳어났다.

"봤어요...”

“봤는데 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강하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정상적인 퇴사를 하고 싶어요. 필요하시다면 후임을 찾아준 뒤 퇴사할 수도 있어요...”

구승훈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 없었다. 강하리는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도 구승훈이 불쾌해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강 부장, 우리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야. 애초에 그 근로계약서에 사인했으면 순순히 지켜줘야지.”

강하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표님, 회의실에서 분명히 제 퇴사에 동의하셨잖아요.”

구승훈은 순간 당시 회의실에서 강하리가 안현우의 러브콜을 받은 일이 생각났다.

구승훈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회의실은 무섭게 조용했다.

회의실에 사람들은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구승훈은 탁 하고 손에 들고 있던 만년필을 탁자 위에 던졌다.

회사의 임원들은 모두 가슴이 철렁거렸다.

이어 맨 앞에 앉은 남자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강 부장, 내가 퇴사에 동의한 건 맞지만, 네가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내가 알려줄까?”

강하리는 순간 난감해졌다.

강하리가 당시 그 2억 원 때문에 다시 구승훈을 찾았을 때, 그가 한 모든 말을 강하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강하리는 이런 난처함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아뇨, 기억나요.”

"기억이 났으면 강 부장은 몸조리 잘하고 얌전히 출근해.”

강하리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제가 어떻게 해야 그만둘 수 있는 거예요?”

구승훈이 눈을 번쩍 뜨더니 말했다.

"강 부장, 여기는 모텔이 아니야. 백억을 내놓든지, 건강을 회복해서 출근하든지, 아니면 강 부장이 법정에서 나를 마주하고 싶으면 소원대로 해줄 수도 있어.”

구승훈은 멈칫하더니 계속하여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백억원은 이미 내가 강 부장의 지난 3년 동안의 고생을 생각해서 싸게 쳐준 거니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12화

    강하리는 멈칫했다."그 사건, 계속 다른 사람 못 찾았어요?”임정원은 피식 웃었다.“하리 씨가 허락해서 안 찾고 있었는데요. 설마 번복하고 싶은 거예요?”강하리는 문득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지난번에 임정원이 도움이 필요한 자료가 있다고 할 때, 강하리가 거절한 이후로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강하리는 임정원이 분명 다른 사람을 찾았을 거라고 생각했다.임정원이 계속 강하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후에 번역할 게 있으면 메일로 바로 보내줘요. 제가 최대한 일에 방해 안 가게 빨리해서 보낼게요.”"그래요, 그렇게 하죠. 이번 일은 뭐예요?”"계약 해지에 관한 문서인데 메일로 보내드릴까요?”"아뇨, 점심인데 같이 밥이나 먹을까요?”임정원의 말이 제안에 강하리도 거절하기 힘들었다."좋아요."강하리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임정원와 약속한 레스토랑은 병원 근처에 있었다.강하리가 도착했을 때 임정원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얼굴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임정원이 물었다.강하리는 살짝 웃었다."요즘 제대로 쉬지 못했어요.”임정원은 강하리가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식사 자리는 그럭저럭 조용하고 온화했다.식사를 마치자, 강하리는 그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잠시 후 임정원은 심란한 표정으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하리 씨, 무슨 생각으로 이런 계약을 했어요?”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해결하긴 힘들겠죠?”임정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인정하기 싫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강하리도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임정원은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강하리는 이미 그런 결과를 예상한 듯했다.어쨌든, 이건 SH그룹의 법무팀이 내놓은 협의이고 만약 허점을 찾을 수 있다면 구승훈이 이 사람들을 부양하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는 않았을 거다."정말 구 대표님 곁을 떠날 생각이에요?" 임정원이 또 물었다.사실 이 말을 꺼내면 두 사람 모두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13화

    강하리는 이 남자가 무슨 꿍꿍이인지 도통 알길이 없었다. 그러나 구승훈이 화가 났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강하리는 구승훈한테 다가가지 않고 멀찍이 침대 옆에 섰다."무슨 일이예요. 그냥 말하세요”구승훈은 눈을 번쩍 뜨고는 강하리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강하리는 원래 힘이 없던 터라 끌어당기는 힘에 못 이겨 구승훈의 품속에 쏙 들어갔다. 구승훈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홱 돌아서서 강하리를 창턱에 대었다."누구를 만나러 나갔어?"구승훈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강하리는 등뒤가 창턱에 배겨서 너무 아팠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하리의 몸부림에 구승훈은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구승훈이 힘을 더 보태자, 강하리는 등에 무딘 칼이 닿은 것처럼 더욱 아파왔다."어느 남자를 만나러 나갔었냐고!”"아파요! 승훈 씨!""아프게 해서 미안해.”구승훈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강하리를 놓아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강하리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입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승훈 씨, 이게 무슨 미친 짓이에요! ”"내가 미쳤다고? 역시 강 부장이 좋고 나쁨을 모르네.”구승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이제 다른 사람하고 밥 먹을 자유도 없는 거예요?”그녀와 임정원의 관계는 누가 봐도 결백했다. 그래서 구승훈이 임정원을 질투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오히려 구승훈과 송유라는 누가 봐도 결백하지 않는 걸 알지만, 그는 보란듯이 계속 송유라을 데리고 와서 강하리 앞에서 자랑을 했다.구승훈은 차가운 미소를 짓더니 강하리를 놓아줬다.강하리는 갑자기 기침하기 시작했다.구승훈은 옆에서 그녀가 기침하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가 마침내 기침을 멈추자 비로소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이런 몸 상태에서도 나가서 같이 밥이나 먹겠다니, 임 변호사가 너한테 그 정도로 중요해? 너는 지금 네가 어떤 신분인지 몰라?”방금 기침으로 강하리의 눈가가 붉어 났다.그녀는 약간 붉어진 눈을 들어 쓴웃음을 지었다.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14화

    강하리가 뭔 대단한 짓을 한 것도 아니다.강하리는 그저 임정원과 간단히 식사한 것이 전부다.갑자기 강하리는 오늘 밥을 먹고 일어났을 때 그녀가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키자, 임정원이 자신을 부축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그게 오늘 임정원과의 유일한 스킨십이었다.하지만 구승훈이 고작 그 스킨쉽만으로 강하리와 임정원 사이를 의심한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강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구승훈을 바라봤다. "대표님 혹시 저한테 사람을 붙여 저를 감시했어요?”구승훈은 냉정하게 웃더니 말했다. "강 부장, 걱정하지 마. 나 아직 그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하지만 오늘부터 너한테 사람을 붙이는 게 좋겠어. 그렇지 않으면 나몰래 바람피워도 모르겠어!”강하리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강하리는 구승훈을 무섭게 노려봤다."도대체 무슨 뜻이에요?”구승훈은 강하리를 슬쩍 쳐다보고는 폰을 꺼내 그녀 앞에 내동댕이쳤다."강 부장, 네가 직접 봐.”강하리가 내동댕이쳐진 폰을 집어 들고 채팅 기록을 누르자 사진 한 장이 보였다.임정원의 부축을 받는 장면이 매우 교묘하게 찍혀있었다.마치 강하리가 일부러 임정원의 품에 안긴 것처럼 말이다.강하리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도대체 누가 보낸 사진인지 보려고 더보기를 누르자 안현우가 바로 그 범인이었다. 게다가 구승훈의 친구 놈들의 채팅그룹에 보내져 있었다.강하리는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계속 밑으로 내려봤다. 이어 안현우가 보낸 톡이 보였다.「강 부장님 정말 예상 밖이네, 승훈이 몰래 밖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니. 승훈아, 이런 나쁜 년도 좋다는 거야? 언제 임신하면 네 아이가 아닐지도 몰라.」강하리는 머리가 어지러워 났다. 그래서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구승훈을 바라보았다. "이거 다 오해예요. 못 믿겠으면 레스토랑 CCTV를 가서 확인해 보세요. 임 변호사와 저는 정말 평범한 친구 사이일 뿐이에요. 아이에 대해서는......”강하리는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이 예고 없이 뚝뚝 떨어졌다."대표님 아이가 아니라고 의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15화

    강하리는 구승훈의 비수같이 꽂히는 말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임정원의 부축을 받았다고 더러워하다니...'강하리는 구승훈을 훑고는 되물었다."대표님께서 송유라한테 안겼던 곳이 더 많지 않나요?”구승훈은 한쪽에 서서 가벼운 미소만 지었다."강 부장은 유라랑 나 둘 중 누가 갑인지 몰라? 만약 네가 날 책임질 능력이 있다면, 나도 다른 여자는 건드리지 않을 수 있어.”강하리는 구승훈한테 요구할 자격조차 없었기에 더 이상 그와 싸울 마음이 없어졌다. 강하리는 그들의 관계가 대등하지 않다는 것을 잠깐 잊고 있었다."저 샤워할 거니까 나가주세요.”구승훈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얀 강하리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너 혼자 씻을 수 있겠어?”"네.”구승훈은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장실에서 나왔다.화장실 문이 닫히는 순간 강하리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그와중에 입술을 꽉 깨물며 울음소리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공제했다.한참 울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는지 그재야 옷을 벗고 목욕을 했다.팔에 상처가 있어서 가능한 물에 닿지 않으려 조심했지만 결국은 거즈를 적셨다.방금 구승훈이 팔을 너무 세게 잡아당겨 상처가 다소 찢겼다. 거즈도 이미 붉게 변했다.강하리는 정신을 꼭 붙잡고 몸을 깨끗이 닦았다.누군가 화장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다 씻었어?”구승훈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다 씻었어요.”대답을 들은 구승훈은 문을 열고 들어와 그녀에게 옷 한 벌을 건네주었다."이거 입어.”"네.”그때 강하리의 팔뚝에 이미 붉게 물든 거즈가 구승훈의 눈에 띄었다. "간호사 불러올게, 이따가 약도 바꾸자.”강하리의 시선은 땅으로 향한 채 감사하다 인사를 전했다.구승훈은 그런 강하리를 한 번 쳐다보고는 침착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구승훈이 간호사를 불렀을 때 강하리는 이미 옷을 다 입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 아직도 물이 침대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간호사는 병실로 들어오자 미간을 찌푸렸다."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16화

    구승훈이 이렇게 묻는 것은 그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강하리는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감정을 애써 숨겼다."괜찮아요.”구승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사람 시켜서 드라이기를 보내라고 했는데 뭐 또 부족한 거 있어? 내가 사람을 시킬게.”"괜찮아요.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구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장실로 들어가 수건을 가지고 나왔다."이리 와, 내가 머리 말려줄게.”강하리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거절했다. "아니예요. 제가 직접 닦으면 돼요.”구승훈의 얼굴은 또 어두워졌다."내 말 못 알아듣겠어?”강하리가 구승훈을 쳐다보자, 그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구승훈이 간호사가 한 그 말 때문에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강하리는 알고 있었다.강하리도 더 이상 다투기 귀찮아서,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구승훈은 머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살살 닦았다. 마침내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자 구승훈은 한마디 했다."미안해. 방금은 내가 심했어.”미안하다는 말이었지만 강하리는 그의 말에서 조금의 미안함도 느끼지 못했다. 예상과 벗어나지 않게 구승훈은 곧이어 한마디 했다."하지만 내 탓으로 넘기면 안 되지. 사진이 그렇게 나오면 누구나 오해할 수 있으니 어. 강 부장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강하리는 조용히 웃었다."대표님이 저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었다면 묻지도 않고 바로 의심하지 않았을 거예요.”구승훈은 할 말이 없었다. 그는 확실히 강하리를 믿지 못했다.강하리는 외모가 출중했다.하필이면 권력도 없고 배경도 없으니, 그들의 세상에서는 이런 여자는 그저 노리개에 불과하다.하지만 구승훈은 한 번도 강하리를 노리개로 생각한 적이 없다.그와 그녀의 거래는 줄곧 공평했다.이런 돈 거래 중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그 계약뿐이다.그런데 하필 강하리가 거듭 계약을 위반하고 구승훈의 마지노선을 건드렸다."강 부장, 불평해도 소용없어. 이 모든 것은 네가 그 임 변호사를 만나러 가서 생긴 일이야. 네가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17화

    구승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뭐야? 안 믿어?”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나 자신만 믿어. 이런 대답이라면 강 부장 마음에 들어?”구승훈이 진지하게 생각하고는 말했다.강하리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구승훈의 말은 송유라 마저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강하리는 저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그럼 송유라는요?”구승훈은 눈빛이 어두워졌다.강하리는 구승훈을 빤히 쳐다봤다.구승훈이 입을 떼려 하자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전담비서는 밖에 서서 구승훈에게 봉지를 건네주었다.구승훈은 나가 물건을 받고는 강하리에게 물건을 건넸다. "이리 와, 머리 말리자.”강하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소파에 앉아 구승훈이 머리를 말리도록 내버려두었다.머리를 다 말리고 나서야 구승훈이 입을 뗐다."유라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야. 싫은 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두 번 다시는 유라와 비교하지 마.”강하리는 잠시 뜸 들이다 머리를 끄덕였다.그때 구승훈의 폰도 울렸다.송유라 전용 벨소리였다.강하리는 순간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대표님, 일이 있으시면 먼저 가셔도 돼요. 저는 좀 쉬어야겠어요.”구승훈은 강하리를 슬쩍 보더니 말했다. "유라가 약을 바꾸러 병원에 왔대, 내가 같이 있어 줘야겠어.”"네."강하리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 위로 푹 올려 썼다. 구승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불을 끌어 내렸다."피곤하면 좀 자. 난 약 바꾸는 거 보고 올게.”강하리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사실 구승훈과 강하리는 서로에게 별 믿음이 없었다.지금 구승훈이 하는 말도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말썽을 부려봤자 자신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 뿐이었다.구승훈이 떠난 후 강하리는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그녀는 병실 안이 몹시 답답하게 느껴졌다.결국 옷을 입고 밖에 나가 돌아다니려 했다.그런데 병실 문을 나서자, 강찬수가 병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강하리가 몸을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18화

    그날 보경시에서 돌아왔을 때, 아파트 입구에서 강찬수를 마주치지 않아 다행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강찬수가 병원에 달려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병실에 들어서자, 강하리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또 무슨 일이세요.”강찬수가 병실에 들어서자 오히려 조급해 하지 않았다.그는 병실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는 혀를 내둘렀다."요즘 병실은 이렇게 고급이냐? 우리 딸 정말 대단하네.”강하리는 그딴 헛소리를 듣기 싫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도대체 뭘 더 원하는 거죠? 당신이 원하는 돈은 이미 드렸잖아요!”강찬수는 바보처럼 웃어댔다."왜, 이렇게 네 아비를 싫어해도 돼?”"지금 대꾸도 하기 싫으니까 당장 꺼져요!”"쯧쯧, 무슨 성깔이냐!"강찬수는 투덜대다가 탁자 위에 구승훈이 올려놓은 담배를 보고는 주섬주섬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내가 나쁜 일로 찾아온 게 아니야. 너도 이제 나이가 서른이다. 네 어미는 비록 반쯤 죽어가지만, 내가 네 아버지로서 네 평생의 큰일을 결정은 해줘야지. 내가 결혼 상대를 소개해 줄게.”강찬수가 결혼 상대를 소개해 준다니, 강하리는 어이가 없어 차갑게 웃었다. 팔려 가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울 지경이다."괜찮아요. 당분간 연애할 생각이 없어서요.”강찬수는 투덜거렸다."하리야, 난 분명 경고했어. 나중에 내 탓 하지 마라. 내가 좋게 말할 때 내 말 듣는게 좋을 거야. 나를 또 그 반쯤 죽어가는 사람한테 손을 대게 강요하지 마!”"당신, 도대체 무슨 짓 하려는 거예요?”"별다른 생각은 없어. 네가 순순히 선을 보면 돼. 나도 그 년을 건드리기 귀찮아!”그러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피우기 시작했다.담배 두어 모금 빨고 나서야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하리야, 너 설마 남자 있는 거 아니지?”강하리는 몸이 굳어서 뜸 들이다 대답했다. "아니요.”강찬수는 벌떡 일어나 냉소를 지으며 추궁했다. "아니라고? 그럼, 이 담배는 누구 거야?”강하리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19화

    강하리가 말하자 구승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구승훈은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어 강하리한테 시선을 고정하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승낙했어?”강하리가 승낙하지 않아도 강찬수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거다."요즘 몸이 아파서 괜찮아지면 다시 얘기하자고 했어요.”강하리는 구승훈을 바라보았다."대표님, 저를 도와주실 건가요?”구승훈은 냉소를 지었다.“내가 어떻게 도와주길 바라는데?”강하리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강찬수는 대표님을 꽤나 무서워 해요. 대표님이 말만 해주시면 더는 저를 위협하지 않을 거예요.”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서 그의 감정을 알 수 없었다.구승훈은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강 부장이 이렇게 사람을 잘 부려 먹었었나?”강하리는 입꼬리가 떨리더니 그의 말에 부인할 수 없었다. 그녀는 구승훈을 이용해서 강찬수가 다시는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구승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도와주실래요?”구승훈은 풋 하고 웃으며 강하리를 향해 손짓했다.강하리는 머뭇거리다가 그의 다리 위에 올라 탔다.앉자마자 그는 강하리의 목덜미를 잡고 키스를 했다.남자의 몸에서 나는 무거운 향기와 옅은 담배 냄새가 그녀를 엄습하고 있었다.강하리는 무의식적으로 반항하려 했지만 겨우 자제했다. 구승훈은 한참 동안 키스를 해서야 강하리를 놓아주었다.하얗게 질려 있던 강하리의 입술이 빨갛게 부어올랐다.구승훈은 손가락으로 강하리의 입술을 스윽 만졌다."강 부장 입술이 좀 거칠다. 물 많이 마셔.”강하리는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피식 웃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병실은 몹시 조용했다.강하리가 폰으로 메일을 확인하자 임정원은 이미 일부 자료를 보내왔다.구승훈의 노트북이 강하리의 눈에 들어왔다."대표님, 노트북 좀 써도 될까요?”구승훈은 그녀를 슬쩍 보고는 노트북을 건네주었다.강하리가 노트북을 받아 가려는 순간 구승훈은 노트북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강하리는 어리둥절해서 구승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

Latest chapter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65화

    요양원 주차장.심준호는 아직도 분노를 삭이지 못한 진태형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너무 화내지 마세요. 이번 일은 저도 잘못이 있어요... 계속 하리가 구승훈을 조금만 더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애가 이렇게까지 바보 같을 줄은 몰랐어요...”진태형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아니야. 내가 잘못한 거야. 내가 우리 딸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어.”심준호는 잠시 말이 없었다가 다시 입을 뗐다.“요즘은 조시욱이 꽤 신경 써주더라고요.”진태형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딸이 어떤 사람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처럼 한 번 마음을 주면 끝까지 놓지 못하는 사람. 옛날 자신이 어떤 희망도 없이 심미현과의 약혼을 지키며 버텼던 것처럼, 강하리도 그렇게 쉽게 마음을 놓을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강하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번만큼은 절대 구승훈이 다시 가까이 오게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진태형이 병실에 도착했을 땐, 백아영이 구연정을 안고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구연정은 강하리의 이마에 붙은 거즈를 조심스레 들여다보더니 입을 오므리고 후하고 불었다.“엄마, 아프지마...”강하리는 살며시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엄마 안 아파, 우리 연정이 걱정하지 마.”구연정은 백아영을 가리키며 말했다.“할머니 울었어.”강하리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할머니 저 이렇게 멀쩡하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백아영은 단호하게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진짜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연정이는 어쩔 뻔했니? 그런 남자 하나 때문에,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강하리는 속눈썹이 살짝 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백아영은 한숨을 쉬고는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그때 병실 문이 열리더니 구연정이 환히 웃으며 진태형에게 달려갔다.진태형은 아이를 안고 병실을 둘러보다, 딸의 온몸에 난 상처를 보고는 눈가가 붉어졌다.“아빠, 나 괜찮아요.”“이게 괜찮은 거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64화

    손연지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웃었다.“마침 행사 중이더라고. 쿠팡 연말 세일에서 로열 프리미엄 네덜란드 분유 있거든? 영양 흡수도 잘 되고 우리 소아과 아기들도 다 그거 먹어.”강하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손연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흘끗 쳐다봤지만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병원 응급실에서는 생체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급히 달려온 구승재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얼굴에 불안이 가득했다. 핸드폰 화면엔 강하리의 연락처가 떠 있었지만 그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 끝내 전화를 걸지 못했다. 매번 손이 닿았다가도 다시 멈췄다. 더는 그녀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곁에 서 있던 준봉과 노진우도 속만 태우며 발을 동동 굴렀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떴고 그제야 응급실 문이 열리며 의사가 나왔다.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 사람은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구승훈이 다시 의식을 찾은 건 해 질 무렵이었고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그는 눈을 뜨자마자 말했다.“강하리에겐... 알리지 마.”구승재는 목이 막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 형수한테는 말 안 할게.”그제야 구승훈은 안도한 듯 눈을 감았지만 구승재는 알 수 없는 억울함에 눈가가 뜨거워졌다.‘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을까.’병원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병원 관계자들 대부분이 그를 아는 터라, 강하리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조용히 빠져야만 했다.그날 밤, 노민준이 직접 차를 몰고 구승훈을 요양원으로 데려갔다.“네가 또 도망치면... 그땐 나도 강하리한테 전부 말할 수밖에 없어.”구승훈은 창밖만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 다시는 안 그럴 거야. 그 사람이 잘 지내고 있다면 그걸로 됐어.”노민준은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그 한마디에 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푹 쉬어.”병실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구승훈의 머릿속엔 강하리가 조시욱과 웃으며 이야기하던 모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63화

    청소 아주머니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강 대표님, 아까 구 대표님이랑 병실 안에 계시던 남자분이랑 여기서 싸웠어요. 아마... 그중 누가 코피를 흘린 것 같더라고요.”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고 간호사에게 병실 안으로 데려다 달라고 조용히 말했다.병실 안에 들어서자, 조시욱이 전화를 받고 있다가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통화를 마쳤다.“오늘 일은, 미안해.”그는 웃으며 말하다가 다시 강하리에게 다가가 침대로 옮겨주려 했지만 강하리가 재빨리 손을 들어 막았다.“잠시 후에 또 검사를 받을 수도 있으니 그냥 이대로 있을게요.”“그럼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사다 줄까?”그 말에 강하리는 잠시 망설이다 입술을 다물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조시욱 씨. 선배가 뭐라고 말했는진 모르겠지만... 죄송해요. 지금은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누굴 다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안 돼 있고요. 그러니까 굳이 매일 오시거나 이렇게 곁에 계실 필요 없어요.”조시욱은 사실 그녀가 어떤 마음인지 처음 만난 그날 밤부터 이미 느꼈다.하지만 그날, 피범벅이 된 채 쓰러진 그녀를 두 눈으로 본 뒤로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녀가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각오로 그렇게 뛰어내렸는지 그게 궁금해졌고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알고 싶어졌다.설령 그게 잠시 스쳐 가는 인연이라 해도, 지금 그녀에게 꼭 필요한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다.“내가 좀 성급했으면 미안. 진짜로 무슨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선배 부탁이라서 온 것도 맞지만... 난 그냥, 친구로서 너 도와주고 싶어서 온 거야. 어릴 때부터 정 회장님이랑 우리 할아버지 사이도 꽤 각별하셨잖아. 집안끼리도 인연이 깊고.”조시욱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무 부담 갖지 마. 그냥 지금은, 네 곁에 누군가 있어 주는 게 필요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언젠가는 과거 놓고 새로운 시작도 해야 되는 거고. 그렇지 않아?”잠시 정적이 흘렀고 강하리는 조용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62화

    구승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방금... 뭐라고 불렀지?”강하리는 결국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어쩐지 너무나 낯설었다.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창백한 얼굴은 피 한 방울 돌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마주한 순간, 그녀가 애써 눌러왔던 감정이 일순간 무너지면서 심장이 바늘로 찔린 것처럼 저릿했고 숨이 막힐 만큼 아팠다.‘임희주가... 이렇게 이 사람을 돌본 건가? 그렇다면 지금쯤 곁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그녀는 더 이상 마음을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전 이제 검사를 받아야 해요. 구 대표님, 손 좀 놓아주세요.”“같이 가줄게.”그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갈라지고 낮았다.“괜찮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그 말과 함께 간호사를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하지만 휠체어 좀 부탁드릴게요.”간호사는 그제야 얼떨결에 제자리를 찾은 듯 다가와 그녀의 휠체어를 받았다.조시욱은 자연스럽게 손을 거두었지만 구승훈은 여전히 그녀 손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구 대표님, 강 대표님 검사 예약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간호사의 말이 이어지자, 구승훈은 천천히, 마치 억지로 손을 떼듯 그녀를 놓았다.강하리가 복도 끝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내지던 기침이 터졌다. 거칠고 깊은 기침 소리, 그리고 피비린 냄새에 조시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갔다.“너, 다쳤냐?”구승훈은 겨우 호흡을 가다듬고 몸을 일으켰다. 그 시선은 여전히 강하리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있었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지금 따라가서 뭐 하려고?”조시욱은 다급히 앞을 막아섰다.“넌 지금 상태부터 회복해야 해. 이러다 정말 쓰러진다고.”그러나 구승훈은 대답 대신 그를 벽에 밀쳤다. 그러나 말을 잇기도 전에, 다시 심장을 쥐어뜯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고 그의 입가엔 다시 피가 번졌다.조시욱은 그를 밀어내며 차갑게 말했다.“이렇게 약해 빠져선... 넌 내 상대도 안 돼.”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61화

    구승훈은 오늘 여기서 조시욱을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굳이 피할 생각도 없었다.조시욱이든, 주해찬이든 상관없었다. 저 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는, 분명 그의 아내였으니까.“내가 자리를 피할까?”조시욱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고 그제야 강하리는 시선을 돌렸다.“아니요, 그냥 하던 얘기 마저 하시죠.”조시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강하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네 지목했던 그 여자, 국정원을 통해서 확인해 봤는데... 국제 쪽에서 활동하는 킬러였어. 주로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움직이던 인물인데 이번에 국내에 들어왔다는 건 좀 의외더라.”강하리는 놀란 눈으로 조시욱을 바라보았다. 설마 했는데 그 여자가 진짜 직업 킬러였다니.“안현우가 고용한 건가요? 아니면... 임희주 쪽?”“아직 확실하진 않아. 근데 지금까지 조사로는 둘 다 그 여자랑 직접 연결된 흔적은 없어. 오히려 둘 다 접촉한 적이 없다는 쪽이 유력해.”조시욱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물었다.“네 생각엔, 그 외에 또 누가 너를 죽이려 들었을 것 같아?”‘죽이려 든다’는 말에 강하리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었다. 사실 그날 자신을 진짜로 죽이려 했다면 안현우에게 넘기기 전에 이미 끝냈을 터였다.그렇다면 그 여자의 목적은, 단순한 살해가 아니었다.강하리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조용히 말했다.“전, 적이 꽤 많아요. 임희주, 안현우는 물론이고... 심씨 집안, 여씨 자매, 진시연... 어쩌면 문씨나 구씨 가문에서도 누군가는 원하고 있었겠죠.”조시욱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그래서 내가 네 주변에 사람 몇 명 붙여놨어. 걱정하지 마. 사생활 간섭 같은 건 없을 테니까. 혹시 불편하면 언제든 말해, 바로 다 뺄게.”“감사합니다.” 강하리는 짧게 대답했고 조시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근데 혹시 그거 알고 있어? 우리 할아버지랑 네 외할아버지, 전우였던 거?”강하리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혹시... 자주 저희 집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60화

    노민준이 떠난 뒤 한참이 지나서야 구승훈은 휴대폰을 꺼내 강하리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좀 나아졌어?]하지만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화면엔 전송 실패 알림이 떴다.구승훈은 씁쓸하게 웃었고 가슴 속 깊은 통증이 일며 피를 토했다.그 소리에 깜짝 놀란 구승재가 황급히 달려왔다.“형!”구승훈은 아무렇지 않은 듯 손등으로 피를 닦고 말했다.“괜찮아. 별일 아냐. 그리고... 여초천 병세 위중하다는 소문 퍼뜨려.”“형, 제발 이러다 진짜 형수님도 못 돌려놓고 큰어머님까지 막을 수 없게 될 거야!”“됐어. 내가 괜찮다는데 못 알아들어?”구승훈은 지친 얼굴로 키를 집어 들고 병실을 나섰고 구승재는 분노와 답답함이 뒤섞인 얼굴로 뒤를 쫓았다.“형!”하지만 그가 병원 현관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구승훈의 차는 주차장을 벗어나고 있었다.노민준도 뒤늦게 병실에서 뛰쳐나왔고 멀어지는 차량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내버려둬. 저렇게 살다가 죽겠다는데 어쩌겠냐.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해.”구승재는 그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한편, 강하리는 구승재의 전화를 받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분명히, 충분히 명확하게 말한 줄 알았다.“받아. 안 받으면 그 꼬맹이 울지도 몰라.”천아름은 옆에서 거울을 보며 입술을 정리하더니 무심한 듯 중얼거렸다.강하리는 깊은숨을 내쉰 뒤, 전화를 받았고 구승재의 목소리는 확실히 맥이 빠져 있었다.“하리 누나.”이번엔 ‘형수님’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강하리는 마음이 이상하게 저릿해졌지만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무슨 일 있으세요?”“형이... 또 병원 쪽으로 가면 한 번만 말 좀 해주면 안 될까요?”강하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죄송해요. 저 이제 구승훈 씨랑 아무 관계도 없어요. 그 사람이 올 일도 없고 와도... 저는 안 볼 거예요. 제게 부탁하지 마시고 차라리 임희주 씨에게 부탁하세요.”“형수님...”구승재는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59화

    사실 그 남자는 임희주에게 대답할 기회조차 줄 생각이 없었다.입이 단단히 막힌 그녀의 눈엔 점점 절망이 차오르고 몸을 움직이려 해도 힘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눈물이 뚝 떨어진 그 순간, 남자의 입가에서 다시 비웃는 소리가 흘러나왔다.“배신할 때부터 알았어야지. 이런 꼴 당할 줄. 임희주, 감히 누굴 믿고 사모님을 배신했냐? 응?”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며 서늘하게 젖어 있었다.임희주는 고개를 필사적으로 저었다. 말하고 싶었다. 이제 안 그럴 거라고 다시는 안 그럴 거라고. 한 번만 기회만 더 달라고.하지만 남자는 그 비참한 눈빛조차 즐기는 듯 피식 웃더니 말했다.“너 생각엔, 구승훈이 너 쓸모없어졌다고 판단하면 어떻게 할 거 같냐?”그 말에 임희주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한순간의 정적. 이어지는 건, 저항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차가운 분위기에 날카로운 바늘이 살을 찢고 서늘한 약물이 천천히 몸속에 스며들었다.몸부림치던 동작은 어느새 멈췄고 그의 눈빛을 따라 움직이던 임희주의 시선도 점점 흐려졌다.여초연 곁에서 오래 지낸 그녀는, 지금 이 약이 어떤 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완전히 무너지진 않지만 식물인간처럼 의식만 겨우 남아 있는 상태, 그 약은, 그렇게 사람을 파괴했다.바늘을 뽑아낸 남자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딱 좋아. 테스트 겸 써보기엔 안성맞춤이지. 덕분에 새 약 연구도 진도 좀 나가겠네. 너한텐 마지막 명예다, 그렇게 알아.”병실 문이 다시 열렸고 하얀 가운에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그 남자는 조용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꺼져 있던 복도 CCTV가 하나둘 다시 켜졌고 남자는 카메라를 향해 두 손가락을 이마에 대고 가볍게 경례하듯 인사를 건넸다.그 화면을 지켜보던 구승재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이게, 대놓고 도발 아니고 뭐야.”구승훈도 화면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시선을 보냈다.“승훈 씨, 어젯밤 그 시간대에 이상한 소리가 났고 창가 쪽으로 그림자가 스쳤습니다. 저희가 곧바로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58화

    “말하면 고통 없이 죽게 해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입 다물고 버틴다면 당신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 방법은 차고 넘치거든.”차갑게 말을 내뱉은 구승훈은 그대로 병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리고 임희주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이내 외쳤다.“구 대표님, 저... 저 당신 좋아했어요. 그거 알아요? 진심으로, 당신을... 좋아했어요...”하지만 그녀의 고백은 그저 허공을 맴돌 뿐, 아무도 듣지 않았다.강하리는 구승재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잠시 망설였다가 곧 전화를 끊었다.그런데 몇 초도 안 돼 다시 전화가 울렸고 계속해서 울려대는 진동에 결국 그녀는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았다.“형수님.”구승재의 목소리에는 희미하게 반가움이 섞여 있었지만 강하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담담하고 차분했다.“다시는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저 지금 좀 피곤하거든요. 쉬고 싶어요. 그러니까... 다시 전화하지 마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구승재는 멍하니 전화를 들여다보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한 줄의 메시지를 남겼다.[형수님, 생일 축하드립니다.]하지만 그 메시지조차, 아무런 응답 없이 그대로 묻혀버렸다.구승훈의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에 구승재는 인상을 찌푸렸다.구승훈은 그를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안 됐냐?”대답 대신, 구승재는 말없이 다가가 그 손에서 담배를 빼앗아 재떨이에 눌러 껐고 재떨이를 들고 방을 나섰다.잠시 후, 노민준이 급히 병실로 들어왔다.“담배 끊든가 안정제 맞든가. 선택해.”구승훈은 그를 빤히 보더니 침대 위로 몸을 기댔고 노민준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너, 강하리가 유엔 인맥까지 써서 약리학자 세 명 데려온 거 알고는 있어?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 그 사람들 상담료가 어느 정도인 줄 알아? 분 단위도 아니고 초 단위로 계산된다. 다 너 살리려고 이 난리인데 넌 진심으로 그 노력을 다 무시하고 싶은 거냐?”그 말에 구승훈은 눈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약리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57화

    요양원 아래 주차장.구승재는 허겁지겁 달려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직 차에 다다르기도 전에, 멀리서 한 대의 차량이 조용히 들어오는 게 보였고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그는 서둘러 그 차 앞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고 동시에 코끝을 찌르는 담배 냄새가 훅 들어왔다.“형, 또 담배 폈어?”구승훈은 차에서 내려 차 문을 짚고 겨우 몸을 일으켰고 몸을 가누는 모습이 눈에 띄게 힘겨워 보였다.무슨 말을 하려던 구승재는 그보다 먼저 들려온 거친 기침 소리에 놀라 멈칫했다.거친 기침 소리 끝에 피비린내가 섞였고 구승훈은 겨우 참으며 목까지 차오른 피를 억지로 삼켰고 구승재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담배 피지 말랬잖아. 막 돌아다니지도 말라고 했고! 형, 제발 말 좀 들어라.”하지만 구승훈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손끝을 닦고는, 조용히 밤하늘 아래 그걸 쓰레기통에 던졌다.“승재야.”“나 진짜 걱정돼서 그런 거야.”구승훈이 피식 웃었다.“죽진 않아.”그러고는 걸음을 옮기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임희주 그쪽은?”구승재는 인상을 찌푸리며 방금 구승훈이 던진 손수건이 들어간 쓰레기통을 힐끔 보았다가, 이내 형의 뒤를 따라붙었다.“오늘 또 준봉이 신문했는데 여전히 같은 말만 해. 형 얼굴 한 번 보면 그때야 입 열겠다고.”구승훈은 고개만 끄덕이며 요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구승재는 그 뒤를 따르며 말했다.“근데 진짜로 누워서 쉬어야 해. 안 그러면 죽는다잖아.”구승훈은 짧게 웃었다.“폐색전증 온다고 했잖아! 이건 웃을 일이 아니라고!”하지만 그는 여전히 무반응이었고 결국 구승재는 한숨을 내쉬며 옆으로 비켜섰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밤의 요양원은 유독 조용했고 그만큼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는 또렷하게 들려왔다.병실 문이 열리는 순간, 임희주는 갑작스럽게 눈을 떴고 눈가엔 놀람과 함께 복잡한 감정이 비쳤다.구승훈은 창가에 서 있었다.“하고 싶은 말 남았어요?”임희주는 눈가가 붉어지며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