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려주세요. 다신 도망치지 않을게요.”그 말을 듣자, 정현승은 서예지를 거칠게 한 대 더 후려쳤다.“이 천한 년이, 잘 먹이고 잘 입혀 주는 걸 놔두고 굳이 스스로 고생길을 택하다니.”그는 말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나무 몽둥이를 다시 들어 올려 예지의 다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예지의 다리뼈는 부러져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그러나 현승은 멈출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더욱 세게 구타했다. 그렇게 한참을 때린 뒤, 그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옆에 주저앉았다.그때, 그 예지가 나를 향해 기어 왔다. 얼굴에는 피가 뒤범벅되어 있었고, 힘없이 중얼거렸다.“살려줘! 제발, 살려줘.”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현승이 다가왔다. 그는 예지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채며 나를 보며 비웃었다.“뭐야, 너도 도망가고 싶은 거야?”힘을 주자 뒤룩뒤룩 살이 찐 현승의 볼살이 미세하게 떨렸다. 얼굴은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예지는 몇 주 전 새로 끌려온 여자였다. 끌려온 뒤로 계속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소리쳤던 그녀였는데, 이번에도 아마 도망치려다 다시 붙잡혀 온 모양이었다.나는 잠시 감정을 가라앉히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설마요, 제가 이렇게 어리석을 리가요.”“난 이미 당신의 사람이니까, 당신이 말하는 대로 따를 거예요.”언니는 집을 떠나기 전 나에게 당부했다. 절대로 현승을 자극하지 말라고.현승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내 앞에서 가시에 뒤덮인 나무 몽둥이를 집어 들고, 예지의 등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피가 사방으로 튀어 내 얼굴에까지 닿았고, 그 온기가 느껴졌다.현승은 여전히 나를 보며 구타를 멈추지 않았다. 나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다리를 끌어안은 채 온몸을 떨며 두려움에 떠는 척 연기했다. 그러자 현승은 내 반응에 만족한 듯했다.그런데 현승은 갑자기 흥미를 느낀 듯 예지의 옷을 벗기고
나는 막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 무겁고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뒤돌아보니, 그날 정현승에게 폭행당했던 여자, 서예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핏기없이 창백했고, 나를 향해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 기세에 겁이 나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그러나 예지는 주저 없이 다가와 내 머리채를 잡아채며 낮은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하윤설, 넌 네 언니에게 감사해야 할 거야.”무슨 이유로 갑자기 이성을 잃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누군가가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건 더 이상 이상할 것도 없었다.예지는 내 입을 손으로 꽉 막고는 강한 힘으로 나를 아래층으로 끌고 갔다. 그녀는 믿기지 않을 만큼 힘이 셌다. 예지는 나를 부엌문 앞까지 끌고 간 뒤, 내 입을 테이프로 단단히 막았다.부엌문을 여는 순간, 진한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집에는 가사도우미가 없었다. 현승과 강현숙은 이런 일들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다.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지하실에 갇혀 있었고, 강현숙도 오늘 외출한 터라 지금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예지는 부엌에서 칼을 하나 들고 나왔다.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입이 테이프로 막혀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눈으로 간절히 예지에게 나를 살려달라고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예지는 말없이 웃으며 속삭였다.“하윤설, 사는 게 고통스럽지? 내가 너를 해방해 줄게.”예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목을 칼로 그었고, 그대로 피가 흘러나왔다. 극심한 통증에 얼굴 근육이 일그러졌다.예지는 그것도 모자란 듯 내 바지를 벗기고는 종아리에도 칼을 휘둘러 깊은 상처를 내자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예지는 그런 나를 보며 오히려 위로하듯 말했다.“괜찮아, 곧 편해질 거야.”방 안에는 비릿한 피 냄새가 가득 차올랐고, 침과 콧물로 내 얼굴은 엉망이 되었다.예지는 이미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더는 살 의지가 없었고, 단지 나를 함께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예지가 칼을 들어 내 목을 향해
서예지는 결국 세상을 떠났지만, 아무도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현승은 상반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지만, 하반신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법이었다. 이토록 큰 사고에도 그는 목숨을 부지했다.강현숙은 현승의 하반신이 멀쩡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태연하게 그에게 성형수술 일정을 잡아 주었다.한 달 후, 현승은 병원에서 퇴원했다. 그와 동시에 언니인 하윤진은 또다시 임신했다.이에 강현숙은 몹시 기뻐했다. 사실 현승의 성기능이 좋지 않았기에, 강현숙은 그를 위해 여러 여자를 찾아 나섰다. 심지어 해외 대리모까지 알아봤지만, 강현숙은 그런 대리모들이 깨끗하지 않다고 여겼다. 언니처럼 네 아이를 임신한 여자는 그야말로 처음이었다.강현숙의 기쁨 덕분에 나는 언니와 함께 정씨 집안에서 주최하는 자선 만찬에 참석할 수 있었다.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이토록 악랄한 짓을 저지르면서도 자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모습이라니.강현숙의 속셈은 뻔했다. 나와 언니는 그녀의 명목상 양녀로서 자선 행사에 참여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이런 행사에 나옴으로써 사람들이 정씨 집안이 자선 활동에 진지하게 힘쓰고 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다.두 달 후, 자선 만찬 당일이 되자, 현승과 강현숙은 화려한 복장을 차려입고 행사장에 나타났다. 그들은 무대에 올라, 빈곤층을 위해 해 온 기부 활동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는 언니와 함께 그저 상품처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서 있었다. 그때, 한 기자가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오더니 큰 소리로 현승에게 물었다.“정현승 씨, 익명의 제보에 따르면 마약을 하고 계시다고 하네요. 이 소문에 대해 해명해 주시겠어요?”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내가 순식간에 술렁거렸다. 현승은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다.“어느 언론사 소속인지 모르겠지만, 허튼소리 하지 마시죠!”그러나 그 기자는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자는 헤드라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기세였다.“제보를 해 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
언니는 강현숙의 폭행에 코피가 터질 정도로 맞고 있었다. 머릿속이 웅웅 울렸지만, 울면서도 겨우 말했다.“저 아니에요, 서예지예요!”강현숙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물었다.“네 말을 믿으라는 이유가 뭐지?”“예지가 그때 하루나 밖에 나가 있었잖아요.”“그날 동안 예지가 무엇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요.”“게다가 현승이 마약에 손대기 시작한 것도 3개월 전이었는데, 그때가 바로 서예지가 잡혀 들어온 직후였잖아요!”“다 걔가 계획한 거예요!”강현숙은 잠시 침묵하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그 기자는 어떻게 된 거지? 자선 만찬 일정은 일주일 전에야 공개된 건데, 서예지가 어떻게 그걸 예측이라도 했다는 거야?”강현숙이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손을 들었다. 이에 나는 그 손을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외쳤다.“언니 배 속에 아기가 있어요!”강현숙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고, 나는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부디 저희 말을 믿어 주세요. 저희는 정말 아무 관련이 없어요.”“우리는 항상 어머니께 충성스럽게 살아왔잖아요.”내 말이 끝나자, 강현숙은 나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네 말이 맞아. 내가 너희를 의심해서는 안 되지.”강현숙은 언니를 일으켜 세운 뒤 우리에게 위층으로 가서 쉬라고 말했다.나는 모든 일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밤늦게 강현숙은 나를 따로 불러냈다. 이윽고 강현숙는 차와 다과를 내 앞에 내놓으며 말했다.“하윤설, 네가 엄마를 좀 도와주면 안 되겠니?”강현숙의 말투는 친절했지만, 내게 건네는 눈빛에서는 한 줌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현승이 없으니 집안에 아직 처리할 일이 많단다. 윤설, 너도 이제 이 집의 일부이니 엄마를 도와주는 게 좋지 않겠니?”강현숙의 의도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강현숙은 그런 나를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네가 할 일은 아주 간단해. 현승이 감옥에 가게 됐으니 지하실에 있는 그 사람들은 이제 쓸모가 없잖니. 쓸모없는 사람들은 처리하는
강현숙은 나의 머리를 강제로 돌려 배의 화물칸을 바라보게 하며 말했다.“하윤설, 이제 너와 나는 같은 배를 탄 거야. 내가 잡히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강현숙은 마치 악마처럼 내 곁에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어두운 선미를 바라볼 뿐이었다.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평소처럼 언니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러 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자마자 언니가 먼저 물었다.“어디 갔다 왔어?”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예리했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그 여자가 지하실 사람들 상태 좀 확인하라고 해서 다녀왔어.”이 말은 절반은 진실이었고, 절반은 거짓이었다. 이에 언니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정현승의 판결은 아직 안 나왔지만, 이 일이 너무 커졌으니 몇 년은 피할 수 없을 거야.”“지금 이 상황에서 강현숙이 너한테 무슨 일을 시키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해. 알겠지?”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신경을 쓴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 어차피 우리 여기서 나갈 수도 없잖아.”언니는 그 말을 듣고 일어서더니 손을 뻗었다.“윤설아, 무슨 일 있어?”나는 얼른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다가오지 마요!”언니는 내 반응에 화가 난 듯 말했다.“너, 왜 이러는 거야!”“그래, 나 미쳤어! 하지만 내가 미치든 말든 신경 쓰기나 했어?”“고아원에 있을 때도 늘 그랬잖아. 언제나 네 멋대로 생각하면서 날 언니 그림자로만 여겼잖아.”“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아무것도 설명 안 하면서 내가 무조건 언니를 믿어주길 바라는 거야? 내가 그렇게 어리석어 보였어?”언니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억누르듯 침착하게 말했다.“윤설아, 난 네 언니야. 이 세상에서 유일한 가족이야. 네가 정말 내가 너를 해칠 거라고 생각해?”나는 언니의 불러온 배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누가 알아? 네가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짝! 언니는 내 말을 끊으며 손을 들어 내 뺨을 때렸다.
하지만 보약도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몸을 해치는 법이었다.언니가 임신 8개월이 되기 몇 날 전, 강현숙이 나를 불렀다.“내 비서가 말하길, 네가 최근 마무리 작업을 아주 잘했다고 하더라.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많이 줄었대.”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이에요.”강현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그래, 내가 기대한 대로구나.”“너희 언니가 요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그래서 출산을 조금 당기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니?”강현숙은 눈을 깜빡이지 않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와 언니가 사이가 나쁘기를 바라며 날 시험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이에 나는 무표정하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뜻대로 하시면 돼요.”“네 언니가 수술대에서 죽어도 괜찮겠니?”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렇게 여러 번 낳고도 안 죽었는데, 이번에도 쉽게 죽진 않을 거예요. 만약 죽는다면, 그건 언니가 운이 없는 탓이겠죠.”“어차피 죽는 건 언니지, 제가 왜 걱정해야 하겠어요?”강현숙은 내가 무관심한 태도로 말하는 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윤설아. 이 세상에서 의지할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지.”“네 언니는 널 그저 이용하고 있을 뿐이야. 네가 자기를 위해 길을 깔아주는 도구라고 여길 뿐이야.”“하지만 네가 말을 잘 듣는다면 절대 손해 보게 하진 않을게.”“네 언니는 아이만 낳으면 내가 보내줄 거니까.”강현숙은 마치 언니를 편안히 보내주겠다는 듯 말했지만, 그 보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디로 보내겠다는 건지, 생사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그때, 갑자기 문밖에서 언니의 비명이 들려왔다.아마도 잦은 유도 분만 탓에 언니의 몸이 견디지 못하고 변화가 온 모양이었다. 이제 아이가 나오려는 듯했다.예상치 못한 상황에 강현숙의 눈빛이 어두워졌지만, 그녀가 이 순간을 오래 기다려 왔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강현숙은 급히 밖으로 나갔다. 어느덧 밤이 찾아와 도
강현숙은 곧 자신이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미친 듯이 달려들어 내 손에 든 계약서를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나는 잽싸게 피하며 강현숙을 발로 차서 바닥에 쓰러뜨렸다.“하윤설! 네가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강현숙이 분노에 차서 소리치자, 나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병이 나신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우리나라 제일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는 정신병원을 이미 예약해 두었으니까요.”그 말을 들은 그녀는 오히려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네가 감히?”나는 강현숙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 발로 얼굴을 밟았다. 힘껏 밟아 대자, 그녀의 이가 부러져 나왔고 입에서 피가 흘렀다. 강현숙은 비명을 지르며 눈물과 침을 흘렸다. 얼굴엔 선명한 붉은 자국이 번졌다.“내가 당신의 더러운 일들을 맡으면서 당신에게 충성할 줄 알았나요?”“오히려 감사해요. 가장 기밀한 일들을 제 손에 쥐어주셨으니, 무언가 꾸미는 건 더 쉬웠죠.”강현숙은 얼굴을 감싸며 싸늘하게 웃었다.“그래서? 내가 멀쩡한 사람인데 정신병원에 보낸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니?”“쉿.” 나는 강현숙의 말을 막았다.“어머니, 제가 어떤 꼼수를 썼을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병은 입으로 들어온다고 하잖아요?”“어머니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보약들, 그중에서도 신경을 교란하는 약물들 어머니가 최근에 참 많이 드셨죠. 방금 드신 태반과 그 물에도 듬뿍 넣었답니다.”강현숙은 방금 마신 물을 바라보며 충격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이 모든 걸 계획한 거였어? 현승이 감옥에 간 것도 네 짓이었구나!”“맞아요.”강현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문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현숙은 언니를 보자 순간적으로 동공이 확장되었고, 온몸이 떨리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분명히 너를 처리하라고 했는데, 네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언니는 천천히 다가오며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살아 있어야죠. 그래야 당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언니는 강
“어때, 하윤설. 너도 나와 함께 지옥에 떨어지고 싶은 거니!”강현숙의 말에 언니가 내 손을 붙잡으며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인신매매라니! 하윤설, 네가 나한테 숨긴 게 뭐야?”나는 잠자코 언니를 바라봤다. 사실 강현숙이 나를 협박한 내용은 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언니를 도와주겠다고만 했을 뿐이다.나는 언니에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언니.”이 말은 곧 강현숙이 말한 내용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셈이었다.언니는 갑작스럽게 거칠게 숨을 내쉬며 지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커다란 상처와 고통이 묻어나 있었다.“사실 난 이미 사흘 전에 경찰에 자수했어. 모든 증거를 제공하고, 배의 행선지와 특성도 다 알렸어. 감옥에 가더라도 감형은 받을 거야.”언니의 눈동자는 슬픔과 고통으로 요동쳤고, 쉰 목소리로 물었다.“왜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야?”나는 언니를 품에 안았다. 마치 예전 언니가 정현승의 폭행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며 상처투성이가 된 몸으로 나를 꼭 안고 말하던 그때처럼.“괜찮아, 윤설아. 언니가 너를 지켜줄게.”나는 언니의 머리카락을 다정히 정리해 주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이제 내가 언니를 지켜줄 차례야.”강현숙은 내가 괴물이라도 되는 듯 충격에 차서 나를 바라보았다.“하윤설,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거야!”나는 뒤돌아보며 강현숙에게 차분히 말했다.“걱정 마세요. 뒷일은 제가 다 준비해 뒀으니까요. 경찰에 신고한 순간, 당신의 공범들도 모두 체포될 거예요.”나는 목소리를 낮춰 강현숙만 들을 수 있게 말했다.“제가 당신을 위해 준비한 정신병원에는 예전에 당신 때문에 미쳐버린 여자아이들도 있어요.”“그리고 감옥에도 어머니 때문에 들어간 사람들이 꽤 있죠. 그들이 당신과 정현승을 가만히 놔둘까요?”“당신이 어디에 계시든 그들의 손길을 피해 갈 순 없을 거예요.”강현숙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는 자신의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