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Chapter 101 - Chapter 110

306 Chapters

제101화

“은호 씨, 하준 씨한테 어떤 차를 세차하게 할까요?”강민아의 목소리에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기대하는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심은호가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심은호가 스태프에게 말했다.“반하준이 세차할 차를 가져와요.”잠시 후 쓰레기차 한 대가 덜컹거리며 들어왔다.관중석에서 몇몇 사람들만 자리를 떴을 뿐 대부분은 여전히 앉아서 루나가 있는 방향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루나가 가기 전에 그들도 갈 생각이 없었다.더러운 쓰레기차가 들어오는 걸 본 관중들은 모두 목을 길게 빼 들고 구경하기 시작했다.그때 조정실의 스태프가 쪽지를 건네받고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루나 씨가 우승을 차지했으니 약속대로 반 대표님께서 루나 씨한테 차 세 대를 선물하는 것 외에도 직접 세차 서비스까지 제공할 예정입니다.”스태프의 목소리가 수십억짜리 스피커를 통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오늘 밤 반 대표님께서 루나 씨를 위해 현장에서 직접 쓰레기차를 세차합니다. 자, 모두 반 대표님께 힘찬 박수를 보내드립시다.”말을 마친 스태프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사실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심씨 가문은 서경시의 오랜 명문가이고 반씨 가문 또한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그저 속으로 이렇게 기도할 뿐이었다.‘문제가 생기면 당사자를 찾아야 할 텐데. 반 대표님께서 부디 심은호 씨를 찾아가셨으면 좋겠어. 나 같은 월급쟁이를 괴롭히지 말고.’스태프가 분위기를 띄우자 관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쳐댔다.결국 반하준은 꼼짝없이 그대로 해야만 했다. 관중석의 대형 스크린이 꺼지지 않았고 카메라 감독과 피디 모두 반하준이 쓰레기차를 세차하는 전 과정을 생중계할 태세였다.그때 강나현은 아직도 오토바이를 밀면서 결승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토바이를 민 게 약간 후회되었다. 뛰었더라면 20분이면 결승선에 도착했을 텐데.하지만 지금은 오토바이를 밀고 걸어가고 있다. 게다가 두꺼운 라이딩 복을 입고 있어 걸음걸이도 점점 더 보기 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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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순간 반하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젠장.”반하준은 교양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이 없이 거친 말을 내뱉고는 도망치듯 침대에서 내려 욕실로 달려갔다.쏟아지는 물소리가 간신히 진정된 그의 숨소리를 덮었다.그는 더 이상 혈기왕성한 어린애가 아니었고 가슴이 설렐 나이도 지났다. 아들이 벌써 훌쩍 자랐는데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두 눈을 감자 물줄기가 반하준의 긴장한 얼굴을 씻어내렸다.꿈속의 장면이 기괴하고 낯설어서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여자가 고팠나? 루나를 꿈에서 봤는데 민아의 얼굴이라니.’반하준이 코웃음을 쳤다.‘어이가 없어서, 원.’...어느덧 ALI 수학 경시대회 결승전 날이 밝았다.ALI 그룹은 서경대학교에 작은 시험장을 마련하고 시험 과정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기로 했다.네티즌들이 ALI 수학 경시대회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으니 무엇이 공정하고 공평한 건지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기적인 이익을 고려하여 ALI 그룹도 생중계의 열기를 빌려 수학 경시대회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강민아가 육성민의 SUV에서 내렸다. 조금 전 정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후 또 그녀를 서경대학교에 데려다주었다.웅장하고 화려한 서경대학교의 대리석 문패가 눈앞에 펼쳐진 순간 강민아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학교를 떠날 때 다시 돌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여기까지만 데려다주면 돼.”강민아는 뒤돌아 육성민에게 손을 흔들고는 다시 돌아서서 심호흡했다.‘이혼하길 정말 잘했어.’그녀는 서경대학교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육성민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강민아의 씩씩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오늘 베이지색 롱코트에 블랙 롱스커트를 입었고 앵클 부츠를 신었다. 거기에 울 머플러를 어깨에 둘러 매치했고 머리에는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노트북 가방을 들고 다른 서경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걸으니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육성민은 옅은 회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팔짱을 끼고 서 있었는데 추위 따위 전혀 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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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장기명이 잠깐 멈칫하다가 또 말했다.“정말 대단해요. 학교를 떠난 지 5년이나 되었는데 전국 최고 수준의 대회에 참가할 용기를 내다니.”강민아는 입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두 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당신도 정말 대단해요. 5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승승장구해서 원장 후보 자리까지 올랐잖아요.”그러자 장기명이 겸손하게 손을 내저었다.“아니에요. 난 원장 자리에 욕심이 없어요. 후보 명단에 오른 것도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서예요.”강민아가 한마디 귀띔했다.“장기명 씨의 앞날이 왠지 이제부턴 그리 순탄치 않을 것 같네요.”그녀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훔쳐 간 범인 앞에서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언젠가 반드시 법 앞에서 장기명의 것이 아닌 걸 하나하나 지워나가게 만들 것이다.장기명은 강민아를 보면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평소에도 늘 이런 표정으로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자신의 순수함과 무해함을 드러내려 했다.강민아에게 뭐라 더 말하려 했지만 강민아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녀는 날카롭고 예리한 칼날 같아서 사람들이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장기명은 고개를 돌려 두꺼운 안경렌즈 너머로 강민아의 가냘픈 몸집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 검지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정말 요염해. 당장 저 치마를 벗기고 계단에 눕혀버리고 싶어. 비명이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게 말이야.”그와 함께 서 있던 혈기왕성한 남학생 10여 명은 장기명의 말을 듣고는 순식간에 상상에 빠졌다.그때 방연석이 코웃음을 쳤다.“강민아 예쁘긴 한데 애를 둘이나 낳았어요. 헐렁해서 손 전체가 다 들어갈 정도일걸요?”“하하하하.”다른 남학생들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서경시 최고의 명문대학교에 다니는 그들은 각자의 고향에서 인정받은 인물들이자 거의 천재로 손꼽혔고 머리도 평범한 사람보다 똑똑해서 더 원대한 미래를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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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부신 그룹 대표 사무실.엄규민은 반하준에게 업무 보고를 마친 후 아이패드를 옆구리에 끼고 여러 번 망설인 끝에 결국 말을 꺼냈다.“대표님, 오늘은 사모... 오늘이 ALI 그룹 수학 경시대회 결승전 날입니다.”사무실 의자에 앉아 막 서류에 사인을 마친 반하준은 수억 원짜리 펜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빙빙 돌렸다.윤곽이 뚜렷한 그의 얼굴은 흔들림 없이 차분하기만 했다.“내 전 와이프한테 관심이 많은가 봐?”그가 입을 열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엄규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매회 ALI 수학 경시대회가 끝나면 부신 그룹에서는 결승에서 20위 안에 든 참가자들한테 러브콜을 보냅니다. 만약 강민아 씨가 20위 안에 든다면...”엄규민은 강민아와 반하준이 함께 일하는 모습이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만약 강민아가 정말 부신 그룹에 들어온다면 엄규민은 미리 부신 그룹의 모든 직원들에게 강민아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주의를 줘야 했다.반하준이 덤덤하게 말했다.“20위 안에 든다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는 말이겠지. 그럼 오퍼를 보내. 부신 그룹에 순조롭게 들어올 수 있을지는... 내 기분에 달려있어.”비웃는 듯한 기색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 그와 이혼 소동을 벌일 때 강민아는 ALI 수학 경시대회에 신청서를 냈다. 이는 그녀가 반하준에게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걸 의미했다.반하준에게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어 했고 남편과 아들이 계속 사랑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생각했다.그 생각에 반하준의 두 눈에 잔혹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강민아의 사모님 신분을 박탈한 순간 강민아가 아무리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써도 뒤돌아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때 반하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연진숙의 전화인 걸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연진숙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하준아, 너한테 보낸 재벌가 딸들 자료 다 봤니? 마음에 드는 사람 있어? 주말에 선자리 마련해줄게. 한번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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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아들이 지금까지 한 여자의 편을 이렇게 들어준 적이 없었다. 연진숙이 노발대발했다.“어떻게 어머니한테 그딴 식으로 말할 수 있어? 루나 그 여우 같은 년이 아주 널 제대로 홀렸구나. 어머니도 못 알아보게 만든 거 보면.”연진숙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반하준은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휴대폰을 테이블에 휙 던졌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그녀가 루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루나라는 이름만 들으면 마음속에 의심스러운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전에 정수산에서 반하준은 루나에게 사흘 안에 반씨 가문으로 와서 차를 가져가라고 했다.하지만 사흘이 지나도록 루나는 오지 않았다. 심은호 외에 루나와 연락이 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반하준은 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다.“내 차고에 있는 부가티 라 부아튀르 누아르랑 애스턴 마틴 발키리를 팔아버려.”엄규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 왜 갑자기 차를 팔려고 하시는 겁니까?”게다가 두 대 모두 한정판 최고급 스포츠카였다. 엄규민은 차고에서 그 두 대의 스포츠카를 보기만 해도 압도당해 넋이 나갔었다.반하준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엄규민에게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그리고 내가 그 두 대를 팔려고 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이게 다 루나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루나가 계속 나타나지 않는다면 영원히 그 두 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서경대학교.점심 12시, 결승전 종료까지 다섯 시간 반이 남았다.강민아는 컴퓨터로 답안 제출 버튼을 클릭한 후 감독관에게 손을 들고 말했다.“제출했어요.”그 순간 시험장의 모든 참가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감독관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뭐라고요? 정말 제출했어요?”강민아가 대답했다.“문제 다 풀었어요.”전에 그녀는 예선전이 끝나는 순간에 답안을 제출했었다. 그땐 반하준 때문에 시간을 지체했었고 또 5년 만에 다시 참가한 수학 경시대회라 반응 속도가 다소 느려졌기 때문이었다.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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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그 기자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다른 기자들의 반응이 더 컸다.“추적 818 대단한데요? 강민아 씨 아들까지 인터뷰하다니.”“강민아 씨한테 아들이 있었어요? 딸만 있는 줄 알았는데.”그러자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던 기자가 악의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강민아 씨한테 아들이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전남편의 신분까지 알아냈어요. 강민아 씨의 전남편이 부신 그룹 대표 반하준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그 순간 다른 기자들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대박. 정말이에요?”“반하준요? 서경 3대 태자 중 한 명인 부신 그룹 대표 반하준 말인가요?”상상도 못 한 사실에 강민아를 바라보는 눈빛마저 달라졌다.“강민아 씨, 정말 반하준 씨와 이혼하신 건가요? 어떻게 재벌가 사모님 자리를 버릴 수 있죠?”“이혼한 이유가 대체 뭡니까?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대표님께 내쫓긴 거죠?”“재벌들은 쉽게 이혼하지 않는데. 도대체 뭘 하셨기에 재벌가에서 쫓겨난 거예요?”지금 이 순간 강민아는 기자들의 먹잇감과 다름없었다. 그들은 강민아에게서 재벌가의 뒷이야기를 캐내려고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그리고 놀라운 건 모두 강민아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그녀가 강씨 가문의 딸이긴 했지만 18살이 되어서야 강씨 가문에 돌아왔다는 걸 기자들은 알고 있었다.하여 분명히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기에 반씨 가문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생각했다.추적 818 프로그램 기자가 녹음 펜을 꺼내더니 이젠 진실을 밝힐 때가 됐다는 생각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지금까지 강민아 씨한테 속고 계신 것 같으니까 강민아 씨의 친아들이 어머니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들어보시죠.”기자가 녹음 펜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전 반현민이고 올해 다섯 살입니다. 반우정은 제 여동생인데 지금은 강윤정으로 이름을 바꿨어요.”아이의 앳된 목소리가 들린 순간 몇몇 기자들은 녹음 펜에 마이크를 들이댔다.“강민아는 더 이상 제 엄마가 아니에요. 아빠랑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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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녹음 펜에서 반현민에게 묻는 기자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현민 어린이는 어머니가 수학 경시대회에 참가하는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나요?”반현민의 목소리가 울렸다.“유명해지고 싶어서요. 돈도 갖고 싶고 아빠한테서 저를 빼앗고 싶어 해요. 저를 빼앗아가면 앞으로 아빠를 협박해서 더 많을 돈을 받아낼 수 있거든요.”아이의 순진하고 앳된 목소리는 마치 수천 개의 바늘처럼 강민아의 몸에 박혀 말 못 할 고통이 밀려왔다.그 순간 강민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한때 그녀의 아들이었고 아킬레스건이었으며 그녀와 심장 박동을 공유했던 아이였다.뭐라 해도 결국에는 그녀의 친아들이라 반현민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강민아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고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강민아의 얼굴이 핏기없이 창백해졌고 눈동자에도 빛이라곤 없이 어두웠다.기자가 또 물었다.“현민 어린이, 네티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여러분, 이 여자한테 속지 마세요.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 여자예요. 전 친아들이라 어떤 엄마인지 제일 잘 알아요.”반현민의 목소리가 끊겼고 기자는 녹음 펜을 든 채 강민아를 보며 웃었다.수많은 카메라가 강민아의 얼굴을 찍고 있었다. 강민아의 표정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기자들은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마이크를 강민아의 얼굴에 거의 들이밀다시피 했다.“강민아 씨, 아들이 한 말이 다 사실인가요?”“강민아 씨, 일부러 아들을 버린 건가요?”강민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손을 들자 관절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뚜두둑 났다.그녀는 손바닥으로 마이크를 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마이크가 얼굴을 찌를 것 같았다.추적 818 기자는 흥분한 나머지 콧구멍까지 벌름거리면서 말했다.“다섯 살짜리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강민아는 입술을 적시고 싸늘하게 웃었다.“하지만 아이는 헛소리를 할 수 있죠.”얼굴이 납작한 누런 이 기자가 침을 튀기면서 그녀를 비난했다.“당신 아들이 당신을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는 자격 없는 엄마이기 때문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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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강민아는 경호원 십여 명의 호위를 받고서야 겨우 강의동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한여름의 모기처럼 끝까지 쫓아왔다.“당신들은 누구십니까?”“누가 보냈습니까?”기자들은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면서 마이크를 무표정한 경호원들의 얼굴에 들이댔다.그 바람에 많은 학생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강민아 쪽을 쳐다보았다.맨 뒤에 걷던 한 경호원이 귀찮게 달라붙는 기자들에게 증을 보여줬다.기자들은 증에 적힌 대통령실이라는 네 글자를 본 순간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그 경호원이 기자들에게 경고했다.“무엇을 보도할 수 있고 보도할 수 없는지 잘 알고 있겠죠? 보도해서는 안 될 것을 보도하면 결과는 알아서 감당해야 할 겁니다.”웅성거리던 기자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몇몇 눈치 빠른 카메라맨들은 어깨에 멘 카메라를 내려놓고 카메라 렌즈를 덮개로 덮었다.그들이 대통령실 소속 경호원이라는 걸 알게 된 기자들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검은색 현대 제네시스 한 대가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서경대학교에서는 학교 지도부의 차조차도 캠퍼스 내에서 함부로 다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장엄한 모습의 제네시스는 캠퍼스 안으로 들어왔다.차 문이 열리자 넓은 뒷좌석에 훤칠한 키의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차량 내부가 어두컴컴하여 남자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곽이 뛰어난 건 알아볼 수 있었다.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목을 길게 빼 들고 눈을 크게 떴다.“혹시 반하준 대표님이에요? 좀 닮았는데.”“강민아 씨랑 이혼했다고 하지 않았어요?”“반 대표님이 대통령실의 경호원을 동원할 수 있어요? 불가능할 텐데.”기자들은 훈련이 잘된 경호원들에게 2, 3m 떨어진 곳에서 가로막혔다.강민아는 차 문 쪽으로 걸어가 차 안에 있는 남자를 보고는 공손하게 인사했다.“작은아버지.”무심코 불렀다가 문득 그 호칭이 적절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차 안의 분위기도 숨 막힐 듯 무거워졌다.이젠 반하준과 이혼했으니 더 이상 반용화를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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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반용화가 문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차 문이 다시 닫혔다. 기자들은 밖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경호원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야 추적 818 기자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현이 형. 반씨 가문의 그분이 계속 강민아를 감싸고돌 거란 말은 안 했잖아요. 오늘 그분을 건드렸으면 앞으로 이 바닥에서 발도 못 붙일 뻔했어요.”반용화는 이미 떠났지만 추적 818 기자는 아직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강나현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울려 퍼졌다.“반씨 가문의 그분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야?”“반용화 말이에요. 그분이 경호원들을 데리고 와서 강민아를 데려갔어요.”“말도 안 돼.”강나현이 큰 소리로 말했다.“반용화가 강민아를 데려가는 걸 직접 봤다고? 나랑 하준 오빠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는데도 몇 번 본 적이 없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고연과학원의 수석 연구원이, 그것도 국가 극비 프로젝트도 참여하는 사람이 왜 강민아를...”“정말 반용화예요.”기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내가 직접 봐서 절대 거짓일 리가 없어요. 연구원님께서 나한테 베테랑 기자가 5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특종을 파내려는 게 창피하지도 않냐고 했어요.”기자가 가슴을 움켜쥐고 걱정스럽게 말했다.“회사로 돌아가면 해고당하는 거 아니겠죠? 현이 형을 도와줬다가 반용화를 건드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강나현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중얼거리듯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반용화가 왜 강민아를 도와줘? 말도 안 돼.”기자가 또 말했다.“아무튼 강민아에 관한 기사는 내지 못하겠어요.”그러자 강나현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강민아의 추문을 보도하려는 언론사는 너 말고도 엄청 많아. 걔가 아들을 학대했다는 기사가 이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어.”강나현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쥔 채 싸늘하게 웃었다.‘ALI 수학 경시대회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려고? 흥. 인터넷에서 추앙받는 만큼 더 처참하게 추락시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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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강민아는 반용화에게 정중하게 말했다.“다음 달에 정이랑 이사 가려고요. 이미 학군 좋은 곳에 집을 알아뒀어요. 다음 주에 ALI 수학 경시대회 결승 결과가 발표될 텐데 3위 안에 들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일자리는...”그녀의 가늘고 짙은 속눈썹이 나비 날개처럼 가볍게 떨렸다.“저...”그녀는 반용화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망설이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물었다.“용성에 들어가도 될까요?”어찌나 긴장했는지 목소리에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반용화의 맑고 깨끗한 시선이 강민아의 얼굴을 스쳤다.그녀는 반용화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대략 알고 있었다. 반용화는 중책을 맡고 있었고 그가 이끄는 용성연구센터는 우리나라 10대 연구센터 중 하나였다. 심지어 위치가 지도상에 표시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강민아는 마음을 굳게 다지고 반용화에게 자신을 추천했다.“지금 우리나라에서 인공지능 연구를 진행 중이고 연구원님이 책임자인 거 알아요. 저...”“강민아.”반용화가 성까지 부르자 강민아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바르게 앉았다.“용성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그의 목소리는 깊은 우물처럼 잔잔했다. 그가 이 말을 내뱉었을 때 반하준에게서 봤던 차가움이 조금 보이는 듯했다.‘역시 피는 못 속인다니까.’하지만 강민아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연구원님이 직접 절 뽑으셨잖아요.”13년 전 반용화는 교육 자원이 부족한 작은 마을에서 강민아를 발굴했고 그의 추천서 한 장으로 강민아는 고연대학교 영재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강민아의 뜨거운 눈빛에 반용화는 숨을 가볍게 들이쉬었다가 고개를 돌렸다.“그럼 금상을 받고 나서 얘기해.”강민아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웃음을 머금은 눈빛이 마치 촛불처럼 흔들렸다.“연구원님도 제가 ALI 수학 경시대회에 참가한 걸 지켜보고 계셨던 건가요?”“우연히 봤어.”반용화는 짧게 대답하며 오해를 살 만한 여지를 주지 않으려 했다.검은색 현대 제네시스가 호텔 문 앞에 멈춰 섰다. 강민아가 내리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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