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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가면 되지!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두고 볼 거야.”

정현수는 씩씩거리며 뒤돌아서 지하실로 걸어갔다.

난 영혼이 되어 그의 뒤에 떠다니며 발걸음을 따라 움직였다.

어둡고 축축한 방에 돌아오자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설령 목숨을 잃었을지언정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는 공포감은 뼛속 깊이 새겨졌다.

정현수는 역겨운 듯 코를 막고 악취에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이내 나무 상자를 발로 툭툭 걷어차더니 화가 치밀어올라 욕설을 퍼부었다.

“소지혜, 당장 기어 나와! 감히 나한테 심술을 부려? 만에 하나 아리에게 사과할 타이밍을 놓친다고 할 때 처참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셋 세기 전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가중 처벌해도 내 탓 하지 마.”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죽은 사람을 어떻게 벌할 건데? 고작 아리한테 잘 보이려고 시체를 끌어내 채찍질이라도 하게?”

하지만 비참한 웃음소리와 처절한 울부짖음은 정현수에게 전혀 닿지 않았다.

이내 그는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상자는 꿈쩍도 안 했고, 일주일 전에 흘린 피마저 굳어 있었다.

정현수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고래고래 외쳤다.

“소지혜, 내 말을 귓등으로 들어?! 죽여버릴 거야.”

말을 마치고 나서 참다못해 나무 상자 뚜껑을 열려고 했다.

이때, 민아리가 갑자기 걸어 들어왔다.

“오빠.”

그녀의 목소리에 정현수는 손을 다시 아래로 내렸다.

“아리야, 여긴 왜 왔어?”

그리고 허리를 껴안더니 문밖으로 끌고 갔다.

“더럽고 냄새나는 방에 들어오면 머리가 아플지도 몰라.”

민아리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괜찮다는 듯 말했다.

“오빠가 너무 험상궂게 구니까 지혜 언니가 나오기 싫어하는 거예요. 오빠는 일단 거실에 가서 손님을 접대하고 있어요. 제가 지혜 언니랑 얘기를 나눠볼게요.”

정현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막아섰다.

“안돼, 만약 이 질투심 많은 여자가 또 널 괴롭히면 어떡해? 지난번의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민아리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럴 리 없어요. 언니도 지금까지 반성했으니까 본인이 잘못한 걸 알고 있을 거예요.”

결국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정현수는 순순히 따라주었다.

심지어 떠나기 직전까지도 큰소리로 나한테 경고까지 했다.

“소지혜, 또다시 아리를 괴롭히면 처참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나는 냉소를 지었다.

나무 상자에 갇혀서 죽은 것보다 더 추한 꼴이 있을까?

정현수가 떠난 후 민아리는 코를 막고 나무 상자를 열었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내 모습을 보자 그녀는 깜짝 놀라더니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곧이어 침착함을 되찾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검은색 옷차림의 사내들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뒷문으로 끌고 나가서 시체를 묻어.”

민아리가 표독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이런! 감히 내 시체를 묻어버리려고 하다니!’

나는 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되면 억울함을 풀 기회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는가?

이내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 목소리는 그들에게 닿지 않았고, 영혼이 된 몸뚱이로 달려들어봤자 데미지를 주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시체를 끌고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냥 지켜보기만 했다.

지하실의 뒷문은 별장의 뒷마당과 이어졌다.

나는 건물 구조에 대해 빠삭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만 하더라도 이 고택에서 함께 지냈었다.

나중에 돌아가시고 나서는 별장을 떠나기 아쉬워하는 나를 보고 정현수는 함께 있어 주겠다면서 살림을 합쳤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화를 자초하는 꼴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예전부터 별장을 호시탐탐 노리던 민아리는 자주 들락이며 자연스럽게 구조를 파악했다.

이내 검은 옷을 입은 두 남자에게 명령했다.

“아무 데나 찾아서 묻어버려.”

나는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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