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Chapter 21 - Chapter 30

240 Chapters

제21화

“꺄악!”강나현은 반하준의 뒤에서 비명을 질렀다.반하준이 뒤를 돌아보니 강나현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머리카락이 흩어진 채 고개를 든 그녀가 빤히 반하준을 바라보았다.“하준 오빠...”남자의 머릿속에는 18살 나이에 생명을 다한 반유하가 불길 속에서 울부짖으며 자신을 부르는 장면이 떠올라 눈앞의 장면과 겹쳤다.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반하준은 강나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 줬다.남자의 차에 탄 강나현은 치솟는 기쁨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이 팔찌는 어떻게 할 거야?”강나현이 손바닥을 펼치며 물었다.“버려.” 남자의 목소리는 극도로 싸늘했다.“그래!” 강나현은 흔쾌히 답하며 창문을 향해 던지는 동작을 취하고는 손목을 돌려 조용히 팔찌를 주머니에 넣었다....반씨 저택 서재.잘생긴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강민아의 진료 기록을 읽다가 ‘임신중절’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멈칫했다.반하준은 물에 빠진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컴퓨터 화면에는 태아의 다급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문득 그 소리가 멈췄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반하준의 가슴을 난도질하는 듯 통증이 밀려와 허리를 굽히니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기를 집어 드는 손마저 떨려와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천년이 지나도 녹지 않는 차가운 얼음처럼 그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이혼 서류에 약속했던 돈은 언제 보낼 건지 물어보셨어요.”“지금 보내.”반하준의 목소리가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려 전화기 너머로 망설이던 비서가 말을 이어갔다.“대표님, 이혼 서류에는 사모님께 일시불로 120억을 줘야 한다고...”“줘.” 반하준의 말투는 단호했다.별 볼 일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강민아는 단번에 120억을 주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다.120억은 그녀에게 삼키지 못할 떡이 될 거고, 반하준은 멀지 않아 그녀가 자신에게 다시 찾아와 애원할 거라 생각했다....강민아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은행 계좌에 120억이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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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심은호의 기분이 좋다는 걸 눈치챈 진 변호사가 말했다.“큰손 고객인가요?”“응.”진 변호사는 호기심에 캐물었다.“얼마나 대단한 고객인데 그렇게 기뻐하세요?”“이번 사건만 이기면 난 결혼할 거야.”변호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심은호는 서경에서 유명한 싱글남으로 여성에게 ‘알레르기’가 있는 연애 불능자였다.직업 때문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감히 그에게 수작 부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일단 그를 건드리는 사람은 누구든 법원이나 경찰서로 직행했으니까.회의실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고객과 사건이면 심은호가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볼 결심까지 하게 만드는 걸까....얼마 지나지 않아 강민아는 태화 증권의 매니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120억이 있는데 주식에 투자할 생각이에요.”매니저는 경악했다.“120억이요? 그러면 우리 회사로 오셔서 바로 계좌를 개설하시죠.”강민아가 반우정을 데리고 태화 증권 건물로 들어가자 반우정은 호기심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매니저 홍민기는 두 사람을 프라이빗 VIP룸으로 데려가 계좌 개설 절차를 도왔다.반우정은 강민아와 홍민기 사이에서 수수료 조율 과정을 지켜보았다. 한 번도 본적 없는 강민아의 모습이었다.‘엄마가 독수리처럼 예리하고 매서울 때도 있구나.’홍민기는 결국 강민아에게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수료를 제안했다.“강민아 씨는 돈을 어떻게 나눌 생각이세요?”강민아는 홍민기에게 포스트잇 한 장을 건넸다.“내일 이 주식 좀 사주세요.”포스트잇을 건네받은 강민기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훑어보았다. 매일 주식을 다루는 게 일이라 코드만 보고도 주식의 최근 그래프가 눈앞에 그려졌다.그러다 문득 홍민기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120억을 전부 여기에 투자하려고요?”“네.”“다른 건 생각해 보지 않으시겠어요?”“생각 없어요.”홍민기는 한숨을 내쉬었다.“미리 말씀드리지만 지금 시장이 좋지 않아서 일주일 뒤면 120억 중에 20억도 안 남을 거예요.”강민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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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알았어.”전화를 끊으려던 반하준이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강민아와는 어떻게 연락이 닿았어?”홍민기는 정중하게 답했다.“심 변호사님이 소개해 주셨어요.”고개를 든 반하준의 흑백이 분명한 두 눈에 희미한 안개가 드리워졌다.“심은호?”홍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반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음침하고 차가운 기운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강민아가 강씨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도우미는 이미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이혼했으니 부모님께 제대로 말씀드려야 한다.강민아는 먼저 반우정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의 옷을 갈아입힌 뒤 손까지 깨끗이 씻고 나왔을 때쯤 부모님과 마주쳤다.“우리 딸 왔어?”어머니 도민영이 아버지 강성진의 품에 안긴 채 그의 가슴에 기대고 있었다.앳된 얼굴이 30대도 안 돼 보이지만 사실 도민영의 나이는 벌써 마흔여섯이었다.강민아는 강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 그녀가 외출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도민영은 늘 흰색의 긴 원피스를 입고 아기처럼 강성진의 품에 안겨 있었다.강성진은 쉰이 넘은 나이에도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한 데다 잘생긴 얼굴은 세월이 지나면서 더더욱 성숙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아빠, 엄마.”강민아가 어색하게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어딜 뻔뻔하게 들어와!”강성진이 굳은 얼굴로 꾸짖자 도민영은 어깨를 움츠리고 고양이처럼 남자의 가슴에 비비적거렸다.“어머, 성진 씨. 나 놀랐잖아.”강성진은 고개를 돌려 도민영에게 시선을 집중했다.도민영을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간 그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움직여 도민영을... 아기 의자에 내려놓았다.강민아는 애써 시선을 돌리며 부엌으로 들어가 반우정과 함께 두 사람 맞은편에 앉았다.도민영 앞에는 아기 그릇이 놓여 있었고 그녀는 숟가락을 깨물며 반우정을 바라봤다.“정이는 왜 아기 그릇을 안 써?”반우정이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전 키 커야 해서 이젠 아기 그릇으로 부족해요.”도민영이 눈을 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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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강민아가 웃으며 말했다.“버린 쓰레기는 많아. 천천히 주워봐.”강나현이 옷을 다 벗고 반하준의 침대에 누워 있다고 해도 강민아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미소 지으며 강나현이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강나현의 팔찌가 반하준이 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강성진은 오히려 안심했다.그는 강나현이 여전히 반하준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다.식탁 위에서 강성진은 강민아를 겨냥해 말을 던졌다.“하준이가 너랑 이혼한 건 분명 네가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이겠지. 당장 재혼해! 우리 강씨 가문에 이혼한 여자는 있을 수 없어! 정말 한심하다. 한심해. 창피하지도 않아? 서른 살에 애까지 딸린 이혼녀를 누가 좋아하겠어?”강민아는 느긋하게 식사하며 가끔 반우정이 밥 먹는 모습을 살폈다.“아빠, 제가 왜 반하준이랑 이혼했는지는 안 물어보세요?”“왜긴 왜야! 남자 하나 붙잡지도 못하면서! 반씨 가문과의 혼인은 내가 정말 못 볼꼴까지 보면서 간신히 성사한 거야. 지금까지 너무 쉽게 살았지? 그러니까 지금 이러는 거지!”“아빠.”강민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도민영이 끼어들었다.“딸, 어서 하준이한테 사과해. 이번만큼은 용서를 빌어야 해. 이렇게 이혼하면 너 하준이보다 더 좋은 남자는 못 만난다?”강성진은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강민아를 보며 말했다.“역시 시골에서 와서 그런지 세상 물정을 몰라!”그는 강민아를 가리키며 도민영에게 말했다.“우리 손에서 자라지 않았다고 이혼도 우리한테 미리 알리지 않은 것 좀 봐.”“미리 알렸다면 이혼도 못 했겠죠.”강성진은 콧방귀를 뀌고 곁눈질로 강나현을 쳐다보더니 강민아에게 물었다.“하준이랑 이혼 협의서 써서 위자료 챙겼다며?”그의 목소리가 점점 강압적으로 변했다.“그 많은 돈을 바보같이 은행에 적금 들어둔 건 아니겠지? 회사 계좌로 이체해라. 매년 배당금도 주마.”“전부 주식에 투자했어요.”“뭐라고?”강성진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싸늘해졌다.강민아는 귀가 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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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아아악!”깜짝 놀란 도민영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테이블이 뒤집히는 순간 강성진은 도민영을 안아 들고 황급히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강민아는 그 모습을 보고 곧바로 달려가 반우정을 품에 안고 가장 가까운 주방으로 뛰어갔다.“흑! 성진 씨, 나 너무 무서워!”도민영은 두 팔로 강성진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강성진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민영아, 걱정하지 마. 본때를 보여주면 저 둘도 조용해질 거야.”겁에 질린 도민영은 온몸을 움츠렸다.반면 강나현의 얼굴에는 짙은 웃음이 떠올랐다.‘집에 돌아온 뒤로 아빠한테 맞아본 적 없겠지. 딸과 손녀에게 손을 대는 모습, 볼만 하겠어.’“강민아! 당장 나와!”강성진은 주방 쪽으로 걸어가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그는 허리띠 버클을 풀고 벨트를 빼 들었다.그 모습은 마치 훈련된 조교 같았다.주방에서 나타난 강민아의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 있었다.반우정을 주방 안쪽으로 밀어 넣은 뒤 강민아는 문 앞에 서서 마치 성문을 지키는 장수처럼 버텼다.그녀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강성진의 손에 들린 벨트를 보자 그녀는 오히려 모성애가 불타오르며 전투 의지가 강렬하게 치솟았다.강민아는 한때 18년 만에 찾아온 친부모에게서 사랑을 기대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다.‘우정이랑 같이 살아가려면 이 얄팍한 혈연도 완전히 끊어내야 해!’“아빠, 한번 제대로 겨뤄볼까요? 아빠의 벨트가 빠를까요? 제 칼이 빠를까요?”강성진은 크고 건장한 체격에 오랫동안 운동으로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었고 반면 강민아는 매일 살림에 시달리는 가녀린 전업주부일 뿐이었다.그런 상황만 고려한다면 강성진이 그녀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하지만 강성진은 그녀의 눈빛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느꼈다.그녀는 마치 정글 속에서 사냥꾼을 만나 새끼를 지키려는 암사자처럼 죽음을 불사하는 기세를 풍겼다.강성진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감히 네가 내게 칼을 들이밀어?""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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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엄마, 저 아까 잘못한 거예요? 테이블 엎으면 안 됐어요?”아직 어린 반우정은 자기가 테이블을 엎어서 강씨 가문에서 쫓겨난 거로 생각했다.강민아는 반우정에게 되물었다.“만약 다시 기회가 온다면 또 테이블을 엎을 거야?”반우정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를 지키고 싶었어요.”강민아는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우정이는 할 수 있는 일을 한 거니 엄마의 영웅이야.”“엄마야말로 우정이의 영웅이에요!”반우정은 강민아 품을 파고들었다.엄마의 칭찬을 들은 반우정은 눈을 반짝이며 부끄러운 듯한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힘을 너무 세게 썼어요. 이러면 여자애 같지 않죠?”“우정이는 원래 여자아이야. 여자아이라도 여러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어. 정해진 모습이라는 건 없어.”강민아는 반우정을 부드럽게 안았다.“우정아, 너는 타고난 힘을 가지고 있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거란다. 엄마는 네가 그걸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해. 여자아이가 너무 약하면 결국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하거든. 하지만 엄마는 네가 절대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을 부정하길 원하지 않아.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넌 항상 엄마의 예쁜 딸이야.”반우정은 강민아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엄마, 예전부터 복싱 배우고 싶었어요. 더 강해지고 싶어요.”반씨 가문에 있을 때 그녀는 반현민과 함께 축구, 격투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연진숙이 여자아이는 밖에서 뛰어다니며 소리치는 게 아니라고 강하게 반대했다.“잘됐네. 삼촌이 헬스장을 운영하거든. 엄마가 삼촌한테 얘기해서 좋은 복싱 선생님을 구해달라고 할게.”“엄마, 최고예요!”반우정은 강민아의 품에 기댔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로 가요?”강민아는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답했다.“시그니엘로 가고 있단다.”그녀는 반하준과 이혼하면서 현금 외에도 집과 상가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았다.그녀가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었다.물론 지금도 새집을 알아보고 있었다.강민아는 주식 투자로 충분한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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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그는 얼굴을 찌푸린 채 욕조에 몸을 담그고 뜨거운 물을 견뎌냈다.그는 가정부에게 물 온도는 40.3도로 맞춰달라고 여러 번 당부했었다.욕실의 향은 그가 들어오기 10분 전에 피워야 한다고도 했었다.욕조 가장자리에 있는 가죽 쿠션에 기댄 반하준은 내부 조명도 제대로 맞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쯧.”‘강민아는 7년 동안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데.’반하준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조금만 참으면 돼. 강민아는 곧 돌아올 거야.’...다음 날 아침 핸드폰을 집어 든 강민아는 홍민기가 보낸 문자를 발견했다.[강민아 씨, 정말로 120억 모두 주식에 투자하시겠습니까?][네. 확실합니다. 개장하면 바로 전량 매수해 주세요.][알겠습니다.]홍민기는 다시 한번 당부했다.[후회하시면 안 됩니다.]강민아는 컴퓨터를 켜고 자신이 직접 만든 주식 시세 분석 프로그램을 실행했다.그녀가 만든 프로그램은 주식 시장이 바닥을 치고 다시 반등할 때라고 알려주고 있었다.주식 시장이 개장하자 강민아가 홍민기에게 매수하라고 한 주식의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강민아가 컴퓨터를 끄자마자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모르는 번호였다.최근 이력서를 내고 있었기에 그녀는 인사팀의 연락을 놓치지 않으려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사모님. 저예요.”전화기 너머에서 오소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혹시 도련님 빨간색 커프스단추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오소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민아는 전화를 끊었다.‘커프스단추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알 게 뭐야!’강민아는 아이 방으로 가서 반우정의 숙제를 확인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의 유선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벨 소리가 넓은 거실에 울려 퍼지자 조금 섬뜩했다.강민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선 전화의 선을 뽑아버렸다.그녀가 방에 돌아가기도 전에 초인종이 울렸다.문을 연 그녀의 앞에는 단지 관리자가 서 있었다.그는 강민아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건넸다.강민아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귓가에는 빙하처럼 차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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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하준 오빠?”강나현은 반하준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발견했다.그건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언니가 뭐라고 한 거야?”반하준은 한참을 뜸 들이다가 답했다.“아직도 나한테 화내고 있어.”그는 방금 자신을 향해 쏟아낸 말들이 정말로 강민아의 입에서 나온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언니 혹시 갱년기 아니야? 애 낳은 여자는 확 늙는다더라.”한바탕 화를 낸 강민아는 전화를 끊고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아파트 관리자에게 내밀었다.관리자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그녀가 손을 까닥이자 관리자는 그제야 황급히 핸드폰을 받아 들고 도망치듯 뛰어갔다.시그니엘을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강민아는 반우정에게 다가가 물었다.“엄마랑 같이 엄마 선생님 보러 갈까?”“좋아요!”심씨 가문으로 출발하기 전 강민아는 심은호에게 미리 연락을 넣었다.그녀는 꽃집에 들러 꽃을 사고 취보헌에 들러 심한기가 평소 즐겨 쓰던 선지를 골랐다.그렇게 준비를 마친 뒤 강민아는 심씨 가문 저택 앞에 도착했다.하지만 그녀를 맞이한 것은 심은호가 아닌 심씨 가문의 가정부였다.저택으로 들어가는 길에 그녀는 응접실에 세워진 화이트보드를 보았다.그 위에는 복잡한 수학 문제가 적혀 있었다.그녀는 가정부의 안내를 받아 복도에서 대기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부는 난처한 표정으로 심한기의 방에서 나왔다.“어르신께서 방금 약을 드셔서 컨디션이 좋지 않으십니다. 잠시 기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강민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날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구나.’“알겠습니다.”그녀는 조용히 대답하고 응접실로 향했다.강민아는 반우정과 함께 한참을 앉아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화이트보드로 향했다.그리고 10분 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으로 가 마커를 집어 들고 계산을 시작했다.순간 그녀는 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창밖으로 더운 바람이 불어왔고 오동 나뭇잎이 사각거렸다.복도에서 학생들의 발소리까지 들려오자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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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마치 보이지 않는 밧줄이 강민아의 목을 조르는 듯 그녀는 숨을 쉴 수 없었다.심한기는 네이비 리넨 홈웨어를 입고 있었고 몸은 마르고 허약해 보였다.그의 머리는 온통 희었고 등은 굽어 있었다.강민아는 본능적으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려 했지만 자신은 이미 그럴 자격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순간 그녀의 시야가 흐려졌다.“할아버지, 안녕하세요!”반우정의 어린 목소리가 봄비처럼 상쾌하게 들려왔다.“할아버지가 우리 엄마가 그렇게 자랑하시던 학식이 풍부하고 재능이 뛰어나신 교육자이자 뛰어난 수학자 심한기 할아버지 맞으세요?”심한기는 통통하고 사랑스러운 반우정을 바라보며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네 딸이냐?”강민아는 급히 답했다.“네. 반우정이에요.”옆에 있던 누군가가 흥분하며 말했다.“교수님, 교수님께서 내신 문제 이분이 푸셨어요.”잠시 멈칫하던 심한기가 응접실로 향했다.강민아는 심한기의 걸음걸이가 안정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심은호가 말한 것처럼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심한기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강민아가 쓴 풀이 공식을 보다가 마른 어깨를 떨었다.“내가 가르친 걸 다 기억하고 있었구나.”그녀가 기억하고 있을수록 심한기는 서글펐고 강민아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한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강민아가 화이트보드를 보며 말했다.“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화이트보드 앞에 서니 예전에 배웠던 공식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어요.”“정말 교수님의 제자였어?”옆에 서 있던 남학생들이 속삭였다.“아니다!”심한기는 완고하게 부정했다.강민아가 박사 학위를 포기하기로 한 날 그는 강민아에게 누군가 대학에서 지도교수가 누구였는지 물어보면 자신의 이름은 절대 말하지 말라고 선언했었다.그렇게 강민아는 학사 학위만을 취득하고 학교를 떠났고 두 사람의 사제지간은 완전히 끊어졌다.학생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고 심한기는 차가운 눈빛으로 강민아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들어와서 얘기하자.”그는 학생들 앞에서 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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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심한기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패륜이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참았다.“왜 그 꼴인 거야?”심은호는 분명 옷을 입고 있었지만 차라리 안 입은 것보다 더 요염해 보였다.심한기의 짙은 눈썹이 격렬하게 떨렸다.“비를 맞았어요.”심은호는 무심하게 답하며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강민아의 각도에서 보면 그의 옆모습은 완벽한 황금비율을 이루고 있었다.오뚝한 콧날은 미끄럼틀처럼 매끈했고 한쪽 볼의 깊게 팬 보조개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심한기는 심은호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저도 모르게 손으로 눈을 가렸다.아들의 존재감이 너무나 눈부셔 선글라스가 필요했다.“아버지, 침대에 누워 쉬셔야 해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내가 뭘 무리한다는 거냐?”‘무리하는 건 너잖아! 색기 넘치는 공작새가 되어버려서는...’심한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민아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그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심은호는 그를 침대에 눕혀 버렸다.심은호가 베개를 몇 번 두드리자 먼지가 흩날리며 심한기가 기침하기 시작했다.강민아는 급히 물을 따랐다.“교수님, 물 좀 드세요.”그녀는 물컵을 들고 와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심한기를 바라보았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운 넘치던 분이 갑자기 이렇게 기침을 멈추지 못하다니.’심한기는 기침하면서도 강민아에게 말하려 했으나 심은호가 그의 손을 눌러 제지하고 강민아의 손에서 물컵을 받아 들었다.차가운 손끝이 스치는 순간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스치는 봄바람처럼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아버지, 지금은 물 마시면 안 돼요. 잠시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말을 마친 심은호는 강민아가 직접 따라준 따뜻한 물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을 본 심한기는 말문이 턱 막혔다.심은호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강민아의 시야를 가렸다.덕분에 강민아는 심한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했다.심은호는 심한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알긴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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