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Chapter 91 - Chapter 100

306 Chapters

제91화

반하준은 이번 경기의 승패에 집착하지 않았다. 프로 레이서도 아니었기에 단지 하늘에 있는 반유하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블랙홀을 몰고 레이스 코스를 달렸다.드림의 조수석에 앉은 심은호는 강민아가 멍하니 블랙홀을 쳐다보는 것을 발견했다.“왜 그래요?”강민아가 속눈썹을 깜빡였다. 헬멧을 쓰고 있어서 심은호는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난 저 차 싫어요.”심은호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1등을 하면 반하준 차고에서 차 세 대를 고를 수 있는데 그때 블랙홀을 택해서 폐차장으로 보내 버려요.”강민아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지며 주위를 감싸고 있던 어둠이 완전히 사라졌다.과거 그녀는 반씨 가문 차고에서 ‘블랙홀'에 매료되었고, 차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는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그녀가 차 내부를 어루만지고 있을 때쯤 반하준이 그녀를 밖으로 끌어당겼다.그때 아직 두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그대로 무거운 배를 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차 문 옆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는 남자에게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가득한 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벽처럼 보였다.“내 차 더럽히지 마.”“하준 씨, 난 당신 아내야...”그녀는 자신이 레이싱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데 반씨 가문 차고에 개조한 슈퍼카가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하고 싶었다.동료 레이서를 만나서 기뻤다.차를 보자마자 그 차가 드림과 함께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그의 아내로서 반씨 가문 차고에서 반하준의 스포츠카에 타는 게 뭐가 문제일까.“블랙홀이 너보다 훨씬 비싸. 강민아, 다신 내 눈앞에서 이 차에 손대지 마.”아내에게 매정하게 경고한 반하준은 차 문을 잠그고 강민아를 일으켜 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지나쳐 가버렸다.강민아가 손을 뻗어 차 문에 기대어 일어나려는데 서늘한 기운이 화살처럼 그녀에게 꽂혔다.자리에 앉은 채로 뒤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남자가 가지 않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고고한 자태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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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반하준의 차에 앉은 강나현은 드림을 향해 달려가는 두 대의 레이싱카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렸다.레이싱 경기에 참여한 재벌 2세들도 자기들만의 전략이 있었다.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레이스인 만큼 우승을 위해 일부 차량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두꺼운 헬멧을 쓴 강민아의 맑은 동공에는 긴장감과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그녀는 단호하게 기어를 바꾸고 오른쪽 차 바퀴를 들어 올렸다.심은호는 자신의 시야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쿵쾅거리는 심장에선 거센 충돌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이것이야말로 일방통행인가!레이싱카의 오른쪽 앞바퀴와 뒷바퀴가 완전히 지면을 떠나고 차량 전체가 옆으로 45도 기울어진 채 달리고 있었다.원래 드림을 추돌하려던 차량의 운전자는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재벌 2세가 고개를 돌려보니 차창 옆으로 칠흑같이 어두운 섀시가 보였다.마치 늪에 숨어 있던 거대한 짐승이 그들을 향해 피 묻은 입을 벌린 것 같았다.검은 타이어는 머리 위에 달린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들의 차량 지붕 위에서 돌아갔다.이미 호랑이 굴에 들어온 그들은 상대의 차 바퀴와 그들의 차 윗부분이 곧 충돌할 것을 알았다.“이런 젠장!”그저 취미로 소소하게 레이싱을 즐기는 재벌 2세들이 언제 이런 광경을 본 적이나 있겠나.“헉!”여전히 웅성거리며 환호하던 객석의 사람들이 모두 일제히 찬 공기를 들이켰다.이건 특급 레이싱 묘기였다.드림 레이서가 얼마나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으면 크로스컨트리 레이스에서 위기 상황에 이런 묘기를 펼치겠나.드림의 차체가 옆으로 기울어진 모습이 거대한 파도처럼 민이에게 충격을 선사했다.아이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흠칫 떨리기까지 했다. 검은 눈동자도 요동치고 있었다.강민아 쪽 차량이 그녀에게 다가올 무렵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남자도 옆으로 달리는 드림의 자동차 지붕과 들어 올린 바퀴를 보았다.“젠장!”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본능이 그에게 빨리 물러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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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기어 올리고 왼쪽으로 꺾어요.”“오른쪽 세 번째 내리막길, 기어 내려요.”강민아는 지도를 통해 오프로드 구간을 머릿속으로 최대한 외웠지만 레이서는 빠른 속도에서 미처 온전한 사고를 하기 어려웠다.이때 심은호가 그녀의 두뇌가 되어줬다.짧고 간결하게 지시를 내리던 심은호는 정수산의 복잡한 오프로드를 머릿속에서 3D 모델로 구축했다.마치 체스판 앞에 앉아 전체 상황을 바라보는 게임 플레이어처럼 강민아가 전진할 방향을 알려주었다.“하준 씨, 달려!”강나현은 반하준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내비게이터로 사용하던 지도는 진작 잊어버린 채 어딘가에 처박아두고 조수석에 앉아 반하준의 동반자 역할만 했다.반하준 역시 강나현의 내비게이터 역할이 필요 없었고 자기 판단력만을 믿었다.반하준은 정수산 경기장 기획과 설계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경기장의 복잡한 도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블랙홀은 2구간에서 다른 차들과 나란히 달리면서 드림에 멀리 뒤처졌다.드림이 큰 코너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U자형 덤프를 완성하자 반하준의 검은 눈동자가 확 커졌다.그도 레이스 트랙에서 드림이 네 코너를 모두 정복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반하준은 드림의 원래 주인이 루나라는 것과 여성 레이서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고, 그 외에는 외모나 구체적인 정보는 조사를 했지만 알아내지 못했다.그도 언젠가 드림과 함께 나란히 경기에 임할 줄은 몰랐다.“오빠, 루나를 우리 팀에 영입하자. 난 루나를 스승으로 모실래!”반유하의 목소리가 반하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가 중간책으로 루나의 연락처를 알아냈을 때 돌아오는 건 루나가 은퇴를 준비한다는 소식이었다.나중에 드림이 경매에 오르고 그 자리엔 반하준도 있었다.드림을 사고 싶었지만 경매 시작과 동시에 누군가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불렀다.사업가인 반하준은 레이싱카를 좋아하고 시장가치를 뛰어넘은 가격에도 살 수 있지만 그 가격에 드림을 사는 것은 그에게 손해 보는 거래였다.손해 보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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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심은호는 머릿속으로 코스 전체를 되뇌며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눈가에 미소가 반짝였다.“루나, 앞쪽은 평지니까 망설이지 말고 달려요!”“앞길은 평탄해, 루나, 앞으로 돌진해!”전조등도 없이 드림은 어둠 속에서 전속력으로 달렸다. 강민아는 심은호를 전적으로 믿었고 마침내 어둠을 뚫고 빛이 들어오는 순간을 맞이했다.멀리서부터 경주용 자동차의 굉음이 들려오고 결승선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목을 쭉 뻗었다.관중석 뒤쪽의 대형 스크린도 자동차가 어둠의 구역에 진입하는 순간 칠흑같이 어두워졌다.모두가 긴장하는 순간이었다.어느 차량이 가장 먼저 어둠의 구역을 뚫고 정상 트랙으로 진입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민이는 난간을 밟고 찬바람을 맞으며 먼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갑자기 관중들의 시야에 칠흑같이 검은 자동차 한 대가 나타나자 대형 스크린에 불이 켜지고 관중석에서는 환호성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바로 드림이었다!드림은 어둠의 구역을 돌파하고 1등을 차지했다.그리고 드림의 뒤에는 반하준이 조종하는 블랙홀이 있었다.“루나! 아빠!”민이는 목이 터지라 소리치며 두 손을 꼭 쥐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아빠와 루나가 모두 1등을 했으면 좋겠어요.’빛이 반하준의 새까만 눈동자를 비추자 드림이 눈앞에 보이며 그의 승부욕이 완전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재계에서 거듭되는 대치와 무한한 압박감에 시달릴 때도 그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하지만 드림을 쫓는 과정에서 아드레날린은 극도로 치솟았고, 반하준은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지배당했다.침착한 가면을 벗어던지자 오직 눈앞에 있는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전속력으로 다리는 짐승만이 남았다.하지만 결승선까지 2km도 채 남지 않았다.휙-드림이 결승선을 통과하자 그곳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형형색색의 꽃가루가 황금비처럼 쏟아져 나와 드림의 차 위로 떨어졌다.“우와!”민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두 눈에는 오로지 드림만 보였다.그는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것처럼 심장을 움켜쥔 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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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강민아는 드림이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넋을 잃은 채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루나, 당신이 이겼어요!”강민아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헬멧을 벗은 심은호의 불사조 같은 눈동자에 별이 반짝이는 듯한 미소가 보였다.그가 손을 뻗어 강민아의 헬멧을 벗기자 비단처럼 고운 그녀의 머리카락이 아래로 떨어졌다.강민아는 극한의 운동으로 인해 크게 헐떡이는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썼다.고개를 들어 오로지 자신만 담은 심은호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바라봤다.“루나, 돌아온 걸 환영해요.” 심은호의 눈에 루나는 보물 같은 존재였다.“당신은 언제나 내 마음속 챔피언이었어요.”확신에 찬 심은호의 목소리는 지상에서 날아갈 때의 쾌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고 들썩이는 그의 가슴을 따라 차 안의 온도가 상승했다.강민아는 그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드림을 본 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심은호 씨는 대체 어떻게 내가 루나인 걸 알았어요?”강민아가 강씨 가문에 들어오기 전 그녀의 이름은 육민아였고, 레이서 면허증에도 항상 육민아라는 이름을 써왔기 때문에 레이서라는 정체성을 잘 숨겨왔다고 생각했다.심은호는 무심하게 왼쪽 어깨를 좌석 등받이에 기대고 입꼬리를 올리며 새하얀 치아를 자랑했다.“내가 문라이트 대표니까요.”강민아의 동공이 커졌다.“그러면 저를 문라이트 레이싱 클럽에 영입한 게 당신이에요?”“네.” 남자는 매력적인 눈을 가늘게 뜨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강민아가 멍하니 심은호를 바라보았다.“그쪽이 날 루나로 만들어줬어요.”당시 강민아는 딱 한 가지, 자기 외모와 실명을 공개하지 말고 사생활을 보호해달라는 조건을 걸고 클럽에 들어갔다.그땐 아직 유명세를 치르기 전이었고 레이싱계에는 여성 레이서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투자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바로 문라이트 클럽의 대표였다.강민아는 이미 주식 시장에서 큰돈을 벌었지만 레이싱 때문에 무적의 ‘드림'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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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반씨 가문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자란 어린 도련님은 대단한 인물과 장소에 익숙했지만 드림 앞에 서서 루나에게 인사를 건넬 땐 긴장해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주체하지 못했다.그러나 차 안에 앉은 사람은 아이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루나?”민이는 발끝으로 서서 고개를 들어 호기심에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강나현은 차에서 내려 드림의 차 문 앞에 서 있는 반씨 가문 부자를 보고 가슴에 위기감이 엄습했다.그녀가 성큼성큼 다가가 말했다.“루나라고 했죠? 얘기 많이 들었어요. 듣기론 오토바이도 잘 탄다던데 나도 오토바이 레이서거든요. 우리 둘이 일대일로 겨루는 건 어때요?”반하준이 루나에게 패했기에 강나현은 그 대신 이겨주고 싶었다.루나는 프로 레이서였고 강나현은 그녀가 오토바이도 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루나의 모터사이클 실력은 프로 수준이 아니었고 크로스컨트리 경기 이후 루나의 체력이 급격히 고갈된 상태였기에 이제 그녀와 대결한다면 강나현은 자신이 이길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차에 앉은 여자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자 강나현이 불만스럽게 말했다.“그렇게 차갑게 굴지 말고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놀아요.”민이가 두 눈을 반짝거렸다.“루나가 오토바이도 타요?”아이는 루나를 더욱 동경했다.강나현은 루나가 자신에게 지면 민이의 눈빛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입술 한쪽을 들어 올렸다.반하준은 눈을 내리깔고 발밑에 놓인 명함을 바라보았다. 주제도 모르는 여자가 심은호가 떠받들어주니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것 같았다.“2억 줄 테니까 나현이랑 한번 놀아요.”우위에 익숙해져 있는 반하준의 눈에는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강민아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반하준이 이 정도로 강나현을 아꼈던가.남자가 계좌번호를 찍으라는 듯 휴대폰을 강민아에게 내밀었지만 강민아는 무시한 채 옆으로 몸을 돌려 심은호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반하준은 그녀와 심은호가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다정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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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민이의 말을 들은 강나현은 웃음을 터뜨렸고 반하준은 아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민이는 루나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착각이 분명하다.루나를 가식적인 엄마로 착각하다니, 이건 루나에 대한 모욕이었다.재벌가 자제들은 강나현이 오토바이를 타고 루나와 대결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둘러 루나에게 자신의 차를 들이밀었다.“루나, 내 차를 타요!”“루나, 내걸 타요. 내걸!”자신을 둘러싼 그들을 강민아는 전부 알고 있었다. 이 헬멧만 벗으면 그들은 그녀에게 지금처럼 열정적으로 달려들지 않을 거다.강나현과 친한 그들은 강민아가 18살에 강씨 가문으로 돌아갔을 때부터 그녀에게 적대적으로 굴었다.나중에 반씨 가문 사모님이 되고 반하준의 체면을 생각해 그녀를 건드리지 말아야 했지만, 반하준의 태도가 그들이 강민아를 대하는 태도를 결정해 버렸다.자신이 아끼는 차를 끌고 나온 강나현은 절친들이 루나 주위만 맴도는 모습을 보고 두 눈에 증오만 가득 찼다.강나현은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넘쳤다. 지금 그녀는 인터넷에서 유명한 여성 라이더였고 루나는 다른 사람의 차를 운전하니 강나현은 자신이 우승할 확률이 더 높다고 느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객석 쪽을 바라보았다.관객석에서 한 여자가 강나현을 향해 손짓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눈동자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담기며 10분 뒤 루나를 끌어내릴 생각에 들떴다.강민아의 시선이 사람들을 지나쳐 심은호가 누군가와 함께 개조한 오토바이를 끌고 오는 것을 보았다.고개를 돌린 심은호가 검은색 오토바이를 슬쩍 보고는 강민아에게 말했다.“이걸 타요.”강민아가 다가가 보니 차체 한쪽에 그려진 달이 보였다.강민아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마 자신을 위해 맞춤 제작된 것일까?그녀는 서둘러 괜한 착각이라며 부정해 버리고는 심은호에게 말했다.“고마워요. 내가 이기면 상금은 내가 3, 그쪽이 7로 가져가죠.”심은호는 웃었다.“그쪽이 이기는 거야말로 나와 이 차에 대한 제일 좋은 선물이에요.”그는 좌석을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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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국내 최고의 여성 라이더로 불리는 루나도 고작 이 정도라니.오늘 밤 그녀는 루나를 이기고 내일부터 명성을 떨치게 될 거다.첫 번째 코너가 다가오고 있었다.휙-검은색 오토바이가 강나현의 앞을 스쳐 지나가자 강나현은 당황했다.어쩌다 루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을 앞지른 걸까?강나현은 속도를 올리며 따라잡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연속되는 코너에서 둘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세상에, 루나는 코너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아.”“대단해. 이 트랙에서 처음 달리는 거야. 연습 경기도 안 했잖아.”“이게 바로 국내 1위 여성 레이서의 실력인가? 너무 무섭네.”강나현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꽉 깨물었다. 아무리 해도 강민아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 미리 부탁했던 친구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관중석에서 생수병이 날아오르더니 갑자기 활주로에 떨어졌다.고속 운행에서는 작은 돌멩이마저 큰 사고를 초래할 수 있었다.무거운 오토바이가 쏜살같이 지나가자 관중들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었고, 다들 무의식적으로 강민아의 차가 생수병을 밟고 지나가며 큰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그 생수병이 강민아의 앞길을 막지 않더라도 강민아에게는 걸림돌이 될 테고 그걸 피하기 위해서 속도를 줄일 것이다.강민아가 생수병에서 3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때 갑자기 오토바이가 한쪽으로 30도 정도 심하게 기울더니 강민아가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생수병을 낚아챘다.관중석에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생수병이 장외에 있는 대형 쓰레기통에 던져졌다.문라이트가 홀연히 떠나고 나서야 관중들은 강민아가 한 행동에 반응했다.“세상에!”“꺄악!”누구는 머리를 탁 치며 입을 크게 벌렸고, 누구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루나 앞에 무릎을 꿇고 싶었다.“세상에, 내가 뭘 본 거야!”“빨리, 빨리 돌려봐!”재벌가 도련님들이 소리치자 제어 콘솔에 있던 직원이 코스 옆 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을 느린 속도로 대형 스크린에 띄웠다.“젠장, 무식한 나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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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오랫동안 오토바이를 타면서 강나현은 처음으로 무기력함과 절망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루나와 그녀는 같은 레벨이 아니었고 그녀가 일방적으로 짓밟힌 게임이었다.민이는 한참 동안 루나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강나현을 발견하고는 팔짱을 낀 채 불만이 가득한 듯 투덜거렸다.“현이 형은 너무 느리잖아, 거북이야.”반하준은 여전히 무거운 레이싱 슈트를 입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고 숨을 내쉴 때마다 탄탄한 가슴이 함께 오르내렸다.그의 깊은 시선이 루나의 모습을 쫓았다.누구도 그의 시선을 이렇게 사로잡은 적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극한 운동의 매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을 뗄 수 없는 순간이었다.세 바퀴를 먼저 완주한 강민아는 결승선에 멈춰 서서 심은호에게 신호를 보냈고, 심은호는 곧장 콘솔 스태프에게 연락을 취했다.스태프의 목소리가 강나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강나현 씨, 루나가 경기를 끝냈으니 약속대로 차에서 내려 결승까지 달려가세요.”강나현은 강민아보다 한 바퀴 반 정도 뒤처져 있었기 때문에 5km 가까이 달려야 했다.하지만 강나현은 스태프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그녀에게 말하는 동시에 스태프의 목소리가 현장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사람들은 강나현이 스태프의 말을 듣지 않자 야유를 보냈다.“내려! 내려!”“결과에 승복해!”“비열해. 저러면 조금이라도 적게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객석에 앉아 있던 강나현의 일행들은 주변 사람들의 고함을 듣고 모두 창피함을 느꼈다.몇몇 재벌가 자제들이 콘솔로 달려가 인이어를 착용한 강나현에게 전용 채널을 통해 연락을 취했다.“강나현, 차 세워. 다들 널 욕하고 있어.”멈칫한 강나현이 차를 세우고 헬멧을 벗자 객석에서 들려오는 비난이 파도처럼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거야?”“차에서 내려! 내려!”“루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으면서 결과를 받아들일 배짱은 없나 봐?”강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조금 더 타면 적게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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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반하준은 늘 멋대로 행동하며 모두가 그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블랙홀, 부가티 라 부아튀르 누아르, 애스턴 마틴 발키리.”강민아는 영어로 자신이 원하는 차를 말했다. 반하준의 차고에 있는 가장 비싼 차 세 대였다.순식간에 남자의 눈빛이 강민아의 얼굴을 가린 헬멧을 뚫을 듯 날카롭고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내 차고에 누아르와 발키리가 있는 걸 어떻게 알죠?”반하준의 아우라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다른 사람이라면 벌벌 떨었겠지만, 강민아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덕에 저기압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대표님께서 블랙홀처럼 완벽한 레이싱카를 만들었다는 건 차를 사랑한다는 말이죠. 제가 짐작한 고성능 슈퍼카 두 대가 마침 차고에 있는데 기꺼이 내어주실 수 있나요?”루나의 설명은 일리가 있었다. 프로 레이서 출신으로 반하준의 차고에 어떤 스포츠카가 있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그런데 남자의 시선이 루나에게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저를 잘 아시네요.”그는 자신과 루나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반하준은 상대방의 헬멧을 벗겨서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3일 이내에 언제든 반씨 가문에 차를 가지러 오세요.”그는 헬멧과 레이싱 슈트를 벗은 루나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강민아도 주저하지 않다.“그럼 이제 블랙홀의 차 키를 저에게 주시죠?”영어로 말하며 헬멧을 뚫고 나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 말투와 조금 달랐다.하지만 상대는 그녀의 남편이고 그녀의 핏줄인 아들도 옆에 있었다.한때 가장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얼마나 그녀를 무시했으면 지금 그녀의 목소리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걸까.그녀도 점차 반하준과 두뇌 싸움을 하는 방법을 서서히 배워나갔다.반하준은 사람도 산 채로 잡아먹는 사냥개였고 그녀는 지금 자신의 행동이 호랑이 입에서 먹이를 꺼내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반하준이 무심하게 블랙홀 차 키를 던지자 타원형의 자동차 키는 공중에서 완벽한 호를 그리며 강민아의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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